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오히려 혼자가 되면 편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명기

 



1. 평생 친구는 없다.  나이 들수록 친구가 사라지는 이유.

   우리들의 친구는 주로 어렸을 때 친구들로 구성이 되는데,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고 원래 있던 곳에서 떨어져서 살게 되고 서로 있는 곳이 멀어지다가 보면 1년에 한 번 모임에서나 만나다가 점점 멀어지게 되고 그 사이 나이가 들게 되면 우리는 점점 자신의 주장과 의견이 확고해지게 되어서 어렸을 때는 그저 남의 의견에 쫓아가는 대로 해서 친구들이 구성됐는데 이제는 나와 마음에 맞는 사람과만 만나게 된다.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는 ‘친구가 없으면 이상해’ 해서 억지로라도 친구를 만들고 유지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친구 관계 자체가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되시는 사람들은 40대, 50대가 되면서 내가 혼자 있는 쪽도 굉장히 많이 좋아하는구나 하면서 친구관계 자체가 줄어들게 된다.


2. 진정한 친구가 없어도 정말 괜찮은 이유

   친구가 많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친구가 적게 필요한 사람이 있다. 친구가 필요한 사람도 있지만 점점 다른 것이 중요해져서 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각자가 선호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 친구의 수효와 범위가 결정된다.


3. 나이 들어서 인간관계에 집착하면 ‘이렇게’ 됩니다

   인간관계에 집착하시는 사람들은 결국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나를 좋아하기를 원하지만 실생활에 있어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원하는 ‘내가 만났으면 하는 사람’의 수와 ‘사람들 중에서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수의 비율이 맞지 않게 된다.

 
4. 주위에 친구는 많은데 늘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

   친구가 많은데 불행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장 중요한 점은 복수심이다. 친구를 사귀고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내가 손해 볼 때가 있는데 친구라는 관계에서는 손해를 보건 이익을 보건 간에 서로 개의치 않아야지 친구가 형성이 된다. 친구가 나한테 실수를 싫은 말 한마디 하면 꼭 사과를 받아 내거나 나도 똑같이 복수해야 한다면 친구와의 관계에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또 겁이 많은 사람들은 친구가 나를 싫어할까 봐 무지 걱정을 하여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고통에 처해 있는 경우도 있다,

 


5. 친구 없이 혼자 잘사는 사람들이 가진 마인드 

 (1) 자율성이 강함

   친구가 없고 혼자 있어도 할 게 많다. 너무 바빠서 친구가 있건 없건 간에 시간이 굉장히 잘 간다.  심리검사에서 외향성 내향성 척도, 사회적 민감성 척도, 사회적 불편감 척도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좋은 사람이 있고 많이 안 만날수록 좋은 사람이 있다. 후자의 유형은 굉장히 독립적인 성향이 있고 자율성이 강한 경향이 있는데 자신의 목표를 이룰 때까지는 또 친구를 안 만나도 된다. 또 사람들과 있는 것 자체는 싫어하지 않지만 시끄러운 걸 되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현대사회는 sns가 발달해서 친구가 항상 끊이지 않게끔 되어 있다. sns로 무슨 모임을 하다가 만나게 되면 만나서 잠깐 친하면 되기 때문에, 친구가 많지만 오히려 깊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한테는 사실은 독립심을 키우는 게 아니라 끝없이 친구들이 공급되는 좋은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2) 힘든 상황에 친구를 찾지 않음

   친구가 전문가면 여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그러나 친구는 괴로울 때 내가 그거를 얘기하고 위로받고 버틸 수는 있지만 그 친구가 궁극적으로 문제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친구를 찾지 않는다. 


5. 무례한 친구가 고민이라면 ‘이렇게’ 해 보세요

   현명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이 세상에 별로 없다. 우리가 누구와 멀어지는 건 대부분 싸움을 수반으로 삼아서 멀어지거나  아니면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누군가랑 멀어지게 된다. 현명한 해결은 싸우지 않으면서, 혹은 싸우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두려움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불확실성이든 불쾌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서 누구와 멀어지면서 오히려 내가 굉장히 잘했어, 지혜로웠어 하고 뭔가 성취감을 느끼면서 누구랑 멀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이 세상에서는 좋은 것과 나쁜 거를 선택할 수 없고, 이렇게 나쁜 것과 저렇게 나쁜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가 있다.  자꾸 현명하게, 지혜롭게, 싸움 없이 관계를 갖다 정리하고 싶어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관계가 죽을 때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명한 해결 방법은 기분 좋게 끝나는 법은 없고, 내가 기분이 안 좋건 상대방이 기분이 안 좋게 결국은 끝난다는 거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해결하는 게 오히려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6. 진정으로 ‘좋은 친구’는 나에게 달려 있다


