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하는 이중화, 고령화, 민주주의
다시 생각하는 이중화, 고령화, 민주주의
< 경향신문,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23.03.14 >
8년 전에 경향신문에 썼던 칼럼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장기 추세를 뒤집어라” 2015년 5월8일자). 그 글에서 나는 세 개의 거시 트렌드가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그것은 각각 이중화, 고령화, 현행 민주주의의 한계라고 썼다. 이중화란 조금 복잡한 학술 용어이지만, 익숙한 단어로 바꾸면 양극화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 하나하나가 모두 풀기 어려운 과제이지만, 더 고약한 것은 이 세 트렌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 문제를 풀어내기가 더욱 어렵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한국은 더 이상의 도약이 어렵고 서서히 침몰할 것으로 보았다. 이 문제를 풀어내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7년이라고 예측했는데, 근거는 고령화로 인해 부양률의 급상승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2022년까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이 문제를 풀고 장기 추세를 뒤집는 것은 박근혜 정부와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썼는데, 8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다음 정부’란 문재인 정부였다. 당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이었는데, 불과 7년 사이 작년에는 0.78명이 되었다.
오래전 칼럼을 다시 보게 된 계기는 한 대화모임으로부터 발제를 요청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모임은 종교, 언론, 대학, 시민사회, 정치, 기업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한국 사회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고민하는 원로들께서 생각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수십년간 이어온 대화의 장이다. 나는 9년 전인 2014년에도 이 모임의 초대로 “이중화, 고령화,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이 발표문이 앞서 언급한 2015년 칼럼이 되었고, 같은 해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9년 만에 같은 모임에 나가 발제를 하려니 그때 내가 했었던 진단과 예측은 어떻게 되었는지 스스로 정리해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불행히도 이 세 가지는 하나하나가 모두 나빠지는 변화를 겪었다. 이중화(혹은 양극화)와 고령화가 더 나빠진 것은 예상했던 그대로이지만, 민주주의의 위기는 조금은 방향을 바꿔서 진화했다. 대화모임에서 발표하고 칼럼을 쓰던 2014~2015년은 박근혜 정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철 지난 권위주의 체제의 여러 문제점들을 한 개인의 존재 속에 응축하고 있는, 어찌 보면 운명적 한계를 지닌 사람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국정농단 사태로 그가 탄핵되고 장미대선을 치르게 됐을 때, 민주화 이후 어쩌면 처음으로 이념과 정파를 넘어 다수 국민의 정치적 에너지가 하나로 모이게 됐을 때, 당선이 확실시되던 문재인 후보가 좀 더 담대하게 국민통합적인 자세를 취했더라면 이중화와 고령화의 문제를 정치가 풀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내내 남았다. 그는 탄핵이라는 역사의 우연으로 인해 이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놓였던 유일한 대선후보였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다른 선택을 한 것일까. 일말의 불안감을 가진 유보적 지지 정도가 내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세금을 정당한 정책수단이 아니라 특정 계층에 대한 징벌의 수단으로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고, 강성 지지자들을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면서도 내내 침묵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선택이 때로는 비겁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2022년 또 한 번의 대선이 다가오면서 이재명 후보는 한층 더 노골적인 편 가르기와 포퓰리즘을 대선 전략으로 삼았다. 비록 당선에 아슬아슬하게 실패하고 지금은 사법 리스크라는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강성 지지층을 얻은 그의 대응 전략은 더 확실한 편 가르기와 포퓰리즘이다. 지난 8년간 한국 정치는 포퓰리즘으로 진화한 것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이 8년 전보다도 훨씬 더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연대와 사회적 합의를 앞장서 주창해야 할 진보 정치세력이 오히려 편을 가르고 그것을 포퓰리즘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과 생각이 다른 국민들은 연대의 가치를 믿지 않게 되었다. 가뜩 풀기 어려운 이중화와 고령화 문제의 해법을 정치가 앞장서서 망쳐버렸으니 해결할 길은 8년 전보다도 더 바늘구멍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대안으로 제시해오던 사회적 합의가 설 자리는 사라지고, 차선의 대안이라야 사회계약이 될 것이다. 현 정부가 자신있게 개인과 자유를 외치는 사회적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