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걷기/2. 경기둘레길

경기둘레길 40코스, 39코스 _ 2023.02.25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3. 2. 26. 08:05

1. 개요

- 지난주 둘레길 날씨와 비슷하게 쌀쌀한 날씨다. 해는 하루종일 활짝 떠 있으나 바람이 불어서 체감 온도는 영하 8도에서 시작하여 한낮이 영상 1도 정도에 불과하다.

- 금광호수에서 출발한 길은 호수길과 산길, 포장도로를 걸어서 사간마을에 도달하면 산길이 시작된다. 산 능선인 덕성산에 도달하니 10키로에 두시간 반이 걸린다. 이후 산 능선길을 따라 칠현산을 지나고 마지막 칠장사로 바로 하산하지 않고 칠장산과 3정맥 분수령을 구경하고 칠장사로 내려오면 40코스 시점, 39코스 종점이다.  이후 둘레길은 평지길인데, 보도없는 포장도로가 많다. 용설저수지와 죽산성지를 거쳐 광천마을 부근에서 39코스 시점으로 가지 않고 일죽터미널까지 일죽면 시가지를 걸어서 일과를 마감하였다.



2. 오늘 걸은 경기둘레길 코스

- 안성 40코스 (14.0Km) : 금광호수~조령초등학교~덕성산~칠현산~칠장사
- 안성 39코스 (18.0Km) : 칠장사~용설호수~죽산성지~광천마을 정류장



* 경기둘레길 누적 현황
- 출정 회수 : 16회차
- 완료 코스 : 1~11코스, 44~60코스. 31~40코스
(총 39개 코스)
- 완료 거리 : 576 km (67%)

 

 


3. 교통편


- 출발지점 : 강남고속버스터미널(06:10) - 안성버스터미널 - 봉산로터리 - (안성 2-6버스) - 금광저수지 시점 08:50 도착
- 귀가 : 일죽버스터미널 출발(18:00) - 동서울터미널 (1시간 10분 소요)


- 둘레길 코스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걷기를 마치는 지점의 귀경 교통수단이 용이한가 여부이다. 오늘 둘레길 코스를 역으로 잡은 이유는 39코스 시작점인 일죽면의 귀경수단이 40코스 시작점인 금광면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이기 때문이다. 걷기 하루 일과가 마감될 무렵은 해가 지기 때문에 외딴 곳에서 귀가를 서두르다 보면 항상 편안하지 않다. 그래서 일과를 일찍 끝내거나 교통이 그래도 좋은 곳을 걷기 종점으로 삼는 것이다.

- 일출 07:08, 일몰 18:21
- 날씨 : 종일 맑음
- 일중온도 : 최고 +4도, 최저 -5도 (체감온도는 최저 영하8도, 최고 영상 1도)

 



4. 둘레길 실행 기록 : 35Km  8시간 50분 소요  (08:50 시작 - 17:40 종료)



5. 경기둘레길 안성 40코스 : (금광호수~조령초등학교~덕성산~칠현산~칠장사)

꽃바람 꽃바람 마을마다 훈훈히 불어오라
시작점인 금광호수 물가에 ‘박두진문학길’이 있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 선생은 이곳 출신이다. 선생의 시에 이흥렬 선생이 곡을 붙인 ‘꽃구름 속에’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시작한다. 호수와 사간마을을 지나 산길을 오르면 덕성산이 먼저 나오고 칠현산을 지나 칠장산 정상을 앞두고 하산을 시작하여 칠장사로 향한다. 칠장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는 어사 박문수 이야기며 의적 임꺽정 관련한 설화가 남아있다. 


<주요 Site >

금광호수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호수로 1961년 준공되었다. 금광저수지는 V자형 계곡령저수지로 물낚시, 얼음낚시가 유명한 곳이다. 호수 주변은 드라이브하기에도 좋으며 소문난 맛집들이 많이 있다. 또한 안성문화마을, 혜산 박두진 문학관, 안성객사 등의 관광지가 있다.

