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둘레길 47코스~46코스 (서해랑길 화성 87코스, 86코스) _ 2023.01.01
1. 개요
‘부자는 돈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현자는 시간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오늘이 2023년 새해 첫날이라고는 하나, 무릇 시간이란 사람들이 만들어낸 상대적 개념인지라 특별히 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여는 쉬는 날처럼 다시 계속 걷는다.
오늘 길은 서해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화성방조제를 지나 매향리생태공원에 도달하고, 이어 남양방조제를 지나면 평택에 진입하여 아산포승공단을 가로질러 평택항에 도달하는 길이다.
2. 오늘 걸은 경기둘레길 코스 (북쪽에서 남쪽으로 역방향)
- 화성 47코스 = 서해랑길 87코스 (18.2Km) : 궁평항 ~ 화성방조제 ~ 매향리생태공원 ~ 이화리 정류장
- 평택 46코스 = 서해랑길 86코스 (13.9Km) : 이화리 정류장 ~ 수도사 ~ 원정리마을 ~ 평택항 마린센터
* 기아차화성공장 주변길이 그동안 위험하다는 지적을 받아서인지 공식 노선이 약간 변경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지 좀 다른 길을 간 듯하다. 그렇지만 종점에 도달하는데는 문제 없다. 마찬가지로 원정리 마을을 통과하는 구간 역시 약간 우회하도록 현장에서는 안내가 변경되어 있다. 아래 지도의 빨간색 네모 box 부분이다.

3. 교통편
- 출발지점 : 지하철 05:31 승차 - 어천역 환승 - 궁평항 08:20 도착 (2.8시간 소요)
- 귀가 : 평택항마린센터(04:20) - 평택 80버스 - 안중버스터미널 고속버스 환승 - 귀가 (3.2시간 소요)
* 일출 07:46, 일몰 17:22
* 날씨 : 맑음, 일중온도 최고 3도, 최저 -4도
4. 둘레길 실행 기록 : 7.5시간, 33.3Km 소요 (08:20 시작 - 16:20 종료)
5. 경기둘레길 화성 47코스 (서해랑길 87코스) : (궁평항 ~ 화성방조제 ~ 매향리생태공원 ~ 이화리 정류장)
직선으로 9km 정도 이어지는 화성방조제는 바람과 함께 걷는 곳이다. 길은 매향리 바닷가로 이어지고, 걸음은 초병 순찰로를 따라간다. 매향리는 아픈 근대사를 가진 마을이다. 매향리 앞바다에 있는 농섬을 미군 해상 폭격지로 사용하면서 오랫동안 아팠던 곳이다. 2005년 매향리 사격장은 폐쇄되었고, 그 땅에는 다시 희망이 싹트고 있다.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있고, 유소년야구장을 만들었다. 매향리를 벗어나면 기아차동차 화성공장 외곽길이다.
<주요 Site >
화성방조제
1991년부터 시작된 경기도 화성시의 화옹지구 간척사업을 통해 건립한 방조제로, 2003년 3월 물막음 공사가 끝났다. 총길이는 9.8km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방조제의 남쪽 끝이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이고, 다른 북쪽 끝이 서신면 궁평리이다. 궁평리 쪽에 길이 약 100m의 배수갑문이 있고, 궁평리 기점 6.6km 지점에 중간선착장이 있다. 2007년에 4차선 도로가 개통되었으며, 차로 왼쪽에는 자전거도로·오른쪽에는 인라인도로와 인도가 설치되었다.
매향리생태공원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에 있는 공원이다. 54년간 미 공군사령부의 공군사격장으로 사용하던 쿠니사격장 부지였던 곳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2005년 8월에 사격장을 폐쇄하였고 그 후 아픈 역사를 보존하고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2021년 9월에 공원으로 재단장하였다. 잔디 마당, 매향정, 파고라, 작가정원, 습지생태원, 마을 숲 산책로, 평화기념관, 평화의 소녀상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생태공원 산책로와 함께 사격장이 있던 바닷가로 가벼운 산책도 할 수 있다. 유소년 야구장인 화성 드림파크가 바로 인접해 있고 공원 내에는 화성시 공예문화관이 있다. 드림파크를 가운데 두고 맞은 편에는 매향리 평화역사관이 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기아로 95에 위치. 최신의 첨단설비와 자동화 시설을 갖춘 세계적 규모의 종합 자동차 생산 공장으로 생산에서 물류, 수출까지 모든 기능이 이곳에 집약되어 있다. 면적 100만평, 연간 생산능력 60만대, 생산 차종은 K3, 니로, K5, K7, 쏘렌토, 모하비, EV6 등이다. 공장 곳곳에 Movements Inspires라는 모토가 붙여져 있다.
< 둘레길 주변 사진 >
- 수원분당선으로 환승하여 어천역에 07:04분 하차

