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일반 칼럼

청소부 시인, 그리고 고은이라는 시인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3. 1. 13. 09:37

1.

청소부 시인




< 경향신문, 임의진 목사·시인,  2023.01.12 >

시를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없다고 봐야 맞아. 그래 다른 직업을 갖고들 사는데, 빌딩 청소를 하고 사는 한 시인을 나도 알고 있다. 유명한 시인은 아니야. 하지만 강단에 선 시인들보단 솔직한 시를 쓴다. ‘네순 도르마 네순 도르마’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면서 청소를 한대. 오페라를 즐기고 사업가들이 조언을 구하기도 했던 저 유명한 청소부 ‘밥 티드웰’처럼 말이야. 쏜살같은 시간 앞에 깨달은 지혜를 빨리 남에게 전달해야겠다 생각한 밥은 “투덜댈 시간이 있으면 기도하라. 지쳤을 땐 멈춰서 재충전하라. 가족은 짐이 아니라 축복이다” 자신이 삶에서 배운 지혜를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청소부는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해. 출근길이나 행사 중에 청소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도 어쩌면 개똥을 치우고, 낙엽이 진 뜰을 청소하고, 무엇보다 부엌 설거지를 하면서 자취하는 재택근무 청소부. 가끔 청소하며 아리아를 부르고, 주말엔 대청소도 한다. 새해 첫 달이니만큼 마음도 청소하고 주변도 청소. 간소하고 간략하게 살고파서 잡다한 글이나 공중누각 일기장도 폭파해(?) 버렸다. 인간관계도 더 줄이고 고독과 사색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에 근무하는 한 청소부는 매일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냄새나는 쓰레기더미 운반까지 도맡아 했다. 오랫동안 그를 살펴보던 한 직원이 물었대. “왜 그렇게 청소를 열심히 합니까? 쉬엄쉬엄해도 되잖아요.” 그러자, “나는 그저 청소만 하는 청소부라고 생각 안 해요. 우주선을 띄우고, 저 먼 별나라 항해를 준비하는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인이란 이처럼 지면 바깥에서도 흔한 종족이다. 하지만 진실과 연민이 없는 미사여구로 분칠한 시, 문단 권력으로 인권을 짓밟고, 또 표절한 글은 하늘 아래 부끄러운 쓰레기. 자신을 비우고 청소하는 일엔 무슨 공소시효 같은 게 있을 수 없다.




2.

고은 문단 복귀에... 최영미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



< 조선일보, 이영관 기자, 2023.01.12 >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문단 복귀를 비판했다. 그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라는 아홉 글자를 올렸다. 성 추문과 법적 소송 이후 5년 만에 새 시집을 내면서도 사과 한 마디 없는 원로 시인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그 시집을 펴낸 출판사 ‘실천문학사’의 이름도 아울러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최 시인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집 출간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 심정은 한 마디로 허망하다”며 “내 의견이 궁금하다면, 나중에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고은 시인은 최근 이 출판사에서 신작 시집 ‘무의 노래’와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를 냈다. 2017년 12월 시집 ‘어느날’ 출간 이후 약 5년 만의 공식적인 문단 복귀다. 그는 2017년 말 최 시인이 계간지 ‘황해문화’에 발표한 시 ‘괴물’을 통해 자신의 성 추문을 폭로하면서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었다. 그는 국내 언론에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아내와 나 스스로에게 어떤 부끄러운 짓도 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며 성추행을 부인한 바 있다.

신작 시집과 대담집에 성 추문과 관련된 언급은 없었다. 고은은 시집의 서두에 “시집 ‘초혼’과 ‘어느날’이 나온 뒤로 5년이다. … 쓰기와 읽기로 손과 눈이 놀았다. 거의 연중무휴로 시의 시간을 살았다”고 적었다. 캐나다 정치철학자 라민 자한베글루와 고은의 대화를 엮은 대담집은 이미 인도에서 출간된 것을 국내에 번역해 내놓은 것이다. 360쪽 분량으로, 시인의 생애와 작품 세계에 대한 문답을 실었다. 책 출간과 관련해 입장을 듣고자 지난 9일 고은 시인 측에 이메일을 보냈으나, 12일까지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편 출판사 ‘실천문학사’가 고은의 문단 복귀를 주도한 과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작년 말 출간된 계간지 ‘실천문학’ 겨울호 ‘김성동 작가 추모 특집’에 실린 고은의 시와 관련해서다. 실천문학사 윤한룡 대표가 겨울호 편집주간인 구효서 소설가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추모 특집과 고은의 시 수록을 결정했다고 한다. 실천문학사는 고은 시인 등이 주도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한국작가회의의 전신)가 기관지 ‘실천문학’을 발간하면서 출발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실천문학사의 책을 불매하겠다는 글도 올라오고 있다.

