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새롭게 생각해보는 역사

강인욱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3. 3. 17. 11:57

강인욱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최인아책방 북클럽이 던지는 질문들


< 조선일보 topclass, 최인아, 2023년 03월호 >

 


한민족은 용광로였고, 더 큰 용광로가 필요하다

설 연휴 바로 다음 날 우리 책방에선 강인욱 교수의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북토크가 열렸다. 이날 북토크는 평소와 달리 온라인으로만 진행했다. 서울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져 시베리아같이 추운 날이었다. 북토크는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해 마치면 9시가 훌쩍 넘는다. 추운 겨울밤의 귀갓길이 염려된 우리는 오프라인 북토크는 취소했다. 그럼에도 한 분은 책방을 찾아 1인 북토크를 하고 갔다. 두 시간 가까이 바로 앞에서 눈을 반짝거리며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저자 강인욱 교수는 고고학자다. 서울대에서 공부한 뒤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분소 고고민족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줄곧 고고학자로 살고 있다. 우리 민족의 기원을 주된 연구 주제로 삼아온 그는 최근 한민족의 기원이라는 문제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어보니 이유를 알겠는데 우리 기원에 대한 관심이 식어서가 아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 모습을 추적해보니 우리 고향은 어느 한 점으로 수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곳에서 왔고, 다양한 사람들이 섞였으며, 그렇게 함께하며 뿌리 내렸다.

강인욱 교수는 “우리가 단일민족이냐”라는 꽤 도발적인 질문도 던진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단일민족이란 신화 속에 살았고, 이민족과 섞이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도록 교육받았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였다. 

 

국토의 삼면이 바다인 데다 광활한 유라시아대륙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땅덩어리를 보노라면, 바깥 세상과의 교류 없이 그저 우리끼리 반도 안에 갇혔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다. 우리는 고립되지 않았으며, 우리 조상들은 구석기, 신석기 시대부터 북방 민족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섞였다고 한다. 강인욱 교수는 한반도가 마치 용광로 같다고까지 말한다. 수만 년간 이 땅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떠나면서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고 뿌리 내리고, 함께 우리의 오늘을 만들었다고. 그에게 기원이란, 순수한 자신만의 고립된 혈통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주변과 연결되고 환경에 적응한 생존력이다.

우리는 강인욱 교수의 이 책을 읽으며 이 땅에 살았고,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바로 당신, 나, 우리다. 마중물 격으로 내가 첫 질문을 했다.


최인아 대표(이하 최인아)_ 고고학은 얼마나 오래된 유적을 대상으로 하나요? 왠지 아주 오래된 것을 연구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100년 전뿐 아니라 30년 전 유적이나 유물도 고고학 연구 대상입니다. 한동안 고고학은 역사학을 보조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청동기시대를 전공한 저 역시 삼국시대까지만 연구하고 고려, 조선은 역사학자가 하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고고학과 역사의 분야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최인아_ 단일민족이 신화고 허구라는 메시지도 흥미로웠지만, 이 이야기를 하는 교수님 얼굴이 굉장히 행복해 보여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공부를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지금도 행복하고 새로운 유물을 볼 때면 가슴이 뛰어요. 어렸을 때는 좋아했지만 나이 들면 바뀔 수도 있고, 또 교수가 되는 과정이 길고 어렵다 보니 막상 교수가 된 후론 연구에 흥미를 잃어버린 분도 있어요. 저는 아직까지 새로운 주제를 찾아보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이후로는 채팅창에 올라온 질문에 강인욱 교수가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독자 1_ 교수님은 책표지 얼굴 이미지 중 머리가 뾰족뾰족한 얼굴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왜, 어떤 이유로 좋아하는지 궁금해요.


