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여다정 기자, 2023.09.08 >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이후 공개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새만금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이 대거 삭감되면서 새만금 개발사업이 또다시 표류할 조짐이다. 정부는 새만금 기본계획 전면 재검토를 통해 오는 2025년까지 ‘새만금 빅피처’를 다시 그리겠다는 계획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새로운 기본계획이 나올 때까지 일시적으로 예산 투입이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권을 비롯한 지역 정치권은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지자체에 넘기는 보복성 예산 삭감”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앞서 국민의힘은 잼버리 파행과 관련해 “SOC사업 예산 강탈에 혈안이 돼 1171억원에 달하는 혈세가 투입된 행사가 파행했다”며 더불어민주당과 전라북도에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새만금 사업은 전북 군산시와 부안군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33.9㎞)를 쌓고, 간척토지(291㎢)와 호소(118㎢)를 조성해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이르는 409㎢ 규모의 땅을 새롭게 개발하는 사업이다. 

 

2050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비 총 22조 79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1989년 노태우 정부 시절 사업이 시작된 만큼 34년의 세월 동안 새만금이 이미 완공됐거나, 매립이 완료된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매립이 완료된 면적의 비율은 33.1%(진행 중 14.9%)에 불과하다. 

 

다만 방조제는 1991년 착공을 시작해 2010년 4월 완공됐다. 

 

내부 개발을 위한 SOC사업으로는 간선 도로망인 동서도로가 2020년 11월, 남북도로가 잼버리 개막을 앞둔 지난 7월 완공됐다. 이 밖에 항만과 철도, 국제공항 사업 등이 진행 중이거나 착공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다.

 

 


예산 78% 삭감, ‘잼버리 보복’ 논란

2017년 세계잼버리대회 유치는 정치권과 전북도 간 공조로 새만금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새만금개발청은 관광레저용지 내 호텔 건설,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 건설, 배수지 건설 공사 등 다수 사업을 추진하면서 ‘잼버리’를 언급했다. “세계잼버리대회를 차질 없이 지원하기 위해 옥구·계화 배수지 건설 공사에 착수했다” “국내외 청소년들에게 새만금 가치를 홍보하고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명소로 박물관을 활용하기 위해 잼버리 이전에 개관할 수 있도록 했다”는 식이다. 정부도 장단을 맞췄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월 6일 제29차 새만금위원회에서 “새만금 개발을 가속화하는 데 범정부적으로 노력하겠다. 물류·교통의 핵심 기반인 공항·철도·항만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여름휴가 중 새만금 2차전지 투자협약식에 참석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 속도”라며 힘을 실었다.

그러나 준비 부족으로 잼버리대회가 파행을 빚고, 정부와 전북도가 책임 공방을 벌이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지난 8월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새만금 SOC 예산이 당초 부처 반영액(6626억원)보다 78% 삭감됐다. 기획재정부 심사 단계에서 5147억원이 잘려나갔다. 새만금항 인입철도 건설(100억원)과 새만금 환경생태용지 2-1단계(62억원), 새만금 간선도로 건설(10억원), 새만금 환경생태용지 2-2단계 조성(9억5000만원) 등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내년 착공 예정이던 새만금 국제공항 예산은 부처 반영액 580억원 대비 11%인 66억원만 배정됐다. 새만금~전주 간 고속도로와 새만금 신항만 예산 역시 각각 28%, 26%만 남았다.

국토교통부의 설명자료는 ‘예산보복’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 8월 29일 국토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새만금 잼버리 행사 이후 새만금 SOC사업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는 바, 8월 29일부터 공항, 철도, 도로 등 새만금 SOC사업의 필요성, 타당성, 균형발전정책 효과성 등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자체 점검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한덕수 총리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에게 새만금 개발 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날이다. ‘잼버리 이후 문제가 제기돼 적정성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설명은 잼버리 파행과 새만금 예산 삭감의 연관성을 의심하게 했다.

이에 야권과 전북 정치권은 ‘예산보복’을 주장했다. 전북도의원 14명은 지난 9월 5일 “전북도를 향한 잼버리 파행 책임 공세가 도를 넘더니 급기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예산폭력이 자행됐다”며 집단 삭발을 하고 릴레이 단식에 돌입했다. 9월 7일에는 국회 본청 앞에서 ‘윤석열 정부 새만금 예산 삭감 규탄대회’도 열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전북 정치 원로들도 “부당하게 삭감된 예산을 회복하는 데 전 도민의 뜻을 모을 것”이라며 공동성명을 냈다. 국민의힘은 예산보복 논란에 ‘가짜뉴스’라며 맞섰다.

하지만 전북도 역시 잼버리대회를 SOC사업의 명분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전북도가 2018년 8월 발행한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유치활동 결과보고서’에는 “전라북도가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새만금에 유치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새만금 개발의 조속한 추진이 필요했기 때문” “전라북도는 국제공항 건설 및 SOC 구축 등 새만금 내부 개발에 박차를 가할 명분이 필요했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2017년 12월 새만금위원회가 ‘잼버리대회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당초 관광레저용지였던 갯벌을 농업용지로 바꾼 뒤, 농지관리기금 1800억원을 들여 갯벌을 매립해 새만금 잼버리 야영지를 조성한 점도 문제가 됐다. 용도가 농지로 변경되면서 관광레저용지일 경우 받았어야 할 환경영향평가와 사업타당성 조사 등이 생략됐기 때문이다.

새만금 SOC사업 예산 삭감을 두고 중앙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정작 지역에서는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북환경운동연합과 전북녹색연합 등 시민·환경단체와 정의당 전북도당은 생태계 보전과 도민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일단 기본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정부·여당과 의견이 같다. 다만 전북환경운동연합은 “기존 사업의 한계에 대한 진단과 분석, 평가 없이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보복성 예산 삭감이자 책임 떠넘기기 꼼수로 보인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예산 삭감에도 ‘지역민 분노’ 없어

반면 정의당 전북도당은 지난 8월 24일 기자회견에서 “노출지(매립되기 전부터 수면 위로 노출돼 있던 곳)를 거부하고 새롭게 갯벌을 매립하느라 잼버리가 파행으로 치달았다. 잼버리를 명분 삼아 SOC사업을 추진했다”며 여당과 유사한 논리로 지역 정치권을 비판했다.