두 시인 사이의 법적 공방은 2019년 일단락됐다. 최영미 시인은 시 ‘괴물’로 고은의 성 추문을 최초로 폭로했고, 언론 등을 통해 고은 시인이 1992~1994년 술집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고은 시인은 최영미 시인 등이 허위 사실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3. 2023년 1월 12일 한국여성민우회 성명서 전문


‘피해자들의 일상이 안전해질 때까지, 당신의 죄는 잊힐 수 없다.- 고은 복귀사태에 부쳐’

최영미 시인이 고은의 성폭력 사실을 밝히고, 최영미 시인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1, 2심에서 고은이 패했음에도 고은은 여전히 당당하다. 2018년 영국 일간 가디언에 실린 고은의 입장문에서 “계속 집필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겠다는 듯이 고은은 실천문학사에서 두 권의 책을 내며 복귀했다.

이 황당한 복귀에 대해서 문학신문 뉴스페이퍼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고, 99.2%의 응답자가 고은의 활동 재개를 반대하였다.

하지만 성폭력 가해자가 복귀할 수 있는지 없는지, 복귀를 한다면 언제부터 가능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논쟁은 ‘가해자 동정론’으로 가기 십상이다. 우리는 가해자가 ‘어느 시점’에 돌아올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가 피해자가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피해를 피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인지 감수성과 공동체 내의 권력구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간이 되었는가 말이다.

그런 면에서 반성 없는 가해자를 어떤 제재도 없이 복귀시키는 실천문학사의 무감각함에 통탄한다. 실천문학사는 고은의 복귀를 일언반구 없이 진행하며, 문학업계를 ‘사과 한마디 없이도 가해자 자신이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만약 그가 복귀의사를 밝혔다면, 그에게 명예와 권력을 줬던 모든 주체들은 피해자에게 사과 없는 가해자의 복귀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을 했어야 한다. 실천문학사는 고은의 복귀의 조건으로 피해자에게 해야 할 사과나, 사과 없는 복귀가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확인했어야 한다. 고은의 복귀는 수많은 미투가 있었음에도 그가 잠시 ‘떠난’ 것일 뿐, 문단계 권력의 최고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문단내_성폭력을 고발했던 사람들과 고은 시인의 성폭력사실을 공개한 최영미 시인의 용기는, 문단 내 성폭력이 중단되도록 위계적인 구조를 없애는 것을 향해있었다. 2018년 미투(#Metoo)는 성희롱 발언에, 성폭력 상황에 문제제기를 하면 등단을 할 수 없고 책을 낼 수 없는 현실을 살아냈던 그들이, 이를 더는 묵과하지 않겠다는 함성이었다. 그 용기들이 모여 성폭력방지를 위한 장치들과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성폭력/성희롱을 적극적으로 금지하고, 사안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게 하는 법률은 수많은 사람의 미투(#Metoo)가 모여 만들어진 결과다.

그런데 성폭력은 없어야 한다고 어렵게 모여온 이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고은의 복귀는 여전히 문단 내에 있을 가해자들에게 ‘이 정도는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고은은 1980년 『실천문학』의 설립멤버이자 편집책임으로 있었다. 그리고 실천문학사에서 이번 신간을 냈다. 누가 권력을 가졌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실천문학사는 자신들을 “진실을 가리는 부당함에 굴종하지 않는,”이라 설명하지만, 그 진실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굴종하는 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의심스럽다.

이러한 무감각함 덕분에 고은의 ‘평생의 전기와 지혜’가 담겨있다며 홍보되는 책에는 성폭력 가해자라는 한마디 없이 ‘전 지구적 시인’으로 이름 붙여 YES24, 알라딘, 교보문고 등 유명 서점에 진열되고 있다. 고은이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의 카르텔이 작동한 결과다.

지금까지도 자신의 죄를 부정하고 침묵하는 고은은 이제라도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에 무책임하게 대응하고 있는 실천문학사도 고은 복귀사태의 무게를 깨달아야 한다. 고은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진실은 이미 밝혀졌다. 피해자들의 일상이 안전해질 때까지, 당신의 죄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2023년 1월 12일 한국여성민우회



4.

