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기꾼의 먹잇감이 되는가
재벌 사생아면서 여자인 동시에 남자의 시한부 삶이라니
輕重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 한 번쯤은 당하지 않나
욕망 좇다 ‘꾼’의 손아귀를 찾아 들어간 자신을 책망할밖에

 

< 조선일보,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3.11.21.  >

 


기자 4년 차에 사기를 당했다. 당시 유행하던 기(氣) 관련 특집 기사를 준비하다가 어떤 기 수련 단체를 알게 됐다. 중국에서 대단한 능력의 기 수련가가 온다고 했다. 죽은 닭을 살려내고 공중 부양도 한다고 했다. 그들은 미심쩍어하는 나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설득했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이 오면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얼마 뒤 그 도사가 정말 한국에 왔는데 20대 젊은 친구였다. 군살이라곤 전혀 없는 몸매에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처럼 표정과 어조가 근엄했다. 산 닭의 목을 칼로 친 뒤에 기를 불어넣어 봉합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투가 마치 닭고기만 있으면 닭곰탕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봉오리만 맺힌 꽃에 기를 불어넣어 즉석에서 만개(滿開)시킬 수 있다고 했고 가부좌 상태에서 공중에 떠오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 수련은 서커스가 아니므로 그런 행위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나는 그의 위세에 기가 눌렸고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기의 경지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신문사에 와서 시범을 보여주면 기사로 쓰겠다고 제안하니 그는 흔쾌히 수락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 무슨 산에 오면 840살 넘은(84살이 아니다) 자신의 스승을 전 세계 언론 최초로 인터뷰시켜 주겠다고. 나는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하는 대신 세계적 특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사기꾼들의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다.

며칠 뒤 신문사로 온 그는 몸이 좋지 않아 닭 부활 쇼와 공중 부양은 어렵다며 꽃 피우는 건 할 수 있다고 했다. 여러 명의 제정신인 동료와 사진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꽃봉오리에 장풍을 불어넣는 시늉을 하더니 손바닥으로 꽃을 문질러 펴기 시작했다. 그가 다 피웠다고 내민 꽃은 말 그대로 뭉개진 꽃봉오리였다. 그가 쫓겨나다시피 떠날 때 나도 회사에서 쫓겨나는 줄 알았다. 중국 가짜 도사가 신문에 보도되지는 않았으므로 여러 사람 점심시간 빼앗은 죄만 인정됐다.

경중(輕重) 차이는 있어도 누구나 한 번쯤 사기를 당한다. 전세 사기나 보이스피싱처럼 아무 잘못 없이 사기에 걸려들기도 하지만 욕망을 좇아 사기꾼 손아귀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한때 백화점에서 물건 가격을 두 배로 매긴 뒤 50% 세일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다. 물건을 반값에 사고픈 욕망이 사람들을 사기 세일에 빠뜨렸다. 1992년 대법원이 이런 상술을 사기죄로 인정하면서 관행은 사라졌다.

지난 2007년 수많은 사람이 “저 민정인데요. 저한테 전화번호 준 오빠 맞죠? 사진 보고 맞으면 문자 주세요”라는 문자를 받았다. 무려 40만명이 확인 버튼을 눌러 엉뚱한 사진을 봤고 휴대폰 요금에서 정보 이용료 2990원이 결제됐다. 범인들은 3000원 미만은 본인 확인 없이 자동 결제되는 점을 악용해 어떤 민정이가 나를 찾나 하고 설렌 남자 수십만 명에게 17억원을 뜯었다.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거나 존경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당신은 장점으로 살리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잘 통제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못하다….” 성격 검사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고 치자. ‘나에게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1948년 미국 심리학자 버트램 포러가 모든 실험 대상자에게 이런 검사 결과를 주고 ‘당신과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묻자 응답자들은 평균 4.2점(5점 만점)을 줬다. 나는 최근 유행한 MBTI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향을 심리학 용어로 ‘바넘 효과’라고 한다. 바넘은 19세기 미국에서 관객 속마음 알아맞히기로 유명했던 마술사다. 바넘을 비롯한 점쟁이들은 이런 말을 확신에 찬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는 기술자다. 점을 보는 것은 신통력에 의지하고픈 욕망 때문이다. 우리 동네엔 점 보는 노점이 하나 있는데 그 출입구에 딱 두 문장이 쓰여 있다. “언제 재물이 생기나? 언제 애인이 생기나?” 사람들의 가장 큰 욕망이 정확히 응축돼 있다.

유명 펜싱 선수는 어떤 욕망 때문에 사기꾼에게 걸려들었을까. 그가 사기를 공모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최악의 피해자인 것도 사실이다. 재벌의 사생아이며 승마 선수였고 자산이 51조원이나 되는데 여자이기도 남자이기도 한 시한부 환자라니, 세상의 모든 막장 드라마를 합쳐도 압도하고 남을 사기 사건을 보며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  포러 효과(Forer effect)  -  바넘 효과(Barnum effect)

 

포러 효과(Forer effect)는 개인들이, 그들에게 특별히 맞추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실상 막연하며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그들의 성격 묘사에 높은 정확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P. T. 바넘에 의한 "우리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을 보았다."라는 관찰 보고 이후에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도 불린다. 이 효과는 종교와 점성술, 운세 판단, 필적학 그리고 어떤 유형의 성격 검사와 같은 어떤 신념과 실천의 광범위한 수용에 대하여 부분적인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에 관련된 더 일반적인 현상은 주관적 검증에 대한 것이다.  신앙이나 기대 또는 가설은 관련성을 요하기 때문에, 주관적 검증은 두 개의 무관하거나 임의의 사건이 서로 관계 있다고 인식할 때에 나타난다. 따라서, 그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성격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천궁도 사이의 일치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천궁도(天宮圖, horoscope)는 한 사람의 출생 순간과 같은 특정 시간의 태양과 달, 행성 그리고 기준선을 표현하는 점성술의 도표 또는 도해이다. )

 

< 최근 연구 >

 

(1)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믿음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앞선 믿음이 이 효과의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천궁도의 정확성을 믿는 피험자들은 막연히 일반론적인 것들이 그들에게 특별히 적용된다고 믿는 경향이 더 크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믿음의 다른 예들로는 마술의 힘에 대한 믿음과 영혼의 영향력에 대한 믿음이 포함된다. 정신분열성향과 포러 효과에 대한 믿음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은 높은 상관성을 보여오고 있다. 그러나, 로저스와 술의 2009년 연구는 (위의 "효과에 영향을 주는 변수" 참조) 피험자의 점성술에 대한 믿음을 고려했는데, 중국과 서양의 회의론자들은 모두 바넘 단평에 속한 애매함을 인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함은 점성술에 대한 믿음이 없는 개인들이 그 효과에 대해 영향을 덜 받을 가능성이 더 높음을 시사한다.

