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학자가 본 100세인들의 성격적 특성

 

< 조선일보, 함영준·마음건강 길 대표,  2023.06.13. >

 


기네스북에 기록된 최장수인(118세)으로 지난 1월 별세한 프랑스 수녀 앙드레(루실 랑동). 108세까지 일한 그녀는 "사람들은 일 때문에 죽겠다고 하지만, 내게 일이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하루 한 잔씩 와인을 마시고 초콜릿을 조금씩 먹었다고 한다.  

 

 

1.


#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노화 연구는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전라도 구례·곡성·순창·담양, 경상도 함양, 산청 등 대표적 장수지역을 찾아가 그곳에 사는 85세 이상 노인들이 ▲의학적으로 어떤 상태며 ▲삶의 질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가를 시간을 두고 반복 조사하는 종적(縱的)연구였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당초 ‘노화기는 삶의 소멸 과정’이라는 연구의 전제를 뒤집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백세인 중에서 팔굽혀펴기를 백번 이상 하고, 새벽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온동네를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신체기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백세인들이 10~15%나 됐다. 오히려 행복감 등 삶의 질은 더욱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연구팀은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노화기는 삶의 ‘마지막 단계(final stage)’가 아니라 ‘계속 진행중인 단계(on-going stage)’이며, 

 

▲노화 작용 역시 소멸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신체의 생존 전략으로, 잘 관리하고 노력하면 신체나이와 상관없이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노화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는 서울대 의대에서 생화학교실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하면서 장수연구에 매진하였으며, 현재 국제백신연구소(IVI) 한국후원회 회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30년전 서울대 의대 교수시절부터 이 연구를 주도해온 박상철 교수(전남대 연구석좌교수・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장)는 “실제로 늙은 세포가 젊은 세포보다 외부에 더 건강하게 반응하며, 요즘 뜨는 만능유도줄기세포도 늙은 세포로 만든다”면서 “이는 아무리 늙어도 우리 인체 내에는 회복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점을 방증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난 100세이상 장수인은 400여명이 넘는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걷든가, 텃밭을 가꾸든가 움직여야 한다. 남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한다. 자기 전 일기도 쓰고 반성도 한다.

이런 심신의 왕성한 활동이 운동효과를 가져다준다. 당연히 뇌의 신경세포도 자극해 치매가 생길 틈도 없애준다.

둘째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점이다. 동네 대소사를 꿰뚫고 있으며, 늘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둔다. 자기 발전을 위해서, 또 흥미가 있어서 뭔가를 계속 배우려고 한다. 올해 백수(白壽)를 맞은 윤공희대주교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정신의 대표적인 인지(認知)작용이면서, 기쁨 희망, 설렘 같은 감정을 수반하는 정서(情緖)활동이기도 하다.

셋째 솔직하다. 속에 쌓아두지 않고 할 말이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편이다. 때로 급하고 욱하거나, 거침없는 성격으로도 비춰질 수도 있으나 밖으로 발산함으로써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는다.

넷째 잘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독거노인들도 혼자 있기보다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고, 가족들과 함께 살더라도 매일 마을 노인회관을 찾아가 사람들을 만난다. 자기 집 손자·손녀 생일, 돌아가신 집안 어른 기일 등을 챙긴다.

 

3.


# 100세 장수인들을 MBTI 성격으로 보면 얼핏 외향성(E)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남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솔직한 성격에서 그렇다.   그러나 늘 배우려고 하고 자기발전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 남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측면에선 내향성(I)이 강하다.

MBTI에서 외향성과 내향성은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고 ▲어떤 방향으로 쏟느냐는 데서 구분된다. 만약 내가 외부세계에 더 많은 관심이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어울림에서 활력을 찾는다면 외향성(E)이 많은 것이요, 반대로 내 내면세계에 더 관심이 있고 혼자만의 시간에서 보다 에너지를 얻는다면 내향성(I)이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100세인들에게선 이런 외향성과 내향성의 조화로운 균형을 발견할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바쁘게 살다보니 대부분 외향성(E)이 두드러진다. 늘 바깥세상에 관심을 두고, 에너지를 얻는다. 더구나 지난 수십년간 ‘빨리빨리’를 외치며 지구상에서 가장 바쁘게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 내향성(I)의 생활태도가 큰 힘을 준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 마음의 평화, 깨달음….

명상 등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아침 산보,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사색을 하다보면 내 내면이 조금씩 들여다보이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는 생각이나 감정은 물론 사리분별도 보다 명확해진다.

마치 시속 70~100km 속도로 달리다 10~20km로 감속하면서 주위 풍경을 돌아 볼 때 지각되는 분명함과 안정감, 편안함이랄까.

바깥 세상(외향성)과 내 안의 세상(내향성)을 균형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건강한 노화’, ‘행복한 장수’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아닐까 싶다.

孝라는 구속… 고학력·고소득 청년 혼삿길도 막는다

 


‘과도한 가족주의’ 논쟁
꺼내지 않는 불편한 진실

 

 

< 조선일보, 배준용 기자,  2023.06.03.  >

 

 


“대부님,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 명분이.”

“행배야. 니캉 내캉 ‘가족’ 아이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명분이 이 세상에 더 있나?”

‘한국판 대부’로 불리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 1980년대 부산에서 세관원을 하다 비리로 쫓겨난 최익현(최민식)은 조폭 김판호(조진웅)가 운영하는 나이트클럽을 접수하기 위해 ‘같은 최씨’이자 조폭 최형배(하정우)를 끌어들이려 ‘가족’을 만든다. 가족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최형배는 옛 친구 김판호 패거리를 두들겨 패고 클럽 운영권을 빼앗는다. 검찰·경찰과 정치권에 뇌물을 뿌리며 이권을 따내는 반(半)건달 최익현과 길바닥 주먹질로 뒷받침하는 진짜 건달 최형배의 검은 카르텔이 ‘가족’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40여 년이 흐른 한국 사회의 가족은 전보다 사뭇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 힘은 절대적이다. 오늘도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식은 부모를 위해 이를 악물고 하루를 버틴다. 그런데 학자들은 “가족을 절대시하는 한국적 가족주의가 이제 한국 사회에 독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대체 무슨 얘기일까. 그들은 “이 가족주의의 불편한 진실을 해결해야 한국의 존망을 위협하는 비혼·저출산 문제도 풀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 명문대 출신 대기업 직원도 결혼을 포기한다


통신사에 다니는 박모(32)씨는 이른바 ‘스카이’ 출신에 연봉은 8000만원이 넘지만 남자친구도, 결혼도 포기한 지 오래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 형편상 결혼할 때 지원을 받기도 어렵고, 도리어 부모님께 매달 생활비를 드리고 있다”며 “요즘은 노후 보장이 안 된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은 결혼 상대로 기피 대상”이라고 했다.

역시 스카이 출신에 연봉이 1억원대인 대기업 직원 이모(38)씨는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이제는 결혼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유는 박씨와 정반대다. “여자친구의 학벌, 집안이 너무 형편없다고 반대하셨어요. 결혼하면 주신다던 아파트도 절대 못 준다고 하시더라고요. 울면서 설득해도 듣지 않으시고.... 결혼한 선배들에게 상담하니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 해봤자 결국 불행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부모님 기대에 맞는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어요.”

고소득 직장인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차고 넘친다. 자신과 결혼 상대의 학벌과 직장, 소득, 모아 놓은 돈, 부모님의 노후 보장 여부까지 기재된 ‘결혼 견적’을 올려 결혼 가능 여부를 묻는다. 

 

과거와 달리 양가 부모의 결혼 지원금 액수, 노후 보장 여부, 성향도 주요한 견적 대상. 댓글은 “결혼은 사랑보다 현실” “부모님 거스르는 결혼은 웬만하면 하지 마라”는 ‘현실적 조언’이 많다.

“왜 이렇게 결혼하기 힘드냐”는 청년들의 외침에 학자들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한국적 가족주의가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의 효 문화가 은밀한 거래로 변질됐다’고 지적해 화제가 된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중산층 이상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과 유산을 제공하고, 자녀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성공과 봉양을 제공하는 거래적인 가족주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결혼이 기존 가족의 자산과 특권을 세습하고 손자녀 세대까지 이를 유지, 확대하는 ‘계급 재생산’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청년들로선 ‘결혼도 육아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껴 일종의 결혼 파업, 출산 파업으로 간다.”

이런 경쟁에 낄 엄두를 내지 못해 “내 자식에겐 나 같은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결혼하지 않겠다”는 청년들을 두고 일부 기성세대는 “이기적이고 과도한 개인주의”라고 비판한다. ‘요즘 것’들은 가족과 효의 중요성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런 청년들의 호소는 도리어 과도한 가족주의에 포섭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슨 얘기일까.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을 배려해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말 자체가 모순적”이라며 “인생은 각자가 책임진다는 인식이 아니라 내 인생의 불행은 부모의 책임이고 내 자녀의 불행은 내 탓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과도한 가족주의”라고 했다.

 


◇ 왜 ‘가족’에 매달리나


온갖 장애물(?)을 넘고 결혼에 성공해도 끝이 아니다. 시부모는 “결혼할 때 집까지 장만해줬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기본적인 도리와 교류도 하지 않으려 한다”며 분통을 터트린다. 자녀 부부는 “엄연히 독립된 가정에 시부모님이 자꾸 이것저것 간섭한다”며 열을 올린다. ‘너희 집 현관 비밀번호가 뭐냐’고 묻는 어머니와 ‘시댁과 연 좀 끊자’는 아내 사이에서 남자들은 머리를 쥐어뜯는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 인생에 대해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건 세계적으로도 볼 수 없는 과도한 가족주의 문화”라며 “부모 세대는 자신의 노후 자금까지 끌어다 자녀의 사업 자금이나 신혼집 비용에 제공하면서 내심 노후 봉양을 바라고,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의 과도한 간섭을 원치 않지만 부모의 유산이나 지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용인하는 게 불편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가족주의 해체로 나타나는 문화 지체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정태 위원은 “결혼을 하면 독립된 가정이라고 보는 가치관과 자녀 부부는 원가족에 딸려 있는 가족이라는 기성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성세대가 원가족이 더 우위라는 입장을 고수할수록 부담을 느낀 아래 세대는 가족을 생성하길 꺼리고, 그럼 자연히 출산율도 떨어진다”고 했다. “

 

‘스무 살 넘은 자식은 다 큰 성인이고 독립하는 게 당연하니 간섭도 하지 말고 신경도 끄라’고 외치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이 세대 불문 인기를 누리는 것도 과도한 가족주의에 대한 한국 사회의 피로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이런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왜 한국인은 가족주의를 놓지 못하는 걸까. 학자들은 “노동시장이 양분되고 복지시스템도 안정적이지 않은 사회적 특징 탓에 의지할 곳은 ‘가족’밖에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노 위원은 “한국처럼 가족주의가 강한 이탈리아, 스페인 등도 출산율이 낮게 나타나는데 공통적으로 부모는 자녀를 고용 안정성이 높은 상위 노동시장에 진입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크고, 하위 노동시장으로 밀려난 청년들은 부모의 노후를 자신이 책임질 수 없다는 부담감이 커 결혼을 포기하거나 늦추는 특징을 보인다”고 말했다. 출산율이 떨어질수록 미래에 대한 전망은 더 나빠지고, 그럴수록 ‘우리 가족만이라도 잘 살아남아야 한다’는 가족주의가 더 심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 기로에 선 한국식 가족주의


영화 ‘대부’의 주인공 마이클 콜리오네(알 파치노)는 마피아인 아버지·형제들과 달리 바른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다른 패밀리의 공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마피아가 된다. 마이클은 ‘가족’을 위해 콜리오네 패밀리를 합법적 사업체로 만들려 애를 쓰지만, 그럴수록 더 잔혹한 범죄와 부패에 연루된다. 결국 가족과의 관계마저 파탄나며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전상인 교수는 “한국식 가족주의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건 그 결말도 비극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모와 자녀 관계가 정서적 교류가 중심이 아닌 경제적 관계로 심화될수록 갈등이 깊어지면서 모두가 불행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서이종 교수는 “지금과 같은 가족주의는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의 갈등을 더 키우고 비혼과 저출산을 키울 것”이라고 했다.

