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우 _ 다시찾는 우리역사 (2017) 서문
다시찾는 우리역사
출판사 : 경세원발행 : 2017년 10월 28일
1. 두 번째 개정판을 내면서
1997년에 발행된 《다시찾는 우리역사》가 2004년에 전면적인 개정판이 나오고 또다시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도합 51쇄가 간행되었고, 외국어본으로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본이 간행되어 국내와 해외에서 대표적인 한국통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게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이 커진다는 것은 필자로서는 더없는 광영이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무겁다. 51쇄까지 간행하는 과정에서도 매판마다 부분적인 수정과 보완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지난 10년간 국사학계의 새로운 연구업적이 늘어나고, 국내외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대중문화,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중심국가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으나 대외관계는 10년 전과 다르다. 이웃 중국이 G2에서 G1을 향해 급성장하고 있으며, 일본은 시대착오적인 100년 전의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정치와 경제가 낙후된 북한이 핵에 매달려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통일을 주도하면서 동아시아 평화를 지켜야 할 우리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떤 나라도 적이 될 수 없으나, 현실은 어떤 나라도 진실한 친구가 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할수록 국력을 더 키우면서 이웃과 평화공존의 가치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균형외교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역사의식은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의 과제를 외면하기 어렵다. 객관적 진실을 찾으면서 그 진실이 현재와 미래를 밝게 풀어가는데 도움이 되는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객관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역사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한국사를 바라보는 역사의식은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시각이 다르지만, 객관성과 미래지향적인 측면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보수와 진보는 다같이 균형감각을 잃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서구적 가치에 기울어져 있다. 이보다 더 높은 평화의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찾아서 한국인이 수천 년간 살아왔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그 가치는 바로 선비정신이고, 선비정신의 핵심은 공동체사상이다. 우주와 사람이 하나의 생명공동체이고, 사람과 사람이 홍익인간으로 또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 공동체 속에 자유도 있고, 민주도 있고, 평화도 있고, 계급도 녹아 있다. 다만, 그 가치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진화하고 발전해 왔으며, 미래에는 더욱 다듬어져서 세계인이 공유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역사의 큰 흐름은 동서양이 만나 새로운 문명의 가치를 창조할 때라고 본다. 여기에서 서양문명이 창조한 개체존중의 가치와 동양문명이 창조한 공동체존중의 가치가 높은 차원에서 융합된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한층 더 따뜻해지고, 국제적 갈등은 한층 더 완화될지도 모른다.
한국사는 한국이라는 좁은 공간의 역사가 아니다. 영토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사는 매우 왜소하지만, 문화가치로 본다면 한국사는 크나큰 세계사와 맞닿아 있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사를 국제적 시야에서 보아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하지만, 국제적 시야라는 것을 단순히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한국사는 수천 년간 군사강대국 역사의 종속적 존재로만 그치고 말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이 지켜온 문화가치와 주체성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 한 번도 경제나 군사강국으로 세계사를 주도한 일이 없다. 주변 강대국의압박과 영향을 크게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세계 문화강국의 하나로 살아왔다.
한국인의 조상인 ‘아사달족’의 문화가 중국문화의 뿌리가 되었고, 아사달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되어 일본 고대문명을 꽃피웠다. 공자가 고조선을 ‘군자국’이라 칭하면서 건너오고 싶다고 했고, 그 뒤에도’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문화를 다시 수용하여 문화를 살찌웠지만, ‘군자국’과 ‘동방예의지국’의 이미지만은 한국이 더높았다. 그래서 동아시아문명의 중심에 한국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를 만든 것도 한국이고, 교육과 관련되는 금속활자와 인쇄술에서 세계 최첨단을 걸어온 것도 한국이며, 교육입국으로 나라를 키워온 것도 한국이다. 검소하고 겸손한 왕실문화를 바탕으로 백성을 끌어안고 철인정치哲人政治를 꽃피운 것도 한국이다. 물론, 기나긴 역사의 행로에 어두운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한국사의 본질이었다면 어떻게 500년이나 1,000년의 사직을 이어갈 수 있었겠는가?
