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한국 화가

재독화가 노은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2. 10. 20. 08:23

서양화가 노은님

    

 

1. “나는 구제된 사람입니다”

 

 

< 행복이 가득한 집 2015년 4월호 >

‘물고기의 꽃밭’, 종이에 아크릴 채색, 785×585mm

오리 하나 나무 하나 돌멩이 하나가 점이 되어 알알이 박힌 옷을 입고 환하게 미소 지으며 악수하는 서양화가 노은님. 제18회 KBS 해외동포상 문화예술 부문 수상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시차에 적응할 여유도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제주 여행을 마치고 막 올라와 조금은 피로한 모습이었지만, 몸에 배어 있는 듯한 평온함과 여유로움은 여전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만난 동식물은 그가 입는 옷, 휴대폰, 지갑 등에 유랑하고 있었다. 평소 “작가 자신이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왔듯이 붓이 닿는 모든 대상이 캔버스가 되어 그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과 참 많이도 닮았다. 그 옆에는 반려자 게르하르트 바치가 그를 소중한 보물 다루듯 에스코트했다. 편안한 의자가 눈에 보이지 않자 자신의 허벅지에 잠시 앉으라는 농을 할 만큼 여전히 애정을 드러내는 인생의 짝꿍. 노은님의 작품이 언제나 평온하고 말간 위로를 주는 것은 나무처럼, 바위처럼 언제나 든든하게 인생의 바람을 막아주는 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몸이,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화가 노은님은 18년째 독일 남부 깊은 산골 미헬슈타트의 고성에서 산다. 1200년대에 지은 고성은 녹음이 짙은 숲과 개울로 둘러싸여 있다. 작가는 “집 보여드릴까요?” 하며 태블릿 PC를 꺼내 사진을 보여준다. 그 안에는 가을에 직접 딴 버섯 사진도 있다. “아는 것만 먹어요. 발 닿는 데에 넘치니까. 아침에는 사슴이 제 새끼 데리고 이파리를 뜯어 먹고, 저녁에는 여우가 숨어 달려요. 개울이 집의 담을 따라 흐르는데, 창문 너머로 음식을 휙 던지면 팔뚝만 한 숭어가 달려들어 탁탁 받아먹어요. 여름엔 이렇게 큰 가재가 냄새를 맡고 와요. 해가 물에 비치면 다 보이거든. 항상 돌 옆에 있어요. 빨리 숨으려고. 먹이를 탁 던져주는데, 저쪽에서 숭어가 보고 뱅 돌아와서 홱 낚아채요. 가재가 얼마나 화를 내는지…. 그런 걸 관찰하면서 사는 것 같아.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노은님 화가는 집 주변에서 마주하는 자연을 이야기할 때 목소리 톤이 한층 높아졌다.

한 해의 3분의 1은 떠도는 삶을 사는 여행자이기도 한 그는 생애 잊을 수 없는 자연을 마주한 순간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몰디브는 여섯 번 갔는데, 신이 만든 창조물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 신비로움에 취해 바닷속을 더 들여다보려고 하면 파도가 못 들어오게 막 밀어내요. 이리 밀고 저리 밀고… 창조주가 쉽게 볼 수 없도록 숨기는 것 같아요.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바다 수평선 너머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데, 마치 바다와 해가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함께 잠자리에 들러 들어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는 그렇게 대자연과 마주할 때 자신이 가장 살아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한없이 넓은 우주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지 깨닫고 겸손해진다. 그런 경험 때문일까? 

 

사람들이 그에게 향수병(하임베heimweh)에 대해 물으면, 그는 그 대신 페른베fernweh, 즉 먼 곳을 향한 동경과 그리움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자연을 유랑하며 오감으로 경험한 것이 그의 붓끝으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표지 작품 ‘나비와 함께’(종이에 아크릴 채색, 2009)도 마찬가지다. “정원에 노랑나비가 많이 오거든요. 붓 가는 대로 그리다 보면 정원에서 본 노랑나비도 나오고, 오리도 나오고, 물고기도 나오고…. 김치만 먹으면 몸 밖으로 김치밖에 나올 게 없잖아, 그쵸? 내가 보고 느낀 것만 그림으로 소화되어 나와요.”


