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 충신이 아니로다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 충신이 아니로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저에게 역적을 무찌르고 한나라를 부훙시키는 책임을 맡겨 주옵소서. 그렇지만 성과가 없으면 저의 죄를 다스려 선제의 영령에게 고하옵소서. 폐하도 스스로 살피시어 정도를 자문하시고 순리에 맞는 말만 받아들이시되 선제의 유조를 기억하소서. 저는 폐하의 은혜를 받들게 되어 복받치는 감격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원정에 오르게 되어 표를 올리나니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출사표(出師表)는 제갈량이 위나라를 공격하기에 앞서 후주 유선에게 올린 글로서, 충신의 진실한 마음이 넘쳐흐르는 고금의 걸작이다. 227년과 228년에 각각 작성했는데, 이를 구분하여 전후 출사표라고 부른다. 흔히 말하는 출사표는 전출사표를 말한다. 출사표는 진수의 『삼국지』「촉서」'제갈량전' 과 양 나라 소명태자가 편찬한 『문선』 등에 실려 있다. 제갈량은 유선에게 나아가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며 출사표를 올렸다.
제갈량의 출사표에는 군주에 대한 변함없는 단심(丹心)이 표현되어 있다. 그 것은 유비의 삼고초려에 대한 보은이자 신의였고, 제갈량 스스로가 사심을 버리고 후주 유선을 보좌하겠다는 맹세였다.
송대 학자 조여시(趙與時)는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나서 눈물을 흘리지 있는 자는 충신이 아니다.” 라고 했다. 심중에서 솟구치는 절절한 진심이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천하의 명문장인 까닭이다.
제갈량의 출사표는 임금이 해야 할 일과 나라를 다스리는 길에 대해 논한 만고(萬古)의 명문이다. 제갈량이 오늘날 탁월한 정치가로 존경받는 것도 이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출사표처럼 너무도 충정어린 신하의 진언은 오히려 군주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
‘자신이 덕이 낮다고 아무 때나 스스로를 낮추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이유를 붙여 변명하면 안 된다. 선악에 대한 상벌을 정확히 해야 한다. 사적인 감정에 치우쳐 그때그때 처벌이 다르면 안 된다.’ 는 말들은 마치 아버지가 아이를 훈계하는 것 같아 듣기좋은 말은 아니다. 그리고 매번 ‘선제’ 유비의 유지를 이어받아 충성을 다한다고 한 말도 후주 유선의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았으리라.
제갈량은 유비의 탁고에 충실하여 위기에 봉착한 국가대사를 꼼꼼히 챙긴 것이었지만, 유선은 이미 20세를 넘긴 청년 황제였다. 그러므로 역적을 토벌하러 가는 제갈량의 의리는 이해할지라도 제갈량이 유선을 어린 임금으로 생각하며 이것저것 아비같이 챙기며 보위하려는 충성은 귀찮은 잔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제갈량의 생각이 어떠하였건 간에 유선은 제갈량이 죽자 승상제도를 폐지한다. 유선으로서는 출사표에 눌렸던 승상 대행체제를 없애고 본격적인 친정체제(親政體制)를 구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