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수령의 신단수, 발왕산 주목의 위로
< 조선일보, 조용헌 강호동양학자, 2023.07.10 >
20세기 초반부터 한국의 민족종교에서 특별한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바로 ‘후천개벽설’이다. 후천(後天)은 선천(先天)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대략 5만년의 사이클을 두고 선천과 후천이 교대한다는 주장이다. 인류 문명사를 몇천 년 단위가 아닌 5만년 단위로 나누어 생각하는 스케일이다 보니 잘 믿어지지 않았다. 전반전 5만년이 끝나고 후반전 5만년이 시작되면 어떤 변화가 있다는 말인가?
그 골자를 추리자면 ‘상놈이 양반 된다,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성장한다, 그리고 ‘수조남천(水潮南天) 수석북지(水汐北地)’가 발생한다’ 등이다. 여기서 ‘수조남천’은 물이 남쪽 하늘로 몰려들고, ‘수석북지’는 북쪽의 물이 빠진다로 해석된다. 탄허 스님은 이 대목을 갖고 일본 열도가 물에 가라앉는다고 예언해 1970년대 선데이서울 같은 주간지에 대서특필되곤 하였다. 말하자면 북극의 빙하 물이 녹아서 남쪽 하늘로 흘러가는 도중에 일본이 직격탄을 맞고 침몰한다는 것이다. 탄허 스님이 이 예언을 하던 1970년대에는 너무나 황당하게 들렸지만 지금은 각도가 약간 달라졌다. ‘그럴 수도 있겠다’로 약간 바뀌었다. 특히 지구온난화를 눈앞에서 피부로 겪다 보니 전지구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주목받는 용평
후천개벽의 골자는 지금 생각해 보면 바로 지구온난화일지 모른다. 여름에 섭씨 40도로 올라가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다. 추위보다 더위가 문제인 세상, 40도 여름을 어떻게 견디나?
후천개벽의 온난화 시대에 필자가 주목한 곳이 바로 강원도 용평이다. 해발 700~800m의 대관령 고개. 여기는 아랫동네보다 평균 5~6도는 시원하다. 삼복 더위에도 30도를 잘 넘어가지 않았던 동네가 용평이다. 여름 더위를 어떻게 견디느냐가 관건인 시대에 돌입하면서 용평이 지닌 가치는 특별해졌다.
그 용평에 일찍부터 스키장이 세워졌다. ‘어떻게 여기에다 스키장을 세울 생각을 하였나?’ 쌍용그룹의 김석원 회장이 헬기를 타고 강원도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가장 늦게까지 눈이 남아 있는 곳이 용평(龍坪)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했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 용평리조트가 통일교 것이 되었다. 통일교는 어떻게 이 시원한 데를 소유하게 되었을까? 땅 보는 데는 참 귀신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고 문선명 총재가 여기를 찍었다고 한다. 문선명 총재는 지명에 용(龍) 자 들어가는 곳을 좋아하였다. 용산(龍山)도 그렇다. 용산에 철도고등학교가 있다가 이전하니까 그 터가 비었다. 입찰이 붙었는데 문선명은 “반드시 그 땅을 사라”는 오더를 내렸다. “왜 사야 합니까?” “용산에는 용의 뿔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국방부 자리이고 하나는 철도고등학교 자리이다. 말하자면 녹용 자리인 셈이다. 그러니 여기를 사야 한다.” 당시 롯데그룹하고 경합이 붙었지만 교주의 엄명에 의하여 300여억원인가를 주고 통일교가 샀다고 들었다. 여기에다 세계일보를 짓고 십몇 년 운영하다가 용산이 초고층 주상복합 타운으로 재개발되면서 다시 팔게 되었다. 3000억원 이상을 받았다고 들었다. 비용 제하고도 1000억원 정도가 현찰로 남았다. “이 돈을 어떻게 할까요?” “그 돈으로 용평을 사거라.” 돈이 용산에서 용평으로 이동한 셈이다.