안성맞춤랜드 박두진문학관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에 있는 시민공원이다. 2012년 준공했다. 공원에는 남사당공연장, 천문과학관, 공예문화센터, 캠핑장, 사계절 썰매장 등이 있다. 가족 단위로 체험과 공연 등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야생화 단지, 넓은 연못, 수변공원 등도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박두진문학관도 공원 안에 있는데 2018년 11월  문을 열었다. 박두진문학관의 상설전시는 박두진의 문학적 노정과 박두진이 펴낸 시집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1부 ‘박두진의 시를 읽다’와 박두진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서재를 재현한 2부 ‘박두진의 일상을 보다’, 수석 수집, 글씨, 그림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활동한 박두진의 작품과 예술을 대하는 마음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한 3부 ‘박두진의 예술세계와 만나다’로 구성되어 있다. 



< 둘레길 주변 사진 >

 

- 안성터미널은 우여곡절 끝에 시 외곽으로 이전하였으나 주변 개발이 예정대로 되지 않아 인근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 이외에 여타 집적 시설이 들어서지 않고 벌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다.

- 봉산로터리로 가기 위하여 푸르지오 아파트 정류장으로 이동하면서 일출을 맞이한다.

- 아침에 봉산로터리 정류장에서 목표로 한 안성 2-6번 버스가 계시판에 표시가 되지 않아 애를 태웠는데 예정 출발 시간 2분 전에 표시되면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버스가 왔다. (08:22) 아래는 한참 시간 지나 버스에서 내린 시작점이다. 경기둘레길 안내와는 달리 시작점이 안성연수원 인근 금광호수 시작점으로 좀더 안으로 들어 가야 한다. 안성연수원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교육하는 곳인 것 같다.

- 경기둘레길 40코스 종점으로 표시된 하룩동 버스정류장으로 가보았으나 느티나무만 서 있다.

- 좀더 안쪽으로 들어 가야 시작점이 나온다.

- 드디어 오늘의 시작점인 경기둘레길 40코스 종점 스탬프가 나왔다. 스탬프에 잉크가 없어서 인증 사진을 준비한다.

 - 1961년에 준공된 금광호수는 면적이 46만평에 달한다고 한다. 아주 넓다.

-호수 주변에 데크길을 설치하여 걷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

- 데크길이 끝나면 호수를 옆에 두고 호젓이 걷는 산길을 간다. 숲이 우거져서 한여름에도 그늘이 있어 덥지 않을 것 같다.

- 호숫길 마지막 박두진문학길 수변무대이다.

- 이제 포장도로를 걷는다. 보도가 없다.

- 금광초등학교 조령분교이다.

- 석암마을회관이다.

- 사간마을로 접어든다.

- 임도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 시작은 완만한 임도이나, 산길은 가파르고 바닥에 마른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어 조심하여 오른다.

- 능선 초입에서 벌목한 곳을 내려다 본다. 산림청에서 탄소흡수원 개발목적으로 기존 나무를 완전 벌목하고 새로 심는 프로젝트를 한다고 들었는데 그 현장을 보았다. 수령 40년 정도 되면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줄어들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인데, 이미 나무가 보유하고 있는 탄소는 어디 갈 것이며 벌목한 나무들의 용도가 목재가 아니고 저급품 연료로 사용된다 하니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싶다. 혹시 정부에서 지급하는 정책자금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지 생각도 해본다. 요새는 모든 일들을 돈으로 해석하면 거의 맞아 떨어지다 보니 해보는 생각이다.

- 능선 시작점이 덕성산이 아니고 좀더 가야 덕성산 이정표가 나온다. 칠현산으로 가기 전에 반대 방향으로 500미터를 가서 덕성산을 보고 온다.

덕성산(德成山)
  높이는 519m로서 진천군 북서부의 서운산(瑞雲山:547m)·무제봉(武帝峰:574m)·옥녀봉(玉女峰:457m)·백석봉(白石峰:468m)·장군산(將軍山:436m)·만뢰산(萬賴山: 612m)과 함께 차령산맥(車嶺山脈)의 연봉을 이루고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 있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은 속리산 천황봉(天皇峰:1,058m)에서 충청북도 북부 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안성 칠장산(七長山:492m)에 와서 멈춘다. 이 산은 북동쪽 칠현산(七賢山:516m), 칠장산보다 약간 높지만 능선이 서남으로 이어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중생대 말의 습곡산맥으로 화강 편마암이 깔린 구릉산지이다.
  덕성산, 칠현산, 칠장산은 능선상으로 바로 이웃하여 연결되어 있어 세산을 이어 종주할 수도 있는 산이다. 세 산의 종주는 9시간 가까이 걸린다. 덕성산 남쪽 계곡에 구암리(鳩岩里) 무술리[無愁里]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은 진천 태생으로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金庾信:595∼673) 장군이 소년시절부터 용화향도(龍華香徒)라는 낭도(郞徒)들과 무예 등 화랑도(花郞徒) 정신을 연마하던 터이다. 

