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大谷翔平)
1. 선수 소개
오타니 쇼헤이(일본어: 大谷おおたに 翔平しょうへい, 1994년 7월 5일~)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메이저 리그인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의 소속 선수(투수, 외야수)이다. 소속사는 호리프로(2016년 12월 ~ ).
투수와 타자를 겸해서 ‘이도류’(二刀流)라고 불리는 선수이며, 2014년에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와 두 자릿수 홈런’(11승, 10홈런)을 같은 해에 달성했다. 이듬해 2015년에는 최우수 평균 자책점, 다승왕, 최고 승률 등의 투수 부문 3관왕을 달성했고 처음으로 베스트 나인(투수 부문)에도 선정됐다. 더 나아가 2016년에 일본 프로 야구에서는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100안타·20홈런’을 달성했다. 투타 모두 팀의 주력 선수로서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하는 등 NPB 사상 최초로 투수와 지명타자 두 개 부문에서 베스트 나인에 선정[3]됨과 동시에 자신의 첫 리그 MVP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미국에서는 ‘일본제 베이브 루스’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일본 아마추어 야구 최고 구속인 160 km/h를 기록했고, 더 나아가 2016년 10월 16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165 km/h의 최고 구속을 기록한 보유자이다.
2018년에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그해 신인왕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만장일치로 MVP를 수상했으며, MLB총재 특별상, 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에도 선정되었다. 타임지 올해의 인물100인, AP통신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되었다.
미 스포즈전문지 스포팅뉴스는 스포츠역사상 최고의 시즌TOP50을 발표 오타니의 2021년 시즌을 1위로 선정했다.
2022년 4월 7일, 2004년 보스턴의 우승이후 야구선수로는 18년만에 미국판 타임지 커버모델로 선정되었다. 2022년 7월 21일, 1999년 마크 맥과이어 이후 야구선수로는 23년만에 ESPY어워드에서 최고의 스포츠선수상을 수상했다.
2.
최고의 투수와 타자, 세기의 대결... 오타니가 끝냈다
일본, 최강 미국 꺾고 WBC 14년만에 우승
< 조선일보, 성진혁 기자, 2023.03.22. >
9회초 투 아웃, 점수는 3-2. 일본이 한 점 앞선 상황. 마운드에는 일본 오타니 쇼헤이. 타석엔 미국 마이크 트라우트. LA 에인절스에서 한솥밥을 먹는 MLB(미 프로야구) 두 선수가 만났다. 당대 최고로 불리는 투수와 타자가 WBC 우승을 가리는 마지막 승부를 펼쳤다.
볼 카운트는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홈런 한 방이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오타니는 여섯 번째 공으로 슬라이더를 택했다. 시속 87마일(약 140㎞)짜리 공이 타자 몸 쪽에서 바깥쪽으로 흘러갔고, 트라우트가 헛스윙을 하면서 그대로 경기는 막을 내렸다. 오타니는 모자와 글러브를 벗어던지며 포효했다. 일본 선수들은 모두 마운드 쪽으로 달려나와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일본이 미국을 3대2로 꺾고 2006년, 2009년에 이어 통산 세 번째이자 14년 만에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정상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대회 MVP는 오타니.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그는 이번 대회 7경기에 타자(3번)로 타율 0.435(23타수 10안타), 1홈런 8타점, 10볼넷을 기록했다. 투수로는 3경기에서 9와 3분의 2이닝을 책임지며 2승 1세이브(평균자책점 1.86, 11탈삼진)를 올렸다.
오타니는 22일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미국과 결승전을 앞두고 라커룸에서 동료 선수들에게 “지금부터 하나만 말하겠다”며 연설을 시작했다. “1루에 골드슈밋, 외야에 트라우트, 무키 베츠.... 야구를 한다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하지만 미국 선수들에게 동경심을 가지고 있으면 넘을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넘어서기 위해, 우승하기 위해 왔다. 오늘 하루만큼은 동경심을 버리고 승리만을 생각하자.” 선수단 30명 전원이 메이저리거이고, 결승전 선발 타자 기준 2023년 연봉이 2억달러(약 2616억원)가 넘는 ‘야구 종가(宗家)’에 주눅들지 말고 싸우자는 정신 무장이었다.
