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空) : 위기에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후흑의 비결을 묻기에 나는 몇 가지 비술을 말해 주었다. 첫 번째가 ‘공空’ 자 비결이다. 이는 원래 한가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오직 한 가지 일에 전념하며 인내심을 갖고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오늘 효과가 없으면 내 일이 또 오고, 금년에 이루지 못하면 내년이 또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만한다.
또한 ‘공(空)’ 자는 일을 처리할 때 내용이 없을지라도 외관만큼은 그 야말로 엄격하고도 신속하게 처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때 반드시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상황이 불리하다고 여겨지면 그 길로 도망가면 되기 때문에 절대로 붙잡힐까 염려 할 필요가 없다. 교토삼굴을 명심하라.

 

 

2. 공(貢) : 반룡부봉하되 역린을 조심하라

 

‘공貢’ 자는 사천의 속어로 권세에 빌붙는다는 북경 표준어 '찬영(鑽營)’의 ‘찬’ 자와 같다. 관직을 구하려면 권세에 빌붙어야 한다는 것쯤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이 “기본 취지는 구멍이 있으면 반드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해 내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틀렸소. 반만 언급했을 뿐이오. 만일 구멍이 있어야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면 구멍이 없을 경우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말이오?”


내가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다.

 

“구멍이 있으면 반드시 비집고 들어가고, 구멍이 없으면 뚫어서라도 들어가야 한다. 구멍이 있는 자는 그것을 확대하고 구멍이 없는 자는 송곳을 꺼내 새로 구멍을 뚫어야 하는 법이다.”

 

*반룡부봉(攀龍附鳳) : 용의 비늘을 휘어잡고 봉황의 날개에 붙었다는 뜻으로 훌륭한 사람에 붙어 출세한다는 것을 의미

 

 

3. 충(沖) : 호언장담으로 기선을 제압하라

 

‘충'은 보통 허풍 떤다는 의미의 ‘취우(吹牛, 입김을 불어 소를 날리다)’를 뜻하는데 사천 방언으로는 충모각자(沖帽殼子)라고 한다. 허풍 떠는 재주는 두 종류가 있다 말재주로 하는 것과 글재주로 하는 것이 그것이다. 말로 하는 것은 다시 일반적인 장소에서 하는 것과 상관 앞에서 하는 것으로 구별된다. 글로 할 때도 신문과 잡지를 이용할 때와 편지나 진술서를 이용할 경우로 나뉜다.

 

 

4. 봉(捧) : 박수갈채로 자부심을 만족시켜라

 

‘봉’은 무대의 배우에게 갈채를 보낸다는 뜻의 '봉장(捧場)의 ‘봉’이다. 《삼국지연의》를 다룬 경극에서 조조가 나타날 때 화흠이 보여 주는 거동이 좋은 예다.

 

 

5. 공(恐) : 솜에 바늘을 숨기고 때를 노려라

 

 ‘공(恐)’ 자는 협박한다는 뜻이다. 그 이치는 아주 심오하다. 어떤 사람은 남을 추켜올리는 짓을 수십만 번이나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은 바로 협박하는 수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느 자리에 있는 사람이 건 모두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런 사람의 급소를 찾아 가볍게 찌르기만 해도 그는 질겁하고 놀라서 당장 관직을 내줄 것이다.


후흑을 배우는 자는 반드시 협박과 아첨을 함께 병행할 줄 알아야 한다. 협박을 잘하는 자는 상대방을 치켜세우면서 은근히 위협을 가한다. 옆 사람이 보기에 그가 상관 앞에서 하는 말은 구구절절이 아첨하는 소리 같지만, 사실은 암암리에 급소를 찌르기 때문에 상관은 그 말을 들을 때 등에서 식은 땀이 나기 마련이다.


아첨을 잘하는 자는 상관을 협박하는 가운데 치켜 세운다. 옆 사람이 보기에 그가 오만하게 도끼눈을 부릅뜨고 하는 말이 상관을 탓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오히려 당하는 쪽은 뼈마디가 늘어질 정도로 기뻐하며 편안해 한다. 중요한 것은 협박을 할 때 적당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도가 지나치면 상관이 수치심을 느낀 나머지 분개하여 맞서고 나설 테니 어찌 협박의 기본 취지에 부합한다고 하겠는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절대 협박을 가벼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

 

 

6. 송(送) : 비자금을 활동자금으로 활용하라

 

'송送’ 자는 크고 작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크게는 현찰이나 수표 뭉치를 보내는 것을 뜻하고, 작게는 식사를 대접하거나 요릿집에서 한 턱내는 것 등을 말한다. 뇌물을 받는 자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자신에 대한 임면권을 쥐고 있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임면권을 쥐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이다.

 

 

7. 공(恭) : 사람을 가려 때에 맞게 칭찬하라

 

‘공(恭)’ 자는 마치 관절이 없는 인간인 양 비굴할 정도로 아첨하고, 상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헤헤거리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직접 •간접 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직접적인 방법은 상관에게 직접 하는 것을 말 하고, 간접적인 방법은 상관의 친척과 친구, 고용인이나 첩 등과 같이 상관의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것을 말한다.

 

 

8. 붕(繃) : 큰 인물로 포장해 신뢰케 만들라

 

‘붕(繃)' 자는 속어에서 ‘뻣뻣하게 군다’는 뜻으로 ‘공(恭)’ 자와 대비되는 말 이다. 이는 아랫사람과 백성들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데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외관상 위엄을 갖춘 큰 인물이라는 인상을 풍겨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또 하나는 어투를 통해 흉중에 큰 뜻을 지닌 위대한 인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9. 농(聾) : 귀머거리 흉내로 속셈을 감추라

 

‘농(聾)'자는 귀머거리와 벙어리처럼 처신하라는 뜻이다. '비웃고 욕하려 거든 마음대로 해라. 그러나 좋은 자리는 모두 내 것이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만 농(聾) 자에는 장님의 뜻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남이 헐뜯고 비방하는 글을 쓰더라도 눈감고 못 본 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1. 구천이 와신상담으로 부차를 제압하다


월왕 구천은 회계싸움에서 진 뒤 스스로 오왕 부차의 신하가 되었다. 그의 처는 부차의 첩이 되었다. 이것이 구천이 구사한 ‘면후’의 비결이다. 구천은 후에 거병하여 오나라를 깨뜨렸다. 부차는 사람을 보내 통곡하며 자신은 신하가 되고 부인은 첩이 되겠다고 빌었으나 구천은 조금도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당시 그의 입장에서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부차를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구천이 구사한 ‘심흑’의 비결이다. 후흑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면후가 나온 뒤 심흑이 뒤따라야 한다.