   진짜로 좋은 친구는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진짜로 좋은 친구라고 할 때는 보통 위기를 전제로 한다. 만약에 살면서 나도 아무런 위기를 맞이하지 않고, 친구도 지혜롭고 현명한 친구여서 위기를 맞이하지 않는다면 그럼 그 두 사람은 진정한 친구, 진정한 우정으로 잘 지내게 된다. 왜냐하면 둘 다 괜찮기 때문에 이 우정에 흔들림이 없게 된다. 사실은 위기가 닥쳤으면 무너질 친구들도 위기가 안 닥쳤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친구로 믿으면서 지내는 것이다.


   인간은 위기 앞에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사실 진정한 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흔들리게 되는 게 아니고 인생에서 내가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 나의 우정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서 자기가 어떤 위기를 맞이할지 알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은 진정한 친구가 될지 안 될지는, 내가 어떤 위기에 처하는지를 알아야 된다. 우리는 그 위기를 알 수도 없고, 내가 결정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어한다. 


   오히려 진정한 우정을 유지하고 싶으면 가급적 내가 삶의 위기와 곤경이 있으면 안 된다. 내 삶이 안정되면 왠지 몰라도 내 주위에는 진정한 친구가 많고, 내 삶이 위태위태한 일이 많으면 내 주위에는 가식적인 친구밖에 없게 되거나 아예 친구 하나 없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https://youtu.be/MKNj6oEqPUc

 

 

나이 들어도 변치 않는게 있다, 1000명 노화과정 추적해보니
 

< 조선일보,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2023.09.20.  >

 

 


사람이 늙어가는 과정을 수십 년 추적 관찰한 연구가 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가 진행하는 볼티모어 노화 종적 관찰 연구는 1950년대 말부터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인간의 노화 과정을 추적 분석한다. 2년마다 각종 신체 및 생리 지표를 분석했다. 현재는 그들의 2세, 3세들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 안에 노화와 관련된 엄청난 자료가 있는데, 비만에 관한 분석 사례를 보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비만으로 체중이 느는데, 비만 위치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결과가 전혀 달랐다. 내장 지방 위주 복부 비만은 심혈관 질환, 당뇨병, 고혈압 및 암의 주요 인자로 작용했으나, 피하 지방 위주의 엉덩이 쪽 둔부 지방은 질병과 상관이 없었다.

늙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이 연구로 밝혀졌다. 바로 목소리다. 젊었을 때 헤어진 친구나 연인이 사오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을 때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 목소리 어조나 강도, 속도 등이 달라질 수 있지만 성문(聲紋)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성격도 변하지 않았다. 연구 대상자 주변 4~5인을 상대로 십 년, 이십 년이 지난 뒤 대상자의 성격 변화를 물었을 때 70% 이상이 똑같았다고 했다. 100%는 아니었지만 대개 나이 들어도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때, 그 인연이 평생 가려면 성격을 중요하게 검토한다는 점이다. 변하지 않는 지문이나 홍채 같은 생체 구조와 달리 목소리나 성격과 같은 생체 기능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은 노화가 일방적으로 일어나지 않음을 알려준다.

매일 두 시간 걷고 채소·잡곡·비타민까지 먹는데… 왜 이리 불안한가
[정희원의 늙기의 기술]

 

 

< 조선일보,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2023.08.30.  >

 

 


느리게 나이 드는 생활 습관에 대하여 여러 사람에게 알리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경박 단소한 식사, 충분한 신체 활동, 회복 수면 등의 생활 습관을 만들어 유지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서 오히려 병이 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주로 20~30대가 하는데, 스트레스를 화끈하게 풀고 당장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오히려 나은 삶 아니냐는 뜻이 숨어 있다. 사실은 반대다. 건강한 식사나 신체 활동, 회복 수면, 절주, 머리 비우기의 공통점은 오히려 우리 몸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준을 낮춰줄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현대인이 스스로 노화 속도를 부지불식간에 빠르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을 꼽으면 만성 스트레스를 들 수 있다. 정신없는 일과가 끝나가는 늦은 오후, 나는 눈치챌 틈도 없이 스마트폰을 스크롤하기 시작한다. 집중력이 떨어져 이 일, 저 일을 두리번거리듯 처리하다 보면 내가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스마트폰에 눈이 가고, 달고 기름진 음식이나 시원한 맥주가 한없이 떠오르지만, 정작 이런 자극에 빠져들수록 피로감과 우울감은 더욱 심해진다. 이 악순환 과정에서 신체 활동이 줄고 수면의 질이 악화되고 식사의 질은 떨어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연쇄 작용을 일으키는 여러 요소를 끊어내고, 오히려 반대로 돌려 선순환을 만드는 방법이 결국 전면적 생활 습관 개선이다. 전반적 생활 습관이 건강을 향할수록 스트레스는 줄어들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의 회복 탄력성이 개선되고, 노화 속도도 자연히 느려진다.

