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사람 이야기 _ Interview

행복연구센터장 최인철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3. 6. 9. 04:13

 ① 행복 천재들의 행복의 기술

 

 

 

< 조선일보 TopClass, 김민희 기자, 2023년 06월호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행복연구센터 센터장 최인철은  미시간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행복의 인식에 대한 저변 확대에 매진한 공을 인정받아 2017년 제8회 홍진기 창조인상을 받았다. 40만 독자가 선택한 《프레임》을 썼으며, 《굿 라이프》 《아주 보통의 행복》 등의 저서를 펴냈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10년 행복연구센터를 열었다. 행복을 연구한다니, 당시로선 생소한 개념이었다. ‘행복학’의 실체가 과연 있기나 할까. 행복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후 14년, 센터는 크고 작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일선 중학교를 중심으로 ‘행복교과서’를 보급하고, 교사들이 학교에서 행복학을 가르칠 수 있도록 돕는 ‘대한민국 행복교육 프로젝트’를 이어오는가 하면, 2017년부터 카카오 같이가치 팀과 함께 한국인의 행복을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대국민 실시간 행복 연구’인 셈이다. 이 결과를 종합해 매해 《대한민국 행복지도》로 펴내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해에는 스타트업 ‘굿라이프랩’을 창업했다. 행복의 기술을 기업과 일반인에게 더 가까이 설파하기 위한 과감한 행보다. 굿라이프랩은 행복 검진 도구 ‘마음충전소 베터리(betterly)를 만들어 보급한다. 이 도구를 기반으로 행복에 유리한 점과 불리한 기질을 분석해 각 개인이 더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행복연구센터는 무엇보다 한국형 행복,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행복에 대해 말한다. 행복의 얼굴 역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 최인철 교수가 줄곧 들여다본 행복의 비밀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하나는 ‘행복의 평범성’, 또 하나는 ‘균형감’. 행복은 아주 보통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삶이야말로 행복에 가까운 삶의 유형이라는 의미다. 

 


- 행복은 선망의 대상이자 경계의 대상이다.
- 행복에는 어떤 상황에도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심리주의자의 기술’도, 쉽게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주의자의 기술’도 필요하다. 
- 행복을 추구하는 건 필요하지만 무조건 행복할 것을 강요하는 행복 운동에도 반대한다. 
- 결국 굿 라이프란 ‘기분 좋은 삶’과 ‘의미 있는 삶’이 균형을 이루는 삶이다. 

 


서울대학교에 있는 행복연구센터의 문을 여는 순간, ‘와~’ 하고 나지막이 탄성이 흘러나왔다. 행복한 느낌을 공간으로 풀어내면 이런 분위기가 되는 것일까. 나무의 상처라고 하는 옹이가 그대로 노출되는 부드러운 우드톤의 인테리어에서 편안함과 따스함이 전해졌다. 센터 내부를 둘러보다 책꽂이 한편에 놓인 액자 사진에 눈길이 머물렀다. 

 

행복하려면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공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야 행복해지는 건
아주 단순한 비결이에요. 하지만 이런 걸 전부 무시하면서
나쁜 환경에서도 마음 잘 먹는 것을 강조하고, 나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잘 견뎌내라고 합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행복이 너무 어려운 거죠.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공간을 바꾸고, 사람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교수님의 30대 사진이군요. 지금과 인상이 완전히 딴판인 걸요? 차갑고 예리해 보여요.
“가까운 사람들한테 그런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서른세 살에 서울대에 왔어요. 젊은 편이었죠. 열심히 연구해서 좋은 논문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늘 긴장 상태로 산 것 같습니다.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행복을 오래 연구해서 그런 건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인상이 부드러워졌다고들 하네요. 또 하나,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요. ‘교수님 행복하세요?’라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막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웃음).”

실제로도 더 행복해졌나요?
“나이 들수록 편안해지는 걸 느껴요. 우리 센터에서 진행한 조사 결과도 그렇습니다. 46개의 변수를 나이에 따라 분석해봤어요. 나이 들수록 대부분의 변수가 좋아지더군요. 자존감, 낙관성, 감사, 관대 등이 다 좋아졌어요. 남과 비교는 덜 하고, 물질주의를 지향하는 가치관도 약해집니다.”