 

 

2. 유방이 임협의 무리와 항우를 깨뜨리다

 

유방은 천부적 자질이 있는 데다 경륜 또한 깊었다. 그는 세속에서 말하는 오륜은 물론 예의염치 따위를 깨끗이 버렸기 때문에 군웅을 능히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사기》에 따르면 항우가 유방에게 이같이 제의한 적이 있다.
“천하가 흉흉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제 나와 당신 두사람뿐이니 당신과 겨뤄 자웅을 가리고자 한다.”
이때 유방이 웃으며 이같이 대답했다.


“나는 지혜를 겨룰지언정 힘을 다툴 생각은 없소!”


유방은 항우가 자신의 부친을 인질로 잡아 삶아 죽이겠다고 하자 오히려 태연하게 그 국 한 사발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 했다. 그는 또 초나라 병사에게 쫓길 때 수레의 무게를 덜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세 번이나 마차에서 떠밀어내려고 했다. 그가 후에 또 천하를 얻은 뒤 한신을 죽이고 팽월을 죽인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격언에 따른 것이다.


‘새를 잡으면 활을 광 속에 넣어두고,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그러니 어찌 부인지인(婦人之仁: 부인의 어짊)과 필부지용(匹夫之勇; 필부의 용맹)을 지닌 데 불과한 항우가 유방의 심사가 어떠했는지를 꿈엔들 알 수 있었겠는가? 유방의 뻔뻔함과 음흉함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특별히 달랐다. 특히 속마음이 시꺼멓기로 말하면 대략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러워 마음 내키는 바대로 해도 결코 시꺼먼 속마음의 법도를 어긋 난적이 없다’고 요약할 수 있다.

 

원래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刀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의 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왜 모든 사람들이 흐느끼며 만류하는 데도 불구하고 동성에서 죽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을까? 그가 실패한 원인은 한신이 지적한 바와 같이 ‘부인지인, 필부지용’이라 는 여덟 자에 함축돼 있다. ‘부인지인’은 곧 불인을 참지 못하는 것으로, 그 병의 근원은 속마음이 시꺼멓지 못한 데 있다. '필부지용’은 수모를 참지 못하는 것이니 그 병의 근원은 뻔뻔하지 못한 데 있다. 항우는 홍문지연에서 같은 좌석에 앉아 있던 유방의 목을 검을 빼 과감히 쳤으면 '지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후세에 욕을 먹을까 두려워 망설이다가 결국 유방이 도주하도록 방치했다. 그가 해하의 싸움에서 패했을 때에도 만일 오강을 건너 권토중래를 노렸다면 아직 천하가 누구의 수중에 떨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낱 이같이 말했을 뿐이다.


“나는 강동의 자제 8천 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왔으나 지금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으니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가련히 여겨 용서해준다 한들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랴. 그들이 비록 말을 안 한 다 할지라도 내 어찌 이를부끄럽게 여기지 않겠는가?”


이 말은 참으로 보통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는 일면 ‘사람을 볼 면목이 없다’고 하고, 일면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잘난 사람의 체면이 다 뭐고 그 고매한 인품이 또 뭐란 말인가?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런 소견에 대해 좀 더 검토할 생각도 없이 이런 유언을 남겼을뿐이다.


“이는 하늘이 나를 멸망시키려는 것이지 내가 결코 싸움에 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마 하늘도 그의 이런 잘못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장량이 <육도삼략>으로 한신을 도모하다

 

유방의 스승은 한나라 개국 3걸 중의 한사람인 장량이다. 장량의 스승은 ‘다리 위의 노인’이다.


노인은 흙다리 위에서 책을 한 권 전해줄 때까지 장량을 여러 차례 시험했다. 이는 소동파의 《유후론에도 그렇게 쓰여 있듯이 장량에게 뻔뻔해지는 것을 가르친 것일 뿐이다. 장량은 재주를 타고 난 사람으로 하나를 가르치면 곧바로 열을 깨달았다. 노인은 그가 장차 ‘제왕의 스승’이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우둔한 사람은 이런 최고의 비결을 결코 터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사기에는 이같이 나오고 있다.

 

“장랑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는데 오직 유방만이 그를 높이 평가하고 따르자 ‘패공은 거의 하늘이 내린 인물이다’라고 칭송했다.”


물론 현명한 스승을 얻기도 힘들지만 좋은 제자 역시 만나기 힘든 법이다. 한신을 제나라 왕에 봉할 때 유방은 그의 스승 격인 장량의 조언이 없었다면 자칫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유방은 제나라를 평정한 한신이 사신을 보내 제나라 왕에 봉해줄 것을 요구했을 때 한신이 자립하려는 의도라고 분개하며 큰 소리로 사신을 질타했다. 이때 장량과 진평이 유방의 발을 밟고 그를 제지했다. 이는 마치 요즘학교에서 학생이 문제를 풀 때 선생님이 옆에서 고쳐준 것과 한가지였다.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유방도 때로 차질이 있었으나 곧바로 스승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후흑에 능통한 그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유방과 항우가 다투던 시절, 뻔뻔하기는 했으나 음흉하지 못해 결국 실패한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한신이다. 그는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 가는 모욕을 능히 참았다. 뻔뻔한 정도가 유방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속마음이 시꺼먼 점에서는 아직 훈련이 덜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만일 제나라의 왕이 됐을 때 괴철의 말을 들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존귀한 자리에 올랐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옷을 벗어 입혀주고 밥을 먹여준’ 유방의 은혜가 못내 마음에 걸린 나머지 경솔하게 이같이 말했다.


