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한수, 양주(凉州)의 실질적인 맹장
한수, 양주(凉州)의 실질적인 맹장
양주는 지금의 감숙(甘肅) 영하(寧夏)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삼국시대에는 이민족의 땅이나 다름 없었다. 후한 말 황건적이 득세하자 양주에서도 티베트계인 강족(羌族)과 저족(氐族)이 중심이 되어 이 지역을 장악했다. 한수(韓逐)는 이 지역의 명사(名士)였다. 양주를 장악한 북궁백옥(北官伯玉)이 변장(邊章)과 한수를 협박하여 군정을 맡기자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한수는 뛰어난 지모와 인덕을 갖춘 자였다. 하지만 항상 2인자의 자리를 고수했다. 그러나 자리만 그럴 뿐이지 지략은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자신의 계획대로 1인자를 바꾸거나 처단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서량의 맹장으로 마등(馬騰)이 빠질 수 없다. 마등은 아버지는 한족이고 어머니는 강족이다. 마등은 큰 키에 우람한 체격 등 영웅의 골격뿐만 아니라 상당한 인격까지 갖춘 자였다. 부대장급인 사마(司馬)에 이르렀는데, 상관으로 모시던 양주자사 경비가 죽자 군사를 일으켜 반역했다. 한수와 연합한 것은 이때였다. 마등과 한수는 의형제를 맺어 처음에는 서로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권력의 공백지대인 관중을 놓고 욕심이 없을 수 없었다. 싸움이 그칠 날이 없으니 두 사람은 자연히 원수가 되었다. 이를 꿰뚫어본 조조가 종요를 사자로 보내 두 사람을 위무하여 조용히 지내게 했다. 조조가 정중하게 요청하 마등과 한수가 받아들인 것이다. 조조는 서량의 두 맹장을 상대하기가 아직은 껄끄러웠던 것이다. 서기 198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8년, 한수는 동료이자 라이벌인 마등이 조조의 부름을 받아 허도로 가자 그의 아들인 마초와 동료가 된다. 서기 211년, 조조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현안인 관중 평정을 단행하여 그해에 복속시킨다.
조조의 관중 평정 과정에서 재미있는 것은 한수와 단 둘이서 말을 타고 대화하는 교마어(交馬語)다. 『삼국지』「무제기」를 보면 그때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한수가 요청하여 조조를 만났다. 조조와 한수의 부친은 함께 효렴이 되었으며,한수와는 오래 전부터 벗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말을 탄 채 대화를 나누었다. 군사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다만 도읍에서 사귀었던 옛 친구들 얘기를 손벽 치며 즐겁게 나누었을 뿐이다.”
* 효렴과(孝廉科)는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에 제정된 제도로 효행이 지극하고 청렴한 사람을 추천받아 등용하는 제도였다.
57세의 조조와 70세에 가까운 노인이 일촉즉발의 전쟁터에서 서로의 지난 일을 회고한다는 것은 보통의 관록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조조와 한수는 품격이 높았던 것이리라. 하지만 한수는 조조보다 순수했다. 교마어가 조조가 구상한 반간계였음을 몰랐다. 그것은 한수가 교마어를 좋아하는 것을 조조가 역이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가와 각사가 권력을 잡았을 때 장평관 전투에서 패하여 진창까지 도망갔다. 동향(同鄕) 출신인 번조가 추격해 오자 교마어를 시도해 위기를 넘겼다. 그 뒤 번조는 이각에게 죽었는데, 그 이유는 한수와의 교마어로 의심을 샀기 때문이었다. 한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교마어로 인해 마초에게 의심받았지만 그렇다고 조조에게 투항한 적은 없다.
조조에게 패한 한수는 양주로 달아나고 그때마다 강족과 저족의 무리들이 그를 도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였다. 한수가 이민족을 후대하였기에 이들 도 한수를 끝까지 지켜준 것이다.
서기 215년, 70여 세로 죽을 때까지 한수는 32년간을 서량의 맹주로 군림했다. 『삼국지j「위지」“장기전(張旣傳)” 에는 한수를 최후까지 섬긴 성공영(成公英)의 이야기가 있다. 한수가 죽자 성공영은 조조에게 투항했다. 조조가 기뻐하며 군사(軍師)로 삼고 물었다.
"한수에게 충성을 다하였는데 나에게도 그리 할 수 있는가?"
말에서 내린 성공영이 무릎을 끓고 흐느끼며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원래 주인이 살아 계셨다면 저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겁니다.”
당시 최강이자 최고의 주군으로 인정받던 조조. 그런데도 성공영은 한수에 대한 그리움을 표시했다.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마음인가, 아니면 한수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에 끌렸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