《대한민국 행복지도》에서 나이 관련 데이터를 흥미 있게 봤어요.20~30대에 행복도가 가장 낮다가 점점 높아져서 60대 이상에서 최고치가 되더군요.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죽음을 의식하기 때문이에요. 점점 인생의 끝이 보이니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서 마음가짐을 바꾸게 되죠. 여행지에서도 그렇잖아요. 여행 마지막 날이면 최대한 재미있게 보내자고 하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면서. 죽음을 인식하면 목표가 바뀝니다. 더 이루기 위해 목표를 확장하는 삶에서 점점 내 마음을 즐겁게 유지할 수 있는 쪽으로 심리가 바뀌어요.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죽음을 대하는 마음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요.”

“죽음은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렇죠. 죽음은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에요. 나이 들수록 신체 기능이 안 좋아지고 죽음에 가까워지는데, 사람들에게 젊은 시절로 돌아가겠냐고 물으면 대부분 안 가겠다고 해요. 편집장님은 어떠세요?”

저도 지금이 더 좋습니다. 
“거봐요. 그건 마음의 변수들이 다 좋아지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왜 나이 든 사람을 안 좋아할까요? 나이 들수록 낙관적이고 긍정적이고 관대해진다면 그런 면을 갖춘 나이 든 사람을 좋아해야 되잖아요. 궁금해서 이 부분을 파고들어 봤습니다. 나이 들수록 보수적인 태도가 증가하는 이유가 커요. 인간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규범적 사고가 강해지죠. 가족과 잘 지내야 한다,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 이런 것들이 젊은 사람이 보기에는 답답하고, 강제한다고 여겨질 거예요.”

행복을 공부하면 더 행복해질까요.
“안 배운다고 덜 행복한 건 아니에요. 다만 행복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인지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내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죠. 건강과 몸에 대해 공부하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몸에 대해 안다고 바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몸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건강하지 않은 삶을 살 확률이 높아지죠. 인류가 몸에 대해 공부한 결과물을 공유하면서 많이 건강해졌고, 삶의 지혜로 남아 있잖아요. 행복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을 배우지 않으면 해가 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있죠. 어떤 생각이 행복에 도움이 되는지 공부하고 연구하면 그 결과가 쌓여서 개인뿐 아니라 사회가 공유하는 지식이 됩니다.”

14년간 행복 연구를 하면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는다면요.
“행복이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보통 많이 알면 복잡해서 길을 잃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 않아요. 행복의 기술은 아주 단순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입니다.”

행복에 대한 개념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가진 행복에 대한 오해는 ‘행복’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돼요. 행복에 대한 정의를 보면 30개국 중 24개국에서 ‘운 좋게 찾아오는 사건이나 조건’으로 일차적 정의를 내립니다. 옛날에는 자연재해와 질병, 권력자의 횡포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었잖아요. 그렇게 고통과 질병이 다반사인 세상에서 행복이란 우연히 예외적으로 찾아오는 자연의 축복과 건강, 권력자의 자애일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자연재해를 예측할 수 있게 되고, 심지어 인간이 개입해서 통제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면서 행복이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된 거죠. 과거의 행복은 하버드대 대니얼 길버트 교수가 쓴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Stumbling on happiness)》 같은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학위를 따듯 노력해서 얻는 목표처럼 관점이 변화했어요.”

행복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찾는 것이다?
“그렇게 바뀌어가는 거죠. 이런 관점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과거 행복의 개념으로 보자면 저절로 찾아오는 소소한 행복이 많았어요. 날씨가 좋고, 노을이 예쁘고, 오늘 이렇게 인터뷰 시간을 통해 깨달음이 있었다면 ‘찾아온 행복’이죠.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런 행복을 많이 놓쳐요. 우연히 찾아온 행복을 충분히 느끼기보다 추구하는 행복을 찾아 나서죠. 빨리 집에 가서 단어 하나라도 외워야지,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뭔가를 얻어야지, 하는 식으로. 그래서 중요한 건 ‘균형’입니다. 행복을 열심히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연히 찾아오는 행복을 충분히 만끽하기 위해 잠시 멈추는 것도 필요해요.”

교수님은 행복을 스펙트럼으로 바라봅니다. 다시 말해 1000명이 있으면 1000개의 행복에 대한 정의가 있다고 하지요. 행복의 본질이 과연 그런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행복에 대한 당위를 말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당위의 개념으로 받아들였어요. 다시 말해 ‘덕(德)’의 개념으로 설파했죠. 덕이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덕목이에요. 그런 것을 추구하는 상태를 행복으로 설명했어요. 다만 ‘행복(happiness)’이라는 말 대신에 ‘유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단어를 썼어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행복을 당위의 개념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대부분의 심리학자처럼 누군가의 요구나 제약, 구속 없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을 행복으로 볼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둘 다 포함한 개념으로 볼 수도 있겠죠. 아리스토텔레스에 가까운 행복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커피 마시고 케이크를 먹으면 기분은 좋지만, 그 돈으로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게 낫다고 볼 거예요.”