- 정상 지나 충북 진천군 광혜원 방향 하산길 초입에 정자가 있고 멋진 조망이 기다린다.

- 다시 종주 산행길로 돌아와서 칠현산 방향으로 가는 산길이다. 편안한 참나무 군락 흙길이다.

칠현산(七賢山)
 칠현산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과 죽산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516.2m이다.  
"칠장산군"(덕성산 - 칠현산 - 칠장산)은 백두대간 중 속리산에서 가지쳐 나온 정맥인 금북정맥에 속한 산이다. 높이는 높지 않지만, 산의 폭이 크고 숲이 울창하여 그 일부는 안성시와 진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 칠현산 바로 밑에 나무 사이로 안성베네스트 골프장이 보인다.

- 칠장사로 내려 가는 길이 나타났으나, 내친김에 칠장산까지 더 갔다오기로 한다.  산행 1키로 정도 더 소요된다.

칠장산(七長山)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금광면·삼죽면에 걸쳐 있는 높이 492.4m의 산이다. 예전에는 같은 산줄기로 서로 가까이에 있는 칠장산과 칠현산을 함께 칠현산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조선 시대 어느 권력자가 이 산 일대를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후 칠장사 뒤쪽의 산이라 하여 칠장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선 시대 지리지나 고지도에서는 칠장산이란 지명은 확인할 수 없고 그 기슭에 있는 칠현산 칠장사(七長寺)라는 사찰에 대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즉, 산의 동쪽 기슭에 있는 칠장사라는 사찰에서 그 지명이 유래하지 않았나 한다.

< 3정맥 분기점 >

-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뻗어 온 한남금북정맥이 이 곳을 중심으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진다.

- 한남정맥은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도덕산과 함박산으로 이어져서 김포 문수산에서 끝난다.

- 금북정맥은 칠현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로 충남을 가로질러 예산의 가야산을 지나 태안반도의 안흥진으로 이어지는 정맥이다.  

 


칠장사(七長寺)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장사(七長寺)는 칠현산에 바짝 등을 기대고 안겨 있다. 철따라 바뀌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울창한 숲에 고색창연한 칠장사가 포옥 싸여 산도 절도 빛이 난다.
   경기도 칠현산(七賢山)에 있는 칠장사는 세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0세기경에도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현종 5년(1014)에는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넓혀 세웠는데 ‘칠장사’와 ‘칠현산’이라는 이름도 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선하게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조 원년(1623)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명복을 비는 절로 삼아서 크게 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세도가들이 이곳을 장지(葬地)로 쓰기 위해 불태운 것을 초견대사가 다시 세웠으나 숙종 20년(1694) 세도가들이 또 다시 절을 불태웠다. 숙종30년(1704)에 대법당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영조 원년(1725)에 선지대사가 원통전을 세웠다.

- 칠장사 나한전 앞이 금강의 발원지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경기도 남부 지역에서 가장 높은 수원지이다.

- 조선 어사 박문수가 이곳에서 공부하고 장원급제한 곳이라고 해서 학부모들이 많이 찾아 소원 리본을 달아놓은 곳이다.

- 오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산사에서 듣는 풍경(風磬)소리는 사람들에게 항상 깨어 있으라는 울림을 준다.  

- 산사를 내려와 주차장 초입에 이르면 경기둘레길 40코스 시점 안내판이 맞아준다. 여기까지 4시간 20분 걸렸다.

 

 


6. 경기둘레길 안성 39코스 : (칠장사~용설호수~죽산성지~광천마을 정류장)

 

한강 남쪽과 금강 북쪽으로 흐르는 길
  칠장사를 나서서  포장길을 한참 가다가 낚시 좌대가 그림 같은 용설호수를 지나면 널찍한 언덕 경작지 너머로 십자가가 달린 독특한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천주교 죽산성지다. 조선 말 천주교 병인박해 때 신자들이 처형당했던 곳이다.   

