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종교 이야기

막행막식(莫行莫食)에 대하여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3. 7. 21. 08:15

1.  막행막식(莫行莫食)에 대하여 
 

막행막식(莫行莫食)은 행하고 먹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이라 하며,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고승들이 아무런 장애가 없이 거리낌(碍) 없는(無) 행동(行)하는 것을 가르키는 무애행(無碍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자유인이 되어 일체의 장애와 걸림이 없어 행하는 대로 도에 합일한다고 주장한다.

수행이 익으면 모든 고정관념들이 풀려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삶의 기반이라고 여겨왔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허상으로 드러나면서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될 수도 있고, 고정관념에 억압되어 있던 에너지들이 풀려나 마구 분출할 수도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무기력한 허무주의자 또는 광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이라는 뇌관이 없으면 아무리 강력한 에너지가 있어도 불발탄이 된다. '생각'이 정말로 다 깨졌다면 허무함도 없고 날뛰는 에너지를 어찌할 의도도 없어 그저 안도하고 태평할 뿐이다. 허무하다거나 막살아보자는 것도 여전히 '생각'에 빠진 것임을 놓치면 안 된다.

막행막식에 빠진 사람들은 '생각'의 억압해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생각의 억압에서 해방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최후에는 뒷덜미를 몰래 물고 있는 '생각'이 항상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깨달은 사람도 탐진치의 습이 남아 있다는 것은 '생각'의 습을 말하는 것이다. 그가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면 언어와 '생각'을 사용할 수밖에 없으므로, 기존의 기억(깨닫기 전에 사용하던 관념과 감정과 자동반응들)들을 꺼내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습에 반응이 되지만 '생각'의 오류인 것을 날카롭게 알아채고 벗어나는 것이다.  

 


2.  “자기성찰-이타심 없는 무애행은 막행막식” 

< 법보신문   2007.08.27 >
 
계율, 선(禪)의 걸림돌인가  
무애행, 파계 정당화의 명분?

매년 안거 때만 되면 여전히 수천 명의 수행자들이 선방을 찾아 용맹정진을 하는 등 선(禪)은 한국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방법이라는 특유의 매력과 마음의 평화와 건강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선은 이제 수행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다.

“선지상주의가 파계만연 불러”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선이 강조될수록 오히려 계율은 경시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깨치면 그 뿐’이라는 ‘깨달음 지상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계율은 점점 수행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됐고, 더 이상 계율은 수행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 아니라 선택사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이렇다보니 파계불감증이 교단 전반에 걸쳐 팽배해졌고 청빈한 성직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할 한국불교 승가에서 지계는 더 이상 미덕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자신들의 ‘막행막식(莫行莫食)’을 마치 경허, 만공, 춘성 스님 등 큰 스님들이 했던 무애행(無碍行)과 연관시켜 파계를 합리화시키고 있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송광율원 교수사 도일 스님은 “근현대에 이르러 한국불교에서 파계가 만연하게 된 것은 선지상주의 또는 깨달음 지상주의에 근본원인이 있다”며 “특히 깨닫지도 못한 수행자들이 도를 깨우친 큰스님 흉내를 내면서 자신들의 막행막식을 마치 무애행으로 여기는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무애행과 막행막식은 근본적으로 어떤 차이를 갖고 있을까.

이와 관련 명상상담연구원장 인경 스님은 “무애행은 수행자가 그 행위를 함에 있어 스스로의 마음에 걸림이 없고, 또 그 행위의 목적이 남을 위한 이타심에 출발한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한 것”이라며 “이런 두 가지 전제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이는 무애행이 아니라 단순한 파계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스님에 따르면 무애행은 천만경계에도 장애를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행동한다는 것으로 불교 수행의 최고 경지를 나타낸다. 따라서 무애행은 철저한 수행과 자기 성찰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옛 선사들도 이런 점을 강조하면서 자칫 큰 스님의 무애행을 쉽게 흉내 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후학들에게 강조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 간화선의 중흥조로 칭송 받는 경허 스님의 제자였던 한암 스님은 은사의 행장을 정리한 『선사경허화상행장』에서 “화상의 법화(法化)를 배움은 옳거니와 화상의 행리(行履)만을 보고 화상을 평론함은 옳지 못함이로다. 그 행리만을 본받아 무애한 자와 또한 그 유위 상견에만 집착해 능히 마음 근원에 훤히 사무치지 못한 자를 경책하노라”라고 밝혔다. 즉 한암 스님은 경허 스님의 법화나 마음 그리고 안목을 배우는 것은 가당하나, 법을 간택하는 눈을 갖추지 못하고 단지 그의 행적의 걸림 없는 겉모습만을 따르고 믿는 것은 경허 스님의 본래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무애행, 깨달은 자만 가능