(2) 자기 고양적 편향


자기 고양적 편향이 포러효과를 상쇄한다고 보고되어 오고 있다. 자기 고양적 편향에 따르면, 피험자들은 그들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수용하는 반면, 부정적인 태도는 거부한다. 한 연구에서, 피험자들에게 세 개의 성격 보고서 가운데 하나가 주어졌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성격적 특징들이 기술된 바넘 단평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동의 결점"이라고도 불리는) 완전히 부정적인 특징들이 포함된 단평이었으며, 마지막 하나는 앞의 두 가지가 혼합되어 있었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과 혼합된 것을 받은 피험자들은 전자의 두 가지와 중요한 차이점은 없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것을 받은 피험자들보다 그것들의 성격 평가에 동의하는 경향이 훨씬 더 높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일반적인 "가짜" 성격 평가 대신에 특징이 열거된 한 목록을 받았다. 피험자들은 그 특징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더 잘 맞다고 여기는지의 정도를 점수로 매겼다. 자기 고양적 편양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피험자들은 자신들 대한 긍정적인 특징들에 동의했고, 부정적인 것은 부인했다. 그 연구는 자기 고양적 편향이 일반적인 포러 효과를 상쇄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15]

(3) 대중 문화


TV 다큐멘터리 코미디 펜 & 텔러: 불쉿!의 일곱번째 시즌의 제2화에서 유사한 실험이 행해졌다. 그 회는 점성술에 대해서 다루며 확증 편향을 논했다. 그 결과는 포러의 연구와 유사했다.

그것의 근원적 실험은 마술사 데런 브라운에 의해서 행해졌다.[모호한 표현] 그는 그의 저서 《마음의 속임수(Tricks of the Mind)》에서 그 실험을 묘사했다.

그 효과는 시트콤 빅뱅 이론의 첫 시즌의 제16화에서 인용되었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386회 인디고 아이들 편에서 포러 효과가 언급되었다. 그 회에서는 결점을 가진 자녀의 부모가 그러한 자녀를 특별한 능력자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 포러 효과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함은 보편적이지 않고 특별한 것에 대해 부정보다는 긍정을 택한다는 점에서 자기 고양적 편향에 더 가깝다.

 

서정주는 임옥상이 부럽다...‘친일파’ 죽창든 좌파들의 성폭력 침묵

 


시대에 굴복한 예술인들
부관참시한 좌파들
‘성폭력’ 논란된 예술권력
스스로 어떤 단죄 할 건가

 

< 조선일보, 박은주 부국장 겸 에디터,  2023.07.28.  >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나라’라는 선동을 위해 진보는 수많은 문화예술인을 명예살인해왔다. 미당 서정주도 표적 중 하나였다.

2003년, 시 전문 계간지 ‘시평’에 시인 손진은씨가 ‘서정주가 빠진 국어교과서’라는 글을 썼다. 드물게 나온 ‘서정주 포용론’이었다. “서정주 작품이 빠진 것은… 안목의 부재, 경직성에서 파생된 것” “서정주 시는 일제 말기의 논리적 파탄(파시즘 체제 옹호 등 친일 행각)까지를 포함해 끌어안아야 할 유산이다.” 20년이 흘러 손 시인이 말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누님이 밭을 매며 그의 시를 외셨다. 서정주 시는 그런 시다. 당시 어떤 평론가는 ‘국화 옆에서’의 국화가 ‘사무라이’를 상징한다는 말까지 하더라” 그 시가 젊어 방종했던 미당의 먼 친척 누이를 노래했다는 걸 알 사람은 다 알았다. 한국어라는 텃밭을 흐드러진 꽃밭으로 가꾼 시인, 절개를 지키지 않았던 시인은 살아서도 죽은 세상을 살다 2000년 타계했다. 그래도 좌파는 ‘부관참시’ 죽창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뽑힌 자리에 ‘참여 시인’ 고은이 들어섰다. 2001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은 3년 반 동안 번역 170건을 지원했는데, ‘무기의 그늘’ 등 황석영 소설이 8편, ‘만인보’ 등 고은 시집이 6건으로 최다였다. 김소월, 박완서, 이문열, 박경리, 서정주 작품이 그들보다 적었다. 시 ‘만인보’를 외우는 국민은 별로 없었지만 온갖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를 순회했다. 십수년간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라 떠받들어졌다. 마지막 소식은 그가 시인 최영미를 비롯 여성 여럿에 대한 성폭력 시비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노무현 시절, 이런 패턴이 반복됐다. 2005년 5월 진주 시민단체가 촉석루에 들어가 ‘미인도’(논개 영정)를 강제로 떼어냈고, 비슷한 시기 남원 춘향사당의 성춘향 그림도 철거요구가 시작됐다. 영정을 그린 이당 김은호의 친일 시비가 이유였다. 그해 6월 정부 홈페이지 국정브리핑에 ‘일제 찬양 미술가들 해방 후엔 위인 동상·영정 도맡아’(조은정)라는 글이 올라왔다. 당대 최고 인물화가의 그림을 이렇게 썼다. “위인의 동상과 진영에서 감동적인 이미지를 확인할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역사의식 없는 친일 미술가의 손에서 탄생된 때문이다… 미술작품의 진실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KBS 등은 ‘친일’ 시리즈를 반복해 만들었다. 시민단체, 학자, 방송, 정부가 한 몸처럼 움직인 게 놀라울 따름이다.

운보 김기창, 조각가 김경승도 그렇게 뽑혀나갔고, 그 공백을 메운 이 중 하나가 임옥상이다. “미술은 윤리의 외침에 귀 기울이는 작업”이라던 임옥상은 전국 조형물 시장의 ‘재벌’이었다. 청계천 전태일 동상, 봉하마을 ‘대지의 아들 노무현’상, 민주당사의 김대중·노무현상, 대검찰청 이준열사 흉상을 비롯, 광화문역사, 시흥어린이놀이터… 끝이 없다. 그가 2013년 후배 작가를 성추행해 검찰이 1년 형을 구형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임옥상이 일본군위안부 추모공간 ‘기억의 터’를 설계했는데, 관련 단체는 여태껏 침묵하고 있었다. 성폭력 예술가의 작품을 어디까지 남겨둘 건가. 우리 사회 숙제다.

이문열의 단편 ‘사로잡힌 악령’은 추잡한 여성 편력의 승려가 뜬금없이 ‘민족 작가’로 성공하는 줄거리다. 1994년 출간되자 “시인 고은 이야기”라는 말이 돌았다. 재판(再版)에서 빠졌다. 이문열 작가에게 이유를 물었다. “내고 보니 점잖지 못한 글 같아서 뺐다. 고은이 그렇게 됐는데, 다시 낼 생각도 없다.”

 


흠결 있는 작가의 상처에 죽창을 꽂아 구덩이에 파묻는 좌파의 ‘처단 방식’에 진저리 친 국민이 상당수다. 

그런 이들에게 이문열 식 ‘관용’을 구하는 것도 이젠 위선으로 보인다. 역사의 되갚음이 무섭다.