기선을 잡은 쪽은 미국. 트레이 터너(필라델피아)가 2회초 이마나가 쇼타(요코하마)가 던진 직구를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겼다. 터너의 대회 5호포, 2006년 WBC 이승엽 현 두산 감독이 세웠던 단일 대회 최다 홈런 타이를 이뤘다. 일본은 2회 말 지난해 일본 리그 홈런왕(56개)인 무라카미 무네타카(야쿠르트)의 1점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미국 투수는 한국에서도 뛴 메릴 켈리(현 애리조나·전 SK와이번스). 무라카미는 전날 멕시코와 4강전에서 4-5로 뒤지던 9회말 역전 끝내기 2타점 2루타를 때려 부진에서 벗어나더니, 결승에서도 한 방으로 자존심을 세웠다. 일본은 이어 1사 만루에서 내야 땅볼로 1점을 더 뽑아 2-1로 뒤집고, 4회 말엔 솔로 홈런으로 3-1까지 달아났다. 일본은 8회 미국에 1점 홈런을 뺏겨 3-2까지 쫓겼으나 9회 마무리투수로 등판한 오타니가 1이닝을 무실점(1볼넷)으로 막고 승리를 결정지었다. 오타니는 이날 타자로 두 번 출루(3타수 1안타 1볼넷)한 뒤 경기 중반부터 불펜으로 이동해 등판 준비를 했다. 타순이 돌아오면 다시 달려와 헬멧과 배트를 챙기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오타니는 당초 8강전 이후 마운드에 서지 않으려고 했다가 결승전 불펜 등판을 자원했다. 마지막 순간 맞대결을 펼친 트라우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12년 총액 4억달러(4억2650만 달러·약 5581억원)가 넘는 계약을 했고, 올해 연봉 3712만달러(약 486억원)를 받는 수퍼스타이자 미국 대표팀 주장이었다. 그는 “1라운드는 오타니의 승리”라면서 “대회를 정말 즐겼다. 우리는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오타니는 고교 시절부터 이른바 ‘만다라트 기법’을 활용해 인생 목표들을 설계하고 차곡차곡 달성한 걸로 유명하다. 핵심 목표 1개마다 8개 실천 과제를 설정하고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달성해가는 자기 단련법이다. 2018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2021년 아메리칸리그 만장일치 MVP에 이어 이번 WBC 우승과 MVP를 거머쥐면서 또 하나의 성취를 일궈냈다.
3. “만화 주인공도 이렇게는 못 만든다”… 최고 몸값 증명해낸 이 선수
[아무튼, 주말] WBC 일본팀 우승 이끈
오타니 쇼헤이 심층 해부
< 조선일보, 남정미 기자, 2023.03.25. >
“오타니는 신화 속 생물, 유니콘이다.”
일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29)를 두고 미국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 동료들이 하는 말이다. 오타니가 속한 일본 대표팀은 지난 22일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에서 열린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 폭스뉴스는 “이번 WBC에서 오타니는 자신이 왜 유니콘인지 그 정수를 보여줬다”고 했다. 일본 대표팀은 오타니의 투구로 WBC를 시작해, 오타니가 던진 마지막 공으로 경기를 끝냈다. 그는 WBC에선 물론이고, 현대 프로 야구에서도 보기 드문 ‘투타(投打) 겸업’ 선수다. 대회 최우수선수(MVP)도 오타니가 가져갔다.
실력만 월등한 게 아니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 마이애미 공항에 도착한 오타니 머리 위엔 일본 대표팀이 아닌, 체코 대표팀 모자가 있었다. 일본과 1라운드에서 만난 체코는 자국에 프로 리그가 없어, 본업이 따로 있는 ‘투 잡’ 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꾸렸다. 이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야구팬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오타니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체코팀에 응원을 보낸 것이다. WBC 해설을 위해 일본을 찾은 박찬호가 현지 취재진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오타니 선수 인성에 대해 많이 가르친다”고 했을 정도다.
침을 뱉는 건 기본이고, 화가 나면 방망이를 부수기까지 하는 거친 야구판에서 오타니가 심판과 살갑게 이야기하는 장면, 다른 선수들과 활짝 웃으며 대화하는 장면도 화제를 모았다. MVP를 수상한 뒤엔 “일본뿐 아니라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야구가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동력이 돼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은 이번 WBC 본선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야구계에선 올 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FA) 신분이 되는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인 5억달러(약 6548억원) 상당의 다년간 계약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키 193㎝에 몸무게 95㎏ 피지컬. 야구 선수 최초로 독일 의류 브랜드 ‘휴고 보스’ 모델이기도 하다. 팬들 사이에서 “만화 주인공도 이렇게 설정하면 과하다고 욕먹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하다. 종종 혼혈로 의심받지만, 사회인 야구 선수 출신 아버지와 배드민턴 선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다. ‘아무튼, 주말’은 실력과 체격은 물론이고, 인성까지 겸비한 유니콘 오타니를 심층 해부했다.