당시 용평스키장을 팔고자 했던 쌍용은 매입자에게 ‘무조건 1000억원은 현찰로 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다른 재벌도 용평을 사고자 했지만 그 자리에서 현찰 1000억원을 줄 수 있는 곳은 통일교뿐이었다. 문선명이 용평을 매입하라고 강력하게 오더를 내리기도 했다. 좋은 땅은 돈을 아끼는 게 아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놓친다. 1970년대 초반 여의도를 비행장으로 쓰다가 민간에 불하할 때도 입찰이 붙었다. 당시 문선명은 “여의도는 서울의 옴파로스(배꼽)이다. 아주 중요한 자리이다”라고 판단하였다. 현재 그 땅에 통일교 관련 빌딩이 서 있다. 교주는 영발과 예지력이 없으면 못한다. 문 총재는 ‘땅의 미래’를 바라다보는 데는 당대 최고의 안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문선명의 신통력으로 찍은 곳이 발왕산(發王山)이요 용평(龍坪)이다. 발왕산도 왕기를 내뿜는다는 뜻을 담은 이름 아닌가. 이름도 특이하다. 나는 계룡산, 월출산, 지리산에서 주로 놀다 보니 그동안 발왕산을 가보지 못했다. 발왕산에서 볼 만한 것은 주목(朱木)이었다. 전국의 소나무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어온 80대의 고송(古松) 선생이 발왕산 주목은 반드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필자를 데리고 갔다.
발왕산에는 천년 가까운 수령의 명품 주목이 수십 그루 있었다. 이처럼 오래된 주목이 도벌꾼을 피해 이제까지 남아 있었다는 것은 발왕산이 얼마나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오지였나를 짐작하게 한다.
전국 2000여 그루의 명품 소나무를 거의 답사해본 고송 선생에 의하면 ‘소나무보다 한 급 위의 나무가 주목’이다. 한국 최고급의 나무가 야생 상태에서 보존된 곳이 발왕산이다. 나는 주목이 나무의 왕처럼 느껴졌다. 주목은 오래 사는 나무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다. 도합 2000년은 산다는 말이다. 그만큼 단단한 나무이다.
신령한 붉은색 나무, 주목
추운 데서 사니까 단단할지 모른다. 춥고 배고픈 데서 단련된 나무라 할 수 있다. 사람도 춥고 배고픈 단련을 받으면 영적인 성장이 되고 단단해진다. 주목의 최대 특징은 나무 색깔이 붉다는 점이다. 붉을 주(朱)는 동양에서 대단히 신성시하던 색깔이다. 붉은색은 양기를 상징한다. 사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색이다. 귀신을 몰아내면 그 집이나 건물에 상서로운 일이 생긴다. 귀신을 쫓아주는 나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니 신령한 나무로 받들었던 나무이다.
그리고 오래 사는 나무이다. 일본 사람들은 주목으로 만든 문패를 최고로 친다. 붉은색 주목 문패는 염라대왕이 찾아오기를 꺼리는 상징이라고 한다.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그 사람을 잡으러 갔다가 문 앞에서 붉은색 주목에 쓰인 이름을 보면 쉽게 체포를 못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일본의 주목 신앙은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여겨진다.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신단수(神檀樹)는 주목이 아닌가 싶다. 주목은 고산지대에서 잘 자란다. 해발 1500m가량의 발왕산, 그리고 강원도 오지였던 이 지역에 남아 있는 이유다.
현재 발왕산에는 명품 주목을 감상할 수 있도록 숲속에다 데크길을 조성해놓았다. 안갯속에서 수령 1800년 된 아버지 왕주목을 보는 순간 그 어떤 신령함이 밀려왔다. 과연 단군시대의 신단수가 이러했겠구나! 둘레 4.5m의 어머니 왕주목도 역시 수령이 2000년 가까이 된다.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오래된 나무를 어디서 보겠는가! 발왕산의 주목 숲을 데크길 따라 산책한다는 것은 단군시대의 신단수 숲을 산책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긴팔 옷을 걸쳐야 할 만큼 서늘한 발왕산에서 2000년 나이의 주목을 본다는 것은 내 인생의 짧음을 위로받는 기운을 얻는 일이었다.
http://s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53
[발왕산 모나파크] 여덟 왕이 다스리는 주목 왕국에 주목하라! - 월간산
속에서 천불이 나기를 1,000번, 썩어 문드러지기를 1,000번, 토해내기를 1,000번, 그렇게 1,000년을 살았다. 발왕산(1,458m) 정상 부근에서 만난 천년주목은 속이 비어 있었다. 고산의 악조건을 견디며
san.chosun.com
'둘레길 걷기 > 식물, 산, 산책에 관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월, 이팝나무꽃 필 무렵 (1) | 2023.05.08 |
---|---|
제주 밀감과 왕벚나무의 아버지 에밀 타케 신부 다시 오다 (0) | 2022.08.20 |
‘도시 야생화’에 미친 외과의사 최정규 시흥 강남병원장 (0) | 2022.08.20 |
“古木은 꽃을 피우지만… 사람은 나이 들어도 ‘좋은 어른’ 되기 어려워” (0) | 2022.08.20 |
뉴욕의 잘 나가는 화가 부부는 왜 설악에 빠졌나 (0) | 2022.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