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은 언제든 찾아도 좋다. 하지만, 특별한 모습을 즐기기 위해서는 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 며칠 전 지리산 쌍계사에 들렀다가 국사암의 노거수 느티나무를 찾았다. 잎을 모두 떨군 느티나무는 잘생긴 수형을 보여주었다. 가을 단풍이 진 뒤 겨울철에나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지리산 노고단에는 눈꽃과 더불어 ‘상고대’가 피었다. 상고대는 겨울철 안개 낀 산이나 물가에 주로 나타난다. 나무에 내린 서리여서 수상(樹霜)이라 불리는 ‘서리꽃’이다. 서리꽃은 새벽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고 햇볕을 쐬면 스르르 사라진다. 그 아름다운 찰나의 시기를 잡기란 쉽지 않다.
겨울을 상징하는 동백꽃이 제주에 활짝 피었다는 소식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동백꽃을 보러 겨울에 선운사에 갔다가는,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만 흥얼거리고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선운사 동백숲’은 겨울에 피는 동백(冬栢)이 아니라, 봄에 피는 춘백(春栢)이다. 선운사는 벚꽃이 필 즈음 가야 동백숲에 핀 꽃과 땅에 송이채 떨어진 꽃을 함께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절 아름다움이 무색할 정도로 사계절 풍경이 변하고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각종 재해로 인해 나무를 포함한 자연유산이 위기이다. 너른 품을 내어주는 나무는 우리와 같이 생멸하는 존재다. 그 지켜야 할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서둘러야 한다. ‘자연유산법’도 마련해야 한다.
드라마에 나와 화제가 된 ‘우영우 팽나무’는 대중문화가 자연유산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사례다. 오랜 세월 마을을 품어준 ‘창원 북부리 팽나무’는 드라마 내용 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문화재청의 관리를 받게 되어, 적절한 시기에 주민과 함께 나무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나무의 시간처럼 우리에게도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있다. 하지만, 그저 기다리고 그리워만 하기엔 아까운 시간이 지금도 흘러간다. 서리꽃이 사그라진 자리에 싹을 내고 꽃을 피우는 나무처럼 우리의 시간도 단단하고 아름답길 소망한다.
무엇이든 얼려버릴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태어난 언니 엘사와 그 동생 안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있습니다. 하얀 눈과 얼음을 배경으로 모험이 펼쳐지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지요. 영화 속 나무들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이면서 아름다운 꽃으로 변해가는 장면이 너무 신기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건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실제 자연에서도 나무에 눈이나 얼음이 덮여 예쁜 꽃이 핀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는데요.
눈이 나무에 쌓여 꽃처럼 되면 설화(雪花)라고 부르고,
나무에 얼음이 얼어붙어 꽃처럼 피면 상고대라고 합니다.
눈꽃은 자주 볼 수 있지만 상고대는 보기가 어렵지요.
상고대는 어떻게 생길까요? 두 가지 원인으로 만들어집니다.
우선, 호숫가나 높은 산의 기온이 영하권으로 내려가면 밤새 내린 서리가 나무에 하얗게 얼어붙어 얼음꽃이 피는데요. 이렇게 만들어진 상고대를 '나무서리(樹霜)'라고 부릅니다. 이때 만들어진 얼음꽃은 해가 뜨고 기온이 오르면 바로 사라집니다.
또, '과냉각 물방울'이 나무를 만나 부딪치는 순간 얼어붙어 얼음꽃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나무얼음(樹氷)'이라고 부릅니다. 물은 영하로 내려가면 얼음으로 변하는데, 영하의 온도에서도 액체 상태로 남아 있는 물방울을 과냉각 물방울이라고 하지요.
그럼 어떤 날씨가 상고대를 만들어낼까요?
나무서리는 겨울철 영하의 기온에, 습도가 높고, 안개가 끼는 날에 잘 만들어지고요.
나무얼음은 영하 2도에서 영하 8도 사이 기온에서 바람이 강하게 불 때 생기는데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과냉각 물방울이 얼음꽃을 만들지요. 나무얼음 꽃이 피어 있는데 눈이 내리거나 추위가 이어지면 바람결을 따라 뾰족하게 얼음꽃이 자라기도 한답니다.
나무서리는 댐 주변에서 만나기가 쉬운데요. 추운 겨울 아침에 습기가 많은 댐 주변에는 환상적인 상고대가 만들어지지요.춘천의 소양 3교와 소양 5교는 상고대를 찍는 사진작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랍니다.