‘극단적 선택’, 극단도 선택도 아니다

 

 

< 경향신문,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편집장, 2023.07.12  >

 


 
1803년 미국 의회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 준주(準州)를 사들였다. 당시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미시시피강에서 로키산맥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을 탐사할 책임자로 29세의 메리웨더 루이스(1774~1809) 대위를 임명했다. 타고난 총명함과 추진력을 갖춘 루이스 대위는 지리학, 자연사, 의학, 식물학, 천문학을 공부하여 미국 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선주민 부족수, 그들의 언어, 전통, 기념물, 농업, 유행병, 법, 관습 등 각 지역의 토양과 지형, 식물과 동물, 광물과 화산 지형까지 성공리에 조사를 마쳤다. 적절한 조증(躁症), 성실성, 진취력, 판단력, 용기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탐험 이후 주지사까지 지낸 그는 사망 전까지 2~3년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했다. 늘 술에 취해 있었으며 아무 데나 돈을 쓰고 넋이 나간 듯 실수와 무례를 반복했다. 무엇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책임감 그 자체’였던 루이스는 가장 중요한 업무인 탐험 보고서를 쓰지 않았다. 대통령으로부터 계속 재촉받았다. 그는 35세에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했다.

그의 죽음은 수많은 미스터리와 연구를 낳았지만, 학계는 평범한 우울증 환자였다고 결론내렸다. 200년 전, 다방면에 박식했던 토머스 제퍼슨은 이미 알고 있었다. 루이스는 원래 우울증 환자였고, 탐험이라는 대역사(大役事)를 위해 에너지를 총동원하다 보니 우울증세가 ‘보류되었다’고 분석했다. 우울증은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유전적 소인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전되는 우울증’이 아니라 여타 질병과 같다는 점이다. 루이스 집안은 친가가 그랬고, 아버지가 우울증 환자였다(<자살의 이해>, 274~294쪽). 우울증 증상 중 하나는 타인으로부터 요구와 독촉을 받았을 때 죽고 싶도록 괴롭거나, 그로 인한 사망이다.

누구나 능력과 무관하게 질병에 걸린다. 우울증도 그런 질병 중 하나일 뿐이다. 과학자 김우재에 의하면, 인류는 생물학 연구비의 30%를 암 치료에 사용한다. 우울증과 자살은 심각성에 비해 가장 연구되지 않은 분야일 것이다. 우리는 자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덕분에 자살은 낙인과 금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조차 속삭인다.

유능한 인물이 자살할 경우 “평생 나누어 쓸 에너지를 짧은 시간 다 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티베트 의학에서는 소식(小食)을 장수의 기준으로 보는데, 이유는 일반 상식과 다르다. 총량, 즉 인간 한계의 법칙인데 인간에게는 평생 먹을 양이 정해서 있어서 나눠 먹으면 오래 산다는 논리다. 사람마다 기력과 먹을 양이 정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병에 대해서는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정신은 몸의 일부다

스티브 잡스가 의지가 약해서 암에 걸렸는가. 헤밍웨이의 조울증과 자살은 예술가의 병인가. 우울증도 능력과 환경에 영향을 받거나/안 받거나, 그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다. 다른 질병처럼 그만의 증상이 있고, 다른 질병처럼 같은 환자들 간의 차이도 크다.

19세기는 결핵, 20세기는 암, 21세기는 만성질환의 시대라고 한다. 진단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통증의 시대다. 예전에는 생활의 일부인 우울한 기분과 질병으로서 우울증은 다른 현상이었다. 하지만 우울과 우울증의 경계가 급속히 흐려지고 있다. 우울은 분노의 성별화, 권력관계와 관련된 증상이었다. 남성(‘강자’)의 분노는 폭력으로, 여성(‘약자’)의 분노는 우울로 드러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전자를 타인에 대한 투사(投射), 후자는 자기 탓으로 돌리는 내사(內射)라고 한다. 한국의 한(恨)의 문화는 분노를 제대로 표출할 수 없는 여성적인 병, 약자의 문화다.

예전에는 자살도, 자살 시도에서도 성(性)의 차이가 컸다. 시도는 여성이 많지만, 실제 죽음에 이르는 경우는 남성이 많았다. 지금은 이 모든 이론이 무용하다. 우울한 남성도 많고 여성의 자살률도 대단히 높다. 연령과 성별, 계층의 구분 없이 주된 사회현상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반응도 조금은 발전했다. 예전에는 “생명 경시” 운운하며 비난이 거셌지만, 지금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수용하는 편인 듯하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인 한국의 자살률은 여전히 실감, 적응이 안 된다.

2021년 한 해 1만3352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80대 이상의 자살률은 20대보다 4배 이상 높다. 한국에서 자살은 10대부터 30대까지 다른 모든 원인을 제치고 사망 원인 1위이며, 40대와 50대에서는 사망 원인 2위이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1.1명이지만 한국은 24.1명으로 무려 13명이나 많다. 증가 속도는 매우 빠르며, 2위와의 격차도 엄청나다. 이 모든 통계는 축소 보고된 것이다. 자살, 성폭력 등은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는 대표적 분야다. 외국인에게 유일하게 조력 사망을 허용하는 스위스에서도 한국인이 아시아 회원 중에서 1위이다(인도나 중국의 인구를 생각해보라).

우리 사회에는 자살에 대한 보건 정책이 있는가. 자살에 대한 무지의 첫 단계는 인간의 질병을 신체(몸)와 정신(마음)으로 구별하는 이분법과 정신이 우월하다는 위계다. 그러니 정신이 문제가 있으면 시민권을 상실한다. 마음은 몸이 아닌가? 마음은 몸 밖에 있는가? 암환자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지만 정신병자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다. 우울증을 다른 질병과 대입해서 생각해보자. “당뇨는 약을 복용하지 말고 의지로 치료해야 한다”거나 “암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은 없다. “우울증에 빠졌다”를 암으로 바꿔 보면 얼마나 난센스인지 알 수 있다. 세상에 암에 ‘걸린’ 사람은 있어도, 암에 ‘빠진’ 사람은 없다.

 


극단적 선택은 가능하지 않다

물론 대표적인 표현은 “극단적 선택”이다. 자살은 선택이 아니다. 혈액암, 근육통성뇌척수염, 코로나, 근위축성측삭경화증(루게릭병)으로 사망한 이들에게 선택했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다른 죽음은 애도하면서 왜 자살만 자발적 ‘선택’이라고 하는가. 선택은 고르는 것이다. 최소한 두 가지 이상 선택의 여지가 있고, 선택할 의지의 힘,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우울증은 이 의지가 오작동하거나 고장난 질병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야 한다. 인간의 삶은 매 순간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 중증 우울증은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몸에서 의지가 빠져나간다. 중력이 몸을 잡지 않는다. 영혼(의지)이 몸에서 사라지면 현상은 죽음이다. 자살은 비유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자살골” “자살 행위” 등이 대표적이다. “자살 충동(death drive)”도 잘못된 번역이다. 드라이브(drive)는 충동이 아니다.