◇ MLB 전설을 다시 쓰는 ‘이도류’
오타니의 상징은 흙투성이 유니폼으로 마운드에 서 있는 모습이다. 선발 투수는 유니폼이 더러워질 일이 거의 없다. 경기 중 서서 공만 던지기 때문이다. 오타니는 다르다. 타자로서 치고 달리고 슬라이딩을 하다 보니, 그의 유니폼엔 늘 흙이 묻어 있다.
오타니는 현대 프로야구에서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투타 겸업’ 선수다. 단순히 겸업만 하는 게 아니다. 한 선수가 투수나 타자로만 출전해도 내기 어려운 성적을 두 분야 모두에서 올린다. 미국 야구의 전설인 베이브 루스 이후 104년 만에 처음으로 한 시즌에 두 자릿수 승리·홈런을 달성했고, MLB 역사상 처음으로 투수 규정 이닝(162이닝)과 타자 규정 타석(502타석)을 모두 채웠다. 최고의 투수를 뽑았더니, 최고의 타자가 같이 온 셈이다.
일본에선 이를 ‘이도류(二刀流)’라고 한다. 좌우 양손에 칼을 가지고 싸웠다는 17세기 검술가 미야모토 무사시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번 WBC 미국과의 결승에서도 오타니는 지명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가 9회에 구원투수로 등판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외야에 있는 불펜에서 몸을 풀다가, 자기 타순이 되면 재빨리 더그아웃으로 와 땀을 닦으며 방망이를 드는 ‘이도류의 부지런함’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물론 오타니 외에도 아마추어 때 4번 타자로 활동하다 투수로 전환하는 등 던지기와 치기 모두에 재능이 있는 선수들은 종종 있었다. 프로 데뷔 후엔 상황이 달라진다. 투타 겸업은 재능을 떠나, 엄청난 훈련량과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WBC 멕시코팀 감독이자 LA에인절스 코치였던 벤지 길은 “현대 프로야구에서 투수와 타자는 사실상 각기 다른 스포츠라고 보면 된다”며 “오타니가 이 두 분야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이기 위해 매일 쏟는 노력을 보면, 역으로 왜 다른 사람들은 도전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엔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타니는 왜 이렇게 힘든 이도류를 택했을까. 오타니가 2019년에 한 언론 인터뷰를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투타를 겸하면, 타자를 하다 마지막에 마무리 투수로 경기에 나서는 등 지금까지는 없었던 다양한 전술과 방법이 생길 수 있다. 야구의 재미를 더한다는 점에서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나를 하나의 샘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성공한다면, 야구계에 다양성이 생겨나 다음에 이도류에 도전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그 길을 최대한 넓게 만들고 싶다.”
◇ 야구 수도승, 야구에도 혼을 담는다
오타니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단어가 ‘야구 수도승(baseball monk)’이다. 고액 연봉을 받는 야구 선수들은 술과 도박, 마약 스캔들 등에 연루되는 경우가 있다. 국내 야구계에서도 잊을 만하면 비슷한 일들이 터진다. 오타니는 2020년까지 차는 물론이고 운전면허도 없었다. 일본 니혼햄 파이터스에 있을 땐 기숙사에 살았고, LA 에인절스로 와서도 경기장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살며 집과 훈련 센터, 야구장만 오간다. 흡연은 안하고, 술 역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서” 안마신다.
유명 남성 잡지 GQ에 ‘자신의 필수품 10가지’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이 코너에 등장하는 유명인들은 명품이나 한정판 등 고가품을 자랑하곤 한다. 그런데 오타니는 숙면을 위한 베개, 배트와 글러브 등 정말 야구와 관련된 물건 10개를 골랐다. 그에게는 야구가 일상의 전부인 셈이다.
경기장에서 쓰레기 잘 줍고, 오심한 심판에게도 미소 지으며, 팬들에게 사인 잘해주기로도 유명하다. 투타로 녹초가 된 상태에서도 팬이 요청하면 길을 가다 가방을 내려놓고 사인을 한다. 자기 유니폼을 입고 있는 강아지에게도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포착된 적도 있다. 2021년 올스타전에선 대회 출전 선수 중 가장 많은 사인을 했다. 올스타전에 참가한 다른 팀 선수와 코치까지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면서다. 스포츠 관점에서 일본 문화를 분석해온 작가 로버트 와이팅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 야구는 끝없는 훈련과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작은 일에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무사도 정신을 닮았다. 오타니 역시 마찬가지다. 예의 바르고 신중하며 사생활은 최소화하고, 오직 야구에만 ‘헌신’하는 오타니의 모습은 현대판 수도승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 오타니 야구의 기본이 된 만다라트
‘몸 만들기, 제구, 구위, 변화구, 스피드 160㎞/h, 운(運), 인간성, 정신력.’