 


<주요 Site >



용설저수지
1982년에 착공하여 1985년에 준공된 저수지로 안성시 죽산면 일대 죽산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저수지의 주변은 남산과 산박골산, 죽림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북으로 길게 생긴 형상으로 남쪽에서 북쪽 둑방이 있는 곳까지 길이 약 1.3km에 이른다. 용설저수지는 사방댐으로 둑방에서 서쪽에 홍수여수로가 설치되어 있다. 낚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방갈로와 좌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시설관리자는 한국농어촌공사이다. 


죽주산성 (경기도 기념물 제69호)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에 있다. 이 지역은 충청, 전라, 경상도 삼남지방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삼국시대부터 전략요충지였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도성 방어에 중요한 위치였다. 1236년(고려 고종 23년) 몽골군과 전투에서 승리한 곳이고, 임진왜란 때에도 격전지였다. 죽주산성은 내성, 중성, 외성의 3중 구조다. 성벽 원래 높이는 6∼8m, 본성은 1.7㎞, 외성 1.5㎞, 내성 270m 세 겹의 석성으로 산정에서 넓은 안성벌을 조망할 수 있다. 


하나원

  탈북한 북한 주민들과 북파공작원의 재사회화 기관인 하나원(1999년 개원)이 안성 삼죽면에 있다. 정식 명칭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北韓離脫住民定着支援事務所)'이지만, 흔히 '하나원'이라고 부른다. 북한이탈주민들을 교육하는 것이 목적이며, 통일부에 소속되어 직접 운영하는 교육기관이다. 탈북민들은 처음 한국에 입국하게 되면 자유누리센터로 보내져 몇달 간 용공점 조사를 받은 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 한해 이 곳으로 보내지게 된다.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교육 시설과 수용 시설, 직업 교육을 위한 몇 가지 공장(순수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공장)과 학교가 운영 중이다. 청소년 탈북자를 위한 교육시설로 하나둘학교가 있다. 추가 설명이 필요없지만 탈북민들에겐 고향집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탈북민들의 상당수가 여성들이어서 소위 '친정집'으로 여기고 각별하게 애정을 쏟는 곳이다. 세월이 지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하나원에서의 시절을 오랜 추억으로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2020년 1분기부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탈북에 성공하더라도 중국 정부의 코로나 대처로 인해 이동이 제한되어 있어 이동이 불가능한 데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코로나19의 해외유입 방지를 위해서 외국인 입국을 제한하고 있어  2020년 한 해 동안 국정원에서 하나원으로 인도된 탈북자는 겨우 3명에 불과하며, 2020년 5월에 하나원을 퇴소한 탈북자는 겨우 14명밖에 되지 않는다. 참고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5월에 하나원을 수료한 탈북자는 무려 1,000명이 넘는다.

 

 

 

< 둘레길 주변 사진 >

 

- 39코스 시작전에 마을버스 정류장에 앉아 간단하게 점심요기를 하였다. 마침 버스가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하산 종점이면 반가웠겠으나 다시 한 코스를 더 가야 하므로 별로 행운이라 할 수 없다.

- 한참 동안 보도없는 포장도로를 가야 하는데 차가 많이 다녀 조심해야 한다.

- 신대복조리마을이라고 하는데 오른쪽 길로 가야 한다.

    '새로운 터'라는 뜻의 신대마을은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이라 조상대대로 대나무 복조리를 만들어 온 곳이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복조리 중 최고로 정평이 나있다고 자부하는 신대마을 복조리는 칠장사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1년생 대나무만을 사용해 만들고 있어 모양이 견고하고 섬세한 게 장점이다. 옛날에는 조리가 쌀을 일게 하는데 썼는데 요즘은 차량과 가정 실내의 장식용으로 거의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한겨레 중·고등학교

  한겨레 중·고등학교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북한이탈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이다. 2000년도 초반 당시, 북한에서 국내입국 탈북자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탈북청소년들 또한 증가했는데, 그들의 높은 학업 중도 탈락률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났고, 그에 따라 2003년 2월, 탈북학생을 위한 학교설립 관계기관(통일부, 교육부, 국정원, 경기도교육청) 회의를 통해 정부정책으로 확정하여 설립이 인가되고 특성화 중·고등학교, 자율학교로 지정되면서 2006년 3월 1일에 한겨레 중·고등학교는 정식으로 개교하게 되었다. 전인학원은 원불교 재단 산하에 있는 학교법인이다. 학생은 북한이탈청소년과 제3국 학생(중국에서 태어난 북한이탈주민의 자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본교는 대한민국의 1%에 드는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학생들에 대한 복지와 여러 지원이 매우 잘 되어있으며 교복을 포함해 교육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지원받고 있어 개인이 부담하는 비용은 일절 없다.

