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史馬遷(사마천)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伍子胥者(오자서자) : 오자서는
楚人也(초인야) : 초나라 사람인데,
名員(명원) : 이름은 원이다.
員父曰伍奢(원부왈오사) : 원의 아버지는 오사이고,
員兄曰伍尙(원형왈오상) : 원의 형은 오상이다.
其先曰伍擧(기선왈오거) : 그의 조상은 오거인데,
以直諫事楚莊王(이직간사초장왕) : 초나라 장왕을 섬기며 바른 말을 잘 한 인물로
有顯(유현) :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故其後世有名於楚(고기후세유명어초) : 그래서 그의 후손들도 초나라에서 유명해졌다


楚平王有太子名曰建(초평왕유태자명왈건) : 초나라 평왕에게 건이라는 태자가 있었다.
使伍奢爲太傅(사오사위태부) : 평왕은 오사를 태자의 태부로 삼고
費無忌爲少傅(비무기위소부) : 비무기를 소부로 삼았는데,
無忌不忠於太子建(무기불충어태자건) : 비무기는 태자에게 충성스럽지 않았다.
平王使無忌爲太子取婦於秦(평왕사무기위태자취부어진) :
평왕은 무기로 하여금 태자를 위하여 진나라에서 여인을 취하게 하였다
秦女好(진여호) : 진나라 여자는 아름다웠다
無忌馳歸報平王曰(무기치귀보평왕왈) : 무기는 달려가 평왕에게 알리기를
秦女絶美(진여절미) : “진나라 여인은 절세 미인입니다
王可自取(왕가자취) : 왕께서 취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而更爲太子取婦(이갱위태자취부) : 그러나 다시 태자가 여인를 취하게 했다
平王遂自取秦女而絶愛幸之(평왕수자취진여이절애행지) :
평왕이 마침내 스스로 진나라 여인을 취하고 심히 사랑하여 그녀에게 다녔다가
生子軫(생자진) : 아들 진을 낳았다
更爲太子取婦(갱위태자취부) : 다시 태자를 위하여 여인을 취하게 했다
無忌旣以秦女自媚於平王(무기기이진여자미어평왕) :
비무기가 이미 진나라 여인으로 평왕에게 아첨하여
因去太子而事平王(인거태자이사평왕) : 태자를 떠나 평왕을 섬겼다
恐一旦平王卒而太子立殺己(공일단평왕졸이태자입살기) :
비무기는 어느 날 갑자기 평왕이 죽고 태자가 임금이 된다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웠다.
乃因讒太子建(내인참태자건) :
그래서 태자 건을 헐뜯기 시작했다. 비무기는 밤낮으로 태자의 단점을 평왕에게 들쑤셨다.
建母(건모) : 건의 어머니는
蔡女也(채여야) : 채나라 여자였다
無寵於平王(무총어평왕) : 평왕에게 총애를 받지 못했다
平王稍益疏建(평왕초익소건) : 평왕이 조금씩 더욱 건의 어머니와 소원해졌다
使建守城父(사건수성부) : 건으로 하여금 성부 태수로 임명하여
備邊兵(비변병) : 변방의 병란에 대비하게 했다
頃之(경지) : 얼마가 지난 뒤
無忌又日夜言太子短於王曰(무기우일야언태자단어왕왈) :
비무기는 또 밤낮으로 태자의 단점을 왕에게 말하기를
太子以秦女之故(태자이진여지고) : “태자는 진나라 여자의 일로
不能無怨望(불능무원망) : 원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願王少自備也(원왕소자비야) : 원컨대 왕께서는 젊어서 스스로 대비해야 합니다.
自太子居城父(자태자거성부) : 태가가 성부에 살면서부터
將兵(장병) : 군사를 거느렸습니다
外交諸侯(외교제후) : 밖으로 제후와 교제하면서
且欲入爲亂矣(차욕입위란의) : 장차 나라로 들어와 난을 일으키려고 합니다.”고 했다
平王乃召其太傅伍奢考問之(평왕내소기태부오사고문지) :
평왕은 태자의 태부인 오사를 불러다 사실을 캐물었다.
伍奢知無忌讒太子於平王(오사지무기참태자어평왕) :
오사는 비무기가 평왕에게 태자를 헐뜯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因曰(인왈) : 그래서 이르기를
王獨柰何以讒賊小臣(왕독내하이참적소신) :
"임금님께선 어찌하여 참소로써 남을 해치는 소인배의 말만 믿으시어,
疏骨肉之親乎(소골육지친호) : 친자식을 멀리 하십니까?"라고 간했다.
無忌曰(무기왈) : 비무기가 이르기를
王今不制(왕금불제) : "임금님께서 지금 당장 태자를 제압하지 못해
其事成矣(기사성의) : 반란이 일어나는 날이면,
王且見禽(왕차견금) : 임금님께서도 마침내 포로가 되실 것입니다."
於是平王怒(어시평왕노) : 이 말을 듣고 평왕은 노하여,
囚伍奢(수오사) : 오사를 감옥에 가두었다.
而使城父司馬奮揚往殺太子(이사성부사마분양왕살태자) :
그리고 성보의 사마(司馬)인 분양(奮揚)에게 태자를 잡아 죽이라고 명령했다.
行未至(행미지) : 분양은 성보에 채 못 미친 곳에서
奮揚使人先告太子(분양사인선고태자) : 태자에게 사람을 미리 보내어 태자에게 고했다.
太子急去(태자급거) : "태자께선 급히 떠나십시오.
不然將誅(불연장주) : 그렇지 않으면 잡혀 죽게 됩니다."고 하였다
太子建亡奔宋(태자건망분송) : 그래서 태자 건은 송나라로 달아났다.
無忌言於平王曰(무기언어평왕왈) : 비무기가 평왕에게 말하기를
伍奢有二子(오사유이자) : "오사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皆賢(개현) : 둘 다 현명합니다.
不誅且爲楚憂(불주차위초우) : 지금 죽이지 않는다면 초나라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可以其父質而召之(가이기부질이소지) :
그들의 아비를 인질로 삼고서 불러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不然且爲楚患(불연차위초환) : 그렇지 않으면 초나라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王使使謂伍奢曰(왕사사위오사왈) : 평왕이 오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能致汝二子則生(능치여이자칙생) : "너의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네가 살겠지만,
不能則死(불능칙사) : 불러들이지 못하면 죽게 될 것이다."
伍奢曰(오사왈) : 오사가 이르기를
尙爲人仁(상위인인) : "상(尙)은 사람됨이 어질어서,
呼必來(호필래) : 부르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員爲人剛戾忍訽(원위인강려인구) :
원(員)은 고집이 세어 남의 말에 대들기 잘하고 욕을 참고 견디는 성격이라서,
能成大事(능성대사) : 커다란 일을 이룰 것입니다.
彼見來之幷禽(피견래지병금) :
그 애는 오기만 하면 아비와 함께 잡히게 되리라는 걸 내다보고 있을 테니까,
其勢必不來(기세필불래) : 그 성격에 반드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王不聽(왕불청) : 평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使人召二子曰(사인소이자왈) : 사람을 보내 두 아들을 불러들이게 하고 이르기를
來吾生汝父(래오생여부) : "너희들이 오면 내가 너희 아비를 살려주고,
不來(불래) : 오지 않으면
今殺奢也(금살사야) : 당장 너의 아비 오사를 죽이겠다."
伍尙欲往(오상욕왕) : 오상이 가려 하자,
員曰(원왈) : 오원이 이르기를
楚之召我兄弟(초지소아형제) : "초나라에서 우리 형제를 부르는 까닭은
非欲以生我父也(비욕이생아부야) :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恐有脫者後生患(공유탈자후생환) : 우리들이 달아나면 후환이 생길까 두려워서,
故以父爲質(고이부위질) : 그래서 아버지를 인질로 잡아두고
詐召二子(사소이자) : 우리 둘을 거짓으로 부른 것입니다.
二子到(이자도) : 우리들이 도착하면
則父子俱死(칙부자구사) : 부자가 모두 죽게 됩니다.
何益父之死(하익부지사) :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생사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往而令讎不得報耳(왕이령수불득보이) :
이번에 갔다가는 아버지의 원수도 갚지 못하게 될 뿐입니다.
不如奔他國(불여분타국) :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가,
借力以雪父之恥(차력이설부지치) :
힘을 빌어서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씻어내는 것보다도 못합니다.
俱滅(구멸) : 우리들이 모두 죽으면
無爲也(무위야) : 아무 일도 안됩니다."
伍尙曰(오상왈) : 그러나 오상은 이르기를
我知往終不能全父命(아지왕종불능전부명) :
"내가 간다고 아버지의 목숨을 건질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안다.
然恨父召我以求生而不往(연한부소아이구생이불왕) :
그러나 아버지가 우리를 불러 목숨을 구하려 하는데도 가지 않고,
後不能雪恥(후불능설치) : 그렇다고 훗날에 원수도 갚을 수 없게 되면,
終爲天下笑耳(종위천하소이) : 결국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따름이다." 하더니,
謂員(위원) : 이어 원에게 말하였다.
可去矣(가거의) : "너는 달아나거라.
汝能報殺父之讎(여능보살부지수) : 그래서 아버지 죽인 원수를 갚아다오.
我將歸死(아장귀사) : 나는 이제 가서 죽겠다."
尙旣就執(상기취집) : 오상이 이미 제 발로 걸어가 잡힌 다음에,
使者捕伍胥(사자포오서) : 사자가 오원까지 잡으려했으나
伍胥貫弓執矢嚮使者(오서관궁집시향사자) :
그러나 오원이 활시위를 당겨 사자에게 활을 겨누었으므로,
使者不敢進(사자불감진) : 사자가 감히 다가오지를 못했다.
伍胥遂亡(오서수망) : 오원은 마침내 달아났다.
聞太子建之在宋(문태자건지재송) : 태자 건이 송나라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往從之(왕종지) : 거기로 가서 그를 따랐다.
奢聞子胥之亡也曰 (사문자서지망야왈) : 오사가 자서가 도망한 것을 듣고 이르기를
楚國君臣且苦兵矣(초국군신차고병의) : “초나라 군신은 장차 병사를 고생시킬 것이다.”
伍尙至楚(오상지초) :오상이 초나라에 이르자
楚幷殺奢與尙也(초병살사여상야) : 초나라에서 오사와 오상을 모두 죽였다
伍胥旣至宋(오서기지송) : 오서가 이미 송나라에 이르자
宋有華氏之亂(송유화씨지란) : 송나라에는 화씨의 난이 일어났다
乃與太子建俱奔於鄭(내여태자건구분어정) : 이에 태자 건과 함께 정나라로 달아났다
鄭人甚善之(정인심선지) : 정나라 사람들이 심히 그들을 잘 대접해주었다
太子建又適晉(태자건우적진) :
태자 건은 정나라가 작은 나라로서 임이 되지 못한다 하여 진나라로 떠났다
晉頃公曰(진경공왈) : 그러자 진경공이 이르기를
太子旣善鄭(태자기선정) : “태자는 정나라와 친한 사이여서
鄭信太子(정신태자) : 정나라는 태자를 신뢰하고 있소
太子能爲我內應(태자능위아내응) : 그러니 태자가 우리 진나라를 위해 내응해 주고
而我攻其外(이아공기외) : 우리 진나라가 밖에서 공격을 하면
滅鄭必矣(멸정필의) : 정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요
滅鄭而封太子(멸정이봉태자) : 정나라를 없앤 다음 태자를 그곳에다 봉하겠소”하였다
太子乃還鄭(태자내환정) : 그리하여 태자는 정나라로 되돌아 왔다
事未會(사미회) : 그러나 좋은 기회가 채 오기도 전에
會自私欲殺其從者(회자사욕살기종자) : 마침 어떤 일로 종자를 죽이려 했다
從者知其謀(종자지기모) : 그러자 태자의 음모를 알았던 종자는
乃告之於鄭(내고지어정) : 정나라에 그 일을 고발해 버렸으므로
鄭定公與子産誅殺太子建(정정공여자산주살태자건) :
정정공은 재상인 자산에게 명해 태자 건을 주살시키고 말았다
建有子名勝(건유자명승) : 건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승이었다
伍胥懼(오서구) : 오자서는 두려워하여
乃與勝俱奔吳(내여승구분오) : 곧 승과 함께 오나라로 달아났다
到昭關(도소관) : 그러나 국경인 소관에 이르러
昭關欲執之(소관욕집지) : 관문을 지키는 관리가 잡으려 하므로
伍胥遂與勝獨身步走(오서수여승독신보주) : 오자서는 하는 수 없이 승과 헤어져 혼자 도망 쳤다
幾不得脫(기불득탈) : 오자서는 거의 벗어날 수 없었는데
追者在後(추자재후) : 추격자가 뒤에 있었다
至江(지강) : 강수에 이르니
江上有一漁父乘船(강상유일어부승선) : 강위에는 때마침 배를 띄우던 한 어부가 있었다
知伍胥之急(지오서지급) : 어부는 오자서의 위급함을 알고
乃渡伍胥(내도오서) : 곧 오자서를 건네 주었다
伍胥旣渡(오서기도) : 오자서가 이미 강을 건너 위급을 면하자
解其劍曰(해기검왈) : 차고 있던 칼을 끌려서 말하기를
此劍直百金(차검직백금) : “이 칼은 백 금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으니
以與父(이여부) : 어부에게 사례로 주겠습니다.” 
父曰(부왈) : 어부가 이르기를
楚國之法(초국지법) : “초나라의 법에는
得伍胥者賜粟五萬石(득오서자사속오만석) : 오자서를 잡는 사람에게는 속 5만 섬과
爵執珪(작집규) : 집규의 벼슬을 준다.”고 하나
豈徒百金劍邪(개도백금검사) : 어찌 그런 백 금의 칼이 문제이겠소.”하며
不受(불수) : 받지 않았다
伍胥未至吳而疾(오서미지오이질) : 오자서는 오나라에 이르지 못했는데 병에 시달리고
止中道(지중도) : 도중에 쉬면서
乞食(걸식) : 걸식을 하며
至於吳(지어오) : 오나라에 이르렀다
吳王僚方用事(오왕료방용사) : 당시 오왕 요가 다스리고 있었고
公子光爲將(공자광위장) : 공자 광이 장군으로 있었다
伍胥乃因公子光以求見吳王(오서내인공자광이구견오왕) :
오자서는 공자 광을 통해 왕을 알현하였다
久之(구지) : 그 뒤 오래 지나서
楚平王以其邊邑鍾離(초평왕이기변읍종리) : 초나라 평왕이 그 국경에 있는 종리라는 고을과
與吳邊邑卑梁氏俱蠶(여오변읍비량씨구잠) :
오나라 국경에 있는 비량씨란 고을은 함께 누에를 쳤는데
兩女子爭桑相攻(양녀자쟁상상공) : 양쪽 여자들이 뽕을 다투어 서로 공격을 했고
乃大怒(내대노) : 그로 인하여 초나라 평왕이 크게 분노했다
至於兩國擧兵相伐(지어양국거병상벌) : 마침내 두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서로 싸움에 이르렀다
吳使公子光伐楚(오사공자광벌초) : 오나라는 공자 광을 시켜 초나라를 치게 했다
拔其鍾離居巢而歸(발기종리거소이귀) :
공자 광은 초나라의 종리와 거소를 함락시킨 다음 돌아왔다
伍子胥說吳王僚曰(오자서설오왕료왈) : 이 무렵 오자서가 왕인 료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楚可破也(초가파야) : “초나라와 싸워 이길 수 있으니
願復遣公子光(원복견공자광) : 다시 공자 광을 보내도록 하십시오.”하자
公子光謂吳王曰(공자광위오왕왈) : 공자 광은 오왕에게 말하기를
彼伍胥父兄爲戮於楚(피오서부형위륙어초) :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에 살육당해서
而勸王伐楚者(이권왕벌초자) : 왕을 권유해서 초나라를 치려는 것은
欲以自報其讎耳(욕이자보기수이) : 그렇게 하여 그의 원수를 스스로 갚으려고 할 뿐입니다.
伐楚未可破也(벌초미가파야) : 초나라를 치더라도 아직 이긴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했다
伍胥知公子光有內志(오서지공자광유내지) :
오자서는 그 말을 듣고 비로서 공자 광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欲殺王而自立(욕살왕이자입) : 광은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未可說以外事(미가설이외사) : 지금은 외부 문제로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乃進專諸於公子光(내진전제어공자광) : 전저라는 인물을 공자 광에게 천거하고
退而與太子建之子勝耕於野(퇴이여태자건지자승경어야) :
그 자신은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인 승과 함께 들판에서 농사를 지으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五年而楚平王卒(오년이초평왕졸) : 5년이 지나 평왕이 죽었다
初平王所奪太子建秦女生子軫(초평왕소탈태자건진녀생자진) :
평왕이 빼앗은 태자 건의 진나라 여자가 낳은 진이
急平王卒(급평왕졸) : 갑자기 평왕이 죽자
軫竟立爲後(진경입위후) : 진이 곧 그 뒤를 이었으니
是爲昭王(시위소왕) : 이가 곧 소왕이다
吳王僚因楚喪(오왕료인초상) : 오왕 료는 초나라의 국상을 틈타
使二公子將兵往襲楚(사이공자장병왕습초) : 두 공자를 시켜 초나라를 기습 공격하게 했다
楚發兵絶吳兵之後(초발병절오병지후) :
그러나 초나라는 즉각 응전해올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오나라 군대의 퇴로를 차단하고
不得歸(불득귀) : 돌아오지 못했다
吳國內空(오국내공) : 한편 오나라의 국내가 텅 비자
而公子光(이공자광) : 공자 광은
乃令專諸襲刺吳王僚(내령전제습자오왕료) : 전저를 시켜 오왕 료를 찔러 죽이고
而自立(이자입) :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是爲吳王闔廬(시위오왕합려) : 이 사람이 바로 오왕 합려이다

闔廬旣立(합려기입) : 합려는 왕이 되어
得志(득지) : 뜻을 얻었다
乃召伍員以爲行人(내소오원이위행인) : 바로 오자서를 불러들여 행인에 임명하고
而與謀國事(이여모국사) : 함께 나라 일을 꾀했다
楚誅其大臣郤宛伯州犁(초주기대신극완백주리) :
때마침 초나라에서는 대신 극완과 백주리가 주살되고
伯州犁之孫伯嚭亡奔吳(백주리지손백비망분오) :
백주리의 손자인 백비가 오나라로 망명해 왔으므로
吳亦以嚭爲大夫(오역이비위대부) : 오왕 합려는 그를 대부에 임명했다
前王僚所遣二公子將兵伐楚者(전왕료소견이공자장병벌초자) :
앞서 오왕 료의 명령에 따라 초나라로 쳐들어갔다가
道絶不得歸(도절불득귀) : 퇴로가 끊기어 돌아올 수 없었던
後聞闔廬弑王僚自立(후문합려시왕료자입) :
두 공자는 그 뒤 합려가 료를 죽이고 임금이 되었다는 말을 듣자
遂以其兵降楚(수이기병강초) : 마침내 군사를 거느린 채 초나라에 항복했고
楚封之於舒(초봉지어서) : 초나라는 그들을 서란 곳에 봉했다
闔廬立三年(합려입삼년) : 합려는 즉위한 지 3년에
乃興師與伍胥伯嚭伐楚(내흥사여오서백비벌초) : 군사를 일으켜 오자서·백비와 함께 초나를 쳐서
拔舒(발서) : 서를 함락시키고
遂禽故吳反二將軍(수금고오반이장군) : 초나라에 투항했던 두 장군을 사로잡았다
因欲至郢(인욕지영) : 나아가 그 여세로 초나라 서울 영까지 쳐들어가려 했으나
將軍孫武曰(장군손무왈) : 장군 손무가 말하기를
民勞(민로) : “백성들의 고달픔이 너무도 커서
未可(미가) : 아직 가능하지 않습니다
且待之(차대지) : 좀더 기다림십시오.”라고 했으므로
乃歸(내귀) : 돌아왔다