1946년 전주에서 태어난 화가 노은님은 1970년대 파독 간호사로 한국을 떠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홀로 그림을 그렸다. 간호장의 주선으로 전시회를 연 것을 인연으로 함부르크 미술대학에 입학, 주경야독하며 그림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이후 1990년부터 2010년까지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의 교수로 일했다. 세계를 무대로 수많은 전시를 열었고, 백남준ㆍ요셉 보이스 등의 예술가와 함께 평화를 위한 전시회에 참가했다. 지난 3월 ‘제18회 KBS 해외동포상 문화예술 부문’을 수상했으며, 5월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오로지 감사하며 살 뿐


스스로 “그림을 만나기 전에는 꼭 벌받는 사람처럼 살았다”고 말하지만, 강물이 흐르듯 해가 뜨고 지듯 마치 그 길이 정해져 있던 것처럼 그의 인생은 흘러갔다. “제가 스스로 무엇이 되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저 좋아하는 것을 했을 뿐인데, 평생 그림을 그리게 됐고, 좋은 상까지 받게 되었네요. 죽음의 경계에까지 갔다가 기적같이 살아난 사건이 두번 있었는데, 그때 깨달은 것이 있어요. 저는 항상 구제되었다는 것이죠. 뭔가 든든한 백이 있는 것 같아요. 부처님 말씀처럼 ‘두려워하지 마라, 넌 항상 구제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감사하는 마음만 생겼어요. 여태까지 온 삶이 그래요.” 

 

그는 KBS 해외동포상 문화예술 부문 수상 소감에서도 같은 마음을 전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항상 구제되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더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제 두 발이 길다면 세상 끝까지 걸어가고 싶고, 제 두 팔이 길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이는 삶을 대하는 그의 방식이자 작품의 근원적 에너지이며, 만물을 향한 진솔한 고백이다.

 

 

 

2. 노은님 , “독일에서는 저를 그냥 화가라고…한국서만 파독 간호사 꼬리표”

 

< 국민일보 2019-07-28 >  

 


“독일에서는 저를 그냥 화가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꼭 파독 간호사 출신이라고 붙여요.”

 


노은님, <달과 함께>, 2019년 작, 캔버스에 복합재료, 143x158cm. 가나아트센터 제공

 


재독 화가 노은님(73)씨의 개인전 ‘힘과 시’(8월 18일까지)가 서울 종로구 평창로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최근 개막식 참석차 방한해 기자들과 만난 노 작가는 눙치듯 이런 불만을 털어놨다.

한국 여성 작가 최초로 독일 국립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정교수로 임용되는 등 이미 독일에서 미술 교육자로, 작가로 입지를 굳힌 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관성처럼 그에게 ‘파독 간호사 출신’ 꼬리표를 붙인다.

 

 


노은님, <생명의 시초>, 1984년 작, 종이에 복합재료, 258x203cm. 가나아트센터 제공

 


돌이켜보면 1972년(26세) 때 파독 간호사로 근무하던 함부르크 항구 근처 시립병원에서 가진 개인전이 화가 인생의 출발이었다. 독일 땅을 밟은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한국에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초상화가 갖고 싶어 그림을 배웠던 그는 정밀한 사실화에 질려 포기했었다. 그때 사둔 물감을 가지고 병원 일이 끝난 뒤 짬짬이 그렸는데, 독일인 동료 간호사들이 반색하며 전시를 주선했다. 내친김에 2년 뒤 함부르크 국립미술대학에 정식 입학했고, 그 길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노 작가의 작품 세계는 사실주의와 거리가 멀다. 단순한 선과 원초적인 색으로 화면을 구성해 생명의 화가다. 작가 인생 초창기인 1984년(38세)의 작품 ‘생명의 시초’는 200호 대형 화면을 가득히 채운 화살표들이 마치 무정형의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힘의 양상을 보여준다. ‘뛰는 동물’은 한 번의 붓질로 쓱 상상 속의 동물을 그렸다. 캔버스가 아닌 한지의 그림들은 여백의 미까지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미술평론가인 아넬리 폴렌은 “동양의 명상과 유럽의 표현주의를 잇는 다리”라고 극찬했다.