하지만 건강한 생활 습관이 오히려 병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때로는 사실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듯, 노화나 질병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삶 전반에 대한 과도한 규율과 집착으로 번지면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며 삶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여러 답답한 점이 있어 진료실을 찾은 60대의 남성 A씨 사례다. 항상 피로하다고 느끼는 그는 늘 건강과 관련된 매체를 시청하며 ‘항노화’에 대한 책도 빠짐없이 읽는다고 하였다. 특별한 지병은 없지만 철저히 채소와 잡곡 위주로 소식을 하고 있었고 여기에 더해 하루 두 시간씩 걷는다고도 하였다. 아주 마른 몸매인데, 영양 실조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여러 비타민과 보조제를 매일 한 움큼씩 복용하고 있었는데, 그 목록이 노트 한 페이지에 빼곡했다. 건강에 좋다는 것은 다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몸이 좋지 않은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 보니, 원래는 통통한 체형이었으나 2년 전 당뇨 전 단계와 고지혈증에 해당한다는 말을 듣고, 약을 먹지 않으려고 체중을 15kg 가까이 빼게 되었고, 이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검사를 해 보니 근육량뿐 아니라 뼈 밀도도 상당히 낮아져 있었는데, 결국 생활 습관의 구성 요소 하나하나는 문제가 없었지만 수단과 목표가 뒤바뀌어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해치게 된 것이다. 결국 A씨에게 가장 급요한 처방은 중용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균형 회복이다.

즐기면서 사는 게 낫지 않냐는 20~30대 젊은이와, 건강하다고 알려진 생활 습관에 강박적으로 빠져들었던 A씨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노화, 즉 나이 듦을 부정하고 거부하려는 생각이다. 그 태도는 젊어서는 건강한 삶, 느리게 나이 드는 삶의 방식에 대한 완강한 거부로 나타나 ‘미래 일은 생각하지 말고 현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라’와 같은 방어 기제로 표출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몸과 마음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건강 염려나 의료 쇼핑처럼 반대편으로 방어 기제가 발현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노화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시각을 점수화해서 연구에 사용한다. 뉴질랜드의 젊은 성인들을 관찰한 연구에서, 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전반적으로 더 나쁜 생활 습관뿐 아니라 동년배에 비해 좋지 않은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나이 듦에 대한 시각은 수명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이가 든다는 착각’을 쓴 예일대의 베카 레비(Becca Levy) 교수팀은 장년기의 미국인 660명을 23년간 관찰하였는데, 노년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가진 이들이 노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보다 7.5년 더 생존했다.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수명을 7.5년 줄이는 효과는 평생 하루 한 갑 정도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인은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기대 수명과 건강 수명을 보인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15세 이상 인구 중 자기 건강 상태가 ‘매우 좋다’거나 ‘좋은 편’이라고 응답한 이는 31.5%로 OECD 평균인 68.5%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는 질병 유무와 관계없이 스스로 느끼는 건강 수준을 이야기한 것으로, 예를 들어 특별히 아픈 곳이 없더라도 건강을 걱정하고 염려한다면 자신의 건강상태를 낮게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기대 수명 등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건강 상태가 큰 괴리를 보이는 현상은, 평균적 한국인이 가지는 나이 듦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방증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 2018년 국가인권위의 노인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의 80%가 노년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나이 듦을 피해야 할 대상이나 없애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노화를 박멸할 수 있는 생활 습관과 관련한 TV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안, 노화를 퇴치할 수 있다는 과학기술에 대한 책을 만들자는 제안 등을 자주 받는다. 이런 시각은 본질을 놓친 채 노화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강화한다. 베카 레비 교수는 단 10분 동안 나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기억력과 신체 기능, 심지어 삶의 의지까지 개선할 수 있었다고 했다. 노년을 거부 대상이 아닌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완성 시기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지속 가능하게 나이 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길한 일만 아니라 흉한 일도 감당하는 게 인생

 

 

 

< 한겨레, 이선경(조선대 초빙객원교수・한국주역학회 회장),  2023-07-26  >

 



삶에 굴곡이 없으면, 그것이 행복인가?