四年(사년) : 4년
吳伐楚(오벌초) : 오나라는 초나라를 쳐서
取六與灊(취육여첨) : 6과첨을 빼앗았고
五年(오년) : 5년에는
伐越(벌월) : 월나라를 쳐서
敗之(패지) : 패배시켰다
六年(육년) : 6년
楚昭王使公子囊瓦將兵伐吳(초소왕사공자낭와장병벌오) :
이번에는 초나라에서 소왕의 명을 받은 공자 낭와가 군사를 거느리고 오나라를 침공해 왔으므로
吳使伍員迎擊(오사오원영격) : 합려는 오자서에게 이를 맞아 싸우게 했다
大破楚軍於豫章(대파초군어예장) : 오자서는 초나라 군사를 예초에서 크게 이기고
取楚之居巢(취초지거소) : 나아가 초나라 거소를 점령했다
九年(구년) : 9년
吳王闔廬謂子胥孫武曰(오왕합려위자서손무왈) :
드디어 오왕 합려는 오자서와 손무를 불러 이르기를
始子言郢未可入(시자언영미가입) :
“앞서 경들은 아직 초나라 서울을 쳐들어갈 시기가 아니라고 했는데
今果何如(금과하여) : 지금은 과연 어떻소.”하니
二子對曰(이자대왈) : 두 사람이 말하기를
楚將囊瓦貪(초장낭와탐) : “초나라 장군 양와는 탐욕스러워서
而唐蔡皆怨之(이당채개원지) : 초의 속국인 당과 채 두 나라의 원한을 사고 있습니다
王必欲大伐之(왕필욕대벌지) : 왕께서 대규모로 초나라를 치실 생각이면 ”
必先得唐蔡乃可(필선득당채내가) :
먼저 당나라와 채나라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십시오 그러면 가능합니다.
闔廬聽之(합려청지) : 합려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悉興師與唐蔡伐楚(실흥사여당채벌초) :
국내의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당·채와 협력하고 초나라로 쳐들어가
與楚夾漢水而陳(여초협한수이진) : 초나라 군사와 한수를 끼고 마주 진을 쳤다
吳王之弟夫槪將兵請從(오왕지제부개장병청종) : 이때 오왕의 동생 부개가 선봉을 서려 했으나
王不聽(왕불청) : 왕이 들어주지 않았다
遂以其屬五千人擊楚將子常(수이기속오천인격초장자상) :
그런데도 대개는 자기가 거느린 군사 5천 명을 이끌고 초나라 장수 자상을 공격했다
子常敗走(자상패주) : 자상은 패하여
奔鄭(분정) : 정나라로 도망쳤다
於是吳乘勝而前(어시오승승이전) : 이에 오나라라는 승세를 몰아 진격을 시작
五戰(오전) : 다섯 번 싸운 끝에
遂至郢(수지영) : 마침내 영을 공격했다
己卯(기묘) : 을묘일에
楚昭王出奔(초소왕출분) : 초소왕은 도망을 치고
庚辰(경진) : 그 이튼날 경진일에
吳王入郢(오왕입영) : 오왕이 영에 입성했다

昭王出亡(소왕출망) : 소왕은 영을 탈출하자
入雲夢(입운몽) : 운몽으로 갔는데
盜擊王(도격왕) : 도둑이 왕을 습격하여
王走鄖(왕주운) : 왕은 운이란 소국으로 달아났다
鄖公弟懷曰(운공제회왈) : 이때 원공의 동생 회가 이르기를
平王殺我父(평왕살아부) : “초 평왕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
我殺其子(아살기자) : 내가 그 아들을 죽임이
不亦可乎(불역가호) : 또한 가하지 않은가?” 하니
鄖公恐其弟殺王(운공공기제살왕) : 원공은 자기 아우가 소왕을 죽일까 겁이 나서
與王奔隨(여왕분수) : 소왕과 함께 수라는 소국으로 달아났다
吳兵圍隨(오병위수) : 그러자 소왕을 추격하던 오나라 군사는 수를 포위한 다음
謂隨人曰(위수인왈) : 수나라 사람에게 이르기를
周之子孫在漢川者(주지자손재한천자) : “주나라 자손으로 한천에 있던 나라들을
楚盡滅之(초진멸지) : 초나라가 모두 멸망시켰다.”
隨人欲殺王(수인욕살왕) : 그래서 수나라 사람이 소왕을 죽이려 하자
王子綦匿王(왕자기익왕) : 왕자 기는 왕을 숨겨 둔 채
己自爲王以當之(기자위왕이당지) : 자기가 대신 죽으려 했다
隨人卜與王於吳(수인복여왕어오) :
하지만 때마침 수나라 사람은 소왕을 오나라로 넘겨주는 문제에 대하여 점을 쳐 본 결과
不吉(불길) : 점패가 불길하게 나왔기 때문에
乃謝吳不與王(내사오불여왕) : 오나라의 청을 거절하고 소왕을 넘겨 주지 않았다
始伍員與申包胥爲交(시오원여신포서위교) : 오자서는 전에 초나라 대부 신포서와 친했었다
員之亡也(원지망야) : 그래서 오자서는 일찍이 망명길에 오를 때
謂包胥曰(위포서왈) : 신포서에게 자기 결심을 말하기를
我必覆楚(아필복초) : “나는 기어코 초나라를 뒤엎고 말 테다.”라고 했다

包胥曰(포서왈) : 그러자 포서는 대답하기를
我必存之(아필존지) :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지키고 말겠다.”하였다
及吳兵入郢(급오병입영) : 그런데 오나라 군사가 영을 공격하였을 때
伍子胥求昭王(오자서구소왕) : 오자서는 소왕을 잡으려 했으나
旣不得(기불득) : 뜻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乃掘楚平王墓(내굴초평왕묘) : 대신 평왕의 무덤을 파헤쳤다
出其尸(출기시) : 그리고 시체를 꺼내어
鞭之三百(편지삼백) : 3백 번이나 매질을 하고
然後已(연후이) : 그런 뒤에야 그쳤다
申包胥亡於山中(신포서망어산중) : 이때 산주으로 피난을 갔던 신포서는
使人謂子胥曰(사인위자서왈) : 자서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子之報讎(자지보수) : “당신의 복수는
其以甚乎(기이심호) : 너무 심하지 않은가?
吾聞之(오문지) : 내가 들으니
人衆者勝天(인중자승천) : ‘사람의 수가 많으면 한때는 하늘을 이길수 있지만
天定亦能破人(천정역능파인) : 하늘이 한번 결정을 내리면 또 능히 사람을 깨뜨린다.’고 했소
今子故平王之臣(금자고평왕지신) : 당신은 원래 평왕의 신하로서
親北面而事之(친북면이사지) : 몸소 그를 섬겼는데
今至於僇死人(금지어륙사인) : 지금 그 평왕의 시체를 욕보였으니
此豈其無天道之極乎(차개기무천도지극호) : 이보다 더 천리에 어긋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소.”
伍子胥曰(오자서왈) : 오자서는 그 사자에게 이르기를
爲我謝申包胥(위아사신포서) : “부디 나를 위해 신포서에게 잘 전해라
吾日暮途遠(오일모도원) : ‘해는 지고 길은 멀기 때문에
吾故倒行而逆施之(오고도행이역시지) :
갈팡질팡 걸어가며 앞뒤를 분간할 겨를이 없었다.’”하였다
於是申包胥走秦告急(어시신포서주진고급) :
신포서는 진나라로 달려가 초나라의 위급함을 말하고
求救於秦(구구어진) : 진나라에 구원을 청했으나
秦不許(진불허) : 진나라에서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包胥立於秦(포서입어진) : 그러자 신포서는 진나라 대궐 앞 뜰에서
晝夜哭(주야곡) : 밤낮을 울었다

七日七夜不絶其聲(칠일칠야불절기성) : 이레 낮 이레 밤이나 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자
秦哀公憐之曰(진애공련지왈) : 진애공은 그를 딱하게 여겨 이르기를
楚雖無道(초수무도) : “초나라가 무도하기는 했지만
有臣若是(유신약시) : 이런 신하가 있는데
可無存乎(가무존호) : 망하게 할 수야 있겠는가?”하고
乃遣車五百乘救楚擊吳(내견차오백승구초격오) :
전차 5백 승을 보내 초나라를 도와 오나라를 쳤다
六月(육월) : 6월 敗吳兵於稷(패오병어직) : 진나라 군사는 오나라 군사와 직에서 싸워 이겼다
會吳王久留楚求昭王(회오왕구류초구소왕) :
한편 오왕 합려는 오랫동안 초나라에서 머무르면서 소왕을 찾았는데
而闔廬弟夫槪乃亡歸(이합려제부개내망귀) :
그 동안에 그 아우 부개가 싸움터에서 먼저 도망쳐 귀국하더니
自立爲王(자입위왕) : 스스로 왕이 되었다
闔廬聞之(합려문지) : 합려는 그 소식을 듣자
乃釋楚而歸(내석초이귀) : 즉시 초나라를 버리고 귀국해
擊其弟夫槪(격기제부개) : 자기 동생인 부개를 쳤다
夫槪敗走(부개패주) : 부개는 싸움에 패하고 쫓기어
遂奔楚(수분초) : 초나라로 달아났다
楚昭王見吳有內亂(초소왕견오유내란) : 오나라에 내란이 일어남으로써
乃復入郢(내복입영) : 초소왕은 그 틈을 타서 다시 영으로 돌아왔다
封夫槪於堂谿(봉부개어당계) : 그리고 부개를 당곡에 봉하고
爲堂谿氏(위당계씨) : 당곡씨로 삼았다
楚復與吳戰(초복여오전) : 초나라는 다시 오나라와 싸워
敗吳(패오) : 오나라를 패배시켰다
吳王乃歸(오왕내귀) : 왕은 곧 돌아오고 말았다

後二歲(후이세) : 그로부터 2년 뒤
闔廬使太子夫差將兵伐楚(합려사태자부차장병벌초) :
합려는 태자 부차에게 군사를 거느리로 초나라를 치게 하여
取番(취번) : 파를 점령했다
楚懼吳復大來(초구오복대래) : 초나라는 오나라가 다시 크게 쳐들어올까 겁이 나서
乃去郢(내거영) : 도읍을 영을 떠나
徙於鄀(사어약) : 약으로 옮겼다
當是時(당시시) : 당시에
吳以伍子胥孫武之謀(오이오자서손무지모) : 오나라는 오자서·손무의 계책으로써
西破彊楚(서파강초) : 서쪽으로는 강한 초나라를 깨뜨리고
北威齊晉(북위제진) : 북쪽으로는 제와 진을 위협하고
南服越人(남복월인) : 남쪽으로는 월을 굴복시켰다

其後四年(기후사년) : 그로부터 4년 뒤에
孔子相魯(공자상로) : 공자가 노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後五年(후오년) : 그 후 5년
伐越(벌월) : 오나라가 월나라를 쳤으나
越王句踐迎擊(월왕구천영격) :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 군사를 맞아싸워
敗吳於姑蘇(패오어고소) : 월왕 구천은 고소에서 오나라 군사를 패배 시켰다
傷闔廬指(상합려지) : 합려의 손가락에 상처를 입혔다
軍卻(군각) : 오나라 군사는 퇴각했으나
闔廬病創將死(합려병창장사) : 합려가 상처로 장차 죽으려 함에
謂太子夫差曰(위태자부차왈) : 태자 부차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爾忘句踐殺爾父乎(이망구천살이부호) :
“너는 구천이 아비를 죽인 것을 잊을 수 있겠는가?” 하니
夫差對曰(부차대왈) : 부차는 공손히 대답하기를
不敢忘(불감망) : “감히 잊지 못합니다.”했다
是夕(시석) : 그날 저녁
闔廬死(합려사) : 합려는 죽었다

夫差旣立爲王(부차기입위왕) : 부차는 왕이 되자
以伯嚭爲太宰(이백비위태재) : 백비를 태제로 임명하여
習戰射(습전사) : 싸우고 활쏘는 것을 연습시키고
二年後伐越(이년후벌월) : 2년 뒤에 월나라를 쳐서
敗越於夫湫(패월어부추) : 부초산에서 월나라를 패배시켰다.
越王句踐(월왕구천) : 월왕 구천은
乃以餘兵五千人棲於會稽之上(내이여병오천인서어회계지상) :
패잔병 5천 명을 거느리고 회계산 꼭대기에 머무르면서
使大夫種厚幣遺吳太宰嚭以請和(사대부종후폐유오태재비이청화) :
대부 종을 시켜 오나라 태제 백비에게 후한 선물을 보내고 강화를 청했다
求委國爲臣妾(구위국위신첩) :
이때 월나라는 나라를 바치는 동시에 신첩이 되겠다고 했으므로
吳王將許之(오왕장허지) : 오왕이 이를 허락하려 했으나
伍子胥諫曰(오자서간왈) : 오자서가 간하여 이르기를
越王爲人能辛苦(월왕위인능신고) : “월왕은 고통을 잘 견디는 사람입니다
今王不滅(금왕불멸) : 지금 왕께서 그를 없애버리지 않으면
後必悔之(후필회지) : 뒷날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吳王不聽(오왕불청) : 그러나 오왕은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用太宰嚭計(용태재비계) : 태제 백비의 계책에 따라
與越平(여월평) : 월나라와 강화했다
其後五年(기후오년) : 그로부터 5년 뒤
而吳王聞齊景公死(이오왕문제경공사) : 오왕은 제경공이 죽고
而大臣爭寵(이대신쟁총) : 대신들이 세력 다툼을 하며
新君弱(신군약) : 새 임금은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말을 듣자
乃興師北伐齊(내흥사북벌제) : 군사를 일으켜 북쪽으로 제나라를 치려 했다
伍子胥諫曰(오자서간왈) : 이때 오자서가 또 다시 간하여 이르기를
句踐食不重味(구천식불중미) : “구천은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弔死問疾(조사문질) : 백성들 중 죽은 사람을 조상하고 병든 자를 위문하여
且欲有所用之也(차욕유소용지야) : 뒷날 그들을 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此人不死(차인불사) : 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必爲吳患(필위오환) : 반드시 오나라의 걱정이 될 것입니다
今吳之有越(금오지유월) : 지금 오나라에 월나라가 있다는 것은
猶人之有腹心疾也(유인지유복심질야) : 흡사 사람의 뱃속에 병이 든 것과 같습니다
而王不先越而乃務齊(이왕불선월이내무제) :
그런데 왕께서 월나라를 먼저 처치하지 않으시고 제나라에 힘을 기울이려 하시니
不亦謬乎(불역류호) : 또한 잘못이 아니겠습니까?”했다
吳王不聽(오왕불청) : 그러나 오왕은 듣지 않았다.
伐齊(벌제) : 제나라를 쳐서
大敗齊師於艾陵(대패제사어애릉) : 제나라 군사를 애릉에서 대파한 다음
遂威鄒魯之君以歸(수위추로지군이귀) : 여세를 타 추나라와 노나라 임금을 위협하고 돌아왔다
益疏子胥之謀(익소자서지모) : 왕은 그 뒤로 점점 더 자서의 계책을 멀리했다

其後四年(기후사년) : 그로부터 4년 뒤에
吳王將北伐齊(오왕장북벌제) : 오왕은 또 북쪽으로 제나라를 치려 했다
越王句踐用子貢之謀(월왕구천용자공지모) : 이때 월왕 구천은 자항의 계책을 써서
乃率其衆以助吳(내솔기중이조오) : 군사를 거느리고 오나라를 도우며
而重寶以獻遺太宰嚭(이중보이헌유태재비) : 또 귀중한 보물을 태제 백비에게 바쳐 환심을 샀다
太宰嚭旣數受越賂(태재비기수수월뢰) : 백비는 벌써부터 자주 월나라의 뇌물을 받았으므로
其愛信越殊甚(기애신월수심) : 그가 월나라를 좋아하고 신임함이 더욱 심하여져
日夜爲言於吳王(일야위언어오왕) : 밤낮으로 오왕에게 월나라를 두둔했다
吳王信用嚭之計(오왕신용비지계) : 그래서 오왕은 백비의 계책을 믿었다
伍子胥諫曰(오자서간왈) : 이에 오자서는 말하기를
夫越(부월) : “무릇 월나라는
腹心之病(복심지병) : 오나라에 있어서 뱃속에 든 병과 같습니다
今信其浮辭詐僞而貪齊(금신기부사사위이탐제) :
지금 월나라의 아부에 찬 거짓말을 믿고 제나라를 탐내나
破齊(파제) : 제나라를 깨뜨리고
譬猶石田(비유석전) : 그 땅을 빼앗는다 해도 그것은 자갈밭과 같아서
無所用之(무소용지) :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且盤庚之誥曰(차반경지고왈) : 또 <반경>의 고에 말하기를
有顚越不恭(유전월불공) : ‘옳고 그른 것을 거꾸로 하고 조심하지 않은 사람은
劓殄滅之(의진멸지) : 가벼우면 코를 베는 형을 주고
俾無遺育(비무유육) : 무거우면 이를 죽여 살아 넘지 못하게 하여
無使易種于玆邑(무사역종우자읍) : 이 땅에 번식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했는데
此商之所以興(차상지소이흥) : 이것이 바로 상이 일어난 까닭입니다
願王釋齊而先越(원왕석제이선월) :
바라건대 왕께서는 제나라를 버려 두고 먼저 월나라를 처치하도록 하십시오
若不然(약불연) : 그렇지 못하면
後將悔之無及(후장회지무급) : 뒷날 후회를 하셔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간했으나
而吳王不聽(이오왕불청) : 오왕은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使子胥於齊(사자서어제) :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자서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子胥臨行(자서임행) : 자서는 떠나기에 임해
謂其子曰(위기자왈) : 그 아들에게 이르기를
吾數諫王(오수간왕) : “나는 자주 왕에게 간해 보았으나
王不用(왕불용) : 왕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吾今見吳之亡矣(오금견오지망의) : 나는 머지 않아 오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겠지만
汝與吳俱亡(여여오구망) : 너까지 오나라와 함께 죽는 것은
無益也(무익야) : 무익한 일이다.”고 하였다
乃屬其子於齊鮑牧(내속기자어제포목) :
그리하여 그 아들을 데리고 가서 제나라 포씨에게 부탁을 해두고
而還報吳(이환보오) : 돌아와 오왕에게 정세를 보고 했다
吳太宰嚭旣與子胥有隙(오태재비기여자서유극) :
오나라 태제 백비는 일찍부터 자서와 사이가 나빴으므로
因讒曰(인참왈) : 중상모략하기를
子胥爲人剛暴(자서위인강폭) : “자서란 사람은 강포하고
少恩(소은) : 인정이 없으며
猜賊(시적) : 시기하고 해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其怨望恐爲深禍也(기원망공위심화야) :
그는 왕께 대해서도 원망을 품었으니 장차 큰 화가 될까 두렵습니다
前日王欲伐齊(전일왕욕벌제) : 앞서 왕께서 제나라를 치려 하셨을 때
子胥以爲不可(자서이위불가) : 자서는 이를 불가하다고 했었습니다만

