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영화음악이 천박하다고 한 것을 설욕하고 싶었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에서 주인공 모리코네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왜 그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일까.
모리코네가 음악원 졸업 후 영화음악에 손을 댄 것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그는 순수음악을 신봉하는 스승 고프레도 페트라시와 동료 작곡가들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힌다. 모리코네 자신도 영화음악을 하는 게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초기엔 영화 엔딩 크레딧에 가명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좌절한 음악가로 머물길 거부한다. 오히려 더 악착같이 영화음악에 매달린다. ‘석양의 무법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시네마천국’ ‘헤이트풀8’…. 감독들의 취향을 엉거주춤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휘파람부터 코요테 울음, 시위대 구호 가락까지 영화음악의 경계를 확장해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혁신’이다.
모리코네는 고백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작품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그는 실제로 자신이 이뤄낸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그 성과를 어떻게 하면 뛰어넘을 수 있을지 매 순간 고민한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각오가 그를 안주하지 못하게 만든 것 아닐까. 눈 앞에 놓인 한계를 계속해서 넘어서게 한 것 아닐까.
모리코네의 삶을 한 줄 평으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성실함.’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건 뚜렷한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산다는 뜻일 터. 그가 그토록 철저하면서도 유연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우리들과 반대편에 서 있는지 모른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이에겐 차갑게 등을 돌리면서 자신과는 너무나 쉽게 타협해버리는 요즘의 우리들과.
"발전소 직원들 영웅처럼 부각" 日 책임 축소 논란 넷플릭스 일본 드라마 '더 데이스' 20일부터 국내서도 서비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넷플릭스 일본 드라마 '더 데이스'가 국내 공개 뒤 역풍을 맞고 있다. 사고 수습에 목숨을 건 발전소 직원들의 모습을 영웅담처럼 그린 장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보기 불편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사고 현장 수습에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줘 원전 사고란 초국가적 재난을 일으킨 일본의 책임을 축소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 데이스'가 국내에 20일 서비스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원전 관리자의 소영웅주의적 자기 기술에 불과하다' '발전소 직원들의 무용담만 담은 반쪽 드라마' 등의 비판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배경은 이렇다. '더 데이스'에서 요시다 마사오 도오전력 소장은 총리가 발전소 직원들의 철수를 불허하자 그가 화상으로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보란 듯 일어나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내린 뒤 엉덩이를 긁는다. 원전 직원들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정부에 전달하려는 행동이다. 드라마는 이렇듯 비현실적 연출로 소장 영웅 만들기에 바쁘다. 사고 현장에 남은 원전 직원들은 원자로의 폭발을 막기 위해 방사선 피폭 위험에도 목숨을 걸고 원전 내부로 줄줄이 뛰어든다. 혈뇨를 싸면서도 참사를 수습하는 현장 인력의 숭고한 헌신은 방대하게 펼쳐지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원전 사고를 낸 도오전력의 잘못은 찾아보기 어렵다. 원전 사고의 1차 책임자인 도쿄전력이 사고 규모를 은폐하고 축소했다는 비판이 휩싸인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드라마는 사고 후 2년 뒤 사망한 소장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드라마로 실망스럽게도 원전 재해에 대한 통찰력이 없다"고 촌평했고, 인도 일간 인디언릭스프레스는 "개인의 영웅주의에 대한 오마주"라고 꼬집었다.
물론 '더 데이스'가 '일뽕' 관점으로만 원전 사고를 바라보지 않는다. 드라마는 사고 당시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드라마에서 원자로 격납 용기 폭발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내부 보고를 받은 직후 총리는 원전 1호기 폭발을 TV 뉴스로 확인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장은 주민 대피 등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에서 담당 부서가 아니라며 번번이 뒤로 숨는다. 경제학 전공의 경제산업성 출신인 원자력 안전 보안원 원장은 원자로 냉각 시스템에 문외한이다. 드라마는 일본의 관료주의와 원전 관련 비전문가들이 기관을 이끌어 전문적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을 신속한 위기 대응을 가로막은 암초로 그린다. 경제산업성이 도쿄전력으로 내려보낸 '낙하산 인사' 등으로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일본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더 데이스'는 사고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 소장 요시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요시다 조서'와 도쿄전력이 발표한 사고 보고서, 가도타 류쇼가 쓴 '죽음의 문턱을 본 남자'를 토대로 각색해 8부작으로 만들어졌다. '하얀거탑' 등 사회고발적 드라마를 만든 마스모토 준이 제작에 참여했고, 올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일본 국민 배우 야쿠쇼 고지가 소장을 연기했다. '더 데이스'는 애초 6월 1일 일본 등 76개국에 공개됐으나 당시 한국에선 서비스되지 않았다. 일본 콘텐츠에 대한 국내 심의 절차 문제로 공개가 지연된 것으로 파악됐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2.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일본 넷플릭스 드라마 '더 데이스'를 시청하고 ...
