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거리 : 35Km
이동시간 : 17시간 30분
1박 숙박지 : 세석대피소
등반로 :
- 1일차 : 성삼재(03:00) - 노루목 - 반야봉 - 삼도봉 - 연하천 - 벽소령 - 세석대피소(16:15 도착, 1박)
- 2일차 : 세석대피소(03:00) - 장터목(04:55) - 악천후로 1시간 대기 후 하산 결정 - 백무동 하산 완료(09:15)
주요 내용 :
(1) 가을비 맞으면서 걸어 본 지리산 능선길
- 출발하기 직전의 일기예보는 흐림이었으나 실제 지리산 능선의 날씨는 부슬비가 오락가락 하였고 안개 구간도 지나야 했다. 장거리 산행 시에 산악 날씨는 기상대 예보보다 훨씬 더 열악하게 생각해야 함을 깨달았다.
- 우비를 꺼내 입고 산행을 시작한다. 기온이 춥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컴컴한 시간을 지나 6시 무렵 반야봉에 올랐다. 비도 오고 있고 주능선에서 1km 벗어난 곳이라 한 사람도 없는 새벽산행이다. 내심 일출을 기대하고 왔으나 기다리는 것은 박명이라.
-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구상나무가 고사되어 가고 있다. 기후 변화 탓이라고 하나 어찌되던지 인류가 결국 극복해나가야 할 과제를 목격하고 있다.
- 이후 고즈넉한 가을비 맞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내가 바라던 광경이었다. 참 좋았다. 비 안개도 있었지만 아래 사진은 경치 좋은 순간에만 담아 보았다.
- 드디어 세석 대피소에 도착하여 자리를 배정받았다. 코로나로 문을 닫았다가 금년 여름에 재개하였는데 지금은 연휴를 맞아 더 개방하여 오늘 숙박인원이 100명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여러모로 불편한 시간이나 비오는 산길에 제공받은 숙소에 감사한 마음 뿐이다.
(2) 새벽 3시의 촛대봉, 이보다 더 심한 위기의 순간은 없었다
- 새벽 세시에 출발 준비를 마쳤다. 바깥 날씨는 비가 오고 있어 대피소 등산객 중 아무도 길을 나서기는 커녕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 나는 전날 반야봉에서 일출을 못본지라 일기예보를 희망적으로 해석하여 천왕봉에서의 일출을 내심 기대하고 출발하였다.
- 출발할 때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능선 정상으로 갈수록 점점 심해져 갔고 세석을 떠난 지 1Km되는 지점 촛대봉에 이를렀을 때 시야도 안보이고 바람소리만 요란하고 사방 길 분간이 안 되어 옛사람 그말 그대로의 상태이었다.
조선말 정기(鄭琦, 1879~1950)의 『유방장산기(遊方丈山記)』에 지리산 촉대봉(燭臺峰)이 나오는데,
"운무를 헤치고 천왕봉을 향하는데 겨우 촉대봉(燭臺峰)에 이르렀다. 북풍에 비바람이 불고 운무가 날려
지척도 분간할 수 없었다."
- 신문에 나오는 조난의 순간이 이런 순간이나 했다. 당황한 기분보다는 대략 난감했다. 그나마 촛대봉 부근에 경계목들을 더듬으며 한참 왔다 갔다 하다가 되돌아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간 곳에서 표지목을 발견하였다. 잠깐 동안 출발지로 돌아갈까 싶은 생각도 났지만, 결국 가야 하고 누가 대신 가주지도 않는 등산길이라 진행 방향쪽으로 가기로 하고 그냥 직진하였다.
- 세석-장터목 구간이 3.4Km인데 이후 2Km이상을 싸락눈비, 요란한 산능선 바람소리를 들어가며 걸어가는 요란한 산행이 계속되었다. 주 능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면서 가는데 산길에서 만나는 철계단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길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가고 있다는 확인증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세 개의 철계단을 건넜다.
핸드폰 카메라이어서 우중 야간 사진은 정말 별로인데 그나마 사진을 찍어볼 여유도 생겨서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컴컴해서 사용할 수 없어 버렸다. 대신, 대략 어제 칠선봉에서 찍은 느낌이어 그 사진으로 느낌을 간직하기로 한다. 새벽 우중 산행에서 만난 표지목들은 정말 반갑다.

(3) 처음으로 지리산 가고도 천왕봉에 가지 않고 하산
- 04:55분 장터목 휴게소 취사장으로 들어 가서 버너를 켜서 물을 데우고 누룽지를 끓여 요기를 마쳤다. 6시 가까이 되어도 싸락눈비는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앞이 안보일 정도가 계속 되고 있었다.
- 취사장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새벽에 아래에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기다렸다가 천왕봉 다녀올 태세로 천천히 기다리고 있었다.
- 눈비 무릅쓰고 천왕봉 가야할 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는데 세석에서 오던 길의 눈비에 시달리던 생각에 천왕봉 가고 싶은 생각이 도저히 나지 않는다. 6시 가까이 되어도 계속 일기는 나아지지 않아 이제 결정했다. 최근 10년 사이 열 번 이상 와 본 지리산이었지만 이날만은 천왕봉에 안가기로 하였다. 이제 나이가 든 걸 실감한다. 이제는 정상이라하더라도 일출은 커녕 눈보라만 기다리는 야간 산행에 의미가 없는 모양이다.
- 그냥 산은 산일 뿐이다. 하산하기로 결심한 순간 바로 백무동으로 향했는데 여기 가는 초입에도 요란하였다. 똑같은 눈비라도 내려가는 길이라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 망바위까지 가서야 밧줄기가 약해지고 날이 밝아 왔다. 백무동입구까지 오는 길 내내 비는 계속 내렸다.
- 09:15분 하산 완료 - 백무동 느티나무 산장 앞에 있는 느티나무이다.
(後說) 촛대봉 이후 지나갔던 그날 새벽 산길이 지금도 생생히 생각나서, 날씨 좋은 날의 모습을 가져다 본다. 촛대봉에서 보는 연하선경 풍광이 사방으로 탁 트여 정말 좋다. 그렇지만 비바람 몰아치는 날 밤에는 그런 모습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던 신기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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