최영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 지켜볼 것”…고은 복귀에 답하다



< 헤럴드경제, 이윤미 선임기자, 2023.01.13 >

페이스북 짧은 글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
알고보니 기고 제목…헤럴드경제에 보내와
“고은, 재판땐 변호사, 지금은 출판사 뒤 숨어”




[헤럴드경제=이윤미 선임기자] 피해자와 독자에게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시집과 대화집을 출간하고 슬그머니 복귀한 고은 시인의 행동에 최영미 시인이 12일 페이스북에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란 짧은 글을 올렸다.

독자들은 최 시인의 이 짧은 멘트를 심경을 담은 압축된 표현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데 이는 그가 쓰고자 하는 긴 글의 제목이었다.

최영미 시인이 13일 헤럴드경제에 이번 사태에 참담한 심경을 담은, 같은 제목의 기고를 보내왔다.

최 시인은 기고에서 성추행 고발 이후 지난 5년을 고은 시인이 “5번의 가을을 보내는 동안 시의 시간을 살았다”고 한 데 대해 끔찍함과 허망한 마음을 드러냈다.

고은 시인이 최 시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 2심 모두 승소한 최 시인은 “나는 두 번의 가을을 보내며 고통의 시간을 살았다. 내가 말한 것은 모두 진실인데도 진실만으로는 부족했다. 진실을 증명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가족과 부인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는 고은의 발언에 충격을 느낀다고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 뒤에 숨더니 이제는 출판사 뒤에 숨어 현란한 말의 잔치를 벌이는 그가 나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최 시인은 고은 시인의 소장에는 그간의 경력과 활동이 길게 열거돼 있었는데 자신이 싸워야 할 상대가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거대 네트워크, 문단 권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고은 시인은 단 한 번도 재판정에 출석하지 않았고 “당사자 신문 신청에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핑계를 대며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제기한 소송인데 법정에 나올 배짱도 없는 비겁한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란 말인가”고 직격했다.

최 시인은 또 고은 시인이 등단 65주년 시집 ‘무의 노래’에 붙인 평론가 김우창의 글에 대해서도 “아름답고 모호한 해설”이라고 꼬집었다.

끝으로 최 시인은 “내가 경제적으로 가난해 노이즈 마케팅을 한다는 원고 고은의 거지 같은 주장을 반박하려 세무서에 가서 지난 10년간 소득금액증명원을 떼며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다시는 그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없을 줄 알았다”며 “권력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는 지켜볼 것”이라고 글을 맺었다.



아래는 최영미 시인이 보내온 글,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 전문이다.



〈최영미 시인의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 전문〉


지난 월요일 아침부터 고은 시인의 문단 복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문자와 이메일이 쏟아졌다. 등단 65주년 기념 시집과 대담집을 출간하며 “5번의 가을을 보내는 동안 시의 시간을 살았다”고 고은 시인은 지난 5년을 회고했다고 한다. 고은은 2018년 여름 나를 상대로 뻔뻔스럽게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고, 1, 2심에서 내가 모두 승소하였다. 원고 고은의 대법원 상고 포기로 나의 승소가 확정되었으나, 2019년 겨울에 재판이 끝나기까지 나는 두 번의 가을을 보내며 고통의 시간을 살았다. 내가 말한 것은 모두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진실만으로는 부족했다. 진실을 증명해야 했다.

“가족과 부인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는 고은의 발언에 충격과 참담함을 느낀다. 젊은 여성에게 치욕적인 추행을 하여도 성관계를 맺지 않았으면 가족과 부인에게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성인식이란 말인가?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 뒤에 숨더니 이제는 출판사 뒤에 숨어 현란한 말의 잔치를 벌이는 그가 나는 두렵지 않다.

고은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시인인지 그간의 경력과 활동을 소장에 길게 열거하였다. 소장을 읽으며 나는 내가 싸워야 할 상대가 원고 고은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거대한 네트워크, 그를 키운 문단 권력과 그 밑에서 이런저런 자리를 차지하고 이익을 챙긴 사람들, 작가, 평론가, 교수, 출판사 편집위원, 번역가들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전체라는 사실을 알았다. 몇십 년 전에 민족문학작가회의를 탈퇴한 뒤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확실한 진실’이라는 버팀목이 있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여성 문인 등에 행한 그의 성추행에 대하여 피해자나 목격자를 특정하거나, 때와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원고 고은의 성추행 증거들을 적어 재판부에 제출했다. 나는 1심도 이겼고 항소심에서도 이겼다. 대법원까지 갈 줄 알았는데 원고가 상고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면서도 허망했다.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하더니 끝까지 싸울 배포도 없었나?