 

주제가 많이 무겁다. 기쁘고 즐거운 이야기가 듣기에 편한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실상 그 반대의 측면이 빙산의 밑둥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 솔직한 삶의 모습이 아닌가. 누구나 건강하기를 원하고, 앞길이 순탄하기를 기도한다. 삶에 길(吉)과 흉(凶)이 함께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우리는 늘 길한 쪽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흉한 일을 만났을 때조차도 그것을 잘 극복하여 길한 쪽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그러나 만약 아파본 적도 없고, 슬퍼 본 적도 없으며, 실패와 좌절을 겪어본 일도 없이 승승장구 살아온 이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그처럼 불행하고 불쌍한 경우도 없다는 것이 인생의 역설이다. 인생의 아름다움이란 쓰고 달고 맵고 신 맛이 한데 버무려져 숙성된 것이겠기에 말이다.


<주역>은 살면서 흉한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주역>의 64괘 가운데 삶의 가장 흉한 국면을 제시한 사례는 택수(澤水) 곤괘(困卦䷮)가 아닐까 한다. 곤(困)이라는 이름 자체가 ‘괴롭다’는 뜻이다. 괘의 모양이 연못(☱)이 위에 있고 물(☵)은 아래에 있어서, 물이 연못에 담겨있지 못하고 아래로 쭉 빠져 내린 모양새이다. 더 험악하게 말하자면 몸에서 피가 쭉 빠져나간 형국이니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보다 더 흉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 괘의 의미를 풀어놓은 <주역>의 설명이 아이러니하다.


“곤(困)은 형통하고 곧은 대인(大人)이라서 길하고 허물이 없다. 말을 해도 믿지 않으리라.”


모순과 역설로 점철된 풀이가 아닐 수 없다. 상황은 필경 죽게 되어 흉하기 짝이 없는데, 그 풀이는 길(吉)하고 허물이 없단다. 무슨 말을 해도 남들이 믿어주지 않으니 그 곤궁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길하고 허물이 없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그에 대한 답은 이어지는 <주역>의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기쁘게 험난한 길을 가기에, 곤고하지만 그 형통함을 잃지 않으니, 오직 군자라야 그러하리라!” 세상 사람들은 그의 무고함을 알아주지 않지만, 당사자는 의연하게 그 험난한 길을 걸어가는 지조를 지녔기에, 비록 몸은 죽어 흉하더라도 그가 추구하는 ‘뜻’은 이루어지는 길(吉)한 결과를 낳으리라는 해석이다. 급기야 <주역>의 작자는 ‘연못 밑으로 물이 다 빠져 내린’ 이 괘의 모양에서 사람이 배워야 할 교훈이 “치명수지(致命遂志)” 즉 “목숨을 바쳐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다시 말해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뜻한다. 죽음으로써 다시 산다는 역설이며, 길과 흉의 뒤얽힘과 뒤집힘이다.

 


목숨 바쳐 뜻 이루는 도학의 선비정신


<주역>의 곤괘(困卦)를 읽노라면 윤동주의 시 <십자가>, 조선의 도학자들, 안중근 의사, 최초의 한국인 신부(神父) 김대건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탄생>, 현충원은 고사하고 비목(碑木)조차 갖지 못한 무수한 초야의 별들 등등, 다 헤아릴 수 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 꼭대기 /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1941. 5. 31.)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야말로 곤괘(困卦) 대인의 맞춤 사례가 아닐까? “이것이 제가 마시지 않고는 치워질 수 없는 잔이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 피땀으로 기도하던 예수의 괴로움이 곧 그를 복된 사나이가 되게 하였다는 역설이 있다. 시를 모르는 필자의 생각일 뿐이지만, 멀리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높이 걸린 햇빛이 어두워 가는 하늘 아래 조용히 피를 흘리며 스러져 가는 그이의 모습과 뗄 수 없이 뒤얽히며, ‘기꺼이 험한 길로 걸어가는’ 곤괘 군자를 떠올리게 된다.


