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걷기/3. 강화나들길

서해랑길 강화 102코스, 103코스, 강화나들길 16코스, 18코스 _ 2023.06.03 (토)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3. 6. 4. 12:34

1. 일시 : 2023. 6. 3 (토)   08:30 - 19:30   (11시간)

     * 휴식시간 : 1시간 포함

 

2. 걷기 거리 : 파란색 줄친 구간  36km

 

 【 1구간 】   외포여객터미널  창후선착장   13.5 km   : 서해랑길 102코스,  강화나들길 16코스   

 【 2구간 】 창후선착장  평화의 전망대  13.1 km         : 서해랑길 103코스 

 【 3구간 】 평화의 전망대  강화화문석 마을  4.0 km  :  이동

 【 4구간 】 평화의 전망대  강화역사박물관  10.0 km  : 강화나들길 18코스 

 

3. 일기

 

날씨 : 맑음 (기온 최저 17도, 최고 28도)

  * 더운 날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그나마 조금 나았음

천문 : 일출 05:13, 일몰 19:51

 

 

 

4.  강화나들길 걷기 

 

 - 오늘은 외포리 정포항에서 강화의 북서쪽 지방을 시계 방향으로 걸어서 북한과 지척인 평화전망대까지 걸어 갔다가,

    다시 강화화문석 마을까지 걸어가는 길로서,  서해랑길 102코스, 103코스와 강화나들길 16코스, 18코스이다.

    거리는 아주 길지는 않았으나,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여 쉴 수 있는 장소에서 오래 쉬었고 천천히 걷다보니 시간이

    꽉 차게 걸었던 것 같다.

- 처음 나오는 강화나들길 16코스이자 서해랑길 102코스는 <서해황금들녁길>이라는 곳으로 넓은 평야에 논과 집들이 어우러진 곳인데, 길은 국수산을 지나면 바닷가 해변을 따라 종점까지 걷게 된다.

 

- 다음 길은 서해랑길 1,800km의 대단원이 마무리되는 103코스 평화전망대이다. 창후항을 떠나 양사면사무소까지 농로와 마을길을 걷는다.  양사면사무소 뒷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성덕봉을 지나고 별악산 정상에서 북한 땅을 바라다 본다. 별악산에서 하산하여 평화전망대를 가는 데 입구에  ‘남북 1.8 평화센터’가 있는데, 이곳은 북한 황해도 연백군과 1.8km밖에 안 떨어져 있다고 해서 1.8 평화센터라고 한다.   북한을 지척에 두고 있다 보니 모두 실향민들이나 관광객들이 항상 많이 오는 곳이다. 둘레길에서 마주친 사람은 하나도 없어도 여기오니 어른이나 어린이들 포함하여 관람객들이 많다.

 

엊그제 북한 동창리에서 위성 발사를 빙자한 미사일 실험이 있었다. 북한을 생각하면 같은 민족, 평화와 통일 등 오래된 생각들이 밀려 오나, 동시에 민족이 아닌 헌법 가치에 입각한 국가의 개념, 인권 문제의 중요성 등이 현재 시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문제일 수 있어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 평화전망대를 지나 강화나들길 18코스 < 왕골공예마을 가는 길>까지 4km를 걸어서 이동하였다. 강화나들길 18코스는 그냥 전형적인 강화마을과 새로 생긴 전원주택촌들로 가득하다. 해질무렵 고인돌 공원에 도착하여 길을 마감하고 강화터미널로 돌아왔다.

 

 - 영국 웨일스 시인인 로널드 스튜어트 토머스는 여행이란 목적지에 잘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노래하였다.   꿀벌이 벌통을 나서서 집에 돌아올 때에 무거운 꿀과 꽃가루를 짊어지고 돌아오듯이, 사람도 그 여행을 통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나도 오늘 길을 걸으며 어떤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돌아왔을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5. 구간별 풍경

 

 

 

 

 【 1구간 】   외포여객터미널 → 창후선착장   13.5 km   : 서해랑길 102코스,  강화나들길 16코스  

 

- 걸포북변역에서 강화가는 3000번 버스를 기다린다. 1번 출구로 나와야 하는데, 반대방향 2번 출구로 나와 다시 돌아갔다.

- 강화버스터미널에서 8시 정각에 31A 버스를 타고 오늘의 시점인 외포리로 향한다. 보문사 가는 버스라 그런지 보기 드물게 주말 아침 농촌버스에 서서 가는 사람들이 있다.

- 외포리 앞 상가들, 한가하다.

- 길은 망양돈대를 거쳐가지 않고 큰 도로를 따라 간다.

- 언제가 한 번 들렸던 카페 앞을 이제는 걸어서 지나간다.

