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나들길 5코스(고비고개길), 17코스(고인돌길) _ 2023.07.08 (토)
1. 일시 : 2023. 7. 8 (토) 07:40 - 11:50 / 13:30 - 17:10 (7시간50분)
2. 오늘 걷기 거리 : 파란색 줄친 구간 34.0 km
【 1구간 】 강화나들길 5코스 고비고개길 20.0 km
【 2구간 】 강화나들길 17코스 고인돌탐방길 14.0 km

3. 일기
- 날씨 : 흐림 (기온 최저 20도, 최고 29도)
- 천문 : 일출 05:19, 일몰 19:59
4. 강화나들길 걷기
- 5월 13일 강화나들길을 걷기 시작한지 10주차이다. 솜을 물에 적신 것처럼 기력이 나지 않는 덥고 습한 날씨이지만 해가 안 떴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고, 강화나들길 5코스(고비고개길)와 17코스(고인돌길)을 시작하였다. 오늘 어제 걷기를 정리하는 중에 장마비가 세차게 오가는 걸 보니 덥고 땀났던 어제가 참 좋았구나 생각해본다. 사람의 생각은 이렇게 상대적이다.
- 고비고개길은 초반부는 나무꾼들이 다니던 길이라 하는데 경사는 완만하지만 여름숲이라 거칠고 학생야영장 부근은 리본 표식이 우회하도록 되어 있어 주의해야 한다. 내가면 덕산산림야영장을 넘어가면 사유지 개발이 한창이어 공사장 인부들이 길을 막기도 하고 길 자체가 산에서 도로길로 내려가도록 변경되었으므로 공사장이 나오면 차도로 내려가야 한다. 5코스 길을 마무리한 뒤 외포리에서 버스를 타고, 아까 지나갔던 고상리 고인돌 부근으로 이동하여 17코스를 다시 시작한다. 17코스 고인돌길은 산 능선을 가면서 고인돌을 수시로 보는 길이다. 청동기 시대 강화의 산 중턱(현재 300m 고지)에 무덤을 만든 고대인들의 생각과 노력을 느껴본다.
- 무더위와 흘러내리는 땀 속에서 길을 걸으면 내 생각도 없어진다. 그래도 그늘에서 세 번 휴식시간을 가졌다. 고비고개길 종료 후 버스정류장 옆 가게 의자, 그리고 17코스 시작하는 오상리 고인돌 앞 의자, 길을 거의 마치고 걸어가다 만난 부근리 느티나무 보호수 아래 정자에서 쉬면서 더운 날에 뭐하는 짓일까 하는 생각보다 오늘 지나면 마지막 한 번 남았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남들과 다르게 내가 좋아 하는 일을 찾으려면 뭔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내 수고에 대한 위로나 대가는 어떤 말보다도 최근 내가 걸었던 길로 남아 있다. 올해 여름 길을 더하니 걸었던 지난 길의 사계절 풍경들이 잠들기 전 항상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5. 구간별 풍경
【 1구간 】 강화나들길 5코스 고비고개길 20.2 km
- 강화를 동서로 연결하던 옛길로 고천리에서 나무꾼과 장사꾼들이 등짐을 지고 고비고개를 넘어 강화장터로 가던 길과 2개의 저수지를 도는 풍경과 운 좋으면 내가시장에서 소박한 시골장을 만날 수 있는 코스이다.

- 강화터미널 바로 직전에 버스에서 내려 길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이제는 익숙해진 강화 시내 길들이다.

- 어느새 남문에 왔다.

- 주말이고 오전 8시 전이라 사람 거의 없다.

- 시내 역시 마찬가지로 조용하다.

- 조양방직 자리는 안 보이고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가 문을 열고 있다. 강화군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 강화나들길을 관리하는 사단법인 본부이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듯하다. 재단 관계자분들의 모든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 강화가 원조인 뉴욕꽈배기 본점이다.

- 강화청소년 문화의 집

- 무너진 성곽 바로 너머에 강화공설운동장이 자리잡고 있다.

- 운동장에 운동하는 사람이 없다.