선택이라는 말에 “극단적”이 붙는 것은 더욱 이상하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극단적인 환경은 아니다. ‘극단적 선택’은 건강한 사람만 가능한 일이다. 자기 의지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다. 그러나 이 정도로 건강하고, 이 정도로 자원이 많은 이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의 사망 첫 번째 원인이 자살인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환자에 대한 낙인을 넘어 사회적 논의를 어렵게 한다. 지나친 음주, 음주 운전, 아동 학대,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방관 지지하는 이들의 행위이야말로 극단적 선택이 아닐까. 이 경우는 정말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아픈 사람의 질병사를 왜 극단적 선택이라고 하는가. 이 표현의 전제는 분명하다. 이 말의 배경에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짜 극단’의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

눈에 보이는 증상이나 장애는 인식이 가능하다. 우울증은 의지가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의지가 고장 나서 생긴 병이요, 자살은 질병사다. 근대 자본주의에서 의지는 중요한 개념이다. 의지는 생산력, 미래 지향, ‘정신 승리(자율성, auto/normy)’ 등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사람마다 약한 부위가 있듯, 의지 역시 차이가 있다. 또한 사람마다 집중하는 분야가 다른 것처럼 의지 실현의 영역도 다르다.


자살은 죽을 만큼 아프기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이다. 자살하는 이들은 미래가 불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이는 비합리적 신념이 아니라 질병의 증상이다. 이 때문에 자살은 극단적이지도 않고 선택은 더욱 아니다. 특히 중증 우울증 환자는 자살하지 않는다. 선택할 기력이 없기 때문이다.

박원순 성희롱 면죄부, 용납 못 한다

 

 

< 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2023.06.23. >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에 나오는 문장이다.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은 사회적 명성과 힘을 지닌 한 남자의 자살로 인해 한순간에 ‘마녀’로 몰렸다. 주인공은 명백히 피해자였지만 그의 아픔과 상처를 제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조롱과 위협에 시달리다 못해 도망치듯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주인공의 사연은 소설 속 허구지만 현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성추행 가해자로 경찰에 고소될 것이란 얘기를 들은 고위 공직자가 지극히 무책임한 방법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2차 가해’ 다큐 영화 다음 달 개봉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도 불인정
피해자 인권 침해 당장 철회해야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를 향해 악담과 저주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부르지 않으려고 ‘피해 호소인’이란 희한한 말까지 만들어 냈다. 성추행을 저지른 이에게 잘못을 인정하게 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는 피해자의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어느새 3년이 지났다. 조금씩 잊혀 가던 이 사건에서 2차 가해라는 ‘망령’이 다시 떠오른다. 다음 달 극장 개봉을 예고한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이다. 영화 제작진은 지난달 제작 발표회를 열고 영화의 2차 예고편(트레일러)을 공개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예고편을 보면 기가 막힌다. 등장인물들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이런저런 의문을 제기하며 박 전 시장을 변호한다. “박 전 시장의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도 인정하지 않는다. 원래 1차 예고편의 제목은 ‘비극의 탄생’이었다. 한 인터넷 언론 기자가 박 전 시장을 옹호하며 쓴 책의 제목과 같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에게 고민도 없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비판이 역설적으로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네거티브 마케팅’이 걱정돼서다. 어쨌든 이런 영화에 유료 관객으로 수익을 보태줄 생각은 전혀 없다.

박원순 사건에서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명백하게 밝혀내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건 박 전 시장에게 죄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망한 가해자는 재판에 넘길 수 없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어쩔 수 없이 ‘공소권 없음’이란 처분을 내렸다. 만일 박 전 시장이 떳떳했다면 죽지 않고 살아서 경찰 수사를 받고 사실관계를 밝혔으면 됐을 것이다.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할 것이란 얘기를 듣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종적을 감췄던 건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

법정에서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가 기관이 종합적인 상황을 조사·발표한 기록이 남아 있다. 국가인권위가 2021년 1월 공개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등에 대한 직권조사’ 결과다. 피해자 면담(2회)과 서울시 전·현직 직원 등 참고인 51명에 대한 조사를 토대로 했다.

여기에 인권위 발표 자료의 일부를 인용한다. “참고인들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등에 근거할 때 박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고, 이와 같은 박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 당시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박원순 시장 시절에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박 전 시장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판단을 내릴 이유가 없었다. 인권위 결론까지 부정하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셈이다.

사실 피해자로선 충분히 납득할 만한 조사 결과는 아니었다. 피해자는 “사건에 대한 국가 기관의 명확한 판단을 기대했는데 ‘성희롱’이란 단어로 내가 겪은 피해를 축소하려는 것처럼 느껴져 다시금 절망스러웠다”고 자신의 책에 적었다. 그렇더라도 박 전 시장에 의한 피해 사실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제작진은 이런 인권위 조사 결과마저 인정하길 거부하면서 피해자에게 또다시 ‘2차 가해의 돌’을 던지고 있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것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 당장 2차 가해를 멈추고 영화 개봉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 이건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이나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다.

위안부 지원금 챙기고, 위원회 요직 차지… 비즈니스가 된 과거사
피해 치유’ 명분 뒤엔 돈·일자리

 

< 조선일보, 박상기 기자 / 주희연 기자,  2023.05.24.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시민 단체가 실제 배상 판결이 나오기 한참 전에 피해자들과 ‘명칭 불문 돈 20% 지급’ 약정서를 맺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른바 ‘과거사 비즈니스’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고 피해자를 치유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돈 또는 일자리가 숨은 목적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하나 더 추가됐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시작으로 각종 과거사위 활동이 이어지면서, 이들 위원회 활동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특정 집단의 이익 추구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계속돼 왔다.

 


◇ 과거사가 돈벌이 수단?

