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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백신의 어머니’ 커털린 커리코

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23. 10. 10. 09:41

‘2류 시민’ 취급 받던 계약직의 인생 역전…엄마는 노벨상, 딸은 올림픽 金
[테크노 사이언스의 별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백신의 어머니’ 커털린 커리코

< 조선일보, 박건형 기자,  2023.10.10.  >

 


1928년 여름휴가를 마치고 연구실을 찾은 스코틀랜드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특이한 푸른 곰팡이를 발견했다. 실수로 열어놓은 배양 접시 안에서 자란 이 곰팡이는 플레밍이 연구하던 포도상 구균을 파괴하고 있었다. 인류가 첫 항생제이자 ‘20세기 최고 발명품’이라는 페니실린을 얻게 된 순간이었다. 플레밍 사례처럼 세상을 바꾸는 혁신은 뜻밖의 행운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1997년 펜실베이니아 의대 전염병 학과장으로 갓 부임한 드루 와이스먼과 계약직 여교수 커털린 커리코(Katalin Kariko·1955~)의 만남도 우연이었다. 전혀 다른 부서의 두 사람은 학교 복도의 제록스 복사기 앞에서 자주 마주쳤다. 도서관에서 논문을 구해 일일이 복사하던 시절이었고, 두 사람은 비슷한 시간에 먼저 복사기를 차지하려는 경쟁을 벌이다 친해졌다. 와이스먼은 에이즈를 비롯한 바이러스 연구에 단백질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와이스먼에게 커리코가 말했다. “당신이 하려는 일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에요.” 이 대화가 생명공학과 의학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둘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타임 '100인의 인물'에 선정된 커리코 -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타임 '100인의 인물'에 선정된 커털린 커리코(오른쪽)와 딸 수전 프랜시아. 어머니가 연구원으로 일했던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한 프랜시아는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올림픽 조정 금메달리스트이다.  

 

 

 


◇미국행 편도 티켓과 전 재산 147만원

커리코는 헝가리 커르처그의 가난한 정육점 딸로 태어났다. 갈대로 지붕을 얹은 흙벽돌 빈민가 집은 냉장고와 텔레비전이 없음은 물론 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커리코가 기댈 곳은 공부뿐이었다. 8학년 때는 헝가리 생물 올림피아드에서 3위를 차지했다. 1978년 세게드대에서 생물학 학사를 받았고, 1982년에는 유전 물질 리보핵산(RNA)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헝가리 생물학 연구센터(BRC)에서 일할 때 커리코는 헝가리 비밀경찰 정보원이었다. 그는 “회사에서 해고하겠다거나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면서 “실제로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의 연구실은 1985년 연구비 지원 중단으로 문을 닫았다. 유럽 대학 문을 두드렸지만 누구도 답을 주지 않자 미국행을 결심했다. 커리코와 남편은 차를 팔아 편도 비행기 표를 사고 나머지 돈은 두 살짜리 딸의 곰 인형 배에 넣어 밀반출했다. 당시 공산 국가인 헝가리에서 100달러 이상 해외 반출은 금지돼 있는 시절이었다. 900파운드(약 147만원)가 당시 이 가족의 전 재산이었다. 커리코는 손수 꿰맨 이 곰 인형을 아직도 딸의 방에 보관하고 있다.(훗날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한 딸 수전 프랜시아는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올림픽 조정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커리코는 템플대에서 3년간 일하며 전공인 RNA를 활용해 에이즈, 혈액 질환 등을 치료하는 임상 시험에 참여했다. 도서관이 오후 11시에 문을 닫을 때까지 논문을 읽다가, 친구 집에서 자거나 사무실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들었다. 아침 6시부터 실험을 시작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고 결국 계약이 해지됐다.


◇아메리칸 드림 꿨지만

메릴랜드의 미국 국립군의관의대를 거쳐 1989년 펜실베이니아 의대로 자리를 옮겼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부교수 직함을 달았지만 정규직 교수에게 고용된 계약직이었다. 의사가 주류인 의대에서 이학 박사 커리코는 ‘2류 시민’ 취급을 받았다. 동료였던 데이비드 랭어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이민자이자 여성 과학자라는 점이 모두가 커리코를 간과하게 만들었다”면서 “그는 학내 정치나 연구비보다는 과학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커리코는 실험광이었다. 동료들에게 “실험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당신의 기대가 실수할 뿐”이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자주 들려줬다. 1995년 학교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학교는 커리코에게 정교수직을 제안하면서 메신저 리보핵산(mRNA) 연구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mRNA를 고집하면 연구원으로 강등하고 연봉은 절반 줄이겠다고 했다. 당시 과학계에서 mRNA는 계륵(鷄肋) 같은 존재였다. 1961년 프랑스 과학자들이 생체 내에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mRNA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혔다. 질병과 싸우거나 예방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가능성에 수많은 과학자가 뛰어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사람 몸이 외부에서 들어온 mRNA를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여기고 염증을 비롯해 강력한 면역반응을 일으켰다. 커리코를 비롯한 극소수만 mRNA의 가능성을 믿었지만 1990년대에는 아예 연구비 지원조차 끊겼다. 커리코는 승진 대신 강등과 연봉 삭감을 택했다. 모두 ‘멍청한 선택’이라며 비웃었다. 영주권도 없었고, 대학생 딸의 학비도 마련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뉴욕타임스는 “커리코는 실험실을 옮겨다니며 계약했지만, 연봉은 6만달러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와이스먼과 공동 연구로 돌파구 찾아