민주당 전북도당 의원들이 “도민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라며 삭발 투쟁에 나섰지만, 정작 예산 삭감에 대한 지역민들의 불만이 크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초 새만금 사업이 중앙정부 주도로 계획되며 지역 어민들은 피해를 본 반면, 그간 새만금 SOC 개발에 투입된 예산은 매립공사 등을 수주한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 새만금살리기공동행동 대표를 지낸 한승우 전주시의원은 “새만금 기본계획은 중앙정부, 국토부를 중심으로 한 관련 부처가 일방적으로 세운 것이지 지역민의 의견이 반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새만금 사업에 투입된 예산의 85%는 서울에 있는 대기업 건설회사들이 가져가고, 전북도의 어업은 연간 1조원 이상의 피해를 보고 있어 예산에서 소외된 도민들이 이중 피해를 당하는 것이 새만금 사업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새만금 사업에서 지역민들은 소외”

 실제로 수산경제연구원은 2019년 9월 발간한 연구보고서 ‘새만금사업에 따른 수산업 영향 및 대응 방안’을 통해 “어업활동의 중단에 따라 어촌 주민들의 안정적인 소득 확보에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으며, 어촌이 기능을 상실해 생계유지를 위해 마을을 떠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방조제 착공 전인 1990년 전라북도 수산물 생산량은 15만234t이었으나, 방조제 완공 직후인 2011년에는 7만1309t으로 52.5% 감소했다. 반면 유사한 어업환경을 보유한 충남지역 수산물 생산량은 같은 시기 85.1% 증가했다. 면접조사 결과 새만금지역 어업인들의 소득 수준은 어업을 통한 소득이 있던 이전과 비교할 때 30~40% 수준으로 낮아졌다. 새만금간척사업 초기 정부는 간척농지 일부를 어업인에게 분양할 것을 약속했으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기본계획 변경으로 일부 사업이 중단된 데 안도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새만금 신공항 건설과 생태용지 조성, 수상 태양광 사업 등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특히 쟁점이 되는 사업은 내년 7월 착공이 예정됐던 새만금 신공항이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신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에서 전투기와 민물가마우지 무리가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충돌) 사진을 공개하며 위험성을 알렸고,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은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만 1308명에 달한다. 새만금 신공항의 경우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되고 있어 추후 환경부의 동의를 받아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국토부는 지난 8월 14일 공항 건설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다.

새만금 신공항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지역 정치권에서 ‘동북아 허브공항’이라고 홍보했지만 미군기지(군산공항)로부터 1.3㎞ 거리에 있어 사실상 미공군 제2활주로 증설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편다. 미군기지 인근이라 중국 노선 취항이 어려운 데다, 주기장이 5개에 불과하고 활주로 역시 군산공항 활주로(2.7㎞)보다 200m 짧아 C급 소형 항공기만 취항할 수 있다는 것. 인근의 전남 무안국제공항은 50개의 주기장을 확보했지만 ‘고추 말리는 공항’이라는 오명을 썼고, 결국 지난해 12월에는 공항의 활성화를 위해 활주로를 기존 2.8㎞에서 3.16㎞로 연장하기로 했다. 

 

 

 

<  새만금 약사  >

정권마다 ‘갈지자’… 밑그림만 세 차례 바뀌어 

새만금 사업은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 후보의 선거공약으로 등장했다. 가장 낙후된 전북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치권의 선물이자,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카드였다. 

 

1991년 7월 여야 영수회담(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 총재)에서 개발 착수에 합의해 추경예산을 배정하고, 같은 해 11월 노 전 대통령이 ‘새만금 간척 종합 개발사업’의 착공식에 직접 참석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갔다. 노태우 정부는 새만금을 ‘농업 식량 생산기지’로 만들 계획이었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대중국 교두보’, 김대중 정부는 ‘환황해경제권 생산교역 물류 전진기지’를 약속하고 방조제 공사를 이어갔다

 

1996년에는 시화호 오염 사태가 발생하며 새만금에도 여파가 미쳤다.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새만금 사업 재검토가 논의되고,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민관 공동조사단의 조사가 진행되며 방조제 공사가 중단됐다. 2003년 7월 환경단체 소송으로 새만금사업의 잠정 중단이 결정되며 공사가 멈췄다가 2006년 3월 대법원 판결로 공사가 재개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4월 새만금 내부 토지개발 기본구상을 발표하면서 기존 농지 100%에서 농지 72%, 산업·관광 등 비농지(복합산업농지) 28%로 토지이용계획을 전환했다. 

 

 

2010년 4월 착공 19년 만에 방조제가 준공된 이후에도 새만금 개발계획은 정권마다 변경됐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3월 2030년까지 21조원을 투자해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개발한다는 ‘새만금 종합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산업관광 용지 비율을 70%로 전환했다. 

 

‘국제 경제협력특구’를 내건 박근혜 정부는 2013년 9월 새만금개발청을 개청한 후 2014년 9월 새만금기본계획을 변경했다. 이명박 정부가 개발계획을 발표한 지 3년6개월 만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9월 새만금개발공사를 설립했고, 2021년 2월 글로벌 신산업중심지 조성을 목적으로 새만금 기본계획을 다시 변경했다. 

‘수퍼문’ 보며 소원 빌기

 

 

< 조선일보, 김태훈 논설위원,  2023.08.31.  >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시골 할머니 댁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밤이 내려앉은 집 밖은 완전한 암흑이었다. 그러다 달이 뜨면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달 그림자가 그렇게 뚜렷할 수 없었다. 달의 밝기는 보름달 기준 0.25럭스다. 3~5럭스인 보안등보다는 어두웠지만 그래도 ‘천연 보안등’이라 할 만했다. 윤석중은 동요 ‘둥근달’에서 ‘보름달 둥근 달 동산 위로 떠올라/ 어둡던 마을이 대낮처럼 환해요~’라고 했다.

▶달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은 정반대다. ‘미치광이’라는 뜻의 영어 루나틱(lunatic)은 ‘달의’라는 뜻의 루나(luna)에서 왔다. 특히 보름달은 불길함의 상징이다. 1976년 국내 개봉돼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된 아르헨티나 영화 ‘나자리노’는 사랑에 빠진 늑대 인간이 보름달 뜰 때마다 괴물로 변하는 이야기다. 가수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스릴러’ 뮤직 비디오도 스릴(전율) 효과를 내기 위해 잭슨을 달빛 받아 늑대가 되는 괴물로 표현했다.

▶반면 동양 전통 사회에서 달은 행운과 풍요의 상징이다. 우리 조상은 초승달이 보름달로 차는 과정에서 곡식이 익어가는 모습을 떠올리고 풍작을 기원했다. 우리나라 세시 풍속이 연간 190건 정도인데 50건 내외가 정월 대보름 관련이고 추석 보름달 관련 풍속까지 합하면 70~80건에 이른다. 한국인의 유난한 보름달 사랑이 반영된 현상이다.

▶달과 지구의 평균 거리는 38만1586㎞다. 멀 때는 40만㎞, 가까울 때는 36만㎞쯤 된다. 36만㎞ 안쪽으로 들어오는 보름달을 ‘수퍼문’이라고 한다. 어젯밤 하늘에 수퍼문이 떴다. 평소 보름달보다 15% 더 컸고 30% 더 밝아 올해 뜬 보름달 중에 가장 크고 밝았다. 지구에 35만7344㎞까지 근접한 덕분이다. 그런데 하필 8월에 수퍼문이 지난 1일에 이어 어제까지 두 번 떴다. 서양에선 한 달에 보름달이 두 번 뜨면 불길한 징조라며 ‘블루문’이라 한다.

▶영어의 ‘블루(blue)’도 달처럼 불길한 어휘다. ‘코로나 블루’도 그런 사례다. 그러나 우리에겐 행운을 빌 기회가 두 배인 ‘러키 문’이다. 심리학자인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행복하려면 가족, 친구와 산책 나가고 수다 떠는 경험을 매일 하라”고 했다. 산책 나가 크고 밝은 달 구경하는 것도 행복이다. 달이 처음 지구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 달과 지구의 거리는 지금의 10분의 1도 안 됐다. 이후 해마다 3.8㎝씩 멀어지고 있다. 더 멀어지기 전에 더 자주 달을 보고 행복도 빌자.