王卒伐之而有大功(왕졸벌지이유대공) : 왕께서는 끝내 이를 쳐서 큰 공를 세웠습니다
子胥恥其計謀不用(자서치기계모불용) :
이때 자서는 자기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며
乃反怨望(내반원망) : 도리어 원망을 품었습니다
而今王又復伐齊(이금왕우복벌제) : 지금 왕자께서 다시 제나라를 치려 하시는데
子胥專愎彊諫(자서전퍅강간) : 자서는 강력히 간언하여
沮毁用事(저훼용사) : 출병을 막으려 합니다
徒幸吳之敗以自勝其計謀耳(도행오지패이자승기계모이) :
그것은 단순히 오나라가 패해서 자기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今王自行(금왕자행) : 이제 왕께서 못소 출정하시고
悉國中武力以伐齊(실국중무력이벌제) : 국내의 모든 병격이 총동원되어 제나라를 칠 경우
而子胥諫不用(이자서간불용) : 자서는 자기 의견을 받아들여지지 않은데 대한 불만에서
因輟謝(인철사) : 함께 따라가기를 꺼려하며
詳病不行(상병불행) : 병을 핑계로 가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王不可不備(왕불가불비) : 왕께서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지
此起禍不難(차기화불난) : 이 때문에 재앙이 일어나면 어려울 것입니다
且嚭使人微伺之(차비사인미사지) : 그리고 제가 사람을 시켜 알아본 결과
其使於齊也(기사어제야) : 자서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乃屬其子於齊之鮑氏(내속기자어제지포씨) : 그 아들을 제나라 포씨에게 맡기고 왔다고 합니다
夫爲人臣(부위인신) : 이것으로 보아 자서는 신하된 몸으로서
內不得意(내불득의) : 안으로 뜻을 얻지 못한 관계로
外倚諸侯(외의제후) : 밖으로 제후들을 의지하려 하며
自以爲先王之謀臣(자이위선왕지모신) : 자신은 선왕의 모신이었는데
今不見用(금불견용) : 지금은 저버림을 당했다 하여
常鞅鞅怨望(상앙앙원망) : 언제나 앙심을 품는 형편입니다
願王早圖之(원왕조도지) : 원컨대 왕께서는 일찍이 도모해야 합니다.”고 했다

吳王曰(오왕왈) : 그러자 오왕도 이르기를
微子之言(미자지언) : “경이 말이 없었어도
吾亦疑之(오역의지) : 나 역시 의심 하였소.”하였다
乃使使賜伍子胥屬鏤之劍曰(내사사사오자서속루지검왈) :
그리하여 오자서에게 사람을 보내 촉루란 칼을 내리고 이르기를
子以此死(자이차사) : “그대는 이 칼로 죽어라.”
伍子胥仰天歎曰(오자서앙천탄왈) :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기를
嗟乎(차호) : “슬프다
讒臣嚭爲亂矣(참신비위란의) : 참신인 백비가 나라를 어지럽히려 하는데
王乃反誅我(왕내반주아) : 왕은 도리어 충신인 나를 죽이려 하다니
我令若父霸(아령약부패) : 나는 너의 아버지를 패자로 만들었고
自若未立時(자약미입시) : 또 네가 아직 태자가 되기 전
諸公子爭立(제공자쟁입) : 여러 왕자들이 태자가 되려고 경쟁을 할 때
我以死爭之於先王(아이사쟁지어선왕) : 죽음으로써 다투어 너를 정하게 했다
幾不得立(기불득입) : 그렇지 않았다면
若旣得立(약기득입) : 너는 태자가 될 수 없었다
欲分吳國予我(욕분오국여아) : 내가 태자에 올라 오나라를 내게 나누어 주려했어도
我顧不敢望也(아고불감망야) : 나는 감히 그것을 원하지 않았었다
然今若聽諛臣言以殺長者(연금약청유신언이살장자) :
그런데 지금 아첨하는 신하의 말만 듣고 어른을 죽이려 하는가?”라고 했다
乃告其舍人曰(내고기사인왈) : 그리고 그의 사인들에게 말하기를
必樹吾墓上以梓(필수오묘상이재) : “반드시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서
令可以爲器(령가이위기) : 그릇을 만들 수 있게 해라
而抉吾眼縣吳東門之上(이결오안현오동문지상) :
그리고 내 눈알을 뽑아내어 서울 동문 위에 걸어 두어라
以觀越寇之入滅吳也(이관월구지입멸오야) :
월군이 쳐들어와서 오나라를 없애버리는 것을 보리라.”고 했다
乃自剄死(내자경사) : 그리고 자서는 스스로 목을 쳐서 죽었다
吳王聞之大怒(오왕문지대노) : 오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乃取子胥尸盛以鴟夷革(내취자서시성이치이혁) :
자서의 시체를 끌어내다가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浮之江中(부지강중) : 강물에 띄워버렸다
吳人憐之(오인련지) : 오나라 사람들은 그를 불쌍히 여겨
爲立祠於江上(위입사어강상) : 강수 기슭에 자서를 위하는 사당을 세우고
因命曰胥山(인명왈서산) : 그 산 이름을 서산이라 불렀다

吳王旣誅伍子胥(오왕기주오자서) : 오왕은 자서를 죽이고 난 다음 마침내
遂伐齊(수벌제) : 제나라를 쳤다
齊鮑氏殺其君悼公(제포씨살기군도공) : 그때 제나라에선는 포씨가 임금인 도공을 죽이고
而立陽生(이입양생) : 양생을 임금으로 세웠다
吳王欲討其賊(오왕욕토기적) : 오왕은 역적을 무찌른다는 명분을 세웠으나
不勝而去(불승이거) : 이기지 못하고 떠났다
其後二年(기후이년) : 2년 후에
吳王召魯衛之君會之橐皐(오왕소로위지군회지탁고) :
오왕은 노나라와 위나라 두 나라 임금을 불러 탁고에서 회맹을 가졌다
其明年(기명년) : 이듬해에
因北大會諸侯於黃池(인북대회제후어황지) : 북쪽의 황지에서 제후들과 회맹하여
以令周室(이령주실) : 주실의 보호자인 것처럼 했다
越王句踐襲殺吳太子(월왕구천습살오태자) :
그러자 월왕 구천이 오나라 태자를 습격하여 죽이고
破吳兵(파오병) : 오나라 군대를 격파해 버렸다
吳王聞之(오왕문지) : 오나라 왕이 이를 듣고
乃歸(내귀) : 돌아왔다
使使厚幣與越平(사사후폐여월평) : 사신을 시켜 후한 선물을 보내고 월나라와 강화를 했다
後九年(후구년) : 그로부터 9년 뒤에
越王句踐遂滅吳(월왕구천수멸오) : 월나라 왕이 마침내 오나라를 멸하고
殺王夫差(살왕부차) : 왕 부차를 죽이고
而誅太宰嚭(이주태재비) : 태제 백비를 잡아 죽였다
以不忠於其君(이불충어기군) : 백비가 그 임금에게 충성하지 못하고
而外受重賂(이외수중뢰) : 다른 나라에서 지나친 뇌물을 받고
與己比周也(여기비주야) : 자신과 내통했기 때문이다
伍子胥初所與俱亡(오자서초소여구망) : 오자서와 전날 함께 도망했던
故楚太子建之子勝者(고초태자건지자승자) : 초나라 태자 건의 아들인 승은
在於吳(재어오) : 오나라에 살았다
吳王夫差之時(오왕부차지시) : 오왕 부차 때
楚惠王欲召勝歸楚(초혜왕욕소승귀초) : 초혜왕이 승을 초나라로 불러들이려 하자
葉公諫曰(엽공간왈) : 섭공이 간하여 이르기를
勝好勇而陰求死士(승호용이음구사사) : “승은 용맹을 좋아하여 남몰래 결사대를 구했습니다
殆有私乎(태유사호) :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惠王不聽(혜왕불청) : 그러나 혜왕은 듣지 않고
遂召勝(수소승) : 드디어 승을 불러들여
使居楚之邊邑鄢(사거초지변읍언) : 초나라 변경인 언에 머물러 살게 하고
號爲白公(호위백공) : 백공이라 불렀다
白公歸楚三年(백공귀초삼년) : 백공이 초나라로 돌아온 지 3년 되던 해에
而吳誅子胥(이오주자서) : 오나라가 자서를 죽였다

白公勝旣歸楚(백공승기귀초) : 백공은 초나라로 돌아온 뒤로부터는
怨鄭之殺其父(원정지살기부) : 정나라가 아버지를 죽인 것에 원한을 품고
乃陰養死士求報鄭(내음양사사구보정) : 결사대를 기르며 정나라에 원수 갚을 계획을 세웠다.
歸楚五年(귀초오년) : 초나라로 돌아온지 5년 되는 해
請伐鄭(청벌정) : 정나라를 칠 것을 청해
楚令尹子西許之(초령윤자서허지) : 초나라 영윤 자서의 허락을 받았다
兵未發而晉伐鄭(병미발이진벌정) : 그런데 아직 출병도 하기 전에 진나라가 정나라를 쳤으므로
鄭請救於楚(정청구어초) : 정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청해 왔다
楚使子西往救(초사자서왕구) : 초나라는 자서에게 명령하여 정나라를 구원하도록 시켰다
與盟而還(여맹이환) : 그리하여 자서가 정나라를 도와 진과 화평을 맺고 돌아왔으므로
白公勝怒曰(백공승노왈) : 백공 승은 성을 내며 말하기를
非鄭之仇(비정지구) : “이제는 정나라가 원수가 아니라
乃子西也(내자서야) : 자서가 원수이다.”하고
勝自礪劍(승자려검) : 승이 스스로 칼을 갈았다
人問曰(인문왈) : 그런데 누군가가 묻기를
何以爲(하이위) : “어떻게 하시려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勝曰(승왈) : 승이 이르기를
欲以殺子西(욕이살자서) : “자서를 죽일 작정이다.”라고 했다
子西聞之(자서문지) : 자서는 이 말을 전해 듣고
笑曰(소왈) : 웃으며 이르기를
勝如卵耳(승여란이) : “승은 아직 알일 뿐이다
何能爲也(하능위야) : 무엇을 할 수 있겠다는 것인가?”
其後四歲(기후사세) : 그로부터 4년 뒤
白公勝(백공승) : 백공 승은
與石乞襲殺楚令尹子西司馬子綦於朝(여석걸습살초령윤자서사마자기어조) :
석걸을 데리고 조정에 나가 영윤 자서와 사마 자기를 습격해 죽이고 말았다
石乞曰(석걸왈) : 그때 석걸이 이르기를
不殺王(불살왕) : “왕을 죽이지 않으면
不可(불가) : 불가합니다.”하므로
乃劫之王如高府(내겁지왕여고부) : 혜왕마저 죽이려 했으나 혜왕은 재빨리 고부로 피난했다
石乞從者屈固(석걸종자굴고) : 석걸의 종자 굴고에게
負楚惠王亡走昭夫人之宮(부초혜왕망주소부인지궁) : 엎혀 소부인의 궁으로 달아났다
葉公聞白公爲亂(엽공문백공위란) : 섭공이 백공의 반란 소식을 듣고
率其國人攻白公(솔기국인공백공) : 국민들을 이끌고 백공을 공격하였다
白公之徒敗(백공지도패) : 백공의 무리들이 패하자
亡走山中(망주산중) : 백공은 산속으로 달아나
自殺(자살) : 자결하고 말았다
而虜石乞(이로석걸) : 섭공은 석걸을 잡아다가
而問白公尸處(이문백공시처) : 백공의 시체가 있는 곳을 물었으나
不言將烹(불언장팽) : 끝내 말하지 않았으므로 섭공은 기름 가마에 삶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石乞曰(석걸왈) : 그런데도 석걸이 말하기를
事成爲卿(사성위경) : “일이 성공되면 경이 되고
不成而烹(불성이팽) : 실패하면 삶기는 것이
固其職也(고기직야) : 떳떳한 길이다.”하고 말할 뿐
終不肯告其尸處(종불긍고기시처) : 끝내 백공의 시체가 있는 곳을 말하지 않았다

遂烹石乞(수팽석걸) : 섭공은 드디어 석걸을 삶아 죽이고
而求惠王復立之(이구혜왕복입지) : 혜와을 찾아내어 다시 왕으로 세웠다

太史公曰(태사공왈) : 태사공은 말한다
怨毒之於人甚矣哉(원독지어인심의재) :
“원한의 해독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참으로 처참하지 않은가
王者尙不能行之於臣下(왕자상불능행지어신하) :
임금으로서도 그 신하에게 원한을 품게 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況同列乎(황동열호) : 하물며 동열의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向令伍子胥從奢俱死(향령오자서종사구사) :
처음 오자서가 아버지 자사를 따라 함께 죽고 말았다면
何異螻蟻(하이루의) : 어찌 땅강아지 개미와 다르겠는가
弃小義(기소의) : 작은 의를 버리고
雪大恥(설대치) : 원수를 갚아 큰 치욕을 씻음으로써
名垂於後世(명수어후세) : 그 이름을 후세에 남겼다
悲夫(비부) : 참으로 슬프다
方子胥窘於江上(방자서군어강상) :
자서가 초나라에 쫓기는 몸이 되어 강수 시슭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
道乞食(도걸식) : 거지 노릇까지 했었지만
志豈嘗須臾忘郢邪(지개상수유망영사) : 생각이야 잠시인들 초나라 서울을 잊을 수 있었겠는가
故隱忍就功名(고은인취공명) : 그러므로 참고 견디며 공명을 이룰 수 있었다
非烈丈夫孰能致此哉(비열장부숙능치차재) :
열렬한 장부가 아니고서야 누가 능히 이런 일을 해낼 수가 있었겠는가
白公如不自立爲君者(백공여불자입위군자) :
백공도 그 자신이 임금이 되려고만 하지 않았더라면
其功謀亦不可勝道者哉(기공모역불가승도자재) :
그의 성공이나 계책 등에 또한 말로 할 수 없을 것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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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사마천의 집안 내력과 사기를 쓸 때까지의 삶을 담고 있다. 사기의 맨 마지막 편이지만, 사기 각 편의 서술 의도 역시 담고 있어 사실은 사기 전체의 머리말이자 해제에 해당한다.  

 


