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기꾼의 먹잇감이 되는가
재벌 사생아면서 여자인 동시에 남자의 시한부 삶이라니
輕重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 한 번쯤은 당하지 않나
욕망 좇다 ‘꾼’의 손아귀를 찾아 들어간 자신을 책망할밖에
< 조선일보,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3.11.21. >
기자 4년 차에 사기를 당했다. 당시 유행하던 기(氣) 관련 특집 기사를 준비하다가 어떤 기 수련 단체를 알게 됐다. 중국에서 대단한 능력의 기 수련가가 온다고 했다. 죽은 닭을 살려내고 공중 부양도 한다고 했다. 그들은 미심쩍어하는 나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설득했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이 오면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얼마 뒤 그 도사가 정말 한국에 왔는데 20대 젊은 친구였다. 군살이라곤 전혀 없는 몸매에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처럼 표정과 어조가 근엄했다. 산 닭의 목을 칼로 친 뒤에 기를 불어넣어 봉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투가 마치 닭고기만 있으면 닭곰탕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봉오리만 맺힌 꽃에 기를 불어넣어 즉석에서 만개(滿開)시킬 수 있다고 했고 가부좌 상태에서 공중에 떠오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 수련은 서커스가 아니므로 그런 행위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나는 그의 위세에 기가 눌렸고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기의 경지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신문사에 와서 시범을 보여주면 기사로 쓰겠다고 제안하니 그는 흔쾌히 수락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 무슨 산에 오면 840살 넘은(84살이 아니다) 자신의 스승을 전 세계 언론 최초로 인터뷰시켜 주겠다고. 나는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하는 대신 세계적 특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사기꾼들의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다.
며칠 뒤 신문사로 온 그는 몸이 좋지 않아 닭 부활 쇼와 공중 부양은 어렵다며 꽃 피우는 건 할 수 있다고 했다. 여러 명의 제정신인 동료와 사진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꽃봉오리에 장풍을 불어넣는 시늉을 하더니 손바닥으로 꽃을 문질러 펴기 시작했다. 그가 다 피웠다고 내민 꽃은 말 그대로 뭉개진 꽃봉오리였다. 그가 쫓겨나다시피 떠날 때 나도 회사에서 쫓겨나는 줄 알았다. 중국 가짜 도사가 신문에 보도되지는 않았으므로 여러 사람 점심시간 빼앗은 죄만 인정됐다.
경중(輕重) 차이는 있어도 누구나 한 번쯤 사기를 당한다. 전세 사기나 보이스피싱처럼 아무 잘못 없이 사기에 걸려들기도 하지만 욕망을 좇아 사기꾼 손아귀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한때 백화점에서 물건 가격을 두 배로 매긴 뒤 50% 세일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다. 물건을 반값에 사고픈 욕망이 사람들을 사기 세일에 빠뜨렸다. 1992년 대법원이 이런 상술을 사기죄로 인정하면서 관행은 사라졌다.
지난 2007년 수많은 사람이 “저 민정인데요. 저한테 전화번호 준 오빠 맞죠? 사진 보고 맞으면 문자 주세요”라는 문자를 받았다. 무려 40만명이 확인 버튼을 눌러 엉뚱한 사진을 봤고 휴대폰 요금에서 정보 이용료 2990원이 결제됐다. 범인들은 3000원 미만은 본인 확인 없이 자동 결제되는 점을 악용해 어떤 민정이가 나를 찾나 하고 설렌 남자 수십만 명에게 17억원을 뜯었다.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거나 존경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당신은 장점으로 살리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잘 통제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못하다….” 성격 검사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고 치자. ‘나에게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1948년 미국 심리학자 버트램 포러가 모든 실험 대상자에게 이런 검사 결과를 주고 ‘당신과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묻자 응답자들은 평균 4.2점(5점 만점)을 줬다. 나는 최근 유행한 MBTI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향을 심리학 용어로 ‘바넘 효과’라고 한다. 바넘은 19세기 미국에서 관객 속마음 알아맞히기로 유명했던 마술사다. 바넘을 비롯한 점쟁이들은 이런 말을 확신에 찬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는 기술자다. 점을 보는 것은 신통력에 의지하고픈 욕망 때문이다. 우리 동네엔 점 보는 노점이 하나 있는데 그 출입구에 딱 두 문장이 쓰여 있다. “언제 재물이 생기나? 언제 애인이 생기나?” 사람들의 가장 큰 욕망이 정확히 응축돼 있다.
