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
(죽영소계진부동 월천담저수무흔)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고
달빛이 못 바닥을 뚫어도 물에는 자취가 남지 않네

☞ 야보도천(冶父道川),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중에서 


- 뒷부분의 月穿潭底水無痕은 문헌마다 약간씩 다르게 나오고 있다.  일례로, 송나라 때의 선승(禪僧) 대전료통(大顚了通) 화상의 <주심경(注心經)>에는 "月輪穿海水無痕"으로 나온다.
- 송대 임제종(臨濟宗) 황룡파(黃龍派)의 도솔종열(兜率從悅) 선사는 "月光穿海浪無痕"이라 말하고 있다. 이 밖에 "月輪穿沼水無痕"도 눈에 띈다
- ≪채근담(菜根譚)≫에는 月輪穿沼水無痕으로 나온다. 또한 옛 선비(儒家)의 말임을 밝히면서 아래와 같이 대구(對句)하고 있다.

 

- 채근담(菜根譚) - 후집 [제63장]  
  
高德 云

竹影掃階 塵不動  
月輸穿沼 水無痕 

 吾儒 云 

水流任急 境常靜
花落雖頻 意自閑

人 常持此意 以應事接物 身心 何等自在

옛 고승(高僧)이 이르기를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다" 했고,

 옛 선비도 말하기를

"물의 흐름이 빨라도 경계(境界)는 항상 고요하고,

 꽃이 떨어짐이 비록 잦아도 뜻은 스스로 한가롭다." 하였으니,

사람이 항상 이런 뜻을 가지고 사물에 응접(應接)한다면 몸과 마음이 얼마나 자유로우랴.

 

 

 

 

1. 원래는 선수행을 하는 납자(衲子)가 타성일편(打成一片)하여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이르렀을 때의 자세를 읊은 것이라 한다. 참선에서 화두(話頭)와 온갖 의심(疑心), 호흡(呼吸)과 번뇌망상(煩惱妄想)까지 모두 화두를 중심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합쳐지는 상태를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한다.

 

2. 시구에서와 같은 편안한 마음 상태를 가질 수 있다면 그 경지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경지이다. "자신의 능력[光]을 숨기고[韜] 어둠 속에서[晦] 감춘다[養]"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경지는 내가 일생 추앙하는 좌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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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世說新語] [639] 선모신파(鮮侔晨葩)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2021.09.09)

 

 


추사 김정희의 현판 글씨 '선모신파(鮮侔晨葩)'.  20009년 당시 서울 관훈동 우림화랑이 근대 고서화 작품 140점(글씨 55점, 그림 75점)으로 '묵향천고(墨香千古)-신록의 향연' 전을 열 때 공개된 사진. (우림화랑)

 


글씨도 글씨지만 적힌 내용에서 쓴 사람의 학문과 품격을 만날 때 더 반갑다. 어떤 작품은 필획에 앞서 글귀로 먼저 진안(眞贋)이 판가름 나기도 한다. 추사의 ‘선모신파(鮮侔晨葩)’ 현판을 보았을 때 그랬다. 찾아보니 이 구절은 진(晉)나라 속석(束皙)의 ‘보망시(補亡詩)’ 연작 중 ‘백화(白華)’ 시의 제3연에 들어있다.

“백화의 검은 뿌리, 언덕 굽이 곁에 있네. 당당한 아가씨는 꾀함 없고 욕심 없어. 새벽 꽃처럼 고와, 더럽힘 입지 않네(白華玄足, 在丘之曲. 堂堂處子, 無營無欲. 鮮侔晨葩, 莫之點辱).” ‘신파(晨葩)’는 이른 새벽에 이슬 맞고 피어난 꽃이다. ‘모(侔)’는 본받다, 가지런하다의 뜻이다. 글자로 풀면 곱기가 새벽 꽃과 똑같다는 의미다. 이슬에 젖어 갓 피어난 언덕 모롱이의 꽃을 보고, 욕심도 없고 속셈을 모르는 천진한 처녀의 순결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에게는 조금의 더러움도 범접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앞쪽 제2연은 멋진 선비에 관한 노래다. “백화 붉은 꽃받침은, 언덕의 모퉁이에. 어여쁜 선비님은 흙탕에도 물들잖네. 정성과 공경 다해, 힘써 노고(勞苦) 잊는구나(白華絳趺, 在陵之陬. 倩倩士子, 涅而不渝. 竭誠盡敬, 亹亹忘劬).” 붉은 꽃받침을 단 흰 꽃이 언덕 모퉁이에 피었다. 멋진 선비가 진흙탕 속에서도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그는 진심의 사람이어서 부지런히 힘을 쏟아 공부하고 일하면서도 힘든 줄을 모른다.

한종규(韓宗揆)는 권두경(權斗經·1654~1725)을 애도한 만사에서 이렇게 썼다. “유곡(酉谷)의 새벽 꽃 깨끗도 하니, 이 노인의 맑은 기운 모인 것일세. 회포는 환하기가 옥과 같았고, 문채는 빛남이 용과 같았네(酉谷晨葩潔, 斯翁淑氣鍾. 襟期瑩似玉, 文采燁如龍).” 이렇듯 새벽 꽃 같다는 말은 고결함을 나타내는 최고 찬사다.

긴 밤을 지새우고 이슬에 함초롬 젖어 꽃망울이 부픈다. 티끌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질 것만 같다. 발 아래 세상이 아무리 진창이어도 그를 더럽히지는 못할 것이다. 추사는 이 글씨를 써주면서 글씨를 받는 사람에게 당신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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