- 국화저수지 : 1978년 수면적 23.48㏊, 제방 길이 245m, 저수지 용량 105만t 규모로 조성된 국화저수지는 현재 강화읍 갑곶리 일대의 농지 105㏊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현재 '동락천 생태문화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국화저수지 생태문화로는 총 3.6㎞에 달하며 산책로를 걷는 구간과 저수지옆 산을 걷는 등산로로 나뉘어 있다. 투명한 수면 위로는 갈대와 물억새가 솟아있고, 수생식물원·자연학습원 등이 만들어져 있어 아이들과 생태식물을 학습하기에도 좋다. 등산로 구간은 저수지를 한 눈에 내려다보며 울창한 숲 속을 걸을 수 있어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손색이 없다. 저수지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농촌 마을들도 구경할 만하다. '승거문마을'은 마을 어귀에 선기문(개성 동북쪽에 있던 성문의 하나)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지방돌마을'은 마을 앞에 문지방처럼 가로놓여 있는 바위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이외에도 '국장안', '국정' 등 9개 마을 이름의 유래와 역사를 돌아보고 구석구석 마을을 살펴보면 고향집에 와 있는 듯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 저수지 주변 길목에 서 있는 강화나들길 5코스 안내표지판

- 저수지 길이 끝나고 국화리 마을로 간다.

- 풀협죽도라고 검색된다. 일일초와 비슷하다.

- 접시꽃

- 포도

- 국화리 마을 입구

- 체험할 사람들은 모두 캠프장으로 가고 여기 오는 사람들은 없는 듯하다.

- 주목 묘목을 잘 관리하고 있다.

- 노루오줌이라는 식물이다.

-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 경사가 심하지는 않다.

- 학생야영장이 나오는데 수선 중이다.

- 길 안내 리본이 학생야영장에서 다시 내려가라고 하나, 분위기 상 올라가야 할 것 같아 계속 올라가보니 결국 길이 나왔다. 아마 우회하는 길이었나 보다.

- 걸어가도록 길을 만들어 놓았다.

- 강화나들길인데 자전거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였는지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 계곡 다리 길도 있다.

- 지금 가는 길은 왼쪽 혈구산과 오른쪽 고려산 가는 길의 중간 계곡길이다.

- 왼쪽 혈구산과 오른쪽 고려산 가는 길이고, 강화나들길은 가운데 직진 길이다.

- 약간 가파른 경사길이다.

- 길이 다시 편안해진다.

- 여름 산의 진수를 느끼게 거치른 풀숲과 거미줄이 기다리고 있다.

- 산길이 끝나고 드디어 고천리 마을이 나왔다. 전원 주택 보다도 오래된 주택의 비중이 더 많다.

- 벌통이 있다.

- 마당 밭에 포도가 영글어 가고 있다.

- 인삼도 재배하고 있다.

- 자귀나무를 다시 만났다.

- 무궁화가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 여기는 5코스와 17코스가 마주쳐서 지나가는 공통구간의 시작점인 어반티지 글램핑 카라반이라는 곳이다. 여기부터 오상리 고인돌까지 공통 구간이다.

- 마을길이 여느 산길처럼 호젓하다.

- 심도학사는 2012년 길희성 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가 사재를 털어 고전공부와 명상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길희성교수는 내가 사숙하는 종교학 대가이다. 모든 종교는 결국 한 곳에서 만나게 된다는 결론을 제시하였다 . https://cyoon.tistory.com/103)

- 심도학사 전경

- 강화오상리 고인돌군이다.


- 고인돌을 지나. 내가저수지 도착 전까지 산길을 간다.

- 내가저수지(고려저수지) : 내가면 고천리에 있는 내가지(고려지)는 만수면적 28만평 규모의 큰 저수지로 고려산 및 혈구산으로 99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물줄기를 담수로 한곳으로 주변 오염원이 없어 깨끗한 수질을 보존하고 있다. 1950년에 착공하여 1957년에 준공되었으며 강화도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이다

- 오늘 날씨가 흐려 저수지의 풍광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 저수지 사면에 공식 명칭으로 고려저수지라고 표기되어 있다.

- 내가면 : 조선시대 이래로 내가면이라 하였는데 내가면이란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 있던 외가면(外家面)의 안쪽에 있다는 뜻으로 상대적 개념으로 붙여진 듯하다. 강화읍에서 18.6 km 떨어진 곳으로 동쪽은 고려산과 혈구산으로 둘러쌓인 산간 지역이며 서쪽은 평야지역으로 해안과 연접되어 있다.

- 내가초등학교

- 내가면사무소와 보건소

- 마을을 지나, 차가 별로 안 다니는 도로길의 보도로 간다.

- 덕산산림욕장 :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산 494번지외 2필지에 강화군에서 건립한 캠핑장 시설로 29,440㎡ 면적에 야영장 66사이트, 관리동, 화장실, 개수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 강화나들길은 덕산산림욕장을 가로 질러 지나간다.

- 혼자 다니는 길에서 포토존의 모델은 포토존 자체이다.