놀랍군요. 복잡계 사회로 갈수록, 문명화 시대로 갈수록 개인의 탄생과 함께 행복의 개념이 더 넓어진다고 여겼습니다만.
“확실히 개인의 시대가 오면서 행복에 주관성이 강해진 건 사실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개인의 주관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주관이 강해지면서 개인의 행복이 중요해졌죠. 과거에도 넓은 개념의 행복이 있었지만, 그때는 소수의 학자들만 행복에 대해 논의할 뿐 일반인은 참여할 기회가 없었어요. 지금은 달라졌죠. 저 같은 사람이 미디어에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도 누구나 댓글에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나는 이런 게 행복인데’라고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행복만큼 민주적인 게 없어요. 학위도, 교양 수준도, 문화적 지식도 필요 없고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곧 행복의 절대적 정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우리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는 건 같습니다.”

행복을 잘 느끼는 유형이 따로 있던가요.
“편집장님이 쓰신 책 제목인 ‘다정한 개인주의자’가 사실 행복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진 특성이에요. 개인주의적 특성이 있으면서 동시에 집단에 종속되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 따스한 사람. 나의 행복이자 보편적 행복이 되어야 하거든요. 나의 행복을 추구하자고 타인의 행복을 해쳐서는 안 되겠지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라는 질문에 천착해 살면 행복한 삶에 더 가까워질까요? 행복에 집착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일 수 있을 텐데요.
“양날의 검 같아요. 삶의 모든 요소를 행복해지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면 오히려 행복감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거든요. 반대로 좋은 점도 있습니다. 돈을 쓸 때 가성비를 생각하듯 무언가를 선택할 때 ‘행복’이라는 기준점을 두는 건 중요해요. 이건 행복에 집착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해야 나와 주변 사람들이 행복할까’의 질문을 품는 겁니다. 삶의 대원칙 같은 거예요. 건강 염려증처럼 행복 염려증이 되면 안 되겠지만, 행동의 기준을 자신과 타인의 행복으로 삼는 삶은 아무리 권장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행복 염려증이라. ‘행복 천재’ ‘행복 둔재’라는 표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행복 천재’라는 표현을 만든 이유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공부 천재’라는 말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렇다 보니 부모들은 아이를 공부에 올인시키고, 아이들은 불행해하죠. 그 과정에서 놓치는 것도 많고요. 공부 천재만큼 행복 천재도 중요하다고 봤어요. 행복 천재라는 말을 좋아해서 만들었다기보다 공부 천재, 재테크 천재처럼 이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썼습니다.”

 

 

 


② 행복은 마음에 있다는 사람들에게

 



행복 천재란 어떤 사람인가요.
행복에 대한 자기 나름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에요.”

“인간은 모두 이론가다. 우리는 각자의 이론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굿 라이프》 속 문장에 진하게 밑줄을 그었어요. 행복에 관한 자신만의 이론이나 기준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양한 사람과 접촉을 늘리는 게 필요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많이 먹어봐야 뭐가 좋고 안 좋은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을 만나봐야 삶의 다양한 양태를 알게 돼요. 그만큼 행복한 삶에 대한 선택지도 넓어지죠.”

책이나 영화 같은 간접 체험도 도움이 되겠어요.
“그럼요. 책이나 영화, 드라마도 굉장히 좋은 소스가 될 수 있죠. 여행도 중요한 체험입니다. 다른 문화권에 가면 얼마나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지 알게 되잖아요. 자신에게 선택지가 별로 없다고 느끼면 불행해질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저 나라에 가서 저런 삶을 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면 훨씬 적극적으로 살게 되죠.”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라고 하는군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고 필요하죠. 자신의 진짜 욕망과 가짜 욕망을 구별해내려면 자기 내면을 들여다봐야 해요. 그런데 진짜 의미는 외부에서 발견할 때가 많아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통찰은 외부에서 옵니다.”

