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학교는 편의점처럼 생각하고 자기 책임은 뒷전...정부 차원 대책 지속돼야”
“학부모, 학교는 편의점처럼 생각하고 자기 책임은 뒷전...정부 차원 대책 지속돼야”
오노다 마사토시 오사카대 명예교수 인터뷰
< 조선일보, 최은경 기자, 2023.09.29. >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교원단체들은 앞다퉈 교권 침해 사례를 수집해 공개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지난달 공개한 ‘교권 침해 사례 모음집’도 그 중 하나다. 총 121쪽에 달하는 사례 모음집에는 교사들이 교실 안팎에서 겪어야 했던 고충 1만1628건이 고스란히 담겼다.
놀라운 점은 제보 접수된 교권 침해 피해 사례 71.8%(8344건)의 주어가 ‘학부모’였다는 사실이다. 지난 두 달간 ‘학부모의 악성민원’은 교사를 우울증에 빠뜨리고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가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요즘 학부모들은 왜?”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이 질문에 답을 찾고자 일본판 교권 침해 전문가 오노다 마사토시(68) 오사카대 명예교수(교육학)를 최근 전화 인터뷰했다. 자녀를 앞세운 학부모의 악성민원 문제는 이웃나라 일본이 20년 전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교사를 괴롭히는 학부모를 지칭하는 ‘몬스터 페어런츠’라는 단어도 널리 쓰였다. 오노다 교수는 이 같은 학부모 민원을 둘러싼 교육 현장 갈등을 2000년 처음으로 논문으로 발표했던 인물이다. 이후에도 교육 현장을 직접 찾아 교권 침해 피해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다.
오노다 교수는 “악성 민원은 학부모·교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며 “정당한 요구와 악성 민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악성민원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정부가 이 문제를 교사와 학교 현장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며 “교사 당사자들과 정부가 대응책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점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전망이 밝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학부모의 악성 민원 문제는 왜 나타났을까.
“가장 큰 이유는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성숙해서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엔 ‘학교에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학교는 마땅히 있어야 할 당연한 존재’다. 학교·교사를 대상으로 한 학부모의 민원, 요구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국가의 복지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학교와 같은 기관이 편의점처럼 빨리, 편리하게, 무엇이든 다 해주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사회에 급속히 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본래 가정·보호자가 책임져야 할 자기 아이의 일조차 학교·교사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주말 학교 밖에서 아이가 사고를 쳐도 그 책임을 ‘지도를 제대로 안 한 학교·교사’에 돌리는 게 현실이다. 청소년에게 무슨 일만 생기면 정부, 국회의원, 교육계, 언론 너나 할 것 없이 ‘학교의 책임’을 찾는 것도 문제다. 학부모도 똑같이 자기 책임을 돌아보지 않고 학교·교사의 책임만 찾기 때문이다. 한국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몬스터 페어런츠’라는 표현도 널리 쓰인다.
“학부모를 ‘몬스터’라고 부르는 건 맞지 않는다. 애초에 미국에서는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를 지칭하려고 만든 단어다. 또 학부모라는 집단 전체를 악마화 해봐야 이 문제 해결엔 도움도 안 된다. 사실 학부모의 요구 전부가 ‘악성민원’인 건 아니다. 나는 학부모의 요구를 ①교사가 꼭 들어야 할 정당한 요청 ②듣고 대응 가능한 수준의 불만 ③무리한 악성 민원 등 세 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개념을 명확히 하려면 연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악성 민원’으로 분류되는 학부모 요구에는 교사가 ‘그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거절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교사에 대한 학부모 악성 민원 문제, 일본에선 해결됐나?
“해결되지 않았다. 학부모의 행동력, 에너지를 학교·교사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요즘은 인터넷에서 ‘학교에 민원 하는 법’을 배우고 정보도 공유한다. 일본 정부 대응도 문제다. 학교 내 문제는 학교 세운 사학법인이나 지역자치단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으로 발을 빼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학부모 악성 민원에 대응하는 방식이 지역별로 다 다르다.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기도 어렵다. 2005년 문부과학성(일본의 ‘교육부’에 해당)을 직접 찾아가 정부 차원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최근엔 ‘학교 변호사’ 제도도 도입됐다. 하지만 잘 안 된다. 변호사 상담료가 1시간 2만엔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 예산으로는 1시간 상담 받는 게 고작이다. 이러면 변호사도 교사·교장의 이야기를 듣고 몇 마디 자문해주는 게 전부다.”