도학(道學)은 성리학의 다른 이름으로, 율곡 이이는 도학의 이념을 “선(善)을 밝히고 몸을 닦아, 자기 자신에게서는 덕(德)을 이루고 정치적으로는 왕도(王道)를 이루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 도학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이상적 지식인의 모습을 ‘선비’라 부른다. 그러니 갓 쓰고 글 읽는다고 아무나 선비가 아닌 것이다. 선비의 모습도 유형별로 나눌 수 있겠지만, 조선조 내내 도학의 으뜸으로 추앙된 이는 정암 조광조이다.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가 일어나 당시 명망이 있던 학자 김굉필이 조광조의 부친이 벼슬 살던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를 왔다. 17세의 조광조는 김굉필에게 배우기 위해 지인에게 소개장을 써달라 부탁까지 하면서, 김굉필을 찾아가 스승으로 모셨다. 유배당한 이는 만나기조차 꺼리는 것이 인지상정임을 생각할 때, 소년 조광조의 행보는 이례적이다. 이랬던 조광조는 중종반정 이후 사림의 추대와 중종의 절대적 신임 속에 4년에 걸쳐 크게 뜻을 펼쳤으나, 그의 개혁정치는 반대파들의 모략에 걸려 좌절되었으며, 결국 38세의 나이로 사약을 받고 말았다. 그가 남긴 절명시가 당시 그의 심경을 대변한다.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듯 하였고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처럼 하였네
환한 해가 이 세상에 내려와
한 조각 붉은 속마음을 밝게 비추오리


어디 이뿐이겠는가? 이루 다 거론할 수 없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충무공 이순신, 중봉 조헌과 700의사, 안중근, 유관순 의사를 비롯,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한 우뚝한 이름들이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름도 성(姓)도 없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무수한 별들의 ‘살신성인’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작년 말 한국인 최초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탄생>의 상영을 계기로,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감동이 있었다. 그는 옥중에서 정부의 요청으로 세계지리의 개략을 펴냈고, 영국제 세계지도를 번역해 내었다. 조선 정부로서도 그러한 인재를 아깝게 여기지 않았겠는가? 그의 국내에서의 포교 활동은 1년 남짓,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 다섯이었다. 그러나 그의 짧은 생애는 숭고하였고 거룩한 것이었다. 비록 모습은 달랐지만, 그의 생애에는 도학자의 기백과 정신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에서 다섯 번째 효는 천지와 그 덕을 합했다고 하는 대인(大人)의 자리이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그 대인이 “신묘한 변화와 함께하여 길흉을 그에 합치한다(與鬼神合其吉凶)”라 하였다. 길과 흉은 한 짝이니 대인에게도 흉(凶)이 있다. 흉할 때는 흉해야 하는 것, 그것이 삶의 길이며 그럼으로써 길(吉)로 나아간다는 역설을 <주역>은 말한다.

 


호연지기는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


같은 잘못을 반복해 저지르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는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치명수지’의 대인의 길은 나와는 무관한 몇몇 역사적 위인들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처음부터 나는 ‘치명수지’할 사람이라 공언하고 시작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누군들 삶이 귀하지 않겠으며, 누구라서 일부러 그런 길을 가겠는가? 그런데 ‘만약 뜻하지 않게 그러한 기로에 놓인 운명에 처하는 경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것은 나의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산다. 그 가운데에는 내 마음공부와 관련된 자잘한 선택들도 있기 마련이다.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생각한다. 씩씩하고 광대한 도덕적 기운이다. 맹자는 이 호연지기가 갑자기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 의(義)의 실천이 차곡차곡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였다. 오늘 하루의 삶에서 호연지기를 돌보지 않으면, 그 기운은 쪼그라들어 나의 집안도 다스릴 수 없지만, 그것을 잘 배양하면 이 세계에 가득 찰 만큼 자라날 수 있다고 맹자는 말한다. 결국 나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오늘 하루의 작은 의로운 선택, 양심에 떳떳한 선택, 나 자신을 참되고 아름답게 가꾸려는 지금의 노력이 중요하다. “마음을 잘 보존하고, 본성을 잘 기르는 일이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라는 것이 맹자의 가르침이다. ‘나침반은 흔들리기 때문에 바른 방향을 가리킬 수 있는 것’이듯, 오늘도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길을 찾으며 길을 가는 우리 모두를 격려해 본다.

 


슬픈 사랑이 삶을 아름답게 한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본래 의(義)와 인(仁)은 한 짝이다. 목숨 바쳐 뜻 이루는 의(義)의 바탕에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는 마음’,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슬픈 사랑이 있다. ‘자비’ ‘측은지심’ ‘컴패션’이 모두 그러하다. 자비(慈悲)란 글자의 뜻 자체가 ‘슬픔을 품은 사랑’이 아닌가. ‘측은지심’은 남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을 말한다. ‘컴패션’ 역시 불쌍히 여겨 고통을 함께한다는 뜻을 지녔다. 고통받는 생명의 아픔에 함께 슬퍼하다가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게도 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슬픈 사랑이 삶을 진정 아름답게 한다. 윤동주의 시 <팔복(八福)>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련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1940. 12.) 

