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승자, 후흑의 대가
1. 구천이 와신상담으로 부차를 제압하다
월왕 구천은 회계싸움에서 진 뒤 스스로 오왕 부차의 신하가 되었다. 그의 처는 부차의 첩이 되었다. 이것이 구천이 구사한 ‘면후’의 비결이다. 구천은 후에 거병하여 오나라를 깨뜨렸다. 부차는 사람을 보내 통곡하며 자신은 신하가 되고 부인은 첩이 되겠다고 빌었으나 구천은 조금도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당시 그의 입장에서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부차를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구천이 구사한 ‘심흑’의 비결이다. 후흑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면후가 나온 뒤 심흑이 뒤따라야 한다.
2. 유방이 임협의 무리와 항우를 깨뜨리다
유방은 천부적 자질이 있는 데다 경륜 또한 깊었다. 그는 세속에서 말하는 오륜은 물론 예의염치 따위를 깨끗이 버렸기 때문에 군웅을 능히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사기》에 따르면 항우가 유방에게 이같이 제의한 적이 있다.
“천하가 흉흉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제 나와 당신 두사람뿐이니 당신과 겨뤄 자웅을 가리고자 한다.”
이때 유방이 웃으며 이같이 대답했다.
“나는 지혜를 겨룰지언정 힘을 다툴 생각은 없소!”
유방은 항우가 자신의 부친을 인질로 잡아 삶아 죽이겠다고 하자 오히려 태연하게 그 국 한 사발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 했다. 그는 또 초나라 병사에게 쫓길 때 수레의 무게를 덜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세 번이나 마차에서 떠밀어내려고 했다. 그가 후에 또 천하를 얻은 뒤 한신을 죽이고 팽월을 죽인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격언에 따른 것이다.
‘새를 잡으면 활을 광 속에 넣어두고,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그러니 어찌 부인지인(婦人之仁: 부인의 어짊)과 필부지용(匹夫之勇; 필부의 용맹)을 지닌 데 불과한 항우가 유방의 심사가 어떠했는지를 꿈엔들 알 수 있었겠는가? 유방의 뻔뻔함과 음흉함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특별히 달랐다. 특히 속마음이 시꺼멓기로 말하면 대략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러워 마음 내키는 바대로 해도 결코 시꺼먼 속마음의 법도를 어긋 난적이 없다’고 요약할 수 있다.
원래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刀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의 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왜 모든 사람들이 흐느끼며 만류하는 데도 불구하고 동성에서 죽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을까? 그가 실패한 원인은 한신이 지적한 바와 같이 ‘부인지인, 필부지용’이라 는 여덟 자에 함축돼 있다. ‘부인지인’은 곧 불인을 참지 못하는 것으로, 그 병의 근원은 속마음이 시꺼멓지 못한 데 있다. '필부지용’은 수모를 참지 못하는 것이니 그 병의 근원은 뻔뻔하지 못한 데 있다. 항우는 홍문지연에서 같은 좌석에 앉아 있던 유방의 목을 검을 빼 과감히 쳤으면 '지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후세에 욕을 먹을까 두려워 망설이다가 결국 유방이 도주하도록 방치했다. 그가 해하의 싸움에서 패했을 때에도 만일 오강을 건너 권토중래를 노렸다면 아직 천하가 누구의 수중에 떨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낱 이같이 말했을 뿐이다.
“나는 강동의 자제 8천 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왔으나 지금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으니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가련히 여겨 용서해준다 한들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랴. 그들이 비록 말을 안 한 다 할지라도 내 어찌 이를부끄럽게 여기지 않겠는가?”
이 말은 참으로 보통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는 일면 ‘사람을 볼 면목이 없다’고 하고, 일면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잘난 사람의 체면이 다 뭐고 그 고매한 인품이 또 뭐란 말인가?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런 소견에 대해 좀 더 검토할 생각도 없이 이런 유언을 남겼을뿐이다.
“이는 하늘이 나를 멸망시키려는 것이지 내가 결코 싸움에 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마 하늘도 그의 이런 잘못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장량이 <육도삼략>으로 한신을 도모하다
유방의 스승은 한나라 개국 3걸 중의 한사람인 장량이다. 장량의 스승은 ‘다리 위의 노인’이다.
