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한국의 공공교통정책
1. 거꾸로 가는 한국의 공공교통정책
< 경향신문,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2023.01.03 >
10년 전 지방으로 이주를 준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운전면허를 딸 것을 권했다. 강연이나 교육 때문에 여러 곳을 많이 돌아다니는 편인데 수도권이나 광역시를 벗어나면 어디건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태계를 생각해서 나라도 자가용을 운전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좀 둘러 가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다짐했다. 이주를 하니 지역 내를 다니는 버스가 있지만 노선이 적고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다녔다. 시외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해서 자가용으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대중교통으로는 보통 두세 시간이 걸렸다. 이것도 환승 시간이 맞는 운 좋은 경우의 이야기이고 운이 나쁘면 네다섯 시간도 각오해야 했다.
시외버스 노선 대부분 폐지나 감축
코로나19 이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아예 시외버스 노선이 사라지는 경우가 속출했다. 우리 지역만 봐도 코로나19 이전에는 동서울이나 인천, 대전, 청주 등으로 오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노선이 사라지거나 감축되어 5분의 1 정도 수준이다. 다른 지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서울로 가는 버스나 인근 지역을 다니는 버스 외엔 대부분이 사라졌다.
국토교통부의 대중교통현황조사에 따르면, 2021년의 시외버스 노선 수는 2017년도와 비교할 때 497개나 줄어들었다. 이조차도 하루에 한두 대 다니는 경우를 제외하면 노선 수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자연히 업체의 보유대수는 줄어서 4년 동안 고속버스의 경우 401대가 줄었고 시외버스의 경우 1637대가 줄었다. 2022년에도 노선과 버스의 수는 계속 줄어들어 수도권을 제외하면 지방에서 지방으로 다니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버스회사들은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승객이 줄고 기름값과 인건비가 올라 경영이 악화되었다는 명분을 든다. 그렇지만 노선이 사라지면 시민들은 자가용을 몰 수밖에 없기에 승객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은 심화된다. 버스회사들은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 없이 정부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지만 운송원가조차 투명하지 않은 버스회사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것이 무조건 대안일 수는 없다. 따라서 정부가 지원하되 공공성을 강화시켜야 하고, 요금할인이나 안전투자, 노선 확대 등을 요구해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와 버스회사 모두가 무책임하다. (각자도생의 시대)
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철도공사 통계를 보면, 2017년과 2021년을 비교할 때 KTX와 새마을호의 운행횟수는 주중 기준으로 각각 66회, 20회 늘어났지만, 무궁화호의 운행횟수는 79회나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한국철도공사는 매년 무궁화호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계획을 세우고 있고, 무궁화호 객차를 2028년까지 71대만 남기고 90%가량을 폐차할 예정이다. 그러면 무궁화호를 이용하던 승객들, KTX나 새마을호가 서지 않는 지역의 주민들은 무엇으로 이동해야 할까?
지방소멸 조장하며 돈만 뿌리는 정부
2022년 6월, 독일은 9유로만 지불하면 한 달간 독일 전역의 버스와 지하철, 트램, 일반열차(고속열차 제외) 등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판매했다. 이를 통해 공공교통을 활성화시키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략을 추진했다. 실제로 5000만장이 넘는 티켓이 판매되었고, 대중교통 이용률이 10~15% 증가했다고 한다. 효과가 보이자 스페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이런 정책을 세우고 있는데,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다.
정책의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2005년에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교통약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것을 책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2022년부터 매년 1조원 규모로 지방소멸대응기금이 편성되어 사용될 예정이다. 2022년에는 이미 7500억원을 배분했고, 내년에는 총선까지 있으니 아마도 더 많은 예산이 지역에 뿌려질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알지도 못하고 효과도 없는 돈을 쓰는 것보다 차라리 전국적으로 공공교통 공영제를 추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무상교통이면 더더욱 좋고.
2. 모두를 위한 무임승차
< 경향신문,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2023.01.03 >
2023년 계묘년 새해를 며칠 앞둔 지난주 경북 청송에서 나온 작은 뉴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청송군은 올해부터 모든 농어촌 버스에 대한 전면 무료화 방침을 밝혔는데 연령이나 소득, 거주지 상관없이 누구나 버스를 무료로 타는 게 가능해졌다는 내용이었다. 인구 2만4000여명의 작은 도시에서 지방소멸을 막고 관광 등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낸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무상버스 정책은 경기 화성시를 비롯해 안산시·안성시·의왕시 등에서도 시행 중이다. 경북 역시 올해 일부 지역에서 만 70세 이상 노인과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버스 무료 탑승을 실시한 후 2025년부터는 도 전역으로 확대한다는 안을 세운 상태다.
지역의 이 같은 소식과 달리 현재 서울·인천·부산·대구 등 대도시에선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지하철 무임수송 손실분을 지원하지 않기로 하면서 해당 지자체들이 연내 큰 폭의 지하철 요금 인상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1984년 도입됐다. 당시만 해도 65세 이상 비율이 전체 국민의 3.8%에 불과해 예산 부담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고령인구가 2017년 711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4.2%를 차지해 유엔이 정의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한국 사회는 2년 후 전체 인구 중 노인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문제는 돈이다. 정부와 지자체 간 재원 분담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각 도시철도공사의 손실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서울 지하철의 적자는 2021년 9957억원, 2022년 1조2600억원에 이른다. 전국 도시철도 운영 6개 기관의 무임손실액은 2019년 기준 6230억원으로, 전체 이용인원 중 무임승차 비중은 30%를 넘었다.
사실 이 문제는 세대 갈등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다분한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해법 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 정부는 도시철도가 운영되는 특정 도시에서 노인 등 특정 계층만 이용하는 복지정책에 대해선 지원을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라면 특정 이용자에 대한 혜택은 축소해야 하며 무임승차 폐지, 연령 및 할인율 조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는 사회 전체의 편익을 증가시킨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5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하철 경로 무임승차는 노인활동을 증가시켜 자살 및 우울증 감소, 교통사고 감소, 의료비 절감, 관광 활성화 등 총 3361억원의 편익을 발생시킨다고 분석한 바 있다. 반면 비용은 1859억원으로 비용편익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의 사회활동 증가가 가정의 안녕에 기여하고 지역사회·국가에도 이득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해당 정책의 수혜자가 특정 계층을 넘어 사회 전체라면 비용도 지자체만이 아닌 사회가 나눠서 분담하는 게 옳을 것이다. 초고령사회가 눈앞에 성큼 다가온 현재 지하철 무임승차는 물론 지자체의 무상버스까지 아우르는 보편적 교통복지에 대한 정의와 정책 마련을 위한 논의가 하루빨리 시작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