나무얼음은 주로 높은 산의 나무에서 만들어지는데요. 상고대가 유명한 산으로 소백산과 덕유산이 있는데, 덕유산은 바람에 날린 과냉각 물방울이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하얀 산호 같은 상고대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상고대를 보기 어려운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해요.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 기온이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요. 기상청 예측에 따르면 우리가 탄소를 줄이지 못한다면 이번 세기 말에는 한반도 평균기온이 7도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하네요. 겨울이 사라지고 여름이 길어지는 아열대 기후로 바뀐다는 건데요. 그렇게 되면 춘천댐이나 덕유산의 환상적인 얼음꽃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고 사진에서만 상고대를 만나게 될 것 같네요.
한파가 계속되며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기상청은 25일 공식 관측 지점인 한강대교 교각 두 번째와 네 번째 사이 결빙이 관측됐다고 밝혔다. 올해 한강 결빙은 평년보다 16일 빠르게 관측됐다.
강추위가 지속된 지난 2주 간 평균기온이 영하 4.2도로 나타났다. 이는 기상관측망이 본격적으로 확충되기 시작한 1973년 이래 가장 낮은 값이다. 한파와 함께 서해안과 제주도를 중심으로 폭설이 내렸는데, 지난 23일 광주에서는 하루 만에 32.9㎝ 눈이 쌓이며 역대 두 번째로 큰 일최심신적설 수치를 기록했다. 일최심신적설은 '하루 새 쌓인 눈의 최대 깊이'를 말한다. 광주의 기존 일최심신적설 최대치는 35.2㎝였다.
이렇듯 최근 2주 동안 계속된 한파와 폭설의 원인에 대해 기상청은 27일 “북극을 둘러싸고 도는 소용돌이가 약해지는 '음의 북극진동'에 있다”고 설명했다.
북극진동이란 북극 성층권에서 차가운 공기를 감싸고 돌고 있는 ‘극 소용돌이’(polar vortex)가 대기순환의 내부 변동성으로 수일에서 수 십일 주기로 강약을 되풀이하는 현상을 말한다.
만약 음의 북극진동이 발생하면 이 소용돌이가 느슨해져서 찬 공기가 북극에서 북반구 지역으로 남하하게 되고,
양의 북극진동에서는 찬 공기가 극 소용돌이 안에 갇혀 있게 된다.
현재 음의 북극진동이 일어나는 배경으로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북극 기온 상승이 꼽힌다. 북극 기온 상승으로 바다얼음이 감소하게 되면, 햇빛 반사량이 줄어들고 북극 바다는 열을 흡수하게 돼 북극 기온 상승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기상청은 “북극발 한파로 장기간 추위와 동시에 폭설까지 몰고 왔다”며 “12월 북반구에서 음의 북극진동이 강하게 지속하면서 우랄산맥의 바람이 불어 나가는 방향인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으로 차가운 북풍이 자주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또 대륙고기압이 확장할 때 서해상에서 해기차(대기와 해수면 온도 차)가 15도 이상으로 커지면서 눈구름이 발달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2020년 8월 시작해 이어지고 있는 라니냐도 한파의 원인”이라며 “라니냐가 발생하면 일본 남동쪽에 저기압이 발달하면서 우리나라로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가 유입되는 경향이 있다”고 풀이했다.
아울러 "북극진동의 강도와 지속 여부에 따라 변동성이 있지만, 내년 1월까지는 기온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1월 후반에는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평년과 비슷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5월은 1년 중 가장 큰 불교 행사인 ‘부처님 오신 날’이 들어있어서 스님들에겐 기쁘고도 분주한 달이다. 게다가 올해는 3년 만에 제대로 모이는 행사여서 준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한결 편안하게 야외활동이 가능해진 덕분에, 모처럼 즐겁고 신나게 보냈다. 무엇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연등회 행렬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그간 고요한 절집을 더욱 삭막하게 만들었던 코로나 상황이 언제 그랬는가 싶게 5월은 푸르렀으며, 역시 사람은 함께여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어버이날까지 겹쳐 절에 모인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럼 뭐 어떤가. 기쁨 가득한 행사를 함께할 수 있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작은 절집 곳곳에도 쓰레기 많아 싱그러운 5월을 몇 번 더 맞을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자연 지켜야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나고 나는 며칠 동안 몸살을 앓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방은 물론이요 도량 곳곳에 아직도 치워야 할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기력은 없는데 주지 소임을 살다 보니, 습관적으로 도량에 치워야 할 것이 먼저 눈에 띈다. 하다못해 부처님 전에서 뭉개지도록 피고 진 꽃들도 온통 치워야 할 쓰레기로만 보였다.