학자들은 “기성세대, 특히 기득권일수록 가족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가족의 핵심은 정서적 공동체인데, 한국의 가족은 과도한 경제적 공동체가 되면서 정서적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며 “기성세대는 자녀에게 자꾸 물려주고 책임을 대신 지려 하기보다 자녀가 스스로 독립하도록 하고 자녀 가족과 대등한 정서적 공동체를 이루는 방향으로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이 빨리 자립·독립하는 걸 돕는 방향으로 정부가 복지 시스템을 전면 재편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학자들은 청년 세대에 대해 “부모 세대에게 지원은 바라면서 간섭은 받지 않으려는 이중적인 태도는 버리고 독립된 성인으로서 독립된 가정을 꾸리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정태 위원은 “한국 사회가 과도한 가족주의 경쟁으로 전체가 쇠락할 것인지, 다른 변화를 통해 분위기를 바꿀 것인지 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100살까지 살고 싶다” 韓 50% 日 22%...인생관 비교해보니  

 

 

< 조선일보, 이경은 기자,  2023.06.01.  >

 

 


요즘 카카오톡 단톡방 유행어 중에 ‘100세 시대엔 9988231’이란 게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다시 벌떡 1어나서’ 100세까지 살자는 의미다.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100세 시대’는 축복이니까 충분히 누려보자는 소망이 담겨 있다.

1일 본지가 SM C&C 설문조사 플랫폼인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성인 남녀 50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런 기대감이 뚜렷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39%로 주요국 중 최악 수준이지만,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100살까지 살고 싶다’고 희망하고 있었다. ‘100살까지 살고 싶다’는 응답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22%에 불과한 일본의 조사 결과와는 사뭇 결이 달랐다. 한일(韓日) 양국의 ‘100세 시대’ 인생관은 어떻게 다를까. 본지 설문 조사와 일본 호스피스재단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3월 발표한 조사를 토대로 비교해 봤다.

 


한국은 2명 중 1명 “백살까지 살고 싶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오래 사는 시대가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이 얼마나 늙었는지 나타내는 고령화율(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작년 말 17.5%로, 일본(29.9%)보다는 아직 낮다. 하지만 2045년엔 일본을 추월해 전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

이런 정해진 미래를 앞두고, 한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본지 설문 조사에선 응답자의 50.1%가 ‘100세까지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조금이라도 더 인생을 즐기고 싶어서’가 31.9%로 가장 많았고, 후손이 크는 걸 보고 싶어서(24.3%), 세상이 발전하는 걸 보려고(22.1%) 등이 뒤를 이었다. ‘100세까지 살기 싫다’는 응답자들은 ‘주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49.8%), 몸이 약해질까봐(47.9%), 경제적 불안감(36.1%)’ 등을 이유로 꼽았다.


반면 일본은 응답자의 22%만 ‘100세까지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머지 78%는 ‘100세까지 살기 싫다’고 답했다. 주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59%), 몸이 약해질까봐(48.2%), 경제적 불안감(36.7%) 등이 이유였다.

연령별 데이터도 의미있다. 한국에서 ‘100세까지 살고 싶다’는 응답한 비율이 75%로 가장 높은 연령대는 20대였다. 반면 ‘100세까지 살기 싫다’는 응답 비율이 66%로 가장 높은 세대는 50대였다. 이런 결과는 일본도 유사하다. 일본의 50~60대도 19%만 ‘100세까지 살고 싶다’고 답했는데, 이는 20~30대의 응답 비율(25%)보다 낮다.

한국과 일본의 생각차가 큰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렇게 분석한다.

사토신이치(佐藤眞一) 오사카대 명예교수는 “일본은 오래 살게 되면 결국 남에게 돌봄을 받게 되고, 이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있다”면서 “100세 장수에 대해 양국의 생각이 지금은 많이 다르지만,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한국도 일본처럼 바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작년 기준 일본의 100세 이상 인구는 약 9만명으로, 우리나라보다 10배쯤 많다.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은 100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주변에서 접할 기회가 많아서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는 걸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면서 “무전·무위·무연의 삶을 리얼하게 지켜봤던 일본에선 100세 삶을 마냥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장수 리스크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 이를 실감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는 것이다.

 

< 일본 >


“노후 대비 탄탄할수록 장수 희망”

“경제력과 활동 능력이 없는 노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고통의 세월이 길어진다면, 그게 바로 생지옥 아닌가요.”(50대 회사원 이모씨)

노년을 고통이 아니라 행복으로 채우려면, 돈과 건강이 필요하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도 노후 준비 정도에 따라 장수 기대감에 차이가 났다. ‘노후 준비가 보통 이상 되어 있다’는 사람들은 10명 중 6명 꼴로 ‘100세까지 살고 싶다’고 답했다. 반면 ‘노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사람들은 ‘100세까지 살기 싫다’는 응답 비율이 75%로 높았다.

김진웅 NH WM마스터즈 수석전문위원은 “재무 상태와 건강은 통상 오래 살고 싶은 욕구와 양(+)의 상관 관계가 있다”면서 “노후에 자신을 돌봐줄 가족이 없어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필요한 부분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한국 >


일본은 10명 중 7명 “자다가 죽고 싶다”

일본 고령자들 사이에선 ‘PPK’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일본어 ‘핀핀코로리(ピンピンコロリ)’의 영어 표기 앞 글자에서 따왔는데, 팔팔하게 생활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고생 없이 죽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렇게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뜻대로 죽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극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쌩쌩→비실비실→보살핌’의 사이클을 피할 수 없다. 몸이 점점 쇠약해져 결국 움직일 수 없게 되고, 결국엔 다른 사람(배우자 혹은 자녀)에게 돌봄을 받아야 한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도 이런 냉혹한 현실이 반영됐다. 한일 양국 모두 ‘어느 날 갑자기 심장병 등으로 죽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이 각각 59%, 70.6%로, ‘병들어 침대에 누운 채라도 좋으니 서서히 죽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보다 더 높았다. 특히 일본은 한국보다 ‘갑자기 죽고 싶다’고 답한 비율이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한국보다 고령화를 훨씬 앞서 경험한 일본인들은 부모나 조부모가 나이 들면서 간병 등 주변 도움이 많이 필요해지고 삶의 질이 훼손당하는 모습을 봤죠. 그래서 반사적으로 오래 살고 싶지 않다거나 돌연사를 원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고 보여집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사는 게 익숙한 일본의 민족성도 조사 결과에 일부 반영된 것 같고요.”(이천 <내 은퇴통장 사용설명서> 저자)

사토신이치 오사카대 명예교수는 “노후엔 부부 둘만 남게 되는데, 자신이 죽는 것보다도 ‘나홀로 노년’이 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면서 “일본에는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때도 보호자가 없어 고생하는 독거노인도 많은데, 이들을 사회가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큰 과제”라고 말했다.

“부부 중 어느 쪽이 먼저 떠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한일 양국은 비슷한 성향을 보였다. ‘배우자보다 먼저 세상을 뜨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한국과 일본이 각각 58.3%, 68.5%였다. ‘배우자보다 늦게 죽고 싶다’는 응답한 비율은 41.7%, 31.5%였다.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일반인들이 장수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간병치레 때문”이라며 “본인 병치레만큼 힘든 게 배우자 병치레여서 배우자보다 하루라도 먼저 죽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쉬어라! 아주 길게, 아주아주 세게

 

 

< 중앙일보,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2023.05.30  >


 



‘우물쭈물 살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 약간의 오역(誤譯) 논란이 있는 아일랜드 작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墓碑銘)이다. 그의 이름 ‘쇼(Shaw)’와 발음이 유사한 모 이동통신사의 티저 광고(2007)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삶에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라는 뜻으로 널리 알려진 이 문구의 ‘우물쭈물’이 말썽이다. ‘우물쭈물’로 번역된 부분의 원문은 ‘충분히 오래(long enough)’. ‘충분히 오래 머무르면 이런 날이 올 줄 내 알았지’로 직역하건, ‘살 만큼 살면 죽는 날이 올 줄 내 알았지’쯤이나 거기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건 의역은 각자 몫이다.

물론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문학가라는 칭송을 받은 그가, 노벨문학상(1925)을 받은 그가, ‘가장 뛰어난 소설가 12명을 꼽아 달라’는 요청에 자기 이름만 쭉 적을 만큼 오만(?)했던 그가 우물쭈물하며 살았을 리 없으니 이는 내 보기에도 오역이다. 하지만, 원문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이 멋진 오역문을 가슴에 담아 두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그것이 꼭 위대하거나 유명한 누군가의 것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충분히 오래’를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알면서도’를 거쳐 ‘우물쭈물’로 비약한 문학적 상상력에 대한 감탄까지 덧붙여.

이런 묘비명도 있다.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 두말할 것 없이 원주율 값을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소수점 35자리까지 밝혀낸 수학자 루돌프 판 코일렌(1540~1610)의 것이다. ‘드디어 더 멍청해지는 것을 멈췄다’(수학자 에르되시, 1913~1996)라는 겸손한 명문(銘文)도 있고, ‘오늘 당신이 억압하는 목소리보다 우리의 침묵이 더 강력한 날이 올 것입니다’(노동운동가 어거스트 스피스, 1855~1887)라는 외침도 있다. ‘형사 콜롬보’로 친숙한 피터 포크(1927~2011)의 영화 ‘그리핀과 피닉스’(1976)에서 언젠가 자신의 무덤을 찾아올 연인을 위해 ‘안녕? 그리핀, 당신이 찾아올 줄 알았어요’라고 쓴 것처럼 한 사람만을 위한 것도 있다.