오타니가 고1 때 ‘8개 구단 드래프트(신인 선발) 1순위’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라다 기법’에 따라 작성한 세부 목표 8가지다. 오타니의 야구 수련 정점엔 이 ‘하라다 기법’이 있다. 일본 오사카 마쓰무시 중학교 육상 교사였던 하라다 다카시가 고안한 자기계발법의 일종이다. 하나의 큰 목표를 세운 다음, 이를 달성하기 위한 8개의 세부 목표를 세우고, 8개의 세부 목표마다 또 8개씩 총 64개의 실천 과제를 작성한다. 활짝 핀 연꽃 모양처럼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발상해 나간다는 사고 기법 ‘만다라트’에 자기계발 요소를 강화했다.
오타니가 고1 때 작성한 만다라트를 한국어로 의역한 것. 하나의 큰 목표가 8개 세부 목표로, 다시 64개 실천 과제로 연꽃처럼 피어난다.


하라다는 1994년 핀란드 연수에서 이 기법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일본 특유의 암기식 교육 대신, 목표를 시각화하고 실천해 나가기 위해 이를 사용했다. 당시 380개 중학교 중 꼴찌였던 하라다의 학교는 이를 통해 일본 최고의 육상 명문으로 거듭났다. 오타니는 고교 시절 자신의 야구 코치였던 사사키 히로시로부터 ‘하라다 기법’을 배웠다.
고등학생 오타니는 ‘8개 구단 드래프트 1순위'의 세부 목표로 몸 만들기, 스피드와 같은 실력적인 요소뿐 아니라 ‘운’ ‘인간성’을 포함시켰다. ‘운’을 위해서 ‘쓰레기 줍기’ ‘인사 하기’ 등을 실천 과제로 삼았고, ‘인간성’을 위해선 ‘예의, 배려, 감사’ 등을 과제로 적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오타니는 이후에도 자신의 최신 목표를 반영하기 위해 15개의 차트를 더 작성했다”며 “모두가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될 순 없지만, (이런 방식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있어 최고는 될 수 있다”고 표현했다.
4. “일본 야구엔 혼이 있다”… 日, WBC 세번째 우승 비결
23세 홈런왕·22세 164㎞ 투수… 日, 세대교체로 세계 제패
< 조선일보, 박강현 기자, 2023.03.23. >
사무라이, 승리의 포효 - 일본 야구대표팀 오타니 쇼헤이(가운데 16번)와 마키 슈고(가운데 3번)가 22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2023 WBC 결승전에서 미국을 3대2로 꺾고 우승을 확정지은 뒤 환호하고 있다. 이날 일본은 조별리그부터 7전 전승으로 2006 및 2009 대회 이후 통산 세 번째 정상에 올랐다.
일본 야구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을까. 바로 지금이다. 일본 야구 대표팀이 2023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대회 통산 세 번째 정상에 올랐다. 일본은 22일 미국과 벌인 WBC 결승전에서 3대2 승리를 거두고 7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일본은 초대 2006 및 2009 WBC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야구 강국 위용을 과시했다. 하지만 2013 WBC에서 3위에 머무르자 이를 ‘실패’로 규정하고 대대적 세대교체와 변화에 나섰다. 그 결과 탄탄한 저변과 기본기를 중시하는 일본 야구 고유 특성과 맞물려 막강한 ‘사무라이 재팬(Samurai Japan·일본 야구 대표팀 애칭)’이 만들어졌다.