행복하려면 시간과 공간, 사람의 변화를 주라는 조언도 새로웠습니다.
“심리학의 ‘마음 심(心)’ 자 때문에 생기는 오해를 말해야겠군요. 일본에서 ‘물리(physical)’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심리(psychology)’라고 번역을 한 건데, ‘심(心)’이라고 하니까 내면에 대한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심리학은 인간 행동을 주로 연구하거든요. 심리라는 개념에는 물론 마음가짐도 들어가지만, 우리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옆에 있는 사람이에요. 누구를 만나는가가 중요하죠. 또 어떤 공간에서, 언제 하는지도 빼놓을 수 없고요.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공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야 행복해지는 건 아주 단순한 비결이에요. 하지만 이런 걸 전부 무시하면서 나쁜 환경에서도 마음 잘 먹는 것을 강조하고, 나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잘 견뎌내라고 합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행복이 너무 어려운 거죠.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공간을 바꾸고, 사람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쉬운 길을 두고 너무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는 것 같아요.

모든 건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 아니군요.
“그렇죠. 마음가짐을 아무리 바꾸려 해도 안되니 자기 비하를 하기 쉬워요. 더 불행한 상태로 몰아갈 확률이 크고요. 보통 우리 선택지에는 마음 바꾸는 것만 있고 공간과 사람을 바꾸는 것은 없어요.

둘 중에서 굳이 우열을 둔다면요.
저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관점이 안 먹혀요. 동양사상과 맞물리면서 의지의 문제, 태도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바람직한 사회는 내가 굳은 결심을 안 하고 그냥 살아도 행복한 사회잖아요. 환경이 아름답게 잘 보전돼 있고, 범죄 없고, 학교가 민주적이고, 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면 행복하겠죠. 외부 환경이 엉망인데 마음만 잘 먹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꼭 한국 축구 같아요.”

학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코로나 이후 상담실을 찾는 학생들이 급증했더군요.
“아이들 불안지수가 많이 높아졌어요. 전 세계적으로, 특히 선진국 중심으로 완벽지상주의가 강해지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완벽지상주의의 첫 번째 증상이 불안이거든요. ‘내가 지금 엄마의 기대대로, 사회 기준에 부합하면서 잘하고 있나’ 식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해요. 불안해질 수밖에요. 사후 상담은 응급 처방은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자식을 불안하게 하는 부모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겠어요?
“첫째, 인간의 회복탄력성을 믿으세요.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탄력적이고 강한 존재입니다.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못 갔다고 부모의 걱정만큼 불행을 느끼거나 좌절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인생의 수많은 우연을 만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거든요. 아이들에게 내재된 놀라운 능력을 믿으십시오. 둘째, 아이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바라보세요. 아이의 인생은 아이 인생이고, 부모의 인생은 부모 인생입니다. 물론 부모로서 지원하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은 해주되, 아이와 나의 인생은 별개라는 인식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숨기려 하지도 않는 태도도 필요해요.”

교수님도 두 아이의 아버지죠.
“저는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운동과 긍정적인 마음가짐. 체력이 좋으면 그 에너지가 마음으로 오기 때문에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했어요. 공부 습관은 없어도 운동 습관을 잘 들이면 평생 잘 살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마음은 인생을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바탕이 됩니다. 다행히 두 아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면을 갖추게 된 것 같아요.”

삶에 지친 이들에게 흔히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위로를 건네곤 합니다. 이 말에 동의하는지요.
“(한참 뜸 들이다) 글쎄요. 질문 자체가 좀 위험해요. ‘행복’ 대신 다른 말을 넣어보죠. 뭐가 어울릴까요?”

음… 사랑?
우리는 그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지, 꼭 무엇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닐 수 있어요. 저 자리에 무슨 말을 넣어도 저항을 느낍니다. 종의 차원이라면 종족 보존을 위해서라는 맥락의 답변이 가능하겠지요. 그렇다면 ‘사랑’이나 ‘행복’은 그걸 위한 수단이 될 거예요. 결국 이 문장은 진화론적으로도 안 맞고, 한 개인의 삶으로 봐도 맞지 않아요. 불필요한 논쟁을 낳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과 돈의 상관관계는 어떤가요. 부자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데, 이에 대한 연구 결과도 궁금합니다.
“일반화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걸 전제로 말해볼게요. 돈이 많으면 물론 좋은 점이 많죠. 이 부분은 대체로 알고 있으니 여기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돈이 지나치게 많으면 삶에 위험 요소가 생깁니다. 우선 ‘나 혼자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누군가와 함께 일하다가 안 맞으면 ‘꼭 당신이 아니어도 돼’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을 대체 가능한 존재로 보는 거죠.” 