유명 펜싱 선수는 어떤 욕망 때문에 사기꾼에게 걸려들었을까. 그가 사기를 공모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최악의 피해자인 것도 사실이다. 재벌의 사생아이며 승마 선수였고 자산이 51조원이나 되는데 여자이기도 남자이기도 한 시한부 환자라니, 세상의 모든 막장 드라마를 합쳐도 압도하고 남을 사기 사건을 보며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 포러 효과(Forer effect) - 바넘 효과(Barnum effect)
포러 효과(Forer effect)는 개인들이, 그들에게 특별히 맞추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실상 막연하며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그들의 성격 묘사에 높은 정확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P. T. 바넘에 의한 "우리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을 보았다."라는 관찰 보고 이후에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도 불린다. 이 효과는 종교와 점성술, 운세 판단, 필적학 그리고 어떤 유형의 성격 검사와 같은 어떤 신념과 실천의 광범위한 수용에 대하여 부분적인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에 관련된 더 일반적인 현상은 주관적 검증에 대한 것이다. 신앙이나 기대 또는 가설은 관련성을 요하기 때문에, 주관적 검증은 두 개의 무관하거나 임의의 사건이 서로 관계 있다고 인식할 때에 나타난다. 따라서, 그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성격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천궁도 사이의 일치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천궁도(天宮圖, horoscope)는 한 사람의 출생 순간과 같은 특정 시간의 태양과 달, 행성 그리고 기준선을 표현하는 점성술의 도표 또는 도해이다. )
< 최근 연구 >
(1)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믿음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앞선 믿음이 이 효과의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천궁도의 정확성을 믿는 피험자들은 막연히 일반론적인 것들이 그들에게 특별히 적용된다고 믿는 경향이 더 크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믿음의 다른 예들로는 마술의 힘에 대한 믿음과 영혼의 영향력에 대한 믿음이 포함된다. 정신분열성향과 포러 효과에 대한 믿음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은 높은 상관성을 보여오고 있다. 그러나, 로저스와 술의 2009년 연구는 (위의 "효과에 영향을 주는 변수" 참조) 피험자의 점성술에 대한 믿음을 고려했는데, 중국과 서양의 회의론자들은 모두 바넘 단평에 속한 애매함을 인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함은 점성술에 대한 믿음이 없는 개인들이 그 효과에 대해 영향을 덜 받을 가능성이 더 높음을 시사한다.
(2) 자기 고양적 편향
자기 고양적 편향이 포러효과를 상쇄한다고 보고되어 오고 있다. 자기 고양적 편향에 따르면, 피험자들은 그들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수용하는 반면, 부정적인 태도는 거부한다. 한 연구에서, 피험자들에게 세 개의 성격 보고서 가운데 하나가 주어졌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성격적 특징들이 기술된 바넘 단평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동의 결점"이라고도 불리는) 완전히 부정적인 특징들이 포함된 단평이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앞의 두 가지가 혼합되어 있었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과 혼합된 것을 받은 피험자들은 전자의 두 가지와 중요한 차이점은 없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것을 받은 피험자들보다 그것들의 성격 평가에 동의하는 경향이 훨씬 더 높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일반적인 "가짜" 성격 평가 대신에 특징이 열거된 한 목록을 받았다. 피험자들은 그 특징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더 잘 맞다고 여기는지의 정도를 점수로 매겼다. 자기 고양적 편양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피험자들은 자신들 대한 긍정적인 특징들에 동의했고, 부정적인 것은 부인했다. 그 연구는 자기 고양적 편향이 일반적인 포러 효과를 상쇄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15]
(3) 대중 문화
TV 다큐멘터리 코미디 펜 & 텔러: 불쉿!의 일곱번째 시즌의 제2화에서 유사한 실험이 행해졌다. 그 회는 점성술에 대해서 다루며 확증 편향을 논했다. 그 결과는 포러의 연구와 유사했다.
그것의 근원적 실험은 마술사 데런 브라운에 의해서 행해졌다.[모호한 표현] 그는 그의 저서 《마음의 속임수(Tricks of the Mind)》에서 그 실험을 묘사했다.
그 효과는 시트콤 빅뱅 이론의 첫 시즌의 제16화에서 인용되었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386회 인디고 아이들 편에서 포러 효과가 언급되었다. 그 회에서는 결점을 가진 자녀의 부모가 그러한 자녀를 특별한 능력자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 포러 효과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함은 보편적이지 않고 특별한 것에 대해 부정보다는 긍정을 택한다는 점에서 자기 고양적 편향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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