 

 

 

 

***   서울 응봉산에 올라가 찍어본 슈퍼블루문 핸폰 사진 (2023.08.31 20:00) 

 

 

 

 

 

 

 

 

“죽음의 땅이 아닌 산 갯벌 봤다면…얼마나 멋진 잼버리가 됐을까”

 

 

 

 

< 경향신문, 손제민 논설위원,  2023.08.15  >

 

 

<영화 ‘수라’의 황윤 감독>


황윤 감독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수라> 상영회를 한 후 경향신문과 만나고 있다. 황 감독의 상세한 인터뷰는 12일 군산 평화박물관에서 이뤄졌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동물원에 갇힌 아기 호랑이 크레인의 삶을 보여준 <작별>(2001)을 시작으로 <침묵의 숲>(2004), <어느날 그 길에서>(2008),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 등 인간 활동의 결과 죽어가는 동물, 자연을 일관되게 그려왔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를 인용해 “작가가 이야기를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야기가 작가에게 말을 건다”고 했다. 모든 작품의 소재가 운명처럼 다가왔다는 것이다. 전북 군산에 살며 2015년부터 7년 동안 담아낸 갯벌과 사람 이야기 <수라>로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스카우트 대원에 ‘수라’ 보여줬더니 “이젠 실상 알았다”며 감사
새만금 사업, 단순 환경 파괴 아닌 국가 폭력이자 인류에 대한 범죄
수라갯벌은 아직 살아있어…육화됐다는 정부, 한번 와 보고 얘기해야
모든 생명은 연결된 운명 공동체임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 담아

 


 지난 12일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원들이 머물다 간 해창갯벌 매립지에서는 뒷정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텐트가 있던 자리에서 물새 여러 마리가 노니는 모습이 보였다. 동행한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은 “이 갯벌도 아직 살아 있다”고 말했다.

 2006년 대법원 판결로 방조제 공사가 끝난 뒤 새만금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사이 강 하구 모래를 퍼올려 갯벌을 메우는 일에 매년 7000억~8000억원의 세금이 “녹아 없어졌다”. 2023년 갯벌의 존재를 새삼 일깨운 두 사건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의 개봉과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개최다. 영화는 갯벌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줬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남아있고, 그곳에서 생명들이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잼버리 대회는 새만금 개발의 본질을 드러냈다. 엄청난 국가예산을 낭비했으며 세계 청소년들을 새만금 개발의 ‘그린워싱’에 이용했다. 이 사건은 생태계 파괴가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삼 일깨웠다.

 

기후위기에는 누구나 힘들다. 약자들은 그 고통을 더 심하게 겪는다. 그중에 젊은 세대는 앞으로 더 긴 세월을 악조건 속에서 살아야 한다. 기후변화의 징표인 폭염에, 나무 한 그루 뿌리 내리지 못한 갯벌 매립지에서 생존하도록 내던져진 4만여 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겪은 고통은 기후위기 시대에 이들 세대가 처한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는지 모른다.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규명하는 일과 더불어 좀 더 길고 포괄적인 논의도 필요하다. 영화 <수라>로 새만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갯벌 수라(繡羅·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는 의미로 오동필 단장이 붙여준 이름이다)를 세상에 알린 황윤 감독의 얘기를 들어봤다. 황 감독의 인터뷰는 지난 12일 전북 군산 평화박물관에서 이뤄졌다.

 


 - 잼버리 대원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그만한 아들을 둔 엄마로서, 그 청소년들이 해창갯벌 매립지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어요. 잼버리는 청소년들이 야외 활동을 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보호하자는 취지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텐트 밑에는 대학살이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죽음이 깔려 있어요.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매립 과정에 하늘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개와 도요새, 물고기가 죽었어요. 그 갯벌에서 죽은 어민도 있고요. 그 청소년들이 죽음의 땅이 아닌, 살아 숨쉬는 갯벌을 보고 느끼고 저어새 같은 귀한 철새들을 탐조했다면 얼마나 멋진 잼버리가 됐을까요. 안타까운 마음에 제 영화를 통해서라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스카우트 대원들을 위한 <수라> 상영회를 열게 됐어요.

 - 대원들의 반응이 어땠나요.


 “태풍이 상륙한 날 스웨덴 대원 100명, 스위스 대원 200명 정도가 각자 영화를 봤어요. 저는 천안에 있던 스웨덴 대원 100여명과 함께 봤어요. 영화를 본 대원들이 제게 다가와 가슴 벅찬 표정으로 말하고 안아주었어요. ‘지도에 야영장 끝에 바다가 그려져 있길래 끝까지 걸어가 봤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바다가 나오지 않아 이상했는데 그 이유를 영화 보고 알게 됐다. 너무 고맙다’고. 스웨덴 스카우트 리더는 ‘환경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에서 잼버리를 개최했다는 것에 놀랐다. 돌아가 내 아이와 다른 대원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어요. 예술과 사랑은 만국 공통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영화에는 이 대원들과 비슷한 젊은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어린 시절 아버지(오동필)를 따라다니며 물새를 관찰하던 오승준군이 멸종보호종인 쇠검은머리쑥새의 번식 증거를 찾아내 정부의 새만금 신공항 건설 환경영향평가에 증거로 제출한다. 그레타 툰베리의 나라, 스웨덴의 스카우트들은 어쩌면 그 청년에게서 희망을 읽었는지 모른다. 황윤은 스웨덴 스카우트 리더로부터 선물 받은 스카우트 네커치프를 이날 인터뷰 자리에 매고 나올 정도로 이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다.

 <수라>는 개봉 7주 만에 다큐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4만명이 관람했다. 두 번 이상 보는 사람도 많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에서 상업영화 관람도 많이 하지 않는 현실에서 돋보이는 성적이다.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100개의 극장 프로젝트’의 힘이다.

 - 이 영화를 보고 또 보는 이유가 뭘까요.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관객들이 굉장히 많이 우세요.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고, 가슴 아파서 눈물이 나고, 희망을 느껴서 눈물이 난다고 해요. 통영의 60대 남성이 ‘나는 보수주의자다. 경제학을 했고 개발 쪽에서 일했다. 새만금도 잘 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많이 반성하고 성찰했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초등 5학년 어린이는 ‘도요새가 머나먼 여정을 날아가는 것을 보니까 우리도 먼 길과 험한 길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어요. 이 영화를 만들면서 힘들 때 먼 여정을 나아가는 도요새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는데 어린이들이 그런 마음을 갖게 되니 너무 기뻤고 힘을 얻었어요.”

 - 대학살이라고 했는데, 영화 속에 많은 죽음이 나오죠.


