책/인생

안토니오 그람시, <감옥에서 보낸 편지>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18. 11. 15. 15:36

안토니오 그람시, <감옥에서 보낸 편지>

 

 

 

사랑하는 카를로,

 

 

...어머니한테 뭐라고 말한거니? 과장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너는 내가 전혀 낙담하거나 패배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야 해. 혹 사형 선고를 받는다 해도 나는 평온할 꺼야.

 

 

사형 전날 밤에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너의 편지, 그리고 난나로 형에 대해 네가 쓴 부분은 재미있었지만 혼란스럽기도 했다. 형과 너 모두 전쟁에 참여했지. 특히 난나로 형은 가혹한 조건에서 전쟁을 치뤘어. 지뢰 공병으로 땅속에 들어가 오스트리아군 공병들과 얇은 칸막이를 사이에 둔 채 형은 적들이 자신을 산산조각내기 위해 지뢰를 폭발시키려는 걸 들을 수 있었단다. 내가 보기에는, 비슷한 상황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도덕적 힘들의 근원이 자기에게 있음을 - 자기 자신의 활력과 의지, 목적과 수단의 긴밀한 결합 - 확신하고 결코 좌절하지 말고, 결코 감상적이고 진부한 기분이나 비관주의, 낙관주의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내 마음은 저 두 감정을 모두 종합하고 그것들을 넘어서고 있다.

 

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주의적이야.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나는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는데 비축해 놓은 의지력을 이끌내기 위해 항상 경우를 염두해 둔다. 나는 절대로 환상을 갖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없어. 나는 언제나 끝없는 인내심으로 스스로를 무장해 왔단다. 그건 수동적이고 활력 없는 인내심이 아니라 끈기 있는 노력과 결합된 인내심이야. 오늘날 극도로 심각한 도덕적 위기가 있지만, 과거에는 이와 다른 심각한 위기들이 있었어. 이번 위기와 이전의 위기에는 차이가 있지... 이것이 네가 관대함을 가지고 난나로 형과 함께 있으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이유란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형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봤어. 형이 어쩔 줄 몰라하고 완전히 용기를 잃을 때는 오로지 형이 고립될 때 뿐이야. 아마 다음 번에는 형에게 편지를 쓸 거다.

 

사랑하는 나의 카를로, 너에게 장황하게 설교를 하는 동안, 나를 대신해 테레시나와 파울로에게 딸 낳은 걸 축하해 달라는 걸 잊었구나. 크리스마스와 그 뒤 다른 명절들에 대한 인사말도 전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려 한다. 어머니께서 우리가 어릴 때 들려주시곤 했던 유명한 츄씨와 조금은 비슷하게 말이지.

나를 대신해 모두에게 사랑의 포옹을 해다오. 특히 어머니에게.

 

 

19291219

 

투리에서 너의 안토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