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일반 칼럼

곡예하는 민주주의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2. 3. 7. 12:22

곡예하는 민주주의

 

<경향신문 2022.03.07 조광희 변호사 > 

 


변성현 감독의 영화 <킹메이커>는 본격적으로 정치를 다룬 많은 영화가 그렇듯이 정치의 이상과 권력의 현실이라는 두 줄 위에서 곡예하는 주인공을 그린다. 영화 <불한당>에서 유려하게 드러난 감독의 능력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도 빛난다. 그러나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말처럼 이미 사전투표를 마친 이번 대선의 풍경들이 훨씬 드라마틱하다. 복잡한 내막을 더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누구나 현기증을 느낄 것이다.


영화가 다룬 1971년 선거는 민주와 독재, 선과 악의 구별이 뚜렷한 선거였다. DJ가 마침내 정권교체를 이룬 1997년 그리고 그 후 몇 년까지는 여전히 그러한 구도로 선거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을 그런 이분법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옳든 그르든 이미 많은 이른바 진보파나 리버럴이 차라리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지경이 되었다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기보다는 냉소와 비관의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런데 이분법적 시선의 해체에는 동의하지만,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말은 맞는 것일까? 권력의 장에서는 경쟁자의 좋은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중요하다. 경쟁자가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을 방치하면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혀 없는 일을 지어내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단서와 모호한 증거만 있으면 정치적 경쟁자를 악마나 바보나 사기꾼으로 모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치적 지향이 다원화되고
사회가 극도로 복잡해진 이 시대
유권자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젠 흑백 아닌 색 스펙트럼 보고
동시에 이 ‘곡예들’에 감사해야

 


인간의 주관성은 너무 압도적이며 어지간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도 그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공세가 가능하다. 게다가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는 것만큼이나 가짜뉴스와 편향된 정보로 사람들의 판단력을 극단적으로 오염시킨다. 그러다 보니 2022년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기보다는 환멸의 도가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매우 비도덕인 것처럼 매도되지만 과연 그럴까. 그가 수십년 동안 언론이 조명하지도 않는 지역에서 헌신적으로 지역운동을 해온 사람이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말 비도덕적인 사람은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그의 발목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독선적 이미지다. 비주류로서 어렵게 버텨온 언더도그 후보로서는 억울할 만하다.


윤석열 후보를 선택하려고 해도 괴롭다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을 자극하는 언사로 증오와 분열의 정치를 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혐오스럽다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국민의 힘’의 자정능력이 그를 적절히 걸러서 변방으로 밀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만일 그것에 실패한다면 그는 남녀 사이의 혐오를 격화시켜 장차 이 사회의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후보의 자질은 비교적 걱정이 덜 된다.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짧은 준비기간에 비한다면 솔직히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성품을 쉽게 폄하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건 퍼스트레이디가 될지도 모를 이의 정신세계다. 자신이 선호하는 독특한 정신세계와 사람을 보는 눈이 남편을 대통령으로까지 만들었다고 생각할 때, 이후 이 나라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자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역사와 정의는 수천㎞ 너머 아프간 민족저항전선(NRF)이나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그리고 미얀마의 정글에서나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일까. 아니다. 아무리 한국의 민주주의 순위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후보와 손을 잡게 되어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기초로 하는 기득권 양당구조를 혁파할 기회가 너무 멀어졌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적 무력감과 혐오는 ‘국민 없는 국민의힘’ ‘민주 없는 민주당’이 벌이는 핑퐁게임에서 발원했다. 

 

두 당은 번갈아 가면서 5년마다 현재를 지옥화하고, 미래를 천국화한다. 대통령선거를 언제까지 유토피아를 찾는 해방운동처럼 치를 것인가.


정치적 지향이 다원화되고 사회가 극도로 복잡해진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제 유권자는 흑백이 아니라 색채의 스펙트럼을 보아야 하며, 심지어 가시광선 너머 자외선과 적외선을 감지해야 한다. 동시에 이 민주주의적 곡예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도 깨달아야 한다. 나는 러시아와 중국의 날로 더해가는 전체주의를 보며, 2022 대선의 우여곡절과 소란조차도 우리의 성취이고 자랑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나마 약간의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