 “새만금 사업은 단순히 환경 파괴가 아니고 국가 폭력,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생각해요. 갯벌 규모가 광활하고, 중요성도 엄청나요. 세계에 갯벌이 있는 나라가 많지 않아요. 한국 갯벌이 유네스코 자연유산이 된 이유죠. 도요새 입장에서는 호주와 뉴질랜드를 출발해 알래스카, 시베리아까지 가는 1만㎞ 이상 여정에서 한번은 쉬어야 하는데 그곳이 한국 갯벌이에요. 거기를 매립한 거죠. 그랬을 때 이들에게 남는 건 죽음입니다.”

 영화에는 말라버린 갯벌에서 조개들이 땅속에서 버티다 비가 오자 일제히 나와서 입을 벌렸다가 죽는 장면이 나온다. 해수가 아니라 민물인 걸 몰랐기 때문이다.

 “뱃속이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새들을 찍은 다큐 <알바트로스>의 크리스 조던 감독이 저와의 대담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들이 죽어가는 이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바트로스는 모른다는 사실이다.’ 조던은 환생하면 알바트로스로 태어나 플라스틱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걸 동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했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다음 생에 도요새로 환생해 동료들에게 갯벌을 매립하는 한국으로 가지 말자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새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습성을 갖고 있어요. 수라에서 태어난 쇠제비갈매기 아기들은 겨울에 동남아로 갔다가 다음해 다시 수라로 올 겁니다. 그때 만약 수라가 사라져 있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죽음은 인간에게도 미친다. 2006년 조개를 잡던 중 예고 없이 방조제 수문이 열려 들어온 물에 휩쓸린 류기화씨의 죽음은 황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매립 이후 어민 2만여명이 생계를 잃었다고 한다. 영화에는 풀베기 공공근로를 하던 중 바다를 보며 눈물 짓는 나이 지긋한 남성 어민이 나온다. 갯벌 생태의 변화뿐만 아니라 어민들의 삶, 문화의 변화를 기록하는 것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하는 일이다. 인류학자 함한희는 저서 <미완의 기록, 새만금사업과 어민들>(2013)에서 “바다를 막아 강물을 흐르지 못하게 하면 강물이 죽고, 강물이 죽으면 갯벌이 죽고, 또 갯벌이 죽으면 조개들이 죽고 그러고 나면 인간이 죽는다”고 했던 어민들 얘기를 기록했다황윤은 “이 사업을 수십년간 이어온 정부는 그 어민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하고 트라우마 치료를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저는 영화에서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갯벌, 도요새, 조개, 어민, 그리고 나, 나의 아들.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갯벌이 사라지면 조개와 갯지렁이가 사라지고 그들이 사라지면 도요새도 굶주려 죽고, 강과 바다를 막으니 물이 썩어가고, 물고기가 죽어가고, 갯벌을 매립하니 뻘이 말라 초미세먼지가 되어 저희 집까지 날아옵니다. 저는 어느 새 목격자에서 피해 당사자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아들 도영이가 앉아 있던 황무지는 바로 해창갯벌입니다. 잼버리를 한다고 3~4년 전부터 갯벌을 매립하기 시작했고 황무지가 되어가는 현장에서 아들과 친구들은 물고기를 구조한다고 뛰어다녔어요. 그리고 그날, 매립되는 갯벌에서 아들 도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잼버리 청소년들보다 먼저, 저의 아들이 죽음의 갯벌을 경험한 거죠.”

 이들이 일찌감치 이곳은 야영에 적합한 곳이 아니라고 경고했는데 정부는 왜 듣지 않았을까. 오동필의 말이다. “잼버리를 위해 흙을 3m나 쌓아올렸는데도 허사였어요. 농지로 용도 변경해 매립했기 때문에 평평하게 쌓았고, 비가 오면 지하로 스며들어야 물이 빠집니다. 하지만 물기를 품은 갯벌 위에 흙이 놓여 있기 때문에 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않고 고일 수밖에 없는 게 매립지의 특성입니다. 농지 기금을 전용해 이걸 매립한다고 했을 때 ‘굿 아이디어’라고 박수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잔치를 했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준설에 이은 매립으로 매년 7000억~8000억원이 녹아 없어져온 곳이 새만금입니다. 그 돈이 다 어디 갔겠어요? 새만금개발청과 농어촌공사 등 공기업들과 건설기업들 주머니로 갔겠지요.” 그는 입만 열면 ‘이권 카르텔’을 잡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새만금 토건 카르텔’을 얼마나 단죄하는지 두고 보겠다고 했다.

 2006년 대법원 판결 후 새만금 간척 반대 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그때부터 갯벌 다큐를 찍으려 했던 황윤도 그즈음 일어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2014년 우연한 계기에 돌아온 이곳에서 그는 갯벌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고 놀랐다. 흰발농게가 갯벌 밑에서 언젠가 들어올 바닷물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었고, 시민조사단이 그곳을 뜨지 않고 묵묵히 기록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 그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요.


 “‘녹색평론’ 가을호에 쓴 부분을 읽어드릴게요. ‘막바지 촬영을 하던 2022년 2월 수라갯벌 상공을 잿빛개구리매 암컷이 차디찬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날개를 쫙 펴고 유영하듯 날고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강인함, 유연함 모든 게 너무 아름다워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매립토를 실어나르는 덤프트럭 옆에서 바짝 긴장한 채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고 알을 품던 검은머리갈매기 엄마의 용감함, 눈을 꼭 감은 채 엄마를 기다리던 쇠제비갈매기 새끼들의 위태로움과 사랑스러움, 물가로 아기들을 데리고 내려가 갯지렁이 잡는 법을 가르쳐주던 검은머리물떼새 부모의 성실함과 의젓함…. 내가 힘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런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었다. 수라에서 생명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뛰었고 살아 있음을 느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웠고 겸손해졌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혼자서 수라에 갔을 때, 내가 수라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수라가 나를 살게 하고 나를 지탱해준다고 느껴졌다.’ 조사단분들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입니까.


 “정부가 추진하는 새만금 신공항을 막는 겁니다. 새만금에서 마지막 남은 수라갯벌에서 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곳엔 40~50종의 법정 보호종이 살아요. 그들이 사라지든 말든 그냥 공항을 지을 거라면 왜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지정했나요. 유네스코가 한국의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할 때 서천·고창·신안·순천만 갯벌 외에 다른 갯벌에 대해서도 보호 조치를 하라는 조건을 내걸었어요. 인천 같은 지자체가 그 지역 갯벌을 추가 등재하려 하겠다고 나섰어요. 수라갯벌도 보호 가치가 뛰어나요. 정부는 수라갯벌이 이미 육화돼 갯벌이 아니라고 하는데, 한번 와보고 얘기하라는 거예요. 검은머리갈매기, 쇠제비갈매기, 저어새, 알락꼬리마도요, 잿빛개구리매, 흰꼬리수리들을 보라는 거예요. 수라갯벌이라는 배후습지가 사라지면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서천갯벌도 연동돼 영향을 받을 겁니다.”

 - 새만금 30년 개발사를 보면 전북 지역의 개발 소외감이 가장 큰 동력이었는데요. 전북 도민들로서는 대원들이 야영 대회를 다 마치지 못하고 전국 각지로 흩어져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박탈감도 느꼈을 것 같아요.