부자의 덫이군요.
“또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면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에 둔감해져요. 기대 수준이 높다 보니 이 정도의 케이크로는 만족이 안 되는 거죠. 돈이 행복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건 맞지만, 스스로 경계해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지난해 창업한 ‘굿라이프랩’에 대해 여쭙니다. 행복연구센터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수두룩한데, 어떤 마음으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교수 창업의 길을 걷게 됐나요.
“하하. 그러니까 말입니다. 기존 연구소에서 하는 행복교육 프로젝트를 기업이나 개인으로 확대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행복은 개인뿐 아니라 회사의 퍼포먼스와 밀접합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면 좋은 성과를 못 내는 것처럼, 회사원의 마음 상태는 아웃풋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요. 저는 행복을 ‘멘탈 컨디션’으로 정의하는데요, 마음의 컨디션이 좋아야 집중이 잘되고, 사람들의 말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고, 이해심과 관용이 커집니다. 반대로 마음 컨디션이 안 좋으면 냉소적이 되면서 고객과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커지죠. 일은 일이고, 행복은 행복이라는 도식을 깨야 해요. 행복은 노력의 대상이자 투자 대상이라고 인식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입니다.”

행복이 투자 대상이라는 걸 입증할 만한 사례가 있다면요.
“우리 랩에서 행복 검진도구 ‘마음충전소 베터리(batterly)’를 만들었어요. 삶을 구성하는 요소를 다섯 가지 영역(심리·사회·신체·경제·커리어)으로 나누고 그중 무엇이 많고 적은지를 측정한 후 총평을 해줍니다. 지난해 이 도구를 가지고 임원들과 일대일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그중 점수도 높으면서 각 영역에서 긍정성이 괜찮은 세 분이 있었는데, 두 분은 연말 인사에서 사장이 됐어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회사에서 인정받고 일도 잘합니다.”

교수와 사업가는 다른 자질을 요구하지요. 스타트업 CEO로서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날 것 같습니다만.
“초보 CEO로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습니다. 교수이자 학자로만 지내다 보니 사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어요. 스스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오만했다고 느낍니다. 그동안은 학부생, 대학원생, 교수 등 동질 집단 속에서 큰 갈등 없이 지냈는데, 사업을 해보니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아요. 심리학자로서 인간 군상의 다양한 면을 잘 몰랐구나 싶기도 하고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요. 서울대생 300명을 대상으로 무려 50년에 걸친 ‘행복종단연구’. 그 결과를 보려면 장수해야겠습니다(웃음). 지금 시점에서 슬쩍 중간평가를 한다면요.
“시작한 지 10년 조금 넘었는데, 대상자들은 군대를 다녀와서 막 사회로 진출한 단계입니다. 이 사람들이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까지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죠. 앞으로 5년 후에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그런데 미리 김을 좀 빼자면, 결과가 되게 평범합니다. 하버드대에서 80년 이상 행복종단연구를 하고 있잖아요. 시간도, 돈도 많이 투입했는데, 결과를 보면 뻔합니다. 행복이라는 게 그래요. 원칙을 지키면서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마 드라마틱한 결과는 안 나올 겁니다.”

행복연구센터 내부를 나무로 꾸민 이유를 알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보니 행복이란 환상적인 핑크빛이나 보랏빛보다 옅은 갈색에 가까운 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깜짝 놀랄 만한 좋은 일이 팡팡 터지는 기적 같은 순간이라기보다 일상에 스민 기분 좋은 느낌. 돌아와 최인철 교수의 《아주 보통의 행복》을 다시 읽어본다. 너무 평범한 문구라 스치듯 읽었던 부분이 매직아이처럼 입체로 도드라져 보이며 새롭게 읽힌다. 

“나는 보통주의자가 되었다. 드라마 같은 행복, 예외적인 행복, 미스터리한 행복의 비법을 바라지만 그런 건 없다. 진정한 행복은 아주 보통의 행복이다. (중략) 행복은 ‘내 삶을 사랑하는 정도’다. 딱 그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최인철 교수가 말하는 ‘품격 있는 삶’

1.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삶
2. 여행의 가치를 아는 삶
3. 인생의 맞바람과 뒷바람을 모두 아는 삶
4. 냉소적이지 않는 삶
5. 질투하지 않는 삶
6. 한결같이 노력하는 삶
7.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유혹을 이겨내는 삶
8. 가정이 아름다운 삶
9. 죽음을 인식하며 사는 삶
10.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