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白居易(백거이)

 

 

基一

 

何處難忘酒 (하처난망주)     어떨 때 술 없으면 괴로운가
長安喜氣新 (장안희기신)     장안에서 신바람 새롭던 날
初等高第日 (초등고제일)     첫 번에 과거에 우등 급제하여
乍作好官人 (사작호관인)     졸지에 좋은 관직을 얻었나니
省壁明長榜 (성벽명장방)     중서성 벽에는 합격 방문 붙었고
朝衣穩稱身 (조의온칭신)     조복은 편안히 몸에 꼭 맞았네
爭奈帝城春 (쟁내제성춘)     서울의 봄을 어찌할거나

 

 

基二

 

何處難忘酒 (하처난망주)     어떨 때 술 없으면 괴로운가
天涯話舊情 (천애화구정)     아득히 헤어졌던 벗을 만나 정담을 나눌 때
靑雲俱不達 (청운구부달)     청운의 꿈을 둘 다 이루지 못하고
白髮遞相驚 (백발체상경)     백발이 갈아드니 서로가 놀라는구나.
二十年前別 (이십년전별)     이십 년 전에 헤어져서는
三千里外行 (삼천리외항)     삼천 리 밖을 떠돌았다네
此時無一盞 (차시무일잔)     이럴 때 한 잔의 술이 없다면
何以敍平生 (하이서평생)     무슨 수로 평생의 마음을 풀어보나 

 

 

基三

 

何處難忘酒 (하처난망주)     어떨 때 술 없으면 괴로운가
朱門羨少年 (주문선소년)     부귀하나 젊음이 부러울 때
春分花發後 (춘분화발후)     춘분날 온갖 꽃이 활짝 피어난 뒤
寒食月明前 (한식월명전)     한식날 달이 밝기 전에
小院回羅綺 (소원회라기)     정원에는 비단옷 여인이 배회하고
深房理管弦 (심방리관현)     깊은 방 안에서는 악기를 조율하네
此時無一盞 (차시무일잔)     이럴 때 한 잔의 술이 없다면
爭過艶陽天 (쟁과염양천)     화창한 봄날은 다투듯 지나가리

 

 

基四

 

何處難忘酒 (하처난망주)     어떨 때 술 없으면 괴로운가
霜庭老病翁 (상정노병옹)     서리 내린 뜰에 늙고 병든 사람
闇聲啼蟋蟀 (암성제실솔)     어렴풋한 소리로 귀뚜라미 우는데
乾葉落梧桐 (건섭낙오동)     마른 잎은 오동나무에서 떨어지는구나
鬢爲愁先白 (빈위수선백)     귀밑털은 수심에 먼저 희어지고
眼因醉暫紅 (안인취잠홍)     얼굴은 취하여 잠시 붉어지는데
此時無一盞 (차시무일잔)     이럴 때 한 잔의 술이 없다면
何計奈秋風 (하계나추풍)     무슨 수로 가을바람을 어찌해보나

 

 

基五

 

何處難忘酒 (하처난망주)     어떨 때 술 없으면 괴로운가
軍功第一高 (군공제일고)     전쟁에서 이룬 공이 제일 높을 때
還鄕隨露布 (환향수노포)     고향에 돌아감에 승전보가 따르고
半路授旌旄 (반노수정모)     거리는 반이나 깃발로 덮여있네
玉柱剝蔥手 (옥주박총수)     거문고 발에 고운 손 다 벗겨지고
金章爛椹袍 (금장란심포)     금장은 두루마기 위에 눈부시구나
此時無一盞 (차시무일잔)     이럴 때 한 잔의 술이 없다면
何以騁雄豪 (하이빙웅호)     무엇으로 영웅호걸의 회포를 풀까

 

 

基六

 

何處難忘酒 (하처난망주)     어떨 때 술 없으면 괴로운가
靑門送別多 (청문송별다)     청문에서는 송별이 잦을 때라네
斂襟收涕淚 (렴금수체누)     옷깃 여미고 눈물 훔치니
簇馬聽笙歌 (족마청생가)     말들도 생황소리에 귀 기울이네
煙樹灞陵岸 (연수파능안)     파릉 언덕 나무는 안개에 싸이고
風塵長樂坡 (풍진장낙파)     장락궁 비탈에는 흙먼지 이네
此時無一盞 (차시무일잔)     이럴 때 한 잔의 술이 없다면
爭奈去留何 (쟁나거류하)     떠나고 머무르는 마음 어찌하리오

 

 

基七

 