太史公曰(태사공왈) : 태사공이 말한다
先人有言(선인유언) : “선친께서 말씀이 계셨는데
自周公卒(자주공졸) : ‘주공이 돌아가신 후
五百歲而有孔子(오백세이유공자) : 오백 년 만에 공자께서 태어나셨다
孔子卒後(공자졸후) : 공자께서 돌아가신 뒤
至於今五百歲(지어금오백세) : 지금까지 오백 년이 지나서
有能紹明世(유능소명세) : 다시 밝은 세상을 계승하고
正易傳(정역전) : <역전>을 바르게 해석하며
繼春秋(계춘추) : <춘추>를 계승하고
本詩書禮樂之際(본시서례락지제) :
<시경>·<서경>·<예기>·<악경>의 근본에 뜻을 두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意在斯乎(의재사호) : 아버님의 뜻이 여기 있었다
意在斯乎(의재사호) : 아버님의 뜻이 여기 있었다
小子何敢讓焉(소자하감양언) : 그런데 내가 어찌 감히 이 일을 사양하겠는가?”
上大夫壺遂曰(상대부호수왈) : 상대부 호수가 이르기를
昔孔子何爲而作春秋哉(석공자하위이작춘추재) :
“공자께서 <춘추>를 저술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
太史公曰(태사공왈) : 태사공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余聞董生曰(여문동생왈) : “나는 동중서가 이르기를
周道衰廢(주도쇠폐) : ‘주나라의 도가 쇠미하여지자
孔子爲魯司寇(공자위로사구) : 공자께서 노나라의 사구가 되셨다.
諸侯害之(제후해지) : 그러자 제후들이 그를 해치고
大夫壅之(대부옹지) : 대부들이 그를 방해했다
孔子知言之不用(공자지언지불용) : 공자께서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道之不行也(도지불행야) : 선왕의 도가 행하여지지 않을 것을 아시고
是非二百四十二年之中(시비이백사십이년지중) :
242년간의 노나라 역사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져
以爲天下儀表(이위천하의표) : 천하의 표준으로 삼으셨다
貶天子(폄천자) : 천자의 잘못을 비판하셨고
退諸侯(퇴제후) : 무도한 제후들을 물리치셨으며
討大夫(토대부) : 불손한 대부의 죄를 다스리셨고
以達王事而已矣(이달왕사이이의) : 왕도를 설명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子曰(자왈) : 공자께서도 이르기를
我欲載之空言(아욕재지공언) : ‘내가 추상적인 말로 서술하는 것보다
不如見之於行事之深切著明也(불여견지어행사지심절저명야) :
일어났던 일을 보여주어 분명하고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말씀하셨다
夫春秋上明三王之道(부춘추상명삼왕지도) : <춘추>는 위로 삼왕의 도를 밝히고
下辨人事之紀(하변인사지기) : 아래로는 사람들이 하는 일의 규범을 정했다
別嫌疑(별혐의) : 혐의를 분별하여
明是非(명시비) : 시비를 밝혔으며
定猶豫(정유예) : 의심스러워 결정치 못한 것을 딱 잘라 결정했다
善善․惡惡(善善․악악) : 악한 사람을 미워하고 선한 사람을 좋아했으며
賢賢․賤不肖(현현천불초) : 현명한 사람을 존중하고 못난 사람을 천시했다
存亡國(존망국) : 망한 나라의 이름을 보존하고
繼絶世(계절세) : 끊어진 세대를 계승했으며
補敝起廢(보폐기폐) : 잘못된 전통은 고치고 사라진 좋은 전통은 복원시켰다
王道之大者也(왕도지대자야) : 이것들은 모두 왕도의 중요한 부분이다
易著天地陰陽四時五行(역저천지음양사시오행) : <역경>은 천지·음양·사시·오행을 다루어
故長於變(고장어변) :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대해
禮經紀人倫(예경기인륜) : <예기>는 인륜에 관한 것을 다루어
故長於行(고장어행) : 어떻게 행동하는 가에 대하여 각각 훌륭하게 서술했다
書記先王之事(서기선왕지사) : <서경>은 선왕의 일을 기록해놓아
故長於政(고장어정) : 정치 방면에서 뛰어났고
詩記山川谿谷禽獸草木牝牡雌雄(시기산천계곡금수초목빈모자웅) :
<시경>은 산천·계곡·짐승·초목·동물과 조류의 암수를 기록하여
故長於風(고장어풍) : 풍속 방면에서 뛰어났고
樂樂所以立(락락소이립) : <악경>은 음악에 대해 논술해서
故長於和(고장어화) : 어떻게 조화롭게 하는가에 뛰어났고
春秋辯是非(춘추변시비) : <춘추>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故長於治人(고장어치인) : 어떻게 사람을 다스리는 가에 대해 뛰어났다
是故禮以節人(시고예이절인) : 이런고로 <예기>는 사람을 절제시키고
樂以發和(락이발화) : <악경>은 화목한 마음이 생기게 하며
書以道事(서이도사) : <서경>은 정사를 말하고
詩以達意(시이달의) : <시경>은 감정을 나타내며
易以道化(역이도화) : <역경>은 변화를 말하고
春秋以道義(춘추이도의) : <춘추>는 정의를 말한다
撥亂世反之正(발란세반지정) : 그래서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리는 데는
莫近於春秋(막근어춘추) : <춘추>보다 좋은 책이 없다
春秋文成數萬(춘추문성수만) : <춘추>는 수만 자로 되어 있고
其指數千(기지수천) : 그 요지도 수천 가지나 되며
萬物之散聚(만물지산취) : 만물의 처음과 시작이
皆在春秋(개재춘추) : 모두 <춘추>에 있다
春秋之中(춘추지중) : <춘추> 중에는 ,
弑君三十六(시군삼십육) : 임금을 죽인 자가 서른다섯 명
亡國五十二(망국오십이) : 나라를 망하게 한 자가 쉰 두 명이며
諸侯奔走不得保其社稷者(제후분주불득보기사직자) :
제후로서 도망하여 그 나라를 지키지 못한 자가
不可勝數(불가승수) :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있다
察其所以(찰기소이) : 그 원인을 살펴보면
皆失其本已(개실기본이) : 모두 근본을 잃었기 때문이다
故易曰(고역왈) : 그래서 <역경>에 이르기를
失之毫釐(실지호리) : ‘털끝만큼 틀려도
差以千里(차이천리) : 천리가 차이가 난다.’라고 했고
故曰(고왈) : 그러므로 이르기를
臣弑君(신시군) : ‘신하가 임금을 살해하고
子弑父(자시부) : 아들이 아비를 죽이는 것은
非一旦一夕之故也(비일단일석지고야) : 일조일석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其漸久矣(기점구의) : 오랫동안 누적되었다가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故有國者(고유국자) :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不可以不知春秋(불가이불지춘추) : <춘추>를 알지 못하여서는 안 된다
前有讒而弗見(전유참이불견) : 앞에 참소하는 자가 있어도 알지 못하고
後有賊而不知(후유적이불지) : 뒤에 역적이 있어도 알지 못한다
爲人臣者(위인신자) : 신하된 자도
不可以不知春秋(불가이불지춘추) : <춘추>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守經事而不知其宜(수경사이불지기의) :
<춘추>를 알지 못하면 일상적인 일 하나도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遭變事而不知其權(조변사이불지기권) :
뜻하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임기웅변으로 대처할 줄 모른다
爲人君父(위인군부) : 임금 되고 아비 된 자가
而不通於春秋之義者(이불통어춘추지의자) : <춘추>의 대의에 통달하지 못하면
必蒙首惡之名(필몽수악지명) : 반드시 가장 나쁜 악명을 받게 되고
爲人臣子(위인신자) :
而不通於春秋之義者(이불통어춘추지의자) :
신하와 자식 된 자가 <춘추>의 대의에 통달하지 못하면
必陷簒弑之誅(필함찬시지주) : 반드시 나라를 빼앗기고 임금을 시해했다는 죄에 빠져
死罪之名(사죄지명) : 그 죄의 명분으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其實皆以爲善(기실개이위선) : 그들은 선이라 여기고
爲之不知其義(위지불지기의) : 행하지만 대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被之空言而不敢辭(피지공언이불감사) : 터무니없는 말을 들어도 감히 반박하지 못한다
夫不通禮義之旨(부불통례의지지) : 예의의 요지를 통달하지 못하면
至於君不君(지어군불군) : 임금은 임금답지 못하고
臣不臣(신불신) :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며
父不父(부불부) : 아비는 아비답지 못하고
子不子(자불자) :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게 된다
夫君不君(부군불군) :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則犯(칙범) : 신하들이 거역하고
臣不臣(신불신) :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則誅(칙주) : 임금에게 죽임을 당하며
父不父(부불부) :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면
則無道(칙무도) : 무도하게 되고
子不子(자불자) :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면
則不孝(칙불효) : 불효하게 된다
此四行者(차사행자) : 이 네 가지 행위는
天下之大過也(천하지대과야) : 천하의 큰 잘못이다
以天下之大過予之(이천하지대과여지) : 천하의 큰 잘못이 그에게 돌아가는데도
則受而弗敢辭(칙수이불감사) : 이를 받고 감히 물리치지 못한다
故春秋者(고춘추자) : 그런고로 <춘추>는
禮義之大宗也(예의지대종야) : 예의의 근본이다
夫禮禁未然之前(부례금미연지전) : 예의는 잘못하는 것을 미연에 예방하는 것이고
法施已然之後(법시이연지후) : 법은 잘못한 연후에 시행하는 것이다
法之所爲用者易見(법지소위용자이견) : 법의 효과는 쉽게 나타나지만
而禮之所爲禁者難知(이례지소위금자난지) : 예의의 구속은 은미하여 알기 어렵다.”
壺遂曰(호수왈) : 호수가 묻기를
孔子之時(공자지시) : “공자님 시대에는
上無明君(상무명군) : 현명한 임금이 계시지 않아
下不得任用(하불득임용) : 공자께서 관리로 임용되지 못하셨습니다
故作春秋(고작춘추) : 그래서 <춘추>를 지어
垂空文以斷禮義(수공문이단례의) : 글로써 무엇이 예의인지를 결정하시어
當一王之法(당일왕지법) : 제왕의 범으로 삼게 하셨습니다
今夫子上遇明天子(금부자상우명천자) : 그러나 당신께서는 현명하신 천자를 만나시어
下得守職(하득수직) : 관직에 계십니다
萬事旣具(만사기구) : 만사가 다 잘 갖추어져 있고
咸各序其宜(함각서기의) : 모든 일이 법도대로 잘 되어 가는데
夫子所論(부자소론) : 당신께서 논하는 것은
欲以何明(욕이하명) : 무엇을 밝히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太史公曰(태사공왈) : 태사공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唯唯(유유) : “맞는 것은 맞지만
否否(부부) : 틀린 것은 틀리니
不然(불연) : 꼭 그런 것은 아니다
余聞之先人曰(여문지선인왈) : 나는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이르기를
伏羲至純厚(복희지순후) : ‘복희씨는 순박하고 인정이 많으신 분으로
作易八卦(작역팔괘) : <역경>의 팔괘를 만드셨다
堯舜之盛(요순지성) : 요·순의 전성기에 대해서는
尙書載之(상서재지) : <상서>에 기록되어 있고
禮樂作焉(예락작언) : 예·악도 이 시대에 크게 일어났다
湯武之隆(탕무지륭) : 탕왕과 무왕의 전성기에 대해서는
詩人歌之(시인가지) : 시인들이 노래했다
春秋采善貶惡(춘추채선폄악) : <춘추>는 선한 것을 취하고 악한 것을 물리쳤으며
推三代之德(추삼대지덕) : 삼대의 덕을 높이고
襃周室(포주실) : 주 왕조를 칭찬하였으니
非獨刺譏而已也(비독자기이이야) :
풍자하고 비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漢興以來(한흥이래) : 한 나라가 일어난 이래로
至明天子(지명천자) : 명철하신 천자에 이르러
獲符瑞(획부서) :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나
建封禪(건봉선) : 봉선을 거행하고
改正朔(개정삭) : 역법을 개정하였으며
易服色(역복색) : 의복의 색도 바꾸고
受命於穆淸(수명어목청) :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아
澤流罔極(택류망극) : 그 은혜가 끝없이 흘러넘치고 있다
海外殊俗(해외수속) : 해외 이민족들도
重譯款塞(중역관색) : 통역에 통역을 거쳐 변방 문을 두드리면서
請來獻見者(청래헌견자) : 공물을 바치고 황제를 알현하겠다는 사람이
不可勝道(불가승도) : 말할 수 없이 많다
臣下百官(신하백관) : 신하와 백관들이
力誦聖德(역송성덕) : 성덕을 열심히 노래하고 있지만
猶不能宣盡其意(유불능선진기의) : 그 뜻을 다 펴낼 수 없다
且士賢能而不用(차사현능이불용) : 선비들이 현명하고 능력 있는데도 등용되지 못하는 것은
有國者之恥(유국자지치) : 임금된 자의 수치이고
主上明聖而德不布聞(주상명성이덕불포문) :
임금께서 밝고 거룩한데도 그 덕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有司之過也(유사지과야) : 관리들의 잘못이다
且余嘗掌其官(차여상장기관) : 지금 내가 이런 일을 담당하는 관직에 있으면서
廢明聖盛德不載(폐명성성덕불재) : 황제의 밝은 성덕을 버려 기록하지 않고
滅功臣(멸공신) : 공신·
世家(세가) : 세가·
賢大夫之業不述(현대부지업불술) : 현대부의 공적을 기록하지 않으면
墮先人所言(타선인소언) : 이것은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을 저버리는 것이니
罪莫大焉(죄막대언) : 이보다 더 큰 죄가 없다
余所謂述故事(여소위술고사) : 내가 옛 일을 서술하는 것은
整齊其世傳(정제기세전) : 세가와 열전을 정리하려는 것이지
非所謂作也(비소위작야) : 창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而君比之於春秋(이군비지어춘추) : 당신께서 이것을 <춘추>에 비교하신다면
謬矣(류의) : 잘못된 일이다.”라고 말했다
於是論次其文(어시론차기문) : 이에 그 문장의 차례를 논했다
七年(칠년) : 7년 후
而太史公遭李陵之禍(이태사공조이릉지화) : 태사공은 이릉의 화를 당해
幽於縲紲(유어류설) : 감옥에 갇히자
乃喟然而歎曰(내위연이탄왈) : 이에 깊이 탄식하며 말했다
是余之罪也夫(시여지죄야부) : “이것이 내 죄란 말이냐
是余之罪也夫(시여지죄야부) : 이것이 내 죄란 말이냐
身毁不用矣(신훼불용의) : 몸은 궁형을 당해 쓸모없이 되었구나.”
退而深惟曰(퇴이심유왈) : 그리고 물러가 깊이 생각한 뒤 말하기를
夫詩․書隱約者(부시서은약자) : “무릇 <시경>과 <서경>이 간략하나 뜻이 깊은 것은
欲遂其志之思也(욕수기지지사야) : 그 마음속의 뜻을 실현하고자 해서였다

 

昔西伯拘羑里(석서백구유리) : 옛날에 서백은 유리에 갇힌 몸이 되어
演周易(연주역) : <주역>을 풀이하셨고
孔子戹陳蔡(공자액진채) : 공자께서는 진과 채에서 고생하시고
作春秋(작춘추) : <춘추>를 지으셨으며
屈原放逐(굴원방축) : 굴원은 추방당하고 나서
著離騷(저리소) : <이소>를 지었고
左丘失明(좌구실명) : 좌구명은 실명하고 나서
厥有國語(궐유국어) : <국어>를 남겼다
孫子臏脚(손자빈각) : 손자는 다리를 잘리고서
而論兵法(이론병법) : 병법을 논했고
不韋遷蜀(불위천촉) : 여불위가 촉나라로 쫓겨가고서
世傳呂覽(세전여람) : <여씨춘추>가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으며
韓非因秦(한비인진) : 한비는 진나라에 갇히고 나서
說難孤憤(설난고분) : <세난>과 <고분>편을 지었다
詩三百篇(시삼백편) : <시경> 삼백 편도
大抵賢聖發憤之所爲作也(대저현성발분지소위작야) : 성현께서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此人皆意有所鬱結(차인개의유소울결) : 이러한 분들은 모두 마음에 울분이 쌓였으나
不得通其道也(불득통기도야) : 그의 도리를 표출해 낼 수 없어서
故述往事(고술왕사) : 지난 옛일들을 서술하여
思來者(사래자) : 후진들을 생각했던 것이다.”
於是卒述陶唐以來(어시졸술도당이래) : 그리고 나서 도당이래
至于麟止(지우린지) : 획린까지 일을 서술했는데
自黃帝始(자황제시) : 황제에서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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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 열전

1. 사기열전은 어떻게 서술되었는가

  사기열전은 서술에 있어 인물의 비중을 고려하여 안배한 흔적이 두드러진다. 독자에게 극적인 효과를 전달하기 위해 대립되는 인물을 같은 편에 놓는 경우도 많다. 또한, 유림, 혹리, 자객, 유협, 골계 등 유사한 직업군을 한데 묶어 차례로 배치함으로써 인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열전이란 말을 풀이할 때 열이 배열이나 서술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데에는 의견이 대체로 일치하는 듯하다. 전은 보래 경전의 주석을 가르키는 말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구두로 전해진 것을 의미하며 전통적으로 전기로 받아들여져 왔다. 사마천은 전기를 개인의 역사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라고 하면 주인공의 삶을 전부 담아야 하는데 사기열전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 사실도 더러 있다. 예컨대 두 번째 관인열전을 보면 관중과 안영에 대한 서술은 철저히 무시되고 그들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두 일화가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사마천은 열전에서 인물에 대해 나열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그 인물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특징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따라서 중니제자열전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은 후반부에 이름만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또한 사마천은 자신이 입수한 문헌 가운데 될 수 있는대로 도덕적 기여도가 높은 인물들을 먼저 고르고 거기에 평가를 더했다. 독자로 하여금 선을 행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렇지 않은 자는 화를 입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인물의 행동에서 본받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으면 아예 그를 무시하고 다른 이의 전기에 곁들여 포함시키기도 한다. 진나라 말기에 권력을 휘둘렀던 환관 조고의 경우 다른 인물들의 열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이사열전 후반부는 조고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로 한다. 사마천은 인물들의 개별적인 유형에 입각해서 자신을 포함하여 당대를 움직인 인물들을 재구성하고 그런 근거를 그 이전의 경서와 제자서 뿐 아니라 민간의 구전에서 취하는 유연성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사기에서 자료의 취사 선택 범위는 어디인가? 사기는 시간적으로 2000여년을 포괄하지만 이 중 과반수가 한나라 시대의 것이다무제는 한나라의 제5대 황제로서 고제, 혜제, 문제, 경제의 통치를 거치면서 중앙집권체제가 확고해졌을 때의 통치자이다. 이 시기는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번영하면서 학술이 번성했다. 따라서 각 분야마다 대표적인 학자가 탄생했으니 경학가요 평론가인 동중서, 문장가 사마상여, 군사전략가 위정과 곽거병, 천문학자 당도, 탐험가 장건, 음악가 이언년 등 걸출한 인물이 무제의 수하에 있었다. 이런 면에서 사기가 후한의 무제 때 탄생한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2. 사기 열전에 기록된 시대의 인물들은 누구인가?

 사기 열전의 독특한 인물의 선택, 서술 방식은 역사는 결코 지배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사기의 백미로서 열전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백이 열전은 지조와 소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 관안 열전에서는 진정한 우정을 다룬 관포지교의 고사가 담겨있고,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안다는 관중의 정치관도 배어 있다. 명재상 안영과 마부 이야기는 안영의 뛰어난 안목을 보여 준다. 전국시대에 활약한 병법가들을 다룬 사마 양저 열전, 손자 오기 열전, 오자서 열전도 있다.


 상군 열전에서는 법과 원칙의 소유자 상군, 즉 상양에게서 냉철한 개혁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소진 열전과 장의 열전은 합종과 연횡이라는 전략으로 천하를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의 처절한 두뇌싸움을 보여주는 명편이다. 두 사람은 같은 문하에서 배웠지만 나중에 정치적 라이벌 관계가 된다.


 지혜주머니라고 불린 저리자와 어린 나이에 기지가 뛰어났던 감무 이야기도 있고, 외척이면서 정치에 참여한 양후도 열전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인재를 예우하여 수천 명의 식객을 거느렸던 전국 사공자, 즉 맹상군 전문, 평원군 우경, 위 공자 무기, 춘신군 황헐의 여러 일화도 엿볼 수 있다.


 피를 뿌려서라도 군주의 위엄을 지킨 염파와 화씨벽을 지키려는 인상여의 기개를 다룬 염파 인상여 열전에는 사나이의 의리, 큰 나라끼리의 사귐에는 법도가 있다는 선비의 마음가짐, 나라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는 지식인의 자세가 담겨 있다. 전단 열전은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노중련 추양 열전에서는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을 보여 준다. 청빈한 지식인을 보여 주는 굴원 가생 열전에서는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진귀한 재물은 사둘 가치가 있다고 한 투자가 여불위는 진시황의 생부라는 전설적인 요소가 더해지면서 열전의 주요 인물로 자리했으며,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는 의리파 인물의 충절에 담긴 자객 열전은 진시황을 죽이려 한 형가를 비롯한 다섯 명의 자객을 다루고 있다. 이사 열전은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신의 위치에 달려 있다는 냉혹한 현실주의자 이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진시황의 최측근이면서 동시에 재위 계승의 농간을 부리다가 자결하게 되는 비운의 인물이다. 


 53권 남월 열전부터 동월 열전, 조선 열전, 서남이 열전 등은 한나라 변방 지역의 민족들 사이의 충돌과 화해의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밖에도 사기 열전에는 청렴한 관리와 엄격한 법 집행을 하는 혹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혹리 열전에서 사마천은 혹리 열두 명이 행적을 통해서 한 무제의 무모한 행적을 비판하면서, 법령이 늘수록 도둑이 느는 이유가 있으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 혹독한 법령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또한 유협 열전에서는 춘추 전국시대를 주름잡은 유협의 세계를 담고 있다. 

이처럼 이사 열전이나 골계 열전에서 볼 수 있는 주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 자객 열전에서 보이는 구도의 설정 능력, 여불위 열전에서 볼 수 있는 구성방식이나 희극적 효과의 운용은 중국인의 문사체 관념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실례이다. 


 일반 역사서와 달리 사기 열전에는 주관적 서술이 적잖이 드러나 있는데 그럼에도 사마천 자신의 사료 비판 능력과 어우러져 탄탄한 역사 서술 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사마천의 혼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기 열전의 서술방식에는 냉정한 이성과 처절한 열정을 갖고 살아간 시대의 거장들의 숨결이 행간마다 녹아 있다. 사기 열전이 폭넓은 독자층을 끌어들이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사기 열전은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세계관과 인생관 위에 개인적인 비극을 역사의식으로 승화시켜 시대를 살아간 인물을 조명해 나갔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무왕의 제왕인 공자와 시대에 저항을 택한 백이와 숙제를 등장시키면서 자신의 논지를 펼쳐 나간다. 


 사실상 사기 130편 가운데  인물 전기로 구성된 것이 112편인데, 이 중에 57편이 비극적 인물의 이름으로 편명을 삼았다. 그리고 20여 편은 비극적 인물로 표제를 삼지는 않았으나 들여다보면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나머지 70 여편에도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편에서 비운의 인물이 등장한다. 격동의 시대를 약 120여 명이라는 비운의 인물을 통해 그려 냈으니 결국 사마천에게는 비극이야말로 시대의 표징이었던 것이다. 


 한나라 초기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이성 왕 이야기의 주인공들인 한신, 팽월, 경포 등 3명은 모두 열전에 수록되어 있으며 나름대로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패배한 영웅 항우의 모습을 그린 항우 본기와 함께 읽으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연작이 어찌 홍곡의 뜻을 알리요?’라고 소리 높이 외쳤던 진섭을 그린 진섭 세가와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재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여 일생을 고민한 비극적인 인물들도 있다. 굴원, 조조, 위 공자 등이 그들이다. 굴원은 직언을 거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살했고, 어질고 능력있는 위 공자 무기는 폭음으로 죽었다. 조조는 종묘의 담을 뜯어 문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저잣거리에서 죽었다.


 국가에 헌신했으나 비극을 초래한 자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자가 이사이고 황헐과 주보언도 빼놓을 수 없다. 춘신군 황헐은 합종으로 진나라에 맞서 20년간 재상 노릇을 하다가 간사한 음모에 휘말려 비참하게 살해되었다.  현자 불우의 비극도 있다. 제가 부분에 배치된 공자를 비롯하여 노자 한비 열전에 나오는 한비, 이 장군 열전의 이광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기 열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말해 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시 적지 않다.