- 기본 정보 : 해외 2023.06.01. / 국내 2023.07.20. 넷플릭스 상영 8부작, 야쿠쇼 코지(요시다 본부장) 주연
- 국내에서 오염수 방류에 관련하여 수 개월 째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11년 3월 일어났던 쓰나미와 원전 사고를 기억하며, 넷플릭스 시리즈(8부작)를 보았다.
- 모든 재난 영화에서 그러듯이 여기서도 문제의 핵심이었던 회사의 책임 문제와 정부 관료주의 문제보다는 현장소장을 중심으로 한 현장인력들의 희생적인 재난극복 노력이 중심 줄거리로 등장하고 있어, 한국 언론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 영화 전편을 보면서 원전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본 특유의 관료주의 사고와 비장미 어린 현장 인력들의 사고를 유심히 살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퇴색했지만 세계 정상급의 경제력을 가진 아시아 최대 경제대국이 어떻게 재난 대응에 처절히 실패하게 되었는지 사실 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 결론은 급한대로 바닷물을 발전소에 쳐 넣어 원자로를 식히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힘든 결정이고 사람들의 희생을 그렇게나 많이 요구되었는지 참 궁금하다.
- 사실 우리도 기후 위기 속에 극한호우, 극한기후가 일상화되어 100년 기준 재해대책이 무용한 상황이 되었고 수시로 재난상황이 도래하면 피해자가 속출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어지는 것을 기록적으로 많이 목격하고 있다. 자연재해 같으면 운전하는 차량이나 세간살이를 바로 포기하고 안전한 곳으로 일단 대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극한호우에서도 체험할 수 있다. 일본 재난 영화를 비평하면서 우리는 잘 하고 있나 생각도 해볼 수 밖에 없다.
- 영화에서는 숨겨졌지만 당시 수십만 명의 일본 재해민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같은 인간으로서 재난에 처한 사람들의 심정에 공감하게 된다. 수많은 지진과 쓰나미를 이겨 내고 묵묵히 지금 현실을 살아 내는 일본인들의 심정과 고여있는 오염수를 방류하고 국토를 정상화하려는 일본 당국자의 고민이 어떻게 결론되어질지 궁금하다. 우리 한국은 인접국이라 필연적으로 당사자로서 부대낄 수 밖에 없는데 둘 사이의 관계도 별로 좋지도 않아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인간 대 인간, 나라 대 나라로서 문제를 잘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드라마상 캐릭터들의 이름과 기업의 이름 등을 다수 바꿨다. 예를 들어 도쿄전력은 토오전력으로, 간 나오토 총리는 아즈마 신지로 바뀌었고 그외 대다수의 이름들도 바꿨다.
드라마의 시작이 동일본 대지진 직후부터 시작되지만 지진에 대한 일본 전역의 피해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고 후쿠시마 원전에 관련된 내용으로만 제작되었다.
HBO의 체르노빌(드라마)이 사고 발생 시작부터 현장을 수습하고 원인을 찾는 과정 등이 큰 스케일로 제작된 반면 더 데이스는 후쿠시마 원전의 현장 일부와 도쿄전력, 총리실과 지휘실 등 다소 한정된 공간이 주 무대로 초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잘못된 관료주의의 문제점과 민간기업인 도쿄전력의 비협조적인 대응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최소한 이론적으로라도 가장 많은 내용을 알고 있어야하는 기업의 간부가 경제 전공인 관료 출신이라서 아는 게 없다 던가 범위를 지정하고 대피해켜야 하는데 정확히 보고가 안 왔으니 다른 곳에 문의해야 한다는 원자력위원회, 즉시 보고 해야 하는 데이터를 손에 들고 총리 앞에서 "편하실 때 보고를 하겠다."는 등 당시 일본의 대응이 왜 엉망이었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쓰나미가 밀려와서 원전이 덮치는 모습은 영화《후쿠시마 50》에서 보여준 모습과 유사하다.