-학부모의 악성민원 현상이 일본 교육계엔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일본 학교는 심각한 교원 부족 문제에 시달린다. 교사를 구하고 싶어도 교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일본 교사는 수업, 아날로그 방식의 행정업무, 동아리 활동 지도 등 너무 많은 일을 맡아 노동시간이 길다. 잔업 수당이 제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교사-보호자 사이의 갈등도 교사가 기피직업이 된 이유 중 하나다. 2000년대 수 차례 교사를 대상으로 업무 실태 조사를 실시했는데, 장시간 노동과 보호자 대응이 교사를 괴롭게 하는 이유로 꼽혔다.”
-일부 학부모가 교사를 대하는 방식,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
“일부 학부모들의 태도는 자기 자녀에게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악성 민원 내용을 살펴 보면, 그 뿌리에 지나친 ‘내 아이 중심주의’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기념사진 가운데에 우리 아이를 세워달라’, ‘동아리에서 우리 애가 활약할 기회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이런 부모들은 사실 자녀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하기보단, 자신의 액세서리처럼 취급하곤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선 자녀도 자립심을 기를 기회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호자들의 이런 ‘내 자식 중심주의’가 강해지고, 악성민원 수준도 황당해지고 있어 문제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한국 정부는 어떤 대응책을 내놔야 할까
“안타깝지만 이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특효약은 없다. 먼저 한국 교육학자, 사회학자들이 이번 사건을 지금 이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하고 연구해야 한다. 왜 한국의 학부모들이 교사에 과도한 요구를 반복하는지, 일부는 왜 수사기관에 신고까지 반복하는지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학부모 개인의 인격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문화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이걸 찾고 개선해야 한다. 사실 교육계에선 학생의 문제만 늘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따돌림, 등교거부, 학교폭력 등은 큰 문제로 인식하고 깊이 연구하려 하지만, 교사의 스트레스 등은 교사 개인의 문제로 여기고 넘어가기 일쑤다.
정부가 책임지고 대응한다는 의지도 중요하다. 교사가 해결할 수 없는 학부모의 요구는 교장·교감이 대신 맡도록 정부가 분명히 정리를 해줘야 한다. 교장·교감 등 단위 학교가 대응하기 어렵다면, 지역 교육지원청과 교육청이 나서줘야 한다.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무시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중간에서 지속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일본보다 교사를 대상으로 한 고소 사건이 많은 한국의 특성을 고려해, ‘학교 변호사’ 등 법률 자문 지원 제도가 안착될 수 있도록 꾸준히 예산을 확보하고 지원해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의 소통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한가
“한국 교육부가 학교 내 ‘민원전담팀’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방식에 찬성한다. 학부모를 담임교사 1명이 상대하게 내버려두기 보단, 관리자급인 교장·교감이 전담하는 방향이 맞는다. 다만 인력을 추가로 보충해줘야 할 것이다. 또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교육상담·심리상담 교사도 전담팀에 포함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소통기구를 학교 밖, 즉 지역 교육청 단위로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는 절차를 늘려봐야 결국은 학부모의 화만 돋운다. 그 피해는 담임교사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교사들에게 조언한다면?
“20년째 전국 학교를 찾아 학부모-교사 트러블 문제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교사를 만날 때마다 나는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한다. 교사들 대부분은 학창시절 부모·교사의 말을 잘 듣고, 성실하게 공부했던 모범생들이다. 그렇다 보니 학부모의 악성민원에도 ‘NO’를 말하지 못한다. 자기 일이니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사도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학부모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입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교장·교감, 지역 교육청에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라고 해도 된다. 교직이나 삶 자체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래도 한국은 교사들끼리 집단 행동을 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도 교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책을 한 달 만에 발표했다. 20년 전 일본에선 없었던 일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의 사회적 의지가 크다는 건 대단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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