반면 마음에 새길 문구(銘)나 기억할 만한 업적이 아닌 추상적 기호를 새긴 이도 있다. 다듬지 않은 검은 돌에 흰색으로 음각한 오선보와 온쉼표, 그 쉼표 위에 얹힌 늘임표…. 이미 눈치챘으리라. 어느 음악가의 것이리라고. 현대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알만한 독일-유대계 러시아 작곡가 알프레드 슈니트케(1934~1998)의 묘비이다. 쉼표는 그 지시된 길이만큼 아무 소리도 내지 말 것을 지시하지만, 그 ‘소리 없는 소리’는 다른 소리와 함께 음악의 흐름을 형성한다. 비록 죽음으로 인해 작곡을 멈추었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뜻일까? 한마디를 온전히 비우는 온쉼표 위에 늘임표까지 놓여있어 꽤 긴 시간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자세히 보니 앞뒤에 마땅히 있어야 할 세로줄(마딧줄)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그 쉼표는 시작도 끝도 없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되 음악(그의 삶)의 한 부분을 이루며 영원히 계속되는 안식의 시간이다. 유럽 지역 묘비에 흔히 보이는 ‘평화 속에 안식을’, 즉 R.I.P.(라틴어 requiescat in pace)의 안식(安息)과 음악의 쉼표는 같은 단어(rest)이다. 이를 죽음으로 인해 분리된 영혼과 육체가 잠들어 있다가 최후 심판 날에 그것이 재결합한다는 기독교 문화권 믿음에 비춰보면 ‘쉼’은 ‘잠’, 즉 오늘(삶)에 대한 보상이자 내일(부활)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러니 그에게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그런데 그 쉼표 아래에, 늘임표로 모자라 마딧줄을 없애 길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 동안 소리 내지 말라는 그 쉼표 아래에 기호가 또 하나 놓여있다. ‘fff(포르티시시모)’. 침묵하되 아주아주 큰 소리로? 현실적으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인 이 기호를 보며 육신의 쉼(아주 긴 쉼표)과 영혼의 정화를 바라는 절절한(포르티시시모) 갈망을 읽는 것은 너무 자의적인가.

스스로 남겼건 남겨진 이들이 그를 추모하며 썼건, 묘비명은 거기에 묻힌 이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축약한다. 그가 바라본 죽음이 곧 그가 바라본 삶이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는 지가 우리의 삶과 죽음을 규정한다. ‘드디어 자유를 얻었음에 감사드립니다’(마틴 루서 킹, 1929~1968)에서 삶은 소명이고 안식은 보상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내게 행한 일이고 나는 누구에게도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아랍의 반종교적 철학자 알 마리, 973~1057)라는 글에서 삶은 거북한 것이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천상병의 시구(詩句)는 삶이 선물이라고 말한다. 내게 있어 삶은 무엇일까.

1.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삶

 

< 법보신문, 금해 스님, 2017.04.03 >

 


출가했던 행자 속퇴 후 찾아와
오히려 삶 수행으로 더 깊어져
결실은 끝아닌 다음 순간 과정


봄꽃이 피어나는 시절입니다. 붉은 매화꽃이 서울 끝자락 우리 절에서도 화사한 모습을 자랑합니다. 

7년 전, 우리 절에서 몇 개월을 행자로 지낸 보살님이 있습니다. 불교공부 하면서 출가하려는 마음을 내고, 본사 행자로 들어가기 전이었지요. 승려로서 기본적인 습의와 염불, 목탁 등을 지도해주고 기초 교리와 기본 경전에 대한 공부도 했었습니다. 본사로 가면서 헤어진 후에는 따로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심성이 따뜻하고 심지가 곧아서 좋은 스님이 되었으리라 생각할 뿐이었지요. 그런데 몇 년 후, 속퇴한 모습으로 찾아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보살님의 생각을 받아들였습니다. 출가보다 더 큰 결단이었을 테니까요.

그 후, 보살님은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고마운 것은 옛 정을 잊지 않고 꾸준하게 안부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우리 절을 방문했습니다.

기도와 사찰 소임으로 바빠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서로 얼굴을 보며 눈인사만 했습니다. 저녁 공양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마주 앉았습니다. 잠깐의 출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동자가 제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와 사람들과의 문제를 불교 공부와 수행으로 풀어가려는 노력이 참으로 대견했습니다. 식어버린 밥, 겨우 몇 가지 반찬에도 마음 따끈따끈한 공양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이 마주앉은 저녁 참선 시간은 풍경소리 가득 흘러내리는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그가 승복을 입었든 입지 않았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삶의 수행으로 더 깊어진 그를 만날 수 있었지요. 다음날 아침 이별할 때 보살님이 말했습니다.

“출가 시절 공부했던 힘이 저를 더 열심히 살도록 해 주었어요. 그 시절이 있어서 삶의 어떤 순간도 두렵지 않고, 더 행복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삶에서 어떤 일을 할 때, 크든 작든 우리는 오래도록 고민하고 선택합니다. 하지만 항상 원하는 결실을 얻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 ‘결실’은 끝이 아니라, 곧 다음 순간의 ‘과정’이 됩니다. 그렇기에 순간의 결과를 두고 삶의 성공과 실패를 말하는 것도, 삶의 모든 것이 결정된 듯 포기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실패였다고 생각했던 결과가 오히려 힘이 될 때도 있습니다.

큰 사업을 하던 한 노거사님은 IMF로 모든 것을 잃고 노숙자처럼 사찰에서 5년을 지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실패한 사업가로 기억했습니다. 이후 다시 사업을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더 즐기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절에 사는 동안 욕심을 버리고 나눌 줄 아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했지요. 같은 시절 사업을 했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여러 가지 병과 우환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 나이 아흔이 되어가는 노거사님은 등산을 즐길 정도로 건강하고 통찰력이 있으며 환한 미소를 갖고 있습니다.



▲ 금해 스님


가득 피어나는 꽃, 바람결에 날리는 꽃잎들을 보며 본래의 나무를 칭찬합니다. 꽃 피워내고 떠나보내는 나무는 한 해 동안 그렇게 자라날 겁니다. 우리의 삶도 같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삶의 순간순간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기쁨과 성장을 주며, 삶의 의미가 됩니다. 죽음도 다음 삶의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면 두렵지 않습니다. 모든 순간, 결과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2.

두려움을 이기는 길

 

 

< 한겨레, 강우일ㅣ베드로 주교,  2021-01-07  >

 

 


지구 생태계는 영겁의 세월을 두고 조금씩 공들여 빚어낸 창조주의 조화로운 작품이지만, 그중에서 인간은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최고의 솜씨와 사랑으로 창조된 걸작 중의 걸작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최고의 걸작이다. 창조주께서 그토록 오래 준비하시고 빚으시고 가꾸신 걸작을 함부로 쓸어버리지 않으리라. 지나친 두려움은 허구다.

2020년은 한 해 내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온 세상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불안에 시달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지구 전체를 휘젓고 다니는 바이러스에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방역 전문가들의 조언, 행정당국과 언론이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경고와 주의, 시시각각 휴대전화를 통해서 전달되는 코로나 관련 안전정보에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완전히 포위되고 점령되었다.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경제활동이 거의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어디에 가든 마스크를 써야 하고, 보고 싶은 사람 방문도 삼가야 하고,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멀찍이 서서 손도 잡아보지 못하고, 인정과 선의가 꽃피는 얼굴을 보고도 서로 환하게 웃어줄 수 없으니 세상이 삭막함과 고립감과 우울감에 짓눌려, 최악의 미세먼지가 가득한 뿌연 하늘보다 더 짙은 암흑 속에 갇힌 것 같았다. 우리를 이렇게 가라앉게 하고 침울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람을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가장 크게 압도하고 위협하는 것은 죽음의 공포다. 철학자들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내던져진 존재’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매 순간 죽음과 대면하며 살아간다. 죽음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고 회피하여도 죽음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니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외면하거나 죽음에서 되도록 멀리 도피하려 하지 말고 죽음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직시할 때 오히려 우리는 불안과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생애 여러 길목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여섯 살 때 6·25 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온 가족이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허둥지둥 피난길에 나섰던 일은 내 존재 전체를 뒤흔든 두려움이었다. 피난 가서 등굣길에 야전병원 천막 옆을 지나곤 했다. 전선에서 실려 온 부상병들이 통증에 짓눌려 울부짖는 신음은 내 어린 가슴을 꿰뚫었다. 부상당하여 팔다리가 잘려나간 상이군인들이 대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할 때마다 무서움과 연민이 뒤엉킨 마음으로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원인 모를 열병에 걸려 한 달 넘게 집에서 요양했다. 열이 내리지 않아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주사로 연명했다. 동네 사람들은 “저 집 아이 얼마 못 살겠다”고 수군거렸다.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기사회생했다. 그 후로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2년이나 한약에 의지했다.


중학교 3학년 때 4·19를 맞았다.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경무대 쪽으로 가 시위를 하다가 경찰의 발포에 여러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잘 모르지만 어리다고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어 학교 파한 후 집에 가방을 갖다 놓고 다시 종로에 나갔다. 나도 모르게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시위 군중에 끼어들었다. 평소 자동차만 다니던 대로 한복판을 시위대와 함께 걸으며 함성을 올리니 해방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탱크가 굉음을 내며 시위대를 향해 전진하다가 하늘을 향해 기관포를 쏘았다. 어둑어둑할 무렵이어서 포탄이 폭죽처럼 벌건 불꽃을 튀기며 하늘로 발사되는 모습에 시위 군중은 공포감으로 모두 썰물처럼 양쪽 골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나는 설악산을 좋아해서 계절 따라 산행을 즐겼다. 어느 한겨울에 오색에서 출발하여 대청봉을 거쳐 설악동으로 산행 일정을 잡았다. 새벽에 출발할 때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으나 쌓이지 않았다. 대청봉에 이르니 눈이 무릎까지 왔다. 그러나 하산을 시작하며 계곡으로 들어서니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계곡 양쪽에 쌓였다가 흘러내린 눈이 계곡으로 밀려 내려 등산로가 사라졌다. 허리까지 쌓인 눈을 사력을 다해 헤치며 하산했으나 평소 같으면 오후 3시에 설악동에 도착하는 길을 밤 11시까지 걸어도 반밖에 못 내려왔다. 온몸에 기력이 다 빠져나가 산행을 계속하면 고통 없이 눈 속에 잠들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하산을 멈추고 모닥불을 피워 제자리걸음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해가 뜨자 다시 하산을 계속하고 점심때가 되어서야 설악동에 도착했다. 도착 후 발바닥이 너무 아파 등산화를 벗어보니 36시간 넘게 아이젠을 차고 걸음을 계속하여 발바닥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날 산악구조대는 울산바위 쪽에서 추락사한 등산객 2명의 시신을 수습했다.


가톨릭에서 성직자로 서품을 받는 사람은 성경의 짧은 성구를 좌우명으로 택한다. 나는 주교 서품 때 다음 성구를 택했다. “네 생명, 주님께 맡기고 그를 바라라!” 제주에서는 한라산을 끼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에 급경사가 여러 곳 있다. 해마다 브레이크 파열로 사고가 난다. 나는 내리막을 달릴 때마다 혹시라도 어느 부품 하나가 탈 나지 않을지 무섭기도 하고, 경사를 다 내려오면 안도와 감사의 한숨을 쉰다.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각종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8만여 명 정도이고 2019년 교통사고로 죽은 이들이 3349명이다. 2019년의 사망자 총수는 29만5100명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대부분의 죽음은 일상화되어 언론도 보도하지 않고, 정부도 대책본부 차려 대응책을 마련하지도 않는다. 죽음이란 언젠가 모두가 필연적으로 가야 하는 길임을 아무도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감염증과 관련된 정보와 소식은 좀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날마다 수시로 전달된다. 시시각각으로 어느 지역에 몇 명이 확진되었고, 몇 명이 사망했는지 휴대전화 문자 착신음이 들린다. 지난해의 코로나 전체 확진자가 6만여 명이고, 세상을 떠난 이는 900명 정도다. 그런데 2019년 독감을 앓고 진료를 받은 사람이 54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가 720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코로나에 대한 현재의 두려움, 불안, 고립, 우울 증세는 왜 이렇게 유별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137억년 전 대폭발로 무에서 우주가 생성된 후, 아득한 세월을 두고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별들이 생겨났다. 지구는 45억년 전에 탄생하였고, 처음 불덩어리였다가 서서히 식으면서 온갖 물질과 생명들이 차례로 탄생하였다. 10만년 전에 이르러서야 인류의 조상이 등장하였고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것은 1만년도 채 안 되었다. 