노인은 흙다리 위에서 책을 한 권 전해줄 때까지 장량을 여러 차례 시험했다. 이는 소동파의 《유후론》에도 그렇게 쓰여 있듯이 장량에게 뻔뻔해지는 것을 가르친 것일 뿐이다. 장량은 재주를 타고 난 사람으로 하나를 가르치면 곧바로 열을 깨달았다. 노인은 그가 장차 ‘제왕의 스승’이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우둔한 사람은 이런 최고의 비결을 결코 터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사기》에는 이같이 나오고 있다.
“장랑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는데 오직 유방만이 그를 높이 평가하고 따르자 ‘패공은 거의 하늘이 내린 인물이다’라고 칭송했다.”
물론 현명한 스승을 얻기도 힘들지만 좋은 제자 역시 만나기 힘든 법이다. 한신을 제나라 왕에 봉할 때 유방은 그의 스승 격인 장량의 조언이 없었다면 자칫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유방은 제나라를 평정한 한신이 사신을 보내 제나라 왕에 봉해줄 것을 요구했을 때 한신이 자립하려는 의도라고 분개하며 큰 소리로 사신을 질타했다. 이때 장량과 진평이 유방의 발을 밟고 그를 제지했다. 이는 마치 요즘학교에서 학생이 문제를 풀 때 선생님이 옆에서 고쳐준 것과 한가지였다.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유방도 때로 차질이 있었으나 곧바로 스승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후흑에 능통한 그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유방과 항우가 다투던 시절, 뻔뻔하기는 했으나 음흉하지 못해 결국 실패한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한신이다. 그는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 가는 모욕을 능히 참았다. 뻔뻔한 정도가 유방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속마음이 시꺼먼 점에서는 아직 훈련이 덜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만일 제나라의 왕이 됐을 때 괴철의 말을 들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존귀한 자리에 올랐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옷을 벗어 입혀주고 밥을 먹여준’ 유방의 은혜가 못내 마음에 걸린 나머지 경솔하게 이같이 말했다.
“남의 도움으로 옷을 입은 자는 그 사람의 어려움을 걱정해야 하고, 남의 도움으로 먹고사는 자는 그 사람의 일을 위해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후에 장락궁 종루에서 참수를 당하고 9족이 몰살을 당 했다.
4. 조조와유비가 심흑과 면후로 싸우다
나는 침식을 잊고 몇 년간 궁리 끝에 우연히 삼국시대의 몇몇 인물을 떠올리다가 문득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이같이 외쳤하.
"알았다, 알았어 ! 옛날에 영웅호걸이 된 자들은 한낱 뻔뻔하고 음흉한 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삼국의 영웅 가운데 우선 조조를 보자. 그의 특기는 속마음이 온통 시꺼멓다는 것이다. 그는 여백사를죽인 데 이어 공융과 양수, 동승, 복완, 황후,황자를 죽였다. 그는 모질게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이같이 장담했다.
“내가 남에게 버림을 받느니 차라리 내가 먼저 버리리라.”
속마음이 시꺼먼 것이 참으로 이루말할 수 없을 지경에 달한 것이 다. 이런 일이 있으면 당연히 일세의 사내라고 불릴 만하다. 후흑의 방법이 매우 간단하나 적용해보면 매우 신묘하기 그지없다. 작게 쓰면 작은 효과를 얻는 데 그치지만 크게 쓰면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유방과 사마의는 바로 그 점을 완전히 터득해 천하를 얻은 것이다. 조조와 유비는 각각 한 가지 측면만을 갖추고 태어났지만 왕을 자처하며 천하를 삼분해 자웅을 다툴 수 있었다.
원래 유비의 특기는 보통 뻔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는 조조를 비롯해 여포와 유표, 손권, 원소 등에게 붙으면서 이쪽저쪽을 오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남의 울타리 속에 얹혀살면서 이를 전혀 수치로 생각지 않은 것은 물론 울기도 잘했다.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은 그를 이같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는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봉착하면 사람들을 붙잡고 한바탕 대성 통곡을 해 즉시 패배를 성공으로 뒤바꿔놓았다.”