결국 무애행은 깨달은 자만이 행할 수 있는 부처의 행위와 같다. 때문에 무애행은 파계가 아니라 오히려 철저한 지계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최근 들어 일부 스님들이 계율을 무시하고 ‘걸림 없는 행’을 내세우며 스스로의 그릇된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수행자로서의 기본적인 윤리마저 거부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동화사 강주 지운 스님은 “선의 궁극적인 목표가 올바른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계정혜 삼학 가운데 으뜸인 계행이 밑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며 “이런 점들은 과거 수많은 선사들의 선어록에도 언급됐던 내용으로 선수행을 하면 계율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논리”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어 “근본적으로 무애행이라는 것은 아주 미세한 것에도 걸림이 없다는 것으로 팔만 사천의 작은 행, 즉 어떤 작은 계율에도 걸림이 없다는 것”이라며 “어설프게 무애행을 내세우면서 파계를 일삼는다면 우리 승단은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3.  승려의 '막행막식' 경허 스님 탓일까 

 

 

<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2013.03.07. >
 

폐간위기 모면 '불교평론' 봄호에 '경허 논의 검토' 기고문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선(善)은 부처를 능가했고, 악은 호랑이를 능가했으니, 그분이 바로 경허선사이시다. 열반하셨으니 어디로 가셨는가? 술에 취해 꽃처럼 붉은 얼굴로 누워계시네."

현대 한국 불교의 대선사인 만공(滿空·1871∼1946) 스님은 '경허법사의 입적 소식을 듣고 읊다'라는 시에서 스승인 경허(鏡虛·1849∼1912) 스님을 이같이 표현했다.

한암(漢岩·1876∼1951) 스님 역시 '경허화상행장'에서 스승의 법과 법화(法化), 행리(行履·행위)를 열거한 뒤 "선도 끝까지 이르렀고 악도 끝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작년 열반 100주년을 맞은 경허 스님은 이처럼 근대 한국 선(禪)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한편 문둥병에 걸린 여인과 동침하거나 음주식육(飮酒食肉)을 하는 등의 초계율적 삶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경허 스님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한국 불교계의 지성의 장 역할을 해 온 계간지 '불교평론'이 작년 경허 스님의 주색(酒色)을 다룬 윤창화 민족사 대표의 특별기고문 때문에 사실상 폐간 위기에 처했던 것도 이 같은 논쟁과 맞닿아 있다.

윤 대표는 작년 가을호에 실린 기고문에서 "경허의 행위(주색)는 승가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규범이나 도덕적으로도 적지 않은 문제를 갖고 있다"면서 "최근 한국불교가 주색과 도박으로 망신을 당하는 것도 경허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수덕사 등은 윤 대표의 글이 경허 스님의 선사상과 한국불교에 끼친 영향을 왜곡·폄하했다며 항의했고, 발행처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폐간을 결정했다.

이후 이어진 불교계 안팎과 학계의 반발로 폐간 위기를 모면한 불교평론이 최근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의 '경허 논의에 관한 비판적 검토' 특별기고문을 담은 봄호를 냈다.

김 교수는 기고문에서 윤 대표의 글에 대해 "경허의 행위를 주색으로 단정하고 나아가 근현대 승려의 막행막식(幕行幕食)의 연원을 경허라고 단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허집'과 '범어사 계명암 수선사 방함 청규' 등에 비춰볼 때 경허 스님이 음주식육 등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만큼 그의 행적과 발언의 불일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승려의 파계와 막행막식에 대한 경허 스님의 영향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 원인을 승가의 세속화 흐름과 일본 불교의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경허 스님이 만년인 1906년 갑자기 삼수갑산으로 종적을 감춘 것에 대해서도 윤 대표는 '도피성 은둔'으로 해석한 반면 김 교수는 "당시 불교계 동향, 일제 침투라는 시대상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경허에 대한 이해는 주로 신비적인 소문, 소설, 평전 등에 의지하고 있다"면서 "그 결과 경허의 위상에 맞는 연구가 부진했고 경허에 대한 학술적인 논문이 20여편 정도에 불과하다"고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불교평론은 속간된 봄호에서 불교 계율 성립의 배경과 한·중·일 계율 전통 등을 다룬 '불교와 계율' 등을 특집으로 마련했다.

홍사성 편집인은 7일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불교평론이 복간돼 다행"이라며 "앞으로도 좋은 논고를 개발하는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