 

지구 생태계는 아득한 영겁의 세월을 두고 조금씩 공들여 빚어낸 창조주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작품이지만, 그중에서 인간은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최고의 솜씨와 사랑으로 창조된 걸작 중의 걸작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최고의 걸작이다. 창조주께서 그토록 오래 준비하시고 빚으시고 가꾸신 걸작을 함부로 쓸어버리지 않으리라. 지나친 두려움은 허구다.

 

 

 

3.

등산 갔다 쓰러져… 죽음 근처에서 “천국을 봤다”는 남자

 

< 한겨레, 전홍진,  2023-04-16 >


심정지와 망상
등산 중 쓰러진 60살 호식씨
위기 넘기고 ‘신 영접했다’ 생각
 
 
호식씨는 60살 중소기업 대표로 지난 30년간 식자재를 만드는 업체를 운영했습니다. 회사가 잘되어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대학 졸업 뒤 호식씨의 회사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어 일에 대한 부담도 적었습니다. 그런데 호식씨는 회사에서 회의 중에 갑자기 가슴 왼쪽 심장이 심하게 뛰면서 두근거리고 답답하며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금 쉬고 나자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고 그 뒤 인근 대학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습니다. 호식씨는 심장내과에서 진찰 후에 24시간 홀터 심전도(하루 동안 심전도 기록계를 몸에 부착하고 생활하면서 일상생활 중 심장의 상태를 확인하는 검사)를 찍었는데 ‘심방세동’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정맥 질환의 일종인 심방세동은 심방에서 발생하는 맥이 정상을 벗어나 빠르고 불규칙한 맥박을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호식씨는 심장내과에서 약물치료를 받게 됐고 좋아하던 술·담배도 이참에 끊었습니다. 그 뒤 호식씨는 별다른 문제 없이 이전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심방세동 질환이 있다는 걸 금세 잊어버리고 약도 불규칙하게 복용하며 병원 외래진료도 찾지 않았습니다.

 


의식 잃고 들은 ‘신의 목소리’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자 호식씨는 가족들과 등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산 중턱을 오르다 갑자기 심하게 식은땀이 나면서 정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쓰러진 호식씨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며 119에 신고했습니다. 심장 정지가 발생했을 때 흉부를 압박하는 심폐소생술을 심정지 뒤 1분 이내에 시행하면 생존율을 2~3배로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옆에 함께 있던 아들이 그가 쓰러지자마자 즉시 심폐소생술을 한 덕분에 호식씨는 뇌나 심장의 후유증 없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심정지가 오지 않을까 심각하게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날 산에서 의식을 잃었을 때 생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 밝은 빛이 내려오면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호식아, 호식아….” 천국에서 자신을 부르는 신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하늘에서 어렴풋하게 오렌지색 옷을 입은 사람이 내려왔습니다. 호식씨는 그에게 “제발 용서해주세요. 제 죄를 용서해주세요. 제발, 제발이요”라며 자신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날부터 호식씨는 자신이 신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며 회사가 아닌 종교단체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이 확인한 결과, 호식씨가 빠진 그곳은 사이비 종교단체였습니다.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호식씨를 말렸지만 가족들에게 “나는 천국을 보았고 오렌지색 옷을 입은 신에게 회개했다.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며 회사까지 처분하려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호식씨를 설득해 인근 정신건강의원에 데려가 이런저런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호식씨는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우울증이 심해져 망상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망상이란 사실과 다른 그릇된 믿음을 확신하는 상태로, 호식씨의 경우 자신이 심정지 상태에서 경험한 일을 종교적 신비 체험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섬망, 두려움, 잘못된 믿음


심장의 기능이 정지하면 뇌로 가는 피가 부족해져서 혈중 산소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저하돼 저산소증이 발생하게 됩니다. 뇌가 저산소증 상태가 되면 이상감각·환청·환시 등을 경험할 수 있으며, 우울증이 발생하면 이때의 경험을 왜곡되게 해석하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호식씨는 뇌졸중이나 뇌 손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신경인지기능 검사상 단기기억력의 저하와 전두엽 기능 저하가 나타났습니다. 뇌 기능이 저하되면 우울증이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호식씨는 의사의 설명과 치료 후에 자신이 심정지 때 경험한 것들이 뇌의 저산소증으로 인해 당시 상황을 왜곡되게 인식한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으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도 이전보다 많이 회복되었고, 심장내과에서 처방한 심방세동 약도 잘 복용하고 규칙적으로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평생 모은 재산의 절반은 없어졌지만 나머지는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보았다는 신, 즉 ‘오렌지색 옷을 입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심정지 상태에서 본인이 목격한 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이비 종교단체에선 호식씨의 벌을 단죄하기 위해 내려온 신이 틀림없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그가 본 오렌지색 옷은 정신을 잃은 호식씨를 구하려고 출동한 119 구조대원의 복장이었습니다. 구조대원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신의 음성으로 왜곡해서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호식씨처럼 뇌 기능 저하로 의식과 지남력(날짜·장소·사람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을 ‘섬망’이라고 합니다. 섬망 증상으로는 주의력·언어력 저하 등 인지기능 전반의 장애와 환각·초조함·떨림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섬망은 다양한 원인으로 갑자기 발생하지만 심장 질환이나 큰 뼈의 골절, 전신마취 수술을 통해서도 흔히 발생합니다. 

 

섬망 상태에서는 연상 작용을 통해 자신이 믿고 있는 내용과 어렴풋하게 파악한 정보를 연관해 해석하기 쉽습니다. 두려움이 심한 경우엔 섬망에서 회복되고 나서도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잘못된 믿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친한 지인이나 권위 있는 사람이 이를 부추기면 이 믿음은 더욱 강화됩니다. 두려움에 판단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결정하기 전에 가족과 꼭 상의하고 전문가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두려움이 만드는 환상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4.

죽음과 소멸의 공포
 

 

< 한겨레, 정현채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2023-03-31  >

 


7년 전 한 대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저는 지금 죽음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며칠 전 죽음에 관한 꿈을 꾼 이후 죽음이 두려워졌습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지금 고생하거나 즐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에 지배되어 저는 매우 무기력해져 있습니다. 몇 십 년을 더 사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 자살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이 학생이 느끼는 공포는 18년 전 나이 50을 바라보는 시점에 불현듯 필자에게 떠오른 두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가 궁금증의 핵심이자 두려움의 근원이었다. 내과의사로서 20년 넘게 환자에게 심폐소생술도 하고 많은 환자의 임종을 옆에서 수없이 봐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는 죽음을 늘 타자의 것으로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어서 내 존재와 이를 받쳐주던 모든 게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다. 밤에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을 겪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그러나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과 두려움에 대해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의과대학의 긴 교육 과정과 전공의 과정에서 배운 건 오로지 생물학적 죽음뿐이어서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고, 죽음에 대해 오래전부터 인류가 해온 철학적 사유 역시 죽음 너머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으면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이 깜깜한 암흑 내지 심연 속으로 사라진다니, 암울하고도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함과 막막함이 몰려들면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에 의지해 볼까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수십 년간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입각한 과학교육을 받아오면서 그러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끝없는 훈련을 받아 온 터라, 그때 내게 필요한 건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객관적 사실 자체였다.

그러던 중, 아내가 사다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사후생-죽음 이후의 삶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죽어감 그리고 죽은 후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이 책을 읽으며 단번에 해소되었다. 수십 년간 의료 현장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겪은 삶의 종말체험과 심장이 멎었다가 되살아난 환자들이 경험하는 근사체험의 수많은 실제 사례들을 목격하고 관찰한 후 쓴 책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신뢰할 수 있었다.

사망 판정을 받아 육체는 부패해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인간의 의식은 명료하게 유지될 뿐만 아니라, 눈이나 귀와 같은 감각기관이 없더라도 의식체는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경이로움은 내 인생 행로를 바꾸어 놓았다. 새로운 눈이 뜨이면서 시작된 죽음에 대한 탐색은 존재와 우주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켜 주었다.

죽음으로 자아가 완전히 소멸해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크나큰 두려움과 불안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사후에 의식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삶의 유한함이나 죽음의 예측불허성에 대해서도 더 이상 허망함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5.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 국제신문,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2022-09-20  >

 


무릇 모든 목숨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다. 사람도 이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나이 들면 늙고 늙으면 죽는 것은 자연순환의 한 형태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으스대는 것도 꼴사납지만, 나이 든 사람이 그것을 큰 훈장처럼 자랑하며 내세우는 것도 그리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죽으면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산다.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으면 불멸의 삶을 사는 것이고, 존재감 없이 잊히게 되면 거기서 그 사람의 삶은 끝이 나게 마련이다. 기억의 인자는 선한 영향력으로 사람다운 삶을 살았느냐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나이 들면서 부쩍 부고를 많이 접한다. 더러는 지인들의 아픈 소식도 바람결에 듣는다. 엊그제 문학 모임에 갔다가 도반들의 아픈 소식을 전해 듣고 감정이 알싸하게 저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는 파킨슨과 치매라는 이중고를, 또 어느 분은 엊그제까지 멀쩡했는데 병마에 덥석 덜미를 잡혀 있다는 아픔의 기별이다. 그런 느닷없는 전언은 어느새 스멀스멀 좌중에 옮아 붙어 그날의 분위기를 침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걸 보니 삶과 죽음은 늘 함께 뒤섞여 있고,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수시로 바뀌고, 이들 중 어느 것이 문을 두드리느냐에 따라 존재의 판도가 달라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하는 일상을 살아온 것 같다. 자고 일어나 눈을 붙일 때까지 하루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그래서 누구보다 죽음에 대한 면역력에 자신이 붙었다고 내심 자랑하기까지 한다. 죽음의 굳은살이 많이 붙어 웬만한 일에도 그리 놀라는 일이 없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버릇처럼 층계 수를 헤아린다. 층계가 끝나면 그 수에 지금의 내 나이를 합한 뒤 나의 수명을 설정하는 이상야릇한 버릇이다. 그 숫자가 만족할 만한 값이 못 되면 또 다른 계단을 찾아 층계 숫자를 세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죽음의 날을 미리 대비하는 것도 그리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일단 면역력의 굳은살이 붙으니 두려움에 대한 망상이 걷히고, 하루하루 나날의 삶이 더없이 값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그날이 마치 끝이라도 되는 것처럼 충만한 시간을 만끽하게 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의외로 덤으로 오는 것도 많다. 그동안 살아온 날의 흔적과 문학적 업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버릇도 생겼다. 얼마 전엔가 여섯 번째 희곡집을 내어 고별 북 콘서트를 열었고, 두 해 뒤에는 역시 여섯 번째 소설집을 내어 고별 콘서트를 할 계획도 세워 놓았다. 내자와 나 둘 중 누가 먼저 떠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세탁기 조종하는 규칙과 순서를 비롯해 그동안 방치해 두었던 생활의 지혜를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 두 편의 외화를 보았다. 모두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하나는 카뮈의 부조리 사상을 바탕으로 죽음 앞에 놓인 한 남자의 무기력하고 나태한 일상을 파편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였고, 다른 한 편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품위 있게 죽을 권리인 ‘존엄사’ 문제를 제시하고, 두 딸이 티격태격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문제를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로, 내 죽음의 굳은살을 불리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이처럼 죽음의 두려움을 자연의 순환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면역력의 증강, 남은 인생을 충만하고 값지게 사용하는 현재적 삶의 태도 형성, 그리고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불멸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의 존재감에 근력을 붙이기 위해서라도 죽음은 삶의 반면교사가 충분히 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집을 나선다.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를 안은 채 걷고 말하고 밥을 먹는다. 두 개의 화두가 양면에 적힌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웃고 떠들며 얘기한다. 어느 날 느닷없이 죽음이 방문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이웃집 마실 가듯 한 다리 건너 훌쩍 뛰어넘고 싶다. 그래서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면역력을 높이고 삶의 군살을 빼는 나날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매일 죽는 남자이고 싶다. 매일 죽으며 하루하루를 찬란하게 사는 불가지의 삶을, 실존적 삶을 살고 싶은 것이 꿈이다.