- 코로나19 타격으로 탈북 경로가 모두 막혀 이제는 어떻게 학교가 운영될 지 궁금하다. 모두 잘 되길 빌어 본다.

- 길을 가다 보면 경기둘레길의 옛날 표지판이 가끔 나온다.

- 공업단지 뒤편 길로 둘레길이 이어진다.

- 큰길로 나와 좌회전한다.

- 다시 오른쪽길로 접어 들어 17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굴다리 지나 용설저수지 방향으로 향한다.

- 용설저수지가 나왔다.

용설저수지
1982년에 착공하여 1985년에 준공된 저수지로 안성시 죽산면 일대 죽산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저수지의 주변은 남산과 산박골산, 죽림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북으로 길게 생긴 형상으로 남쪽에서 북쪽 둑방이 있는 곳까지 길이 약 1.3km에 이른다. 용설저수지는 사방댐으로 둑방에서 서쪽에 홍수여수로가 설치되어 있다. 낚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방갈로와 좌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시설관리자는 한국농어촌공사이다. 

- 용설마을회관 건물이다.

- 호수 위에 펼쳐진 윤슬 !

- 저수지를 벗어난 마을 밭에서 일하며 나누는 얘기 소리가 둘레길까지 들려온다. 그런데 얘기 소리는 베트남 말이다.

- 이번에는 보도가 있는 포장도로이다. 가다가 오른쪽으로 길을 벗어난다.

- 오다가 처음으로 만난 이정표이다. 2/3 진행하였고 이제 6키로만 더 가면 된다.

- 전형적인 마을 정자나무 앞을 지난다.

- 종배마을로 들어가 죽산성지로 향한다.

죽산 성지
  팔봉산 흔들바위에 인접한 죽산성지 순례길은 천주교 탄압이 극심했던 시기,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받은 안타까운 역사를 고스란히 품었다.
  안성 죽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죽산교를 따라 2.5㎞ 남짓 걸어 죽산성지에 이르면 순교 성지(殉敎 聖地)를 통과하게 된다. 천주교 4대 박해 중 하나인 병인박해(1866년) 당시, 죽산 관아(官衙)에서 수많은 천주교인이 참혹한 고문을 받다가 죽산성지에 끌려와 순교를 당했다.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증언록(證言錄)’을 통해 밝혀진 순교자만도 25명이나 된다고 한다. 

  현재 이곳(이진터)은 아름답게 꾸며진 야외 정원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풍경이 빼어나다. 1995년부터 천주교 순교 성지로 조성됐으며 넓은 광장과 성당, 피정관, 묵상 산책로, 25명의 순교자 묘, 십자가의 길과 충혼탑 등이 조성됐다. 

- 특히 모든 사람을 반기는 듯한 형상을 한 ‘예수상’과 넓은 잔디광장이 있다. 봄이되어 이곳에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아픈 역사를 품은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질 것을 상상해본다.

흔들바위

( 걷기가 마지막 시간이 되다 보니 특별히 힘을 더 내어 흔들바위를 찾아보러 숲길로 들어가볼 힘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

  조사한 자료만 적어본다 )