何處難忘酒 (하처난망주)     어떨 때 술 없으면 괴로운가
逐臣歸故園 (축신귀고원)     쫓겨 귀양갔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
赦書逢驛騎 (사서봉역기)     사면조서 가져온 역마를 맞이하니
賀客出都門 (하객출도문)     축하하는 손님이 도성 문을 나오네
反面瘴煙色 (반면장연색)     얼굴 반은 거무스름 병색이 짙고
滿衫鄕淚痕 (만삼향루흔)     옷에는 가득 고향 그린 눈물 자국
此時無一盞 (차시무일잔)     이럴 때 한 잔의 술이 없다면
何物可招魂 (하물가초혼)     무엇으로 떠나는 혼을 불러오랴

 

 

 

 

 

 

‘어떤 자리서 술을 잊지 못할까(何處難忘酒)’ 백거이(白居易·772∼846)

< 동아일보 [이준식의 한시 한 수] ,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2020-10-30 >


술이 좋아 마시면서도 애써 술 마실 명분을 찾아내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기왕 마시는 술이지만 명분이 그럴싸하면 마음의 부담도 덜고 혹여 있을지 모를 주변의 눈총도 피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하물며 서로 아득히 멀리 이별했다 20년 만에 만난 친구와 옛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누군들 시인의 이 권주가에 공감하지 않으랴. ‘어떤 자리서 술을 잊지 못할까’는 7수로 이루어진 연작시. 옛 친구와 회포를 푸는 경우 외에 시인은 어떤 때 술 생각이 간절할 것이라고 상정했을까. 장원 급제하여 관복을 입고 장안을 누빌 때, 전공(戰功)을 세운 영웅이 군사를 이끌고 금의환향의 행차에 나설 때, 병든 노인이 서리 내린 뜰에서 외로이 소슬한 가을바람을 느낄 때, 조정에서 쫓겨난 신하가 도성을 떠나 눈물로 낙향의 길에 오늘 때 등 다양한 경우를 내세우고 있다.

이백, 두보에 못지않은 시명(詩名)을 떨쳤던 백거이, 취음(醉吟) 선생이라는 호(號)에 걸맞게 음주시(飮酒詩)에 관한 한 오히려 두 사람을 능가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다만 이백의 음주시가 호탕한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면 두보의 그것에는 불우한 삶 속에서 악전고투했던 침울한 분위기가 투영되어 있고 백거이의 음주시에는 달관과 유유자적의 정취가 물씬 배어난다.



한 잔 술이 필요한 순간
   
 

술 생각 잊기 어려운 순간이 언제인가
남쪽 하늘에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지
잠시뿐이었구나 멀어진 저 꿈은
허무하구나 내 한평생이
울적하여 흉금을 터놓기도 고달프고
침통하여 자주 무릎을 끌어안고 한숨 쉬네
이때 술 한 잔이 없다면
흰머리가 그대로 생겨버릴 것
 

何處難忘酒          하처난망주
蠻天風雨辰          만천풍우진
浮休萬里夢          부휴만리몽
寂寞百年身          적막백년신
鬱鬱披襟倦          울울피금권
沈沈抱膝頻          침침포슬빈
此時無一盞          차시무일잔
華髮坐來新          화발좌신래
 

이행(李荇, 1478~1534), 『용재집(容齋集)』 6권, 「해도록(海島錄)」

   
< 해설  : 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


   이 시의 제목은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로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원조이다. 백거이는 술이 꼭 필요한 인생의 일곱 가지 순간을 포착하여 7수의 시를 지었는데, “술 생각 잊기 어려운 순간이 언제인가[何處難忘酒]”로 시작하여 마지막에 “이때 술 한 잔이 없다면[此時無一盞]~”으로 맺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 시대 문인들이 더러 이 시의 제목과 체제를 본떠 시를 지었다. 그중에서 이행의 시를 소개해 본다. ‘용재(容齋)’라는 호로 잘 알려진 그는 우리 문학사에서 한시 대가로 손꼽히는 분이다. 소개한 시는 거제도 유배 살이 때 지은 시를 모은 「해도록(海島錄)」에 실려 있다.

 
   이행은 어째서 유배를 떠났던가. 1495년(연산군1)에 과거 합격하여 관로에 들어선 후, 1504년에는 사간원 헌납을 거쳐 홍문관 응교가 된다. 이 해 논란이 된 사건이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를 왕후로 추숭하자는 논의이다. 윤씨는 성종 때 여러 사건으로 인해 폐서인(廢庶人)되었는데, 연산군은 등극 후 왕후로 추숭하려고 했고 모친의 원통함과 관련된 이들을 탄압했다. 이른바 갑자사화(甲子士禍)라는 사건이다. 당시 이행은 왕에게 간언하는 홍문관 관원으로서 윤씨의 추숭에 반대하다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 유배에 오르게 된다.