 

6.

“죽음 무릅쓰고 총알 날랐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 매일신문, 이영욱 기자, 2023-03-30  >
 


세계 190여 개국을 다닌 오지여행가로 유명한 도용복(81·사진) (주)사라토가 회장은 건강하고 활기찼다. 대구 대백프라자 카페에서 만난 그는 지인 전시회 관람과 특강을 위해 대구에 왔다. 도 회장은 음악과 여행을 사랑하는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도 회장은 다부동 전투 현장에서 생사를 오가는 줄타기를 했다. 국민학교 1학년, 여덟 살 때였다.

“인민군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전쟁 통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저와 어머니, 동생 등 네 식구는 우여곡절 끝에 칠곡 다부동 고개를 넘었는데, 다부동 전투가 벌어지기 불과 며칠 전이었을 겁니다.”

어린 나이에 안동서 걸어 다부동까지 온 도용복과 동생들은 배가 너무 고팠다. 어머니에게는 타지에서 자식을 챙겨 먹일 마땅한 방도가 없었다. 그때 귀가 번쩍하는 희소식이 들렸다. 국군의 총알 나르는 일을 하면 흰쌀밥을 고봉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소년은 자기보다 큰 지게로 전투가 벌어지는 다부동 고지로 총알을 날랐다. 소년은 고지를 오가면서 군인과 민간인이 죽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 어느 날 같이 일하던 또래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어른에게 물어보니 인민군 총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무서웠다. 그만하겠다고 했다.

도 회장은 “살면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는가. 죽음(고개를 가로저으며), 배고픈 것이다. (총알을 나르는 일을) 안 한다고 작심하고도 아침이 되면 쌀밥 유혹에 또 간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소년에겐 죽음의 두려움보다 배고픔의 고통이 더 컸다. 아침 식전 탄약통 2상자를 왕복 3~4시간 거리의 고지로 나르고 오면 정말 혼자서는 다 못 먹을 양의 쌀밥이 나왔다. 집에서 굶고 있을 어머니와 동생 생각에 호박잎을 따 주먹밥 두 덩이를 먼저 만들어 챙겼다.

그렇게 소년은 15일 정도 죽음을 무릅쓰고 다부동 고지로 총알과 전쟁 물자를 날랐다.

도 회장은 “(살면서)무섭고 겁나는 게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 사선을 넘나들었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참전국에 각별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위정자들은 불경일사 불장일지(不經一事 不長一智·한 가지 일을 거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 구절을 꼭 새겨야 합니다. 6·25전쟁을 겪었지만 교훈을 얻지 못하면 같은 불행은 반드시 다시 오기 때문입니다.”
 

 

 

7.

'삶의 위대함은 존엄한 죽음으로 완성된다'

 

 

< 데일리메드, 박중철 교수(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2022.04.09 >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부속병원 이식전문 외과의사인 폴린 첸은 어느 날 의과대학 동기인 에리카의 전화를 받는다.
에리카는 폴린에게 하소연했다. “그 의사는 딱 한 번 죽음에 대해 우리와 의논했어. 그 다음에는 아빠에게 어떤 처치를 할지에 대한 이야기뿐이었지. 우리는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데 왜 이렇게 서툴까?”
그의 아버지는 간암 말기환자였는데 죽음에 임박해서야 담당의사는 그를 불러 그 사실을 전했다고 했다.
폴린 첸의 ‘나도 이별이 서툴다’라는 책에 있는 내용의 일부다.
에리카도, 그의 아버지를 돌보는 담당의사도, 폴린도 모두 의사다. 의사의 사명은 고귀한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불행히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의학은 어느 순간 편히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기회조차 지워버리고 있다. 일말의 가능성에도 최선을 다하겠노라 약속하던 현대의학이 결국 죽음을 막지 못하고 두 손을 드는 순간 환자와 보호자는 우주에 내던져지는 듯한 혼란과 절망에 빠진다.

2009년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최선은 곧 선행’이라는 의사들의 오랜 믿음을 깨뜨렸다. 가고 멈춰 섬을 분별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달려가는 의학은 인간의 존엄한 마무리를 망가뜨려 오히려 해로움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김 할머니 사건 이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서둘러 제정됐다. 늙지 않고 장수하려던 ‘웰빙’ 열풍은 이제 의미 없는 고통을 겪지 않으면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웰다잉’으로 대체됐다.

의료계에도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질병과 싸우기 위한 경쟁에만 몰두하던 병원들이 하나둘씩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의과대학도 생명만을 절대시하며 달려가는 경주마 같은 의사를 길러내던 기존의 교육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을 모두 견줘볼 수 있는 인간적인 의학교육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란 한 마디로 인간이 삶의 마지막까지 자기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의료다. 인간은 모두 고유한 자기 가치를 지니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살아간다.

"환자는 물론 가족들에게 죽음보다 더 한 고통 안겨주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때문에 잠시 생명을 연장하더라도 가치의 훼손이 심각하다면 그것은 본인과 가족들 모두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 할머니 사건에서처럼 바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말기환자에게 기계장치와 약물을 통해 단지 몇 시간 또는 수일간의 기계적인 삶을 연장하는 것은 생명존중이 아니라 고통을 증가시키고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것일 수 있다. 말기환자의 여생 동안 고통을 최대한 제어하면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소중한 의료의 역할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존엄한 죽음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이기에 단순히 의학의 힘만으로는 그 역할을 완성할 수 없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신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역사가 담긴 사회적이고, 인격적이며, 영적인 존재기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전인적인 돌봄이 요구된다.

호스피스완화의료에 의사와 간호사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영양사, 종교인, 예술치료사, 자원봉사자 등이 참여하는 이유다.
 
내게는 잊지 못할 환자가 있다.

25살에 자궁경부암이 온몸으로 퍼진 여성환자였다. 그는 미혼모 상태에서 임신을 했고 산부인과에 갔다가 말기암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한 후 곧바로 항암치료에 들어갔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남자친구였던 아이 아빠는 연락이 끊겼고 이혼한 친부모 역시 찾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의 항암치료가 불가능하자 극심한 우울증 상태에서 모든 사람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종일 침대에서 울며 죽음을 기다렸다.
 
우리는 모여서 어떻게 그를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고 일찍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편안하게 안길 수 있는 엄마라는 울타리란 결론을 내렸다. 그 역할은 그가 입원한 병실 간병도우미가 맡았다.

간병도우미 분은 그의 사정이 딱하다고 마냥 끌려다니지 않고 심한 응석과 투정에는 야단도 치고 의젓한 모습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마치 친엄마처럼 그를 대했다. 어느샌가 환자는 마음을 열고 간병도우미를 엄마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과도 대화를 시작했다. 심리적 변화와 함께 통증 때문에 투여되던 진통제는 10분의 1로 줄었다.
 
우리는 그가 남은 삶을 침대에 누워 보내지 않고 매일 무언가 할 일을 찾길 바랐다. 다행히 그는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는 법을 배워 사진작가처럼 매일 병원의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인화해 가져다주면 그 사진을 다른 환자들과 의료인들에게 선물했다.

그는 호스피스완화의료팀과 새롭게 가족을 이루고 아마추어 사진작가라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죽음의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고 평온하게 임종을 맞았다.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로 전원돼 온 지 42일 만이었다.
 
물론 모든 환자가 평화로운 마무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궁극적으로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통해 결정된다. 

 

죽음의 두려움 앞에 속절없이 휘둘리지 않고 의연하게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환자를 볼 때마다 인간의 위대함이 단지 생명의 가치에만 있지 않음을 깨달으며 숙연해진다. 

 

삶의 위대함은 존엄한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믿는다.

 

 

 

 

8.

번번이 죽고 태어나는 경험이 붐비는 곳, 문학

 

 

 

< 한국일보, 진은영 시인, 2023.05.13  >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꺼내 보는 '다시 본다, 고전'이 두 번째 시즌을 엽니다. 한국상담대학원 대학교 교수이기도 한 진은영 시인과 20년 이상 출판 편집 기획자 생활을 거쳐온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마다 글을 씁니다.



어떤 책은 독자를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반드시 이해하고 말겠다고 다짐하지만 다가갈 때마다 늘 쫓겨나는 기분을 들게 하는 책, 바로 모리스 블랑쇼(1907~2003)의 '문학의 공간'이다. 그런 책을 만날 때면 우리는 우회로를 택한다.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 그가 쓴 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블랑쇼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레비나스, 바타이유와 절친이었으며 푸코, 들뢰즈, 데리다 같은 현대 철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준 사람. 프랑스의 68혁명을 지지하는 정치 활동에 참여했고 1968년 이후에는 은둔하며 글쓰기에만 몰두했던 사람. 이게 전부다. 사진도 거의 남아 있질 않다. 레비나스와 찍은 젊은 시절의 사진 한 장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의 얼굴도 모를 뻔했다. 신비한 책의 신비한 저자이다.

운 좋게도 한 가지 일화가 전해지는데, 블랑쇼가 80세에 한 시사잡지에 실은 글 덕분이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친구 레비나스의 권유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고 지적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1933년 하이데거는 나치에 협력하는 행태로 두 사람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사유의 위대한 순간에 우리들에게 가장 고귀한 질문, 존재와 시간으로부터 온 질문을 던지도록 초대하던 바로 그 글과 언어를 하이데거는 히틀러를 위해 투표할 것을 호소하기 위해서 (…) 다시 사용했다.”

이 철학자의 행보는 유대인이었던 레비나스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레비나스의 가족을 탈출시켰던 블랑쇼에게도 깊은 상흔을 남겼다. 사랑이 깊으면 환멸도 깊기 마련이다. 