원고 고은은 재판정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고, 당사자 신문 신청에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핑계를 대며 응하지 않았다. 나는 1심과 항소심의 모든 재판기일에 빠짐없이 출석했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상황을 기억에 의존하여 모두 법정에서 진실하게 진술했다. 자신이 제기한 소송인데 법정에 나올 배짱도 없는 비겁한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란 말인가? 진실을 말한 후배 시인의 글에 대하여 명예를 훼손당하였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그가 전(全) 지구적 시인 맞나?

그의 시집에 어느 대학의 명예교수인 K선생이 아름답고 모호한 해설을 썼다고 한다. K처럼 해외문학을 전공한 먹물들, 최루탄이 쏟아지는 화염의 시대에 외국으로 도피했던 그들에게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감옥에 간 시인’은 빛나는 존재였으리. 얌전한 샌님인 평론가들에게 술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여자를 욕보이는 고은의 요란하고 대담무쌍한 말과 추행은 멋있어 보였을 게다.

내가 경제적으로 가난해 노이즈 마케팅을 한다는 원고 고은의 거지 같은 주장을 반박하려 세무서에 가서 지난 10년간 소득금액증명원을 떼며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다시는 그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없을 줄 알았는데… 권력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는 지켜볼 것이다.





5.

최영미 시인, “싸워야 할 상대 고은 한 사람 아닌 그를 둘러싼 네트워크”

< 한겨레, 임인택 기자, 2023-01-13 >


고은 시인 복귀에 일간지 기고로 비판
“고은, 당사자 신문 신청도 응하지 않아”

윤한룡 실천문학 대표 <한겨레> 인터뷰
“출간 기준에 따른 것…회수 계획 없어”


성추행 사실에 대한 해명과 사과 없이 5년 만에 시집을 출간하며 제2의 논란을 야기한 고은 시인이 언론과의 접촉은 피한 채, 출판사가 시집과 대담집에 대한 회수 계획이 전혀 없음을 밝혀왔다. 성폭행 사실을 고발했다. 2018년 10억원짜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최영미 시인은 당시 대적해야 할 상대가 고은 시인 하나가 아닌 ‘그를 키운 피라미드 문단’ 전체라고 회고했다. 최 시인은 앞서 고은 시인과 출판사 등을 아울러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라고 써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최영미 시인은 13일 <헤럴드경제>에 기고해 “고은은 2018년 여름 나를 상대로 뻔뻔스럽게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고, 1·2심에서 내가 모두 승소하였다”며 “2019년 겨울에 재판이 끝나기까지 나는 두 번의 가을을 보내며 고통의 시간을 살았다”고 말했다. 이는 고은 시인이 이번에 낸 시집을 통해 사과나 해명 없이 “5번의 가을을 보내는 동안 시의 시간을 살았다”고 쓴 데 대한 ‘고통의 미러링’이다.

또 재판 당시 고은 시인은 공황장애를 “핑계”삼아 신문 신청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최 시인은 “자신이 제기한 소송인데 법정에 나올 배짱도 없는 비겁한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란 말인가” 물었다. 이어 최 시인은 “고은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시인인지 그간의 경력과 활동을 소장에 길게 열거하였다. 소장을 읽으며 나는 내가 싸워야 할 상대가 원고 고은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거대한 네트워크, 그를 키운 문단 권력과 그 밑에서 이런저런 자리를 차지하고 이익을 챙긴 사람들, 작가, 평론가, 교수, 출판사 편집위원, 번역가들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전체라는 사실을 알았다. 몇십 년 전에 민족문학작가회의를 탈퇴한 뒤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고은 시인의 문단 복귀에 대한 비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출판사는 시집 회수 등의 계획이 없음을 공식 확인했다. 2018년 당시 일부 출판사는 출판한 고은 시인의 시집을 전량 회수해 폐기한 바 있다. 시집 등을 펴낸 실천문학의 윤한룡 대표는 13일 <한겨레>에 “(시집과 대담집을) 회수한다는 말은 사실무근”이라며 “계획도 없다. 그럴 책이면 처음부터 출간하지 않았다. 본사는 본사 나름의 출간 기준이 있다”고 밝혀왔다.