 
   그 유배길은 어떠했던가. 갑자년(1504년) 4월 장형(杖刑)을 맞고 충주로 유배되었고, 그해 6월 벗인 박은(朴誾)이 참수를 당하자 박은과 친하다는 이유로 또 장형을 받고 노역에 충원되었다. 9월에는 거의 죽을 때까지 모진 고문을 받았고, 12월에는 다행히 사형을 면하였지만, 또 장형을 맞고 함안군의 관노로 배속되었다. 1505년 가을에는 익명서(匿名書)로 인해 또 옥사가 일어나 고문을 받으며 겨울을 보냈고, 이듬해인 1506년 거제도로 이배(移配), 그해 2월에 거제에 도착해 위리안치되었다. 거제에 도달했을 때가 그의 나이 29세였다. 젊은 나이지만 누차 장을 맞고 고문을 당하며 배소를 옮겨 다녔으니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그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엘리트가 거친다는 홍문관 관원에서 한순간 죄인으로 전락하여 남쪽 끝으로 쫓겨난 처지, 장형과 고문을 또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기약 없는 유배지에서의 막연함. 이 모든 것이 그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어느 날 비바람과 함께 절망과 좌절이 엄습하자 그는 한 잔 술로 이를 이겨내려 하였다. 그에게 음주란 곧 절망적 상황에서 삶을 부지하려는 생의 노력이었다. 그렇기에 이 시의 ‘何處難忘酒’를 “도저히 술이 없으면 안 되는 순간”이라 번역해도 무방하리라.


   이후에 이행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해 가을 서울로 압송하여 죽을 때까지 곤장을 치라는 명이 내려와 상경하는 도중 기적적으로 중종반정이 일어나 사면되었다. 이후 다시 조정에 나아가 여러 벼슬을 지내며 우의정까지 올랐다. 그러나 1531년(중종27) 김안로(金安老)를 탄핵하다가 그의 일당에게 도리어 탄핵을 받아 1532년 평안도 함종으로 유배 갔다가 2년 뒤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차중열운(次仲說韻)」 中  第3首

 

                     이행(李荇) (1478-1534)

 



佳節昏昏尙掩關     좋은 계절은 저물어가 오히려 문을 닫아걸고,
不堪孤坐背南山     어찌 고독히 앉아 남산을 등지고 있나?
閑愁剛被詩情惱     한가한 근심에 억지로 詩情으로 하여 고뇌케 하니,
病眼微分日影寒     병든 눈에 세미하게 나눠진 햇빛 시리네.
止酒更當嚴舊律     술을 금지했지만 마땅히 옛 禁酒의 규율 고치나,
對花難復作春顔     꽃을 대하며 다시 봄의 얼굴 짓기 어렵구나.
百年生死誰知己     백년의 생사에 누가 知己인가?
回首西風淚獨潸     머리 돌리니 가을바람 불어 홀로 눈물 흩뿌리네.

 

 

〚작자〛 이행(李荇, 1478, 성종 9~1534, 중종 29) 박은(朴誾)과 함께 해동강서파(海東江西派)라고 불렸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창택어수(滄澤漁叟)·청학도인(靑鶴道人). 조선전기 우찬성,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저서로는 『용재집(容齋集)』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定)이고, 뒤에 문헌(文獻)으로 바뀌었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 속에 사네."            

 

                       학명 선사(鶴鳴 禪師 1867~1929) 

 



忘道始終分兩頭 冬經春到似年流  (망도시종분량두 동경춘도사년류)

試看長天何二相 浮生自作夢中遊 (시간장천하이상 부생자작몽중유)

 

한시(漢詩)의 이해

1.  한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법 - 경희서당tv (2020.05.01.)

https://youtu.be/ODGe7hK_6cc

< 한시(漢詩) 보는 법 >

고체시(古體詩) - 중국 당(唐)나라 이전의 詩 - 형식이 자유로움.
근체시(近體詩) - 당(唐)나라 이후의 詩 -형식이 엄격함.