 

블랑쇼는 '문학의 공간'에서 하이데거식의 죽음론을 집요하게 문제 삼는다. 그것도 하이데거가 그토록 좋아했던 릴케와 톨스토이를 인용하면서 말이다.

하이데거는 ‘나의 죽음은 오직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본래적인 사건’이라고 선언했다. 인간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떠올리며 유한자임을 깨닫고 그 자신의 본래적 가능성을 찾기 위해 결단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나의 죽음의 중요성에 몰두하느라 타자의 죽음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부모를 잃은 파울 첼란의 시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나치 협력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첼란은 직접 쓴 시 한 편을 건네며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길 원했지만 하이데거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3년 뒤 시인은 센강에 몸을 던졌다. “용서받지 못할 일에 대해 끝내 용서를 청하지 않은 그의 거부가 첼란을 절망 속에 몰아넣었고 아프게 만들었다”고 블랑쇼는 탄식했다. 하이데거는 타자의 말에 응답할 줄 모르고 타자의 죽음도 영향 받지 않는, 정말이지 대단히 독립적인 실존이었다.

아름답고 난해한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메아리치는 것은 이 오만한 실존에 대한 저항이다. 블랑쇼는 ‘나는 나의 죽음을 절대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메노이케오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블랑쇼는 키릴로프와 아리아의 예를 든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에 나오는 청년 키릴로프는 신이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만든 환상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무신론자이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며 신이 없다는 것과 인간은 자유 의지로 죽음과 결연히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청년이 의기양양하게 죽음과 만나려는 순간, 그가 맞이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부재이다. 그는 죽음을 정복하려는 찰나에 사라졌다.

아리아는 고대 로마의 귀부인이다. 남편이 모반죄로 황제의 자결 명령을 받고 두려움에 떨자 아리아는 대담하게 단도를 자기 가슴에 깊이 찔렀다가 뽑아 남편에게 주면서 말했다고 한다. “전혀 아프지 않군요.” 명예를 지키기 위한 자결을 고대 로마에서는 ‘고귀한 죽음’이라고 불렀다. 아리아의 손녀가 전한 이 일화는 로마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고귀한 죽음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런데 이 일화는 죽음의 낯선 심연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아리아는 몹시 훌륭하게 죽는다. 끝까지 죽음에서 돌아선 채 “삶을 향하여” 있는 죽음. 침착하고 절도 있는 방식으로 살아있는 자들을 감동시키는 죽음. 이 고귀한 죽음에는 죽음이 없다. 죽음의 순간을 예의바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 끝까지 인간적 품위를 지키려는 삶의 욕망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 죽음을 향해 홀로 달려가는 존재’일 때만 본래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인간은 자기 죽음과 제대로 만날 수조차 없다. 의사에게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죽음 자체는 체험되지 않는다. 죽음이 덮쳐와 그를 ‘다른 누군가’로 만들 뿐이다. 블랑쇼는 이것을 ‘비인칭의 죽음’이라고 부른다. 나(1인칭)와 너(2인칭)도 아니고 그/그녀(3인칭)도 아닌 누군가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존재했었으나 지금은 없는’ 아무도 아닌 누군가는 비인칭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은 항상 나의 바깥 경험이다. 나를 한없이 무력하게 만드는 이 사건이 체험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기억해줄 사람이 없는 죽음은 우리를 비통에 빠뜨린다. 그래서 에밀리 디킨슨도 “작년 이맘때 나는 죽었다”로 시작하는 시에서 그토록 궁금해한 것이다. “누가 나를 가장 그리워하지 않을까?”(그들이 날 그리워할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죽음을 상상하며 죽은 뒤에도 영혼이 남아있을지 그 영혼은 어디로 갈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더 절실하게 궁금한 것은 시인과 같다. 누가 제일 슬퍼하고 그리워할까? 언제까지나 나를 기억할까? 혹은 우리 강아지는 누가 데려갈까? 등등이다.

우리는 자기의 죽음을 상상하면서도 죽음 자체가 아니라 타자들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더 고통스러워한다. 때로 어떤 이들은 다른 이를 구하려고 죽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살린 사람이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인간은 타자를 ‘위해서’, 즉 ‘대신해서’ 죽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력함을 넘어서, 인간은 타자를 “향해서” 죽어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나의 죽음이 내가 아닌 것이 되는 비인칭의 죽음이라면 타자의 죽음은 내게 가장 격렬하게 닥쳐오는 비인칭의 경험이다. 타자의 죽음과 마주한 순간 우리는 근원적 전복에 처하게 된다. 고통을 통과하며 지금까지의 나와 달라지고, 다른 존재로 바뀐다. 블랑쇼는 ‘문학의 공간’이 이런 비인칭성의 경험들로 붐비는 곳이라고 여겼다.

카프카가 ‘문학적 전복’에 관해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읽어보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속에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다가오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 위대한 책들의 타격 아래서 우리는 번번이 죽고 또 번번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문학의 공간이란 그런 곳이다.

종종 사는 데 지쳐 힘이 빠질 때 바닥에서 나를 다시 끌어올리는 것은 언젠가 죽을 존재라는 유한성의 자각이 아니라 오래된 죽음에 대한 기억들이다. 학생시위가 연일 계속되던 1991년 5월의 어느 토요일,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한 학생이 시위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성균관대 불문과 3학년 김귀정. 나와 내 친구들이 있던 윗골목에서였다. 영정 사진으로 처음 봤던 여학생의 말간 얼굴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나는 그 불문과 여학생의 영원히 앳된 얼굴을 떠올리며, 그 애와 함께 블랑쇼를 읽고 문학의 공간을 힘내서 서성거린다.


[2030 칼럼]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걸까

 

 

< 부산일보, 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2023-05-10  >


허무와 냉소 만연한 젊은 층
마약에 의존하는 사례 급증
즉각적 해방구 찾아 헤매다
우울감에 극단 선택 하기도
여유보다 경쟁 내몰린 이들
그 아픔 공감하고 응원해야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삶을 등진다. 10대와 20대, 30대 모두에게서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한창 미래를 꿈꾸고 삶의 활기를 누려야 할 청년들이 어느 때보다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근래에 젊은 층 사이에서 마약 유통이 확산하고 정신질환과 자살 시도 사례가 급증했다. SNS에 투신자살 과정을 생중계한 충격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이 모든 암울한 뉴스들을 접하고 있으면 한국사회가 걱정되는 걸 넘어서 점점 이 사회가 싫어지는 마음마저 든다.

온라인의 댓글들만 읽어 보아도 누군가는 이미 정이 떨어져 ‘극혐’이라 적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미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은 다르다. 대상이 미울 때는 탐탁지 않은 상황을 개선하고자 원인을 찾고 노력할 수 있지만, 싫어질 때 우리는 화해를 포기하고 희망을 버리고 단념하며 결국 손을 놓는다. 이것은 기대도 없고, 그러므로 실망도 없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모습일 것이다. 또한 미워도 다시 한번 일어섰던 열정을 모두 증발시키고 어떤 소식에도 무감각해진다.

자살의 주요 원인이 되는 우울증은 이러한 싫증의 대상이 나를 둘러싸고 일어난다는 점에서 내가 나를 싫어하는 경험과 비슷하다. 나를 오래도록 미워하다가 내가 나를 싫어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면 나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해지고 삶에 희망이 사라지고 끝내 생을 포기하는 일을 고민하게 된다. 자신을 아껴 주고 사랑을 주고받던 가족과 친구들, 혹은 잠깐이라도 소중한 추억들을 나눴던 주변 사람들의 존재마저 잊어버린다. 불행하게도 그가 세상을 떠나 버린다면 상실을 맞닥뜨린 남겨진 사람들은 죄책감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그리고 무력한 상황에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우울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는 상태 혹은 반성과 공상이 따르는 가벼운 슬픔’으로 정의된다. 만약 우울로 정의되는 상태가 2주에서 한 달 이상 지속될 때는 우울감이 아니라 우울증으로 심화하는 위험신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2주에서 적어도 한 달간은 우울감을 벗어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유예가 허락된다고 말하고 싶다. 부정적인 감정들도 그대로 존중받아야 할 것으로 끌어안는 순간 어쩌면 우울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곡선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상향만 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련과 좌절은 때때로 꽤나 자주 우리 인생에 노크한다. 불쑥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낯선 손님이 참 예의가 없긴 하다. 그렇지만 문을 열고 자리에 앉혀 지내다 보면 손님은 차갑고 아픈 기억들을 양껏 남기고 결국엔 떠나갈 것이다. 반갑지 않았던 손님을 잘 배웅하고 난 후 당분간은 방문이 잠잠할 것 같다는 일말의 예감이 스친다. 

 

그러나 손님을 문전박대하거나 미처 이야기를 마치기도 전에 돌려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만용으로 대화 대신 칼싸움을 하려 든다면 손님은 화가 나서 우리 마음에 우울증의 똬리를 틀거나 마음의 공간을 아예 자신의 것으로 빼앗으려고 하거나 더 무서운 친구들을 불러오는 악몽이 펼쳐질 수도 있다.

문제는 손님이 머무는 시간은 멈춘 것처럼 느껴지고 그가 남긴 차갑고 아픈 흔적들은 치유가 더딘 것이다. 이럴 때 젊은 세대가 탈출구로서 손쉽고도 즉각적인 방법으로 떠올리는 것이 오늘날 마약과 자살인 것 같다. ‘시간이 약이다’와 같은 위로는 무용해져 버린 기다림에 관대하지 못한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수단들을 해결책으로 미화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채 방관하고 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마약과 자살이 흔한 소재로 사용되고 관련한 유명인들의 사건 역시 빈번하게 보도된다. 마약상거래와 ‘우울증 갤러리’는 얼마큼 가까이에서 우리가 그것을 알고도 지나쳐 왔고 모른 체하다가 비로소 드러난 것일까 성찰하게 한다.

또한 삶의 재미를 누릴 여유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일찍부터 경쟁에 내몰고 채근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 결과 청년들은 허무와 냉소가 만연한 채 세상을 바라보고, 그들의 태도와 방식에는 어른들의 비난이 따르곤 한다. 

 

20대를 지나온 뒤 그때의 불안하고 연약했던 세계들이 점차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는 걸 느낄 때면 가끔 한유주 작가의 소설집 〈연대기〉에 수록된 〈그해 여름 우리는〉이라는 단편소설을 꺼내 읽는다. 이 소설에는 밥 먹듯이 자살을 말하는 네 명의 이름 없는 무서운 20대가 있다. 매번 잘 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으며 이들을 애정하는 만큼 현재의 청춘들에 공감하고 응원하고 싶다. 소설은 8년 전에 발표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젊음의 감수성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늙어가는 대신 썩어가고 있었다….

“비교질부터 끊어라” 불행한 한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

 [세이노의 가르침]


 

< 조선일보, 세이노,  2023.05.16.  >

 


✅ 북유럽 국가들을 통해 살펴본 돈과 행복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이 돈과 행복은 상관 관계가 있지만 돈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더 이상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을 발견하였다는 얘기, 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앵거스 디튼 (Angus Deaton)이 연 소득 7만5000달러(약 1억원)를 넘으면 소득과 행복이 더 이상 정비례하지 않음을 주장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얘기를 근거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7만5000달러 이상 벌게 되면 행복은 제자리 걸음을 한다는 글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UN 산하 자문기관인 SDSN이 발표한 2023년도 세계행복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1위부터 7위는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순이며(이스라엘과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모두 북유럽 국가들이다) 미국은 15위, 일본 47위, 한국은 57위다.