- 큰 길을 건너서 강화유스호스텔(휴업 중) 안으로 들어선다.

- 유스호스텔 입구에서 왼쪽 국수산 숲길로 들어선다.

- 덥기 시작하였는데 그나마 그늘이 있어 낫다.

- 숲길은 항상 좋다.

- 드디어 황청저수지를 보며 내려간다.

예수의성모 여자관상수도회

1995년 3월 서울대교구 문호영 신부에 의해 설립된 한국 천주교 최초의 방인 관상 봉쇄 수도회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예수님 가르침과, '현대에의 적응'이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 정신과 시대적 요청에 따라 근본적인 가치를 변질시키지 않으면서 변천해가는 시대의 요구에 최대한 적응하며, 과거 전통적인 관상(봉쇄) 수도생활의 거룩한 유산과 영성의 장점들을 수용하면서, 동양적 한국적인 문화와 심성을 토착화하는 것을 지향한다.

 

- 소나무 밑에 앉아 있는 사람은 오늘 길에서 처음으로 만나 인사한 마을 사람이다.

- 수도회 앞 정원이 예쁘게 관리되고 있다.

 

황청저수지

인천 강화군 내가면 황청포구로에 위치한 강화도 황청낚시터는 1993년에 축조된 계곡형 저수지로서 수면적은 약 2만3천 여평이고 평균수심은 2.5m~4m이며 최고수심은 15m가 넘고 주변경관이 깊은산과 오랜된 노송들로 이루어져 있어 아늑하고 조용하며 산으로 올라가 내려다 본 모습은 넓은 바다와 아름다운 섬이 보이는 좋은 낚시터이다. 

- 보기 드물게 황토가 드러나 있는 밭의 모습 - 요새는 잡초 뽑을 사람이 없어 대부분 검은 비닐을 치고 작물을 심는다.

- 강화에 와서 인삼밭을 처음 보았다.

- 용두레 마을회관

- 마을을 벗어나 이제부터는 종점까지 바닷가 방조제를 따라 걷는다. 왼쪽은 석모도 앞 바다, 오른쪽은 간척된 평야이다.

- 건너편에 석모도 상주산이 보인다.

계룡돈대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구조물.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계룡돈대는 경상도 군위(軍威)의 어영군사(御營軍士)들이 축조한 돈대로, 강화 53돈대 중 유일하게 축조연대가 표시되어 있다. 30m×20m의 직사각형 모양이며, 한 면은 석축 높이 2m 정도에 길이가 30m이고, 3면은 석축(石築)되어 해변을 향해 정면으로 외적을 볼 수 있다. 망월(望月)돈대와 함께 직접 영문(營門)에서 관할했다. 석축 하단에 ‘강희18년 군위어영 축조(康熙十八年軍威禦營築造)’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강희 18년은 1679년이다. 

- 내가면 구하리 평야. 멀리 별립산(416m)이 보인다.

- 방조제를 가다 보면 여러 모습의 길이 나온다.

- 까마귀가 나무 위에 앉아 있다.

- 새의 비상.

- 바닷가 함초 식물

- 방조제 안쪽으로 고려저수지로 이어지는 내가천이 흐른다.

 

망월돈대

망월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진무영에서 직접 관할하는 영문 소속 돈대였다. 방형구조로 둘레 124m, 석벽의 높이는 180~300㎝이다. 대개 돈대들이 해안가 높은 지대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망월돈대는 갯가 낮은 지대에 설치됐다. 그래도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이 없어 경계초소로 부족함이 없다. 남쪽으로 계룡돈대, 북쪽으로 무태돈대가 있다.

 

- 돈대 위에는 , 일단의 5-60대 남성들이 무리지어 이동식 의자 탁자를 놓고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즐기듯이 공공장소에서 무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돈대를 한참 지나서 멀리서 사진에 담아 본다.

- 제방길의 모습이 다채롭다. 금계국 꽃길에 아까시나무 숲길이 기다리고 있다.

- 갈대밭을 헤치고 간다.

- 다시 금계국과 아까시나무.

- 해당화 피는 길을 지나간다.

- 흰장미도 있다.

- 쥐똥나무 꽃 향기가 진하다.

- 제방길이 끝나고 창후리로 접어 들었다.

인천해양경찰청 창후리출장소

강화지역 무인 출장소 중 하나로 인근에 선착장과 여객터미널이 있어 해상치안 대비가 요구되지만, 안전센터에서 적어도 30분은 걸려 사고 발생 시 초동대처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인력 부족이 심각해 출장소를 ‘초소’ 개념으로 운영하면서 안전센터에서 구조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 2구간 】 창후선착장  평화의 전망대  13.1 km         : 서해랑길 103코스 

 

 

무태돈대 (無殆墩臺)

무태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인화돈대·광암돈대·구등곶돈대·작성돈대와 함께 인화보의 관할 하에 있었다. 방형 구조로 둘레가 145m, 석벽의 높이는 120~530㎝이다. 창후리 포구에서 북쪽 길로 간다.