5언 절구(絶句)- 5字씩 4句, 5언 율시(律詩)- 5字씩 8句 
7언 절구(絶句)- 7字씩 4句, 7언 율시(律詩)- 7字씩 8句

5언 절구, 율시의 운자 - 2,4,6,8구 즉, 짝구
7언 절구, 율시의 운자 - 1,2,4,6,8구 첫구에 압운 추가.

5언 절구, 율시 - 2,  3字로 끊어 읽고 해석하기.
7언 절구, 율시 - 4,  3字로 끊어 읽고 해석하기.

절구 대우법 - 1,2구(起,承)  3,4구(轉,結) 
율시 대우법 - 3,4구(頷聯)   5,6구(頸聯)

절구 - 起句(시상을 일으킴) 承句(시상을 심화, 발전) 轉句(시상을 전환) 結句(주제, 결말) 
율시 - 首聯(시상을 일으킴) 頷聯(시상을 심화, 발전) 頸聯(시상을 전환) 尾聯(주제, 결말)




2. 絶句 (절구) - 두보(杜甫) 

https://youtu.be/NtIDMDQdl0o


江碧鳥逾白(강벽조유백)이요   강이 푸르니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燃(산청화욕연)이라   산이 푸르니 꽃빛이 불붙는 듯하도다.
今春看又過(금춘간우과)하니   올 봄도 보매 또 지나가니 
何日是歸年(하일시귀년)고     어느날이 내가 돌아갈 해인가? 

시의 형식 - 5언 절구 (5言 絶句)
시의 운자 - 燃, 年
 
주제 : 봄날에 고향을 그리워함 
      (생명력 넘치는 봄에 역설적으로 시인의 절망감을 드러낸 시)


3. 대동강(大同江) = 송인(送人)  -   정지상 

https://youtu.be/ODGe7hK_6cc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한대      비개인 긴 둑에 풀빛이 짙은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라        남포로 임 보내려니 슬픔이 북받쳐 노래하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고        대동강물은 어느때나 마를건가?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라       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푸른 물결에 더하리.

시의 형식 : 7언 절구
운자 : 多, 歌, 波
주제 : 이별의 슬픔 (경치 좋은 봄에 이별의 슬픔을 노래함)


4.  夢魂(몽혼) - 이옥봉 

https://youtu.be/CaGB--vUohI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요즘 안부를 묻노니 어떻게 지내십니까?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창첩한다)라     달빛이 사창(비단창)에 비치니 나는 한도 많네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이면   만약 꿈 속의 혼이 발걸음에 자취가 있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라     문 앞의 돌길 반은 모래가 되었으리라

시의 형식 : 7언 절구
운자 : 何, 多, 沙
주제 : 님을 그리워하는 심정 (그리움)


5. 雜詩(飮酒) 도연명(도잠)

https://youtu.be/KUhF2C8EWSc

結盧在人境(결려재인경)이나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이라
사람사는곳에 초막을 지었지만, 거마의 시끄러움이 없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오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이라
그대에게 묻노니,           마음이 멀어지면 땅이 저절로 치우친다.

采菊東籬下(채국동리하)에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이라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는데, 아득히 남산을 바라보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요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이라
산 기운 저녁무렵에 더욱 아름답고,  나는 새가 함께 돌아오다.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로대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이라
이 속에 진실된 뜻있으니, 가려내고자하면 이미 말을 잊네


시 형식 : 5언 고시 (형식이 자유로움)
운자 : 喧, 偏, 山, 還, 言
주제 :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게 사는 즐거움
   (자연 속에서 자기를 화합시킨 인생철학을 노래함)



6. 山中問答(산중문답) = 閑情(한정) - 이백 

https://youtu.be/Uh8GOJahgvc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하니
무슨일로 푸른산 속에 사느냐고 나에게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이라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으나, 마음은 저절로 한가롭다네

桃花流水杳然去(도화류수묘연거)하니
복숭아꽃이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가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이라
다른 천지가 있어 인간세상이 아니라네.

시형식 - 7언 절구 
운자 - 山(산), 閑(한), 間(간)
주제 - 자연속에서의 한가로운 삶.


7. 井中月(정중월) - 이규보

https://youtu.be/6a4Ap80TiQQ

山僧貪月色 (산승탐월색)하여   산 속의 중이 달빛을 탐하여
竝汲一甁中 (병급일병중)이라   병 속에 물과 함께 담아왔네.
到寺方應覺 (도사방응각)하여   절에 와서야 바야흐로 깨달아서
甁傾月亦空 (병경월역공)이라   병을 비우니 달도 없어 졌네.

시의 형식 : 5언 절구
운자 : 中, 空
주제: 자연을 탐닉하는 수도자의 모습.
      욕심이 헛됨을 깨닫게 됨.

