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시민단체, 누굴 더 믿나?
대기업과 시민단체, 누굴 더 믿나?
< 한겨레, 강준만, 2023-07-02 >
“‘시민단체’ 하면 사람들은 권력, 정치권, 시민과 동떨어진 그런 걸 떠올리는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시민운동 한다고 하면 더불어민주당 쪽이라 생각해요.” “주민들은 시민단체가 관이랑 끈이 있는 사람들, 돈 끌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 보죠.” “사람들한테 신뢰를 얻으려면 시민단체라고 말하면 안 돼요.”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이 지난해 몇달 동안 연구 목적으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수십명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반복해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한겨레21> ‘신진욱×이세영의 정치크로스’의 모든 내용이 다 알차지만, 특히 왕성한 성찰로 가득한 이 글이 가장 좋았다. 신진욱은 “그런 시선에 비친 ‘시민단체’는 정치세력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갖거나, 정부지원금으로 연명하거나, 공공사업을 명목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시민이 일군 사회적 자산을 개인 자산으로 삼아 정치권·공공기관에 자리를 얻어 가는 사람들로 그려지는 것 같다”고 했다.
냉소주의로 단련된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지 모르겠지만, 사실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다. 이 글에 소개된 한국행정연구원의 2021년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는 그런 충격을 수치로 입증해준다. 시민단체보다 신뢰도가 낮은 기관은 국회와 노조밖에 없었으며, 시민단체를 신뢰한다는 응답자 비율(53.4%)이 시민단체의 비판·감시 대상인 금융기관(66.2%), 대기업(56.7%), 정부(56.0%)보다 낮았다고 하니, 이런 시민단체가 왜 필요한 건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고려대 명예교수 최장집은 “국가권력과 시민운동이 특혜와 지원을 대가로 정치적 지지를 교환하는 관계가 됐다”고 했다. 물론 그런 권력과의 유착에 따라붙는 건 바로 돈이다. 시민단체를 포함한 민간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2016년 3조5600억원에서 2022년 5조4500억원으로 2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고보조금은 20조원을 넘었을 정도로 폭증했건만 관리·감독은 소홀해 온갖 비리가 난무했다.
지난 6월4일 대통령실이 발표한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된 국고보조금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자. 최근 3년간 지급된 1만2천여개 사업 6조8천억원이 감사 대상이었는데, 총 1865건 314억원의 부정 사용이 적발됐다고 한다. 이를 빙산의 일각으로 본 윤석열 정권은 내년도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올해보다 30% 줄이고, 부정·비리가 적발된 민간단체의 보조금을 전액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윤 정권의 거친 언어와 일 처리 방식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문제의 본질에 집중해보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김정희원도 최근 <한겨레> 칼럼에서 “이제 정부 비판적 사업은 설령 그 비판이 정당하거나 필요한 것일지라도 보조금이 끊길까, 혹은 신고당할까 두려워 애초에 추진되지 못할 수 있다… 반면 정부 정책기조에 발맞춘 사업은 우선해서 보조금을 지원받게 될 것이다”라고 우려하면서도 칼럼 제목 그대로 “진보는 보조금으로 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시민단체의 생존이 ‘당근과 채찍’에 결판나지 않으려면 풀뿌리로부터 자원이 모여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보조금에 기대지 않고 사회운동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은 오직 평범한 사람들의 참여뿐이다. 소액이더라도 다수의 풀뿌리 후원이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는 전망이 있을 때 사회운동은 변절하지 않고 뚝심 있게 지속될 수 있으며, 그 활동기반을 두려움 없이 단단하게 다질 수 있다.”
