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서서 일할 각오로”… 미쉐린 2스타 셰프의 고언
“12시간 서서 일할 각오로”… 미쉐린 2스타 셰프의 고언
레스토랑 ‘스와니예’ 이준 셰프, 요리사 꿈꾸는 학생들 멘토로
< 조선일보, 남정미 기자, 2023.05.17. >
“이름이 어렵죠? 파스타 굵기가 1㎜면 카펠리니(이탈리아어로 작은 머리카락이란 뜻), 그보다 더 얇으면 카펠리 단젤로(천사의 머리카락)…. 근데 밀라노 갔을 때, 현지인들한테 물어보니 그 사람들도 잘 모르더라고요(웃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눈치를 많이 보는데, 내가 먹은 게 뭔지 이름을 아는 것보단 그 느낌을 아는 게 중요해요.”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오프 컬리’에서 ‘미쉐린 2스타 요리사’ 이준(40) 셰프가 참나물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카펠리니 면을 집어들자, “와~”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날 미쉐린 스타 셰프의 손님은 월드비전이 선정한 요리사를 꿈꾸는 8명의 중·고등학생.
이번 행사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과 컬리가 ‘미식을 통한 나눔 가치 확산’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미쉐린 스타 셰프가 아이들과 짝을 이뤄 요리를 시연하고, 함께 맛보며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 3대 요리학교인 미국 CIA 요리학교를 졸업한 이준 셰프는 유학 시절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퍼세(per se)’를 거쳐, 2015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스와니예’를 오픈했다. 2017년 미쉐린 별 1개를 시작으로 지난해엔 미쉐린 별 2개(3개 만점)를 받은 그야말로 ‘스타’ 셰프. 별 2개는 ‘요리가 훌륭하며, 멀리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을 뜻하는데, 지난해 국내엔 총 8개의 식당이 미쉐린 2스타를 받았다(3스타는 2곳). 미쉐린 서울 가이드는 스와니예를 ‘이노베이티브(창작 요리)’ 식당이라고 분류했다. 이준 셰프는 이를 좀 더 쉽게 풀어 ‘서울 음식’이라고 정의한다. “한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비빔밥, 불고기다. 그러나 매일 그것만 먹고 사는 서울 사람은 없다. 내가 오래 산 곳이 서울이며, 그래서 나는 서울 요리를 한다. 밥과 김치, 피자와 햄버거 사이를 담고 싶다.”
스와니예 이준 셰프가 요리사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현실적이면서도, 요리사란 직업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요리사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단 점에서 예술의 영역에 가깝지만, 이를 남에게 굉장히 헐값에 판단 점에선 다른 예술과 차이가 있다. 내 요리를 돈 받고 팔 수 없으면 취미다. 돈 받고 판다는 건 평가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음식을 돈을 더 주고 먹고 싶은 사람이 많을수록 내 가치는 올라간다.”
“근무 환경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12시간은 서서 일해야 한다”
“평발이면 그것부터 고쳐라”
“허리 디스크도 잘 터진다. 자기 관리 잘하면서 똑똑하게 일해야 좋은 레스토랑이 나온다.”
‘요리의 철학’이란 말에 대해서도 소신 발언을 했다.
“어떤 요리를 만들면서 ‘이게 내 철학이 담긴 요리야’라고 하는 건, 거칠게 말해 ‘나 쪼들리니까 건들지 마’와 같다.
철학은 자신이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쌓이는 것으로, 남들이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렇게 힘들고, 다치고, 욕 먹으면서도 왜 하느냐다. 여기에 대한 답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그의 답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즐거움”이다. “어릴 때부터 뭐든 분해하고 조립하는 걸 좋아했고, 중학교 때부터 직업으로서의 요리사를 꿈꿨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의외로 어렵다. 지구 안에서 어디를 가도 먹는 걸로는 대화가 된다. 내가 가진 기술은 게임처럼 어떨 땐 지더라도, 경험치가 계속 쌓인다. 스스로의 성장을 보는 게 즐겁다.”
이 셰프는 이날 마지막으로 “요리사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란 걸 강조했다. “여러분이 놀고 싶은 모든 날, 국민도 놀고 싶어한다. 내가 즐겁지 못하면 남을 즐겁게 하는 요리를 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하고 싶은 건 다 해봐라. 기회가 된다면 최대한 즐겁게 놀아라.” 학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