- 신림욕장 오솔길이다.

- 끝나는 지점에 갑자기 건축공사가 벌어져 있다. 원래 산 속으로 가도록 길이 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주택단지 아래 큰길로 변경해서 내려간다. 공사하는 사람들이 사유지임을 들어 출입금지라고 훈계를 주었지만, 이게 뭔 소리, 내가 언제 또다시 오겠느냐 하여 그냥 알았다고 했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인천에서 꽤 큰 교육재단이 벌이는 사업의 일환으로 건축 중이었다.

- 웰컴 로이 빌리지 - 검색해보니 로이교육재단 홈페이지에 강화식문화예술단지를 만들어 아시아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음식과 문화의 접목을 테마로 한 전문 테마파크로서 4만평 규모의 부지에 카페, 리조트, 스파 등 생활예술 시설을 갖추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식문화관광단지로 거듭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알리고 있다.

- 먼저 운영 중인 커피숍이다.

- 차가 다니는 큰 길이다. 강화나들길 리본이 있어 5코스 경로로 확인하였다.

- 가다보면 외포리 마을이 눈에 들어 온다.

- 길은 마을로 바로 가지 않고 곶창굿당을 들러서 옛날 풍습에 대해 안내한다.

-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곶창굿당 : 외포리 고창굿당은 외포리 주민들이 해마다 성대하게 굿판을 벌여 마을의 풍어와 풍농을 기원하는 곳이다.

-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 리 단위 마을에 공동주택이 이렇게 많이 지어진 것을 보면 지난 날 이곳이 석모도나 교동도로 출발하는 선박교통의 요충지로 번성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 지난번 서해랑길 102코스와 강화나들길 16코스 시점에서 삼별초 유적과 망양돈대를 지나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바닷가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예전에 강화에 왔을 때 우연히 들린 적이 있어 유적지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 외포리항에 여객선은 이제 운항하지 않지만 고깃배들은 제법 많다.

- 삼별초 유적을 조성해 놓았다. 진도개 돌하르방 역시 삼별초가 옮겨간 곳을 기념하여 조성한 것이다.

*** 1270년 삼별초는 어디에서 강화를 출발하였을까?
고려와 몽골의 30년간 전쟁은 1259년 고려의 태자 전(후의 원종)이 부왕을 대신해 몽고에 입조하면서 일단락된다. 여기다 1270년 임유무가 살해되면서 무인정권이 종식되자, 원종은 몽골의 지시에 따라 ‘출륙 환도’를 단행했다. 그러나 환도는 삼별초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삼별초는 환도를 거부하고 1270년 6월 승화후(承化候) 온(溫)을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다. 삼별초는 6월 3일 강화도를 출발해 8월 19일 진도에 도착한다.
이때 삼별초가 강화도 어느 곳에서 출항했는가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삼별초의 출항지를 찾는 일은 강도시대 강화의 군사적 상황, 연안 해로에 의한 지방 여러 군현과 강도의 연결고리로서 항구를 찾는 작업과도 관련이 있기에 꾸준한 관심 대상이었다. 강화군은 삼별초의 출항지를 외포항으로 보고 있다. 내가면 외포리 외포항 인근에는 ‘삼별초항쟁비’가 설치돼 있다. 몽골 침략에 대한 삼별초의 항쟁을 기려 강화군민들이 1993년에 세웠다. 항쟁비 앞에는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三別抄軍護國抗蒙遺墟碑)’라 쓰여 있다. 삼별초항쟁비 앞에는 진도군의 상징인 진돗개의 상이 있다. 진돗개는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돼있다. 진도군이 삼별초의 역사를 바탕으로 자매결연한 강화군에 2005년 기증했다. 안내판에는 “고려 삼별초의 호국정신 계승발전을 위해 1989년 5월 2일 자매결연한 지 16주년을 맞아 군민의 마음이 담긴 강화군ㆍ진도군ㆍ북제주군의 상징물을 삼별초의 원정길인 3개 군에 설치하고 뜻을 기리기로 함”이라고 적혀있다.
강화군이 삼별초를 전면에 내세운 관광지는 외포항뿐이다. ‘고려사’ 배중손 열전에는 “선박과 군함을 모아 공사(公私)의 재물과 자녀들을 모두 싣고서 남쪽으로 내려가니, 구포(仇浦)에서 항파강까지 고물과 뱃머리가 이어졌으며 무려 1000여 척이었다. 전 중서사인 이숙진, 낭장 윤길보가 노예들을 모아 남은 적을 구포까지 추격해 5명을 죽이고 부락산에 이르러 바다에 임해 군사의 위세를 올리니 적이 바라보고 두려워해 오랑캐 군사가 이미 이르렀다 하여 드디어 도망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기록대로라면 삼별초는 구포에서 항파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삼별초 출항지에 대해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관계자는 “교동도도 당시에는 방어선 기능을 했다”며 “강화도뿐 아니라 인근 섬의 군사들과 주민들도 함께 내려갔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남하하면서 강화도 주변 섬에서 군사들과 배가 지속적으로 합류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 망양돈대 : 망양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건평돈대·삼암돈대·석각돈대와 함께 정포보에 속했다. 방형 구조로 둘레가 130m, 석벽의 높이는 300~340㎝이다. 동쪽으로 외포리 항이 있고 바로 아래 삼별초항몽유허비가 있다. 남쪽은 급경사로 거의 절벽에 가깝다.