젊은 시절, 노 작가는 ‘우울증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고, “운명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내가 누군지에 대한 물음”에 빠져 살았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화면은 그 근원을 탐구한 결과다. “15년을 그렇게 헤맸는데, 어느 날 아침 막한 하늘이 뚫린 듯 편해졌다”는 그녀의 화폭은 예전처럼 거침이 없으면서도 원색을 구사해 밝다. 11월에 작업실이 있는 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에는 그녀의 작품을 전시하는 영구 전시관이 개관한다. 

 

3. 맑고 힘찬 생명의 기운, 노은님의 그림에 위로를 받네

 

 

< 중앙일보 이은주 기자, 2021.08.16  >


노은님, 어항 1992 Acrylic on canvas, 70 x 100 cm,.[사진 가나아트]


노은님, 암초상어, 1990, 종이에 아크릴, 45x55cm. [사진 가나아트]
 


물고기 가족, Fisch Familie 2003, Acrylic on paper, 50 x 70 cm.[사진 가나아트]

 


"저는 원래 화가로 태어난 것처럼 느껴져요. (그림을 그린 지) 50년 다 됐는데도 그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 돼가고 있어요(웃음)."

재독화가 노은님(75) 화백이 201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젊은 시절 고독과 방황 속에서 마치 큰 벌을 받는 사람처럼 지냈다"는 그는 "외로워서 괴로웠고, 괴로워서 외로웠다. 나는 그 덕에 많은 그림을 그려냈다"고 했다.

그런 시간이 그에게 선물을 준 것일까. 그의 그림은 '외로움' 혹은 '괴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맑고 푸른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힘찬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한 작품은 대담한 선과 색으로 전하는 위로와 즐거움에 가깝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들의 위로  

 


노은님, 무제, 1998 종이에 혼합매체, 100x70cm. [사진 가나아트]


물고기와 새, 꽃 등의 자연물로 생명이라는 주제를 다뤄온 노은님의 개인전 '생명의 시작: am Anfang'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대 작품부터 지난해 완성한 신작까지 총 31점을 선보이는 자리. 국내에선 2년 만에 열리는 전시인데도 반응이 심상찮다. 개막 전 작품의 절반이 '예약' 됐고, 개막 3일 만에 초대형 작품 등 두 점을 제외하곤 29점이 모두 팔렸다. 꾸밈없고 원시적인 생명력을 갖춘 그의 그림에 팬들이 응답했다.

노은님은 독일에 정착한 지 50년이 넘는 파독 간호사 출신이다. 1946년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독일로 이주했다. 함부르크 시립외과병원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던 당시 간호장이 우연히 그의 그림들을 보고 병원에서 전시를 열도록 주선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의 길로 들어섰다. 그 전시를 계기로 73년 국립 함부르크 미술대학 회화과에 한국인 최초로 입학했고, 독일 표현주의와 바우하우스를 대표하는 거장 한스 티만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졸업 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한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정교수로 임용돼 20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원초적인 표현방식 탐구

 


노은님, 무제, 1996, 종이에 아크릴, 28x64cm. [사진 가나아트] 

 


노은님, 찾아온 손님, 2017, 캔버스엔 아크릴, 160x224cm. [사진 가나아트]


노은님, 생명의 시작, 2020, 캔버스에 아크릴, 160x400cm. [사진 가나아트]


노은님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생명'이다.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점(點)은 그의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다. 과감한 붓질로 파랑·빨강·초록 등 원색으로 그려낸 고양이와 물고기, 새와 꽃, 개미 등엔 반드시 점이 찍혀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점은 곧 눈(目)이란다. 살아있는 존재, 즉 생명의 표식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시화집 『눈으로, 마음으로』에서 "나는 모든 물체에 눈을 그려 넣는다. 나무에 눈을 달아주면 잎이 살아나고, 곤충들은 눈을 뜨고 날아다니고, 물고기들은 눈을 뜨고 우주를 여행한다"고 썼다.


