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룡유회(亢龍有悔)
1.
항룡유회(亢龍有悔)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은 후회함이 있다
< 경남신문,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소장, 2020-12-29 >
‘주역(周易)’은 육십사 괘(卦)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일의 이치를 풀이한다. 육십사 괘 가운데서 건괘(乾卦)는 대표적인 괘이고 하늘을 상징하는데 모두 양(陽)으로만 되어 있다.
이 건괘는 세상의 원리와 사람의 처세 방법 등을 용을 등장시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하나의 괘는 여섯 개의 효(爻)로 되어 있는데, 가로 그은 막대는 양(陽)을 나타내고, 가운데 끊어져 있는 막대는 음(陰)을 나타낸다. 여섯 개의 효는 아래서부터 기운이 작동한다.
건괘의 첫 번째 효에서는 ‘잠겨 있는 용이니, 쓰지 말아라(潛龍勿用)’라고 했다. 다 자라지 않은 청소년으로 학덕이나 능력 등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두 번째 효에서는 ‘나타난 용이니, 밭에 있다(見龍在田)’라고 했다. 학덕과 능력을 갖추고 세상에 나와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려는 단계이다.
다섯 번째 효에서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飛龍在天)’라고 했다. 용이 하늘에 날아오르듯이 사람이 때를 얻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단계이다. 임금이 되어서 세상을 다스리는 것도 이렇게 비유했다.
두 번째와 다섯 번째 효 뒤에는 ‘위대한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利見大人)’라는 말이 붙어 있다. 능력을 발휘하려고 할 때나 전성기에도 자기만의 생각이나 능력으로는 안 되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 앞선 사람의 말을 듣고 의논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 효가 가장 높은 것이 아니고, 그 위에 여섯 번째 효가 더 있다. 여섯 번째 효는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은 후회가 있다.(亢龍有悔)’라고 했다.
다섯 번째보다는 여섯 번째가 더 좋을 것 같지만, 여섯 번째 효까지 올라가면 돌아설 수 없는 데까지 가서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된다.
‘주역’은 점치는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사람에게 올바른 이치를 가르쳐 미리 대비하고 신중히 하고 경계하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주변에서 ‘너무 높이 올라가 돌아설 수 없는 경우’에까지 간 사례를 많이 본다.
처음 음식점을 개업했을 때는 주인이 아주 친절하고, 손님의 말을 듣고 개선을 한다. 장사가 좀 잘 되면 종업원들에게 맡겨 놓고 주인은 향락을 누리며 돌아다닌다. 연예인들도 조금 이름이 나면 문제를 일으킨다. 학자들도 조금 이름이 나면 재충전보다는 강연하러 다니기에 바쁘다. 국회의원들도 초선, 재선일 때는 유권자를 존중하고 선거운동을 열심히 한다. 3선 이상 되면 교만이 붙어서 유권자들은 안중에도 없다. 다 도가 지나친 것이다. 지금 대통령, 법무부장관, 여당 국회의원들은 도를 넘친 것 같다. 일 처리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하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한다. 말도 함부로 한다.
서로 견제하도록 하기 위해서 삼권이 분리되어 있는 것인데, 재판의 결과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당장 탄핵 운운하는 것은 너무 오만하게 구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도 ‘항룡유회’의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 亢 : 높을 항. 뻣뻣할 항
* 龍 : 용 룡
* 有 : 있을 유
* 悔 : 뉘우칠 회
2.
** < 한국역사연구회 > **
[역사이야기] 항룡은 후회한다(亢龍有悔)
By 하원호 -2007년 12월 18일
항룡은 후회한다(亢龍有悔)
하원호(근대사 1분과)
새해가 되면 길가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은 토정비결 영감님들은 바빠진다. 물론 그 내용이야 “물가에 가지 마라”, “귀인이 찾아온다” 같은 뻔한 것들이지만 요즘같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대형사고에 불안한 서민들이야 한치 앞을 못보는 세상살이에 덕담이라도 듣고 싶어 영감님들의 좌판 앞에 쭈구리고 앉게 된다. 점괘를 좀더 고급스럽게 보려는 식자층은 <<토정비결>>보다는 <<주역>>을 들친다. 일반인들은 <<주역>>을 점술책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주역>>을 밑천으로 ‘동양철학의 대가’, ‘역학자’, ‘역술가’라고 자칭하면서 간판을 내걸고 손님을 받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이나 역술이라고 풀어내는 것도 일반인들에게는 <<토정비결>>이나 다름없는 점괘로만 여겨질 뿐이다. 원래 신비주의는 복잡하고 애매할수록 더 그럴 듯한 법이고, 이 방면의 ‘대가’가 되는 방법 현란한 애매성의 확보가 전제이다. 그런 점에서 <<주역>>의 현란한 괘상은 좋은 밑천이 된다. 물론 동양철학의 애매함을 현대어로 조금 쉽게 풀어쓴 덕에 별다른 심각한 내용이 없으면서도 쓰는 책마다 잘 팔리고, 얼마 전에는 성행위를 원색적으로 표현하는 토크쇼도 철학의 이름으로 포장해 비난받는 전직이 철학교수인 현직 한의사도 있으니 반드시 애매한 것만이 상품이 되는 것도 아니긴 하다.