‘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조지훈)’라고 했던가. 흐드러진 ‘낙화’를 바라보며 ‘내 인생도 이리 곱게 피었다가 살아생전의 잘못일랑 고이 접어 사뿐히 지면 좋겠구나’ 싶었다. 늘 그렇듯 낙화를 치우는 것은 승려에겐 그리 싫지만은 않은 일거리다.
몸은 힘든데, 이곳저곳 청소를 하다 보니 쓰레기가 만만치 않았다. 분명 행사 당일에 많이 치웠는데도, 여전히 크고 작은 쓰레기가 나왔다. 작은 절에서 쓰레기가 이렇게 많이 나오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행사 하나 치를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를 위해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심은 적도 없는데, 나는 일생 얼마만큼의 쓰레기를 남기고 이승을 떠날 것인가. 남을 위해 산다면서 이래도 될 일인가. 궁시렁궁시렁…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복잡한 머릿속을 헤집었다. 수도 서울에 사는 수도승인지라 청소를 하면서도 쓰레기 분리수거 날짜를 다시 챙겨보았다.
코로나 이후 우리나라의 하루 평균 쓰레기 배출량이 50만t을 넘어섰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정말 이러다간 푸른 청산이 아니라, 머지않아 쓰레기 산에 둘러싸여 살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최근 전 세계는 코로나 말고도 한파에 폭설, 초대형 산불까지, 극심한 이상기후 현상에 몸살을 앓았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우리 인간이 초래한 과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에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었다. 돈이 필요하다고 하니 사과를 따 돈을 마련하게 해주고, 살 집이 필요하다 하니 나무를 잘라 집을 짓게 해주고,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하니 밑동을 잘라 보트를 만들게 해주고, 노인이 되어 돌아오자 베이고 남은 그루터기에 앉아 쉬라고 했던 그 ‘아낌없이 주는 나무’ 말이다. 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휴식처가 되어 주었는데, 인간은 일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을 훼손하는 일만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 같다.
세제를 맘껏 풀어쓰고, 물을 펑펑 써대고, 플라스틱 함부로 버리고… 기업까지는 모르겠고, 생활면에서만 보면 자연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곤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오래전, 청담 큰스님께서는 계곡물에서 머리 감는 스님에게도 물 아껴 쓰라며 호통치셨는데, 그 음성이 다시금 필요할 때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중이 머리 감아 봤자 물이 뭐 얼마나 든다고 그러실까 싶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큰스님은 이리될 줄 이미 아셨나 보다.
물건도 문제다. 젊어서는 어떻게든 내 공간을 좋아하는 물건으로 채우느라 낭비했다. 인생을 물건으로 채우면 안 되는데, 빌려보면 되는 책도 쓸데없이 사들여 꽂아두고는 저 혼자 좋아했다.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다 부질없다. 아니 지금은 물건을 정리하고 치우는 데 또 공을 들인다. 책뿐만 아니라 옷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죽고 나면 결국엔 쓰레기로 남아 먼지로 돌아갈 텐데, 답답한 노릇이다. 버리는 것도 분류하고 나누며 정성껏 정리해야겠다.
아마도 인간은 적게 가지고 만족하며 사는 삶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5월을 몇 번이나 싱그럽게 맞이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적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 후손뿐만 아니라, 내생의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자연을 향해 더 배려하고 아끼며 친절하게 살자.
지난 24일, 서울의 첫 벚꽃이 피었습니다. 예년처럼 꽃구경은 가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출퇴근길, 피어있는 봄꽃들을 보며 '그래도 봄은 다시 찾아오는구나' 생각하곤 하죠. 그런데, 이렇게 반가운 마음도 잠시뿐, '벌써 꽃이 필 때가 됐나?' 하는 생각과 함께 걱정도 덩달아 커집니다
서울에서 3월 24일에 벚꽃이 개화한 것은 지난 1922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이른 일입니다. 당장 지난해에도 마찬가지로 '역대 가장 이른 개화'였었는데, 그 기록을 이듬해에 또 갈아치운 거죠. 지난해보다 사흘 앞당겨진데다 평년(4월 10일)에 비하면 17일이나 빠릅니다.