   경기도 안성시 죽산성지(이진터성지) 뒷산인 팔봉산에 엄지 손가락으로도 흔들리는 흔들바위가 있다. 죽산성지 정문 옆길에서 이정표를 따라 좁은 숲길을 잠깐 오르면 산등성이 아래쪽 소나무들 사이로 거무죽죽하고 거대한 흔들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단부 높이가 2.1m, 둘레가 10.4m나 되는 거대한 흔들바위이다.    바위 위에 떠 있는 바위, "흔들릴 수는 있어도 넘어지지는 않는다."
  흔들바위는 웅장한 생김새와 위용을 자랑하며 산행길의 백미로 자리매김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홀로 자리한 흔들바위의 모습이 마치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듯하다. 바위가 아랫돌 위에 살짝 얹힌 형태여서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바위 밑을 세심히 들여다보면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 형상이다. 바위 밑으로 양쪽에서 두 사람이 실을 통과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바위 위에 바위가 떠 있는 신비한 모습이다. 자연이 준 기적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경외감마저 드는 이유다. 등산객이나 산책을 나온 시민들은 흔들바위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온 힘을 다해 밀어 보기도 하고, 바위가 넘어지지 않는 비밀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려고 바위 밑의 구석구석을 살피기도 한다. 기념사진을 찍는 일은 관례처럼 굳어졌고, 영험한 기운 아래 각자의 소원을 빌며 하산의 발걸음을 쉽사리 옮기지 못한다. 
- 무엇보다 흔들바위는 다양한 전설과 일화가 전해지며 흥미에 흥미를 더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들이 바위를 떼어내려고 반쯤을 뒤집었지만 이내 원상태로 돌아갔다고 한다. 또 1980년대 팀스피릿 훈련 당시 미군 9명이 넘어뜨리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영험함으로 가득한 바윗돌을 보며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옛사람들의 염원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유교사상이 강했던 조선시대, 아들을 낳지 못했던 이들은 종배마을 흔들바위로 찾아가 끊임없이 정성을 들였다는 전설도 구전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죽산, 용인을 거쳐 서울에 과거를 보러 가던 중 흔들바위에 장원급제를 기원하며 한양길에 올랐다는 설도 회자된다.
  그 뿐만 아니라 흔들바위 뒤로는 팔봉산의 8개 명당 중 한 곳인 무덤이 자리잡았는데, 이곳은 사냥꾼에게 쫓기던 노루를 살려줬더니 노루가 두 바위 사이의 땅을 파고 떠나지 않아 묘를 썼고, 이후 자손이 번성했다는 이야기도 안성시민들 사이에 오고간다. 흔들바위는 샤머니즘의 또 다른 상징으로, 백성이 원하는 삶과 기원을 이뤄지게 만드는 가교 역할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 다시 마을길을 걸어 가는데, 이번에는 축산농장이 많이 나오는 길이다.

- 소를 키우는 농장을 이렇게 가까이 보기는 오랜만이다. 축사 내부를 들여다 보니 칸칸이 구획되어 소가 사육되고 있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소들의 눈빛을 보니 정말 피곤한 것 같다. 아무 생각 없는 멍한 모습이다. 도시에서 육고기들을 즐겨 먹는 사람들이 이 모습을 생각한다면 정말 고기맛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고 채식을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장식축산(factory farming system)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가축의 생리에 맞는 사육보다는 좁은 공간에 최대한의 가축을 집약적으로 사육함으로써 육류의 생산량을 최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사육방식이다.
  공장식축산의 장점은 먼저 단위면적당 사육두수가 동물복지형 축산에 비해 많기 때문에 토지의 집약적 이용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고, 육류의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ICT 등 시스템을 통해 일괄 또는 개체별 관리가 용이하고  기계화 등을 통해 노동력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 뒤에는 항상 단점이 함께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다른 단점은 차지하고라도 동물복지 차원에서 경제성을 추구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효율성이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길러지는 동물의 입장에서는 생리를 무시한 최악의 생존 조건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집단적 질병발생의 위험성, 사람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질병(예 : 광우병)의 등장, 환경오염문제, 그리고 대규모 농장에 자본이 집중됨으로써 영세한 농가가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 광천마을로 가지 않고 직진하여 화봉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일죽버스터미널로 간다.

- 도중에 있는 서일농원이 나름 규모도 되고 성업하던 곳이었는데 코로나로 영업이 중단되어 다시 시작하려교준비 중인 것 같다.