 “이번 일이 굉장히 큰 성찰의 시간이 될 거라고 믿어요. 갯벌을 그대로 지켰더라면 잼버리 대원들이 와서 전북을 다시 보지 않았을까요. 전북에 좋은 자연이 매우 많아요. 그 자연을 느끼고, 특히 갯벌에 와서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느끼고 갔더라면 그 젊은이들이 모두 전북의 홍보대사가 됐을 거예요. 최소한 정부가 그들에게 잼버리 대회가 열린 장소에 대해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비극이 벌어지진 않았겠죠. 전북도는 이번 일에 박탈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정말 뼈저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에도 못 느낀다면 희망이 없겠죠.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이었나,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고 뭔가 큰 거를 얻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저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본국으로 돌아간 스카우트 대원들에게도 계속 이 영화를 보여줄 계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 영화에서 ‘좀 더 아름다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 좀 더 아픔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에 주목하는데요. 도시적 감수성에 익숙한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도 매일 야생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도시적 감수성도 좋아해요. 하지만 실은 우리가 야생을 진짜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 거지 한번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면 헤어날 수 없어요. 그중 한 사람이 영화의 주인공 오동필씨이고요. 2005년쯤, 지금은 사라진 옥구염전에서 도요새 10만마리의 군무를 본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해요. 아름다움을 본 것도 죄일까. 그래서 지금까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거라고요.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에요. 아름다움을 깊이 느꼈기 때문에 그게 사라지는 게 슬프고, 고통스럽고, 그 아름다움을 다시 느껴보고 싶고, 우리 아이들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매혹의 순간을 전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 거고요. 어쩌면 그게 전해져서 관객들이 나서서 영화를 전파해주고 계신지도 모르겠어요. 인간에게는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은 본능이 있어요. 도시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도시는 도시대로 있되 우리가 (자연을) 다 파괴하지는 말자는 거죠. 남겨둘 건 감겨두자는 겁니다. 다 사라진 땅에서 우리가 외로워서 어떻게 살 거예요?

 황윤은 간척사업을 “모든 사람이 향유해온 갯벌이라는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국책사업이라는 이름하에 토건업자 배를 불리고 그 와중에 뭇 생명이 고통받는 과정이었다. 이를 고발하겠다는 마음만으로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었다. 더 컸던 것은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애도하는 마음이었다. 죽은 도요새를 가만히 쓰다듬는 그의 손길은 파괴되고 병들어 가는 지구에서 살아갈 아이들에 대한 연민의 다른 표현이다. “인류가 처한 종말적 현실을 직시하고 깊이 애도하는 것, 그렇게 의식의 깊은 우물 저 아래 방치돼 있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크리스 조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잼버리 대원들이 떠난 그 자리에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수라는 그 거울이다.


“수라갯벌 보호가치 있고 경제 타당성 낮은데 공항 짓는 게 맞나”


시민단체,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와 더불어 방조제 해수 유통 확대 요구

정부는 수라갯벌이 이미 육화(陸化)돼 보호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며 그 위에 새만금 신공항을 짓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신공항 공사 입찰 공고를 냈다. 이 공항은 2029년 개항을 목표로 9359억원을 투입하는 국책사업이다. 정부는 현재 있는 군산공항 서쪽으로 1.35㎞ 떨어진 곳에 2.5㎞ 길이 활주로를 가진 민간공항으로 짓는다고 밝혔다.

지난 20년 동안 매달 수라갯벌을 방문해 모니터링을 해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보호 가치가 없다는 정부의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반박한다. 이들은 흰발농게 등 40~50종에 달하는 법정 보호종의 서식 사실을 입증할 증거들을 수집해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도 제출했다.

조류 충돌 위험성도 높다. 영화 <수라>에는 1만5000마리의 가마우지 떼와 공군기가 충돌하는 장면이 담기기도 했다. 대부분 지방 공항들이 그렇듯 경제적 타당성도 낮다. 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새만금 잼버리 대회 등을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탄소 등 온실가스를 흡수·저장하는 갯벌 생태계를 없애 탄소배출원인 공항을 더 지으려는 계획이 시대에 맞는지도 의문이다.

또 다른 의문은 신공항이 결국 미군 활주로를 하나 더 늘리는 것으로 귀결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게 볼 여지가 없지 않다. 신공항은 현 군산공항(미군 부대 내에 있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지어지는데, 정부는 신공항과 구공항 사이 부지 23만평을 미군에 공여하기로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부지에 관제탑과 유도로가 들어서는데, 관리 주체는 미군이다. 신공항 관제를 미군이 맡는 것이다. 정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에 없던 23만평 추가 공여 사실을 본안에 기재하며 관련 내용을 모두 ‘비공개’ 처리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새만금 신공항은 민간공항이 맞다. 다만 미군이 관련돼 있는 공항이기 때문에 민감한 부분이 있을 수 있어서 국방부가 해당 부분을 비공개하도록 요청했다”며 “신공항을 평시에 미군이 이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이 신공항 백지화와 더불어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방조제 해수 유통 확대다. 정부는 2010년 이후 하루 1회 이뤄지던 해수 유통을 2020년 말 2회로 늘렸다. 여전히 부족하나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죽어가던 갯벌 생물이 살아날 기미를 보인 것이다. 정부가 20년간 4조원을 들이고도 썩는 걸 막지 못했던 새만금 담수호 수질은 바닷물과 강물이 자유롭게 만나야 비로소 개선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은 이를 ‘염분 성층화’로 설명했다. 호수 아래는 염분이 높은 물이 있고 위에는 담수가 층을 이루는데, 방조제 때문에 바닷물이 유입되지 않아 아랫물의 용존산소가 줄어들며 저서생물이 죽고, 물이 썩는다고 했다. 해수 유통을 늘리면 수질이 나아지고 인접한 갯벌, 염습지 생태계도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1.  열대야 밤하늘 밝힌 슈퍼문... 이번 달엔 한 번 더 온다
 
 

< 조선일보, 이혜진 기자,  2023.08.02. >
 

 
열대야로 잠들기 힘든 1일 밤하늘을 슈퍼문이 환히 밝혔다. 이번달은 드물게 두 차례 슈퍼문을 볼 수 있는데, 1일과 30일 밤하늘을 장식한다.

1일(현지 시각) 미국 CNN 등에 따르면 이날과 오는 30일 밤에는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울 때 뜨는 보름달인 ‘슈퍼문’이 뜬다. 특히 30일에 뜨는 달은 올해 가장 큰 슈퍼문이라고 한다. 서양에선 같은 달에 두번째 뜨는 보름달을 ‘블루문’이라고도 부른다.

슈퍼문은 지구를 도는 달의 공전궤도가 완전한 원형이 아닌 타원형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슈퍼문은 달이 지구와 가까이 있을 때(근지점) 나타난다. 지구와의 평균 거리가 38만4400㎞인 달은 타원 형태로 지구를 도는데, 평균적으로 지구(중심 기준)와의 거리는 가장 가까울 때 36만3396㎞, 가장 먼 때 40만5504㎞이다. 
 
1일 슈퍼문은 지구에서 약 35만7530km 떨어져 있다고 한다. 오는 30일 슈퍼문이 뜰 때엔 지구와 달의 거리가 35만7344㎞로 올해 뜨는 보름달 중 지구에서 가장 가깝다.