8. 訪金居士野居(방김거사야거) - 정도전 
      
https://youtu.be/DcwFgi2HOjE

秋陰漠漠四山空 (추음막막사산공)하니     가을 구름 아득하고 온산이 텅비니,
落葉無聲滿地紅 (낙엽무성만지홍)이라     낙엽은 소리 없이 온 땅에 붉다.
立馬溪橋問歸路 (입마계교문귀로)하니     시내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돌아가는 길 물으니,
不知身在畵圖中 (부지신재화도중)이라     내 자신이 그림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네.

시 형식 :  7언 절구
운자 : 空(공), 紅(홍), 中(중)
주제 : 가을산의 아름다운 단풍


9. 江雪(강설) - 유종원(柳宗元)

https://youtu.be/dRc4geQoIWM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이요     일천개의 산에는 새들이 다 날아가 자취가 끊어지고,
萬逕人蹤滅(만경인종멸)이라     일만개의 길에는 인적이 끊어 졌네. 
孤舟蓑笠翁(고주사립옹)이       외로운 배에서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이 
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이라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 홀로 낚시질 하네.

시 형식 : 5언 절구
운자 : 滅(멸), 雪(설)
주제 : 겨울 강촌의 한가로움


10. 花石亭(화석정) - 李珥(이이)

https://youtu.be/D5QMIXYfyPA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숲속 정자에 가을이 저무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시인의 생각의 끝이 없어라.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먼 강물은 하늘에 이어져 푸르고,
霜風向日紅(상풍향일홍) 서리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붉다.

山吐孤輪月(산토고륜월) 산은 외로운 둥근달을 토해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었도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가는가?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울음소리가 저무는 구름 속에 끊기도다.

시 형식 : 5언 율시
운자 : 窮(궁), 紅(홍), 風(풍), 中(중)
주제 : 늦가을의 아름다운 경치.

만나지 못한 친구
   

                  이춘영(李春英, 1563~1606)
 
한 번 웃으며 만나는데 뭔 인연이 필요하단 말인고
쓸쓸한 마을 기나긴 밤에 홀로 잠 못 이루고 있네
오늘 아침에 도리어 쌍성(雙城) 향해 떠났다 하니
하늘 끝자락의 구름과 나무는 더욱 아득하여라
 
一笑相逢豈有緣 일소상봉기유연
孤村永夜不成眠 고촌영야불성면
今朝却向雙城去 금조각향쌍성거
雲樹天涯倍渺然 운수천애배묘연
 

- 이춘영(李春英, 1563~1606), 『체소집(體素集)』 상권 「미곶(彌串)으로 신경숙(申敬叔 신흠(申欽))을 찾아갔더니 경숙이 이미 떠났다기에 홀로 자다가 감회가 들다. [彌串訪申敬叔, 敬叔已去, 獨宿有感.]」

   
해설


   ‘만남’을 뜻하는 한자는 제법 많다. 우(遇), 봉(逢), 조(遭), 해(邂), 후(逅) 등등 소위 ‘책받침(辶)’이라는 부수가 들어가는 이런저런 글자들이다. 그런데 이 글자들의 공통점이 있으니 모두 ‘우연히 만나다’라는 뜻이다. 요즘에는 누군가를 만나려면 으레 미리 전화해서 약속을 잡거나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면 된다. 이런 세상에 길에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드문가. 하지만 통신 수단이 별로 없던 옛날에는 누군가와 실시간으로 약속을 잡아 만난다는 건 불가능했으며, 혹여 사는 곳을 찾아가더라도 운이 없으면 만나지 못하는 일이 십상이었다. 그래서 유비(劉備)도 세 번이나 제갈량(諸葛亮)을 찾아가면서 역사를 써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만남’이란 대부분 필연이 아닌 우연이었을 것이다. ‘만날 우(遇)’ 자가 드물게 ‘우연할 우(偶)’자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리라.

   이 시의 저자인 이춘영(李春英)도 과거에 으레 그랬듯 우연히 친구를 만나러 찾아갔다. 마침 평안도를 유람 중이던 저자는 친구인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공무 때문에 평안도의 미곶(彌串)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나 보다. 거듭된 전란으로 혼란스럽던 때에(당시는 한창 정유재란(丁酉再亂) 중이었다.) 공무로 바쁜 친구를 우연히 라도 만나는 건 자주 찾아오지 않는 기회였으리라. 하지만 저자는 단 하루 차이로 끝내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허탕을 치고 만다. 미곶에 도착했더니 친구는 그날 아침에 벌써 저 멀리 함경도의 쌍성(雙城) 쪽으로 떠난 것이다.