물론 풀뿌리 후원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기부금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의 재원을 갑자기 대폭 줄이겠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럼에도 시민단체가 정작 해야 할 일이 기부금 문화의 정착을 위한 노력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해보는 건 어떨까? 정부의 보조금은 정파적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시민단체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정파적 투쟁의 선봉에 설 수 있는 가능성도 우려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 이미 그런 현실이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대거 정·관계에 진출하는 관행도 정말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이는 그 어떤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중립지대의 소멸’이라는 점에서 국가적 비극이다. 이미 ‘두개로 쪼개진 나라’의 분열을 심화시켜온 사회를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서 얻을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대기업보다 낮은 신뢰도를 가진 시민단체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을 놓고 차분하되 왕성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한겨레21> ‘신진욱×이세영의 정치크로스’
이세영의 질문 시민단체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신뢰가 예전 같지 않다. 정부지원금을 타거나 정치권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사회참여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각종 단체와 네트워크의 양적 성장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 정치 변화를 이끌어낼 저력이 있는가?(제1415호)
“시민사회요? 요새 아무도 그런 말 안 써요.” “‘시민단체’ 하면 사람들은 권력, 정치권, 시민과 동떨어진 그런 걸 떠올리는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시민운동 한다고 하면 더불어민주당 쪽이라 생각해요.” “주민들은 시민단체가 관이랑 끈이 있는 사람들, 돈 끌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 보죠.” “사람들한테 신뢰를 얻으려면 시민단체라고 말하면 안 돼요.”
필자가 지난 몇 달 동안 연구 목적으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수십 명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반복해 들은 이야기다. 학문적으로 시민사회라는 개념은 시민의 자발적 결사체의 장, 더 엄밀하게는 시민이 공동선을 위해 활동하는 사회적 공간을 뜻한다. 그런 의미의 시민사회단체에는 사회운동조직, 주민공동체, 협동조합, 소모임 등 실로 다양한 유형이 포함된다.
감시 대상보다 신뢰 못 얻는 시민단체
현대의 시민사회 이념은 이처럼 시민이 만나고, 조직하고, 숙의하는 행동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사회적 연대와 자율의 공간을 창출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시민사회’ ‘시민단체’ ‘시민운동’은 종종 그와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 시민과 분리된, 권력에 가까운, 그러면서 시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위선적 기득권층으로 인식된다.
그런 시선에 비친 ‘시민단체’는 정치세력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갖거나, 정부지원금으로 연명하거나, 공공사업을 명목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시민이 일군 사회적 자산을 개인 자산으로 삼아 정치권·공공기관에 자리를 얻어가는 사람들로 그려지는 것 같다. 시민사회 이념과 정반대 이미지가 지금 한국에선 ‘시민사회’라는 단어에 부착됐다.
물론 이런 부정적 담론은 일부 정치권과 언론의 프레이밍이 만들어낸 면이 없지 않다. 악의적인 사실 왜곡, 시민 활동에 대한 폄훼, 정치적 오용 등 여러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정치공세, 이념공세로 치부하고 방어적 태도만 취하는 것은 시민단체와 그 리더들에 대한 신뢰 하락이 지난 10여 년간 계속됐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한울 정치학 박사의 논문을 보면 2000년대 초까지 시민에게 가장 신뢰받던 시민단체가 노무현 정부 후반 신뢰를 잃기 시작해 2016년에는 군대, 언론, 경찰보다 신뢰받지 못하는 기관이 됐다. 이런 추이는 응답자의 이념 성향이 진보든 보수든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보수를 넘어 신뢰받던 시민단체의 사회적 기반이 매우 좁아졌다.
문재인 정부 5년을 지나면서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더 악화한 듯하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21년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단체보다 신뢰도가 낮은 기관은 국회와 노조밖에 없었다. 시민단체를 신뢰한다는 응답자 비율(53.4%)이 시민단체의 비판·감시 대상인 금융기관(66.2%), 대기업(56.7%), 정부(56.0%)보다 낮았다.
이 충격적인 현실은 비단 시민단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공익’활동,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등이 모두 그런 의혹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모든 선한 가치, 진지한 노력이 냉소의 대상이자 위선 징표로 추락할 위험에 처함은 단지 특정 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가치 실종과 진정성 위기를 시사한다.
그러므로 시민사회에 대한 이런 인식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오해인지, 문제가 있다면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그리고 오늘날 한국 시민사회의 새로운 긍정적 잠재성은 어디에 있는지 냉정한 분석과 더불어 미래를 위한 진지한 토론이 요구된다.
정치권력과 엘리트 네트워크 형성
시민단체가 시민과 유리된 권력집단이 됐다는 인상은 민주화 이후 10여 년 동안 한국 시민사회의 성장을 주도한 단체들의 전문화, 제도화 경향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엘리트 네트워크의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 단체들의 리더·활동가들과 그에 연계된 진보적 전문가 집단은 정부, 정당, 언론, 법원 등 한국 사회의 제도권력과 때론 충돌하고 때론 협상하면서 복지, 여성, 환경, 인권 등 많은 분야에서 법과 제도 개혁을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이 단체들의 활동방식과 지식기반은 점점 더 전문화되고 ‘일반 시민’은 후원회원에 머물러 변화의 주인공이 되기 어려워졌다.