(자료: 기상청)
이유야 모두가 짐작하듯 '더워졌기 때문'입니다. 올해 2월, 서울의 평균기온은 2.7℃로 평년보다 2.3℃ 높았습니다. 서울의 3월 평균기온은 8.3℃로 평년보다 3.2℃나 높았고요. 기온만 높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조시간도 훨씬 길었죠. 2~3월 두 달간의 일조시간은 339.5시간으로 평년보다 37.9시간 더 길었습니다.
이는 사실 서울만의 일도, 벚꽃만의 일도 아닙니다. 국가기후데이터센터에 따르면, 최근 30년 새 매화, 개나리, 진달래 등 다양한 봄꽃들이 피어나는 날짜는 앞당겨졌습니다. 특히, 매화의 경우엔 2011~2020년 평균 3월 12일에 꽃이 피었습니다. 이는 1980년대에 비하면 무려 21일이나 앞당겨진 수준입니다. 2~3월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그 추세에 따라 개화일 역시 앞당겨지고 있는 것이죠.
.(자료: 국가기후데이터센터)
#꽃에서_기후까지
이렇게 성큼성큼 앞당겨지는 봄꽃은 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경고는 쌓이고 쌓여 '평년값'을 바꿔버릴 정도가 됐고요.
우리가 기온을 비롯한 여러 기상현상을 이야기할 때 기준을 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평년'입니다. '평년값'이라 함은 최근 30년의 평균을 의미하는데, 이 평년값은 10년에 한 번 새롭게 업데이트됩니다. 그리고 지난 25일, 이 평년값은 10년 만에 새로 바뀌었습니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의 평균값을 새로 구한 것이죠.
(자료: 기상청)
더워졌습니다. 1981~2010년의 평균값과 1991~2020년의 평균값을 비교했을 때 예외 없이 기온과 관련된 값들은 모두 올랐습니다. 연 평균기온은 0.3℃ 올랐고, 폭염일수는 1.7일, 열대야일수는 1.9일 늘었습니다. 그런 만큼 한파일수는 0.9일 줄었고요. 이는 자연스레 계절의 변화로도 이어졌습니다. 1981~2010년 30년간 평균과 1991~2020년 30년간의 평균을 비교했을 때, 봄은 87일에서 91일로 나흘 늘었습니다. 여름도 114일에서 118일로 나흘 늘었고요. 반대로 가을은 70일에서 69일로 하루 줄었고, 겨울은 94일에서 87일로 무려 일주일이 줄었습니다.
우리가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을 겪을 때 흔히 듣는 표현이 있죠. 우리나라가 점차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렇다면 아열대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미국의 지리학자 글렌 트레와다는 아열대를 '연중 평균기온 10℃가 넘는 달이 8개월 이상'으로 정의했습니다. W. 쾨펜의 분류에 따르면, 연중 4~11월 월 평균기온이 20℃ 이상인 경우 아열대로 분류되고요.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이 6.1℃ 이상인 경우를 아열대의 기준으로 보는 경우(A. Miller)도 있습니다.
신 평년값에 따른 주요 도시의 월별 평균기온 (자료: 기상청)
가장 빡빡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최한월 평균기온 6.1℃ 이상'을 적용했을 때, 제주는 아열대에 해당합니다. '연중 8개월 이상 평균기온 10℃'의 경우, 제주와 부산까지도 아열대에 속합니다. 반면, '연중 4~11월 월 평균기온 20℃ 이상'의 기준에선 전국 대부분 지역이 아열대에 해당하죠.
#쪼개보면_더_두드러지는_변화
지금까지의 내용만 살펴보더라도 걱정스러운데,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새 평년값에 해당하는 1991~2020년까지의 30년의 시간을 다시 10년 단위로 쪼개보면, 그 상승세가 더 명확해지기 때문이죠.
연도별 평균기온(막대)과 10년 단위 평균기온(큰 숫자) (자료: 기상청)
10년 단위로 나눠 살펴보면, 0.3℃씩 꾸준히 오르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1980년대와 2010년대의 평균기온 차이가 0.9℃에 달하죠. 앞서 30년 단위의 평년값으론 평균기온의 상승폭이 0.3℃에 그쳤었는데, 구 평년값(1981~2010)과 신 평년값(1991~2020)의 처음과 끝 지점을 놓고 보면 그 차이가 1℃에 육박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폭염일수와 열대야일수도 10년 단위로 살펴보면 더 큰 변화를 실감하게 됩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30년 평균으로는 폭염일수가 1.7일, 열대야일수가 1.9일 늘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와 2010년대를 비교해보면 폭염일수는 5.1일, 열대야일수는 5.8일이나 늘었습니다. 1991~2010년 20년간의 증가폭보다 최근 10년의 증가폭이 훨씬 큰 겁니다.