그런데 <<주역>>은 단순히 신비적이고 몽상적인 동양사상을 담고있는 점술책만은 아니다. <<주역>>은 그냥 신수풀이 정도로 여기는 <<토정비결>>류와는 달리 그 자체가 수천년 동양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정리한 하나의 사유체계이다. <<주역>>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얻을 수 있는 생활철학이나 행동양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유교의 경전 중에서도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전에 최규하씨 덕분에 유명해진 ‘항룡’이란 말도 이 <<주역>>의 첫 장에 나오는 ‘항룡유회(亢龍有悔)’란 효사에서 잘라내서 써먹은 것이다.
<<주역>>의 64개 괘에는 각각 6개의 효가 있고 각 괘에 괘사가, 각 효에도 효사가 있다. 첫번째 괘인 건괘(乾卦)의 여섯 개 효 중 맨 위의 것이 ‘항룡유회’이다. 건괘는 태극기의 왼쪽 위에 있는 직선 셋의 도형을 두 개 포개놓은, 즉 한 일(一)자 여섯을 위에서 아래로 나열한 모양이다. <<주역>>에서의 건은 하늘을 말하고 순양(純陽)을 의미한다. 양(陽)은 맑고 따뜻하고 뻗어오르는 기운이다. 그래서 이 괘의 상징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이다.
건괘의 여섯 개 효 중 맨 아래 있는 효를 초구(初九), 곧 초효(初爻)라고 하는데, 양기 중에서도 맨 아래 있는 것은 아직 땅 속에 묻혀 있어 얼음이 풀릴 시기를 기다려야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초효는 용이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고 그 뜻인 효사(爻辭)는 잠룡물용(潛龍勿用)이다. 잠복해 있는 용은 용의 덕을 구비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다. 숨어 살도록 강요 당해도 불평을 하지않는다. 태평한 세상에서는 나라에 벼슬을 하여 도를 행하고 난이 일어난 세상에서는 물러나 도를 지켜 확고부동하니 이것이 잠복한 용이다.
다음 효는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는 것이 유리하다(見龍在田 利見大人)”라고 되어 있다. 나타난 용은 때와 장소를 얻은 용이다. 항상 언행을 삼가고 악을 멀리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선행을 해도 자랑하지 않고 덕을 베풀어야 한다고 해석된다. 셋째 효는 “군자는 종일 쉬지 않고 노력하고 저녁에 삼가면 위태로우나 허물은 없다(君子終日乾乾 夕 苦 无咎)”로 되어 있다. 덕을 기르고 사업을 보전하기 위해 군자는 바른 말과 참된 마음을 기른다는 뜻이다.
네째 효는 “연못에서 혹 뛰어놀기도 한다. 허물이 없을 것이다(或躍在淵 无咎)” 이다. 용이 마침내 날기 시작하려 할 때다. 나아가거나 물러가거나 해서 그 행동은 일정함이 없으나 악을 행하는 것은 아니고 제멋대로 방자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항상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허물을 면할 수 있다고 한다.
다섯 째 효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 (飛龍在天 利見大人)”로 되어 있다. 날아 오르는 용이 하늘에 도달하니 건괘의 극치이다. 성인이 나타나 만인의 찬양을 받는다고 해석된다. 점복에서 이 괘가 나오면 마음대로 활동해도 좋다고 한다.
