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꽃 _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2018. 11. 4. 08:18

슈카쓰(終活)

지난달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사회면의 작은 광고 하나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일본 건설기계 분야 대기업인 고마쓰의 안자키 사토루(安崎曉·사진) 전 사장이 ‘생전 장례식’을 치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손바닥만 한 광고에는 “10월 초 암이 발견돼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안자키 전 사장의 고백이 담겨 있었다. 그는 “연명 효과가 조금 있겠지만 부작용 가능성도 있는 방사선이나 항암제 치료는 받고 싶지 않다”며 “아직 건강할 때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강조한 것은 “남은 시간 동안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우선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3주 뒤인 지난 11일 도쿄 시내 한 호텔에서 ‘감사의 모임’이라는 이름의 생전 장례식이 열렸다. 한 시간 전부터 회사 관계자, 학교 동창생 등 지인 약 1000명이 모였다. 모임은 안자키 본인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했다. 신문 광고의 문구, 날짜, 형식도 직접 정했다. 식장은 지인들과 추억이 담긴 사진으로 꾸며졌다. 중앙 스크린엔 안자키 전 사장이 중국 TV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영상, LA 다저스의 마이크 피아자 선수와 기자회견을 했던 영상 등 안자키 전 사장의 현역 시절 활약상이 흘렀다. 그의 출신지인 도쿠시마(德島)현의 전통춤 공연도 펼쳐졌다. 안자키 전 사장은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감사 편지’를 통해 “반년 전까지만 해도 건강한 생활을 즐겨온 제가 예기치 못한 암 진단을 받았다. 남은 수명은 오직 신만이 알겠지만 아직 건강할 때 여러분에게 감사의 기분을 전하고 싶을 뿐”이라고 밝혔다. 

휠체어를 탄 안자키 전 사장은 테이블을 돌면서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했다. 그의 대학 후배라는 한 남성은 “자신의 인생을 인간관계를 통해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안자키 전 사장은 올해 여든 살. 히토쓰바시대 졸업 후 1961년 고마쓰에 입사해 국제 부문을 주로 담당해왔다. 95년 사장에 취임한 뒤 회장을 거쳐 2005년 현역에서 물러났다.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장례식 뒤 기자회견에서 “‘슈카쓰(終活·죽음을 준비하는 활동)’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삶을) 마감하듯 하는 게 싫어서 다같이 즐거울 수 있는 모임을 열었다. 많은 사람이 와줘서 솔직히 조금 피곤하기도 했지만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어 “죽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인생을 충분히 즐겨왔고 수명에도 한계가 있다.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는 것은 내 취향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문 광고에서 밝힌 ‘삶의 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건강하게 걸을 수 있으면 되는 건지, 암이 나으면 되는 건지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마음, 능력, 신체(心·技·體)’의 정신으로 내 나름의 목표를 갖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안자키 전 사장의 ‘생전 장례식’은 일본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전에도 유명인이 ‘생전 장례식’을 치른 사례는 있었지만 주로 연예인들이 이벤트 형식으로 여는 경우였다. 그러나 안자키 전 사장의 사례는 ‘슈카쓰’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로 확대되고 있다. ‘생전 장례식’에 온 참석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고마쓰의 전 사원이라 밝힌 한 남성은 “정말 즐거운 모임이었다. 나도 병이 있는데 삶의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정말 깔끔한 삶의 방식으로 안자키답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는 참석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