작년 1월 대법원은 과거사정리위에 소속돼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사건의 변호를 맡아 수십억원 수임료를 받은 민변 출신 변호사 2명에 대한 유죄를 확정했다. 변호사법은 공무원 신분으로 취급한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유죄가 확정된 김준곤 변호사는 2008~2010년 과거사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납북 귀환 어부 간첩 조작 의혹 사건’ 등을 조사했는데, 이후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 배상 소송 수십 건을 수임해 24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과거사위 활동 이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과거사 관련 국가를 상대로 청구된 손해배상 소송 가액은 1조2500억원에 달했다.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대리한 소송이 많다. 법무법인 덕수, 정평, 지평 등 3개 로펌이 대리해 청구한 금액이 6246억원으로 전체의 49.9%였다. 이 중 정평의 대표는 옛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였다. 민변 통일위원장이었던 심 변호사는 과거사위가 조사한 여러 사건 변론을 맡았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진상규명위에서 활동할 때는 방송에 출연해 “김현희는 완전히 가짜다. 절대로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고 우리는 단정 짓는다”며 이른바 ‘김현희 가짜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위안부 운동’도 과거사 비즈니스 의혹의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었던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2011~2020년 개인·법인 계좌로 모금한 1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지난 2월 1심 판결에서는 검찰이 횡령한 돈 사용처를 명확히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1700만원만 유죄로 인정됐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앞서 1월에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편취한 혐의 등으로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 안모 전 시설장(소장)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평화의 소녀상’ 작가인 김운성씨 부부는 그간 100개 가까운 소녀상을 만들어 30억원 넘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16년 특허청에 소녀상에 대한 상표권 등록을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특허청은 당시 “공익에 맞지 않는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 일자리 제공 논란도

김대중 정부의 의문사진상규명위를 시작으로 각종 과거사위가 출현했는데 그때마다 현 야권(野圈)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논란이 돼 왔다. “아직 규명할 게 더 남았다”는 이유로 위원회 활동이 수차례 연장되는 게 다반사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로 확대·개편됐는데 18년 지난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가 초대 위원장이었다.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설립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도 24년째 활동하고 있다.

5·18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조사위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2월 출범 뒤 4년째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기본 활동 시한은 2년이었는데 1년씩 연장해 법이 규정한 최장 조사 기한인 4년을 모두 채우게 됐다. 이번 진상규명조사위까지, 1988년부터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진상 조사는 다섯 차례 이뤄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는 올해 7월까지 실시하는 유해 발굴 용역 사업에서 관련 이력이 없는 비(非)전문가 출신을 다수 포함시켜 논란이 됐다. 용역 연구진 18명 중 11명이 유해 발굴 관련 이력이 없었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시민 단체 출신 인사가 포함됐고, 이력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출신이라고 기재한 연구원도 둘이나 있었다. 기획재정부 예규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월 120만~330만원이 지급된다. 여권 관계자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는 야권 인사들이 과거부터 포진해 있어 운영 방식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자리를 계속 나눠줄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1.

“징용 배상금 받으면 20% 내라” 지원단체, 피해자와 11년전 약정


미쓰비시중공업 피해 5명과 체결
약정 근거로 판결금 요구 가능성

 

<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2023.05.23.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시민 단체가 징용 피해자들과 ‘일본 기업들에서 어떤 형태로든 돈을 받을 경우, 20%는 단체에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11년 전에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피해자 유족이 최근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수용해 판결금을 2억원 안팎 수령한 가운데, 해당 단체가 이 약정을 근거로 금액 지급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이하 시민모임)’과 미쓰비시중공업(나고야) 징용 피해자 5명은 2012년 10월 23일 약정을 맺었다. 피해자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하기 하루 전이었다. A4 용지 2장짜리 약정서를 보면 “이 사건과 관련해 손해배상금·위자료·합의금 등 그 명칭을 불문하고 피고로부터 실제 지급받은 돈 중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 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모임에 교부한다”고 돼 있다.

이와 함께 미쓰비시가 법원 판결에 따라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아닌 수임인들이 우선 돈을 받아 20%를 지원 단체에 지급하도록 했다. 

 

“위임인들(피해자)은 수임인들이 피고로부터 직접 손해배상금을 지급받으면 정한 금액을 시민 모임에 직접 지급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돼 있다. 민변 출신으로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인인 이상갑 변호사가 수임인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피해자들은 약정서에 도장 또는 지장(指章)을 찍어 동의를 표시했다.

피해자들과 약정을 맺은 시민 모임은 2009년 3월 만들어져 강제징용 문제 공론화, 피해자 후원과 소송 지원 같은 활동을 해왔다. 2021년 이 단체를 계승한 비영리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출범했다. 

 

이사장인 이국언씨는 오마이뉴스 광주·전남 주재 기자 출신으로 시민 모임 사무국장을 지냈다. 정부 해법에 반대하는 일부 피해자를 대신해 최근까지도 집회와 기자회견 등을 진행해 왔다.

지원 단체와 피해자들이 약정한 시점은 2012년 10월이다. 그해 5월 대법원이 “신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이 징용 피해자 9명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일제 식민 지배로 피해를 본 한국인이 일본 기업에 승소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으로, 이후 각 지역에서 소송 제기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했다. 약정서에 서명한 피해자들은 1992년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기각된 상태였다. 피해자들은 약정 체결 다음 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원고 일부 승소를 확정했다.

지원 단체가 교부를 약정하며 내세운 명목은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관련 공익 사업 등이다. “지급받은 돈을 정한 대로 사용하고, 위임인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매년 1회 그 구체적 사용 내역을 위임인들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상갑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금전적 배상을 받으면 여러 지원 단체 공익 변호사들의 활동 결과로 얻게 되는 건데 다른 공익 변론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라며 “돈을 나누자는 취지가 아니다. 당사자들에게 다 설명했고 다들 흔쾌히 동의하셨다”고 했다. 이국언 이사장도 “약정서에 쓰여 있는 취지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다만, 이때 약정한 피해자 5명 중 3명이 세상을 떴다. 이런 가운데 유족 일부가 3월에 발표한 정부 해법에 찬성해 지난달 일제강제징용피해자지원재단에서 판결금 약 2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이 때문에 지원 단체가 약정서를 근거로 판결금 교부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 해법에는 반대하면서 판결금 중 일부를 요구할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또 정부안에 반대해 내용증명까지 보낸 생존자 1명이 마음을 바꿀 것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지원 단체가 수용 의사를 철회하라는 취지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단체는 “이 싸움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저희가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다만 이에 대해 지원 단체는 “피해 당사자들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놔두지 않으려는 논의가 있었을 뿐”이라며 반박했다.

 

 

 

 

2. “징용 배상금 20% 떼 달라”, ‘과거사 브로커’ 이들뿐인가

 

< 조선일보,  2023.05.24.  >

일제 징용 피해자 지원 단체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 등의 20%를 내게 하는 약정을 제시해 체결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은 2012년 미쓰비시 중공업 피해자 5명과 어떤 형태로든 돈을 받으면 20%는 단체에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맺었다고 한다. 

 

피해자가 아닌 수임인들이 먼저 돈을 받고 그다음 약속한 돈을 이 단체에 지급하도록 했다. 원천징수와 같은 것이다. 

 

지난 3월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따라 피해자가 판결금을 받자 실제로 이 약정을 이행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은 돈을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기념 사업 등에 사용한다고 했으나 애초에 이렇게 강제로 할 일이 아니다.