"그림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내가 큰 대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작은 모래알 같은 존재임을 알았다"는 그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자연의 형상을 표현해왔다. "참다운 예술은 진정한 순수함을 원한다. 모든 복잡함이나 기술을 떠나 단순함이 남아 있을 때 예술은 살아난다"는 신념에서다.

이번 전시엔 각각 1984년, 1996년, 2003년에 그린 '무제' 연작도 선보인다. 오랜 시차를 두고 그린 것이지만 나란히 놓인 화면엔 물고기와 새의 탄생을 담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난해 그린 대작 '생명의 시작'도 눈에 띈다. 단순하고 대담한 선에 색도 절제돼 있지만 맑고 힘찬 기운이 화면에 가득하다.

세상 만물은 물, 불, 흙, 공기 등 4원소로 구성됐다는 고대 그리스의 4원소론을 바탕으로 파란색, 빨간색, 밤색, 검정 또는 흰색을 쓰는 등 색에도 자연에 대한 통찰을 담는다.

 


"암이어도 괜찮다···삶에 감사"  


2019년 노 화백에겐 중요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첫째는 독일 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에 노은님 작가를 소개하는 영구 전시실이 마련된 것. 1450년에 지은 미술관 건물을 새로 보수하면서 새로 마련된 작은 공간엔 그의 그림과 더불어 그의 고향 전주와 서울, 함부르크 등 세 도시를 소개하는 사진이 걸렸다.

바로 이어 그는 암 진단을 받았다. 노 화백은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처음엔 깜짝 놀랐다.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붓을 놓은 시간도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건강이 나아져 요즘엔 독일 남부에 있는 미헬슈타트에서 매일 산책하며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틈틈이 그림도 다시 그리느냐는 질문에 그는 "틈틈이가 아니다. 그림은 매일, 밥 먹듯이 그리고 있다"고 답했다.

2007년 개인전을 열며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의 숙제를 푸는 데 그림은 나에게 도구였으며 길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태우고, 녹이고, 잊고, 들여다보았다. 살아남는다고 전쟁터 병사처럼 싸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풀밭에서 뛰노는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 노은님의 놀이는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전시는 29일까지.

 

 

 

 

4. 삶이라는 두 갈래 길
파독 간호사 출신 ‘생명의 화가’
노은님, 지난 18일 독일서 별세

< 조선일보 정상혁 기자,  2022.10.20  >

 

 


노은님 2020년작 '무제'(228×160㎝). /가나아트센터
 

 


태어나, 죽는다. 사람(人)이 두 획으로 이뤄진 이유일 것이다.

생명의 본질을 화가 노은님(1946~2022)은 평생 궁리해왔다. 단순한 선, 원초적인 색, 꽃이나 새와 같은 자연의 요소로 화면을 채웠다. 붓과 빗자루, 때로 걸레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긋고 칠했다. 어린아이 낙서 같은 형상, 태고의 명상적 화풍으로 ‘생명의 화가’라는 별칭이 붙었다. “참다운 예술은 순수를 원한다”는 게 노은님의 생각이었다. “모든 복잡함과 기술을 떠나 단순함이 남을 때 예술은 살아난다.”

암 투병 와중이던 2020년 완성한 ‘무제’는 단순함의 극치다. 제목도 없고, 색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큰 붓으로 캔버스 위를 쓱 왔다 갔을 뿐이다. 그 양 갈래의 흔적이 자연스레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 여러 미술관을 다니며 고대 벽화와 토기를 보면 깜짝 놀란다. 살아남은 흔적이 어찌 그리 똑같은지… 그래서 내 그림도 점점 단순해지고 원시적으로 돼간다.” 이 그림은 지난해 8월 서울 개인전 당시 선보인 마지막 신작이다. 전시명이 ‘생명의 시작’이었다.

파독(派獨) 간호보조원 출신으로 모교(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 교수까지 지낸 입지전적 인물이나 악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림도 인생도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모두가 전쟁터 군인처럼 죽기 살기로 싸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러움, 욕심과 번민의 끝에 자리하는 위안. 화가는 지난 18일 그곳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