당시 원전이 폭발하는 대형 사고 영상은 TV 중계 장면으로 나오고 주요 내용들은 캐릭터들을 위주로 진행되며 자주 언급되는 것은 시간과 압력 수치, 방사선 수치 등이다. 주요 사건들 또한 현장에서의 보고와 캐릭터들 간의 고뇌, 대응 등이 주를 이루고 있고 사고 현장 또한 대체로 어둡거나 좁기 때문에 스케일면으로는 작은 편이고 다소 밋밋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영화《신 고지라》에서 고지라와 군대의 대응들을 짧은 TV 뉴스나 중계, 극소수의 인원들로 재현했다는 느낌. 하지만 간 나오토 총리마저 1호기의 폭발을 TV로 봤고 1시간 뒤 서면 보고를 받은 상황을 그대로 재연한 것처럼 당시 도쿄전력의 비협조적인 모습을 충실히 재현했다고 볼 수 있고, 요시다 소장과 류조의 저서 내용을 바탕으로한 인물 중심의 드라마로 생각하면 괜찮은 작품이다.
간 나오토 총리를 바탕으로 한 배역의 경우 나오토 총리로서는 억울한 면이 있는데, 설마르고 성질 급한 사람으로만 묘사 됐기 때문... 하지만 나오토 총리는 일본 역사상 거의 최초로 정권 교체를 이룬데다가 집권 1년도 되지 않은 민주당 총리로서 공무원이나 기업들 등에서 말을 잘 듣지 않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은 자국 내에서도 자민막부라고 자조할 정도로 역사 내내 일당독재를 해왔기 때문... 게다가 도쿄전력은 민간기업으로서 자기 회사의 이익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정부나 총리에 대해서 답변을 회피하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있다. 르포르타주들에서도 "도쿄전력은 고의적으로 해수(바닷물) 투입으로 원자로를 식혀야 할 타이밍에 일부러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조차 총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도 밝혀졌다. 해수를 투입하게 되면 나중에도 모든 설비를 다 못 쓰게 되기 때문... 결국 방사능 때문에 아무것도 못 쓰게 되었는데도 말이다. 이 또한 드라마에서는 해수투입을 도쿄전력 실무진들이 실시하고 내각정부는 헛짓거리하면서 방해한것 처럼 정 반대로 묘사해놨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제 간 나오토 총리는 자신의 개인적인 학계 지인들을 통해서 정보를 접해 판단을 내렸고 이 때문에 그나마 피해를 줄였다는게 중론이다. 결국 실권했던 아베 신조는 정부가 무능하다는 프레임으로 공격하여 재집권을 이뤄냈고 재집권 이후 한다는 짓거리가 방사능 오염 채소들을 먹어서 응원하자 같은 헛짓거리와 방사능 폐수를 바다에 그대로 방류한다는 정책을 벌였다... "원자력은 이 정부에서 내가 제일 잘 안다.", "철수하면 도쿄전력은 반드시 무너진다." 등 대중에게 알려진 발언이 그대로 재연했다.
드라마 내용 중 일부 젋은 직원들이 철수를 요구했으며 주로 연령이 높은 베테랑 직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를 위해 각색된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후반부 "파견 직원은 전원 철수, 정규 직원만 남는다."라고 했고 이로 인한 인력 부족과 기술 부족 문제가 발생하자 도움을 청한다.
이에 과거 현장에서 일했던 파견 직원이 토오전력에 요청해서 "본인이 현장으로 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안 될 것이라며 포기하는데 파견 직원이 이를 무시하고 현장으로 출동한다.
실제로는 과반수가 파견직 혹은 비정규직으로 이뤄져 있었다고 알려졌으며 드라마에서 회사의 지시 없이 현장으로 간 파견 직원은 파견직과 비정규직 인력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발적인 현장 출동, 영웅적인 희생에 관해 일부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