시민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흔히 민주화운동 경험이나 대학 운동권 학연으로 이어진 엘리트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중 적잖은 사람이 이후 정치권으로 나아갔고, 특히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고위공직자나 공공기관장이 됐다. 이에 따라 정치권력과 시민사회 사이 한편으론 조직적 긴장관계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적 연계가 공존한다.
이런 정부-시민사회 연계는 제도와 정책 발전에 부정적이기만 하지 않다. 시민사회가 발전시킨 혁신 의제는 정부·정당이 시민사회에 적대적일 때보다 우호적일 때 실현될 가능성이 당연히 크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 기능은 시민사회가 정치에 대해 힘의 우위, 또는 최소한 분명한 자율성을 가질 때 실현될 수 있다. 바로 그 점을 불신하는 시민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시민사회가 전체적으로 권력화됐거나 정치적 독립성을 잃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21세기 들어 시민의 사회적 활동 장에서 일어난 중대한 변화를 전혀 쫓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1990년대 시민단체에 머무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풀뿌리·페미니즘·주민운동 등 다양화
변화의 구조적 핵심은 전통적인 운동단체뿐 아니라 각양각색의 비영리단체,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풀뿌리 주민단체, 비공식적 소모임과 네트워크가 급증하면서 시민사회 생태계가 매우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한때 한국 시민사회를 대표한다고 자부했던 시민단체는 이처럼 분화된 생태계 한 부분으로 그 위치와 역할이 바뀌었다.
이 추세에는 2000년대 이후 정치환경과 법적·제도적 조건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정부 때 제정·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과 사회적기업육성법,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한 지자체의 민관협력 거버넌스 정책 등이 시민사회 변화를 촉진했다. 진보·보수 정권 할 것 없이 ‘시민’을 정부 정책의 중요한 대상이자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이뿐만 아니라 촛불시민 모임, 페미니즘 소모임, 주민 독서모임 등 수많은 비공식 커뮤니티가 생겨났다는 사실도 중요한 변화다. 이들은 공식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거대한 미시적 시민사회의 장을 구성한다. 그 토대 위에서 시민은 정치사회적 이슈가 점화될 때 거대 단체에 의존하지 않고 행동할 역량을 갖게 됐다.
이런 변화는 ‘시민단체’로 절대 축소될 수 없는 한국 시민사회의 발전상과 새로운 잠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민 활동의 제도적 장이 점점 더 분화되고 다양화되는 과정에서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계승한 시민운동단체들의 문제와 전혀 다른 새로운 문제와 극복할 과제가 생겨났다는 점을 또한 주목해야 한다.
우선 시민 활동과 조직형태의 다양화와 분화가 계속되면서, 시민사회의 전체 장 안에서 현 사회질서에 대해 더욱 근본적인 비판과 개혁을 추구하는 운동의 상대적 위상이 과거보다 약화했다. 물론 최근 페미니즘 운동이나 기후행동이 활발해지는 등 의제에 따라 차이와 변화 주기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사회운동 부문의 규모와 영향력이 작아졌다.
또한 그동안 빠르게 팽창한 사회적경제나 민관협력 거버넌스처럼 시민사회가 시장 또는 정부 논리와 혼합되는 ‘제도적 접경지대’에서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정체성이 위협받는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지원은 정부의 산업·고용·복지 정책으로서 성격이 강했다. 정부가 주도하고 시민은 그에 종속되기 쉬운 구조이다.
정부·기업 견제할 역량 키워야
거버넌스 역시 중앙정부-광역-기초단위로 내려오는 상명하달식 민간지원 또는 위탁사업 성격이 많기에 시민 주도적 협치가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중앙정치에서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 여러 정책이 나와도 공공과 시민의 접촉면에서 공무원은 시민 활동의 가치와 특성을 인식도 인정도 못하면서 성과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시민단체의 전문화, 제도화, 엘리트 네트워크가 1987년 민주화 이후 급성장한 1세대 시민단체의 내재적 위험을 발생시켰다면, 2000년대 이후 확장된 다양한 새로운 영역은 정부와 지자체, 기업과 주체적 관계를 맺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기반, 자율적 역량을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