안성시 일죽면
경기도 안성시 동부에 있는 면으로 조선시대 죽산부에 속했던 지역이며 1914년 주변 다섯개 면을 통합하여 죽일면을 신설하였다가 1917년 죽일면이라는 이름이 흉해 일죽면으로 변경하였다. 현재 15곳의 법정리를 관할하며 송천리에 면사무소가 위치한다. 일죽면은 대부분이 저지대를 형성하며 북쪽 마국산과 노성산, 남쪽 죽림산, 마이산이 위치한다. 면의 중심부로 청미천이 흐르며 하천유역은 충적지가 발달되어 넓은 곡창지대를 이루어 농업이 발달되었다. 교통은 중부고속도로 일죽 IC가 있고 38번국도가 중심적인 교통망이다. 문화유적으로 선조의 아들 영창대군묘, 가톨릭 죽산순교성지가 있고 명소로는 된장을 만드는 서일농원이 있다. 산업지로는 금성일반산업단지가 있다. 

 

 일죽 시내를 지나 멀리 건너편 노성산 중턱에 자리잡은 하얀색 건축물들은 왼쪽이 삼성전자 물류센터이고, 오른쪽이 쿠팡 안성8센터인 것 같다.

 

 

7. 안성시

- 개요
  안성시(安城市)는 대한민국 경기도의 최남단에 있는 시이다. 동쪽으로 이천시, 서쪽으로 평택시, 북쪽으로 용인시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충청남도 천안시, 충청북도 음성군, 진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안성천을 따라 충적지대인 안성평야 펼쳐지는데 경기남부의 곡창지대로 쌀농사가 활발하다.   안성시는 중부내륙에 위치하여 예전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역할을 하였으며 경부고속도로와 평택제천고속도로가 교차하고 중부고속도로가 지나면서 동서남북으로 도로가 발달되어 있다. 유적으로는 죽주산성과 미리내성지가 있으며 명소로는 안성팜랜드, 안성맞춤랜드가 있다. 농업의 발달과 함께 고삼저수지, 금광저수지가 있으며 학교로는 중앙대학교가 있다. 

  경기도의 최남단에 위치해 평택시와 함께 충청도에 맞닿아있어 일종의 관문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는 대구, 전주와 함께 3대 상업 도시로 손꼽히기도 했는데, 당시 안성은 대도시 부럽지 않은 번화한 도시로 특히 매월 2일과 7일 단위로 열리는 5일장은 조선 3대 시장에 속했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처음 경부선 철도를 구상할 때부터 안성은 경유지에 없었다. 안성 북쪽은 꽤 기복이 심한 산지라서 철도가 통과하기에는 부적합하고, 그렇다면 평택을 거쳐 서쪽에서 접근해 진천, 청주 방면으로 빠져야 하는데 안성과 진천 사이에는 차령산맥이 가로막고 있다. 이럴바엔 평택에서 역시 대도시인 천안으로 빠지거나 광주, 양지 일대의 회랑을 타고 양지-죽산-진천 루트를 타는게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 지리
  전체적으로는 동북이 높고 서남의 경사가 완만하여 남북으로 형성된 차령산맥은 지역을 동ㆍ서 양부로 나누는 분수령이 되어 동쪽으로는 청미천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안성천과 조령천, 한천이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 나간다.  남쪽으로 서운산(547m)이 충남북과 도계를 이루며 솟아있고 관내 전역에 크고 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으며 남ㆍ서쪽으로 장년기 및 노년기의 구릉지이며 하천의 발달로 평야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지대가 이천시, 평택시에 비해 높아 이 영향으로 장마시기마다 침수 사태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나마도 2006년 홍수도 둑이 안성시내와 반대방향으로 무너져서 생긴 홍수였다. 인구밀집지역은 말짱하고 논만 침수되었다. 안성 근처에 호우경보가 뜰 때, 옆동네인 평택시나 천안시, 음성군, 진천군은 침수 사태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안성은 침수 사태가 일어나질 않는다. 
  안성천이 흐르고 있는데, 안성천은 아산만방조제 건설 이전엔 작은 배들이 드나들어 소금장수가 보개면 북가현리까지 드나들 정도로 물이 많은 하천이었으나 방조제 및 저수지들이 생긴 이후 물이 줄어 현재는 여느 개천과 다를 것이 없다. 하나 있다면, 수위가 엄청나게 빨리 줄고 침전이 많아서 마구 파내도 금방 양쪽 냇가에 흙이 쌓인다. 안성천을 토대로 다양한 크고 작은 지류가 존재하며, 금광저수지와 고삼저수지는 FTV에서 꼭 나오는 주요 포인트이다. 아양지구 개발로 안성천 정리사업이 진행되어 강이 깔끔해지고 조망이 좋아졌다.  2018~2019년 들어 안성아양지구 개발이 대부분 이루어져 도로가 새로 뚫리고, 안성천이 정비되는 등 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고있다.
  2019년,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가 가장 심한 곳 1위로 선정되었다. AirVisual에 따르면, 안성시는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30.4㎍/㎥으로 국내에서 가장 높았다.  이는 서해안에 있는 각종 발전소와 현대제철 등에서 배출되는 먼지가 안성시로 오면서 동쪽 산맥에 막혀 머무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한 안성시 전역에 분포한 축산 농장들과 이들을 이용한 퇴비농법때문에 대체적으로 대기질이 좋지 못한 단점이 있다.