문화의 힘은 경제나 군사력보다도 큰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나 석가나 공자는 맨손으로 세계를 지배한 것이다. 한국에는 이런 인물은 없었지만, 이들의 가르침을 누가 모범적으로 실천했느냐를 따진다면 한국인은 아마도 우등생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한국사의 진실한 모습이고, 바로 그것이 세계사 속에서 바라보는 한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인이 ‘군자국’과 ‘동방예의지국’의 모범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아니 그 모습을 너무나 많이 잃었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 역사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역사의 거울로 우리 몸에 묻은 때를 벗겨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이런 시각에서 집필되었지만, 이번 개정판을 통하여 그 모습을 좀 더 새롭게 다듬었다. 그에 따라 새로운 사실이 많이 추가되었지만, 그것이 두 번째 개정판을 내는 근본적인 목표는 아니다. 독자들은 이 책에 담고자 하는 필자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려 주시고 읽어 주기를 당부한다. 책의 부족한 부분을 깨우쳐 주신다면 더 없는 바람이다.
2014년 1월 관악산 호산재에서
한영우 씀
2. 개정판을 내면서 (2004년 전면개정판 서문)
《다시찾는 우리역사》초판이 1997년 봄에 발간되어 벌써 6년 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세기가 바뀌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가 등장했으며,미국에서도 클린턴 정부가 끝나고 조지 부시 정부가 등장했다. 길지 않은 세월임에도 국내외 정세가 크게 바뀐 것이다
정보통신산업의 발달로 문화계의 변화도 급한 물살을 타고 있다. 1 년의 변화가 과거 100 년의 변화보다 클지도 모른다. 이런 시기에 시대에 뒤지지 않는 역사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대사를 신속하게 보완해야 하고, 역사서술방식이나 책의 편집도 새로운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학계와 각종 언론매체로부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결과 지난 6년간 중판을 거듭하면서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필자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한국사교재로 이용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외국어 번역본의 필요성이 점차로 커지고 있다. 일본어판이 동경대학 요시 다 교수에 의해 출간되었으며,러시아어판이 모스크바대학 박미하일 교수에 의해 진행 되고 있다. 영어판은 연세대학교 함재봉 교수에 의해 머지 않아 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성원이 클수록 필자의 어깨도 상대적으로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판을 거듭할 때마다 부분적인 수정을 수십 차례 거듭해 왔다. 컴퓨터의 이점을 최대로 활용한 셈이다. 하지만 일취월장하는 학계의 연구성과에 비추어 보거나 애독자들의 기대를 고려할 때 이러한 부분적인 수정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 전면적인 개정판을 내 게 된 것이다.
이번 개정판에서도 역사해석의 큰 골격이 바뀐 것은 없다. 그러나 설명이 크게 보완되었 다 우선 총설이 거의 두배로 늘어났다. 본문 중에서 가장 변화가 많은 것은 고대사와 고려사 부분으로 내용을 한층 자세하게 보완했다. 특히 고대 한일관계사에 새로운 연구성과를 많이 수용했다. 조선시대 이후의 역사도 새로운 학설을 반영하려고 노력했고, 특히 대한제국의 근대국가로서의 위상을 한층 분명하게 부각시키고, 현대사에서는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에 이르는 과정을 새로 넣었다. 최근에 발행된 참고문헌도 물론 추가되었다.
이 책의 주요 특징의 하나인 도판fi弼도 새로운 것으로 많이 바꾸었다. 전체적으로 근현 대사 서술과 문화사의 비중이 높은 것이 이 책의 특징으로 평가되어 왔는데,그 특징을 이번 개 정판에서도 최대로 살리려고 노력한 셈이다.
돌이켜 보면, 초판을 내고 나서 필자는 회갑을 맞이했고, 이번 개정판은 정년과 시기가 필자는 앞으로도 체력과 시간이 허용하는 한 이 책을 계속적으로 보완해 갈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배전의 성원과 애정어린 질책을 기대한다.