◇ 10년 준비, 꾸준한 평가전으로 점검
일본은 2013년 WBC에서 3연패(連霸)에 실패한 뒤 대표팀 경기력 강화에 나섰다. 일본야구기구(NPB)는 이후 ‘일본 대표 마케팅 위원회’라는 조직을 창설해 일본야구협회와 함께 연령별 대표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이름도 붙여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나아가 전담 감독을 선임하고, 일본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면 대표팀을 소집해 함께 훈련하며 멕시코, 대만, 프랑스 등 국가 대표팀은 물론이고 프로팀과도 평가전을 치렀다. 2023 WBC를 앞두고 일본은 작년 11월 호주와 두 차례 평가전을 실시했다. 이번 대회에서 맹활약한 주축 선수들은 이때부터 호흡하며 손발을 맞췄다. 장성호 KBS N 해설위원은 “일본은 10년 전에 실패를 하고 그동안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서 “이번 WBC에서 그 준비의 성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 차원이 다른 저변, 성공적 세대교체
일본고교야구연맹에 따르면, 2022년을 기준으로 일본엔 현재 고교 야구팀이 3857개 있다. 한국(88개)의 40배가 넘는다. 그만큼 야구 저변이 넓고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양상문 여자야구 대표팀 감독은 “일본 고교 야구팀 중 우리처럼 엘리트 야구를 하는 곳만 200여 개”라면서 “이들이 고시엔(일본 최고 권위 고교 야구 전국 대회) 같은 대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해 실력을 쌓으니 계속 우수한 선수들이 배출된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번에 역대 대회 최연소(27.3세) 대표팀을 꾸리며 세대교체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전성기인 20대와 30대 초반 선수들이 중심이 돼 우승을 이끌었다. 결승전 선발 투수로 나선 이마나가 쇼타(30)는 대회 내내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활약했고, 지난 시즌 ‘홈런왕’ 무라카미 무네타카(23)와 오카모토 가즈마(27)는 결정적인 순간에 대포를 날리며 기선을 제압했다. 마무리 투수로 나서 우승 쐐기를 박은 대회 MVP(최우수 선수) 오타니 쇼헤이(29)는 투타(投打)에서 전천후 역할을 했다. 사사키 로키(22)와 야마모토 요시노부(25) 등 젊은 투수들도 시속 160km를 넘나드는 강력한 투구로 마운드에 힘을 더했다. 2009 WBC 당시 대표팀 투수코치를 지낸 양 감독은 “일본은 2009 WBC 우승 전력보다도 발전된 팀을 구성했다”고 평가했다.
◇ 기본기 중시하는 정신 잃지 않아
일본에선 기술이나 학업에서 기본기를 익히고 닦는 일명 ‘슈교(修業)’ 정신을 중시하는데, 이러한 장인 정신이 여전히 통용되는 분야가 바로 야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해 국가 전통으로 자리 잡은 일본 프로야구를 대하는 선수와 지도자들 마음가짐부터 다른 셈이다. 양 감독은 “야구라는 종목 자체가 일본 국민들 감정에 깊이 파고 들어가 있다”면서 “단순한 스포츠나 생업이 아닌 그 이상으로 접근해 야구에 대한 사랑의 뿌리가 남다르다”고 했다. 이어 “이번 대회에서 본 일본 투수들 투구 폼은 우리가 일본 야구를 부러워하기 시작한 40년 전과 변함이 없다. 그만큼 기본기가 강조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인식 전 야구 대표팀 감독도 “일본 야구엔 ‘혼(魂)’이 있다”고 말했다.
5.
2015년 삼성이 회사 컴퓨터 화면에 '오타니 쇼헤이' 쓴 이유
<주간조선, 최홍섭 칼럼니스트, 2023.03.26 >
지난 3월 21일(미국시간) 일본의 우승으로 끝난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는 오타니의, 오타니에 의한, 오타니를 위한 대회였다.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28·LA에인절스 소속)는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9회초 투수로 등장, 강타자이자 LA에인절스 팀 동료인 마이크 트라웃을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일본에 우승기를 안겼다. 대회 MVP(최우수선수)가 된 것은 물론이다.
오타니는 일본어로 이도류(二刀流), 영어로 투웨이(Two-Way)라고 표현하는 투타(投打) 겸업의 스타임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투수와 타자의 겸업, 오른팔 투구와 왼팔 타격, 실력과 인성의 겸비, 현실 인간과 만화 주인공의 교차, 돈은 벌고 쓰레기는 줍고 등 매체마다 그에 대한 수식어가 차고 넘쳤다. 그는 미소년 같은 얼굴에다, 193㎝의 키와 95㎏의 체중으로 기골이 장대하며, 모범적인 인성과 팬 서비스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삼성그룹은 2015년 11월 25일 로그인 화면(모든 임직원이 출근하여 컴퓨터를 켜면 처음 나타나는 화면)에 당시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돌풍을 일으킨 오타니 쇼헤이가 고1 때 만든 만다라트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필자는 이번 대회에서 오타니의 매너를 유심히 보았다. 지난 3월 9일 WBC 일본과 중국 경기에 출전한 오타니는 1회말 3번 타자로 나와 볼넷을 얻었다. 다가온 배트보이가 방망이를 집어 들자 오타니는 자신의 장갑과 보호대를 차곡차곡 벗어 건네주며, 미소와 함께 살짝 등을 두드려 주었다. “고마워”라고 하는 듯싶었다. 이튿날 한·일전에서도 오타니는 3회말 자동고의 볼넷을 얻었는데, 그때도 배트보이에게 똑같이 대했다.