- 행정구역
 안성시의 행정 구역은 1읍 11면 3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553.47km2이다.
 2022년 12월 인구는 188,842명이다.

- 산업
  안성하면 안성맞춤과 안성 유기가 생각나는데, 현재 유기를 만드는 곳으로 전화국에서 좀 가다보면 안성맞춤유기공방이 있다. 그러나 유기는 생각 외로 잘 안팔리는 듯. 진짜 유기는 매우 비싸다.
   그 외 포도며 쌀이며 한우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농산품. 포도는 프랑스인 선교사 앙투안 공베르 신부가 들여온 것이다. 어차피 안성쌀은 경기미이기 때문에 비교적 인정을 많이 받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 나오는 인삼도 유명하지만 그렇게 크게 유명하진 않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안성 쌀과 안성 배가 등록되어 있다.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바로 농심그룹 안성공장이 있다는 것. 여기서 안성탕면도 생산한다. 안성 사람들이 집에 항상 안성탕면 한봉지를 준비해 놓는다는 건 드립이다. 안성시내 사료가게에서는 개밥으로 농심 공장에서 나온 라면부스러기를 한 포대씩 포장해서 판다. 근데 농심그룹에서 안성에 세운 공장이 하나가 아니다. 스프를 생산하는 태경농산과 켈로그 공장도 있다. 그리고 인근 미양면에는 롯데칠성음료의 공장, 그 옆 서운면에는 KCC 도료공장이 있다. 대체로 고속도로 위주의 교통편리로 인해서 별의별 기업들이 입주하고 있다. 특히 물류터미널은 경부선 연선 지역이 다 그렇지만 안성에 입주해 있다.

 

- 기타

  라디오 청취 사각지대이다. FM라디오의 경우 지형 등의 원인으로 관악산 전파가 쾌적하게 들리지가 않고 그렇다고 충청권 라디오주파수를 듣자니 그것도 꽤 만만치 않은 거리라서 라디오수신기가 좋은게 아니라면 웬만한 채널은 잘 안들린다.

  오랫동안 안성을 대표해 온 대학은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다. 1980년 캠퍼스 설치 이래 대덕면 내리를 필두로 수십 년 간 수많은 학생들이 거쳐가며 지역 경제의 큰 축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2000년대 후반 중앙대학교가 하남으로 캠퍼스 이전계획을 발표한 이후 캠퍼스 규모를 점차 줄여가면서 지역 주민들과 수 년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반면에 국립인 한경대학교는 말 그대로 애증의 존재다. 1939년 '안성공립농업학교'로 시작하여 '안성농업전문대학', '안성산업대학교'를 거쳐 지금의 국립종합대학교까지 발전하는 과정이 안성의 도시화와 맥을 같이 한 관계로 지역 사회에서 큰 위상을 차지한다. 

  안성시내를 필두로 대부분의 안성시내의 토지들은 타 지방 지주들이 대부분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이유는 경부고속도로 등으로 인해 교통이 상당히 편리한 반면 농촌에는 개발이 안된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성에서 뭔가를 개발을 할려고 하면, 안성시 주민보다는 타 지방 지주들에 의해 좌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안성지역이 딱히 개발호재가 없는 땅이다보니 개발이익 노릴만한 투자자들은 인근의 평택, 용인, 화성 등지로 빠지지 안성에는 잘 찾아오지 않고, 그러다보니 상당수의 타 지역 지주들이 안성지역 토지들을 노후를 위한 안식처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