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거대담론의 시대 저물어… 도전자들에 기회 넘겨줘야"
[전문] 김영춘 "거대담론의 시대 저물어… 도전자들에 기회 넘겨줘야"
정치를 그만둡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느낀 우선적인 소감입니다. 이제 민주주의, 통일, 기득권 타파 등 거대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정치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국민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고 일상의 행복입니다. 그걸 더 잘해줄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그렇지 못한 집권당에게 응징투표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2011년에 부산으로 귀향해서 일당 독점의 정치풍토 개혁과 추락하는 부산의 부활에 목표를 두고 노력해왔습니다. 부산의 변화가 전국의 변화를 견인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목표는 절반쯤 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기울어진 운동장이긴 합니다만 이제는 국힘당 후보라도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는 방심은 곤란한 지역이 되었으니까요. 또 제가 부산 부활의 큰 전환점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했던 부울경 메가시티 건설, 가덕도신공항 건설 등도 이미 성과를 냈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대 해수부 장관을 맡아서는 북항재개발 1, 2단계 사업계획과 부산신항 추가확장계획을 모두 확정지었습니다. 또한 부산에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고 무너진 해운산업을 재건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큰 지원이 있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저는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20대의 나이부터 시작하여 오랫동안 정치계에서 일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어떤 자리를 목표로 정치를 하고 선거에 나서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나라를 위해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일에 도전해왔을 뿐입니다. 서울에서의 정치생활을 청산하고 부산으로 돌아온 것도 그런 도전의 차원이었습니다. 제게 선거의 유불리는 고려요소가 아니었습니다. 작년 보궐선거에서는 오거돈 전 시장이 저질러놓은 사고의 수습과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제가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통과의 기회로 삼고자 한 것도 출전의 중요한 동기였습니다. 그런 목표들은 이루어졌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릴 때입니다. 저는 이번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근본적으로 저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고뇌 때문입니다. 대선 기간 내내 제가 정치 일선에서 계속 활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번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를 정치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거대 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면 나는 거기에 적합한 정치인인가를 자문자답해봤습니다. 선거만 있으면 출마하는 직업적 정치인의 길을 더이상 걷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도전자들에게 기회를 넘겨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정치를 해온 개인의 문제로 바라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 정치인의 생활을 청산하고 국민 속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오랜 기간 과분한 평가로 일하도록 만들어주신 서울과 부산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 세상에 되돌려드리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국민의 행복 증진과 나라의 좋은 발전을 위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려 합니다. 놀랍도록 빨리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공부하면서 젊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도 찾아보겠습니다.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다"라는 단순한 경구를 되새기면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2. 3. 21 김영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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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은 1962년 2월 5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진구에 소재한 성지초등학교, 개성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에 부산동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198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1993년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김영삼 정부에 입각했다. 1996년 34세의 나이에 제15대 총선에 출마, 1,000여표 차이로 낙선했다. 2000년 38세에 재도전 끝에 광진구 갑에서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4년 42세 때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진구갑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추진협의회에 합류하였으며 3당 합당 당시 김영삼과 함께했던 상도동계의 막내였으나 2003년에 민주화 운동의 동지인 이부영, 김부겸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참여하면서 상도동계와는 다른 노선을 걷게 되었다. 열린우리당 서울특별시당 위원장, 원내수석부대표, 최고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실패의 책임을 지고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0년 10월에 손학규의 요청으로 민주당에 복당하여 최고위원, 영남미래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2011년 아내, 아들과 함께 부산으로 귀향했다. 2012년에 실시된 제19대 총선에서 부산진구 갑에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3,500여표 차이로 낙선하였다.
2014년에 제6회 지방 선거에서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무소속의 오거돈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사퇴하였다. 2015년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위원장으로 선출되어 2016년까지 활동했다. 부산광역시당위원장 선출 후 정당사상 대한민국 최초의 지역에 기반한 연구소인 오륙도연구소를 출범시켰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진구 갑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2017년 6월 15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었다. 2017년 6월 16일 임명되어 2019년 4월 2일까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8년 5월 정부의 탈원전 정책기조에 맞추어 해상태양광 발전 사업을 추진했다.
2019년 5월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오륙도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2019년 12월에 출범한 부·울·경 메가시티 비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2019년 12월 18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부·울·경 메가시티 비전위원회를 중앙당 특별위원회로 지정했다.
2020년 6월 29일 제33대 국회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 28일 국회사무총장을 사임하고 곧바로 자택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2021년 3월 18일 부산광역시장 재•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기호 1번 후보로 등록했다. 하지만 박형준에게 밀려 낙선했다.
2022년 3월 21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