그런 미담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8월 15일 오타니는 시즌 39호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다가 한 사람과 먼저 하이파이브를 했다.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아닌 LA에인절스 볼보이였다. 볼보이와 하이파이브하고 배트보이를 토닥여 주면서, 그는 야구장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온전히 사로잡아 버렸다.
필자는 50년간 야구경기를 보았지만 그렇게 볼보이나 배트보이를 배려하는 선수는 처음이었다. 국내에서 그나마 근접한 매너를 지닌 선수는 필자의 기억으로 이만수, 이승엽, 이정후, 원태인 정도뿐이다.
두 가지 느낌이 들었다. 역시 오타니는 소문대로 상대가 누구든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구나, 그리고 강렬한 승부의식을 지녔으면서도 마음에 여유가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오타니는 WBC 기간에도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고 먼저 칭찬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 스타임을 재확인했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개막일인 3월 8일 243만명에서 3월 18일에는 368만명을 돌파했다. 결승전 직후에는 425만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인 중에도 “일본이 우승한 것은 싫지만, 오타니가 잘한 것은 좋다” “일본 남자에게 반할 줄이야” “짜증날 정도로 완벽한 인간이라 그저 부럽다” 식의 언급이 많았다. 오타니의 MBTI는 ISFP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오타니는 매너 이전에 선수로서의 기량이 너무 뛰어나다. 8년 전 열린 ‘2015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 12’ 대회에서 두 번의 한·일전에 모두 선발로 나온 오타니의 투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불 같은 강속구로 한국 타자들을 농락했다. 총 13이닝을 던져 안타는 3개만 맞고, 삼진은 21개를 잡고, 무실점을 기록했다. 당시 한국팀 이용규 선수는 “직구가 시속 160㎞로 들어오는데, 내가 말할 레벨이 아닌 최고였다”면서 “큰 폭으로 떨어지는 포크볼이 시속 146㎞로, 한국 투수들 직구보다 더 빨랐으니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이듬해인 2016년 11월 23일. 삿포로돔에서 열린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니혼햄 소속인 오타니는 시속 165㎞라는 신기록을 내기도 했다. 당시 일본 해설자들은 “넋을 잃겠다. 해설을 못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투수로서 시속 160㎞가 넘는 광속구(光速球)를 수시로 던져대며 지난해 15승9패를 기록했고 방어율은 2.33으로 전체 4위를 기록했다. 엄청난 성적이다. 그런데 타자로서도 0.273의 준수한 타율에다 홈런을 34개나 치면서 4위에 올랐다. 2022년의 기록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15승(투)-30홈런(타)’인 동시에, ‘규정이닝(투)-규정타석(타) 동시달성’ 기록이었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한 2018년 신인왕을 받았고, 2021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만장일치 아메리칸리그 MVP(최우수선수)가 되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다.
‘좋은 생각에 좋은 선수’
오타니를 지켜보면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 제조업이 떠올랐다. 예전 도요타자동차의 다카오카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공장 내부에 크게 걸린 ‘よい品 よい考 (좋은 제품 좋은 생각)’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좋은 생각이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당시 일본 제품은 완벽한 품질로 유명했으니까. 1994년생인 오타니는 자기가 태어나기 직전 일본 제조업의 혼(魂)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했다. ‘좋은 생각에 좋은 선수’ 말이다.
우리는 야구를 왜 좋아하는가. 야구는 제조업인가, 물류업인가, 서비스업인가. 선수 입장에서는 최선의 기량을 선보임으로써 관중이나 팬에게 최대의 만족을 주는 게 본질이 아닐까. 특히 국가대항전이라면 몸으로 무엇을 보여주기 전에 ‘좋은 생각’부터 준비해야 한다.