자칭 시민 단체들이 그동안 숱한 논란을 일으켜왔지만, 이렇게 대놓고 ‘과거사 브로커’ 같은 행태를 벌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겉으로는 연로한 피해자들을 돕는 척하면서 뒤로는 잇속을 챙기고 있었다. 지식 없고 힘 없는 피해자들은 이들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민 단체라는 탈을 쓴 사람들이 젊은 시절 징용으로 고초를 겪은 피해자들에게 돈을 모아서 돕지는 못할망정, 이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다니 양심이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단체는 2009년 만들어진 후 징용 문제를 공론화하고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해 왔다. 상대가 있는 문제인데도 어떤 절충안도 거부했다. 내세운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는 한일 간 과거사 해결을 방해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단체를 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돌본다고 하면서 후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미향 의원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한일 과거사 해결을 가로막고 그 뒤에선 돈을 챙겨왔다는 혐의를 받는다.

이 단체는 문제의 약정을 통해서 피해자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강경 대응하도록 부추겼을 가능성이 있다. 이 단체는 최근 피해자 한 명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할 것으로 알려지자, 이를 만류하는 취지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들의 진짜 목적은 한일 간 과거사 해결을 막는 것 아닌가. 문재인 전 정부와 이들 단체는 그동안 징용, 위안부 문제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해왔는데 정말로 피해자를 위한다면 이들이 자유 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한일 간 문제엔 일본의 진심 부족도 있지만 피해자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실제로는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이런 단체들의 존재도 악영향을 미쳐 왔다. 그런 이면이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

 

 

 

 

3.

“징용 판결금 중 5126만원 달라” 지원단체, 내용증명 보냈다

 


강제징용 피해자 돕는다던 단체
유족들이 판결금 2억가량 받자
11년 전 약정 근거로 20% 요구
원 단위까지 적힌 ‘보수액’ 제시

 

 

<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2023.05.24.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시민 단체가 피해자와 11년 전 맺은 약정을 근거로 판결금의 20%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해당 단체는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반대해왔지만, 일부 피해자 유족이 최근 이를 수용해 2억원이 넘는 판결금을 수령하자 약정서를 근거로 돈을 내라는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유족들은 최근에서야 ‘어떤 형태로든 돈을 받을 경우 20%를 단체에 지급한다’는 약정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감사인 김모 변호사는 이달 1일 판결금을 수령한 한 피해자 유족들에게 ‘약정금 지급 요청 공문’을 보내 “수령한 2억5631만3458원 중 20%인 5126만2692원을 시민 모임에 보수로 지급하셔야 한다”며 “많은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 출신으로 단체의 전신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를 지냈다.

지원 단체가 지급을 요구하며 근거로 내세운 건 2012년 10월 미쓰비시중공업 징용 피해자 5명과 맺은 약정이다. 당시 약정서를 보면 “이 사건과 관련해 손해배상금·위자료·합의금 등 그 명칭을 불문하고 피고(일본 기업)로부터 실제 지급받은 돈 중 20%를 모임에 교부한다”고 돼 있다. 

 

약정서 원본과 함께 1인당 지급해야 할 구체적인 금액이 원 단위까지 기재된 ‘상속인별 지급 보수액’ 서류를 첨부하며 “선생님들은 금원(金員) 수령 권한과 더불어 어르신이 약정한 내용을 이행할 의무도 상속하셨다” “약정에 따라 지급하셔야 한다”고 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등은 이를 근거로 유족들과 접촉해 재단이 10년 넘게 피해자를 지원한 점 등을 설명하며 약정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정을 체결한 피해자 5명 중 3명이 세상을 떴는데, 3명 중 2명의 유족들이 정부 해법에 찬성해 지난달 중순 2억원이 넘는 판결금을 수령했다. 외교 소식통은 “일부 유족은 피해자가 생전에 체결한 약정서의 존재를 수령 후에야 안내를 받아 지급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원 단체는 유족들이 판결금을 수령한 직후 유족들에게 연락을 취해 금액 일부를 요구했는데,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약 2주 만에 내용증명을 보내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유족 일각에선 정부 해법을 비판하고 판결금 수령을 만류하던 지원 단체가 지급이 이뤄지자 금액 일부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원 단체는 우리 정부가 일본 피고 기업을 대신해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꾼 망국 해법”이라 비판해왔고, 일각에선 “법적으로 무효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국언 이사장은 지난 3월 정부 해법에 생존자 3명이 반대한다는 내용증명을 행정안전부 산하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전달하며 “일제 전범 기업을 지원하는 재단으로 거꾸로 일하고 있는데 간판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또 올해 초 외교부가 징용 해법으로 ‘제3자 변제’를 공식 발제한 국회 공개 토론회 이후에는 “정부가 인권침해 사건을 단순히 돈 지급 문제로 전락시켰다”며 “보상은 부차적인 문제고 사죄가 먼저”라고 했다. 그런데 판결금 지급이 이뤄지자 유족들과 접촉해 ‘계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원 단체는 23일 피고로부터 지급받은 돈의 20%를 기부할 것을 명문화한 약정에 대해 “사회적 참사 등 공익 소송에서 일반적으로 있어왔던 일”이라며 “원고들이 인권 단체, 활동가 도움을 받아 수령한 금액 중 일부를 다른 공익 사업 기금에 출연하는 건 오히려 더 많은 선례로 남도록 권장되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개인적 이익을 취한 윤미향 의원의 경우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며 “강제징용 피해 어르신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보상금을 빼앗아 간다면, 이것이 조폭들의 보호비와 무엇이 다르겠느냐”고 했다.

 

 

 

 

4.

세월호 특조위원장 출신 변호사, 징용피해 유족에 성공 보수 요구
정부 3자 변제 해법 비판해놓고 판결금 지급되자 “10% 달라”
유족들은 “약정 전혀 몰랐다”… 생존 피해자 1명도 판결금 수령

 

 

<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2023.05.26.  >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에 찬성해 판결금을 지급받은 신일본제철의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이 지난달 소송 대리인으로부터 판결금 10%의 ‘성공 보수’를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에서 성공 보수를 약정하는 경우가 다수 있지만, 유족들은 최근에야 고인이 된 피해자가 이런 계약을 맺은 사실을 인지해 보수 지급에 반대하고 있다.

2018년 10월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 4명 중 일부가 정부 해법에 찬성해 지난달 약 2억원의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받았다. 이후 소송 대리인이 돈을 받은 유족들에게 접촉해 과거 피해 당사자와 보수를 약정한 사실을 언급하며 판결금의 10% 지급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피해자 지원 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미쓰비시중공업(나고야)의 피해자 5명과 11년 전 맺은 약정을 근거로 판결금의 20%를 요구해 논란이 됐다.

유족에게 전화한 장모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과거사위원장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4월에는 대법원 앞에서 열린 정부 해법 비판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 유족은 “증빙 서류나 내용증명 발송도 없이 판결금 일부 지급을 말하며 만남을 요구했”며 “유족들은 전혀 몰랐던 일”이라고 했다. 재판은 2005년 2월 피해자들이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시작해 대법원이 승소를 확정하기까지 13년이 걸렸는데, 피해자는 2014년 별세했다. 본지는 이와 관련한 설명을 듣기 위해 장 변호사에게 전화와 문자로 연락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25일 정부 해법을 거부하던 생존 피해자 1명이 입장을 바꿔 판결금 수령을 위한 법적 절차를 완료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생존 피해자 1명이 정부 해법을 수용해 26일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고 했다. 3명의 생존 피해자 중 판결금을 받는 첫 번째 사례가 된다. 이로써 제3자 변제 대상자 15명 중 11명이 정부 해법에 찬성해 “생존 피해자들이 모두 반대한다”는 야당과 시민단체 주장이 힘을 잃게 될 전망이다.

