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三國誌 기행, 허우범

8. 조조의 두통을 낫게 한 진림(陳林)의 격문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2. 2. 14. 20:59

조조의 두통을 낫게 한 진림(陳林)의 격문


"사공 조조의 할아버지 조등은 중상시였는데,좌관이나 서황 같은 내시들과 함께 요사한 짓을 일삼고 탐욕으로 질서를 파괴하며 백성들을 괴롭혔다. 조조의 아버지 조승은 조등의 양자가 되려고 아첨하더니,더럽게 모은 돈으로 높은 자리를 사는 것도 모자라 권세가들에게 금은보화를 바쳐 태위에 올라 권력을 차지했다. 이처럼 조조는 환관에게 빌붙은 자가 남긴 추한 씨앗으로 애초부터 덕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약삭빠르고 행동이 날센 것만 믿고 남을 능멸한 데다 난리를 좋아하고 재앙마저 즐겼다.

조조는 무덤을 파헤치는 발구중랑장과 금을 긁어모으는 모금교위를 설치한 뒤에 가는 곳마다 무덤을 파헤치게 하여 해골이 드러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삼공의 자리에 앉아서 흉악한 짓을 밥 먹듯이 저질러 나라를 더럽히고 백성을 해쳐 그 해악이 사람을 넘어 귀신에게까지 이르렀다. (중략) 조조는 겉으로는 황제를 지킨다고 하지만 사실은 정예병 700명을 동원해 궁궐을 포위하고 황제를 볼모로 잡은 것이다. 이 때문에 조조가 나라를 빼앗으려는 나쁜 생각을 품지 않을까 두렵도다. 지금이 바로 충신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때이고 열사가 공을 세울 기회이니 어찌 조조 타도를 독려하지 않겠는가 "

 

원소는 관도대전을 준비하면서 진림(陳林)에게 조조 토벌의 정당성을 알리는 격문을 쓰게 했다. 진림은 일필휘지로 격문을 썼고 원소는 그 내용에 크게 만족하여 두루 배포하도록 했다. 두통을 앓던 조조가 격문을 보고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진땀을 흘리며 저도 모르게 두통이 나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조는 곧 진림의 글을 평가했다.


"격문에는 반드시 무략(武略)이 있어야 뜻을 이룰 수 있는데, 진림의 글은 명문이기는 하나 무략이 없구나. 원소의 전략이 그것밖에 안 되니 어쩌겠는가.” 

 

진땀을 흘리며 두통까지 사라지게 쓴 글을 읽으면서도 격문이 목적한 바를 이루고 있는가를 냉철히 파악해 내는 조조는 역시 비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런 분위기에서 어찌 냉철할 수 있단 말인가.


건안문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문장가 조조가 깜짝 놀랄 정도의 글 솜씨를 지녔던 진림은 원래 대장군 하진 밑에서 문서담당 주부로 일했다. 그는 하진이 죽자 원소의 막료가 되어 문장을 맡았고, 원소가 패하자 조조에게 투항했다.


"나의 죄명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부친과 조부의 일은 왜 들춰냈느냐?’

"일단 시위에 메긴 화살은 쏠수밖에 없지요.”


조조는 그의 재능을 아껴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사공군모제주(司空軍謀祭酒)에 임명하고 군사와 국정에 관한 문서와 격문을 담당하게 했다.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진림은 문장력은 출중했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조변석개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인신공격만을 일삼는 속물 정객이었던 셈이다. 남북조시대 말기에 안지추(顔之推)가 자손에게 교훈으로 남긴『안씨가훈(顔氏家訓)』에도 이르기를, “아무리 난세라 해도 진림처럼 부끄럽게 살지 말라.” 고 했으니, 무릇 세상에 나선 자들은 한 편의 글이나 한 마디의 말을 함에 있어서 도 경거망동을 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