그런데 한국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졌던 부탄과 네팔은 어디에 있을까? ‘은둔의 왕국’으로 불려온 부탄은 지난 2008년 왕정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이때 정치적 목적에서 영국 통계학자 닉막스(Nic Marks)의 조언을 받아 독자적인 행복지수를 만들었다. 부탄과 갈등 관계였던 네팔도 흉내를 냈다. 2010년 닉막스가 활동한 신경제재단(NEF)은 부탄을 행복지수 1위 국가로 발표해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2012년부터 발표된 세계행복지수 조사에서는 부탄과 네팔 모두 순위가 밑바닥에 있다.


행복이라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고 이를 계량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 수치를 절대적으로 믿을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7위라는 한국의 행복지수 순위를 보면, “먹고 사는 문제에서는 웬만큼 수준에 도달했으나 아직도 갈 길이 먼 헬조선이구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잠깐만 생각을 유보하여라.

2023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기준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앞에서 언급한 행복지수 순위대로 열거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행복지수를 산정할 때 사용되는 요소들은 매년 조금씩 바뀌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코로나 상황에서 행복 여부를 측정하려는 의도가 덧붙여졌다. 설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1인당 GDP, 평균 건강 수명, 문제 발생 시 언제라도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는지 여부, 삶의 선택에 대한 자유로움, 기부나 선행 행위의 유무, 부정·부패 존재 여부, 어제 느낀 감정 중 웃음·즐거움·몰입에 속하는 것이 있는지 여부, 걱정·슬픔·분노에 속하는 것이 있는지 여부.


행복지수를 산정할 때 사용되는 요소들은 매년 조금씩 바뀌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코로나 상황에서 행복 여부를 측정하려는 의도가 덧붙여졌다. 설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1인당 GDP, 평균 건강 수명, 문제 발생 시 언제라도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는지 여부, 삶의 선택에 대한 자유로움, 기부나 선행 행위의 유무, 부정·부패 존재 여부, 어제 느낀 감정 중 웃음·즐거움·몰입에 속하는 것이 있는지 여부, 걱정·슬픔·분노에 속하는 것이 있는지 여부.


소득이 연간 7만5000달러를 넘어서면 더 이상 행복과 정비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그 수준까지는 거의 비례해야 한다. 그런데 행복지수 1위는 5만4351달러이고 2위는 6만8827달러이며 3위가 7만5180달러다. 후순위를 보더라도 행복지수 5위는 6만1098달러, 6위는 5만5395달러, 7위가 10만1103달러다.

뭔가 순위가 이상하지 않은가? 어째서 행복지수 1~7위 국가들 중 1인당 명목 GDP가 가장 낮은 핀란드가 행복지수 1위일까? 또 미국이 7만5000달러를 넘는데도 행복지수가 15위인 것을 보면, 결국 수입이 많아도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말은 맞는 것 아닐까? 맞는 말 아니다.

나는 돈과 인생에 대한 글을 20년 전부터 썼다. 하지만 “돈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행복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거나 “7만5000달러가 행복의 최고점”이라는 내용은 단 한 번도 인용한 적이 없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부자가 되는 세월을 경험한 당사자로서, 그런 얘기들은 영어 원문을 잘못 번역하였거나 원문의 일부분만 인용해 잘못 퍼진 개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 글 말미에서 설명할 것이다.

“행복은 우리가 소유한 것들이 유형의 것이건 무형의 것이건 상관없이 그 양과 질이 증가하는 과정이 계속될 때 얻어진다.” 즉 행복은 어떤 성공의 도착점에 도착하여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고, 변화의 길을 걸어가며 내딛는 발걸음마다 계속 남겨지는 발자국처럼 쫓아오는 것이다.<세이노의 가르침 328쪽>


전 국민 소득 자료를 공개하는 북유럽 국가는 과거 행복지수 조사에서 보수 차이에 대한 만족도가 다른 나라들보다 평균 20%포인트 이상 높고, 삶을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점에서는 25%포인트 이상 높았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다’는 비중도 20%포인트 이상 높고, 부정부패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도 아이슬란드는 세계 평균에 근접하지만 그 외의 북유럽 나라들은 매우 낮다. 기부나 선행 의식은 다른 나라들보다 평균적으로 20배 이상 높다. 그래서 행복지수가 높은 것일까? 절반만 맞는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 “잘난 척 하지 마라” 얀테의 법칙

과거 북유럽 전체를 다스렸던 역사를 갖고 있고 행복지수 2위로 나오는 덴마크에는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이라는 것이 있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법칙이었으나 덴마크의 어느 작가가 소설 속에서 가상 마을 얀테의 10가지 지침으로 소개하면서 그렇게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종종 ‘옌틀로운 법칙’이라고 불리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간단히 말해서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두 ‘도토리 키재기’이며, 너보다 잘난 사람도 없으니 불행해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못한 것도 없으니 서로 존중하면서 조용히 살라는 뜻이다.

10개 규칙들에 이어서 일종의 형벌 규칙 하나가 나오는데, 직역하면 “우리가 너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Perhaps you don’t think we know a few things about you?)”라는 것이다. 의역하면 “우리가 너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해?”가 되는데, 도대체 무슨 뜻일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네 죄는 네가 알렸다”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 말을 듣는지도 모르고 무슨 벌을 받게 되는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으며,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는 것과 같다(이 말을 강도가 하는 경우엔 “갖고 있는 거 다 내놔”라는 뜻이 되지만 강도를 당한 사람이 하게 되면 “나는 당신을 전혀 모르니 그냥 보내 줘”가 될 수도 있다).

북유럽에서 얀테의 법칙은 광범위하게 통용된다. 옷도 비슷하게 입고 비슷한 차를 타며 가구조차 비슷하다. 튀면 안 된다. 그러다 보니 끼가 있어 좀 튀는 사람들은 적응을 못해 자살도 한다는 말이 나온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이미 나를 남과 비교한 것이다.

내가 남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현재 있는 위치에 만족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런 생각의 이면에 얀테의 법칙이 깔려 있는 것이다.

얀테의 법칙에 대해 부인하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북유럽 사람들 대다수의 생각과 행동에서는 어느 정도 나침반처럼 작용한다고 보는 의견이 더 우세하다.

얀테의 법칙을 따른다면, 비슷한 사람들끼리 사는 것이 뱃속 편하다. 그래서 북유럽에는 극소수의 귀족 부자들이 사는 동네와 작위는 없으나 부자인 사람들만 모여 사는 동네가 자연적으로 생겨났다.

겉으로 보면 대부분 평범해 보이는 지역인데, 전혀 튀지 않고 무척 수수해 보이는 노인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집 안에 들어가보면 이케아 같은 중저가 가구 같은 것은 하나도 안 보이고, 세면대 수도꼭지부터 완전 급이 다르다. 이런 곳들은 20평도 안 되는 아파트가 우리 돈으로 150억원 이상을 호가하기도 한다.


✅ 북유럽에선 부자도, 서민도 모두 세금 낸다

한국에선 국민의 평등한 삶을 추구하는 북유럽의 여러 사회복지 제도에 대해 부러워하면서 우리도 그 나라들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튜브에서도 그런 영상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꿈 깨라.

실상은 이렇다. 북유럽 국가들은 독일 비스마르크의 국가관, 즉 정부가 국민을 책임지는 보편 복지형 국가를 지향하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시행해 온 나라들이다. 병원비부터 교육비까지, 직장을 잃어도 실업 수당을 준다. 하지만 그 돈은?

노르웨이처럼 바다에서 석유가 발견되어 대박을 터뜨린 나라조차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넘겨받아 모두에게 나누어주는 방식이다.

복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북유럽에서는 작은 편의점에서 일하고 월급 100만원을 받아도 20~30% 정도는 세금으로 내야 한다. 세금을 안 내는 면세자 비율은 5% 내외에 불과하다(한국의 면세자 비율은 37.2%). 연 소득이 6000만원 정도만 되어도 절반 정도는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스웨덴을 빼고는 저축율이 한국보다 못하고, 가계부채 순위도 한국보다 대부분 높다. 선대에서 물려받은 집이 없으면, 스웨덴처럼 100년 이상 장기 분할 상환으로 집을 사거나(증손자 정도가 집을 물려받을 듯), 내집 마련 대신 평생 월세로 살다가 죽는다.

실업자가 되어도 국가에서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돈은 주니까, 월급을 다 써버려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국민 중 1% 미만의 두목, 부두목은 ‘차이나는 클라스’의 부자로 따로 살고 있고, 나머지 국민은 부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지도 못한 채 고만고만하게 산다. 소비재 역시 비싸거나 싸거나 둘 중 하나고 어중간한 상품은 팔리지 않아 진열대 위에서 먼지만 쌓인다.

북유럽 사회주의나 구소련 공산주의나 목표는 모두의 평등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1991년 말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몇 개월 후 나는 모스크바에 있었다. 2년 전에 이미 맥도날드 햄버거가 모스크바에 굉장히 큰 규모로 개장을 하였기에 러시아인 사업 파트너와 매장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 패티에 기름이 너무 많아서 당황하자, KGB 출신인 파트너가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소련은 고기도 배급제였어. 실상은 당이나 노조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간부들이 먼저 살코기를 나눠 갖고, 나머지를 인민들에게 주었어. 그걸 어릴 때부터 먹고 자란 사람들은 고기에 기름이 많아야 맛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 그래서 햄버거 패티에 기름이 많은 거야. 나도 이거 맛없어.” 공산주의와 보편적 사회주의의 뚜렷한 공통점은 1%의 잘 사는 두목, 부두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 더, 소련이 붕괴되기 전후 전세계 언론들은 빵을 사기 위해 추위 속에서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굶어 죽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처럼 보도했었다. 천만에. 배급되는 빵보다 더 맛있는 빵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었다. 90년대 후반, 하바롭스크에 몇 차례 갔었을 때 내가 가장 크게 놀란 점은 체감온도 영하 30~40도의 한겨울 저녁에도 길거리에서 작은 투명 비닐 상자 속에 꽃 두세 다발을 넣고 백열전구로 온도를 유지하는 꽃장수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는 것이었다.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는 서류상으로는 완벽해 보일지 몰라도 현실 속에서는 전혀 아니다. 복지 제도가 잘되어 있다는 것은 정부가 국민에게 “가난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테니 그냥 그럭저럭 삶의 여유를 느끼며 살고, 부자가 될 생각은 하지 마라. 네 이웃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부러워할 것도 없게 해 줄게”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보모 국가’(Nanny State)라는 비웃음도 받는다.