출판사는 고은 시인의 시가 사회 맥락적으로 ‘2차 가해’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반박했다. 윤 대표는 이에 대한 <한겨레> 질문에 “해설을 하신 김우창 선생님도 (2차 가해 소지에 대해) 그렇게 보지 않으셨고 저도 그렇다”며 “이미 발표된 작품은 작가와 별개로 하나의 유기체죠. 느낌은 독자 각각의 몫이지 저자조차 내가 이런 은유로 썼으니 너도 그렇게 해석하라고 하면 폭력이 되겠지요. 그렇게 읽히는 독자의 감상의 자유를 어느 신이 있어 구속할 수 있겠는지요? 그게 예술작품의 존재 이유겠지요”라고 답변했다. 지난 11~12일 주고받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서다.

이번 출간된 고은 시인의 시집 <무의 노래>는 129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당의 시들이 ‘무(無)의 철학’을 반영했다고 출판사는 평가하되, 그 방식으로 인해 ‘미투 고발’한 피해의 목소리와 존재까지 눙치고 되레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가령 “속은 겉이 아니란다// 다 겉이면/ 속 없는 겉뿐이란다// 껍데기여 오라/ 껍데기여 오라// 나 보수반동으로 사뢴다/ 돌이켜보건대// 이 세상은 드러내기보다/ 덮어두기/ 꼭꼭 숨기가 더 많다//…”(‘숨은 꽃’ 부분), “무가 있어야 한다/ 무 없으면/ 다 없다/…/ 미친 유有 한복판/ 무 있어야 한다.”(‘무無의 노래’ 부분) 등이 그러하다.

한국여성민우회는 13일 성명을 내어 “반성 없는 가해자를 어떤 제재도 없이 복귀시키는 실천문학사의 무감각함에 통탄한다. 실천문학사는 고은의 복귀를 일언반구 없이 진행하며, 문학업계를 ‘사과 한마디 없이도 가해자 자신이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고은이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의 카르텔이 작동한 결과”라고도 지적했다. 온라인 등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문학비평을 하는 정승원 경북대 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은 시인이 사후에 명예가 어느 정도 되려면 진솔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하고 작품이 압도적으로 좋아야 한다… 문인에게 최고의 치욕은 상징적 죽음” “고은이나 그를 미는 문학 진영은 대중들을 아래로 보는 대단히 오만한 사람들”이라는 등의 글을 최근 연이어 올렸다.




6.

창비와 실천문학의 ‘객관적 진실에 대한 공격’


< 경향신문, 김종목 기자, 2023.01.13 >


출판사 한 곳은 책을 내지 않아, 다른 한 곳은 출간해 비판받았다. 실천문학과 창비 이야기다. 창비는 에세이집을 준비하면서 장강명에게 기발표 글 중 ‘신경숙 표절’과 ‘창비 궤변’ 표현이 들어간 문장을 바꿔달라고 했다. 표절 구절을 염두에 두고 ‘창비 뜻은 다르다는 것을 밝혀둔다’라는 문장이 든 괄호를 넣어달라고도 했다. 지금은 퇴사한 전 미디어 창비 편집자 이지은은 책 홍보 배제 방침을 정한 일도 알렸다.

실천문학사는 고은 신작 시집 <무의 노래>,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를 냈다. 새 책들에선 그 흔하고, 의례적인 ‘유감’이나 ‘성찰’ 같은 말은 찾을 수 없다.

최영미 시인 고발로 성추행이 알려진 뒤인 2018년 3월 12일 서울시 관계자들이 고은 시인의 육필 원고, 도서, 필기구 등을 전시한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내 만인의 방을 철거하였다.

고은은 상징 자본과 문화권력을 지닌 이 두 성채에서 굳건하다. 실천문학사는 홈페이지 전면에 ‘전 지구적 시인 고은의 삶과 철학과 시’라는 문구를 달아 신작을 소개한다. <고은과의 대화>를 두고 “경전을 읽듯 머리맡에 두고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했다. 창비 홈페이지에서 고은은 “세계문학사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념비적인 역작” <만인보> 작가다.

두 출판사 행태엔 공통점 하나가 더 있다. 출간과 미출간이 ‘객관적 진실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이다.

‘표절’과 ‘성추행’은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 신경숙은 ‘결과적 표절’이나마 표절을 인정했다. 고은은 최영미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했다.

‘객관적 진실에 대한 공격’은 조지 오웰이 1944년 ‘트리뷴’에 기고한 ‘나 좋은 대로’에서 쓴 것이다. 리베카 솔닛 <오웰의 장미>(반비)에 그 내용이 나온다.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전체주의가 진짜 무서운 것은 그것이 ‘가혹 행위’를 자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진실이라는 개념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통제하려 한다.”