- 08:20분에 궁평항 하차하여 이미 올라온 일출을 찍은 사진


- 화성호 위로 떠오른 일출! 화성호는 담수호라서 얼어 있다.

- 화성방조제 초입에 있는 딴섬공원이다. 화성방조제준공기념탑이 있다.

- 화성방조제준공기념탑이 있다.

- 딴섬공원 지나서 평택 방향으로 진행한다.

- 화성방조제 건너편 서해 큰 바다.

- 둘레길 걸어가는 길의 모습이다. 숫자는 화성방조제 기점에서 궁평항쪽으로 떨어진 거리를 표시하고 있다. (백미터 단위)
사진에서 보명 이 지점부터 화성방조제 시점까지 7,200미터 남았다는 것이다.

- 둘레길 옆 화성호 가장자리에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운영하는 태양광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 하얗게 눈이 쌓여 있고 얼어붙은 화성호수의 풍광이다.


- 새해 해돋이 구경나온 모녀간에 사진을 찍고 있다.

- 화성호 가장자리 모습

- 계속 진행하면 마지막 부분은 거대한 습지가 나타난다. 갯벌을 없애고 간척하여 생태계를 파괴했는데 다시 습지 생태계가 좋다고 구경하라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 화성방조제 중간에 공터가 조성되어 캠핑카들이 야영을 하고 있다.

- 화성방조제 중간에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조그만 항구 ('매향2항')도 있다.

- 이제 화성방조제를 다 건넌 지점에서 걸어온 화성방조제를 바라본 광경이다.

-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미군 사격장
평범한 어촌 마을이었지만, 1951년 미군이 쿠니사격장을 만들어 심각한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한동안 잊혀졌던 매향리는 2000년 3월 23일에 KBS2 <추적 60분 - 매향리에도 봄은 오는가?> 편으로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데 이어 그해 7월에 추적 60분은 <매향리 사건 그 후, 우리의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 편으로 정부의 매향리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알리면서 학생들과 시민단체의 끈질긴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거기다 2002년에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일어나 미군범죄와 한국전쟁 양민학살과 함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이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드디어 2005년 8월 12일 사격장이 폐쇄되었고, 이후 화성시는 97만여㎡의 사격장 부지중 57만㎡를 평화생태공원으로 조성하고 나머지 24만㎡의 부지에 화성 드림파크가 건설되었다. 멀리 보이는 섬이 미군 전투기 사격의 표적이 된 새섬과 농섬(오른쪽 큰섬)이다. 나무가 많아 짙을 농(濃)자를 쓴 농도는 폭격으로 섬의 2/3가 없어졌다고 한다.
* 비슷한 사례는 우리 국토에 수도 없이 많다. 예를 들면 광주 어등산 일대 우리 국군의 포사격장 인근 주민들이 60년동안 포 사격으로 인한 유탄과 불발탄으로 누적 사망 77명, 부상 109명에 달한 바 있다. 1995년 광주지역 군부대인 상무대가 장성으로 이전하여 어등산 사격 훈련장의 포성이 멈추어 인근 주민들은 47년여 동안의 고통이 다소나마 해소됐으나, 매향리 사격장과는 달리 어등산의 옛 모습을 복원을 위해 국방부에 산림복구를 요구하고, 광주시에 ‘어등산 시민 종합 휴양타운’을 건설하여 주도록 건의하였으나, 보상도 충분히 이루어지지도 않고 광주 어등산관광단지 조성사업도 재원 부족으로 아직까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분단으로 인한 군사훈련이 국토의 어디선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해하지만 인구밀집지역이 아닌 곳에서 충분한 고려를 하고 해야 하는 것은 이제서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왼쪽 새섬, 오른쪽 농섬.