맨 위에 있는 마지막 상구(上九)의 효사가 “높이 오른 용이니 후회가 있을 것이다(亢龍有悔)”이다. 끝까지 날아 오른 용은 내려올 일밖에 남아 있지 않다. 높은 자리에 있을지라도 민심을 잃고, 현인을 낮은 지위에 두기 때문에 그 보좌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해도 뉘우칠 일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최규하씨가 스스로 자신을 ‘항룡’으로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비서관은 최씨를 ‘항룡’에 비유했고 그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잠룡’도 못되는 우리같은 서민이야 ‘항룡’이란 말이 도통 낮설기만 하고 한때 유행했던 ‘토사구팽’같은 유식하고 지위 높으신 분들이 주고 받는 선문선답의 한 구절처럼만 들려 ‘항룡’ 근처도 못가보고 ‘팽’도 당할 일 없는 처지로서는 한편으로는 남의 일같고, 한편으로는 왠지 몰라도 속이 메스꺼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씨 쪽이 <<주역>>을 공부해서 ‘항룡’을 쓸만큼 유식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비서관의 말처럼 ‘항룡’이라는 말을 앞 뒤를 잘라먹고 쓰여진 예는 역사 속에서도 찾기 어렵다. ‘항룡’의 뒤에는 반드시 ‘후회한다(有悔)’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 그 말이 빠졌다고 하더라도 ‘항룡’에는 이미 그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역사서에서 ‘항룡’이란 말이 사용된 용례는 중국 사서 <<한서(漢書)>> 왕망전(王莽傳)의 찬(贊)에 보이는 정도이다. 여기에는 “찬(贊)하기를… 항룡은 기운이 끊겨 비명에 죽을 운명이다(亢龍絶氣 非命之運)”라고 되어 있다. 왕망은 항우와 싸워 이긴 유방이 세운 전한(前漢)을 무너뜨리고 왕이 된 인물이다. 외척으로서 권세를 잡고 당시 한나라 왕이던 평제(平帝)를 죽이고 그 아들을 가황제(假皇帝)로 삼아 섭정을 하다가 마침내 왕위를 뺏아 왕이 되어 국호를 신(新)으로 했다. 그러다가 그의 정권에 반대해 일어난 후한의 광무제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따라서 왕망에게 ‘항룡’이란 말을 붙인 것은 너무나 적절하다. 황제라는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후회할 비명의 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불길한 운명을 담고 있는 ‘항룡’이란 말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쓴다면 악담 중에 악담일 수밖에 없었고, 더구나 봉건왕조가 아닌 요즘같은 세상에서야 흔히 들을 수 없는 생소한 용어인 것은 당연하다.
최규하씨의 비서관이 이같은 역사적 배경을 알고 썼을 정도로 고전에 밝다고 생각되지않고 왕조시대의 왕의 자리에 민주사회의 대통령을 갖다 붙이는 전근대적 발상이지만, 그 결과는 역사 속의 최씨의 운명을 <<주역>>의 점괘로 짚은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잡힌 역사를 보려는 국민의 갈증을 풀어주지 않고 돌아서 버린 그에게 내려질 역사적 심판은 바로 왕망과 같은 ‘비명지운(非命之運)’이다.
최씨만이 아니라 전직이 소위 ‘항룡’이었던 전씨나 노씨는 이미 ‘유회’하는 중이고, 똑같은 ‘항룡’짓을 하다가 추락하기 시작한 와이 에스도 내년 신수를 뽑으면 틀림없이 같은 괘사가 기다릴 것이다. 잠룡이 아니라 이무기도 안될 것 같은 요즘의 잔챙이 자칭 용들도 이 주역의 괘사에서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이다.
3.
전직 대통령과 亢龍有悔(항룡유회)
< 법률신문, 이기창 변호사(서울), 2009-06-15 >
노무현 전직 대통령의 자살사건이 몰고 오는 파장이 심상치 않다. 대통령책임제 하에서의 대통령의 직위는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의 직무를 수행하는 귀한 자리인 동시에 내각책임제 하에서와는 달리 국가가 처한 상황에 대처하여 어떠한 국난도 슬기롭게 헤쳐나아가게 국민을 이끌어 가야하는 등 국정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국가통수권자의 자리로서 그 직책을 맡은 분들은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결단력 있는 분들일 것이다.
재임 중에 있었던 수뢰 사건의 피의자로서 조사받는 심리적 고통이 아무리 컸다 하더라도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가 쉽게 자살에 까지 이를 수 있을까?