 이러한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 사마촌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들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

 

 사기 열전을 생명력이 넘치는 산 역사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 본위의 역사를 서술해 낸 작가의 노력 덕분이다. 사마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인물들을 현재에 생동하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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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
태공망(太公望)

본명 강상(姜尚)
별칭 강자아, 여상(呂尚), 강태공(姜太公)
직업 정치가, 병법가
활동 기간 주(周)나라

 


1. 태공망의 생애

 

1.1 태공망의 이름과 출신


흔히 강태공(姜太公)으로 알려져 있는 강상은 동쪽 바닷가 동해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일찍이 사악(四嶽)이 되어 우임금이 물과 땅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 크게 공을 세웠다. 그들은 순임금과 하나라 시대에 여(呂) 또는 신(申) 땅에 봉해졌다. 성은 강씨(姜氏)였다. 하나라와 은나라 때는 방계의 자손이 신과 여 땅에 봉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평민이 되기도 했다. 강상(姜尙)은 그 후예다. 

 

‘동해’는 지금의 강소성과 산동성 일대의 바닷가를 지칭한다. ‘사악’은 요순 때 사계절을 관장하는 벼슬의 이름으로 사방의 산악을 관리했다고 한다. 여(呂)는 지금의 하남성 남양시 서쪽 일대, 신(申)은 하남성 남양시 일대로 추정된다. 여상은 이름이 상(尙), 자가 자아(子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상은 여상(呂尚), 태공망(太公望)이라고도 불리는데 여상은 봉지인 여(呂)에서 성을 취하여 부른 것이고, 태공망은 주 문왕과의 일화와 관련이 있다.



1.2 사마천의 《사기》의 제태공세가에서의 여상과 주문왕


여상은 주나라 문왕과 무왕의 사(師)가 되었는데, 이에 대한 몇 가지 말을 사마천의 《사기》의 제태공세가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1>

 

“여상은 동해(東海) 근처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일찍이 사악(四嶽)이 되어 우임금이 물과 땅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 크게 공을 세웠다. 그들은 순임금과 하나라 시대에 여(呂) 또는 신(申) 땅에 봉해졌다. 성은 강씨(姜氏)였다. 하나라와 은나라 때는 방계의 자손이 신과 여 땅에 봉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평민이 되기도 했다. 강상(姜尙)은 그 후예다. 본래의 성은 강씨지만, 봉지를 성으로 삼은 까닭에 여상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2>

 

또 다른 일화에 따르면 당초 여상은 나이가 70세에 이르도록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오직 글공부만 열심히 했다. 그의 아내는 글공부만 하는 무능한 남편을 힘겹게 먹여 살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그의 아내가 일을 나가면서 멍석에 깔아놓은 보리가 비에 젖지 않도록 단속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여상은 방 안에서 공부하느라 소나기가 쏟아지는데도 비가 오는 것을 몰랐다. 여상의 아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멍석에 널어놓은 보리 대부분이 젖어 물에 떠내려간 상태였다. 화가 난 아내가 방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러자 여상이 이같이 탄식했다.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을, 이제 80세가 되면 운이 트이는데 그것을 못 참고 떠나가다니 안타깝다!”

혼자가 된 여상은 위수의 강가로 집을 옮겨 반계(磻溪)라는 곳에서 매일 낚시를 했다. 미끼를 끼우지도 않은 채 곧은 낚싯바늘을 물에 드리웠다. 물고기를 잡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을 알아줄 군주가 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주문왕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천제(天帝)가 나타나 현인을 보내줄 것을 약속했다. 주문왕이 곧 사람들을 시켜 꿈속에서 본 현인을 찾게 했으나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이에 점복을 관장하는 태사(太史)를 불러 점을 치게 했다. 점괘가 이같이 나왔다.

“사냥할 것은 용도 이무기도 아니고, 호랑이나 큰 곰도 아니고, 패왕의 보필이 될 사람이다.”

당시 태사는 곧 주문왕에게 위수(渭水) 근처로 사냥을 나가면 반드시 현인을 만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주문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 북쪽으로 나아갔다. 위수는 지금의 위하(渭河)로 섬서성 중부를 흐르고 있다. 주문왕은 도중에 위수의 지류인 반계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여상을 보게 되었다. 가까이 다가간 주문왕은 천하의 정세에 관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여상의 대답에 막힘이 없었다. 《육도》의 첫 편인 〈문사(文師)〉는 그 내용을 상세히 소개해놓고 있다. 주문왕은 여상의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기뻐했다. 그러고는 곧 수레를 함께 타고 돌아와 국사(國師)로 모셨다. 후대인들은 여상을 태공망(太公望)으로 칭했다. 주문왕의 조상인 고공단보(古公亶父) 태공이 간절히 바라던 인물이라는 뜻이다.

 

<3> 


《사기》의 한 일화에 따르면 당시 태공망 여상은 박학다식하여 은나라 주를 섬겼으나 주가 포악무도하자 이내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이후 제후들에게 유세했으나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했다. 마침내 서쪽으로 가서 주문왕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사마천은 이 설도 매우 유력하다고 판단해 개략적인 내용을 소개해놓았다.

 

<4>


〈제태공세가〉에 실려 있는 또 다른 일화에 따르면 당초 여상이 처사로서 바닷가에 은거할 당시, 마침 서백(西伯)으로 불리고 있던 주문왕이 지금의 탕음현 북쪽으로 추정되는 유리(羑里)에 구금되었다. 주문왕의 측근인 산의생(散宜生)과 굉요(閎夭)가 여상을 불러내 대책을 논의했다. 여상이 말했다.

“내가 듣기에 서백은 현명하고 또 어른을 잘 모신다고 한다. 그를 어찌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세 사람은 곧 미녀와 보물을 구해 은나라 주에게 주문왕의 죗값으로 바쳤다. 덕분에 주문왕은 구금에서 풀려나 주나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이 일화는 여상이 주문왕을 위수 가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일화와 배치된다. 구성은 약간씩 다르나 여상이 지우(知遇)를 입지 못해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주문왕을 만났다는 기본 내용만큼은 모두 동일하다. 어느 설화가 역사적 사실에 맞는지 여부를 논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모두 주문왕과 여상을 미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동준 <무경십서, 2012, 역사의 아침>의 종합 결론  


여상이 제 발로 서쪽으로 주문왕을 찾아갔다는 일화가 오히려 역사적 사실에 가까울 듯싶다. 《삼국지》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과 《구주춘추》에는 제갈량도 유비를 제 발로 찾아간 것으로 되어 있다. 삼고초려(三顧草廬)도 후대인이 만들어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태공망의 일화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실 그같이 보는 것이 훨씬 인간적이다. 

 

1.3 여상과 주의 건국

 

《사기》의 〈주본기〉와 〈제태공세가〉에 따르면 당시 주문왕은 여상을 얻은 뒤 매사를 그와 의논하며 정사를 펼친 덕분에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다.

일례로 공평한 정사를 펼치며 지금의 산서성 평륙현 북부에 있는 우(虞)나라와 섬서성 대려현 동남쪽에 있는 예(芮)나라의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자 사람들이 ‘천명을 받은 주문왕’이라 칭송했다. 백성의 지지를 배경으로 주문왕은 곧 지금의 섬서성 노현 동쪽에 있는 숭(崇)나라, 감숙성 영대현 서남쪽의 밀수(密須), 섬서성 빈현과 기산 일대의 견이(犬夷) 등을 정벌했다. 이어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 서남쪽에 풍읍(豐邑)을 크게 건설했다. 천하의 3분의 2가 그에게 귀순하게 되었고, 이는 모두 여상의 계책 덕분이라는 것이 《사기》의 견해다.

풍읍은 주문왕이 기존의 기(岐)를 버리고 새 도읍으로 정하면서 명칭이 풍경(豐京)으로 바뀌었다. 풍경의 명칭은 풍하(灃河)의 서쪽 언덕에 위치한 데서 나왔다. 주문왕은 풍경으로 천도한 것을 계기로 주군의 나라인 은나라를 공벌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결전을 앞두고 주문왕이 병사하고 말았다. 뒤를 이어 아들 희발(姬發)이 보위에 올랐다. 그가 주무왕이다. 그는 먼저 풍하 동쪽 언덕에 새로 도성을 세웠다. 이것이 호경(鎬京)이다. 풍경과 호경은 풍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위치에 있었다.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 풍경에는 주왕실의 종묘가 남아 있었던 까닭에 주나라가 건립된 이후에도 서주의 왕들은 늘 풍경에 머물며 국사를 처리했다. 사가들은 두 곳을 하나로 묶어 풍호(豐鎬)로 칭했다.

당시 은나라 주왕은 비중(費中)을 등용해 국정을 담당하게 했다. 〈은본기〉에 비중은 아첨을 잘하고 사리사욕만 채울 줄 아는 소인배로 묘사되어 있다. 은나라 백성 모두 그를 미워했다고 한다. 이때 은나라 주왕은 훗날 진(秦)나라의 선조이며 비렴(蜚廉)의 아들인 악래(惡來)를 등용했다. 〈은본기〉는 악래가 다른 사람을 비방하기를 좋아했으므로 이 때문에 제후들과 은나라의 사이가 더욱 멀어졌다고 기록해놓았다. 진시황 사후 진나라가 이내 패망하면서 만들어진 전설일 공산이 크다. 은나라 주의 서형(庶兄)인 비간(比干)이 간언을 했으나 주가 듣지 않았고, 상용(商容)이 매우 어질어 많은 백성이 따랐으나 주가 등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패망한 왕조의 인물은 모두 악인으로 몰리게 마련이다.

주무왕은 풍경에서 호경으로 천도하자마자 본격적인 은나라 공벌 준비에 나섰다. 그 사이 은나라 주왕은 서형인 비간을 죽이고, 충간을 하는 기자(箕子)와 태사(太師) 자(疵) 등을 옥에 가두었다. 많은 현신과 명장이 하나둘 주왕의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는 날이 갈수록 황음무도한 모습을 보였다. 당초 주왕의 또 다른 서형인 미자(微子)는 비간을 찾아가 함께 떠날 것을 권했다. 미자는 지금의 산동성 노성현 동쪽 미(微) 땅을 봉지로 갖고 있었다. 모친이 정실이 아닌 까닭에 태자가 되지 못했다. 비간은 미자의 권유를 받자 이같이 말했다.
“신하는 죽더라도 군왕에게 충간을 해야 한다.”


그러고는 계속 간했다. 주가 대로했다.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7개나 있다고 들었다!” 곧 좌우에 명하여 비간의 가슴을 쪼개 심장을 꺼내보였다. 기자는 이 소식을 듣고 두려운 나머지 미친 척하여 남의 노비가 되고자 했으나 주왕이 그를 잡아 가두었다. 주무왕이 막 군사를 이끌고 출발하려 할 때 두 노인이 나타나 주무왕이 탄 말의 고삐를 잡으며 정벌을 만류했다.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였다. 두 사람은 도덕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주무왕을 찾아와 이같이 간했다.  “주왕은 비록 폭군이나 모든 제후의 군주입니다. 신하로서 군주를 치는 일은 옳지 못합니다. 게다가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올 뿐입니다. 정벌을 멈추고 덕치를 베풀도록 하십시오.”

주무왕은 이를 듣기는커녕 오히려 두 사람을 즉시 추방했다.주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자 두 사람은 신하가 군주를 뒤엎는 세상을 비관하여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주무왕이 마침내 대군을 이끌고 동쪽으로 나아가 맹진(孟津)에서 제후들을 모았다. 맹진은 지금의 하남성 맹진현 동북쪽에 있었던 황하의 옛 나루터다. 사서에는 맹진(盟津)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주무왕이 이곳에서 제후들과 맹서한 후 은나라를 친 데서 나온 것이다.

주무왕이 은나라의 성읍을 차례로 함락시키며 맹진에 이르자 그의 휘하로 모여든 제후가 800명에 달했다. 이때 세찬 눈보라와 비바람이 몰아쳤다. 홀연히 사해의 해신(海神)과 황하의 신인 하백(河伯)이 사람으로 변신해 하늘의 뜻이 주나라에 있음을 말하면서 적극 도와줄 것을 약속했다. 덕분에 대군이 무사히 황하를 건널 수 있었다. 당시 주무왕은 사흘 동안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것을 흉조로 여기며 몹시 두려워했다. 일설에 따르면 이때 태공망 여상은 오히려 그 비가 무기를 깨끗이 닦아주는 길조(吉兆)라고 말해 주무왕을 고무시켰다고 한다. 《당리문대》의 ‘권 하’는 정반대의 일화를 실어놓았다. ‘권 하’의 해당 대목이다.

“태공망이 주무왕을 도와 목야(牧野)에 이르렀을 때 공교롭게도 뇌우(雷雨)가 퍼부었습니다. 깃발과 북이 모두 찢어지자 군심이 흉흉해졌습니다. 이때 산의생이 길흉을 점친 뒤 길조가 있을 때 진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병사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기에 점복을 이용해 신의 도움을 빌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때 태공망이 일갈하기를, ‘썩은 풀과 말라빠진 거북등으로 무엇을 물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신하로서 군주를 치고자 하는 것이다. 점괘가 불길하다고 해서 어찌 훗날 다시 거병할 날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주무왕과 함께 곧바로 진격해 은나라를 멸했습니다.

산의생이 먼저 점복을 통해 승리의 결정적인 계기가 왔는지를 알고자 했고, 태공망은 그 계기가 이미 왔다는 것을 알고 점치는 것을 반대한 것입니다. 방법은 다를지라도 결정적인 계기에 올라타 임기응변으로 승리를 거두어 대사를 이루고자 한 점에서는 같습니다.   "신이 ‘음양의 술수는 폐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결정적인 계기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 때 이를 적극 활용해 사람들의 마음을 조정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든 일의 성사 여부는 오직 인간의 부단한 노력으로 일을 추진하는 인사(人事)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은나라 수도인 조가(朝歌) 근교의 목야는 지금의 하남성 급현 부근을 말한다. 《당리문대》에 나오는 일화는 당시 주무왕이 은나라 주왕의 군사를 물리친 ‘목야전투’와 관련해 다양한 일화가 전래되었음을 뒷받침한다. 여상이 승리를 견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공통된다.

주무왕은 병거 300대, 용사 3,000명, 무장한 병사 4만 5,000명을 이끌고 제후들과 함께 목야에서 승리를 다짐하는 대회를 열었다. 은나라 주왕은 군사 17만 명을 모아 70만 대군이라고 큰소리치며 영격에 나섰다. 양측의 군사가 목야에서 대치했다. 목야전투는 중국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전쟁으로 간주되고 있다. 주무왕은 여상에게 용사 몇 명을 보내 싸움을 이끌도록 했다. 여상의 용사들이 돌진하자 주무왕의 정예부대인 용사 3,000명이 병거 300대를 앞세우고 그 뒤를 따랐다.

당시 주무왕은 주왕의 목을 벤 뒤 행군할 때의 지휘용 깃발인 태백기(大白旗)에 매달았다고 한다. 이어 기자를 풀어주고, 비간의 묘에 봉분을 해주고, 상용이 살던 마을을 표창했다. 그는 또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에게 봉토를 나누어주고 은나라 선왕의 제사를 지내게 했다. 주나라 건국의 대공을 세운 여상은 지금의 산동성 동부 지역을 봉지로 받았다. 그곳이 바로 제(齊)나라다. 제환공이 여상의 후손이다.

주무왕은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지 2년 만에 홀연히 죽고 말았다. 뒤를 이어 나이 어린 아들 희송(姬誦)이 보위에 올랐다. 그가 주성왕(周成王)이다. 주무왕의 동생인 희단(姬旦)이 섭정을 했다. 그가 바로 공자가 성인으로 떠받들었던 주공(周公)이다. 주공의 동생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 등이 주공을 의심했다. 곧 무경과 손을 잡고 난을 일으켰다. 주성왕이 주공에게 명해 이들을 토벌하게 했다. 주공이 3년에 걸쳐 이들을 토벌하자 주성왕이 미자에게 지금의 하남성 일대를 봉해 은나라 유민들을 다스리게 했다. 그곳이 바로 송(宋)나라다. 송나라는 전국시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장자(莊子)는 송나라가 패망할 당시의 유민이다. 

 


1.4 제(齊)나라 건국


문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했다. 2년 후 임금은 왕자 비간(比干)을 죽이고 기자(箕子)를 가두었다. 무왕이 주 임금을 정벌하기에 앞서 거북점을 쳤는데 징조가 불길하게 나오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공들이 모두 두려워했으나 오직 여상만이 무왕에게 강하게 정벌을 권하였고, 무왕은 마침내 정벌에 나서 상을 평정하고 천하의 왕이 되었다. 무왕은 사상보(무왕은 여상을 사상보(師尙父)라 했다.)를 제(齊)의 영구(營丘)에 봉했다.


여상은 동쪽의 봉국으로 가서 정치를 고쳐 그곳의 습속에 따라 예를 간소하게 했다. 상공업을 발전시키고 어업과 소금업의 이점을 잘 살리니 많은 인민들이 제로 와서 제가 큰 나라가 되었다. 또한 주 성왕(成王)이 어릴 때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난을 일으키고 회이(淮夷)가 주를 배반하자 여상에게 다섯 등급의 제후와 아홉 주의 우두머리들에 대한 정벌권을 부여했다. 정벌권을 가진 제는 더 큰 나라가 되었고, 영구를 도읍으로 삼았다. 태공이 약 백 살 넘어 죽고 그 아들의 아들로 제나라는 이어졌다.

 

 


2. 현대적 의미


강태공은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하다가 서백에게 등용되어 입신출세하였다. 강태공은 많은 세월 위수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했는데, 사실은 고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며 세월을 낚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이러한 강태공의 고사를 잘 알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저 한가롭게 낚시나 하러 다니는 사람, 혹은 낚시를 무척 좋아하는 낚시광을 일러 강태공이라 부른다. 강태공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의 때를 기다려 제후 자리에까지 오른 강태공의 생애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일 것이다.

 


3. 관련 서적


《봉신연의(封神演義)》
명(明)대 신마소설(神魔小說) 《봉신연의(封神演義)》 는 100회로 이루어진 장회소설로, 신마소설은 신과 마의 다툼을 소재로 한 소설로 노신(魯迅)의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 에서 처음 쓰인 용어이다. 봉신연의의 자세한 창작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대략 융겅(隆慶, 1567~1572)에서 만력(萬曆, 1573~1619) 연간에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육서성(陸西星)이라는 설과 허중림(許仲琳)이라는 설이 있다.
강태공이 주(周) 문왕(文王), 무왕(武王)을 보좌하여 상(商)의 주(纣)를 토벌한 역사적 배경을 그리고 있으며, 많은 고사이야기와 강태공 이야기 이외에 다양한 신선, 요괴 및 闡敎, 截敎의 도교 교파 간의 싸움이 등장한다.

《강태공전》
《강태공전》은 작자와 창작 연대 미상의 조선후기 한글소설이며, 《강태공실기》라고도 한다. 《강태공전》은 역사적 사실로 전승되어오던 ‘무왕벌주(武王伐紂)’ 설화를 강태공의 일대기를중심으로 비현실적이고 신이한 요소를 더하여 소설로 꾸민 작품이다. 필사본 10종, 경판 방각본 3종, 활자본 8종이 현존한다. 강태공전은 봉신연의의 한글 축약 번안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강태공전》은 강태공을 중심으로 《봉신연의》를 재구성했다. 따라서 봉신연의에 비중 있게 등장하던 여타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는 매우 간략하게 다루거나 심지어 생략하고 있다.