한 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뜨는 이유는 달은 29일을 주기로 모양을 바꾸기 때문에 30~31일인 일력 주기와는 하루 이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2~3년에 한 번씩 한 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뜨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일년에 서너번 정도 뜨는 슈퍼문은 평균적인 보름달보다 최대 7% 정도 크게 보이며, 달이 가장 멀리 있을 때보다 14% 정도 크고 30% 정도 더 밝지만, 육안으로 큰 차이가 나타나진 않는다. 다만 나무나 산처럼 크기 비교가 가능한 물체가 주변에 있다면 더욱 커보일 수 있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는 “달의 상세한 표면을 보기 위해 작은 망원경이나 쌍안경을 사용하거나 흥미로운 달 사진을 몇 장 찍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슈퍼문을 잘 관찰하기 위해선 하늘이 더 어둡고 빛공해가 적은 지역을 찾는 것이 좋다.

올해의 첫 번째 슈퍼문은 지난달 3일에 떴으며, 네 번째 슈퍼문은 내달 29일에 뜬다. CNN에 따르면 이달 이후로는 2037년 1월에야 두 개의 슈퍼문을 볼 수 있다고 한다.

 

 

 

2. “‘슈퍼블루문’ 보러 가지 않을래?” 오늘밤 놓치면 14년 후에나… 

 

 


<   kbs 뉴스광장 1부 ,  2023.08.31  >
 


올해 들어 가장 크고 특별한 보름달인 '슈퍼 블루문'이 한국 시간으로는 8월 마지막 날인 오늘 밤에 찾아옵니다.

지구와 달 사이 거리가 가장 가까워져 평소보다 더 크게 보이는 보름달을 슈퍼문이라 하는데요.

그 슈퍼문 중에서도 보기 드문 일명 '슈퍼 블루문'이 어제부터 오늘까지 이틀 동안 전 세계 밤하늘을 장식합니다.

실제로 달이 파랗게 보이는 건 아니고요.

이례적으로 한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뜰때 두번째 달을 가리켜 '블루문'이라고 하는데요.

이 '블루문'과 '슈퍼문'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슈퍼 블루문'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최근에는 2018년 1월에 관측됐고요.

2023년, 이번 기회를 놓치면 14년 후인 2037년까지 기다려야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선 서울을 기준으로 오후 7시 29분부터 슈퍼 블루문을 관측할 수 있다고 하니,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서울 응봉산에 올라가 찍어본 사진 (2023.08.31 20:00) ***

 

 

 

 

2023년 여름 장마 공식종료…강수량 역대 세번째

 

< 조선일보, 박상현 기자,  2023.07.26.  >

 


충청권과 남부지방을 강타하며 극심한 수해(水害)를 발생시킨 올여름 장마가 26일 공식 종료됐다. 역대 세번째로 많은 비를 퍼부은 장마로 기록됐다.

기상청은 25일 제주도와 남부지방, 26일 중부지방에서 각각 장마가 끝났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장마는 지난 6월 25일 제주도와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26일 중부지방까지 전국에서 거의 동시에 시작됐다.

올해 장마는 각종 기록을 썼다. 동서로 길이가 길고 남북으로 폭은 좁은 ‘띠’ 형태로 좁은 지역에 많은 비를 뿌린 장마전선은, 이 전선이 오래 머무른 충청·경상·전라권에 집중호우를 쏟아냈다. 전라권에선 역대 가장 많은 장맛비가 쏟아진 해로 기록됐고, 경상권과 충청권은 각각 역대 두번째, 세번째로 비가 많이 내린 해였다.

올해 장마철 전국 평균 강수량은 641.4㎜로 기상 관측망이 전국에 확충된 1973년 이래 역대 세번째였다.

 

1위는 2006년 704㎜,  2020년 701.4㎜다.

장마기간 중 비가 내린 날은 20.5일로 평년(17.3일) 보다 4일가량 많았다. 하지만 가장 많은 비가 퍼부었던 2006년과 2020년의 장마기간 강수일수가 각각 27일, 28.7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장마는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많은 비를 쏟아냈다고 볼 수 있다. 

 

‘강수일수 대비 강수량’만 놓고 보면 올해가 평균 31.3㎜로, 2006년(26.1㎜), 2020년(24.4㎜) 보다 많다.

올해 장마 기간은 전국 모두 총 31일로 평년과 비슷했다.  평년 장마기간은 중부지방이 6월 25일~7월 26일(31.5일), 남부지방 6월 23일~7월24일(31.4일), 제주도 6월 19일~7월 20일(32.4일)이다.

 


다만 장마가 끝나도 국지성 집중호우는 또 내릴 수 있다. 작년 8월 8일 서울에 각종 침수 피해를 입힌 시간당 141.5㎜, 하루 380여㎜의 집중호우는 장마가 끝나고 내렸다. 태평양 감시구역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는 ‘엘니뇨’가 발생하며 올해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많은 수증기가 공급될 전망이라 8월에도 각종 비 피해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역사상 가장 큰 방사능 오염원은 핵실험 낙진”

 

 

< 중앙일보,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2023.07.14  >

 



우주산업이 ‘우주경제’를 창출한다는 시대, ‘평평한 지구학회(Flat Earth Society)’가 활동한다. 2018년 미국 국제학회에서는 “우주에서 찍었다는 지구 사진은 모두 가짜다. 인간은 달에 간 적이 없다. NASA 주도로 수백만 명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진실을 은폐하는 음모에 가담했다. 그 권위에 압도돼 믿음을 강요받지 말라”는 궤변에 600여명이 환호했다. 2019년 가디언은 이들이 증가세라고 보도했다. 왜곡된 정보를 퍼나르는 SNS가 과학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념적 양극화로 과학 부정 심화
핵실험 금지 후 해양오염 계측결과
일반인 허용기준보다 크게 낮아
국제기준 존중, 준수 확인이 관건

 


스페인 코밀라스교황청대학의 설문조사(2023년)에서는 1200명 중 17%가 ‘지구가 둥글다’에 부정적으로 답했다. 그 원인으로는 ‘더닝-크루거 인지편향 이론’ 등이 꼽혔다. 과학지식이 없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오류임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학 부정론자와 대화하는 법(How to talk to a Science Denier, Lee McIntyre, 2021년)』이란 책도 나왔다. 저자는 구형(球形)지구·기후변화·백신·GMO(유전자변형식품) 등을 부정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과학 부정론은 그들의 정체성 자체이며 증거는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말했다.

대중은 과학적 사실의 수용에서 정서적·이데올로기적으로 양극화되고 있다(Pew리서치센터). 일례로 미국의 민주당원은 94%가 기후변화가 심각한 위협이라고 답한 반면, 공화당원은 19%만 그렇게 보았다(2016년). 특히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과학 부정은 완강하며 미디어 양극화로 인해 조직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역사적으로 과학기술계와 반대진영의 논쟁은 이성·합리성·효율성 대 감성·직관·불신의 대결이었다. 현재도 과학은 국제기준 등 수치와 관측 결과를 강조하고, 반대진영은 자극적 구호와 시위로 방사능의 잠재적 위험과 재앙을 강조한다. 대중은 차가운 이성의 언어 대신 감성적 호소에 쏠린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에서 과학기술 혁신역량 5위(36개국, 2021년 KISTEP)인 우리 사회의 과학 부정과 커뮤니케이션 한계를 절감한다.