2003년 2월
봉천동 호산재에서 저자 한영우 씀
3. 책을 펴내면서 -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반성할 때 성장한다.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 반성할 줄을 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발전하는 시대에는 반드시 옛것을 숭상하면서 현재를 고쳐나갔다. 서양의 근대가 그리스•로마 문명을 고전古典으로 부활시키면서 열렸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 다. 중국인은 하 •은•주 삼대의 문명을 고전으로 내세우고 혁신을 거듭해 갔으며, 우리나라는 중국의 삼대를 숭상하면서 동시에 고조선이나 그밖의 고대국가를 이상시대로 그리면서 왕조를 세웠다. 옛날을 사랑하면서 현재를 극복해 가는 자세가 서로 다름이 없다. 이를 서양사람들은 ‘르네상스’라고 불렀고, 동양인은 온고지신 혹은 법고창신이라고 했다.
지금 20세기가 저물어가고 있다 세기가 바뀔 뿐 아니라 천년대가 바뀌는 역사의 대전환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이렇듯 중대한 시기에 우리는 지금 얼마나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현재를 얼마나 반성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미 미래의 세계가 우리에게 반드시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조짐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의 발족이 경제적으로 무한경쟁의 시대를 열어 놓았다. 이미 그것은 20세기와는 다른 모습의 경제전쟁을 예고하는 것이다. 지난날 패권주의 시대의 아름답지 못한 추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라서 강자의 길을 가야 하는 가. 아니면 약자와 강자가 함께 사는 공생공영의 길로 가야 하는가. 일방적으로 힘을 키우느냐, 아니면 도덕을 바탕으로 힘을 키우느냐. 지금 그 기로에 서 있고,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힘의 길을 간다면,아마도 그 길의 끝은 평화의 파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힘은 절대 필요한 것이지만,힘을 과도하게 믿는 사람은 오히려 힘 때문에 파멸할 수 도 있다 그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여기서 우리가 선택할 길은 공생공영의 인도적 사회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사실, 지난 20 세기는 공생공영을 고민하기보다는 외형적 힘을 키우는 데 주력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세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남북분단의 대결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힘을 키워 왔다. 그 결과 지금 세계 12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했고, 일인당 1 만 달러의 국민소득을 누리는 부국대열에 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힘을 키우기 위해 인권이니,도덕이니,문화니,복지니 하는 것은 뒷전으로 밀어놓았다.
민주주의가 문민정치라는 것을 알면서도,문민정치를 해 본 일이 없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었고, 도덕과 기강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혼돈의 경제대국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끊임없는 사건 사고로 이어지고, 잘 나가던 경제마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사람이 일류가 되지 않으면서 경제만 일류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열어가야 할 사회가 진정 문민시대라면,진정한 문민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문민의 모델은 어디에 있는가 물론 서양도 문민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델을 우리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역사에서 문민전통을 애써 외면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민문화가 절정에 다다랐던 조선왕조를 문약에 빠져서 망했다고 흔히 말해 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해석이 힘을 숭상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유교입국의 조선왕조가 고도의 문민정치를 하였기 때문에 519년의 장수를 누렸다는 사실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강포한 도적은 탓하지 않고 도적맞은 선량한 주인만을 탓하는 것과 다름없다. 패권주의시대에 패권을 쥐고 흔들었던 일본과 독일도 불과 반세기 만에 연합국에 망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는 패권을 거부했던 조선왕조만을 원망하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물론 지난날의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을 배우지 않을 수 없었고, 생존을 위한 힘의 축적이 절실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의 선택이 반드시 미래에도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열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비단 조선왕조뿐만 아니라, 수천 년의 민족사를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는 21 세기를 맞이 하기 전에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다. 힘을 중심에 놓고 보면,아마도 만주를 끌어안았던 고구려가 얼핏 빛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 멸망의 원인이 지나치게 힘을 숭상하고 전쟁을 선호한 데 있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볼 때,우리역사는 새롭게 쓰여져야 할 대목이 너무나 많다.
나는 20세기를 60년간 살아왔다. 유년기에 태평양전쟁을 경험했고, 소년기에 6-25 전쟁을 만났으며,청장년기를 최루탄 가스 속에서 살아왔다 크건 작건 간에 모두가 전쟁이다. 이것은 우리 국민 다수의 경험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역사를 공부하면서 나의 삶의 체험과 역사의 과거 사이를 무수히 오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역사는 무엇인가 왜 우리역사와 문화는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리역사와 문화의 약점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인가.