   그날 홀로 묵으며 쓸쓸함을 이기지 못한 저자는 그 심정을 시로 읊어냈다. 도대체 친구끼리 한 번 웃으며 만나는 데 대체 꼭 무슨 거창한 인연(因緣)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마지막 구에서 저자는 서로 길이 엇갈려버린 둘의 신세를 아득히 떨어져 있는 구름과 나무로 표현하고 있는데, 구름과 나무는 친구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음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는 두보(杜甫)가 벗 이백(李白)을 그리워하며 지은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이란 시에서 유래했는데, 당시 위수(渭水) 북쪽에 머물던 두보는 장강(長江) 동쪽에 있던 이백을 그리워하며, “위수 북쪽 봄날에 나무 한 그루요, 장강 동쪽 저물녘 한 점 구름이라. [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라고 멀리 떨어져 있는 둘의 신세를 읊은 바 있다.

   옛날에는 이처럼 가까운 친구끼리의 만남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만큼 한 번 만남이 소중했고 한 번 이별이 애틋했으리라. 괜히 옛날 문인들이 누구를 만나면 반갑다고 시 한 수 지어주고, 이별하면 또 아쉽다고 전별시 지어줬던 게 아닐 것이다. 지금은 서로 만나고 있지만 언제 다시 기별이 닿을지, 다음에 언제 다시 만날지 쉽게 기약할 수 없는 그런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너무나도 많다. 육성으로 통화 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가볍게 문자라도 한 통 보내면 그만이다. 어느새 친구와의 만남에 ‘우연’이 쏙 빠지다 보니 만남의 무게도 그만큼 가벼워진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너와 밥을 언제 먹을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변질되고 만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만큼 ‘다음번 만남’이라는 것이 그리 소중하지 않은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또 가뜩이나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다 보니, 안 그래도 나무와 구름처럼 멀어진 친구 사이가 하늘 끝자락으로 한 발짝 더 멀어진듯한 기분이다.

   얼마 전 일 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필자의 친구에게서 오래간만에 전화 한 통이 왔다. 그런데 통화를 마치고 나서 요즘 시국에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밥 한 번 먹자는 이 친구를 언제 만나지? 하며 애써 걱정하는 나 자신을 괜시리 돌아보게 되었다. 그 옛날 누군가는 친구를 애써 만나지 못한 외로움에 그토록 사무쳤는데, 지금 사람들은 어째서 친구를 애써 만나지 않는 외로움을 이토록 즐기는 것일까. 과거에는 ‘만나지 못한’ 친구가 많았다면, 지금은 ‘만나지 않는’ 친구가 참 많은 시절이다.

글쓴이 허윤만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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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飮酒) 

 

                       도연명(陶淵明 365∼427) 


맑은 아침에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허겁지겁 옷 뒤집어 입고 나가 문을 열어
그대 누구인가 묻는 내 앞에
얼굴 가득 웃음 띤 농부가 서있다
술단지 들고 멀리서 인사 왔다 하며
세상을 등지고 사는 나를 나무란다
남루한 차림 초가집 처마 밑에 사는 꼴은
고아한 생활이라 할 수 없노라고
온 세상 사람 모두 같이 어울리기 좋아하거늘
그대도 함께 흙탕물을 튀기시구려
노인장의 말에 깊이 느끼는 바 있으나
본시 타고난 기질이 남과 어울리지 못하노라
말고삐 틀고 옆길로 새는 법 배울 수도 있으나
본성을 어기는 일이니, 어찌 미망(迷忘)이 아니리요?
자, 이제 함께 가지고 온 술이나 마시고 즐깁시다
나의 길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겠노라

(장기근 역)

 


飮酒 -其九

1. 清晨聞叩門 倒棠往自開  청신문고문 도상왕자개

2. 問子為誰與 田父有好懷  문자위수여 전부유호회

3. 壺漿遠見候 疑我與時乖  호장원견후 의아여시괴

4. 襤縷茅簷下 未足爲高栖  남루모첨하 미족위고서

5. 一世皆尙同 願君汩其泥  일세개상동 원군골기니

6. 深感父老言 稟氣寡所諧  심감부로언 품기과소해

7. 紆轡誠可學 違己詎非迷  우비성가학 위기거비미

8. 且共歡此飮 吾駕不可回  차공환차음 오가불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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