10년 단위의 폭염일수와 열대야일수 (자료: 기상청)
1980년대에서 1990년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하루 안팎으로 증가하던 것이 2010년대 접어들면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한파일수의 경우 이와 달리 8.0일(1981~1990년), 4.4일(1991~2000년), 4.7일(2001~2010년), 5.3일(2011~2020년)로 80년대에서 90년대로 접어들 때에 큰 폭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기온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계절 역시 10년단위로 살펴보면 달라지는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봄과 여름의 경우 일평균기온이 각각 5℃(봄), 20℃(여름) 이상 올라간 후 다시 떨어지지 않는 첫날을 그 시작으로 봅니다. 가을과 겨울은 일평균기온이 각각 20℃(가을), 5℃(겨울)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 날이 시작일이고요.
(자료: 기상청)
2010년대, 여름은 넉달이 넘도록 이어졌고, 겨울은 석달이 채 되지 않아 끝났습니다. 80년대와 2010년대를 비교해보면, 여름은 113일에서 127일로 무려 2주나 늘었습니다. 반면 겨울은 102일에서 87일로 보름이 줄었죠.
달라진 것은 기온만이 아닙니다. 강수의 양상도 달라졌죠. 전체 연 강수량으로 따졌을 때엔 구 평년값(1307.7mm)과 신 평년값(1306.3mm)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해를 부르는 '집중호우'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자료: 기상청)
시간당 30mm 이상의 비가 쏟아지는 집중호우 일수는 크게 늘었습니다. 30년 단위의 평년값 기준으로는 1.5일이 늘었지만, 10년 단위로 살펴보면 1980년대 26일이었던 집중호우 일수는 2010년대 30.6일에 달했습니다.
#1℃가_부르는_큰_차이
이처럼 폭염과 열대야, 집중호우가 크게 늘고, 한파는 크게 줄었을 때, '평균기온'의 차이는 1℃가 채 되지 않습니다. 1980년대와 2010년대의 평균기온 차이는 불과 0.9℃니까요. 이 1℃도 안 되는 차이를 우리가 체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외출을 했는데 기온이 25℃인 것과 26℃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듯이 발이죠.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게 1℃의 차이는 큰 의미를 갖습니다. 중요한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36.5℃였던 체온이 38℃가 되면 약을 먹는 것처럼, 물이 -1℃에선 얼어붙고, 100℃에선 기화하는 것 처럼요. 때문에 국제사회는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묶어야 한다고 나선 겁니다.
국제사회는 지난 2015년 파리협정을 통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내로 지켜야 한다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18년 열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총회에선 이를 1.5℃ 이내로 묶어야 한다고 했고요. 이 '평균 0.5℃'라는 차이가 우리의 생존을 가르는 차이였기 때문입니다.
1.5℃와 2.0℃, 이 0.5℃의 차이에 곤충과 식물, 척추동물의 멸종 위험은 2~3배로 커지거나 줄어듭니다. 해수면은 10cm나 차이나 해수면 상승으로 위협을 받게 되는 인구의 수가 천만 명 차이나죠. 생태계가 전혀 다른 유형으로 달라지는 곳도 배가 됩니다.
앞서 환경부는 기후변화 보고서를 통해 한반도 평균기온의 1℃ 상승으로 인한 각 분야별 영향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농작물의 재배지는 북쪽으로 81km 올라가고, 고도로는 154m 상승하게 됩니다.단순히 재배 위치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량 자체도 줄어듭니다. 감자의 경우, 판매 기준인 81g 이상의 감자의 생산량을 뜻하는 '상서수량'이 11% 감소하죠. 폭염으로 인한 사망위험은 8% 높아지고, 모기 성체의 개체 수는 27% 증가합니다.
이는 이번 평년값의 업데이트가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입니다.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0.9℃ 올랐다는 이 변화는 봄꽃이 조금 이르게 피는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폭염과 열대야, 집중호우가 급증하고, 그로인한 사망위험이 늘어나고, 식량 생산량이 줄어드는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생존'의 문제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