 

 

5.

[기자수첩] 외교부가 피해자 방문땐 ‘행패’라더니… ‘돈 달라’ 찾아간 시민단체

 

 

<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2023.05.26.  >

 


지난주 외교부 간부가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에 반대해 판결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징용 피해자 양금덕·이춘식씨의 자택을 찾았다. 만남이 불발되자 “허락해주시면 찾아뵙고 설명을 올리겠다”는 내용의 메모와 홍삼 선물을 1층 경비실에 맡겼다. 피해자들을 돕는 시민 단체가 여기에 발끈했다. “사전에 면담을 거절했는데도 무례를 범했다”는 것이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은 “대낮에 불쑥 고령의 피해자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것은 무슨 행패냐”며 “몰상식한 행위”라고 했다.

“치졸한 짓을 멈추라”던 이 이사장이 최근 2억원이 조금 넘는 판결금을 수령한 한 징용 피해자 유족에게 전화하고, 자택까지 찾아가 5000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11년 전 피해자와 맺은 약정에 따라 판결금의 20%를 달라고 독촉한 것이다. 약정의 존재를 몰랐던 유족들이 반발하자 원 단위까지 금액이 기재된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한다. 유족이 “정부 해법에 반대하며 돈을 받지 말라고 주장할 땐 언제고...”라며 시민 단체 측에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외교부의 피해자 면담 시도에 대해 “중요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일에 대리인, 지원 단체, 가족이 배석해야 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라고도 했다. 자신들을 ‘패싱’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족들은 11년 전 이 단체가 피해자들과 약정을 체결할 때는 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냐고 묻고 있다. 한 유족은 “약정서 원본을 받고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았다”며 “90줄에 접어든 노인들을 불러 지장(指章)까지 찍는데 자식들은 까맣게 몰랐다”고 했다.

이 단체가 재판 초기부터 관여하며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준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 표현대로 ‘치졸하고 몰상식한’ 방식으로 피해자들이 원치 않는 만남을 독촉하고 ‘계산’을 요구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과거사를 이용한 비즈니스’라는 비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이 단체는 여론이 악화하자 “유족들이 고인의 유지를 따를 것인지 여부는 그들이 결정할 일”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1.

참여연대 출신 변호사 “文때 고관대작 배출하면 열렬한 환송회”
“권력과 연대...한동훈 장관 ‘번호표 지적’은 너무나 정확”

 

<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2023.05.15.  >

 


참여연대 회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윤 정부의 퇴행과 폭주를 멈추라고 주장하며 주요 책임자 8명 교체를 촉구했다. 

 


참여연대에서 7년여간 활동했던 변호사가 권력을 좇는 참여연대의 행태를 정면 비판했다. ‘권력에 연대한 기관’이란 비판에 대해서도 “과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2012년부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의 실행위원으로 활동했던 박상수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율)는 15일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참여연대와의 인연을 끊었다”고 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그가 실행위원이 됐을 당시 18대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 실행위원회에는 내로라하는 진보 쪽 인사들이 가득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위원회 회의에는 대선 직전 매주 새로운 이들이 참여했고, 열댓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 후 “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고 박 변호사는 기억했다. 그는 그때가 자신이 겪은 참여연대의 최대 위기 순간이었으며 4~5명만이 남아 실행위원회를 이끌어갔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그러다 촛불 집회가 시작되던 시점부터 다시 참여연대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참여연대 인사들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7년 이후로는 정부 요직을 꿰차는 이들도 많아졌다. 박 변호사는 “처음에는 최소한 공식적인 환송회를 열지는 않았다”며 “나중에는 고관대작이 되는 이들을 위해 늘 열렬한 환송회가 펼쳐졌다”고 했다.

2019년 참여연대 내부에서 다툼이 벌어졌다고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불거진 의혹을 두고 ‘시민단체로서 할 말은 하자’는 쪽과 반대파가 나뉘었고, 결국 조 전 장관을 비판하자던 김경율 회계사 등이 참여연대를 그만두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박 변호사도 관련 단체 채팅방 등에서 나왔고 “참여연대와 이어지던 마음의 끈을 완전히 끊어버렸다”고 했다. 이어 “그때라도 참여연대가 할 말은 했다면 민주당도 조 전 장관에게 그렇게 집착하진 않았을 거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때가 참…”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한 장관이 말한 ‘번호표’ 얘기가 너무나 정확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서 한 장관은 자신을 ‘퇴출 1순위 공직자’로 꼽은 참여연대를 향해 12일 입장문을 내고 “5년 내내 정권 요직에 들어갈 번호표 뽑고 순서 기다리다가, 정권 바뀌어 번호표 끊기자마자 다시 심판인 척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또 “참여연대가 저를 ‘정치 검사’라고 했는데, 제가 20여 년 간 했던 수사 중 단 하나라도 그런 게 있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이와 관련 “한때 윤석열과 한동훈은 참여연대가 찬양하던 ‘참 검사’들이었다”며 “죄가 나오면 누구든 수사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고 했다. 그는 “그 ‘누구든’이 자신들이 되자, 이제는 검찰 독재의 상징이자 신(新)적폐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때 참 검사 소리를 듣던 한 장관이 조 전 장관을 수사했단 이유로 그토록 비난을 받을 때, 뻔히 보이는 불법에도 눈을 감던 참여연대의 모습을 보고 느꼈을 감정을 생각하면 과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완벽한 정권이란 없기에 시민단체의 존재 의미는 분명히 있다”며 “건강한 비판을 했던 이들은 조국 사태 때 많이 나갔고, 이제는 ‘참여연대’라고 해야 할지 ‘민주정책연구소’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의 감시기구로서 객관적 자세를 유지해야 할 시민단체가 정치 권력에 기대는 게 바람직하진 않다”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참여연대에 열심히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했다.

 

 

 

2.

7년 일했는데…참여연대, 내부 비판 인사에 “공식 임명된 적 없다”

 

 

< 조선일보, 최혜승 기자,  2023.05.15.  >

 


권력을 좇는다는 비판을 받은 참여연대가 과거 내부 인사의 폭로가 이어지자 “해당 인물은 공식 임명된 적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7년간 활동한 인사를 단체와 관련이 없다는 취지로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입장에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도 “수년간 회의에 열심히 참석한 사람에게 무슨 개 풀 뜯는 소리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에서 실행위원으로 활동했던 박상수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율)는 15일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시민단체가 정치 권력에 기대는 게 바람직하진 않다”며 그간 목격한 모습들을 전했다. 박 변호사는 2012년부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의 실행위원으로 활동하다 2019년 ‘조국사태’로 내부 다툼이 벌어지면서 단체와 인연을 끊은 인물이다.