양사면 (兩寺面)

양사면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면이다. 강화군 최북단에 위치한 안보의 요충지로, 북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지역(개풍군과 1.8 km)이다. 수도작이 주종을 이루고 많은 수의 국방유적이 분포해 있다.  양사면은 1914년 일제강점기에 서사·북사 양개면을 병합, 양사면으로 개칭하였다.  

 

- 무태돈대를 지나면 철책선을 따라 북쪽으로 길을 간다. 멀리 보이는 다리는 교동도로 가는 연육교이다.

- 멀리 교동도로 가는 차들이 많아 길이 막히고 있다.

- 오른쪽 농로를 따라 간다.

- 이제는 별립산 뒷쪽을 보면서 길을 간다.

- 도로변 갓길로 서해랑길 103코스가 이어진다.

- 주민대피소이다.

- 체육공원을 겸하고 있어 여기서 쉬어 가기로 한다. 점심 먹고 쉬고 있는데,  동네 할아버지가 오더니 거의 30분 이상 본인 얘기를 하여 들었다. 본인 무릎 아픈 이야기, 625때 고생한 이야기 등등 끝이 없었다.  나이 들면 얘기를 많이 하고 싶은 심정에 공감하고 있어 가급적 많이 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 샤스타 데이지 꽃은 이제 우리나 꽃처럼 어디에나 심어 놓고 있다.

- 교산2리 경로당

- 1893년 강화에 첫 번째로 설립된 개신교 교회인 강화 교산교회이다.

- 선상 세례와 강화도 기독교 포교의 역사

   강화도는 고려시대 대몽항쟁을 비롯해 조선시대 병자호란, 병인양요·신미양요 등 외세 침략의 아픔과 이를 견뎌낸 민족적 자긍심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이 섬에 서양의 종교를 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화도 첫 선교는 1893년 7월 영국 성공회 소속 신부 워너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1년 가까이 강화도로 통하는 물길을 답사한 뒤 선교를 결심했다.  하지만 당시 도성 내 외국인 거주가 금지돼 있어 관문인 진해루 바깥의 갑곶 나루터에 예배소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워너는 이곳 나루터와 장터에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보육원을 세우는 등 선교 활동을 펼쳤다. 외지인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지만, 선교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했다.
   1892년 미국인 선교사 존스는 강화도를 방문했다가 입도(入島)가 허용되지 않아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이듬해 인천 제물포에서 만난 이승환의 요청에 따라 그의 어머니에게 세례를 행하기 위해 다시 강화도로 향한다.  이때 이승환은 한밤중 어머니를 업고 바닷가로 나가 존스가 있는 배 위에서 세례를 받도록 했다. 이른바 '선상 세례'를 기점으로 전도가 활발히 이뤄지며 강화도 첫 감리교회인 교항교회(현 강화교산교회)가 세워진다.

- 양서면 파출소

- 양서면사무소

- 면사무소 도달하기 전에 마을 골목을 지나 뒷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 장군바위가 나오더니  시야가 트인다.

- 215m 높이의 성덕산 정상을 지나간다.

- 정상 지나 있는 정자는 낡았다.

- 다시 별악봉을 향해 길을 간다.

- 계단 갯수가 70여개가 된다고 하는데 세어보지는 않았다.

- 강화에 평야가 많은 것은 고려시대 이래로 간척된 곳이 많기 때문이다. 별악봉 정상에서 남쪽 강화평야를 본다.

- 북한의 개풍군 전경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바로 지척이다.

평화전망대

강화평화전망대는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2.3km)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민족 동질성 회복과 평화적 통일의 기반구축을 위한 문화관광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민통선북방지역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되어 2008년 9월 5일 개관하였다.  전방 약2.3㎞ 해안을 건너 예성강이 흐르고, 좌측으로는 황해도 연안군 및 백천군으로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고 우측은 개풍군으로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송수신 탑,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어 타 지역에선 보기 힘든 북한의 문화생태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남북1.8평화센터 

‘남북 1.8 평화센터’는 2022년 북한 주민의 일상 생활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 부지에 사업비 21억원을 투입해 지상 2층(연면적 720㎡) 규모로 건립됐다. 1.8은 북한과 거리가 1.8km 떨어져 있다는 데서 따온 말이다. 1층에는 강화도의 생태·문화·역사를 공감할 수 있는 복합 전시공간이, 2층에는 북한음식 전문식당이 마련됐으며, 옥상에는 한강 하구 너머 북한을 육안으로 조망할 수 있는 쉼터로 조성되었다.