《육도삼략(六韜三略)》
《육도(六韜)》와 《삼략(三略)》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주나라 강상(강태공)이 썼다고 전해지는 고대의 병법서이다.
《육도(六韜)》의 ‘도’는 원래 활집이나 칼전대를 말한다. 여기서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 파생되었다. ‘도’는 바로 병법의 비결을 뜻한다. 육도의 명칭은 전체의 내용을 6개의 도로 나눈 데서 나왔다. 〈문도(文韜)〉 〈무도(武韜)〉 〈용도(龍韜)〉 〈호도(虎韜)〉 〈표도(豹韜)〉 〈견도(犬韜)〉가 그것이다. 6권 6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자는 1만 6,800여 자다. 《삼략》의 4배 분량에 해당한다. 여타 병서와 비교할 때 매우 많은 편에 속한다. 《육도》는 오랫동안 주나라의 건국공신인 태공망 여상(呂尙)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적으로 볼 때 지금으로부터 3,000년도 넘는 까닭에 역대 병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병서에 해당하는 셈이다.

 


4. 관련 고사성어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한번 저질러진 일은 되풀이하지 못한다.

상(商)나라말기 주왕(紂王)은 연못을 술로 채우고, 고기를 숲처럼 매달아 놓고 즐긴다는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나라를 도탄(塗炭)에 빠뜨리고 있었다. 이에 주의 무왕이 아버지 문왕의 유지를 받들어 강상(姜尙)등의 도움으로 난을 일으켜 주왕(紂王)을 몰아내고 상(商)나라를 무너뜨린 뒤, 주(周)나라를 세웠다.  본래 강상(姜尙)은 동해의 한 마을에서 가난하게 사는 선비였다. 그가 마씨(馬氏)와 결혼을 했는데 늘 책만 읽고 가정은 돌보지 않아 끼니를 이을 수조차 없을 만큼 가난하였다. 이에 마씨(馬氏)는 집을 나가 버렸고, 강상(姜尙)은 허구헌날 낚시질만 하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서백(西伯)을 만나 입신출세하여 제(齊)나라의 시조가 되었을 때 집을 나간 마씨(馬氏)가 돌아와서 이제는 밥 굶을 일 없으니 다시 살겠다고 했다. 강상(姜尙)이 마씨(馬氏)에게물을 길러오라 시키고, 물을 길러오니 다시 마당에 부으라고 하였다. 마당에 물을 부으니 이제는 그것을 다시 동이 주워 담으라고 하자 마씨(馬氏)가 땅에 엎질러진 물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냐고 따졌다. 이에 강상(姜尙)이 말했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고,(복수불반분, 覆水不返盆) 한번 나간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수구초심(首丘初心)|-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근본을 잊지 않는 마음


강태공(姜太公)은 제(齊)나라 영구(營丘)에 봉해져 계속해서 오대(五代)에 이르기까지 살았으나 주(周)나라에 와서 장례(葬禮)를 치렀다.


이를 두고 군자(君子)가 말하기를 「고지인유언 왈호사정구수인야(古之人有言 曰狐死正丘首仁也;음악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즐기며 예란 그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옛사람의 말이 있어 말하기를 「여우가 죽을 때 언덕에 머리를 바르게 하는 것은 인(仁)이다.」라고 했다.여기서 유래된 말이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이는 《예기(禮記)》 단궁상편(檀弓上篇)에 나오는 말이다.

 

 

 


참고자료


사마천,《사기(史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유수민, 『封神演義』 속 哪吒 형상 小考 : 道敎的 토착화 및 幻想性과 관련하여, 한국중어중문학회, 중어중문학 61, 2015.8, 3-26
유수민, 조선후기 한글소설 <강태공전>의 <封神演義> 번안 양상 小考, 한국중어중문학회, 한국중어중문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 2016.11, 283-287
중국 위키백과 - 太公望(태공망)
중국 위키백과 - 六韜(육도)
고종문, 『고사성어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본기』, 키메이커, 2015
《예기(禮記)》 단궁상편(檀弓上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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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貨殖列傳

 

 

이익이 있으면 모이고, 이익이 없으면 흩어진다

“천하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찾아오는 것은 모두 이익을 얻고자 함이고, 천하사람들이 무너지듯 흩어지는 것도 이익을 찾아가는 것이다.”

 

 

 

 

 

□ 사마천(司馬遷)

 

세상을 가장 잘 다스리는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을 이용하여 이끄는 것이며, 그 다음은 가르쳐 깨우는 것이고, 또 그 다음은 백성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이고, 가장 못하는 것은 재산을 가지고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

 

 

□ 월나라 계연(計然)

 

물건과 돈은 흐르는 물처럼 유통시켜야 한다.”

 

 

□ 월나라 범려(笵閭)

 

부유하면 그 덕을 즐겨 행한다.“

 

 

□ 주나라 백규(白圭)

 

나는 생산을 운영할 때 마치 이윤과 여상이 계책을 꾀하고, 손자와 오자가 군사를 쓰고, 상앙이 법을 시행하는 것과 같이 한다. 그런 까닭에 임기응변하는 지혜가 없거나, 일을 결단하는 용기가 없거나, 주고받는 어짊이 없거나, 지킬 바를 끝까지 지킬 수 없는 사람이면 내 방법을 배우고 싶어도 끝까지 가르쳐 주지 않겠다.

 

 

□ 사마천(司馬遷)

 

이러한 이치로 볼 때 어진 사람이 묘당에서 깊이 도모하고 조정에서 논의하며, 신의를 지켜 절개에 죽거나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가 높은 명성을 얻으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은 다 부귀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깨끗한 벼슬아치도 시간이 오래되면 더욱 부유해지고, 공정한 장사꾼도 마침내 부유해진다. 부라는 것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긴장한 병사가 전쟁에서 성을 공격할 때 먼저 오르고 적진을 점령하여 적군을 물리치며, 적장을 베고 깃발을 빼앗으며, 화살과 돌을 먼저 무릅쓰고 끓는 물과 불의 어려움도 피하지 않는 것은 큰 상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또 마을의 젊은이들이 강도질을 일삼고 사람을 때려죽인 뒤 묻어버리고, 사람들을 협박하여 사악한 짓을 일삼고 무덤을 파헤쳐 보물을 훔치고 돈을 위조하며, 협객인 체 하면서 같은 패거리를 대신하여 원수를 갚고, 세상 사람의 눈에 뜨지 않는 후미진 곳에서 물건을 빼앗고 사람을 내쫓는 등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피하지 않고 말을 달리 듯 죽을 곳으로 나아가는데 이는 사실 모두 재물의 쓰임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생활을 꾸려 나감에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수입을 얻으려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 힘쓰는 바이다. 그러므로 농업으로 부를 얻는 것을 으뜸으로 하고, 상업으로 부를 얻는 것은 그 다음이며, 간사하고 교활한 수단으로 부를 얻는 것은 가장 저급하다.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의 기이한 행동도 없으면서 오랫동안 가난하고 천하게 살며 인의를 말하는 것만 즐기는 것도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대체로 호적에 올린 보통 백성은 부유함을 비교하여 자기보다 열 배 많으면 몸을 낮추고, 백 배 많으면 두려워하며, 천 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해주고, 만 배 많으면 그 하인이 되니, 이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대체로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를 추구하는 길에는 농업이 공업만 못하고, 비단에 수를 놓는 것이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것만 못하다. 이것은 말단의 생업(상업)이 가난한 사람의 자본임을 말한다.“

 

이들처럼 부유해진 인물들은 모두가 작읍이나 봉록을 가진 것도 아니고 법률을 교묘히 운용하고 나쁜 짓을 하여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모두 사물의 이치를 헤아려 행동하고 시세 변화를 살펴 그 이익을 얻고, 상업으로 재물을 쌓고 농업으로 부를 지켰다. 무로 모든 것을 이룬 뒤에는 문으로 그것을 지켰으며, 그 변화에는 절도의 순서가 있어 기술한만하다. 대체로 아껴 쓰고 부지런한 것은 생업을 다스리는 바른 길이다. 그렇지만 부자가 된 사람은 반드시 기이한 기회를 활용했다.”

 

지난 일을 볼 때 부유해지는 데에는 정해진 사업이 없고, 재물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기왓장 부서지듯이 흩어진다. 천금의 부자는 한 도읍의 군주에 맞먹고, 거만금을 가진 부자는 왕과 즐거움을 같이 한다. 그들이야말로 어찌 소봉(小封 : 봉지나 직위 등이 없는 봉군)이라고 할 만한 자들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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貨殖列傳序(화식열전서)-史馬遷(사마천)

 


老子曰(노자왈) : 노자가 말했다
至治之極(지치지극) : ‘정치를 아주 잘하면
鄰國相望(린국상망) : 이웃 나라가 보이고
鷄狗之聲相聞(계구지성상문) :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가 서로 들릴 정도이다
民各甘其食(민각감기식) : 백성들은 각각 자신들의 음식을 달게 먹고
美其服(미기복) : 그들의 의복을 아름답다고 여긴다
安其俗(안기속) : 자기들의 풍속에 만족해 하고
樂其業(낙기업) : 그들의 일을 즐기며
至老死不相往來(지노사불상왕래) :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必用此爲務輓近世(필용차위무만근세) : 그러나 이렇게 하려고 요즈음 백성들에게 강요하여
塗民耳目(도민이목) : 그들의 눈과 귀를 막는다는 것은
則幾無行矣(칙기무행의) :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


太史公曰(태사공왈) : 태사공이 말한다
夫神農以前(부신농이전) : “신농씨 이전에 대해서는
吾不知已(오불지이) : 내가 잘 모르지만,
至若詩書所述虞夏以來(지약시서소술우하이래) : 시경이나 서경에 기록된 우나 하나라 이래로
耳目欲極聲色之好(이목욕극성색지호) : 눈과 귀는 아름다운 소리와 모습을 무척 좋아하고
口欲窮芻豢之味(구욕궁추환지미) : 입은 고기 맛을 보려고 했다
身安逸樂(신안일락) : 또 몸은 편안과 쾌락을 좋아하고
而心誇矜勢能之榮(이심과긍세능지영) : 마음은 권력과 재능의 영광스러움을 자랑하려고 했으니
使俗之漸民久矣(사속지점민구의) : 백성들이 이러한 풍속에 물든지 오래 되었다
雖戶說以眇論(수호설이묘론) : 비록 오묘한 이론을 가지고 집집마다 다니며 설명을 해도
終不能化(종불능화) : 교화시킬 수 없다


故善者因之(고선자인지) : 그러므로 정치를 잘 하는 자는 자연스러움을 따르고
其次利道之(기차이도지) : 그 다음은 백성을 이롭게하고 이끌어주며
其次敎誨之(기차교회지) : 그 다음은 백성을 가르쳐 깨우치며
其次整齊之(기차정제지) : 그 다음은 백성을 다스리며
最下者與之爭(최하자여지쟁) : 가장 못하는 자는 백성과 다툰다


夫山西饒材竹穀纑旄玉石(부산서요재죽곡로모옥석) :
산서 지방에는 목재·재나무·닥나무·모시·검정소 꼬리·옥석이 풍부하고
山東多魚鹽漆絲聲色(산동다어염칠사성색) :
산동지방에는 물고기·소금·옻나무·명주실·가무와 여색이 훌륭하다
江南出枏梓薑桂金錫連丹沙犀瑇瑁珠璣齒革(강남출남재강계금석연단사서대모주기치혁) :
강남지방에는 녹나무·가래나무·생강·계수나무·금·주석·납·단사·무소 뿔·대모·상아와 같은 동물의
이빨·가죽이 많이 생산된다.
龍門碣石(용문갈석) : 용문산과 갈석산
北多馬牛羊旃裘筋角(북다마우양전구근각) :
북쪽에서는 말·소·양·모전·갖옷·짐승의 근육과 뿔이 많이 생산된다.
銅․鐵則千里往往山出棊置(銅․철칙천리왕왕산출기치) :
동과 철은 천리 사방에서 나와 마치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펼쳐 놓은 것 같다
此其大較也(차기대교야) : 이것이 대체적인 상황이다.
皆中國人民所喜好(개중국인민소희호) : 이것들은 모두 중국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謠俗被服飮食奉生送死之具也(요속피복음식봉생송사지구야) :
의복이나 음식 및 산 사람을 받들고 죽은 사람을 보내는데 사용하는 용품이다
故待農而食之(고대농이식지) : 그래서 농부가 농사를 지은 후에 곡식을 먹을 수 있으며
虞而出之(우이출지) : 산택을 맡은 관리가 자원을 캐내고
工而成之(공이성지) : 공인이 자원을 가공하고
商而通之(상이통지) : 상인은 이를 유통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此寧有政敎發徵期會哉(차녕유정교발징기회재) :
이것이 어찌 정교 발징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人各任其能(인각임기능) :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능력에 따라
竭其力(갈기력) : 힘을 다해
以得所欲(이득소욕) :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故物賤之徵貴(고물천지징귀) : 그래서 물건 값이 싸다는 것은 비싸질 조짐이고
貴之徵賤(귀지징천) : 비싸다는 것은 싸질 조짐이다
各勸其業(각권기업) : 사람들이 자기 일에 힘쓰고
樂其事(락기사) : 자기가 종사하는 일를 즐겁게 여기면
若水之趨下(약수지추하) : 이는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이
日夜無休時(일야무휴시) : 밤낮 쉬는 때가 없다
不召而自來(불소이자래) : 그래서 백성을 불러들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不求而民出之(불구이민출지) :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생산에 힘쓰게 된다
豈非道之所符(기비도지소부) : 이 어찌 도리에 부합되는 일이 아니며
而自然之驗邪(이자연지험사) : 자연스러움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周書曰(주서왈) : <주서>에 이르기를
農不出(농불출) : ‘농부가 생산하지 않으면
則乏其食(칙핍기식) : 식량이 부족하고
工不出(공불출) : 공인이 물건을 만들지 않으면
則乏其事(칙핍기사) : 물자가 모자라게 되며,
商不出(상불출) : 상인이 교역하지 않으면
則三寶絶(칙삼보절) : 삼보 유통이 단절된다
虞不出(우불출) : 우인이 없으면
則財匱少(칙재궤소) : 물자가 적어지고
財匱少(재궤소) : 물자가 적어지면
而山澤不辟矣(이산택불벽의) : 살림과 하천이 개발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此四者(차사자) : 이 넷은
民所衣食之原也(민소의식지원야) : 백성이 입고 먹는 근원이다


原大則饒(원대칙요) : 근원이 많으면 풍요롭고
原小則鮮(원소칙선) : 근원이 적으면 빈곤해지며
上則富國(상칙부국) : 위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下則富家(하칙부가) : 아래로는 가정을 풍부하게 한다
貧富之道(빈부지도) : 빈부의 이치는
莫之奪予(막지탈여) : 억지로 빼앗거나 줄 수 없는 것이며
而巧者有餘(이교자유여) : 재주가 있는 자는 항상 여유가 있고
拙者不足(졸자부족) : 영리하지 못한 자는 항상 부족한게 된다


太公望封於營丘(고태공망봉어영구) : 태공망이 영구지방에 봉해졌을 때
地潟鹵(지석로) : 그곳 땅은 염분이 많고
人民寡(인민과) : 백성의 수도 적었다
於是太公勸其女功(어시태공권기여공) : 이에 태공망이 부녀들에게 베를 짜도록 장려하고
極技巧(극기교) : 기술을 높이 끌어올리고
通魚鹽(통어염) : 생선과 소금을 유통시키니
則人物歸之(칙인물귀지) : 사방에서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었다
繈至而輻湊(강지이복주) :
마치 엽전꾸러미에 엽전이 꿰여지듯 수레 바퀴살이 중심으로 모여들 듯 했다
故齊冠帶衣履天下(고제관대의리천하) :
그래서 제나라의 갓·띠·의복·신발을 천하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海岱之間(해대지간) : 동해와 태산일대
斂袂而往朝焉(렴몌이왕조언) : 제후들이 옷깃을 여미고 제나라에 조견하러 왔다
其後(기후) : 그후
齊中衰(제중쇠) : 제나라가 한 때 쇠약해졌으나
管子修之(관자수지) : 관중이 다스리면서
設輕重九府(설경중구부) : 재정비하여 아홉 개의 관부를 설치했다
則桓公以霸(칙환공이패) : 이로 인해 환공이 패업을 달성하여
九合諸侯(구합제후) : 여러 차례 제후를 소집하여
一匡天下(일광천하) : 천하를 바로잡았다


而管氏亦有三歸(이관씨역유삼귀) : 관중 또한 삼귀를 가지고 있어
位在陪臣(위재배신) : 지위는 제후의 신하였으나
富於列國之君(부어열국지군) : 다른 나라 군주보다도 더 부유했다
是以齊富彊至於威宣也(시이제부강지어위선야) :
이리하여 제나라의 부강함은 위왕과 선왕시대까지 이르게 되었다


故曰(고왈) : 그래서 이르기를 ‘
倉廩實而知禮節(창름실이지예절) : 창고가 꽉 차야 예절을 알게 되고
衣食足而知榮辱(의식족이지영욕) : 의식이 넉넉해야 영욕을 알게 된다’라고 했다.
禮生於有而廢於無(예생어유이폐어무) : 예의는 재산이 있으면 생기고 없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故君子富(고군자부) : 그러므로 군자가 부유해지면
好行其德(호행기덕) : 덕 베풀기를 좋아하고
小人富(소인부) : 소인이 부유해지면
以適其力(이적기력) : 자기의 능력에 맞게 행동하게 된다


淵深而魚生之(연심이어생지) : 연못이 깊어야 고기가 살고
山深而獸往之(산심이수왕지) : 산이 깊어야 짐승이 모여들 듯이
人富而仁義附焉(인부이인의부언) : 사람도 부유해야 인의가 붙고
富者得勢益彰(부자득세익창) : 부유한 자가 세력을 얻으면 더욱 드러나고
失勢則客無所之(실세칙객무소지) : 부유하지만 세력을 잃으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以而不樂(이이불락) : 즐겁지 못한 법이다
夷狄益甚(이적익심) : 오랑캐에게서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諺曰(언왈) : 속담에 이르기를
千金之子(천금지자) :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은
不死於市(불사어시) : 시장에서 죽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此非空言也(차비공언야) : 공연한 말이 아니다


故曰(고왈) : 그래서 이르기를 ‘
天下熙熙(천하희희) : 천하는 기뻐해지면
皆爲利來(개위이래) : 이익을 위해 모여들고
天下壞壞(천하괴괴) : 천하가 무너지면
皆爲利往(개위이왕) : 어지럽게 이익을 위해 떠난다’라고 했다


夫千乘之王(부천승지왕) : 천승의 마차를 가진 임금,
萬家之侯(만가지후) : 만호를 다스리는 제후
百室之君(백실지군) : 백실을 소유한 대부들도
尙猶患貧(상유환빈) : 빈곤한 것을 두려워하는데
而況匹夫編戶之民乎(이황필부편호지민호) : 하물며 일반 백성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昔者越王句踐困於會稽之上(석자월왕구천곤어회계지상) :
옛날 월왕 구천은 회계산 위에서 고통을 겪고
乃用范蠡計然(내용범려계연) : 범여와 계연을 중용하였다


計然曰(계연왈) : 그 허연은 월왕에게 말하기를
知鬪則修備(지투칙수비) : “전쟁이 있을 것을 알면 준비를 해야하고
時用則知物(시용칙지물) : 그때에 필요한 물건을 압니다
二者形則萬貨之情(이자형칙만화지정) : 이 두 가지를 잘 알면 모든 재화의 질정을
可得而觀已(가득이관이) :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故歲在金穰(고세재금양) : 세성이 금에 있는 해는 풍년이 들고
水毁(수훼) : 수에 있는 해는 수해가 들고
木饑(목기) : 목에 있는 해는 기근이 들고
火旱(기화한) : 화에 있는 해는 가뭄이 있습니다
旱則資舟(한칙자주) : 가뭄이 든 해에는 미리 배를 준비해 두고
水則資車(수칙자차) : 수해가 있는 해에는 미리 수레를 준비해 두는 것이
物之理也(물지리야) : 사물의 이치입니다
六歲穰(육세양) : 6년마다 풍년이 들고
六歲旱(육세한) : 6년마다 가뭄이 생기고
十二歲一大饑(십이세일대기) : 12년마다 큰 기근이 일어납니다
夫糶(부조) : 무릇 쌀 값이
二十病農(이십병농) : 한 말에 20전밖에 안 나가면 농민이 고통을 겪고
九十病末(구십병말) : 90전으로 오르면 반대로 장사꾼이 고통을 받습니다
末病則財不出(말병칙재불출) : 장사꾼이 고통을 받으면 상품이 나오지 않고
農病則草不辟矣(농병칙초불벽의) : 농민이 고통을 받으면 논밭이 묵습니다
上不過八十(상불과팔십) : 비싸도 80전을 넘지 않고
下不減三十(하불감삼십) : 싸도 30전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하면
則農末俱利(칙농말구리) : 민과 상인이 함게 이로워집니다
平糶齊物(평조제물) : 농쌀값이 일정한 한계를 지키고 물자가 공평하게 유통되며
關市不乏(관시불핍) : 사방의 물건이 관문을 통과하여 시장에 부족하지 않게 함이
治國之道也(치국지도야) : 나라를 다스리는 길입니다


積著之理(적저지리) : 축적의 이치는
務完物(무완물) : 물자를 온전한 채로 보존하는 것이지
無息幣(무식폐) : 상한 물건을 감추는 것이 아닙니다
以物相貿易(이물상무역) : 물자는 서로 교역하고
腐敗而食之貨勿留(부패이식지화물류) : 상한 것은 자기 집에서 쓰도록 합니다
無敢居貴(무감거귀) : 또 비싼 것을 유보해 두어서는 안 됩니다

論其有餘不足(논기유여불족) : 물건이 남아 도는지 모자라는지 논하면
則知貴賤(칙지귀천) : 그것이 귀한지 천한지를 압니다
貴上極則反賤(귀상극칙반천) : 높은 값이 극도에 다다르면 헐값으로 돌아오고
賤下極則反貴(천하극칙반귀) : 싼 값이 극도에 이르면 높은 값으로 되돌아갑니다
貴出如糞土(귀출여분토) : 비싼 물건은 오물을 배설하듯 자꾸 팔아 버리고
賤取如珠玉(천취여주옥) : 싼 물건은 구슬을 손에 넣듯 소중히 사들입니다


財幣欲其行如流水(재폐욕기행여류수) :
물건과 돈은 흐르는 물처럼 원활하게 유동시켜야 합니다.”


