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투자 칼럼

주가는 ‘우려의 벽’을 타고 오른다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1. 9. 16. 09:07

주가는 ‘우려의 벽’을 타고 오른다

 


중앙선데이 2009.08.09


직접 펀드를 운용하던 시절 나는 주가 전망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예외가 있기는 했다. 헤지 전략을 세워야 할 때는 좋든 나쁘든 시장을 전망하고 반대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그 시절 내가 주로 했던 투자는 철저히 분석해 잘 알게 된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기업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시장 전체(주가지수)가 어디로 움직일지를 점치는 것보다 한결 수월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나는 시장을 예측해 달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다. 망설이기는 했지만 내 머리와 마음속에서 어떤 생각이 강하게 일렁일 때 곧잘 시장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가치 투자의 아버지’인 벤저민 그레이엄이 부른 대로 ‘미스터 시장(Mr. Market)’은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 없다. 시장 전문가들이 이런저런 예측을 내놓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적중률이 형편없다. 이런 점을 잘 아는 나는 전망을 제시하더라도 아주 겸손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본래 시장은 다수의 예측과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나는 감히 시장을 예측해 베팅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어쩌다 한 번은 적중할 수 있다. 하지만 꾸준히 맞히기는 아주 어렵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내 경험에 비춰 보면 시장 참여자는 편향돼 있다.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편향을 보인다는 얘기다.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매수 타이밍을 잘 잡지만 팔아야 할 시점을 놓친다. 반대로 비관적인 사람은 팔아야 할 시점은 잘 포착하지만 사야 할 순간을 잡는 데는 젬병이다. 양쪽 모두 시장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주가는 ‘악재(우려)의 벽’을 타고 오르는 경향이 있다. 악재나 불확실성이 가득할 때 주가가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장 참여자들은 대부분 악재에 취해 있다. 주식을 사지 말아야 할 이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시장은 불확실성을 딛고 서서히 회복한다. 어느 순간엔 시장 참여자들을 놀라게 할 만큼 올라 있다.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기묘한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어 현재 흐름이 계속된다고 믿는 쪽이 많을수록 실제로 그렇게 될 확률이 낮다. 물론 내 30년 증권 인생에서 예외도 있었다. 중동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이 비관적으로 봤는데 실제로 시장 상황은 더욱 비관적이었다.

기묘한 특징으로 되돌아가 이야기를 계속하면, 호황이면 장밋빛 전망이 설득력을 발휘한다. 반대로 시장이 침체의 나락에 있을 때는 음울한 이야기가 주로 통한다. 또 증시 호황은 위험을 은폐하고 침체장은 그 위험을 드러내 보인다. 또 시장이 정점에 올랐다고 좋은 소식이 자취를 감추는 게 아니다. 더 좋은 소식이 줄어들 뿐이다. 반대로 시장이 저점에 도달하면 악재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나쁜 악재가 줄어든다.

시장은 미래 요인을 현재 가치로 할인하는 데 아주 뛰어난 장치다. 주로 6~12개월 뒤의 일이 미리 주가에 반영된다는 게 정설이다. 이런 시장에서 좋은 소식이건 나쁜 소식이건 일단 확인하고 매매하겠다면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다.

최근 흐름을 살펴보면 금융위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인 지난해 9월~올해 2월 사이에 글로벌 시장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다. 금융 시스템이 조만간 무너져 내릴 듯했다. 아무도 주식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팔려고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장은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주식을 팔아 치우려는 사람이 줄어든 탓이다. 이후 주요 국가의 주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나는 시장의 앞날을 예측해야 할 때 한 가지에는 곁눈질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세 가지는 반드시 살펴본다. 먼저 주목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면 경제전망이다. 이 전망은 경기가 저점일 때 가장 비관적이고 정점일 때 장밋빛 일색이다. 내 경험에 비춰 보면 경제전망을 바탕으로 시장을 정확하게 예측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반면 내가 주목하는 세 가지는 

 

첫째, ‘저점과 고점 순간 시장의 역사적 패턴이 어떠했는가’이다. 시장 침체나 호황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갔는지를 알아본 뒤 현재 상황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둘째, 주식시장의 투자 심리·행태다. 매수·매도차익비율, 주가지수 변동성, 상승·하락 종목 수 비교, 뮤추얼펀드의 현금자산 비중, 헤지펀드의 매매동향 등이 투자 심리·행태를 보여 주는 세부 지표들이다. 이 지표들이 극단적으로 비관적이거나 낙관적이면 ‘정반대’로 예측하고 투자에 나서는 것이 좋다.

셋째, 주가가 순자산의 몇 배인지를 말해 주는 주가순자산비율(PBR)과 투자·세금을 제하고 남은 기업들의 현찰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있는 가용현금흐름(Free Cash Flow)이다. 이 지표가 30~40년 초장기 평균치에서 벗어나 있으면 주식시장에서는 조만간 무엇인가 일어난다.

내 경험에 비춰 보면, 세 가지 요인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주가가 상승하거나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오늘이나 내일 당장 그런 변화가 발생한다고 봐서는 안 된다. 몇 주나 몇 달의 오차가 발생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주식 투자는 적어도 3년 정도 여유를 갖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