“남의 도움으로 옷을 입은 자는 그 사람의 어려움을 걱정해야 하고, 남의 도움으로 먹고사는 자는 그 사람의 일을 위해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후에 장락궁 종루에서 참수를 당하고 9족이 몰살을 당 했다.

 

 

4. 조조와유비가 심흑과 면후로 싸우다

 

나는 침식을 잊고 몇 년간 궁리 끝에 우연히 삼국시대의 몇몇 인물을 떠올리다가 문득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이같이 외쳤하.

"알았다, 알았어 ! 옛날에 영웅호걸이 된 자들은 한낱 뻔뻔하고 음흉한 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삼국의 영웅 가운데 우선 조조를 보자. 그의 특기는 속마음이 온통 시꺼멓다는 것이다. 그는 여백사를죽인 데 이어 공융과 양수, 동승, 복완, 황후,황자를 죽였다. 그는 모질게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이같이 장담했다.


“내가 남에게 버림을 받느니 차라리 내가 먼저 버리리라.”


속마음이 시꺼먼 것이 참으로 이루말할 수 없을 지경에 달한 것이 다. 이런 일이 있으면 당연히 일세의 사내라고 불릴 만하다. 후흑의 방법이 매우 간단하나 적용해보면 매우 신묘하기 그지없다. 작게 쓰면 작은 효과를 얻는 데 그치지만 크게 쓰면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유방과 사마의는 바로 그 점을 완전히 터득해 천하를 얻은 것이다. 조와 유비는 각각 한 가지 측면만을 갖추고 태어났지만 왕을 자처하며 천하를 삼분해 자웅을 다툴 수 있었다.


원래 유비의 특기는 보통 뻔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는 조조를 비롯해 여포와 유표, 손권, 원소 등에게 붙으면서 이쪽저쪽을 오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남의 울타리 속에 얹혀살면서 이를 전혀 수치로 생각지 않은 것은 물론 울기도 잘했다.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은 그를 이같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는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봉착하면 사람들을 붙잡고 한바탕 대성 통곡을 해 즉시 패배를 성공으로 뒤바꿔놓았다.”


그래서 ‘유비의 강산은 울음에서 나왔다’고 하는 속담이 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또한 본래 영웅의 모습이다. 그와조조는 쌍벽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술을 먹으며 천하의 영웅을 논할 때 한 사람의 속마음은 가장 시꺼 떻고 한 사람의 낯가죽은 한없이 두꺼웠다. 그러니 서로 상대방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5. 손권과 사마의가 후흑의 지존을 다투다

 

조조와 유비 이외에 손권이라는사람이 한명 더 있다. 그와 유비는 동맹 관계인 동시에 사위와 장인 관계였다. 그가 홀연히 형주를 탈취하고 관우를 죽게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속마음이 시꺼먼 것이 조조를 닮았다. 다만 촉나라를 향해 가면서 화해를 구한 점 등에 비추어 그 시꺼먼 정도가 조조에 비해 약간 덜했을 뿐이다.


그는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웅을 자처하며 조금도 아래에 있기를 거부하다 결국 조조의 아들 조비의 발아래 꿇어 엎드려 신하가 될 것을 간청했으니 뻔뻔한 것이 유비 못지않다. 다만 얼마 안 가 위나라를 배신한 점 등에 비추어 그 두꺼운 정도가 유비에 비해 조금 덜했을 뿐이다. 그는 비록 뻔뻔함과 음흉함이 유비와 조조만큼은 안 됐으 나 오히려 두 사람의 특징을 겸비한 까닭에 하나의 영웅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세 사람은 각자의 수단으로 상대방을 서로 정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천하는 부득불 셋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조조와 유비, 손권이 잇따라 죽자 사마씨 부자가 때를 틈타 일어났다. 그들은 조조와 유비의 훈도를 받아 후흑을 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과부와 고아까지 사기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음흉한 것이 조조와 같았다. 여자들의 머리 장식용 두건으로 쓰는 건괵을 선물 받는 모욕을 당하고도 이를 능히 참아냈으니 뻔뻔한 것이 유비보다 더했다. 나는 역사서를 읽으면서 사마의가 건괵을 선물받은 대목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책상을 치며 이렇게 외쳤다.


“천하가 사마씨에게 돌아갈 것이다!”


제갈량은 천하의 기재로 3대에 걸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인물인 데도 불구하고 사마의를 만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온몸을 다 바쳐 충성하니 죽어서야 그친다’는 입장이었으나 종내 중원 땅을 한 뼘도 차지하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었다. 그는 왕을 보좌할 만한 재목이기는 했으나 사마의라는 후흑 대가의 적수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6. 장개석과 모택동이 후흑 천하를 논하다

 

신해혁명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소요는 모두 나의 제자들이거나 나를 사숙한 제자들이 실제로 연습한 결과다. 그들 사형 사제와 서로 절차탁마하여 공력을 닦은 지 이제 24년이나 되니 연습은 이제 끝났다고 할 만하다. 이제 이들은 속세로 하산해 사람들과 악수를 나늘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이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후흑으로 적을 제압하니 어떤 적인들 해치우지 못할 수 있겠으며, 후흑으로 공을 세우고자 하니 어떤 큰 공인들 이루지 못할 리가 있겠 는가?”


나는 이런 견해에 기초해 다음과 같은 구호 한마디를 특별히 제시하 고자 한다.