세계에서 독서를 제일 많이 하는 나라로 스웨덴이 꼽히지만, 다른 북유럽 국가들 역시 독서하는 인구 비율이 높다. 나가서 쓸 돈이 별로 없으니 집에서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가장 큰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도, 부자가 되기 위한 자기계발 도서는 미국에서 넘어온 영어 서적들을 빼면 찾아보기 어렵다. 북유럽 전체가 그렇다고 말해도 된다. 튀면 안 되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무엇인가 새롭게 시도하는 것도 꺼린다. 그러다 보니 대박 날 기회도 없다. 그래서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도박과 복권이 당신이 상상하는 수준 이상으로 엄청 인기를 끈다. 심지어 도박이 불법으로 금지된 노르웨이에서조차 그렇다.

 


✅ “부자 될 필요가 있어?” 낮은 임금 격차

무엇보다도 세금이 많다 보니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말단 하급 직원과 사장과의 임금 격차가 많아야 5배 정도고, 의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와 청소부의 월급 차이도 3배 미만이다.

덴마크는 연간 소득이 하위 40%를 살짝 넘어가면 절반 가까이 소득세를 내기 시작한다. 노르웨이는 버스 기사 연봉이 거의 대학교수 연봉에 근접한다. 소득과 납세 실적이 모두 공개되는 환경에서 봉급을 너무 많이 받으면 미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니 스스로 삼가게 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공무원 봉급을 온라인으로 공개한 후 최고위직 봉급이 평균 7% 줄어든 사례도 있다. 공무원 세계 안팎에서 “너무 많잖아” 라는 비난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차이도 15~20% 정도라서 기를 쓰고 대학에 가는 분위기도 아니다. 두목, 부두목 수준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외계 생명체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니 질투심이나 시기심 역시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개개인이 살아가는 모습이 이웃과 엇비슷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일일이 비교할 필요도 없다. 정치인들의 부패 행위 역시 드물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아주 높다.

 


✅ 북유럽을 행복하게 만든 3대 조건

바로 여기에 행복의 비밀이 있다(이게 이번 칼럼의 주제이다).

첫째, 자기를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잘 사는 이웃이나 친구와 비교하여 그보다 못 살고 있다고 깨닫게 될 때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이스털린과 카너먼도 이것을 중시하며, 나는 이것을 비교 의식이라고 부른다). 북유럽에서는 너도 나도 비슷하다 보니 서로 안도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둘째,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다. 우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봉급의 절반 가까이 세금으로 내지만 정부가 나의 노후를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저항이 없다. 세금이 눈먼 돈이 되어 몇몇만 나눠 갖는 ‘한국식 부패’는 없다.

셋째, 과시적 소비 없이 알뜰살뜰하게 산다. 과시해서는 안 된다는 얀테의 법칙이 그대로 나타난다. 자연으로 나가서 캠핑을 하는 등 아웃도어 생활을 즐기지만, 한국처럼 고기 구워먹는 게 주목적인 양 준비하는 게 아니고, 소박하게 떠난다.

박노자는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라는 책에서 북유럽 사람들의 소비 행위를 ‘절약의 집념’으로 표현한다. 교수들조차 거의 예외 없이 모두 점심 도시락을 싸 와서 먹고 집에서 가져온 인스턴트 커피에 공짜로 주는 물을 부어 마시면서 “오늘은 돈을 한 푼도 안 썼다”고 자랑한다(얀테의 법칙에서도 그 정도 자랑은 허용되나 보다).

나는 사업차 30년 전부터 북유럽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10년 전 노르웨이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아틀란틱 오션 로드를 남쪽에서 건너가면, 작은 휴게소가 있었다. 내가 가져간 컵라면에 뜨거운 물 좀 부어 달라고 했더니 차 한 잔 가격의 2배를 내라고 하더라. “동양인이라서 바가지 씌우나”하는 생각에 왜 그렇게 비싸냐고 물었더니, 전기와 가스가 없어서 집에서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오는데 커피나 차를 팔 때 사용해야 한다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기꺼이 돈을 냈다. 그런데 주유소에서도 뜨거운 물은 돈을 내라고 하더라. 공짜가 없는 나라다.


서두로 돌아가서 ‘이스털린의 역설’과 7만5000달러에 대한 진실은 이렇다. 책을 보면 학술적으로 서술되어 있기에 내가 쉽게 설명하겠다.

이스털린이 발견한 것은 소득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다 같이 소득이 오르면,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 봐도 더 나은 것이 없어서 행복은 그대로다. 예전에 가난했던 나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소득이 증가한다고 하여 행복이 증가하지는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국민소득이 7만5000달러를 넘어서면 결국 주변 사람들도 다 같이 올라간 것이며, 시간이 흘러 8만5000달러를 벌게 된다고 해도 주변이 모두 비슷하고 딱히 자기만 더 잘 산다는 느낌은 없기 때문에 행복은 정체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즉 행복지수는 소득이 웬만큼 올라간 이후부터는 주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어야 상승하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는 남들과 사회적으로 비교해 볼 때를 전제로 한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북유럽 국가들처럼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나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계속 남아 있다면, 비교 대상보다 자기 자신이 크게 열등한 경우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것이기에 행복지수는 다른 나라들보다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1️⃣.  한국이 행복해지려면

한국 행복지수가 높아지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첫째, 국민의 절대다수가 비슷한 수준이 되어야 하고 그 복지 자금을 마련하려면 북유럽처럼 거의 전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나눠주는 방식이 실행되어야 한다. 단돈 100만원을 버는 저소득자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부의 집중이 초격차로 북유럽처럼 발생하여 부자들이 외계인 취급을 받는 존재, 우리와는 원래부터 유전자가 다른 별개의 인간들로 생각되어야 한다.

셋째, 비교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통제해야 한다. 인스타 등 모든 SNS에서 사진이나 동영상 자료부터 차단시키고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나오는 근사한 저택 같은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넷째, 10만명 정도로 구성된 국민행복 댓글 부대를 만들어 SNS 등에서 자기 과시하는 글과 사진이 올라가면 집단으로 공격 댓글을 달아 스스로 내리도록 한다.→이상은 진담 반, 농담 반이다.

 


결론2️⃣. 한국이 헬조선이라고?

한국 행복지수가 낮아서 헬조선으로 생각된다면, 스웨덴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던 박지우 씨의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을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북유럽의 실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데, 대한민국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고 해도 두목, 부두목들이 종신제처럼 자리잡고 있는 북유럽과 비교하면 그나마 평평한 편이며 얼마나 역동적인 사회인지 조금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냐고?

정말이다. 2019년 기준 전세계 180개국의 부의 불평등 지수(Wealth Inequality Gini, 소득불평등 지니계수와 혼동하지 말 것)를 보자.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부의 분배율이 나쁘다는 의미인데,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한국보다 훨씬 더 1에 가깝다. (아래 표에서 한국은 13위이지만 1~8위는 조사가 안 된 나라들이어서 결과가 0이었다. 이들 나라를 빼고 한국보다 위에 있는 나라들은 슬로바키아·동티모르·미얀마·벨기에 뿐이므로, 한국은 사실상 세계 5위에 해당된다)

즉 ‘있는 놈들이 다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아니며, 어쩌면 당신이 “한국은 시스템부터 잘못된 나라, 헬조선” 어쩌고 하면서 부러워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 어리석은 자들아!

때문에 나는 당신이 한국의 실상을 깨닫고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사진 나부랑이들을 쓰레기처럼 여기고, 당신의 삶을 당신만의 방식으로 고고하게 살아가면서 행복지수가 57위밖에 안 된다는 이 불행한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100% 진심이다.

권위 있는 학술지인 ‘어메리컨 이코노믹 리뷰’의 공동 편집자이자 프린스턴 대학 경제학 교수인 덴마크 출신 헨릭 클레벤(Henrik Kleven)은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 소득세율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에 대한 왜곡이 낮은 이유가 3가지 있다고 했다.

첫째, 납세자 본인이 아니라 세무대리인 등이 세무 보고를 해야 하는 경우가 95% 이상이어서 탈세 가능성이 낮다. 둘째, 세액공제나 면제 조항을 최소화시켜 조세 회피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셋째, 근로활동을 도와줄 수 있는 것들(보육 지원, 가족 돌봄 제공, 출퇴근 교통수단 지원 등)에 보조금을 강력하게 지급함으로써 근로 활동 참여도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전부 맞는 말 같다.

한국도 세무사가 대리신고하여야 하는 성실신고(잘못 신고하면 세무사가 벌을 받게 됨) 대상자를 대폭 늘리고,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면세자를 북유럽처럼 5%대로 낮추며, 고소득자에 대한 세액 감면도 낮추고, 한부모는 물론 부부일 경우에도 부모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가족 돌봄에 대한 지원을 소득 수준에 따라 대폭 늘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제발 좀 출퇴근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게 만들어라.

죽기 직전 외친 감탄사

 

 

< 매일경제,  정현채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2023-04-25  >

 


몇 년간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2011년 10월 세상을 떠난 애플컴퓨터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임종하기 직전의 모습이 그의 전기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는 아이들과 아내 로린을 차례로 오랫동안 바라본 다음 그들의 어깨너머 아무도 없는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고 "오 와우(Oh Wow), 오 와우, 오 와우!" 하는 감탄사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는 죽기 전에 무엇을 보았기에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그의 영혼을 만나 그때 뭘 보았는지 물어볼 수 없는 우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사례를 통해 알려진 '삶의 종말체험'이라는 현상을 통해서 그가 임종 직전 본 것을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삶의 종말체험은 근사체험보다 더 자주 체험되는 영적 현상이다. 임종을 앞두었을 때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구가 임종의 자리에 찾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임종하는 사람과 가족들 모두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지막 선물'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군인이 사망한 그 시각 미국 고향집에 모습을 나타낸 사례 등,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거리상 멀리 떨어진 가족이나 지인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도 보고된다.

세상을 떠나는 환자가 임종 때 보는 환영(Vision)에 대해 회의론자들은 복용 중인 약물의 영향을 받아 환자가 헛것을 보는 것으로 폄하하곤 한다. 그러나 이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한 전문가에 의하면 임종 때의 환영은 전혀 혼돈스럽지 않으며, 대부분 의식이 활짝 깨어 있을 때 발생하고, 때로는 장기간 무의식 상태로 있던 환자가 죽기 전에 짧지만 맑은 의식을 회복할 때 보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이때 임종자를 방문하는 죽은 지인의 영혼이 생전에 눈을 잃었거나 팔다리가 잘린 부상을 입었다면 그러한 신체적 손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모습으로, 그리고 삶의 절정기 때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특이하다.

오랫동안 호스피스 간호사로 활동한 최화숙 선생이 자신의 경험들을 기록한 책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에도 비슷한 체험이 소개되어 있다. 대부분 임종과정이 시작되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임종 환자들에게는 보이는 어떤 존재의 마중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임종기 환자들은 현실과 죽음 이후의 세상을 함께 볼 수 있는지, 간호사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갑자기 허공을 응시하면서 누군가와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와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그럴 때는 방금 전 이야기가 끊어진 그 부분부터 정확하게 다시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삶의 종말체험은 근사체험과 더불어 인종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죽음의 자리에서 관찰되는 영적인 현상으로서,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20세기 고생물학자인 샤르댕 신부는 '우리는 영적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된 체험을 하는 영적인 존재이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축적된 수많은 연구 결과와 증거들은, 인간은 그저 일회성 삶을 살다 가는 육체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 보다 더 높고 큰 차원에 걸쳐 있는 영적인 존재임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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