WBC에서 참사를 당한 한국팀의 어느 선수는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계속 말했다. TPO(시간·장소·경우)에 대한 개념이 모자란다. 국내 경기에서야 ‘팬’이지만, WBC는 국가대항전이라 당연히 ‘국민’이다. 야구를 모르는 할머니도, 주부도 국가대항전이기에 본다. 2루 베이스에서 세리머니를 한다고 발을 떼었다가 죽는 희대의 웃픈(웃기지만 슬픈) 참사가 빚어진 것이나, 올림픽 경기에 벤치에서 질겅질겅 껌을 씹는 모습을 노출한 것은 조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오타니는 WBC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하면서 역시 남달랐다. 그는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 3회 기습 번트를 대 안타를 만들었다. 슬러거(Slugger)로서는 뜻밖의 행동이었다.
오타니는 “기습번트에 자존심? 난 자존심 같은 것 없다. 특히 일본팀의 승리보다 앞서는 자존심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인들은 17년 전 일본의 천재타자 스즈키 이치로(49)가 했던 “앞으로 30년 동안 한국이 일본을 이길 생각을 못하게 만들겠다”는 도발적인 발언을 기억한다. 이치로는 그 말 한마디로 상당수 한국인 팬들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런다고 일본의 위상이 더 올라가는가. 그와 비교하면 오타니는 이번 WBC에서 사뭇 다르게 말했다.
오타니는 지난 2월 17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전에도 훌륭한 팀이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선수들을 정말 좋아한다. 메이저리그에도 한국선수들이 있는데 다들 좋은 선수들뿐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경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도 “일본도 우승했는데, 아쉽게 탈락한 한국과 대만도 ‘다음 기회에는 우리도’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말 얄미울 정도로,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말이다.
그에 비해 “이번 대회에서 오타니에게 던질 곳이 없다면 아프지 않을 곳을 맞히겠다”는 어느 한국팀 투수의 발언은 경기장 밖에서까지 완패하는 초라함이 되고 말했다.
전기기사인 체코 투수에 대한 존경
일본 대표팀은 지난 3월 17일 4강전이 열리는 미국 마이애미에 도착했는데, 공항에서 나오는 오타니의 모자에 일본이 아닌 체코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일본은 3월 11일 체코전에서 10 대 2 승리를 거두었지만, 오타니는 본업이 ‘전기기사’인 체코 투수 온드리제 사토리아에게 3구 삼진을 당했다. 오타니는 소셜미디어(SNS)에 체코팀 사진과 함께 ‘Respect(존중)’라는 단어를 남겼다. 사토리아와는 경기를 마친 뒤 따로 만나 사인공과 배트를 선물했다.
오타니는 “실력과 관계없이 체코 선수들이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는 점에서 존경심을 느꼈다”고 밝혔다. 체코는 나라 전체가 감격하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탈리아를 상대한 뒤에도 “(LA에인절스 동료인) 플레처에 한정하지 않아도 좋은 타자들이 많았다고 생각했다”고 경의를 표했다. 오타니는 경기장 안팎에서 자신의 말로 전 세계 사람을 팬으로 만들어 버렸다. 일본 프로야구도 잠시 경험했던 김태균 야구해설위원은 “오타니는 슈퍼스타가 아니라 우주스타 대접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타니는 3월 20일 멕시코와 준결승전에서 4 대 5로 뒤지고 있던 9회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선두타자로 나와 번개 같은 스윙으로 우중간 2루타를 날려 6 대 5 역전승의 기틀을 만들었다. 1루를 밟기 전에 헬멧을 벗어던지고 2루 베이스에서 포효하면서 동료들을 향해 반드시 이기자는 독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과의 결승전을 앞두고도 “우선은 즐기는 마음을 가지고, 반드시 이긴다는 마음을 가지고 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야구선수들에게 “기량 측면에서 오타니를 벤치마킹하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오타니는 어릴 때부터 싹이 달랐다. 스포츠맨 경력이 있는 부모·형·누나의 유전자를 따라서인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속 110㎞의 초(超)초등학교급 강속구를 던졌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처음으로 장외홈런을 때렸다. 체력과 훈련방법이 어릴 때부터 남달랐는데, 괜히 그대로 따라 하다가 자기 스타일만 망친다.
물론 이런 점은 있다. 가령 오타니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 처음에는 오른 다리를 들고 치는 레그킥 타법을 고집했다. 하지만 비디오를 분석해 보니 빠른 공에 신속하게 대처하려면 레그킥 타법을 버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타격 폼을 수정했다.