- 돈대에서 나오는 길이다. 연립주택 마당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 내려오는 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친절하게도 밧줄을 설치해 놓았다.

- 5코스를 마치고 외포리 정류장에서 강화 62번 버스를 타니 나 혼자이다.

【 2구간 】 강화나들길 17코스 고인돌탐방길 14.0 km (버스정류장 이동 거리, 고려산 왕복 추가)



- 오상리고인돌군 (鰲上里 고인돌群) : 오상리 고인돌은 1972년에 1기가 알려져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그 이후에 자세한 보고는 없다가 1990년대 초에 『강화도 고인돌무덤(지석묘)조사연구』를 통해 이 고인돌이 있는 오상리 산125번지 일대를 자세하게 조사하여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사이에서 10기에 가까운 고인돌을 더 찾아냈다. 이 지역의 고인돌은 덮개돌은 부분적으로 손질한 흔적이 있고, 평면 형태는 모두 판돌형(板石形)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기념물로 지정된 내가 고인돌이 길이 335㎝로 가장 크고 나머지는 길이가 130∼260㎝로 다양한 편이다. 돌방(石室)은 돌널형태의 모습이고, 고임돌이나 막음돌을 세울 때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주변에 쐐기돌을 사용하였다. 돌방의 바닥은 거의 대부분 맨바닥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1·4·9호 고인돌은 판돌이나 깬돌[할석]이 깔려 있었다.



- 세월이 흐르면 사자의 시신은 물론 윗돌 조차도 흔적없이 자연 속으로 이렇게 사라져 버린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대에 이미 사망 후 매장지 대란이 일어나 있고 또 그곳을 추모 사람조차도 없을 것이 분명해 일본에서는 풍선에 화장 분골을 넣어 40~50㎞ 상공 성층권까지 올라가 터뜨리는 하늘장(葬)까지 등장하였다고 한다. (https://cyoon.tistory.com/7296)

- 적석사 (積石寺) : 416년(장수왕 4) 인도승려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한다. 인도승은 진나라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절터를 물색하다가 강화도 고려산에 이르러 다섯 빛깔의 연꽃이 만발한 연지(蓮池)를 발견하였다. 그는 다섯 가지 연꽃을 공중으로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지는 곳마다 사찰을 지었는데, 이 절터에는 적련(赤蓮)이 떨어졌으므로 적련사(赤蓮寺)라 하였다. 그 뒤 절 이름은 적석사로 바뀌었으며, 1544년(중종 39)과 1574년(선조 7)에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이후 중건되었다. 2001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조용하다.

- 낙조대 오르는 계단길이다.


- 산 정상 부근에 넓은 마당을 구축하여 낙조대라 명명하고 부처를 모셨다.

- 낙조대에서 오늘 걸었던 5코스 고비고개 길을 조망해 본다. 고려저수지와 멀리 외포리 항구가 눈에 들어 온다.

- 신심은 좋으나 이곳에 촛불을 켜면 부처님이 반드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마케팅 문구는 좀 심하다고 생각했다.

- 낙조봉 능선의 모습은 대략 이렇다. 능선길에 나무도 없고 해서 사방이 탁 트여 있다.

- 북쪽 바다와 별립산을 바라본 정경이다.

- 방금 예초기로 길 위의 풀을 재단한 흔적이 있고 멀리서 기계 소리도 들려 온다.

- 강화나들길 여행객들도 거의 없는 더운 여름 주말에 산 능선길에서 예초기 작업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드렸다. 멀리 지나온 길 끝에서 이쪽으로 예초 작업 중이다.