1995년은 커리코의 굴곡진 인생에서도 유독 잔인한 해였다. 아파트 관리인이던 남편이 미 영주권을 받으러 헝가리에 갔다가 문제가 생겨 돌아오지 못하는 사이 커리코는 암 진단을 받고 두 차례 수술을 견뎌야 했다. 끝없는 고난 속에서 1997년 우연히 와이스먼을 만나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실험실에서는 얼마든지 원하는 단백질을 유도하는 mRNA를 만들 수 있었지만, 동물실험은 번번이 실패했다. 해결책을 찾는 데 8년이 걸렸다. 2005년 RNA의 한 종류인 전달RNA(tRNA)를 이용해 면역반응을 회피하는 mRNA 합성법을 찾아낸 두 사람은 특허를 등록하고 논문을 썼다. 사이언스, 네이처 등 저명 학술지들은 연구 성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게재를 거부했다. 결국 ‘이뮤니티(면역)’에 발표한 논문조차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몇 년 뒤 스탠퍼드대 박사 후 연구원 데릭 로시가 이 논문을 읽고 사업을 구상했다. 로시는 하버드와 MIT의 교수들, 벤처 투자자를 찾아다니며 mRNA로 백신과 치료법을 만드는 거대한 사업 구상을 설명했다. 생명공학계 창업의 아이콘 로버트 랭어 MIT 교수가 앞장섰고, 불과 1년 만에 3억5000만달러가 넘는 투자금이 모인 이 회사 이름은 모더나였다. 

 

모더나 탄생을 본 커리코와 와이스먼은 mRNA를 상용화하겠다는 독일 스타트업 바이오엔테크에도 특허 라이선스를 줬다. 충분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 커리코는 2013년 학교에 교수 신분 복원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사실상의 해고 통보였다. 커리코는 바이오엔테크 부사장으로 이직을 결심하고, 학교에 “떠나겠다”고 통보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그 회사는 홈페이지도 없어요”라며 조롱했다.

 


◇”그의 집착이 인류를 구했다”

모더나와 바이오엔테크의 목표는 mRNA로 암 면역 치료, 심혈관 및 대사 질환 치료제 같은 의약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단숨에 세계 바이오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성과가 없자 바이오엔테크는 차선책으로 화이자와 인플루엔자 mRNA 백신 개발 파트너십을 맺었다. 가능성을 낮게 본 화이자는 연구비조차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몇 년 뒤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바꿨다. 펜데믹에서 mRNA 백신이 구세주로 떠올랐다. 모더나는 임상에 필요한 백신을 25일 만에 만들었다. ‘빛처럼 빠른 개발’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최소 4년이 걸리는 종전 방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은 “수십 년에 걸친 커리코의 집착이 백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코로나 백신 개발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이 억만장자가 됐지만 ‘백신의 어머니’ 소리를 듣게 된 커리코의 선택은 달랐다. 커리코는 지난해 바이오엔테크를 떠나 세게드대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mRNA로 모든 질병을 극복하는 것이 꿈이라는 이유였다. 커리코와 와이스먼의 mRNA 기술을 현재 의학·바이오 업계에서는 ‘게임 체인저’라 부른다. 내년에 mRNA 독감 백신이 등장하고, 암과 에이즈 백신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일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위원회는 커리코와 와이스먼을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뉴욕타임스는 “두 사람은 세계적으로 수십억 회 투여한 코로나 백신의 전례 없는 개발 속도를 이끌었고, 암과 같은 수많은 치명적 질병에 걸린 인류를 구하는 백신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했다. 커리코는 “2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가을마다 ‘네가 노벨상을 받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면서 “그때마다 ‘난 연구비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던 이민자이자 여성인 무명 과학자가 30년간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만둬라’ ‘포기해라’였다. 커리코는 “’난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고 했다. 미련할 정도로 고집한 그의 신념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고, 앞으로 구하게 될까.

☞mRNA(메신저 리보핵산)

DNA(유전자) 유전 정보를 복사해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인 리보솜에 전달하는 물질. 신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설계도 역할을 한다. mRNA의 정보 전달 원리를 응용하면 바이러스 항체 등 원하는 단백질을 우리 몸에서 만들 수 있다. 커털린 커리코는 외부에서 주입한 mRNA를 사람의 몸이 이물질로 여기지 않게 하는 방법을 개발해 노벨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