일부 한국 타자들은 투수들의 공이 느린 국내 리그에 적응되어서인지, 국제 경기에 나가서도 레그킥을 고집한다. 답답해 보인다. 그런 점은 오타니를 따라 해도 좋을 듯싶다. 또 오타니는 고교 시절 마운드에서 와인드업을 했으나, 니혼햄부터는 세트포지션에서 공을 던졌다. 제구가 흔들리고 공 스피드가 줄어들 법한데, 나름의 방법으로 잘 이기는 듯했다. 연구해볼 만하다.
인간성 좋은 사람이 운도 좋다는 생각
그보다도 한국 선수들이 배워야 할 대목은 바로 경기장 안팎에서 오타니의 ‘생각’, 즉 야구를 대하는 태도와 매너라고 할 수 있다. 고교 시절 스승인 사사키 히로시 감독은 “오타니가 고교 시절 전체 교과목 평균이 85점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면서 “기숙사 청소도, 글짓기도, 제출물도 제대로 다 하는 등 인성이 훌륭했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그랬을까. 오타니는 하나마키히가시(花卷東)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다라트(Mandalart·연꽃 기법) 계획표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실천하고 있다. 만다라트는 일본 마쓰무라 아스오가 개발한 사고 기법인데, 활짝 핀 연꽃 모양으로 아이디어를 확산해 나간다. 큰 정사각형 한가운데 핵심목표를 적고, 8개의 세부목표를 빙 둘러 가며 적는다. 다시 퍼져 나간 각각의 정사각형 안에는 8개씩의 실행계획을 적는다.
고1 때 오타니의 최고 목표는 일본 프로야구 8구단에서 드래프트 1순위가 되는 것이었다. 야구 기량에 대해 세밀하게 적은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드래프트 1순위가 되려면 운(運)이 필요하고 그 운은 인간성 좋은 사람이 되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했다는 점이 놀랍다. 이를 위해 사랑과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고, 예의와 배려와 감사가 몸에 배어야 한다는 다짐도 했다.
눈에 띄는 것은 쓰레기 줍기다. 요즘도 오타니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쓰레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는다. 그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운이 없어서”라고 치부한다. 오타니라면 아마 “길에 있는 쓰레기부터 먼저 주워 보세요”라고 충고할 것이다.
그라운드 매너도 미국 선수들을 놀라게 한다. 타석에서 바닥에 떨어진 상대방 포수 마스크를 집어든 뒤 흙을 털어서 건네준다. 스프링캠프에서 타격 연습을 마치면 직접 공을 주워 바구니에 담는 등 뒷정리를 깔끔하게 한다. 투수로서 주자를 태그아웃시키면 손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마운드에서 상대 선수의 부러진 배트를 직접 주워서 배트보이에게 건네준다. 물론 이때 공을 던지는 오른팔 보호를 위해 반드시 글러브를 벗어 왼손으로 줍는다. 심판의 명백한 오심(誤審)이나 다소 불쾌할 수 있는 부정투구 검사에도 담담하게 웃기만 한다. 자기가 친 파울볼이 더그아웃이나 관중석으로 빠르게 날아가면 소리를 질러 조심하라고 한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동료들이 음담패설 할 때면 슬며시 빠져나간다고 한다.
주역(周易)에는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란 말이 나온다.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넉넉한 경사가 있다는 뜻이다. 성경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좋아하던 계란도 식단서 제외
자기 관리도 철저하다. 오타니는 유년시절부터 계란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2020년 11월 신체검사를 통해 계란이 몸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때부터 식단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스쿼트, 바벨 런지, 힙스러스트,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플라이오메트릭 등을 이용한 훈련도 다른 선수보다 성실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WBC에서 한국팀의 참사 요인에 대해 여러 언급이 있지만, 무엇보다 ‘좋은 생각’이 아쉬웠다. SBS 이순철 해설위원은 “요즘 국내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보면 WBC 참사에서 교훈을 얻겠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스포츠서울 장강훈 기자는 “야구인 스스로 ‘존경받을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는지가 처참한 성적보다 먼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존경하는 사람이 실패하면, 비난보다 격려의 목소리가 크다. 세계 야구의 흐름은 우월한 기술이 아닌 대중과 공감이다”라고 지적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와 SK 감독을 지낸 이만수 홈런왕도 “어린 선수들에게 몸으로 아무 생각 없이 100번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한 번 깊이 생각하고 자기 약점을 정확히 이해하라고 한다”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즐거움을 느낄 때 선수들 기량은 훨씬 발전한다”고 말했다. 아마 고등학교 1학년 오타니의 ‘좋은 생각’에서 배워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궁금하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오타니도 은퇴한다. 세계 야구사에서 100년이 아니라 1000년 만에 등장한 만화 주인공 같은 인물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