- 지금은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 1951년 8월 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라 이곳이 주한미군의 공군폭격장으로 사용되었다. 1954년 미군이 사격장 지역에 주둔을 시작했고, SOFA 발효 후인 1968년에 이르러 농섬을 중심으로 사격장이 형성되었고 점차 범위가 넓어졌다. 쿠니(Koon-ni)사격장 명칭은 매향1리의 옛날 명칭인 고온리의 미국식 발음이다. 당시 미군 폭격기들은 하루 600차례 연간 250일 이상 마을 상공을 선회하며 폭탄을 투하하고 기관총을 발사했다고 한다. 비다와 육지를 더해 2400만제곱미터(690만평)의 규모를 갖춘 아시아 최대의 공군 폭격장이었으며, 주한 미군 뿐 아니라 필리핀, 오키나와, 괌에서까지 날라와 폭격 훈련을 했다고 한다. 오폭에 의한 사고도 빈번하였으며, 무엇보다 소음으로 인하여 마을 사람들이 만성 질환으로 피해를 보았다. 분단의 비극이 낳은 또 다른 현장이었다.

- 매향리 고온항 가는 길에 눈이 안 녹고 쌓여 있다.

- 고온항 앞에는 무심한 새들만 오락가락 한다.

- 굴을 채취한 흔적이다.

- 고온항에 가끔 차를 세워 두다가 침수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위험표시판이 세워져 있다.

- 어촌계 수산물직판장이나 겨울 또는 휴일이라 한산하다.


- 마을 끝나는 지점에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후문이 나타난다.

- 한겨울에 마을 끝집 담벼락에 달려 있는 빨간 아그배 ! 파주 임진면 둘레길에서도 본 적 있다.


- 매향리 마을을 벗어나며 돌아다 본 정경.

- 갯가 쪽에서 보았던 매향리 생태공원은 반대편이 정식 입구이다. 왼쪽 건물이 화성시공예문화관이다.

- 매향리 생태공원 정문

- 화성청소년 야구 드림파크이다.

- 위험한 차도 대신에 농로로 둘레길이 이어진다.

- 농로 끝난 지점부터 기아차 화성공장 남문을 지나 바닷가 쪽으로 길게 우회하는 길이다.


- 건너편이 평택항이다.


- 마지막 기아차 정문이 나오면 곧 이화리 버스정류장 코스 종점에 다다른다.