나는 100세 넘었어도 외롭지 않다

 

 

< 중앙일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2023.07.07 >

 



부부가 함께, 그리고 오래 살아가는 백년해로(百年偕老)는 복 중의 복이다. 누구나 경험하는 사실이다. 해로하지 못한다면 누가 먼저 가는 것이 좋을까. 일률적인 해답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흔히 남자가 먼저 가는 편이 좋다고 말한다. 늙은 남자가 혼자 추하게 남는 것보다, 여자가 자녀들도 함께 있기를 원하고 가족애도 강하기 때문이다. 내 친구 부인이 남편에게 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여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당신을 먼저 보내드릴게. 김 교수님이 혼자 쓸쓸히 고생하는 것을 보니까, 사모님이 선생님을 혼자 남겨두고 가는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것이다.

 

 

남녀노소 구별없이 오는 고독사
사랑할 이 없으면 절망에 빠져

일에 대한 열정이 고독 채워줘
선한 인간관계 유지도 중요

스스로 늙었다고 여기면 곤란
‘노인도 일하는 사회’ 만들어야

20년 전 먼저 간 아내 항상 생각

 



반대인 경우도 있다. 내 친구 김태길, 안병욱 교수는 아내보다 먼저 갔다. 두 부인은 연하이고 건강했는데, 남편들이 작고한 뒤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안 교수 부인이 예상보다 빨리 세상을 떠났기에 만일 안 선생 부인이 먼저 갔다면 안 선생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경우도 생각해 본다. 아내를 먼저 보낸 지 20년이 되었다. 아내 생각은 언제나 떠오른다. 아들·딸이나 손주들이 모이면 자연히 어머니와 할머니 얘기를 한다.

대답은 간단한 것 같다. 사랑할 상대가 사라졌을 때 누구나 고독해진다. 다시는 그런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졌을 때 고독은 절망이 된다. 절망은 정신적 종말, 죽음과 연결된다. 그런 고독은 남녀의 구별도 없고, 나이의 차이도 없다. 고독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99의 악조건이 있다고 해도 사랑의 연결이 하나라도 있으면 고독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90이 되면서 더 외로움을 느꼈다. 100세가 넘으니까 혼자 있어서는 안 되고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해진다. 그것이 고령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짐이다. 그래도 나는 그 고독을 극복해냈다고 생각한다.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일을 위하고 사랑하는 열정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다. 그 일에서 오는 위로와 보람이 고독한 심정과 시간의 공간을 채워주었다. 그 일은 보수나 소유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학자로서 진실을 찾는 의무였고 제자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즐거움이었다. 대학을 떠난 후에는 친구들과 사회에 무엇인가 남겨주고 싶은 사명감 비슷한 것이었다. 일 많은 나라에 태어난 것에 감사했고, 많은 일이 주어지는 현실에서 보람을 느꼈다. 가족들을 위하는 책임도 있었으나, 중고등학교와 대학에 있을 때는 교육계를 위하는 책임이 항상 뒤따랐다. 무거운 짐이었으나 나름대로 사랑과 보람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90을 넘기고도 지금까지 주어진 일에 매달려 산다. 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돌이켜본다. 80까지는 내가 일을 찾았으나 그 후에는 사회가 나에게 일을 맡겨 주었다. 일한다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며, 늙으면 인생의 가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노년기 인생을 위해 스스로 일하는 열성을 가지며, 정부와 사회가 노년기까지 일할 수 있는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나이 들수록 필요한 또 한 가지 과제는 인간관계를 선하고 아름다운 방향으로 넓혀가는 일이다. 인생은 어떤 인간관계와 공동체 의식을 갖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노년기가 힘들다는 것은 인간관계가 좁아지며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가정과 직장에서 즐거운 인간관계를 누리다가 늙으면서 더 넓혀가는 사람이 있고, 점차 좁아지고, 상실해 가기도 한다. 가족관계까지도 유지하지 못해 고독해지는 노인들이 생긴다. 그 책임의 반은 내게 있고, 반은 자립심을 상실한 노약자를 위한 정부와 사회의 도움 부족일 수도 있다.

옛날에는 노인정 같은 휴게시설이 있었다. 최근에는 경로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 인생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각자의 책임이다. 종교단체를 비롯한 교양과 정신적 안정을 위한 기관과 시설도 있다. 노년기에 찾아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애를 주고받음에서 출발하고 열매를 맺는다.

 


요즘 시대의 장년기는 30~80세

지금 30대와 나의 30대를 비교하면 사회 모든 면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청년기와 노년 기간이 짧아지고 장년 기간이 일생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일하고 성장하며 인격을 키워가는 장년기는 30에서 80까지 차지한다. 평균수명도 길어졌고 건강수명도 높아졌다. 모두가 풍부한 정신적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선각자나 선구자는 되지 못해도 그런 사회에 적응하는 노력은 필수이다.