과학적 시뮬레이션은 믿기 어렵더라도 ‘역사적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지구상 인공방사능 증가 원인은 원전과 핵잠수함 사고, 방사성 폐기물 투기, 핵 관련 시설의 방출, 핵무기 실험이다. 그런데 1988년 모스크바 국제과학연합회의(ICSU; 현재 ISC)에서는 “역사상 심각한 방사능 오염원은 핵실험 낙진이며, 체르노빌 원전사고 오염은 그에 비해 미미한(minor) 수준”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미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원).

핵실험은 1945~2016년 사이 8개국이 2055회 했다(워싱턴포스트). 방사성 오염이 이슈가 되면서 1996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이 채택되고, 1998년 파키스탄 핵실험을 끝으로 우주공간·대기권·수중·지하 등 모든 공간에서의 핵실험이 금지된다. 이후 2000년 IAEA 해양환경연구실은 해양환경에서의 방사성 핵종의 출처와 인체 영향을 계측했다. 결과는 일반인의 허용기준(1m㏜)보다 훨씬 낮았다. 핵실험 절정기(1955~63년)의 삼중수소 연간 피폭선량은 1963년에 최고치였으나 안전기준 이하였고, 1990년대 초반 정상으로 떨어졌다.

1993년 러시아 정부는 1959~92년 사이 소련이 동해와 북극해에 핵폐기물을 무단투기했다는 충격적인 조서(調書)를 발간했다. 거기에는 원자로 14기와 원자력 잠수함도 있었다. 우리 정부는 해수와 어류 오염을 조사한 결과 방사능 오염이 없다고 발표했다.

인공적 방사성 핵종은 어떤 경로로 발생하든 간에 지구표면의 71%를 차지하는 바다로 흘러들게 된다. 사상 최악의 체르노빌 사고로 발트해와 흑해는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방사능은 시공간에 따라 해수 기둥의 수평 이동과 수직 이동, 퇴적물의 재부유, 먹이사슬의 연쇄와 이동 등에 의해  희석되므로 “영향이 미미하다”로 관측됐다.

21세기 들어 핵실험을 한 경우는 북한뿐이다. 2006년부터 여섯 차례 했다. 지하핵실험이므로 방사능 유출이 전혀 없다는 북한 주장과는 달리, 2017년 벨기에 과학자들은 “2016년 일본에서 관측된 방사성 제논의 분포가 북한의 지하 핵실험과 관련될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BBC는 지표면이나 해상에서 대기권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국제적으로 금지되고 가장 오염이 큰 핵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바다 건너 이웃 나라가 자연재해로 인한 원전 사고의 오염수를 처리해 국제기준에 맞게 방류한다는 계획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이중잣대에 의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과학을 무시한 대가는 국민 피해와 국력 소모의 사회적 비용이다. K-시리즈로 세계 속의 대한민국 위상을 높이고 있는 시점에서, 국제기구에 대한 과도한 불신 표출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 국제기준을 존중하고 그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것 이상의 규범이 없기 때문이다.

페트병을 무한 재활용… ‘환경오염’ 누명 벗는다
국내서도 친환경 플라스틱 ‘보틀 투 보틀’ 본격화

< 조선일보, 송혜진 기자,  2023.07.10.  >

 


식품업체 오뚜기와 SK케미칼은 최근 재생 플라스틱으로 알려진 ‘순환 재활용 페트(CR-PET·Circular  Recycle PET)’를 100% 적용한 소스 용기를 개발했다. 순환 재활용 페트를 100% 활용해 식품 용기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은 국내 첫 사례다. 풀무원도 롯데케미칼과 손잡고 순환 재활용 페트를 활용한 식품 용기를 개발 중이다. 풀무원 관계자는 “조만간 순환 재활용 페트를 적용한 용기를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폐(廢)페트병을 새 페트병으로 만드는 소위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 개발에 나서고 있다. 버려진 플라스틱 페트병을 반복해서 새 페트병으로 만들 수 있어 플라스틱 생산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친환경 기술로 주목받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흔히 플라스틱을 환경의 적으로 여기지만 ‘보틀 투 보틀’이 실현되면, 플라스틱은 오히려 가장 친환경적인 재활용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해외에서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는 ‘보틀 투 보틀’은 지난 1월 우리나라 식약처가 식품 용기 제조에 재생 플라스틱 사용을 승인하면서 관련 제품 출시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플라스틱은 죄가 없다

보통 플라스틱보다 유리·종이·알루미늄 캔이 더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은 “재활용 측면에서 보면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라고 한다. 유리병을 만들 때 소비하는 에너지는 플라스틱보다 최소 170% 많다. 또 알루미늄 캔은 재활용률이 높지만, 재활용한 캔의 70%는 녹인 금속 안에 있는 산소를 없애는 폐산제로 재활용된다. 폐산제는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알루미늄 캔 대부분이 한 번 재활용되고 수명을 다하는 것이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쓴 덴마크 환경학자 뵨 롬보로그는 “종이가 플라스틱보다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버리기 전까지 최소 44번은 재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수거한 페트병 대부분은 계란이나 과일 포장재로 재활용되거나, 재생 섬유로 재활용돼 옷이나 가방, 신발 원료로 쓰였다. 이렇게 만든 재생 포장지나 섬유는 재차 재활용되진 않아, 일회성 재활용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보틀 투 보틀’은 폐플라스틱을 반복해서 재활용할 수 있는 무한 순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해외에선 이미 ‘보틀 투 보틀’ 도입에 적극적이다. 유럽연합은 2025년부터 3L(리터) 이하 음료 페트병을 만들 때 재생 플라스틱을 25% 이상 써야 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매년 생산하는 페트병 재생 원료의 26%를 병 제조에 쓰고, 미국은 21%를 이용해 새 페트병으로 만들고 있다. 글로벌 음료 기업 코카콜라는 현재 노르웨이, 스웨덴을 비롯한 8국에서 100% 재활용 페트 제품만 판매한다. 코카콜라는 우리나라에서도 식약처 허가가 나자 곧바로 재생 플라스틱을 10% 적용한 제품을 출시했다.


◇국내서도 기술 경쟁 불붙어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이 커지자 국내서도 페트병을 새 페트병으로 재활용하는 기술 경쟁에 불이 붙었다. 순환 재활용 페트는 폐플라스틱 페트병을 씻고 잘게 부숴 열로 섞는 ‘물리적 재활용’, 페트병을 분자 단위로 분해하는 해중합(解重合·중합의 반대라는 뜻으로 단위체로 분해하는 화학반응) 과정을 거쳐 원재료를 새로 뽑아내는 ‘화학적 재활용’, 두 가지 방식으로 만든다. 한 업계 관계자는 “쉽게 설명하면 남은 빵을 잘게 부숴 쓸 만한 조각을 골라 뭉쳐 다시 빵을 만들면 물리적 재활용이고, 부순 빵을 밀가루로 되돌리면 화학적 재활용인 셈”이라고 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이 중에서도 해중합을 거쳐 버린 페트병에서 새 플라스틱을 뽑는 화학적 재활용 시장이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고, 기술 선점을 위해 뛰고 있다. SK케미칼은 지난 3월 중국 슈에(Shuye)의 순환 재활용 원료·페트 시설을 인수하고 관련 법인을 설립했다. 최근 제품 생산과 상업화도 마쳤다. 롯데케미칼은 2024년까지 울산 공장에 해중합 설비를 완비한다는 계획이다. 원료 공급 공장도 추가로 짓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도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울산에 해중합 클러스터 공장을 짓고 있다.