그래서 ‘유비의 강산은 울음에서 나왔다’고 하는 속담이 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또한 본래 영웅의 모습이다. 그와조조는 쌍벽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술을 먹으며 천하의 영웅을 논할 때 한 사람의 속마음은 가장 시꺼 떻고 한 사람의 낯가죽은 한없이 두꺼웠다. 그러니 서로 상대방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5. 손권과 사마의가 후흑의 지존을 다투다
조조와 유비 이외에 손권이라는사람이 한명 더 있다. 그와 유비는 동맹 관계인 동시에 사위와 장인 관계였다. 그가 홀연히 형주를 탈취하고 관우를 죽게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속마음이 시꺼먼 것이 조조를 닮았다. 다만 촉나라를 향해 가면서 화해를 구한 점 등에 비추어 그 시꺼먼 정도가 조조에 비해 약간 덜했을 뿐이다.
그는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웅을 자처하며 조금도 아래에 있기를 거부하다 결국 조조의 아들 조비의 발아래 꿇어 엎드려 신하가 될 것을 간청했으니 뻔뻔한 것이 유비 못지않다. 다만 얼마 안 가 위나라를 배신한 점 등에 비추어 그 두꺼운 정도가 유비에 비해 조금 덜했을 뿐이다. 그는 비록 뻔뻔함과 음흉함이 유비와 조조만큼은 안 됐으 나 오히려 두 사람의 특징을 겸비한 까닭에 하나의 영웅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세 사람은 각자의 수단으로 상대방을 서로 정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천하는 부득불 셋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조조와 유비, 손권이 잇따라 죽자 사마씨 부자가 때를 틈타 일어났다. 그들은 조조와 유비의 훈도를 받아 후흑을 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과부와 고아까지 사기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음흉한 것이 조조와 같았다. 여자들의 머리 장식용 두건으로 쓰는 건괵을 선물 받는 모욕을 당하고도 이를 능히 참아냈으니 뻔뻔한 것이 유비보다 더했다. 나는 역사서를 읽으면서 사마의가 건괵을 선물받은 대목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책상을 치며 이렇게 외쳤다.
“천하가 사마씨에게 돌아갈 것이다!”
제갈량은 천하의 기재로 3대에 걸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인물인 데도 불구하고 사마의를 만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온몸을 다 바쳐 충성하니 죽어서야 그친다’는 입장이었으나 종내 중원 땅을 한 뼘도 차지하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었다. 그는 왕을 보좌할 만한 재목이기는 했으나 사마의라는 후흑 대가의 적수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6. 장개석과 모택동이 후흑 천하를 논하다
신해혁명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소요는 모두 나의 제자들이거나 나를 사숙한 제자들이 실제로 연습한 결과다. 그들 사형 사제와 서로 절차탁마하여 공력을 닦은 지 이제 24년이나 되니 연습은 이제 끝났다고 할 만하다. 이제 이들은 속세로 하산해 사람들과 악수를 나늘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이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후흑으로 적을 제압하니 어떤 적인들 해치우지 못할 수 있겠으며, 후흑으로 공을 세우고자 하니 어떤 큰 공인들 이루지 못할 리가 있겠 는가?”
나는 이런 견해에 기초해 다음과 같은 구호 한마디를 특별히 제시하 고자 한다.
후흑구국(厚黑救國: 후흑으로 나라를 구함)! ”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중국이 열강에 저항하려면 후흑학을 배제하고 무슨 뾰죽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열강에 저항하역량이 있어야 한다. 인민들이 후흑을 열심히 연마하면 역량이 있다고 할 만하다. 활을 쏘는 것에 비유하면 종전에는 성문을 닫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활을 쏘고 나도 활을 쏴 대응했다. 그러나 이제는 서구 열강이 우리 모두의 표적이 되어 있는 만큼 우리 모두 그 표적을 향해 활을 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말한후흑구국은 오직 이 의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