6. 경기둘레길 평택 46코스 (서해랑길 86코스) : (이화리 정류장 ~ 수도사 ~ 원정리마을 ~ 평택항 마린센터)
남양방조제를 건너면 화성시에서 평택시로 넘어가게 되고 수도사와 숲길이 나타난다. 수도사는 1,300여 년 전 원효스님이 당나라로 가던 중 해골에 괸 물을 먹고 크게 깨우쳤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곳이다. 이어 원정리 마을길을 지나면 아파트 단지, 산업단지가 이어진다. 아산국가산업단지 경기포승지구를 지나면 평택항 마린센터 앞에서 길이 끝난다. 삭막할 산업단지 풍경을 녹여 주는 것은 쌈지공원과 가로수들이 있다.
<주요 Site >
수도사 [修道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경기도 전통사찰 제28호로 지정된 사찰로, 852년(신라 문성왕 14) 염거(廉巨)가 창건하였다. 그러나 이곳이 661년(문무왕 1) 원효(元曉)가 해골물을 마시고 득도한 곳이므로 염거가 창건하기 전에도 작은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가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중 이 근처 바위굴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원효는 밤에 목이 말라 주변을 더듬어 보니 바가지에 물이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시원하게 마셨다. 그러나 다음날 일어나 물을 마시던 바가지가 해골인 것을 보고는 구토를 하고 말았다. 이에 원효는 모든 것이 마음에 있음을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였다.
평택항 [ Pyeongtaekhang , 平澤港 ]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 570번지에 있는 항구로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에서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성구미리 동쪽 끝에 이르는 해면 전체를 말한다. 항내수면적(港內水面積) 98.972㎢, 수심 11∼18m, 조수간만의 차는 8∼10m이다. 1986년 12월 액화천연가스선(船)이 처음 입항하였으며, 1986년 12월 5일 국제무역항으로 개항하였다.
2000년 12월 정기 컨테이너선이 처음으로 취항하면서 서해의 대표적인 국제 무역항으로 성장할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컨테이너선은 홍콩과 중국의 톈진[天津]·칭다오[靑島]를 각각 매주 한번씩 운항한다. 수도권 기업들이 평택항을 통해 화물을 운송하면 부산항이나 광양항의 3분의 1 수준으로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2022년 현재 전체 선석 64개에 하역능력 97,504 천RT/년이고, 컨테이너는 각각 7 선석에 1,064 천TEU/년이다. 또한 평택항 컨테이너 정기항로는 (9개 선사 / 13개 노선) ('22. 07월 현재)이고, 국제카페리항로는 (5개사 / 5개항로) (‘22.7월 현재)이다.
현재 국내 28개 무역항 중 컨테이너선 정기항로가 개설된 항구는 부산항·광양항·인천항·마산항·울산항·군산항·여수항 등 7개 뿐이다. 특히 중국과 직항로가 열려 있는 곳은 부산항과 광양항뿐이어서 평택항의 효용가치가 다른 항구에 비해 높다. 또한 국내 기업의 절반 이상이 중부권에 자리잡고 있는데다가 거대시장인 중국과 거리가 가장 짧아서 입지상으로 유리하다.
< 둘레길 주변 사진 >
- 이화리 정류장에서 길은 시작되는데 남양호방조제 길 상태가 오래되어서인지 양호하지 않다. 그렇다고 차길로 내려 걸어가면 위험하다.

- 남양호와 남양방조제
남양호는 경기 화성시와 평택시 경계부, 남양만의 지만인 분양만(汾陽灣) 안쪽에 남양방조제를 구축하여 조성한 인공담수호이다. 남양방조제는 그 남쪽의 아산만방조제와 더불어 평택지구 다목적 농업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71년 3월에 착공하여,1974년 5월에 준공되었다. 방조제는 길이 2,060m(배수갑문 길이 84m), 높이 8.5m(수면 아래를 합친 최대높이 35m)이고, 만수(滿水) 면적 800ha, 저수량 3800만 t이다. 이 호수의 조성으로 연안 일대에 새로이 2,285ha의 논이 만들어지고, 4,004ha의 농토가 수리(水利)혜택을 입게 되었다. 한편, 이 호수에는 발안천(發安川)이 흘러든다.


- 남양방조제 중간 부분을 넘는 지점에 평택시 이정표가 나온다.

- 남양호를 바라보면 멀리 남양대교가 지나간다. 일반국도77호선에 위치해 있는 남양대교는 2005년에 준공되었으며 교량길이가 1230.0m 이며 교량 폭은 21.0m 이다.

- 평택시 부분 방조제길은 상태가 좀 낫다.

- 방조제 끝나는 곳이 평택발전소이다.