修之十年(수지십년) : 이리하여 구천이 계연의 법을 10년간 행하니
國富(국부) : 나라는 부강해지고
厚賂戰士(후뢰전사) : 병사들은 풍족한 금품을 받았다
士赴矢石(사부시석) : 이로써 병사는 시석을 향해 용맹하게 달리기를
如渴得飮(여갈득음) : 목마른 사람이 마실 물을 얻은 것처럼 하여
遂報彊吳(수보강오) : 구천은 드디어 강한 오나라에 보복하여
觀兵中國(관병중국) : 병위를 중국에 떨치고
稱號五霸(칭호오패) : 오패의 한 사람이 되었다


范蠡旣雪會稽之恥(범려기설회계지치) : 범려는 회계의 부끄러움을 씻고 나서
乃喟然而歎曰計然之策七(내위연이탄왈계연지책칠) : 탄식해 말하기를 “계연의 꾀는 일곱이 있는데
越用其五而得意(월용기오이득의) : 월나라는 그 중 다섯을 써서 목적을 달성했다
旣已施於國(기이시어국) : 이미 나라에 사용해 보았으니 
吾欲用之家(오욕용지가) : 나는 이를 집에 써 보겠다.”
乃乘扁舟浮於江湖(내승편주부어강호) : 이에 곧 작은 배를 타고 강호로 배를 띄우고 가
變名易姓(변명역성) : 성명을 바꾸었다
適齊爲鴟夷子皮(적제위치이자피) : 제나라로 가서는 ‘치아자피’라고 일컬고
之陶爲朱公(지도위주공) : 도나라로 가서는 ‘주공’이라고 불렀다
朱公以爲陶天下之中(주공이위도천하지중) : 주공은 “도나라는 천하의 중앙이며
諸侯四通(제후사통) : 사방의 제후국에 통해서
貨物所交易也(화물소교역야) : 물자의 교역이 빈번한 곳이다.”
하고
乃治産積居(내치산적거) : 이에 곧 생업에 종사하여 물자를 축적해 두었다가
與時逐而不責於人(여시축이불책어인) :
시기를 보아 오직 자연의 시기를 기다릴 뿐 사람의 노력에는 의지하지 않았다
故善治生者(고선치생자) : 이같이 생업을 잘 운영하는 사람은
能擇人而任時(능택인이임시) : 거래 상대를 고른 다음에야 자연의 시기에 맡긴다
十九年之中三致千金(십구년지중삼치천금) : 주공은 19년 동안에 세 번이나 천 금을 모았는데
再分散與貧交疏昆弟(재분산여빈교소곤제) : 그중 두 번의 것은 가난한 친구와 먼 친척에게 나눠 주었다
此所謂富好行其德者也(차소위부호행기덕자야) : 이것이 소위 <부유하면 즐겨 그 덕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後年衰老而聽子孫(후년쇠노이청자손) : 그는 연로하자 집안 일을 자손에게 맡겼는데
子孫脩業而息之(자손수업이식지) : 자손들이 집안을 다스리고 재산을 불리니 드디어
遂至巨萬(수지거만) : 부가 거만에 달했다
故言富者皆稱陶朱公(고언부자개칭도주공) :
그런 까닭에 부를 말하는 사람은 모두 도주공을 일컫는다


子贛旣學於仲尼(자공기학어중니) : 자당은 중니에게 나아가 배운 다음
退而仕於衛(퇴이사어위) : 스승을 하직하고 위나라로 가서 벼슬을 하고
廢著鬻財於曹魯之閒(폐저죽재어조노지한) :
조·노 지방에서 물자를 축척하기도 하고 시기를 기다려 팔기도 하여 재산을 모았다
七十子之徒(칠십자지도) : 공문의 70여 제자들 중에서
賜最爲饒益(사최위요익) : ‘사’는 가장 부유했고
原憲不厭糟穅(원헌불염조강) : ‘원헌’은 비지와 쌀겨도 제대로 먹지 못하여
匿於窮巷(익어궁항) : 뒷골목에서 가난하게 숨어 살았다
子貢結駟連騎(자공결사연기) : 자공은 사두마차를 타고
束帛之幣以聘享諸侯(속백지폐이빙향제후) :
가마 수행원들을 거느리며 비단 뭉치를 선물로 그려갖고 다니며 제후들과 교제하자
所至(소지) : 그가 찾아가는 곳마다
國君無不分庭與之抗禮(국군무불분정여지항례) :
나라의 왕들은 몸소 뜰로 내려와 그에게 대등한 예를 행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夫使孔子名布揚於天下者(부사공자명포양어천하자) :
무릇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골고루 알려진 것은
子貢先後之也(자공선후지야) : 실상 자공이 공자를 모시고 다라다녀기 때문이
此所謂得埶而益彰者乎(차소위득예이익창자호) :
이것이 이른바 <세력을 얻으면 더욱 세상에 드러나는것>이 아니겠는가


白圭(백규) : 백규는
周人也(주인야) : 주나라 사람인데
當魏文侯時(당위문후시) : 위왕후 때의 일이다
李克務盡地力(이극무진지력) :
당시 이극은 농경을 중히 여겨 땅을 충분히 이용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나,
而白圭樂觀時變(이백규락관시변) : 백규는 때의 변화에 따른 물가의 변동을 살피기를 좋아했다
故人弃我取(고인기아취) :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때 사들이고
人取我與(인취아여) : 세상 사람들이 사들일 때는 팔아넘겼다
夫歲孰取ꜘ(부세숙취곡) : 즉 풍년이 들면 곡식을 사들이는 대신
予之絲漆(여지사칠) : 실과 옷을 팔아 넘기고
繭出取帛絮(견출취백서) : 흉년이 드어 고치가 나와 돌면 비단과 풀솜을 사들이는 대신
予之食(여지식) : 곡식을 팔아 넘겼다
太陰在卯穰(태음재묘양) : 태음이 묘에 있는 해는 풍년이 들고
明歲衰惡(명세쇠악) : 그 이듬해는 흉년이 든다
至午旱(지오한) : 또 오에 있는 해는 큰 가뭄이 있고
明歲美(명세미) : 그 이듬해에는 수확이 많다
至酉穰(지유양) : 풍년이 들면
明歲衰惡(명세쇠악) : 다음 해에는 흉년이 된다
至子大旱(지자대한) : 자에 이르면 큰 가뭄이 들고
明歲美(명세미) : 그 이듬해에는 수확이 많다
有水(유수) : 그리고 홍수가 지는 해가 있으면 
至卯(지묘) : 다음 해는 다시 묘로 돌아온다
積著率歲倍(적저솔세배) : 백규의 축적은 대체로 해마다 배로 불어났다
欲長錢(욕장전) : 돈을 부리려면
取下ꜘ(취하곡) : 값싼 곡식을 사들이고
長石斗(장석두) : 수확을 늘이면서
取上種(취상종) : 좋은 종자를 썼다
能薄飮食(능박음식) : 거친 음식을 달게 먹고
忍嗜欲(인기욕) : 욕심을 억제하며
節衣服(절의복) : 의복을 검소히 하고
與用事僮僕同苦樂(여용사동복동고락) : 일을 시키는 노복과 고락을 함께 했으며
趨時若猛獸摯鳥之發(추시약맹수지조지발) :
시기를 보아 행동하는 데는 사나운 짐승과 새가 먹이에게 뛰어들 듯이 빨랐다


故曰吾治生産(고왈오치생산) : 그러므로 그는 말하기를 “내가 생업을 운영하는 것은
猶伊尹呂尙之謀(유이윤여상지모) : 마치 이이와 여상이 정책을 도모하여 펴듯이 하고
孫吳用兵(손오용병) : 손자와 오자가 군사를 쓰듯 했고
商鞅行法是也(상앙행법시야) : 상앙이 법을 다루듯이 했다
是故其智不足與權變(시고기지불족여권변) : 그러므로 임기 웅변하는 지혜도 없고
勇不足以決斷(용불족이결단) : 일을 결단하는 용기도 없고
仁不能以取予(인불능이취여) : 얻었다가 도로 주는 어짊도 없고
彊不能有所守(강불능유소수) : 지킬 바를 끝까지 지키는 강단도 없는 사람은
雖欲學吾術(수욕학오술) : 내 방법을 배우고 싶어도
終不告之矣(종불고지의) : 끝내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 했다


蓋天下言治生祖白圭(개천하언치생조백규) :
생각하건대 천하의 사업을 말하는 사람들이 백규를 그 조상으로 우러러 모시는 것은
白圭其有所試矣(백규기유소시의) : 백규가 실제 그것을 시험했기 대문이었다
能試有所長(능시유소장) : 다시 말해 그는 실제로 시험해서 공을 올렸지
非苟而已也(비구이이야) : 결코 함부로 하지는 않았다

 

猗頓用盬鹽起(의돈용고염기) : 의돈은 염지의 소금으로 그 몸을 일으키고
而邯鄲郭縱以鐵冶成業(이감단곽종이철야성업) :
한단의 곽종은 철광을 개발해서 사업에 성공함으로써
與王者埒富(여왕자랄부) : 다같이 부유한 점에서는 왕자와 어깨를 겨루었다


烏氏畜牧(오씨라축목) : 오씨의 나라는 사람은 목축을 업으로 했는데
及衆(급중) : 가축의 수가 불어나면
斥賣(척매) : 이를 팔아
求奇繒物(구기증물) : 신기한 비단을 사서
閒獻遺戎王(간헌유융왕) : 간간히 융왕에게 바쳤다
戎王什倍其償(융왕십배기상) : 융왕은 보상으로
與之畜(여지축) : 그들에게 열 배의 가축을 주었다
畜至用谷量馬牛(축지용곡량마우) :
이로써 그들의 가축은 골짜기마다 가득 차서 골짜기 수로 마소를 셀 정도가 되었다
秦始皇帝令倮比封君(진시황제령라비봉군) : 진시왕은 ‘나’를 제후와 동격으로 대우하여
以時與列臣朝請(이시여열신조청) : 봄가을에는 여러 신하들과 함께 조정에 들게 했다

 

而巴蜀寡婦(이파촉과부청) : 또 파에 사는 청이라는 과부는
其先得丹穴(기선득단혈) : 조상이 단사를 캐내는 굴을 발견하여
而擅其利數世(이천기리수세) : 여러 대에 걸쳐 그 이익을 독점해 왔으므로
家亦不訾(가역불자) : 그 재산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淸寡婦也(청과부야) : 청은 과부이기는 했으나
能守其業(능수기업) : 그 가업을 잘지키고
用財自衛(용재자위) : 재물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키며
不見侵犯(불견침범) : 사람들로부터 침범당하지 않았다
秦皇帝以爲貞婦而客之(진황제이위정부이객지) : 진시왕은 청을 정녀로 인정 손님으로 대우하며
爲築女懷淸臺(위축녀회청대) : 그녀를 위해 ‘여회청대’를 지었다

 

夫倮鄙人牧長(부라비인목장) : 이같이 ‘나’는 시골뜨기 목장의 주인에 불과하며
淸窮鄕寡婦(청궁향과부) : 청 산골 과부에 지나지 않았는데
禮抗萬乘(례항만승) : 제후와 같은 대우를 받으며
名顯天下(명현천하) : 그 이름을 전하에 드러내는 것은
豈非以富邪(개비이부사) : 어찌 오직 재력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漢興(한흥) : 한나라가 일어나
海內爲一(해내위일) : 천하를 통일하자
開關梁(개관량) : 관문과 다리의 통행 제한을 폐지하고
弛山澤之禁(이산택지금) : 산림과 소택에서 나무하고 고기를 잡비 못하게 한 금령을 늦춤에
是以富商大賈周流天下(시이부상대가주류천하) : 이 때문에 나라 부상과 대상들은 천하를 두루 돌았고
交易之物莫不通(교역지물막불통) : 교역하는 물자가 유통되지 않는 것이 없었으므로
得其所欲(득기소욕) : 원하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었다
而徙豪傑諸侯彊族於京師(이사호걸제후강족어경사) :

이 무렵 한나라 지방의 호걸들과 제후국의 호족들을 서울로 이주시켰다

關中自洴雍以東至河華(관중자병옹이동지하화) : 관중은 견수·하수·화산에 이르기까지
膏壤沃野千里(고양옥야천리) : 천 리에 걸친 땅이 비옥하여
自虞夏之貢以爲上田(자우하지공이위상전) : 우·하 시대의 공부에서도 상등의 전지로 인정받았다
公劉適邠(이공류적빈) : 또 주나라 공류는 빈으로 갔고
大王王季在岐(대왕왕계재기) : 대왕과 왕계는 기산에서 살고
文王作豐(문왕작풍) : 문왕은 풍을 새로운 도읍지로 하고
武王治鎬(무왕치호) : 무왕은 호를 서울로 감았다