조강(祖江)

조강이라 불리는 이곳은 북한강과 남한강을 합친 한강과 그 한강 물을 이끌고 온 임진강, 그리고 북한 개성을 지나온 예성강까지 받아들인 곳이다.  그래서 조강(祖江)을 '할아버지 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강하류는 오래전 선사시대 이래 사람들이 정착해 살기 좋은 평야와 바다로 쉽게 나갈 수 있는 곳이기에 부족에서 국가단계에 들어서면서부터 치열한 영역쟁탈전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조강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에 각각 조강리가 있다. 북한 개풍군 풍덕 조강리와, 김포 월곶면 조강리가 바로 그것이다. 

 

 

 

 

 

 【 3구간 】 평화의 전망대  강화화문석마을  4.0 km  : 강화나들길 18코스 길까지 이동

 

-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다. 걸을 수 있는 보도가 있어 다행이다.

- 50분 정도 걸어서  화문석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 4구간 】 강화화문석마을   강화역사박물관  10.0 km  : 강화나들길 18코스 <왕골공예마을 가는 길>

 

화문석문화관

강화 화문석 문화관은 동아시아 상류문화의 상징이었던 강화 화문석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체계적으로 전시하여 화문석의 문화적 위상과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강화 왕골 공예기술의 보존. 전승. 연구의 구심점이 되는 전시관이다. 강화 화문석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어 100여년전 조선왕실로 부터 화문석의 도안을 특수하게 제작하라는 하명을 받고, 당시 백색자리의 생산지인 강화군 송해면 양오리 한충교씨가 연구한 결과 도안에 의한 화문석 제작에 성공, 다양한 도안개발과 제조 기술개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 농가에서 사슴을 키우고 있다. 

- 강화나들길 18코스 중간 부분 안내 표지판을 찾았다.

- 집들이 밀집해 있는 데 오가는 사람들은 잘 안 보인다.

- 양오저수지

- 저수지의 풍광이 좋아 전원주택이 참 많이 자리잡고 있다.

- 양오리 마을을 나오니 장정리 도로길이 나온다.

- 인천대학교 검도수련관 입구

- 하점2리 경로당

- 오후 7시가 넘었다. 하점면 석조여래입상이나 오층석탑은 해가 곧 지고 있고 시간이 없어 아쉽게도 갈 수 없다. 

- 발걸음을 재촉한다.

- 다시 인삼밭이다.

- 7시10분이다. 해가 떨어지고 있다.

- 이 학은 사람이 지나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 드디어 마지막 목표지점 강화자연사박물관에 도착하였다. (19:16)

 

강화 자연사박물관

강화고인돌유적지 부근에 위치한 이곳은 강화역사박물관과 가까이에 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 지구를 구성하는 광물과 생물에 대한 탐구를 돕기 위해 2015년에 문을 열었다. 강화자연사박물관 로비에는 2009년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에서 발견되었던 길이 14.5m, 무게 20톤의 향유고래가 전시되어 있다.

강화 고인돌공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는 곳이다. 무게가 수십 톤 이상인 덮개돌을 채석하여 운반하고 무덤에 설치하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고인돌은 당시 지배층의 권력과 경제력을 상징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강화군에는 하점면과 양사면에 걸쳐 40여 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탁자식 고인돌을 볼 수 있다. 탁자식 고인돌이란 지하에 돌방을 만들지 않고 시신을 노상에 안치하고 사면을 판석으로 가린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얹은 형태를 말한다.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의 고인돌은 우리나라의 탁자식 고인돌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위엄 있는 탁자식 고인돌의 형태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부근리 고인돌은 주변의 여러 고인돌과 함께 2000년 12월 고창, 화순 고인돌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강화군에서는 부근리 일대에 공원을 조성하고 청동기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시설들을 설치하여 방문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 (江華 富近里 支石墓)

강화군 하점면 부근에는 4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중 부근리 고인돌이라 부르는 규모가 큰 탁자식 고인돌이 1964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전체높이는 2.6m이며, 덮개돌은 길이 6.5m, 너비 5.2m, 두께 1.2m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이 고인돌에 대한 발굴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인근 삼거리에 있는 고인돌에서 무문토기조각과 간돌검(마제석검), 돌가락바퀴(방추차)를 비롯한 유물들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삼거리 유적과 비슷한 유물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 근거가 희박한 1932년 박헌영의 '강도지'에 근거하여 비석을 세워 놓고 있다.

- 이왕 늦어서 저녁을 마치고 출발을 하니 밤 9시이다.  보름달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