후흑구국(厚黑救國: 후흑으로 나라를 구함)! ”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중국이 열강에 저항하려면 후흑학을 배제하고 무슨 뾰죽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열강에 저항하역량이 있어야 한다. 인민들이 후흑을 열심히 연마하면 역량이 있다고 할 만하다. 활을 쏘는 것에 비유하면 종전에는 성문을 닫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활을 쏘고 나도 활을 쏴 대응했다. 그러나 이제는 서구 열강이 우리 모두의 표적이 되어 있는 만큼 우리 모두 그 표적을 향해 활을 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말한후흑구국은 오직 이 의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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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의 연마 과정은 크게 3단계가 있다.


제1단계는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시꺼먼’ 소위 ‘후여성장 흑여매탄(厚如城墻 黑如煤炭’의 단계이다. 처음에는 낯가죽이 한 장의 종이처럼 얇으나 점차 밀리미터에서 센티미터,미터 단위로 늘어나 마침내 성벽처럼 두터워진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얼굴색은 우유처럼 흰색인데 점차 회색, 검푸른 색으로 변하다가 마침내 숯덩이처럼 시꺼멓게 되는 것이다. 이 경지가 되면 능히 제1단계 연마가 끝났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 경지는 비록 성벽이 두껍다고는 하나 대포의 공격에 파괴될 수 있듯이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검다고 하나 안색이 혐오스러워 사람들이 접근하길 꺼린다. 따라서 이 단계는 아직 초보적인 연마 단계에 불과 하다.


제2단계는 '낯가죽이 두꺼우면서 딱딱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맑은’ 소위 ‘후이경 흑이량 (厚而硬 黑而亮)’의 단계이다. 낯가죽이 두꺼운 데 능통한 사람은 당신이 어떤 공격을 퍼붓더라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유비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조조 같은 사람도 그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속마음이 시꺼먼 데 능통한 사람은 마치 빛바랜 칠흑 간판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과 같이 남에게 인정을 받는다. 조조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그는 속마음이 시꺼떻기로 유명했지만 중원의 이름난 호걸 들이 마음을 빼앗겨 그에게 귀복하고 말았다. 이 단계는 가히 '속마음은 칠흑같이 시꺼떻지만 얼굴은 투명하리만큼 밝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실로 제1단계와는 천양지차가 있다. 그러나 이 단계에 들어설지라도 그 자취를 나타내는 형체와 색채가 드러난다.


제3단계는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꺼먼 데도 색채가 없는' 소위 '후이무형 흑이무색 (厚而無形 黑而無色’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하늘은 물론 후세 사람들마저 그 사람을 후흑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소위 ‘불후불혹 (不厚不黑)’와 인물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지는 도달키 어렵다. 따라서 오직 옛날의 대성현 중에서 이런 인물을 찾아볼 도리밖에 없다.

대장동 후흑열전

 

<한국경제TV 박수진 2021-10-05 >

 


중국 근대 철학자 리쭝우(李宗吾·1879~1944)는 저서 《후흑열전(厚黑列傳)》에서 위인들의 공통점으로 ‘두꺼운 얼굴(面厚)과 시커먼 뱃속(心黑)’을 꼽았다. 그는 후흑을 세 단계로 분류했는데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시커먼’ 상태를 초보 단계로, ‘속마음은 칠흑같이 시커멓지만 얼굴은 투명하리만큼 밝은’ 단계를 그다음으로 쳤다. 그러나 이들도 ‘후하나 형태가 없고, 흑하나 색깔이 없는’, 즉 세상은 물론 본인조차 후흑 여부를 인지하지 못하는 단계에 오른 위인을 못 당했다고 한다. 그런 경지에 오른 조조(曹操) 유비(劉備) 같은 인물이라야 천하를 도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장동 '신공' 주목


한국에서도 그런 후흑의 대가를 볼 수 있을까. 가장 기대되는 인물이 이재명 경기지사다. 대선을 5개월여 앞두고 여당 대선 후보 경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그는 최근 ‘대장동 게이트’ 대응 과정에서 놀라운 후흑 신공(神功)을 선보이고 있다. 다 알다시피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은 민간업자(화천대유와 천화동인 1~7호)들이 1조원 가까운 ‘돈벼락’을 맡게 된 경위와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다. 최근 이를 가늠할 수 있는 내부 녹취록이 나오고, 당시 대장동 사업을 진두지휘한 이 지사 측근이 구속되면서 상황은 점점 이 지사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의 진면목은 여기서 나온다. 이 지사는 자신이 직접 설계했다는 ‘단군 이래 최대 개발이익 공익환수사업’이 ‘비리 종합세트’임이 드러났는데도 제대로 된 사과가 없다. 측근 구속에 대해선 “측근이 아니다” “유감이다”며 남 얘기하듯 선을 긋는다. 또 불리한 증거들이 나올 때마다 더 큰소리다. 관련 자료는 공개하지 않은 채 “1원 한장 받은 일 없다” “민간사업자는 알 필요도 없었다”고 주장하다가 이제는 “국민의힘 게이트다” “대장동 사업은 제 청렴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듣는 이의 어안을 벙벙하게 하고, 논쟁을 ‘진영 싸움’으로 몰고가는 신묘함을 리쭝우가 봤다면 가히 ‘후흑 1·2단계’로 칭찬했을 터다(가끔 발끈하는 것을 보면 분명 3단계는 아니다).

이런 이 지사 앞에선 ‘고발 사주’ 의혹에 ‘제보 사주’로 되받아치는 야당 유력 주자도, 이 지사와 매일 설전을 치르는 야당 대표도 모두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정치권에서 누가 그와 견줄 수 있을까. 필자 머리에 떠오르는 이는 문재인 대통령 정도다. 어떤 잘못에도 결코 사과하지 않고(‘부동산 죽비’ 발언은 예외), 불리한 일에는 절대 나서지 않으며, 빛나는 일에는 가장 먼저 나서고, ‘유체이탈’ 화법과 온화한 낯빛으로 속내를 감추는 내공. 만만찮은 후흑임에 틀림없다.