- 평택화력발전소 [ 平澤火力發電所 ]
경기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遠井里)에 있는 중유 및 가스연소 겸용 설비의 기저부하 담당 화력발전소로서 시설용량 140만 kW.이고 건설 당시의 명칭은 아산(牙山)화력발전소였다. 1977년 11월에 착공, 1980년 5월에 완공한 반옥외형(半屋外型) 발전소로, 1 ·2호가 모두 35만 kW 용량의 대형 규모이다. 주기기(主機器)는 일본 히타치[日立] 제작소에서 공급하였고 시공은 현대건설이 일괄 담당하였는데 전체 기자재(機資材) 중 44.6 %의 국산화를 달성했다는 의의를 가진다. 1979년 5월 착공하여 1983년 말에 준공을 본 3 ·4호기는 시설용량이 70만 kW이며, 본래 중유전소식(重油專燒式)으로 계획되었으나 석유파동 이후의 탈유시책에 부응하여 중유 및 LNG(액화천연가스)를 양용(兩用)할 수 있는 발전소로 설계를 변경하여 경제성을 높였다. 경인 ·평택 공업지구에 연간 약 49억 kWh의 전력을 생산 ·공급한다.

- 평택발전소 연료저장탱크이다.

- 평택발전소를 지나 남양호 주변 호반길이다. 낚시하는 사람들에겐 유명한 곳이라 한다.


- 역시 담수호로 얼어붙은 남양호 !

-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가까와진 남양대교.


- 포승읍 원정리
원정 2리의 고유지명인 머물에서 유래하였으며, 원정초등학교가 있다. 남양방조제로 인해 생긴 남양호가 민물낚시의 명소다. 이 동네에 국제 자동차 부두가 있어서, 수입차들이 이 곳에 입항한다. 디젤게이트 보상/리콜 문제로 인해 아우디-폭스바겐 차량들도 이 곳에서 압수됐다.
남양대교를 지나 원정리 마을로 들어서서 군부대 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도사가 나온다.



- 평택은 지리상으로 중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므로 옛날부터 중국가는 길목이었다. 이곳이 661년(문무왕 1) 원효(元曉)가 해골물을 마시고 득도한 곳이이라 하는데 염거가 창건하기 전에 작은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득도 체험관이라 하는데 해골물은 보이지 않고 문자 자료만 많다.

- 원효대사 (617-686)
삼국시대 중기 신라의 승려. 같은 시기에 활동한 고승 의상과 쌍벽을 이루는 고대 한국 불교계의 고승으로 신라십성(新羅十聖) 중 한 명이다. 해골물 일화로 유명하며 파계 행적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계는 물론이고 한국 고대사ㆍ철학사ㆍ사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천재이다. 또한 의상ㆍ자장ㆍ도선 등과 함께 웬만한 고찰(古刹)들의 창건자가 원효라는 이야기가 매우 흔하다.국내의 원효 관련 사찰분포 척 봐도 원효의 일대기와는 무관하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거의 대부분은 역사적 신빙성이 없고 원효의 유명세를 빌려서 절의 권위를 높이려는 행위라고 보면 된다.
삼국통일기에 인생 대부분을 보냈고 통일신라의 탄생을 봤다. 화쟁(和諍) 사상을 주창해 불교의 대중화는 물론 통합의 정신을 강조했다. 원래 중국 삼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은 백제 삼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근거는 6세기 말 편찬된 백제의 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로 백제 승려 혜균(慧均)의 생각과 많이 닿는다는 평가가 있다. 삼국 통일에는 사상적 통합이 선행됐고 원효가 토대를 쌓았음을 보여준다.
분황사에 원효의 유골에 흙을 붙여 만든 원효회고상이 전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고려 중기 여몽전쟁 때 몽골군이 경주시에 불을 지르면서 분황사도 타버렸는데, 그때 소실되어 버렸다고 한다.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원효 생전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 되었을 것이다.
대신 문서 최상단에 있는 초상화가 남아있다. 일본 교토의 고잔지(高山寺)에 원효와 의상의 초상화를 소장하여 현대까지 보존한다. 이 그림들은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 묘에(明恵)가 불교계의 선각자인 원효를 존경해 신라 시대의 원본 초상화를 보고 이모한 것이다. 지금은 신라의 원본이 멸실되었으므로, 묘에의 이모작이 당대의 원효 진영에 가장 근접한 초상화라고 여긴다. 실제로 화풍에서 일본풍이 아닌 한국의 초상화 양식을 따르므로 원본을 충실하게 따라 그렸다고 추정한다. 족좌에 신발을 벗어놓은 것이 옛날 형식이고 더부룩한 수염과 검은 피부의 담대한 인상이 문헌 기록에 남은 원효의 파격적인 행적과 걸맞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고려와 조선 대부분의 국왕 어진이 현대까지 온전히 전해지는 것은 극히 일부라는 것을 감안하면, 한중일 불교계에 걸친 원효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 멀리서 수도사와 근처 민가를 찍은 사진


