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역사적 사실보다‘주관적 사실’을 중시한『삼국지연의』
역사적 사실보다‘주관적 사실’을 중시한 『삼국지연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는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한 경우가 많다. 전혀 상관없는 인물과 사건을 일치시키거나, 사건의 일부를 다른 사건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동시대에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끼워 맞추거나 필요하면 사실이 아닌 이야기도 아주 감동적인 사실로 만든다. 이렇게 볼 때 나관중은 있었던 사실을 과장 • 확대 또는 재창조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작업이라 여긴 듯하다.
유비가 삼고초려하여 영입한 제갈량이 등용되자마자 조조의 대군을 맞아 박망파에서 화공으로 무찔렀다는 것도 위에서 설명한 두 번째에 해당된다. 즉 역사적으로 제갈량은 박망파전투에 참가한 적이 없다. 이 전투는 제갈량이 출사하기 5년 전에 이미 유비가 주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제갈량이 주도한 것으로 바뀐 것일까?
제갈량이 박망파에서 화공으로 조조군을 무찌른 내용은 원나라 때 잡극 ‘제갈량박망 소둔(諸葛亮博望燒屯)’ 에서부터 나타난다. 즉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완성하기 전부터 제갈량의 전공(轉功)으로 유포되어 있었다. 유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유비를 따라 평생을 희생한 제갈량의 모습을 신출귀몰한 지략가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유비에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관중은 당시의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사서를 참고하여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고 필요한 부분을 새로 넣어 뛰어난 전략가로서의 제갈량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정형 화된 제갈량의 이미지는 신기(神技) 그 자체다. 이러한 제갈량이 출사하여 첫 전투에서부터 완벽히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하여 제갈량이 출사하기 5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 열화와 같은 성원과 희망, 그리고 바람에 의해 제갈량의 첫 전과(戰果)로 탈바꿈한 것이다.
신야에서의 전투 또한 허구다. 건안 13년(208년) 가을에 조조가 형주를 공략할 때 유비는 번성(현재의 양번)에 있었다. 유표가 죽고 차남인 유종이 조조의 침공소식에 항복하자 유비는 번성에서 백성들을 이끌고 남하했다. 그러므로 제갈량이 신야성을 불태워 조조군을 무찌른 '제갈량화소신야(諸葛亮火燒新野)’ 이야기는 나관중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다면 나관중은 무엇을 근거로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나관중은 유비가 신야에서 철수하기 전에 하후돈을 무찌른 사실을 둘로 나눠 박망파와 신야에서의 각기 다른 전투로 변형시켰다. 그리고 모두 다 제갈량의 뛰어난 전략으로 대승을 거두게 함으로써 제갈량을 지혜의 화신으로 만들어 놓았다.
제갈량은 출사 이후 적벽대전까지 유비와 함께 줄곧 철수와 후퇴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어떤 전투에서도 이긴 적이 없다. 나관중은 제갈량의 보잘것없는 전력을 신출귀몰한 이미지로 바꿔 독자들로 하여금 천하제일의 전략가로 각인시킴과 동시에 제갈량의 눈부신 마력(魔力)에 빠져들게 하였다. 천하의 재담꾼인 나관중에게는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삼국지연의』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주관적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 주관적 사실이란 중화주의에 이로운 창조를 의미한다.『삼국지연의』에는 모든 인간군상의 백화난만한 삶을 그려냄으로써 후세로 하여금 삶의 경전이 되도록 하였다고 하지만 이는 『삼국지연의』의 겉모습일 뿐이다. 『삼국지연의』의 내면에는 이민족 역사에 대한 불신과 편리한 예단주의, 그리고 대국적 기질의 고취를 통한 중화민족의 세계 통일 염원이 숨쉬고 있다. 우리가 『삼국지연의』를 삶의 지침으로 편하게 대하고 있는 순간에도 『삼국지연의』의 내면은 쉬지 않고 마약처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며 파고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