대충 뭉개기엔 악취 심해


대선이 코앞이고, 지지율도 나쁘지 않다. 어떻게든 이 시기만 무사히 넘겼으면 할 것이다. 일찍이 조조는 “내가 천하를 배신할지언정 천하가 나를 배신할 수는 없다”며 자신의 앞길을 막는 사람은 지위고하, 남녀노소, 친소여부를 불문하고 죽여가며 천하 패권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조조 같은 두꺼운 낯과 시커먼 속은 가능하겠지만 화근의 싹까지 뿌리째 자를 순 없다. 대장동 사업을 설계할 때만 해도 수익 배분 과정에서 ‘비리 공동체’가 분열하며 녹취록 같은 악재가 튀어나오는 상황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폭로가 더 나올지 모른다. 이 지사는 아직도 “대장동 사업은 사과할 게 아니라 칭찬받을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장동은 그의 바람대로 대충 묻고 가기엔 악취가 너무 심하다.

1. 리쭝우의 후흑학 

 

  - 후흑한이란 말은 청나라 말, 중국의 사회개혁가 리쭝우(李宗吾) 1911년 쓰촨성 청두(成都)의 공론일보에 실은 글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발표된 직후 세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1917년에는 청두의 국민공보에서 후흑학(厚黑學, Thick Black Theory)이라는 책으로 발행되기에 이른다. 이내 조정의 사정에 의해 금서조치를 당하게 되나, 이후 마오쩌둥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 리쭝우가 1938년 2월에 쓴 책의 서문에서는 후흑학의 발전 양상을 서술하고 있는데, 1기는 상고시대로 후흑이 없이 공맹의 인의가 내세워지던 때, 2기는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후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때, 3기는 후흑이 널리 퍼지고 기술의 정교함과 발달이 극에 달한 때라고 하였다.


  - 이와 더불어 후흑에도 단계가 있다고 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 낯짝이 성벽과 같이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검다.
2단계. 낮짝이 두꺼우면서 단단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빛난다.
3단계. 낯짝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색깔이 없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를 시장에 비유하면 처음 상인들이 아무리 진품을 팔더라도 갑자기 가짜를 파는 사람이 나타나 큰돈을 버는 것과 같다. 모든상인이 이를 다투어 따라하면 시장은 온통 가짜로 가득 찰 것이다. 이때 홀로 진품을 파는 사람이 나타나면 오히려 큰돈을 벌게 된다.

 

  - 리쭝우는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는 후흑을 갖춰야 한다면서 특히 공자, 맹자와 삼국지의 영웅들을 면후심흑(面厚心黑)의 대가라고 꼬집었다

 

2. 박백과 불후불혹

 

 (1) 후흑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대지약우의 경지

  - 논어 위정편, " 내가 안휘와 더불어 온종일 얘기했다. 그는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일견 어리석은 듯 했다.  그러나 ㄱ가 물러간 뒤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니 그 내막이 충분히 드러났다. 그는 결코 어리석지 않다."

 - 논어 공야장편, " 위나라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지혜롭게 처신했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마치 어리석은 듯이 처신했다. 그가 행한 지혜로운 처신은 가히 쫓아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어리석은 듯이 행한 것은 감히 쫓아서 행할 수 없다."

 

 (2) 후흑과 박백이 갈리는 지점

 - 《후흑학》에 대비되는 〈박백학〉 
"이종오가 후흑을 얘기하면서 욕설과 풍자에 망설이는 바가 없게 되자 전 사회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특히 삼강오륜으로 상징되는 성리학의 윤리도덕 수호를 자신들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고루한 자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당시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이 많은 한 벼슬아치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후흑학과 정반대되는 ‘박백학’이란 글을 써서 성도의 모 신문에 연속 기고했는데 말끝마다 도덕을 말하며 후흑학에 거친 공격을 마구 퍼부었다. 이종오는 그 글 을 읽고 나서도 전혀 괘념치 않고 그가 그냥 떠들도록 놓아두었다"


 - 이를 통해 후흑과 박백이 갈리는 지점은 바로 난세의 보신에 대한 평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주희를 종주로 삼은 성리학자들은 치세와 난세를 불문하고 불변의 철리와 명분을 극도로 중시했다. 이런 박백의 입장에 서게 되면 후흑은 있어서도 안 되고 구사해서도 안 된다. 치세에는 소인배가 아닌 대인의 도가 통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 일리가 있다.


 - 그러나 치세가 아닌 난세의 시기에는 어떻게 될까? 이는 패망의 길이다. 이종오는 바로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에서조차 정도와 의리, 명분 등을 내세우며 박백을 숭상하는 중국의 고식적인 식자층을 비판한 것이다. 이종오가 성리학을 질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백을 좇는 것은 마치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깃덩이를 던지는 것처럼 중국을서구 열강의 이익 대상으로 상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3) 난득호도(難得糊塗)

 

 - 이종오가 말하는 후흑은 공자가《논어에서 중원을 이적의 침입으로 막아낸 관중을 극구 칭송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난세의 시기에 군자가 취해야 할 명철보신의 행보가 바로 이것이다. 이종오가  동양 전래의 제자백가사상은 물론 외래 사상인 불교와 기독교,마르크시즘 등 동서고금의 모든 사상을 검토한 뒤 반식민지로 전락한 중국의 활로를 후흑에서 찾은 배경이 여기에 있다.


 - 그가 최고 단계의 후흑을 무형무색의 불후불흑에 비유하면서 유가의 중용과 불가의 보리무수를 같은 것으로 풀이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원래 보리무수는 중국 선종의 6조 선사로 알려진 혜능의 선시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중국 전래의 처세술인 대지약우 및 난득호도의 행보와 맥이 닿아 있다.