생활영역과 공간도 예상했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변화와 발전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노령화를 앞당겨서는 안 된다. 나의 세대에서는 60을 노년기의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80까지는 정신적으로 늙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장년기가 길어졌다는 것은 젊게 성장하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더 좋은 세상을 자율적으로 창조해 가는 것이 주어진 과제이고 희망이다.

 

 

“추모할 사람도 묻을 땅도 없다”...일본에 풍선 장례식까지 등장
노인 사망 급증하는 일본, 납골문화 급격히 퇴조… 풍선 장례식까지

 

< 조선일보,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3.07.04. >

 



일본의 ‘벌룬(balloon·풍선) 고보’는 화장한 유골을 풍선에 담아 높게 올려보내는 ‘풍선 장례식’을 제공하는 회사다. 특허받은 기술을 활용해, 헬륨 가스를 채운 풍선은 40~50㎞ 상공 성층권까지 올라가 터진다. 고인의 유골은 하늘에 흩어진다. 이 같은 ‘하늘장(葬)’ 비용은 24만엔(약 220만원)으로, 비용을 더 내면 아끼던 다른 사람 혹은 반려동물과의 ‘합장(合葬)’도 가능하다. 최근 이용자가 점점 늘고 있고 예약자만 100명이 넘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일본의 풍선 장례식을 소개하면서 “초고령화 사회에 일찌감치 진입한 일본에서 최근 사망자 수가 급증하면서 보다 창의적인 장례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고인을 추모할 사람도, 유골을 묻을 공간도 모두 부족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전했다.

평균 수명은 길고 출산율은 낮은 일본은 이미 2006년에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섰다. 의학 발달 등으로 수명이 늘어나는 기간엔 사망자가 감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영원히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일본처럼 누적된 고령자들이 결국 세상을 뜨면 사망자 수 자체가 빠르게 불어나게 된다. 주변에서 죽음을 늘 접하게 된 지금의 상황을 일본은 ‘다사(多死) 사회’라 부른다.

지난해 일본의 사망자는 150만명을 넘어서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장 많았다. 1990년대 초 86만명 정도였던 연간 사망자 수는 2012년 126만명으로 늘었고, 지난해엔 158만명까지 증가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40년쯤이면 사망자가 168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하루에 4300명이 세상을 뜨는 사회와 맞닥뜨린 일본은 장례 시설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도쿄도의 경우 인구 10만 명당 화장장이 0.19개에 불과하다. 사망자가 늘면서 화장 전까지 시신을 안치할 곳도 마땅치 않아, 일본에선 ‘시신 호텔’ 같은 곳도 등장했다. 하루에 7500~1만엔씩 받고, 화장 때까지 머물도록 한 곳이다.

죽음과 장례를 대하는 바라보는 일본인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망자의 시신을 화장한 뒤, 납골함을 안치하고 묘비를 세운다. 불교식 장례식을 많이 치르는데 보통 장남이 사찰에 관리 비용을 낸다.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인 오봉 땐 무덤을 방문하면서 고인을 추도하곤 했다. 예전엔 화장한 유골을 산이나 바다에 뿌리는 행위조차도 법도에 어긋난다고 봤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출산율이 급감해 한 자녀 가정이 늘어난 데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세상을 뜰 즈음엔 자녀도 ‘어르신’인 경우가 많아졌다.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투입되는 장례 절차를 다 챙기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후손이 관리에 손을 놓는 묘지가 늘면서 2020년 한 해 동안에만 12만 개의 무덤이 폐쇄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간소하지만 예의는 차리는 장례’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묘비 대신에 묘목을 심어 유골을 매장하는 수목장도 늘고 있다. 통상 100만엔 정도 하는 값비싼 묘비 대신 나무를 심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작년에 묘지를 구입한 사람 중 절반 정도가 수목장을 택했다. 