그는 “18대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 실행위원회에는 내로라하는 진보 쪽 인사들이 가득했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위원회 회의에는 대선 직전 매주 새로운 이들이 참여했고, 열댓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 후 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고 했다.

이어 “촛불집회가 시작되던 시점부터 다시 참여연대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이후 참여연대 인사들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7년 이후로는 정부 요직을 꿰차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최소한 공식적인 환송회를 열지는 않았다”며 “나중에는 고관대작이 되는 이들을 위해 늘 열렬한 환송회가 펼쳐졌다”고 했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기사에 언급된 변호사는 실행위원으로 공식 임명된 바 없다”고 했다. 이어 “해당 변호사는 2013년쯤 ‘한시적으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회 회의에 참가해 자문을 제공했다”며 “2016년 실행위원으로 추천됐으나 이해충돌 문제로 최종 임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고관대작이 되는 인사를 위해 환송회가 열렸다’는 발언에는 “변호사의 일방적인 주장이며 공식적인 환송회를 연 적 없다”고 했다.

참여연대의 선 긋기에 박 변호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기가막힌다”며 2018년 5월 17일 참여연대에서 일하면서 받은 메일 내역 공개했다. 해당 메일의 수신인은 ‘시민경제위원회’라고 적혀 있다. 시민경제위원회는 경제금융센터의 개편 전 이름이다.

박 변호사는 “저 메일은 실행위원들에게 간다”며 “실행위원으로 후원금 냈던 내역과 세금 신고 내역도 공개해야 하느냐”고 했다. 그는 “참여연대는 실행위원에게 활동비를 주지 않으며 .100% 무급 봉사인데 심지어 후원금까지 낸다”며 “난 실행위원이다 보니 후원금을 냈고 이를 세금처리한 내역도 있다. 홈택스 가서 기부금 내역 출력하면 다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어 “환송회가 공식적이었다고 이야기 한 적 없으며, 참여연대 내부에서도 이처럼 공직으로 다수 진출하는 것에 우려를 하는 활동가들이 많았다고 이야기한 것”이라며 “나를 부정하는 참여연대의 이런 보도자료까지 보니. 나의 7년이 너무도 아깝다”고 했다.

참여연대에서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20여년간 활동했던 김 회계사도 단체의 입장문을 캡처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이건 좀 많이 나간 거 아닌가?”라고 했다. 김 회계사는 이어 ”수년간 회의에 열심히 참석하고 일해 온 변호사에게 공식 임명된 바는 없다? ‘한시적’이란 말은 또 무슨 개 풀 뜯는 소리냐”라고 했다.

가짜뉴스·적폐 몰이에 현명관이 겪은 ‘지옥 5년’


현명관 전 회장의 아내가 ‘최순실 3인방’이라는
가짜 뉴스를 시작으로 검찰 조사와 4개 기관 감사
10여 차례 고소·고발 이어져…
모두 무혐의 처분났지만 당사자들은 ‘지옥’을 경험했다

 

< 조선일보, 조형래 부국장 겸 에디터(경제담당),  2023.05.09.  >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의 자서전 ‘위대한 거래’를 읽었다. 1990년대 초 고(故)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한 당시, 그가 비서실장을 지냈기에 삼성과 관련한 재밌는 비화(祕話)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눈길을 끈 것은 박근혜 정부 때 마사회장을 지낸 탓에 적폐로 몰려 엄청난 시련을 겪은 대목이었다. 2016년 10월 최순실 사건이 그의 딸인 정유라의 승마 불법 지원으로 비화하자,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사이자 마사회장인 현 전 회장도 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그를 나락으로 몰아간 것은 가짜 뉴스였다. 그해 11월 더불어민주당의 김현권 전 의원은 국회 본회의 현안 질의에서 현 전 회장의 아내(전영해)를 ‘최순실의 핵심 3인방’으로 지목했다. 현 전 회장이 극구 부인했지만 김 전 의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가짜 뉴스를 확산시켰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 전 회장은 허위사실 유포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2018년 11월 ‘김 전 의원의 발언을 허위로 볼 수밖에 없다’며 현 전 회장에게 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2년 동안 현 전 회장과 가족들은 만신창이가 됐다. “현 전 회장이 최순실과 수시로 통화하는 사이” “전영해는 최순실 핵심 3인방” 같은 기사가 수십, 수백 건씩 쏟아져 나오면서 그와 그의 아내는 졸지에 박근혜 정부를 망친 사람으로 심지어 주변에서까지 손가락질을 당했고 그의 아내는 공황장애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현 전 회장은 언론을 향해 뜨끔한 지적도 했다. 그는 “거짓으로 상대방을 욕보이고 죽이고 농락하라.(책임을 피하려면) 모든 말의 끝에 ‘의혹’ 또는 ‘수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이면 끝이다. 그러면 언론은 기사 제목에 ‘의혹’이라는 단어를 빼버리고 이를 기정 사실로 만든다”고 썼다. 검찰은 당시 11시간이나 현 전 회장을 조사하고, 그의 스마트폰을 제출받아 디지털 포렌식까지 했지만 “최순실과 일면식도 없다”는 그의 말대로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그를 향한 고소·고발이 줄을 이었다. 그는 마사회 자체 감사 3회,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 농식품부 감사 2회, 감사원 감사 2회를 받았고 무려 10여 건의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마사회 직원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부하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한 간부도 지병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그 난리를 치고도 단 한 건의 혐의점도 찾지 못했다.

책 내용이 믿기지 않을 정도여서 그를 만났다.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로 책을 마무리한 것과 곤욕을 치를 게 뻔한데도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책을 출간한 이유도 궁금했다. 

 

 “작년 11월 검찰 조사가 최종 종결됐으니 5년 내내 시달린 것”이라면서도 “내가 당당한데 뭐가 무섭겠냐”고 답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가짜 뉴스로 누구든 죽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막는 게 정치인의 의무이며, 가짜 뉴스 유포는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느닷없이 기업인들이 날벼락을 맞은 경우가 유독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친구인 강남훈 전 홈앤쇼핑 사장도 그런 케이스다. 그가 잘못한 것을 굳이 꼽으라면 검찰에서 물러난 이인규 변호사를 홈앤쇼핑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강 전 사장도 각종 고소·고발에 시달렸고 결국 채용 비리로 8개월 실형 선고까지 받았다. 그는 2021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회사에서는 이미 불명예 퇴진을 했고 암까지 걸려 건강이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잔혹함에 많은 사람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적폐로 몰아 쫓아내고 그 사람의 배우자나 친구까지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온갖 가짜 뉴스도 동원했다. 그랬으면서도 기관장 자리를 붙들고 버티는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보면 기가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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