 

 - 21세기 현재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최상의 후흑은 소위 ‘난득호도’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총명해지는 것도 어렵지만 어리석은 체하는 건 더 어렵다는 뜻이다. 이 말은 원래 청대 건륭제 때 화가 겸 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정판교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건륭 19년(1754년) 가을 산동 범현에서 유현의 지현으로 있던 정판교는 어느 날 먼 친척 형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옥의 담장을 놓고 이웃과 송사가 벌어졌으니 지방관에게 잘 봐달라는 편지 한 통을 써달라는 청탁이 었다. 그는 편지를 다 읽은 뒤 시 한 수를 써서 보냈다. 
“천 리 먼 곳에 편지를 보낸 것이 담장 하나 때문인가? 그에게 몇 척을 양보하면 또 어떤가? 만리장성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어찌 진시황은 보이질 않는가?”

 

 - 원래 중국인은 한국인과 달리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저급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총명함을 가볍게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양이 덜 됐다고 보는 것이다. 난득호도의 ‘호도’는 말 그대로 깨진 도자기를 살짝 풀을 붙여 온전한 것처럼 만들어놓듯이 명확히 결말을 내지 않고 일시적으로 땜질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속담의 ‘눈 가리고 아웅’에 가깝다.

 

 - 그러나 중국어 ‘후투'는 같은 한자를 쓰는 우리말의 호도와 뉘앙스가 다르다. 머저리라는 뜻에 가깝다. 난득호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 문화를 언급하기가 어렵다. 모든 중국인들이 난득호도의 삶을 생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택동 시절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난득호도의 기본 정서와 동떨어져 있었다. 이를 다시 중국 전래의 난득호도 정서로 되돌려놓은사람이 바로 ‘흑묘백묘론'의 등소평이다.

 

 - 그러나 후진타오의 중국굴기나 시진핑의 중국몽을 보면 다시 후흑에서 박백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는 데, 과연 지금이 치세의 시기인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볼 수 밖에 없다.  중용의 세계란 이렇게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경지이다.

 

 (4) 후흑의 이용

 

  - '후흑'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면 욕된 이름을 얻게 될 뿐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쓰면 난세에 나라를 구할 수 있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고 감출 것을 감추며 냉정할 때에는 냉정하게 행동하는, 공공을 위한 '후흑'은 나라를 구하는
    난세의 통치학이 될 수도 있다.


  - 후흑을 이용해 사리를 도모할 경우 후흑을 사용하면 할수록 인격은 더욱 비루해진다. 후흑을 이용해 공리를 도모할
    경우 후흑을 사용하면 할수록 인격은 더욱 고매해진다 

 

 

 

3. 후흑의 현대적 개념 

 

 (1) 후(厚)

 

 - 개념 

    . 실패와 고난에 대하여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가라

    .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수하면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된다

 

 - 내용

 

   . 목적지향 :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기, 돌아가지 말고 fake하지 않기

 

   . 유연성 :  변화 대응, 군자불기(君子不器, 論語 爲政, ' 군자는 한가지 용도로 사용되는 그릇이 되지 말아야 한다')

 

   . 자기용납 : 실수할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기 수용성, 나를 아끼고 무겁게 여기는 '자중자애', 착한사람 컴플렉스 극복

 

   . 책임감 : 나를 믿고 따르는 조직원들에 대한 책임, 내가 맡은 과업을 끝내야 한다는 책임

 

   . 회복탄력성 : 두꺼운 것이 능사가 아니고 깨지지 않는 탄성이 있어야 함, 다음을 도모하는 마음자세,

                      일시의 장단을 다투지 말라 (장자)

 

 (2) 흑(黑)

 

 - 개념 : 속을 보이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면서 힘을 기른다

 

 - 내용

 

   . 비어 있다 (비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 노자와 한비자의 무위의 정치, 읽혀서는 않된다(두려움을 절대 드러내서 안됨,

                  무색무취하라(채근담), 주역 명이괘, 뒤동수 치는 음흉과는 다른 개념

 

   . 미래를 주도하여 면밀하게 준비한다 : 도광양회, 난득도호, 교토삼굴, 겸허하라, 조급해하지 말라,

                  채근담에서의 3분(양삼분, 감삼분, 귀삼분)

 

   . 단호함과 과단성 : 한비자가 말하는 '법', 악역을 두려워하지 않는 리더, 불비불명하다가 일시에 새롭게 탄생

 

 

 

 

 

 

후흑학 _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 


<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07월 04일 출간 >

 

1. 개요


중국의 5천 년 역사를 관통하는 처세의 비밀


‘후흑厚黑’은 두꺼운 얼굴을 뜻하는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학을 줄인 말이다. 『후흑학』은 청조 말에 출간되어 ‘실리를 위해 도덕을 폐하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로 대륙 전역에 화제를 모았으며 현대 중국인의 국민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학문인 ‘후흑학’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책이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한 ‘뻔뻔함과 음흉학의 미학’을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원전의 요체를 핵심적으로 압축해 소개하고 있으며, 원전에서 강조하는 ‘구관육자진언’ ‘주관육자진언’ 등 관직을 얻거나 유지하는 데 필요한 후흑술을 재정비해 9가지 처세술로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 유방과 항우, 장량과 한신, 조조와 유비, 손권과 사마의, 장개석과 모택동 등 오월동주로부터 신중국의 개막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대륙을 누볐던 영웅 호걸들의 후흑사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영웅호걸이라 불리며 중국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위인들이 하나같이 낯가죽이 두껍고 음흉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들이었음을 일깨우며, 고대로부터 오늘 후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공명을 떨친 왕후 장상, 호걸, 성현들 중 후흑을 통해 성공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역설한다.