“러시아 하바롭스크라는 도시에 사카치 알리안이라는 유명한 암각화가 있습니다. 개성 넘치는 이모티콘 같은 얼굴들인데 제가 꼭 표지에 넣어달라고 했어요. 그중에서도 이렇게 삐쭉 나온 머리를 좋아해요. 엉뚱해 보이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남들이 잘 안 하는 것만 골라서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고학과에도 가게 됐고, 시베리아에 가서 공부하고. 하여간 삐죽삐죽한 이 얼굴을 본 순간 ‘나다’ 생각한 것 같습니다.”

 


최인아_ 관심사가 시베리아라서 러시아로 공부하러 간 건가요?


“석사는 만주 전공이었어요. 제게 러시아는 슬라브의 러시아가 아니라 아시아 북쪽으로서 러시아였습니다.”

 


독자 2_ 교수님은 한민족을 북방계와 남방계로 나누는 것이 분야에 따라 결론이 다르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고고학계는 북방기원설을, 인류학이나 다른 분야는 남방기원설을 주장한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한반도는 북쪽 대륙 외에 해상을 통해서도 유입되었기 때문에 북방계와 남방계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라는 뜻일까요?


“매우 전문적인 질문이네요. 한국은 무엇을 기준으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의 모든 건국 신화는 우리가 다 북쪽에서 내려온 걸로 이야기해요. 물론 ‘난생신화’를 보면 알로 태어난 곳은 남쪽에 많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실체가 모호해요. 남방은 어디를 말하는 걸까요. 나라가 수십 개에 달하잖아요. 인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얼마나 방대합니까? 북방도 마찬가지예요. 북방도 한반도의 100배 이상 되는 땅인데 어느 쪽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남쪽, 북쪽이 다 섞여 있어서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가에 따라 어느 한쪽의 영향이 더 강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나누는 게 의미가 없다고 봤어요. 질문을 바꿔서 어느 쪽이 더 강했냐고 하면, 선진 문화는 북쪽에서 내려온 것이 많습니다. 반면 사람은 남쪽에서 온 이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DNA 조사를 하면 그렇습니다. 거대한 무덤 같은 고고학 유물은 북쪽과 관련이 더 높고요.

 


최인아_ 말씀을 듣다 보니까 고고학 연구는 오래전 유물을 보고 추정해야 해서 상상력이 굉장히 필요할 것 같아요.


“네, 그래서 오히려 저는 상상력을 억제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이 막 나가요. 몇 년 전 출간한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은 상상력의 밸브를 풀어서 쓴 책이라면, 이번 책은 반대로 상상력을 조였어요. ‘한민족의 기원’이라는 주제는 예민한 이야기라 상상력을 통제했습니다.”

 


최인아_ 그렇다면 교수님이 책에 우리 기원에 대해 쓴 내용은 학계에서 동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 건가요?


“아뇨, 아예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방론, 북방론은 1970년대까지만 이야기되고 그 후론 논의가 거의 없습니다. 북방 자료를 많이 아는 사람도 적고요. 그래서 이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든 반갑습니다. 비판까지도요. 저는 이번에 금기를 깼다고 생각합니다. ‘한민족의 기원’을 타이틀로 하는 책은 오랫동안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독자 3_ 예맥족과 한족이 우리 기원과 관련이 있다고 책에서 읽었는데 조금 더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이 주제는 한 학기 동안 수업해도 될 만큼 방대한 내용인데요. 예전에 우리를 부르는 명칭이 다양했습니다. 예맥은 대체로 북쪽에 있던 사람들을 말하지만, 실은 만주부터 우리나라 강원도 춘천까지 정말 넓고 다양한 지역을 예맥이라고 불러요. 북쪽의 산이 많은 지역에서 밭을 일구고 사냥하던 사람들, 그러니까 고구려 계통 사람들을 예맥으로 보고요, 남쪽, 특히 호남지역엔 ‘한’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각각의 지형에 맞게 생존하고 먹거리를 일구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명칭으로 불렸을 것이다,가 제 생각입니다.”