( 창비와 계약해지한 장강명 “문장 고치라하고 마케팅서도 배제”)

< 경향신문, 김종목 기자, 2023.01.04 >

신경숙 표절과 창비 비판 대목에 수정 요구
거부하자 마케팅 배제 방침 전달
계약해지 후 창비 편집자 출신 1인 출판사서 출간
미디어창비 “저자와 통상적 이야기…잘못 전달”

미디어창비가 소설가 장강명(사진)의 에세이집을 준비하면서 ‘신경숙 표절’ ‘창비 궤변’ 표현이 들어간 문장 수정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씨는 창비가 책 마케팅 배제 방침을 정했다고도 했다. 장씨는 출간 계약을 해지했다. 담당 편집자 이지은씨는 회사를 관두고 1인 출판사(유유히)를 차렸다. 미디어창비가 지난해 11월 내기로 한 이 에세이집은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이란 제목을 달고 유유히에서 2월 나온다.

장씨는 지난 2일 공개된 팟캐스트에서 “미디어창비에서 (‘신경숙 표절’ ‘창비 궤변’ 표현이 들어간) 문장을 계속 바꿔 달라고 했다. ‘궤변’을 ‘나름의 논리’로 바꾸고, 괄호에 ‘이 의견과 창비 뜻은 다르다는 것을 밝혀둔다’는 문장도 추가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진짜 황당한 일을 겪었다”며 이같이 전했다.

장씨는 ‘월간 채널예스’ 2021년 6월호에 실은 ‘[장강명 칼럼]출판 계약을 해지하며’에서 “신경숙의 표절을 창비가 궤변으로 옹호하며 표절의 기준을 무너뜨리려 한 데 대해 한국작가회의는 끝내 아무 논평도 내지 않았다”고 썼다. 당시 장씨는 자신과 계약한 A출판사의 ‘계약금과 인세 지급 누락’, ‘오디오북 무단 발행’, ‘판매명세 보고 불성실’ 등을 고발하는 칼럼에서 이 같은 문장을 썼다. 한국 출판사들의 부조리와 불공정 관행, 문인단체의 침묵 등을 지적하며 적은 문장이다.

장씨는 “(이미 발표한 글) 중간에 (출판사 의견과 다르다를) 넣으라는 게 웃기잖아요. 창비에서 낸 모든 책은 창비 의견과 같은 건가? 객관적으로 표절 맞다, 이 문장이 그렇게 싫으면 내지 않겠다고 했다. (윗선과 통화한 뒤) 그대로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그 뒤 에세이집을 창비 채널에서 홍보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장씨는 “편집자와 작가를 속인 것이다. 열받아 창비 사과를 받고 책은 여기서 못 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편집자도 회사를 나왔다고 한다. 장씨는 “저보다 편집자분(이지은씨) 상처가 더 컸다. 몸담고 일하는 직장이 배신해 되게 충격을 받았다. (이씨가) 새로 1인 출판사를 차리기로 했다. 책은 이 출판사에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기자와 통화하며 “저도 책을 여러 곳에서 냈는데 정상적인 문장 수정 의견이 아니었다. ‘신경숙 작가가 표절을 했다는 것은 장강명의 주관적인 의견이며, 우리는 장강명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밝히고 싶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편집자 이씨는 이날 워크스페이스 ‘노션’에 ‘편집자로서 참 이상한 일을 겪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장씨의 표현을 두고 윗선들이 회의를 열었고, 지난해 9월1일 본부장으로부터 ‘궤변’을 순화하고, ‘창비 입장과 다르다’는 문구를 넣게끔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9월25일 ‘창비 이름으로 된 플랫폼에 장강명 책을 홍보하지 말라는 마케팅부장의 지시가 있었다”고도 썼다.

이씨는 계약해지 과정과 사과문 전달 과정도 공개했다. 이씨는 “나는 얼마든지 즐겁게 책을 만들고 팔고 작가님과 함께 기뻐하며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이 있는데 어느새 이 조직으로 출근을 하는 일이 고통 그 이상이 아니더라고요”라고 했다. 이씨는 지난해 11월30일까지 미디어창비를 다니고 퇴사했다. 1인 출판사 ‘유유히’를 차렸다.

미디어창비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며 “통상적으로 저자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저자 문장을 그대로 싣기로 했다. 책이 나오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마케팅 배제’를 두곤 “출간 임박 때에 (어떤 채널로 어떻게 홍보할지) 여러 논의를 하는데, 담당 편집자를 통해 잘못 전달된 듯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