- 강화고천리 고인돌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고려산의 서쪽 능선을 따라 해발 350∼250m 지점에 18기의 고인돌무덤이 흩어져 있다. 이 고인돌군은 우리나라 고인돌무덤이 분포하는 평균 고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대부분의 고인돌무덤들은 무너져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그 중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탁자식 고인돌무덤은 덮개돌의 크기가 가로 3.35m, 세로 2.47m, 두께 0.65m이다. 고인돌군이 위치한 주변 지역에 고인돌무덤을 만들기 위하여 돌을 떼어 낸 흔적이 남아 있다.

- 300m나 되는 산의 능선에 묘를 설치한 고대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 한참을 가니 다시 고인돌이 또 나온다.

- 늠름한 소나무의 모습

- 소나무 사이로 건너편 혈구산을 바라본다.

- 고려산(高麗山) : 강화6대산의 하나로 마니산(472m),혈구산(466m),진강산(443m) 다음으로 높은 산( 높이 436m)이다. 1696년 편찬된 강도지에 홍릉과 국정,적석,백련등의 세 절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화부 서쪽 15리에 있으며 강화부의 진산이라고 되어 있다. 고려산은 고려의 정기를 품고 있는 산으로 신성한 연못의 물고기가 중국 천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연못의 연꽃이 떨어진 다섯 곳에 오련사를 지었으며 고구려 장수 연개소문이 태어난 전설이 있는 곳으로 곳곳에 적석사, 백련사, 청련사 등 사찰과 고인돌군락지, 고구려 토성, 오련지, 홍릉 등 문화재가 분포하여 아침에 역사탐방 위주의 산행이 좋다. 적석사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낙조봉(343m) 능선에서 고려산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는 억새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 고려산 정상에는 이동통신 기지국 등 별도 시설이 있어 출입차단되는 듯하여 사람들의 방문지로 지정한 중간 정상을 고려산으로 생각하고 다녀 왔다. 여기는 강화나들길 코스는 아니다. 약 1km정도 왕복거리일 듯하다.

- 길 가다가 만난 산 고양이가 몸을 내게 비비고 친한 척하여 배가 고픈 걸로 짐작하여, 가지고 다니는 점심 음식물을 나누어주니 감사히 절 먹고 있다.

- 강화 하점면 삼거리 고인돌군은 강화읍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인화리 방면으로 가다 송해면과 하점면 경계지점을 지나 부근리-망월간 도로의 중간지점인 진촌마을에 있다. 진촌마을은 고려산 북서쪽 능선 상에 위치한 마을로 이 지역 일대에 탁자식 고인돌 9기가 일렬로 분포되어 있다. 어떤 고인돌무덤은 덮개돌 위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패여 있는데 이러한 모양을 남한에서는 성혈이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별자리와 연관 짓고 있다. 작은 구멍이 있는 고인돌무덤의 크기는 고임돌의 높이 2.80m, 너비 0.90m, 두께 0.38m이다. 고인돌무덤 가까이에는 돌을 떼어 낸 흔적이 남아 있는 채석장이 있다.




- 고인돌에는 번호가 붙어 있는데 아마도 발굴 순서인 듯하다. 마지막 내려온 고인돌에 붙어 있는 번호는 125번이다.

- 마을에 내려오니 올해 처음 보는 해바라기 꽃이 맞이해 준다.

- 삼거1리 마을회관과 교회가 같이 있다.

- 한가한 시골버스 정류장의 모습

- 강화 부근리 점골 고인돌 (江華 富近里 점골 고인돌)은 강화읍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인화리 방면으로 가다 송해면과 하점면 경계지점을 지나 부근리-망월간 도로의 중간지점, 고려산 북쪽에서 흘러내린 주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해발 15m 정도의 낮은 지대의 밭에 위치해 있다. 고임돌이 기울어져 무너져 내린 것을 현재는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 동서방향의 고인돌을 바로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북쪽 방향에는 마감돌이 유실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어 점골 고인돌은 물론 강화지역에 분포한 고인돌의 구조와 형태를 파악하는 데에 귀중한 유적이다.

- 하점면 부근리 514-1번지에 있는 수령 260년의 느티나무 보호수이다. (높이 30m, 나무둘레 4.4m) 나무 그늘이 참 튼실하여 아래 정자에서 한참을 쉬었다. 감사한 마음이다.

- 길을 가다가 지나온 고려산 정상쪽을 쳐다 본다.

- 도로길을 계속 따라 간다.

- 드디어 오늘 길을 마무리할 종점이 보인다.

- 도착했다.

- 버스정류장에서 30분 기다려 강화버스터미널로 귀환하였다.

- 이제 한 번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