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잘 나가는 화가 부부는 왜 설악에 빠졌나
< 월간 산, 신준범 2022.07.08 >
화제인물 <설악산 일기> 펴낸 김근희·이담 부부 화가
10년간 식물 327점 화폭에…설악산에 매료되 그린 그림과 글을 책으로
2011년 6월 중청대피소 부근에서 본 공룡능선 방면. 이담 화가가 왁스페인트로 작업했다.
2011년 6월 중청대피소 부근에서 본 공룡능선 방면. 이담 화가가 왁스페인트로 작업했다. <설악산 일기>의 표지 그림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책에 설악산이 담겨 있었다. 그 흔한 공룡능선 사진 한 장 없이, 모험담에 가까운 산행 이야기 없이,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려는 어조를 완벽히 배제한 채, 봉쇄 수도원 수도승 같은 목소리로 설악산의 가장 작은 것들을 책에 실었다.
김근희·이담 부부(62세 동갑)는 낮은 어조로 차분히 설악산에서 보낸 10년을 그림과 글로 실었다. 설악산에서 만난 식물 327점을 화폭에 그려 그중 200점을 엄선해 책에 담았다. 각각의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일기 형태로 실었다. 설악산 식물 에세이인 것.
식물학자가 아닌 순수미술 화가의 시선, 등산 입문자의 시선, 기후위기에 공감하는 50대 부부의 시선으로 설악산에 다가간다. 처음에 비선대를 오가던 부부는, 수렴동계곡을 오르고, 십이선녀탕계곡을 오르고, 귀때기청봉을 오를 정도로 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과정을 정갈한 그림과 간단명료하면서도 섬세한 글로 표현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는 산 생각이 절로 든다. 산이 강한 자석으로 끌어당기는 것같이 마음은 벌써 산에 들어가 있다. 우리는 설악산과 사랑에 빠졌나보다. 자꾸 생각나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바라보면 더 좋고, 가까이 가고 싶고, 그 안에 있으면 편안하다.
오늘은 집을 나서며 천불동 깊은 곳까지 걸어가 보자고 마음먹었다. 비선대 길을 올라가며 표찰 달린 나무들을 유심히 본다. 서어나무, 피나무, 다래나무, 산뽕나무, 박쥐나무…. 오늘 만난 박쥐나무에는 꽃도 피어 있다. 박쥐 같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꽃 모양이 독특하다. 계란 흰자와 노른자 지단을 붙여서 말아놓은 듯 돌돌 말린 흰색 꽃잎 사이로 노란색 꽃술이 달랑거린다.’ -<설악산 일기> 중에서.
글은 일기 쓰는 습관이 있는 부인 김근희 화가가 적었다.
“뭉클하는 감정이 생길 때, 짧게라도 기록해 놓으면 그 감동을 좀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더군요. 힘든 감정이라도 나중에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성도 생기고요. 처음부터 책을 만들려고 일기를 쓴 건 아녜요. 산에서 만난 풀, 나무, 벌레들이 내게 말을 건네는 듯했거든요. 숲속 곳곳에서 나 좀 보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어요. 많은 식물 중에 하필 눈을 마주친 식물은 보통 인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거대한 산의 생명력 덕분에 생긴 인연이자 교감이라 생각해서, 그 감동을 꾸준히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다 보니 10년이 흘러 있었어요.”
아내 김근희씨는 붓으로 키 작은 식물을 그리고, 남편 이담씨는 키 큰 나무와 풍경을 주로 그렸다. 이담씨는 특이하게도 왁스페인트로 작품을 만든다. 고체로 된 페인트를 인두와 다리미 열로 녹여, 철필이나 날카로운 쇠붙이로 색감을 표현했다. 녹인 페인트가 굳어지기 전에 그려야 하는 무척 까다로운 작업인 것.
옛날 그리스 로마시대에서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 통용되던 방식인데, 지금은 이런 방식으로 그리는 화가는 이담 화백이 유일하다. 미국에 왁스페인트 화가가 몇 명 있으나 종이가 아닌 나무에 그려낸다. 이담 화가가 종이에 철필로 칠하는 걸 감안하면, 거친 질감이지만 무척 세심함을 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담 화가는 설악산에서 나무의 껍질을 화폭에 많이 담았는데, 왁스페인트 특유의 거친 질감과 나무의 느낌이 오묘할 정도로 잘 맞아떨어져, 실제로 나무가 벽 한켠에 서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부부는 미국에서 알려진 저명한 화가다. 동기동창인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 미대 서양화과와 뉴욕 스쿨오브 비주얼 아트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에서 창작 그림책을 여러 권 냈으며, <야구가 우리를 살렸다Baseball Saaved Us>와 <영웅들Heroes>, <자유를 향한 여정Passage to Freedom> 등은 미국의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자녀들을 키우고 출가시킨 부부가 한국으로 돌아와 설악산에 정착한 건 우연이었다.
