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三國誌 기행, 허우범

12. 천하삼분(天下三分) 계략의 역사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2. 2. 15. 11:51

천하삼분(天下三分) 계략의 역사

 

서기 207년, 형주 교외에 있는 융중에서 제갈량은 유비에게 천하경영의 계책을 말한다. 바로 유명한 ‘융중대책’ 이다. 한 뻗 비빌 땅조차 없던 유비에게 급박한 것은 조조군의 남하에 대처할 전술이었다. 제갈량은 형주의 호적을 조사하여 병사를 징발하면 군세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유비는 그 말에 따라 군사력을 강화시켰다. 유비는 이를 계기로 공명이 뛰어난 책략가임을 믿게 된다.


그렇다면 제갈량은 어째서 유비에게 조조와 손권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 아닌 한 황실 자손인 유표와 유장이 다스리는 두 지역을 차지하도록 했을까? 융중대책의 요점은 중원 진출이 용이한 형주와, 장강을 이용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 익주를 차지한 뒤에, 오나라와 동맹을 맺어 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다. 천하의 등뼈와 같은 형주를 얻으면 동남을 함께 아우를 수 있고, 동남을 얻고 나면 서북을 도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제갈량의 계략은 지정학에 근거한 전략이었다. 또한 형주와 익주는 유비가 자립하고 그 정권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땅이었다.

 


제갈량이 설파한 ‘천하삼분계략'인 융중대책은 그의 생각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위 • 촉 • 오 삼국의 다툼은 형주와 익주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 이었다. 공명은 이러한 형세를 전략적 안목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천하삼분계략도 공명이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진한의 책사인 괴통은 한신에게 제 나라의 산동성을 탈취하여 유방과 항우에 대항할 제3의 세력으로 자립할 것을 권하면서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정족한다.”고 하였다. 삼국의 각축기인 서기 200년. 오나라의 노숙도 손권을 만났을 때 오나라가 취해야 할 전략으로 이 계책을 말하였다. 또한 오나라의 감녕과 주유, 형주의 방통, 익주의 법정 등도 비슷한 전략을 구상하였다.

 

천하삼분계략은 당시의 선진적인 사고력을 갖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누구나 공감하는 정치적, 군사적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전란을 피해 형주로 모여든 선비들의 지혜이기도 했다.


그러나 천하삼분계략을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현실에 반영하고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추진했던 사람은 오직 제갈량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제갈량의 탁월한 점이었고, 이 때문에 수경선생이 그를 일컬어 천하를 얻을 수 있는 자라고 평했던 것이다.


전략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철저한 준비에 달려 있다. 그러나 완벽한 전략이라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또한 실행에 옮긴다 해도 목적을 벗어나면 의미가 없다. 뛰어난 전략에는 사람들이 믿고 따를 만큼 혼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을 성취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면 실패한다 해도 아름답다. 모름지기 전략에도 인의(仁義)가 충실히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