 

 

2. 목차


서문 - 동북아 서브시대의 개막을 꿈꾸며
들어가는 글 - 후흑학이란 무엇인가

1부. 후흑학, 난세의 처세술
01. 후흑학의 탄생
02. 면후심흑의 3단계
03. 박백과 불후불흑

2부. 역사의 승자, 후흑의 대가들
01. 구천이 와신상담으로 부차를 제압하다
02. 유방이 임협의 무리와 항우를 깨뜨리다
03. 장량이 《육도삼략》으로 한신을 도모하다
04. 조조와 유비가 심흑과 면후로 싸우다
05. 손권과 사마의가 후흑의 지존을 다투다
06. 장개석과 모택동이 후흑 천하를 논하다

3부. 승자의 전략, 후흑술
01. 공空-위기에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라
02. 공貢-반룡부봉하되 역린을 조심하라
03. 충沖-호언장담으로 기선을 제압하라
04. 봉捧-박수갈채로 자부심을 만족시켜라
05. 공恐-솜에 바늘을 숨기고 때를 노려라
06. 송送-비자금을 활동자금으로 활용하라
07. 공恭-사람을 가려 때에 맞게 칭찬하라
08. 붕繃-큰 인물로 포장해 신뢰케 만들라
09. 농聾-귀머거리 흉내로 속셈을 감추라

4부. 후흑으로 오늘에 답하라
01. 후흑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02. 상사와 부하로 사는 처세의 기술

 

 

3. 책 속에서


이기면 모든 것이 미화돼 ‘절세의 구세주’가 되고, 패하면 모든 것이 폄하돼 ‘만고의 역적’이 된다. 이종오는 후흑을 주창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초 나는 글을 알아 책을 읽기 시작한 후 영웅호걸이 되고자 했다. 사서오경을 읽었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제자백가와 24사를 통해 얻고자 했으나 이 또한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옛날에 영웅호걸이 된 자는 분명히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 비술이 있었을 텐데 다만 내가 못나서 그것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흥망성쇠와 사신史臣의 논단이 완전히 상반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 비결을 알기 위해 무진 고생했음에도 쉽게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연구를 거듭한 끝에 옛 사람의 성공 비결은 낯가죽이 두꺼운 ‘면후’와 속마음이 시꺼먼 ‘심흑’에 지나지 않는다는 천고의 비결을 찾아내게 되었다.

승자의 역사인 사서의 기록을 살펴볼 때 반드시 그 이면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종오도 사서를 읽을 때 그 행간을 읽음으로써 절세의 구세주와 만고의 역적이 엇갈리게 된 배경을 찾아냈다. 절세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후흑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게 바로 그가 24사를 통독한 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본문 36쪽 중에서

허장성세는 군사와 외교 방면에서 자주 구사되는 술책이다. 기본적으로 막강한 무력이 뒷받침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기껏해야 소위 ‘블러핑bluffing’으로 상대방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을 뿐이다. 블러핑은 일시적으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전면 승부로 착각하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계속해서 구사할 경우 오히려 자신의 허약한 패를 상대방에게 읽혀 낭패를 당할 소지가 크다.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게 바로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실력을 기르는 도광양회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중국이 개력개방 30년 만에 G2로 우뚝 선 비결이기도 하다. -본문 219쪽 중에서

난득호도 수준에 이른 오바마의 후흑 행보는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나타났다. 그는 원자바오 총리와 악수할 때 고개를 45도가량 숙였다. 반면 원자바오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그를 맞았다. 원자바오는 ‘제2의 주은래’라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서민적이고 겸손한 사람이다. 그가 목을 세운 것은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복돋워주기 위한 몸짓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오바마의 후흑 속셈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당시 오바마는 자신의 몸을 한껏 낮춰 이같이 말했다.
“미국 경제는 중국 덕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유일무이한 슈퍼 파워 미국의 자존심은 찾을 길이 없다. 아무리 미국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할지라도 과연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비하하는 표현을 써가며 중국 수뇌부의 자부심을 부추길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아직도 미국을 유일무이한 슈퍼 파워로 여기고 있는 미국인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보는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온 고단수의 술책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21세기에 들어와 미국이 계속 유일무이한 슈퍼 파워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할을 분담할 그럴듯한 파트너가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돌아봐도 중국밖에 없다. 중국 사람들은 ‘면자(面子;체면)’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그들의 면자를 한껏 북돋워 실리를 챙길 필요가 있다.
-본문 300~301쪽 중에서

주의할 것은 글로벌 경제 전쟁의 총사령관 격인 최고 통치권자를 비롯해 일부 글로벌 기업의 총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상사’와 ‘하사’의 리더십을 공히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상사’와 ‘하사’의 리더십이 충돌하는 데 있다. 난세의 군주는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여서는 안 되고, 반대로 난세의 신하는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군주의 속마음을 정확히 헤아려야 한다. 또한 난세의 군주는 자신의 지혜와 힘을 써서는 안 되고, 반대로 난세의 신하는 자신의 지혜와 힘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의 최고 통치권자와 글로벌 기업의 총수 밑에 있는 층층시하의 수많은 간부들은 과연 어떤 리더십을 구사해야 하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하사’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총수의 신임을 바탕으로 자신의 지략과 소신을 펼칠 수 있고, 휘하의 하사에게도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본문 331~332쪽 중에서 닫기

 

 

4. 출판사 서평


정쟁政爭에서 승리하는 처세의 교본

승패에 따라 가솔의 운명이 갈리는 제왕의 처세는 일신의 안위만을 바라는 졸부들의 처세와는 그 목적과 방향이 다르다. 이는 이제 막 조직에 입문한 신입사원의 행동지침과 기업 전체를 이끄는 CEO의 행동양식이 달라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졸부들의 처세에는 비겁하고 옹졸함이 있어야 기회가 따르지만, 제왕의 처세에는 ‘뻔뻔함’과 ‘음흉함’이 있어야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후흑학: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위즈덤하우스 刊)은 기업 간 생존 경쟁이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는 오늘날, 기업의 CEO와 임원급들이 성공적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처세의 기술을 정리한 ‘CEO를 위한 제왕학’이다. ‘후흑厚黑’은 두꺼운 얼굴을 뜻하는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흑을 줄인 말이다. 열강의 침탈에 맞서 자존을 쟁취하자는 데서 탄생한 《후흑학》은 세계최빈국이던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한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을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청조 말에 출간되어 ‘실리를 위해 도덕을 폐하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로 대륙 전역에 화제를 모았으며 현대 중국인의 국민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학문으로도 손꼽힌다. 《후흑학: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은 기업 경영과 자기계발 메시지로 원전을 재해석한 해설서이며, 세계 권력의 축이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고 있는 대격변의 시대에 원전보다 깊이 있고 탁월한 미학을 제공해줄 것이다.