우리역사와 대화를 하면서 내가 얻은 결론은 ‘숨겨진 보석’을 우리 자신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모르는데 남이 알아 주기를 바랄 수 있는가.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남모르는 행복을 누리고 살아왔다. 더욱이 최근 규장각 도서를 관리하면서 나의 행복감은 절정에 달했다. ‘잃어버린 역사’와 ‘숨겨진 보석’을 되찾는다면 우리의 생존능력은 몇 배로 커질 것이라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역사에서 자신감을 찾고, 그 자신감을 가지고 21세기를 연다면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세계화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밖으로만 관심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균형감각을 갖춘 지식은 지피나 지기의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다. 그래서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손자의 가르침도 있지 아니한가. 모든 지식은 자기 역사에 뿌리를 두고 남을 이해할 때 주체성과 실효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편협한 국수주의와 주체성 없는 세계주의는 모두가 위험하다.
내가 우리나라 통사를 쓰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소신에서 출발한 것이다. 아마 이 책은 그러한 정서에서 쓰였다는 것을 독자들은 금방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역사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나는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의 앞머리에 실은 ‘총설'은 나의 그러한 시각이 정리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특히 조선왕조의 문민전통을 새롭게 보는 시각에 따라 전반적으로 시대구분 방식이 통념과는 달라졌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이 책을 쓰면서 각별히 신경을 쓴 것은 전문가를 위한 통사가 아니라,일반국민을 위한 통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의 고ㅈ을 찾고 전통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부쩍 늘고 있으나, 평이하고 친절한 역사책이 별로 없다. 권위 있는 학자들이 이러한 작업을 피해 온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한자를 병기하여 중학생 이상이면 읽을 수 있도록 하였고, 많은 지도와 도판을 넣어 시각적 효과를 높이고자 하였다. 특히 문화재와 관련된 지도와 그림을 되도록 많이 넣으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최근의 학문적 성과를 가능한 한 수용하여,대학생이나 그 이상의 전문가들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각주를 최대로 활용한 것도 이 책의 특색이다. 본문에 넣기는 곤란하지만, 좀 더 깊은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에서이다. 그리고 최근 국민의 관심이 문화와 생활 그리고 지방사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고려하여 이 방면의 서술에 적지 않은 비중을 두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이후의 서술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역사는 가까운 시대일수록 중요하다는 원칙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해방 이후의 현대사도 1996년 말까지 다루었다 다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나 현존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엄밀한 평가를 유보하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데 치중하였다. 특히 북한의 역사는 정보 부족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엄연한 민족사의 일부로서 가능한 한 편견 없이 쓰려고 노력하였다. 남한과 북한은 외형상 대립관계에 있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서로 깊은 인과관계 속에서 전개되어 왔음을 유념하였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새로운 시각과 형식을 시도하였기 때문에 집필과 편집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 집필에 착수한 것은 14년 전이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시간을 다른 일에 빼앗겨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더욱이 새로운 자료와 연구성과가 속속 등장하고, 주변환경이 바뀜에 따라 개고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미흡한 점이 많은 대로 우선 세상에 내놓 기로 하였다. 이 책이 독자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지는 모르겠으나 개성이 살아 있는 통사, 국민에게 다가서는 통사, 시대의 고민을 담아 보려는 통사로 이해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자한다.
그동안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동료 교수와 후학들이 격려를 보내고 도움을 주었다. 특히 서울대 송기호 교수는 발해관계 서술에 자료와 조언을 주었으며, 배우성 박사는 편집에 따르는 갖가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원고의 교정은 강석화(규장각 학예사, 박사), 고경석(강사),김문식 (규장각 학예사,박사),나희라(많사》,도면회(강사),박재우(강사), 박태균(강사),신병주(규장각 조교),연갑수(이하 강사), 윤경진, 윤선태, 윤해동, 최연식, 등 여러분이 분담해서 맡아 주었다. 그러나 이 책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또한 이 책을 아담하게 꾸며준 것은 경세원의 김영준 사장님 및 편집부 고현석 부장님, 편집부원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이 자리를 빌어 평소 필자를 격려해 주고 도와 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뜻을 전한다
1997년 1월
신림동 서재에서
저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