- 수도사 뒷산 숲길이다. 군부대 철책선을 경계로 길이 이어진다.

- 숲이 끝나는 곳에서 둘레길은 마을 외곽의 지방도로 갓길로 한동안 가도록 안내한다.

- 원정리 마을 안길로 길이 이어진다.

- 원정초등학교를 지나 언덕을 내려가면 본격적으로 포승 시내길로 접어 든다.



- 아산국가산업단지 고대·부곡지구 [ 牙山國家産業團地高大富谷地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과 경기도 평택시 일대에 조성되어 있는 국가 산업 단지로서 포승 단지는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일원에 위치해 있다. 신규 산업 단지 수요 증대와 해상 화물 증가에 대처하고, 수도권 이전 공장 수용, 산업 단지 조성으로 중부권 개발을 촉진하고자 조성한 국가 산업 단지이다. 아산(포승지구)는 1979-12-14에 지정되었고 면적 8,077,606㎡이다.


- 공장지대에 공원이 있다. 체육시설이 많으나 공기의 질은 좋지 못한 것 같다.


- 포승오지사순절 추모비
한국전쟁당시 공산당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민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포승면 출신 5명에 대한추모비로 2003년 3월 22일 포승국가공단내 신당공원에 설치되었다. 포승 오지사는 포승면 출신 최기찬(1920년생), 이병은(1921년생), 이민희(1923년생), 이유상(1931년생), 조대연(1931년생)씨 이다. 순절추모비문에 의하면 이들은 ‘포승의 미래를 위하여 살신성인하다 공산당의 모함으로 반동분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포승 내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인민군이 퇴각하던 1950년 음력 8월16일 현 안중읍 대반리 밤바위 고개 잔솔밭에서 총살을 당했다’고 당시상황을 기록해 놓았다. 추모비는 유족회에서 만들었다.


- 공원이 끝나는 지점이 제일 높은 곳이다. 끝나는 부근에 평택항 홍보관이 있는데 문이 닫혀 있다.

- 다시 평지로 내려 오는데 응달이어서 눈이 얼어서 매우 미끄럽다.

- 만호리 마을길이 끝나는 부분에서 서해대교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 바람이 불어서 날씨는 쌀쌀한데 드디어 코스 종점이 다가온다.

- 2020년 1월 28일 관내에서 전국 4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카페리 선사 등과 협의해 평택항의 여객 운송을 전면 중단한 바 있다. 이후 2년 6개월이 지난 현재 화물 운송을 이뤄지고 있지만 여객 운송은 재개되지 않고 있다. 현재 평택항에는 옌타이(煙臺)항, 웨이하이(威海)항, 룽청(榮成)항, 르자오(日照)항, 롄윈(連雲港)항 등 중국 내 5개 항만을 오가는 여객 노선이 개설돼 있다.