 

풍선 장례식과 같이 이전의 관습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장례식’이 일본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묘지 공간이 부족해져 가격이 올라가는 가운데 장례식을 치르거나 무덤을 돌보며 애도할 친척은 적다 보니 일본의 죽음을 둘러싼 의례가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초고령화 탓에 등장한 다사 사회는 예의를 갖춰 사망자를 대해야 할 공적 영역엔 무거운 과제”라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생활보호 수급세대인 고령자의 장례다. 일본 생활보호 수급세대인 약 165만명 가운데 55%는 고령자다. 이들을 관리하고 도와야 할 지자체 산하의 복지사무소는 일손 부족인 상태다. 생활 지원과 취업 지원 등 ‘산 사람’의 지원 업무에 매몰되면서 정작 죽음엔 소홀해지는 게 현실이란 것이다. 일본 지자체의 70%가 적정 숫자의 생활보호 담당 공무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구청 직원이 도쿄 에도가와구에서 혼자 살던 65세 남성을 사망 후 두 달 반 동안 알면서 방치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지난 1월 간병 도우미가 구청에 신고했고 이후 의사가 방문해 사망을 확인까지 했다. 하지만 구청 복지사무소 담당 직원은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몸이 불편했던 남성에게 의료 도구를 빌려줬던 업체가 이를 회수하러 방문했다가 이 사실이 드러났다. 구청의 복지 담당 직원은 “다른 일이 너무 많아 사망자 처리가 뒤로 밀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구청은 ‘외부 발설 금지령’을 내렸지만 일본 아사히신문이 3일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하자, 주자, 배우자... 한국 100세 연구석학이 만든 장수 3강 8조

 

 

<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3.06.14.  >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 교수는 한국 100세인 연구 창시자이자 장수 의학 석학이다.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에서 27년간 세포 노화 연구에 매진하다, 2000년대 초반 고령사회연구소를 통해 100세인 연구에 뛰어들었다. 백세인이 사는 마을을 일일이 찾아가 그들의 생활 패턴과 식이 습관을 조사하고, 각종 운동 기능과 혈액 검사를 해서 분석했다. 100세인에 대한 방대한 연구는 <한국 장수인의 개체적 특성>, <100세인 이야기> 등의 책으로 나왔다. 박 교수가 최근 한국인 특성을 감안한 장수 수칙 3강 8조를 만들었다.

 

 


◇ 장수를 만드는 시대

백세인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구곡순담’(구례, 곡성, 순창, 담양)에도 세월에 따른 변화가 왔다. 백세인 특성이 지난 20년간 달라진 것이다. 우선 남자 백세인 비율이 늘었다. 20년 전 남녀 비율이 1:12였던 것이, 1대5로 늘었다. 흡연율은 13%에서 3%로 급격히 줄었다. 애초 백세인의 흡연율이 당대 사람들보다 낮았는데, 더 낮아진 것이다. 금연이 장수로 가는 조건인 셈이다.

음주율도 16%에서 2%로 줄었다. 대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이동성은 36%에서 45%로 늘었다. 글자를 읽는 백세인의 문해율도 20년 전 13%에서 28%가 돼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백세인이 가족과 동거하는 경우는 90%에서 50%로 절반가량 줄었다. 혼자 사는 백세인도 30%가량 됐다. 요즘 백세인은 전쟁을 통한 가족 상실 경험도 적었다. 박상철 교수는 “자기 스스로 부양하고 자립하는 백세인 비율이 54%나 됐는데, 이들의 삶의 질이 훨씬 높았다”며 “가족 해체로 스스로 부양하고 살아가며 장수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 장수 3강 8조

박상철 교수는 시대 변화를 감안한 신(新) 백세인의 조건으로 자강(自强)과 자립(自立)을 꼽았다. 건강 유지를 우선으로 하고, 스스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공생(共生)도 강조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같이 장수해야 본인도 장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박 교수는 중국의 철학자 주자가 쓴 유교 경전 대학(大學)의 3강 8조를 은유하여, 장수 3강 8조목을 만들었다. 대학의 8조목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으로 유명한 삶의 지표다.

박 교수의 장수 3강은 하자(Do it), 주자(Give it), 배우자(Prepare it)다. 박 교수는 “예전 백세인은 생활 환경에 잘 적응하여 오래 살아남은 장수형이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배우고 공부하여 100세를 만들어가는 형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장수 3강을 위한 실천 항목 8조로는 

1. 몸을 움직이자, 

2. 마음을 쏟자, 

3. 변화에 적응하자, 

4. 규칙적이어야 한다, 

5. 절제하자, 

6. 나이 탓 하지 말자, 

7. 남의 탓 하지 말자, 

8. 어울리자 등이다.

박 교수는 “앞으로는 스스로 노력하여 과학과 기술을 활용, 생명 현상과 생활 패턴을 바꾸는 응용 장수 시대”라며 “노화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장수를 이어가는 식이 아니라, 건강 행동으로 노화를 적극적으로 줄이고, 사회적 은퇴 시기를 최대한 연장하며, 은퇴하더라도 부단히 움직이는 생활 패턴으로 사는 것이 초장수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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