뉴욕에서 음악교사가 된 딸 이은씨가 한국 전통음악에 반해, 풍물을 배우겠다고 한국에 2년간 머물게 되면서 딸과 함께 우연히 속초에 거처를 마련한 것. 곧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여겼으나 미국에서 등산이라곤 해본 적 없던 부부는 설악산에 깊이 매료되었다.
설악산의 식물과 나무를 관찰하고 그리는 작업은 2010년에 시작되어 2020년까지 이어졌다. 이들의 산행은 정상을 오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식물을 만나고 풍경을 만나는 여정이었기에 일반 등산객에 비해 속도가 무척 느렸다. 해가 지기 직전까지 식물을 카메라에 담다가 산을 내려오곤 했다.
사진 찍은 식물은 곧장 그려내지 않고, 일단 공부를 한다. 이름을 알아내고, 어떤 식물인지 조사하는 것. 그래서 “인터넷 검색은 물론 식물도감, 야생화도감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사진을 찍었다 해도 “도감을 통해 식물의 구조를 이해해야 그릴 수 있다”는 것이 김근희 화가의 지론이다. 또 실물 크기로만 그림을 그리는데, 40년 넘게 수채화와 유화 작업을 해온 김근희 화가는 “내가 본 감동을 가장 순수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담 화가도 마찬가지다. 왁스 소재는 녹인 후 하루 이틀 안에 그려야 하기에, 먼저 찍어온 나무에 대해 공부를 하고 화면을 구상한다. 그는 “공부해서 알고 나면 더 친해지고, 그림도 더 잘나온다”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끝없는 나와의 대화이자 나무와의 대화”라고 말한다.
부부는 현재 충남 당진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설악산에서 10년 동안 자연공부 실컷 하고 하산했다”고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접근이 편리해지면서 설악산 주변이 관광지화한 영향도 있다.
당진 ‘느린산 갤러리’에서 2막 시작
지인의 추천으로 당진으로 이사한 부부는 집 앞에 ‘느린산 갤러리’라는 작업실 겸 전시공간을 만드는 중이다. 인터뷰를 위해 당진의 자택을 찾았을 때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이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기후 위기와 쓰레기가 분리될 수 없다”며 “쓰레기를 최소화하려 노력한다”는 철학이 담긴 집이었다.
친정어머니가 물려준 오래된 가구는 기본이고, 모든 가구는 이담 화가가 직접 만들었는데, 주변의 버려진 장롱이나 재활용품을 목공예 솜씨로 맞춤 제작했다. 아내 김근희씨는 자투리 천과 커튼 등을 바느질하고 염색해 직접 부부의 옷을 만든다. 덕분에 “옷을 사 입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손재주가 뛰어난 화가 부부는 뚝딱뚝딱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하는데, 청바지는 배낭이 되고, 쌀포대는 가방으로 변했다.
김근희 화가는 “옷이든 가구든 만들어 써보면 기성제품이 오히려 불편하다”고 한다. 쓰레기를 최소로 하는 삶을 추구하는 두 사람은 “화가로 살지 않았다면 더 많은 돈을 벌었겠지만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사는 것에 만족한다”며 “적게 벌기 위해 적게 쓴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은 끊은 지 오래다. 대부분 집에서 조리해 먹으며, 남은 음식도 퇴비로 활용해 음식 쓰레기가 거의 없었다. 술도 직접 담가서 먹고, 육식을 자제해 생선과 해산물 위주로만 가끔 먹고, 머리 감을 땐 샴푸를 사용하지 않고 물로만 씻는다. 그렇게까지 철저히 친환경을 실천하는 이유를 물었다.
“설악산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파와요. 점점 가물어가는 계곡, 무분별한 쓰레기로 망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만난 자연의 모습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어 안타까워요. 설악산뿐만 아니라 모든 산이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결국은 자연에도 한계가 오겠죠. 미래 세대가 살 만한 세상이 될지 황폐화가 될지는 향후 10년 안에 결정될 거예요. 조금이라도 우리가 노력하면 기후 위기에도 희망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 저부터 실천하는 거예요.”
요즘 쏟아지는 책을 보면, 간혹 ‘종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기 과시와 허세, 뻔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 대단한 책인 것처럼 포장한다. 반면 이들의 책에는 산에서 마주친 애틋했던 순간들이 200편 그림과 글로 산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설악산이 이담·김근희 화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우리가 만난 가장 큰 스승이었어요. 공존을 일깨워 준 거대한 생명의 집합체인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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