- 평택항 마린센터 앞 코스 종점이다. 평택여객터미널이 닫힌 관계로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고 버스 종점에서 타는 사람도 나 혼자다.

- 평택 80번 버스를 타고 안중터미널로 이동하여 고속버스를 타고 귀경하였다. 경부고속도로로 1시간 50분 소요되었다.

7. 평택시 (平澤市)
평택시(平澤市)는 대한민국 경기도 서남부에 있는 시이다. 1995년 5월 10일 송탄시와 평택시, 평택군을 통폐합하여 도농복합형태의 평택시가 출범하였다. 동쪽은 용인시와 안성시, 북쪽은 오산시, 화성시와 접하고, 남쪽은 아산만을 경계로 남쪽으로 충청남도 아산시, 천안시, 당진시와 경계를 이룬다. 행정구역은 4읍 5면 15동이다.
시청은 비전동에 있다. 평택시는 크게 남부, 북부, 서부의 3개 권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북부 3면·7동(옛 송탄시 지역 등)의 민원을 담당하는 송탄출장소가 서정동에, 서부 3읍·2면의 민원을 담당하는 안중출장소가 안중읍에 각각 설치되어 있다.
경기도 최남단 지역으로 24.5km의 해안선에 접하여 있는 평야지로 높은 산이 없어서 서해안쪽에서 오는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면적 458.2 ㎢이며, 2022년 11월말 기준으로 270,780세대, 인구 577,335명이 거주하고 있다.

< 포승읍 >
경기도 평택시 최서단에 위치한 읍이다. 북쪽으로는 화성시 우정읍과 장안면이 인접해 있으며, 남쪽는 바다 건너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에, 동쪽에는 청북, 안중, 현덕이, 서쪽으로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신평면이 인접하고 있다. 평택·당진항과 포승공단이 위치해 있는 곳으로, 가스생산기지, 발전소가 위치해 있고, 대한민국 해군의 최전방 함대인 제2함대사령부 등의 상당히 중요 시설들이 많이 위치해 있다. 한마디로 국가 기간망 시설들이 몰려있다.
조선시대의 포승읍 지역은 각 군의 월경지가 존재하던 지역이다. 포승엔 직산(현재 천안)과 양성(현재 안성)의 월경지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대략적으로 포승의 남부인 만호리 근처는 외야곶이라고 불리며 직산에, 서부인 원정리 근처는 승량동이라 불리며 양성에 속해 있었고, 그 외 지역은 수원군에 속해있던 지역이다.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조선시대에도 원래부터 변두리지역이라 중앙 정치에서 소외되었던 지역이며, 지금도 평택의 변두리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1914년 일제강점기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원군 포내면과 승양면을 진위군으로 편입하면서, 각 고을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와 포승면이 되었다. 1986년 12월 5일 평택·당진항이 개항되면서 본격적인 포승읍 일대의 개발이 시작되었고, 2006년 12월 31일 포승면에서 포승읍으로 승격하였다.
포승의 바닷가 근처 평지 대부분은 간척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원래는 염전이 많던 이 일대를, 일제강점기 당시 신영리의 간척부터 시작해서, 남양방조제로 인해 생긴 홍원리와 원정리의 평야와, 그 이후 도곡리와 만호리의 포승공단까지 대부분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평지를 만들어 지역을 넓혔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간척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어업 생태계가 파괴되고 농업과 제조업 공단으로 재편되었다.
또한 원래 대부분의 지역이 수원 소속이었던 것 때문인지, 지역민들이 평택 특유의 충청 방언과 경기 방언이 섞인 말을 잘 쓰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요샌 외지인들이 많이 와서 이곳 저곳 사투리+조선족 말에 중국어 같은 외국어까지 섞여서 들린다. 원래 송탄과 평택, 안중의 3개 권역으로 나누어져있던 평택이지만 그 중에서도 포승은 최서단인지라 평택에서도 포승이 평택 소속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드물었던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