 


독자 4_ 우리 기원을 잘 알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투자 전문가는 이전 데이터로 앞날을 예측하잖아요? 판사도 이전 판례에 따르죠. 이처럼 인간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합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이 자신의 모습을 알려주기도 하잖아요? 자기 자신을 잘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자신의 형성 과정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고 나면 또 우리 후손이 이 땅에서 살아가겠죠. 100년 뒤, 1000년 뒤에도 지리 환경은 별반 다르지 않을 테고, 똑같은 지리 환경에 기대어 생존하던 법칙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고고학이 주는 인사이트가 상당하다고 믿습니다. 또 우리 과거는 매일 바뀝니다. 과거를 보는 눈이 바뀌는 거죠. 과거를 바라보는 제 모습을 통해 저 자신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고고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당장 미래의 답을 얻는 건 아니지만 나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보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 5_ 교수님은 책을 통해 우리 기원이 단일하든 다채롭든 우리 민족은 절대로 고립되지 않았고 뜨거운 용광로와 같이 끊임없이 교류한 민족이다,라는 말씀을 하고 싶었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정확합니다. 그리고 더 뜨겁고, 더 큰 용광로가 필요한 시대로 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자신의 형성 과정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고 나면 또 우리 후손이 이 땅에서 살아가겠죠. 100년 뒤, 1000년 뒤에도 지리 환경은 별반 다르지 않을 테고, 똑같은 지리 환경에 기대어 생존하던 법칙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고고학이 주는 인사이트가 상당하다고 믿습니다.

 


최인아_ ‘용광로’라는 말이 굉장히 새로웠어요. 그 말은 미국 같은 큰 나라에나 썼지 우리 자신을 용광로로 바라본 적은 없었으니까요.


우리나라처럼 지역에 따라 환경이 극적으로 바뀌는 데가 많지 않아요.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게 실은 살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한겨울엔 기온이 영하 20~30도까지 떨어졌다가 여름엔 40도 가까이 올라가잖아요.”

 


최인아_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체험을 우리는 매년 하고 있는 거죠.


그렇죠. 또 남한만 보게 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멀다고 생각하지만 중국 심양에서 한반도까지 거리가 중국 내 하북성까지보다 짧아요. 근데 중국 사람들은 하북성에서 하남성까지 멀어서 교류가 힘들다고 하지 않거든요. 우리는 우리만의 짧은 거리, 좁은 세계에 익숙해 있는 거예요.”

 


최인아_ 김시덕 교수가 쓴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를 비롯해 다행히도 보다 넓은 세계 속에서 우리를 보려는 시도들이 활발한 것 같아요. 임진왜란을 당시 동아시아 정세에서 들여다보니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함의가 많더군요. 멀리 보면 훨씬 잘 보인다,라는 말씀도 남습니다.

 

강인욱 교수의 이 책은 고고학 연구자가 아니라 일반 대중을 위한 책이다. 전문 연구를 하기에도 빠듯할 시간에 관심도, 지식도 많지 않을 일반인에게 고고학을 알리려 하는 이유는 뭘까. 고고학자에게 그런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고학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반대입니다. 아주 밀접해요. 김포장릉 아시죠?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신도시에 건설 중인 아파트 가운데 일부 단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김포장릉의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며 문화재청이 건설사를 상대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유적 위에 살고 있고 또 어느 날엔가는 우리가 유적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고고학은 가장 ‘컨템퍼러리’한 학문, 당대와 맞춰 가는 학문이에요. 인문학 중 현대와 가장 잘 조응하는 학문이고요. 우리나라엔 고고학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많습니다. 언제든 가서 유물과 대화해보면 좋겠습니다. 유물은 책이나 영화가 줄 수 없는 날것의 느낌이 있습니다. 어느 러시아 화가는 공동묘지를 좋아한대요. 공동묘지에서 살아 있음과 무한한 창의력을 느낀다고 하는데 많이 공감합니다. 고고학은 정말 많은 창의력을 준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