찜통→폭우→찜통→폭우 500년 ‘장마’ 용어 바뀔 듯
오늘 비 그치면 전국이 사우나

 

< 조선일보, 박상현 기자,  2023.07.05.  >

 

 


5일 전국이 폭우와 폭염이 교차하는 하루를 보내겠다고 기상청이 4일 밝혔다. 4일 밤부터 5일 오전까지는 세찬 장맛비가 퍼붓겠고, 비구름이 걷힌 오후는 찜통더위가 나타나겠다. 보통 비가 그치면 비구름대가 빠져나간 자리를 찬 공기가 채우면서 선선해지지만 5일은 곧바로 더워지겠다. 대기가 불안정한 초여름에 비와 더위가 하루건너 번갈아 나타나는 경우는 많으나, 5일은 오전과 오후 사이에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것이다.

기상청은 장맛비가 4일 밤 전국으로 확대한 후 5일 오전까지 이어지겠다고 예보했다. 비의 정점은 4일 밤부터 5일 새벽 사이다. ‘매우 강한 비’의 기준이 되는 시간당 30~60㎜ 이상의 많은 비가 전국 대부분 지역에 내리겠다. 에 따라 시간당 70㎜ 이상의 비가 쏟아지기도 하겠다. 4~5일 예상 강수량은 수도권·충청권·전라권과 제주도 50~150㎜, 강원권 50~120㎜, 경상권 20~100㎜ 등이다. 4일 서울을 포함한 대부분 지역에 호우특보가 발효되면서 정부는 위기 경보 단계를 ‘주의’로 상향했다.

산림청은 이날 오후 4시 30분을 기해 전국 산사태 위기 경보를 ‘관심’에서 ‘주의’로 상향 발령했다. 6월 말 시작된 올해 장맛비가 집중된 남부 지방은 그간 내린 많은 양의 비로 지반이 약해진 상태라 산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절대적 강수량과 상관없이 짧은 시간 동안 집중호우가 내려도 토사가 무너져내릴 수 있다. 또 이번 비로 임진강·한탄강 등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인근 하천 수위가 높아지고, 유속이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5일 오후 비가 그친 다음에는 기온이 큰 폭으로 오르며 폭염이 찾아오겠다. 젖은 대기를 말릴 틈 없이 햇볕이 지표를 그대로 데우며 전국이 습식 사우나에 갇힌 것처럼 덥겠다. 보통은 많은 양의 비가 그치면 시원해진다. 비구름대를 포함한 저기압이 크게 비를 뿌리고 한반도를 지나가면서 북쪽에서 찬 공기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렇게 이끌려온 찬 공기의 양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비가 그치며 한반도는 곧바로 고기압 영향권에 들면서 구름 없이 맑은 하늘 사이로 햇빛이 내리쬐어 기온을 빠르게 끌어올리겠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한낮 기온이 30도 안팎으로 오르겠고, 5일은 경상권, 6일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으로 크게 뛰며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겠다.

5일 오후부터 6일까지 짧은 폭염이 끝나고 곳곳에 다시 비가 예고됐다. 7~8일 남부 지방과 제주도에 비가 내리겠고, 8일은 비가 충청권까지 확대되겠다. 9~10일에는 중부 지방에 소나기가 내리겠다.

그래픽=김성규

 


하루에 폭우와 폭염이 동시에 나타나는 건 기후변화 여파다. 현재 동인도양과 필리핀해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데 이 경우 우리나라 기온을 끌어올린다. 열대 동태평양 수온이 올라가는 ‘엘니뇨’가 기승을 부리면 우리나라 남부에 폭우를 뿌린다. 최근 해수면 온도 상승과 엘니뇨 발달이 겹치면서 폭염과 폭우가 겹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는 장마가 끝날 때까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장마 종료와 함께 집중호우도 멈출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최근 기후변화 여파로 장마 이후에 더 많은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서울에 퍼부은 시간당 141.5㎜의 비는 장마가 끝난 후인 8월에 쏟아졌다.

‘장마’는 우리나라에서 1년 중 가장 많은 비가 집중되는 기간을 의미하는데 기후변화 여파로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상청은 2008년부터 공식 장마 시작일·종료일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장마가 끝났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 시점 이후에는 큰 비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장마가 끝나고 장마에 버금가거나 장마철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리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장마 종료’ 발표가 오히려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해 4월 기상학회 학술대회에선 처음으로 여름철 강수를 예보할 때 ‘장마’라는 단어를 자제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적절한 단어를 찾기 전까지 장마라는 단어 사용을 줄이고, 객관적 정보인 강수량·강수 기간만 예보하자는 것이다. 작년 10월 ‘기후위기 시대, 장마 표현 적절한가’를 주제로 열린 기상청 회의에서 장마라는 단어를 수정하자는 공식적 논의가 처음 이뤄졌다. 장마가 ‘1년 중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 때’라는 의미를 잃으면서 기상청은 ‘여름철 오랜 비’를 표현할 다른 용어를 찾고 있다. 장마는 순우리말로 500년 전부터 쓰였다. ‘여름철 오랜 비’는 동아시아권의 공통된 현상으로 중국과 일본은 ‘매우(梅雨)’라는 표현을 쓴다. 일각에선 ‘우기(雨期)’ 등 표현이 거론되고 있지만 수백 년간 쓰인 용어를 대체하는 작업이라 시간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오는 10월 열리는 가을학술대회에서 장마 용어 재정립을 위한 특별 세션을 계획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기상청뿐만 아니라 학계, 언론, 인문·사회 분야 전문가가 모두 참여해 장마라는 용어를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여름 휴가철’은 보통 7월 말부터 8월 초다. 장마가 7월 중순쯤 끝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처럼 7월 말 이후에도 많은 비가 내리면 이에 맞는 적절한 용어가 필요하고, 기존 장마 개념에 맞춰진 사회 시스템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 기상청 설명이다.

한편 일본 곳곳에선 예년보다 장마가 빠르게 끝났다. 지난달 25일 장마가 공식 종료돼 예년보다 4일 일찍 끝난 오키나와에선 거센 장맛비 이후 곧바로 폭염이 찾아왔다. 마지막 장맛비는 이틀 전인 23일 내렸다. 이날 비가 내리고도 최저기온은 27도, 최고기온은 30도를 기록했다. 남아 있던 구름이 햇볕을 막아준 24일에는 한낮 기온이 31도로 올랐고, 장마가 종료된 25일부턴 현재까지 최고 32도 안팎의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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