중국을 G2 반열에 올린 처세의 고전
중국 5천 년 역사를 관통하는 처세의 비밀!

후흑학은 청조가 멸망하고 신중국이 탄생하는 격변의 시기에 등장하여 수천 년 중국 통치술의 정수를 꿰뚫는 성공의 원리를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설명한다. 후흑학의 요체는 한마디로 ‘철면피가 되라’는 것이다. 영웅호걸이라 불리며 중국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위인들이 하나같이 낯가죽이 두껍고 음흉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들이었음을 일깨우고,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공명을 떨친 왕후 장상, 호걸, 성현들 중 후흑을 통해 성공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역설한다.
한편 불리한 문제는 쉽게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가볍게 생각하며 사과하는 법이 없는 중국인의 국민성을 비난할 때 가장 먼저 거론하는 학문이 《후흑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처세의 양식이 파란만장한 역사의 굴곡을 헤쳐 나오기 위해 스스로 체득한 생존술이며 오늘날 중국을 G2 반열에 올린 가장 주요한 원동력임을 부인할 수 없다. 평소 좀처럼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온화한 인품으로 유명한 후진타오 주석이 미국 방문 중 중국 내 인권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별 불편함이 없는 기색으로 “(인권문제와 관련해) 여전히 많은 것들이 중국에서 행해질 필요가 있다”고 거침없이 대답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고전 연구의 대가 신동준의 역작,
21세기 기업가의 필독서로 다시 태어나다

《후흑학: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은 고전 속에서 기업경영 및 자기계발 메시지를 찾아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온 저술가 신동준 선생이 내놓은 최근의 역작이다. 선생은 21세기 동북아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한 해법을 동양 3국의 고전에서 찾고 있으며, 총 두 차례의 번역과 편역 끝에 완성한 해설서 《후흑학: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은 선생의 학자적 탐구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이종오의 《후흑학》의 요체를 핵심적으로 압축해 소개하고 있으며, 원전이 강조하는 ‘구관육자진언’, ‘주관육자진언’ 등 관직을 얻거나 유지하는 데 필요한 후흑술을 21세기에 맞게 재정비해, 글로벌 전쟁터에 뛰어든 기업의 총수, 간부, 상사와 부하직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9가지 처세술로 정리해 소개하고 있다. 통일시대와 동북아 허브 시대를 앞둔 대한민국이 이를 효과적으로 개막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후흑의 자세를 소개하고 있다. 《후흑학: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은 세계 권력의 축이 서에서 동으로 이동해오고 있는 대격변의 시대에 대한민국이 일본과 중국을 앞질러 아시아의 승자로 우뚝 서기를 바라는 작가적 기대와 사명감으로 집필한 도서로, 원전보다 깊이 있고 탁월한 미학을 선사할 것이다.

《사기》와 《삼국지》를 아우르는 난세 영웅들의 책략과 비술!

유방은 항우가 부친을 인질로 잡아 삶아 죽이겠다고 협박했을 때 태연하게 그 국 한 사발을 나누어달라며 항우를 비웃었고, 초나라 병사에게 쫓길 때 수레가 무거워 달아날 일이 요원해지자 수레의 무게를 덜기 위해 자식들을 세 번이나 발로 차 마차에서 밀어냈으며, 천하를 얻은 뒤에는 한신과 팽월을 토사구팽했다. 사마의는 과부와 고아까지 사기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음흉함이 조조와 같았고, 제갈량에게 건괵(부녀자들이 의관용으로 머리에 쓰던 두건)을 선물 받는 모욕을 당했을 때도 사자를 환대한 다음 예를 갖춰 환송을 가는 등 뻔뻔하기가 유비에 못지않았다. 책은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 유방과 항우, 장량과 한신, 조조와 유비, 손권과 사마의, 장개석과 모택동 등 오월동주로부터 신중국의 개막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대륙을 누볐던 영웅 호걸들의 후흑사를 흥미진진하게 기술하고 있다. 책을 통해 우리는 영웅의 역사에도 간사한 계책이 넘치고 천하의 성인들도 상대의 목을 꺾는 비열한 술수를 사용했음을 알게 된다. 난세 영웅들의 득록과 실록을 통해, 천하를 호령한 영웅들의 제1참모는 바로 후흑의 기술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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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韜光養晦)

 

 

 

"Hide your brightness, bide your time"
(韜 : 감출 도, 光 : 빛 광, 養 : 기를 양, 晦 : 그믐 회)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옛 성인들의 가르침을 보면 ‘소인은 귀로 들어가서 입으로 나온다’는 지적을 합니다. 또한 프랑스 속담에 ‘약한 개일수록 잘 짖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등소평은 이러한 어리석음을 비유해서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사자성어를 즐겨 썼다고 합니다.

도광양회의 직역이 아닌 진정한 의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깊은 인내와 굳은 집념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남몰래 실력을 쌓으며 때가 오기를 인내하며 기다린다. 
- 함부로 자신의 재능과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
- 빛을 감추고 밖으로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인내와 집념을 기른다.
- 약자가 모욕과 울분을 참고 견디며 조용히 자신의 실력과 힘을 기르면서, 은둔생활 속에 언젠가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집념이다. 

자신이 세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얼마나 고뇌의 세월을 견뎌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깊은 ‘정중동’의 처세를 해야 하는지는 아래 시구에 절절히 녹아 있습니다.

“竹影掃階塵不動 (죽영소계진부동)
대나무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는 일지 않고,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달빛이 연못을 꿰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네.”

인생 후반전, 살아온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차마 들춰내 보기가 민망할 만큼 허세와 헛것에 묻혀 보낸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작은 해탈로 가는 진정한 길잡이가 되어 주는 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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