도대체 전직 대통령이라는 위치가 어떻기에 국민의 생존권을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던 분이 그렇게 柔弱(유약)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전직 대통령의 지위 내지 위치에 대해서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95년 ‘전직 대통령의 지위 내지 위치는 亢龍(항룡)의 지위 내지 위치와 같아 검찰의 요청에 응할 수 없는 것이라는 隱喩的인 표현’을 사용한 이외에는 달리 이야기 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최 전 대통령의 말씀은 전두환 전직 대통령 등에 대한 내란죄 등 사건에 검찰이 요청한 출석증언요구와 관련된 對 國民談話 발표 시, 이를 대독한 후에 대독자가 발언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위와 같은 발언내용이 보도되자 날카로운 필명을 날리던 故 李圭泰씨는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직위에 올랐었기 때문에 검찰요구에 불응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土龍(지렁이)으로 떨어지라는 辛辣(신랄)한 비판의 글을 조선일보에 올린 바 있어 전직 대통령을 국가원수라는 귀한 자리에 올랐었던 사람이라고만 해석한 것 같다.
항룡이라는 말이 국민에게 출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 국민담화 후에 나온 것으로 보아 그 말은 국민이 아닌 당국자 내지 집권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周易 乾卦에 보면 ‘上九曰 亢龍有悔 何爲也 子曰 貴而 无(무)位 高而 无民 賢人 在下位而 无輔 是以動而 有悔也’라는 글이 있다.
이 중에 貴而 无(무)位 高而 无民 賢人 在下位而 无輔라는 글을 항룡 즉, 전직인 상왕(전직 대통령)은 별 볼일 없는 늙은이라고 비유할 수 있고 是以動而 有悔也라는 글에서는 飛龍(帝王)이 하는 정치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추론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를 합쳐 보면 ‘나는 일선에서 물러난 힘없는 사람으로 전직 대통령을 전직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의 일을 가지고 재판에 회부하려고 하는 것은 정치행위의 일종이고 증언한다는 것 자체도 정치에 간여하는 것으로 되니 나는 그러한 정치 행위에 가담할 수 없소’라는 표현을 직접 하지 않고 은유적으로 한 것이다.
최 전 대통령이 항룡이라는 말을 위와 같은 뜻의 의사표시만을 위해 한 것이 아니고 亢之爲言也 知進而 不知退 知得而 不知喪 知存而 不知亡 其唯聖人乎 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 其唯聖人乎라는 문구 즉, 聖君(훌륭한 대통령)만이 進退 등의 때를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亢이라는 말의 뜻에 비추어 정치를 함에 있어 밀고 나갈 때와 그만 둘 때 등을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忠言의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역사는 迂餘曲折(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고 우여곡절 있는 역사를 참고하여 좋은 정치를 함은 모르되, 힘으로 그 우여곡절의 과거사를 되돌려 바르게 펼 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은유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유언에서 ‘사람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보아 인간의 矮小(왜소)함과 生死一如(삶과 죽음은 같다)라는 불가의 말을 體得(체득)한 것 같은 감이 들어 亢龍有悔에서의 항룡 다시 말해 힘없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虛無感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다른 전직 대통령의 한분이 자기라도 그러한 처지에 몰렸다면 그러한 처신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이해될 것 같다.
항룡 즉, 전직 대통령의 지위가 할 일 없는 원로의 지위임을 알고 어떠한 정치적 행위에도 가담하지 않은 전형이 최 전 대통령이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직위에서 물러나 전직이 되면 항룡의 지위 내지 위치로 된다는 自覺으로 자신의 처신은 물론 주변단속을 하였다면 이번 사태와 같은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亢龍有悔의 뜻을 되씹어 보기만 했어도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는다는 無力感과 孤獨感에서 온 자살이라는 극단의 행동은 없었을 것 아니냐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항룡유회의 심정으로 남긴 남을 ‘원망 말라’는 유언을 고인의 지지자들도 받아드리는 것 즉, 전직 대통령은 힘없는 원로로서 남아 있는 것이 正道로서 故人의 죽음을 어떠한 정치적 수단으로도 이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의 화합을 위해 국민장으로 보내드린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 길이 될 것이라 믿으면서 노 전 대통령의 冥福을 빈다.
※ 易經의 乾卦 五爻(오효)의 飛龍이 帝王을, 六爻의 亢龍은 현역에서 은퇴한 上王을 각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