故其民猶有先王之遺風(고기민유유선왕지유풍) :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은 아직도 선왕 때의 유풍 때문에
好稼穡(호가색) : 농사를 즐겨
殖五ꜘ(식오곡) : 오곡을 심고
地重(지중) : 고장을 중히 여겨
重爲邪(중위사) : 나쁜 짓 하는 것을 꺼리는 풍습이 있었다
及秦文孝德繆居雍(급진문효덕무거옹) : 진나라 문공·효공·목공이 옹에 도읍했을 무렵
隙隴蜀之貨物而多賈(극롱촉지화물이다가) : 그곳에는 농·촉의 화물이 모이고 장사꾼도 많았다
獻孝公徙櫟邑(헌효공사력읍) : 헌공·효공은 역읍에 도읍하였다
櫟邑北卻戎翟(력읍북각융적) : 역읍은 북쪽에 있어서 융적을 격퇴하는 데 편리한 곳이었고
東通三晉(동통삼진) : 동쪽은 삼진과 통해서 또한
亦多大賈(역다대가) : 큰 장사꾼이 많았다
武孝昭治咸陽(무효소치함양) : 무왕·소왕은 함양에 도읍을 정했고
因以漢都(인이한도) : 한나라는 그곳에 가까운 장안에 도읍을 정했으므로
長安諸陵(장안제릉) : 장안 주변의 여러 릉이 있는 곳에는
四方輻湊並至而會(사방폭주병지이회) :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地小人衆(지소인중) : 그로써 좁은 땅에 인구가 많아지자
故其民益玩巧而事末也(고기민익완교이사말야) :
그래서 주민들은 점점 완악해져서 상업에 종사하였다
南則巴蜀(남칙파촉) : 남쪽은 파·촉이다
巴蜀亦沃野(파촉역옥야) : 파·촉 또한 들이 비옥하여
地饒巵薑丹沙石銅鐵竹木之器(지요치강단사석동철죽목지기) :
연지·생강·단사·구리·쇠와 대나무 그릇, 나무 그릇이 많이 나므로
南御滇僰(남어전북) : 그 남쪽에 있는 전·북을 능가한다
僰僮(북동) : 북로부터는 노비를 많이 보내오며
西近邛笮(서근공착) : 서쪽은 공·착에 가깝다
笮馬旄牛(착마모우) : 착에서는 말과 모우를 생산한다
然四塞(연사새) : 파·촉 땅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으나
棧道千里(잔도천리) : 그 산에는 천 리에 걸친 잔도가 부설되어
無所不通(무소불통) :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唯襃斜綰轂其口(유포사관곡기구) :
오직 포·사·관·곡의 각지에서 관구로 통하는 도로를 수레의 바퀴처럼 막아서
以所多易所鮮(이소다역소선) : 여기서 파·촉의 풍부한 물자는 부족한 물자와 교환되기도 한다
天水隴西北地上郡與關中同俗(천수롱서북지상군여관중동속) :
천수·농서·북지·상군은 관중과 같은 풍속을 가졌으나
然西有羌中之利(연서유강중지리) : 서쪽에는 강중과의 교역에 이득이 있고
北有戎翟之畜(북유융적지축) : 북쪽에는 융적의 풍부한 가축이 있다
畜牧爲天下饒(축목위천하요) : 목축이 성하기로는 천하에서 풍부하다
然地亦窮險(연지역궁험) : 그러나 이곳 땅은 구석진 데다 험난한 곳이라
唯京師要其道(유경사요기도) : 겨우 장안에만 길이 통했다
故關中之地(고관중지지) : 그러므로 관중의 땅이
於天下三分之一(어천하삼분지일) : 천하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而人衆不過什三(이인중불과십삼) : 인구는 10분의 3에 불과하지만
然量其富(연량기부) : 그 부를 계산해 보면
什居其六(십거기육) : 10분의 6에 이른다
昔唐人都河東(석당인도하동) : 옛날 제요는 하동에 도읍하였고
殷人都河內(은인도하내) : 은나라는 하내에 도읍하였고
周人都河南(주인도하남) : 주나라는 하남에 도읍하였다
夫三河在天下之中(부삼하재천하지중) : 무릇 삼하는 천하의 중앙에 위치하여
若鼎足(약정족) : 솥발처럼 셋으로 갈라져
王者所更居也(왕자소갱거야) : 왕자가 번갈아 도읍한 곳이다
建國各數百千歲(건국각수백천세) : 그 왕조는 제각기 몇백 년에서 천 년에 걸쳐 내려왔고
土地小狹(토지소협) : 땅은 좁고
民人衆(민인중) : 사람은 많았다
都國諸侯所聚會(도국제후소취회) : 게다가 그 도읍지는 제후들이 모인 곳이었으므로
故其俗纖儉習事(고기속섬검습사) : 자연 영리에 밝고 인색하고 요령이 좋아졌다
楊平陽陳西賈秦翟(양평양진서가진적) : 양·평양으로는 서쪽은 진과 적의 거주지와 거래하고
北賈種代(북가종대) : 북쪽으로는 종·대와 거래한다
種代(종대) : 종대는
石北也(석북야) : 석의 북쪽에 있어
地邊胡(지변호) : 흉노와 경계를 맞대었기 때문에
數被寇(삭피구) : 자주 침범당한다
人民矜懻忮(인민긍기기) : 그 주민들은 자존심이 강하여 지기 싫어하며
好氣(호기) : 용맹을 좋아하고
任俠爲姦(임협위간) : 의협풍이 있어 간악한 일을 행하면서
不事農商(불사농상) : 농사나 장사를 힘쓰지 않는다
然迫近北夷(연박근북이) : 그러나 북쪽 만이와 인접하여
師旅亟往(사려극왕) : 토벌군이 자주 출동하기 때문에
中國委輸時有奇羨(중국위수시유기선) : 중국에서 자주 기이하고 부러운 물자가 보내지기도 한다
其民羯羠不均(기민갈이불균) : 그 주민은 대개 흉노의 무리와 섞여 사는데
自全晉之時固已患其僄悍(자전진지시고이환기표한) :
들양처럼 성격이 강포해서 진이 아직 한·위·조로 갈라지기 전부터 진나라의 골칫거리이기도 했다
而武靈王益厲之(이무령왕익려지) : 게다가 조나라 무령왕이 더욱 그들을 정려하였으므로
其謠俗猶有趙之風也(기요속유유조지풍야) : 이곳 풍속에는 조의 유풍이 있다
故楊平陽陳掾其閒(고양평양진연기한) : 그래서 양·평양의 백성들은 이러한 조건을 잘 이용하여
得所欲(득소욕) : 얻고 싶은 물자를 손에 넣는다
溫軹西賈上黨(온지서가상당) : 온·지는 서쪽으로는 상당과 거래하고
北賈趙中山(북가조중산) : 북쪽으로는 조·중산과 거래한다
中山地薄人衆(중산지박인중) : 중산은 땅이 메마르고 인구가 많은 데다
猶有沙丘紂淫地餘民(유유사구주음지여민) :
여전히 사구에는 은나라 주왕이 멋대로 음란한 짓을 하던 자손들이 산다
民俗懁急(민속환급) : 그들이 민속은 경박하고 잔인할 뿐 아니라
仰機利而食(앙기리이식) : 생활조차도 교활한 수단에 의지하여 먹고 산다
丈夫相聚游戲(장부상취유희) : 남자들은 서로 어울려 놀고 희롱하며
悲歌忼慨(비가강개) : 슬픈 노래를 불러 올분을 터뜨리며
起則相隨椎剽(기칙상수추표) : 활동을 할 때는 패를 지어 강도짓을 하고
休則掘冢作巧姦冶(휴칙굴총작교간야) :
쉴 때는 무덤을 파헤쳐 물건을 훔쳐내고 교묘한 방법으로 사람들에 아부하고
多美物(다미물) : 미인들이 많아
爲倡優(위창우) : 악기를 다루며 배우 노릇을 하기도 한다
女子則鼓鳴瑟(녀자칙고명슬) : 여자들은 소리 좋은 큰 비파를 타고
跕屣(접사) : 작은 신을 신으며
游媚貴富(유미귀부) : 귀인과 부호에게 꼬리쳐
入後宮(입후궁) : 후궁으로 들어가고
徧諸侯(편제후) : 어떤 제후국에든 두루 나가 산다
然邯鄲亦漳河之閒一都會也(연감단역장하지한일도회야) :
한단 또한 장수와 하수 사이에 있는 큰 고을로서
北通燕涿(북통연탁) : 북쪽으로는 연·탁에 통하고
南有鄭衛(남유정위) : 남쪽에는 정·위가 있다
鄭衛俗與趙相類(정위속여조상류) : 정·위의 풍습은 조와 비슷하나
然近梁魯(연근량노) : 양·노에 가까우므로
微重而矜節(미중이긍절) : 다소 중후하고 절조를 숭상하는 면이 있다
濮上之邑徙野王(복상지읍사야왕) :
복상 사람들은 진왕 정 때문에 임금과 함께 야왕으로 옮겨 갔다
野王好氣任俠(야왕호기임협) : 야왕 사람들은 기개를 소중히 알고 임협의 풍이 있는데
衛之風也(위지풍야) : 그것은 위의 유풍이다
夫燕亦勃碣之閒一都會也(부연역발갈지한일도회야) :
대저 연은 발해와 갈석산 사이에 있는 큰 고을이다
南通齊趙(남통제조) : 연나라는 남쪽은 제·조에 통하고
東北邊胡(동북변호) : 동북쪽은 흉노와 경계를 접하여
上谷至遼東(상곡지료동) : 상곡으로부터 요동에 이른다
地踔遠(지탁원) : 변두리 땅은 아주 먼 곳에 있어서
人民希(인민희) : 주민이 적고
數被寇(수피구) : 자주 침범을 당했다
大與趙代俗相類(대여조대속상류) : 민속은 조·대와 대단히 닮았으나
而民雕捍少慮(이민조한소려) : 이곳 백성은 아직도 독수리처럼 정한하고 사려가 얕다
有魚鹽棗栗之饒(유어염조율지요) : 물고기·소금·대추·밤이 많이 난다
北鄰烏桓夫餘(북린오환부여) : 북족은 조항·부여와 이웃하고
東綰穢貉(동관예맥) : 동쪽은 예맥·
朝鮮眞番之利(조선진번지리) : 조선·진번과의 교역에서 이득을 독점한다
洛陽東賈齊魯(락양동가제노) : 낙양은 동족으로 제·노와 거래하고
南賈梁楚(남가량초) : 남쪽으로 양·초와 거래한다
故泰山之陽則魯(고태산지양칙노) : 그러므로 태산 남쪽은 노이며
其陰則齊(기음칙제) : 북쪽은 제이다
齊帶山海(제대산해) : 제는산과 바다로 둘러싸였는데
膏壤千里(고양천리) : 기름진 들이 천 리에 걸쳤으므로
宜桑麻(의상마) : 뽕과 삼이 잘 되고 
人民多文綵布帛魚鹽(인민다문채포백어염) :
사람은 많으며 아름다운 무늬의 옷감이며 베·비단·생선·소금 등을 생산한다
臨菑亦海岱之間一都會也(임치역해대지간일도회야) :
임치도 동해와 태산 사이에 있는 큰 고을이다
其俗寬緩闊達(기속관완활달) : 이곳 풍속은 너그럽고 활달하며
而足智(이족지) : 지혜가 있고
好議論(호의논) : 의논하길 좋아하고
地重(지중) : 성격이 진중해서
難動搖(난동요) : 남에게 휩쓸려 따라가는 일이 없다
怯於衆鬪(겁어중투) : 단체로 싸우는 데는 겁이 많지만
勇於持刺(용어지자) : 개인끼리의 싸움에는 용감하다
故多劫人者(고다겁인자) : 따라서 남을 협박하는 사람이 많다
大國之風也(대국지풍야) : 대체로 대국풍의 기질이 있고
其中具五民(기중구오민) : 그 속에서 오민이 두루 모여 산다
而鄒魯濱洙泗(이추노빈수사) : 추·노는 수·사의 강물을 끼어
猶有周公遺風(유유주공유풍) : 지금까지도 주공의 유풍이 있다
俗好儒(속호유) : 풍속은 유학을 좋아하고
備於禮(비어례) : 예를 잘 갖추기 때문에
故其民齪齪(고기민착착) : 사람들은 행동이 까다롭다
頗有桑麻之業(파유상마지업) : 뽕과 삼의 산업이 성하나
無林澤之饒(무림택지요) : 숲이나 못에서 나는 산물은 적다
地小人衆(지소인중) : 땅은 좁고 사람은 많기 때문에
儉嗇(검색) : 사람들은 검소하게 생활하며
畏罪遠邪(외죄원사) : 죄를 두려워하여 사악하지 않다
及其衰(급기쇠) : 그러나 노나라가 쇠한 뒤로는
好賈趨利(호가추리) : 그곳 주민들이 장사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甚於周人(심어주인) : 이익을 찾는 점은 주나라 사람들보다 심하다
夫自鴻溝以東芒碭(부자홍구이동망탕) : 홍구에서 동족, 망과 갈에서
以北屬巨野(이북속거야) : 북쪽은 거야로서
此梁宋也(차량송야) : 이곳들은 양과 송의 땅이다
陶睢陽亦一都會也(도휴양역일도회야) : 도와 수양도 역시 이곳의 도시다
昔堯作游於成陽(석요작유어성양) : 옛날 요는 이궁을 성양에 만들고
舜漁於雷澤(순어어뢰택) : 순은 뇌택에서 고기를 잡고
湯止于亳(탕지우박) : 은나라 탕왕은 박에 도읍을 정했다
其俗猶有先王遺風(기속유유선왕유풍) : 그러므로 그들 땅의 풍속에는 아직 선왕의 유풍이 남아
重厚多君子(중후다군자) :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중후해서 군자가 많고
好稼穡(호가색) : 밭갈이를 좋아한다
雖無山川之饒(수무산천지요) : 산과 들에서 나오는 산물은 풍부하지 않으나
能惡衣食(능악의식) : 험한 옷과 소박한 음식을 달게 여기며
致其蓄藏(치기축장) : 재물을 모아 간직한다
越楚則有三俗(월초칙유삼속) : 월과 초의 당에는 세 가지 풍습이 있다
夫自淮北沛陳汝南南郡(부자회북패진여남남군) : 무릇 회수 북쪽에서 패·진·여남·남군까지의 땅
此西楚也(차서초야) : 이곳들이 바로 서초다
其俗剽輕(기속표경) : 그 풍습은 표한하고 경솔하여
易發怒(이발노) : 성을 잘 내고
地薄(지박) : 땅은 척박해서
寡於積聚(과어적취) : 물자를 축적하기 어렵다
江陵故郢都(강릉고영도) : 강릉은 원래 초나라 도읍지인 영으로
西通巫巴(서통무파) : 서쪽으로는 무와 파로 통하고
東有雲夢之饒(동유운몽지요) : 동족에는 운몽의 풍요한 산물이 있다
陳在楚夏之交(진재초하지교) : 진은 초와 하의 중간에 있어
通魚鹽之貨(통어염지화) : 생선과 소금 등의 물자를 교역하고
其民多賈(기민다가) : 그곳 주민들은 장사끈이 많다
徐僮取慮(서동취려) : 서·나·취로의 주민은
則淸刻(칙청각) : 청련하기는 하나 각박하고
矜己諾(긍기락) : 약속을 중하게 아는 것을 자랑으로 한다
彭城以東(팽성이동) : 팽성에서 동쪽으로
東海吳廣陵(동해오광릉) : 동해와 오 그리고 광릉까지의 땅
此東楚也(차동초야) : 이곳들은 바로 동초이다
其俗類徐僮(기속류서동) : 이곳의 풍습은 ‘서’와 ‘나’와 비슷하다
朐繒以北(구증이북) : 또 구와 히로부터 그 북쪽의
俗則齊(속칙제) : 풍속은 제와 비슷하고
浙江南則越(절강남칙월) : 절강 남쪽은 월과 비슷하다
夫吳自闔廬春申王濞三人(부오자합려춘신왕비삼인) : 오는 오왕 합려·춘신군·오왕 비 세 사람이
招致天下之喜游子弟(초치천하지희유자제) :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각각 천하를 돌아다니는 젊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東有海鹽之饒(동유해염지요) : 동쪽으로는 풍효한 바다의 소금
章山之銅(장산지동) : 장산의 구리
三江五湖之利(삼강오호지리) : 삼강·오호에서 나는 산물의 이득이 있다
亦江東一都會也(역강동일도회야) : 또한 강동의 대도시의 하나다
衡山九江江南豫章長沙(형산구강강남예장장사) : 형산과 구강과 강수 남족의 예장과 장사의 따은
是南楚也(시남초야) : 이것들이 바로 남초이다
其俗大類西楚(기속대류서초) : 이곳 풍습은 서촉과 아주 비슷하다
郢之後徙壽春(영지후사수춘) : 옛날 초나라는 도읍을 ‘영’에서 ‘수춘’으로 옮겼었는데
亦一都會也(역일도회야) : 수춘도 또한 대도시의 하나다
而合肥受南北潮(이합비수남북조) : 합비는 강수와 회수의 조수를 받으며
皮革鮑木輸會也(피혁포목수회야) : 피혁·자반·목재 등의 집산지다
與閩中干越雜俗(여민중간월잡속) : 풍습에는 민중과 우월의 것이 섞였기 때문에
故南楚好辭(고남초호사) : 그래서 남초 주민의 말은
巧說少信(교설소신) : 아무리 듣기 좋아도 믿기 어렵다
江南卑濕(강남비습) : 강수 남쪽은 땅이 저습하여
丈夫早夭(장부조요) : 남자는 일직 죽는다
多竹木(다죽목) : 대나무나 목재가 많다
豫章出黃金(예장출황금) : 예장은 황금을 생산하고
長沙出連錫(장사출연석) : 장사는 연과 주석을 생산한다
然菫菫物之所有(연근근물지소유) : 그러나 극히 양이 적으므로
取之不足以更費(취지불족이갱비) : 캐내어도 비용이 더 많이 든다
九疑蒼梧以南至儋耳者(구의창오이남지담이자) : 구의·창오에서 남쪽 ‘담이’에 이르기까지의 땅은
與江南大同俗(여강남대동속) : 강수 남쪽과 풍속이 거의 같으나
而楊越多焉(이양월다언) : 양월의 영향이 많다 ‘
番禺亦其一都會也(번우역기일도회야) : 번우’ 또한 이곳의 대도시의 하나로
珠璣犀瑇瑁果布之湊(주기서대모과포지주) : 주기·서대·모과·과일·갈포의 집산지이다
潁川南陽(영천남양) : 영천과남양은
夏人之居也(하인지거야) : 옛 하나라 사람이 살던 곳이다
夏人政尙忠朴(하인정상충박) : 하나라 사람은 충실하고 소박한 정치를 숭상했으므로
猶有先王之遺風(유유선왕지유풍) : 이곳에는 여전히 선왕의 유풍이 있다
潁川敦愿(영천돈원) : 영주 주민은 후덕하고 조심성이 많다
秦末世(진말세) : 진나라 말기에는
遷不軌之民於南陽(천불궤지민어남양) :
조정 명령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남양에 이주시키기도 했다
南陽西通武關鄖關(남양서통무관운관) : 남양은 서쪽으로는 무관·운관에 통하고
東南受漢江淮(동남수한강회) : 동남쪽으로는 한수·강수·회수가 흐른다
宛亦一都會也(완역일도회야) : ‘완’도 또한 이곳의 대도시의 하나이다
俗雜好事(속잡호사) : 주민의 풍습은 여러 가지 잡다하며 일을 좋아하고
業多賈(업다가) : 장사꾼이 많다
其任俠(기임협) : 임협의 풍속이
交通潁川(교통영천) : 이곳 영천까지 통했으므로
故至今謂之夏人(고지금위지하인) :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라 사람으로 불린다
夫天下物所鮮所多(부천하물소선소다) : 무릇 천하에는 물자가 적은 곳도 있고 풍부한 곳도 있다
人民謠俗(인민요속) : 백성들의 민요와 풍습은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
山東食海鹽(산동식해염) : 산동에서는 바닷소금을 먹고
山西食鹽鹵(산서식염로) : 산서에서는 바윗소금을 먹으며
領南沙北固往往出鹽(령남사북고왕왕출염) :
영남·사북에도 원래부터 소금을 생산하는 곳이 있어 그곳 백성들은 그것을 식용으로 한다
大體如此矣(대체여차의) : 물건과 사람의 관계는 대체로 이러하다
總之(총지) : 총괄해서 보면
楚越之地(초월지지) : 초·와 월 지역은
地廣人希(지광인희) : 땅은 넓지만 사람이 드물며
飯稻羹魚(반도갱어) : 쌀을 주식으로 하고 생선국을 끓여 먹으며
或火耕而水耨(혹화경이수누) :
농사 짓는 방법은 거둬들인 다음 논의 마른 풀을 불태워 갈고 여름에는 논에 물을 대고 김을
매는 방법을 취한다
果隋蠃蛤(과수라합) : 초목의 열매와 생선과 조개 따위는
不待賈而足(불대가이족) : 장사꾼을 기다리지 않아도 충분하며
地埶饒食(지예요식) : 지형상 식량은 풍부해서
無飢饉之患(무기근지환) : 기근의 환란이 없다
以故呰窳偸生(이고자유투생) : 그런 까닭에 백성들은 게을러서 그날그날 살아가며
無積聚而多貧(무적취이다빈) : 모은 것도 없는 가난뱅이가 많다
是故江淮以南(시고강회이남) : 이 때문에 강·회 이남에는
無凍餓之人(무동아지인) : 춥고 배고픈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亦無千金之家(역무천금지가) : 또 천 금을 가진 부짓집도 없다
沂泗水以北(기사수이북) : 기수와 사수의 북쪽은
宜五ꜘ桑麻六畜(의오곡상마육축) : 오곡과 뽕나무 삼나무를 심고 육축을 기르기에 적당하나
地小人衆(지소인중) : 땅은 춥고 사람은 많은 데다
數被水旱之害(수피수한지해) : 자주 수해와 가뭄이 들므로
民好畜藏(민호축장) : 주민들이 자진해서 저축을 한다
故秦夏梁魯好農而重民(고진하량노호농이중민) :
그러므로 진·하·양·진의 땅에서는 농사에 힘을 기울이며 농민을 소중히 여긴다
三河宛陳亦然(삼하완진역연) : 삼하·완·진의 당도 그와 같으나
加以商賈(가이상가) : 상업에 힘을 기울인다
齊趙設智巧(제조설지교) : 제·조에서는 지혜와 재주를 부리고
仰機利(앙기리) : 기회를 보아 이익을 도모하며
燕代田畜而事蠶(연대전축이사잠) :
연·대에서는 농사와 목축을 주업으로 하는 한편 양잠에도 힘쓴다


由此觀之(유차관지) : 이것으로 볼 때
賢人深謀於廊廟(현인심모어랑묘) : 현인이 묘당에서 깊이 꾀하고
論議朝廷(론의조정) : 조정에서 의논하고
守信死節隱居巖穴之士(수신사절은거암혈지사) :
믿음을 지켜 절개에 죽는 것이나 세상을 피해 숨은 고사가
設爲名高老安歸乎(설위명고노안귀호) :
명성을 높이 천하에 알리는 것도 결국은 어디에 귀결하는가
歸於富厚也(귀어부후야) : 그것은 부귀를 위한 것이다
是以廉吏久(시이렴리구) : 그러므로 청렴한 관리도 오래 일하는 가운데
久更富(구갱부) : 승진되어 보다 부유해지고
廉賈歸富(렴가귀부) : 폭리를 탐하지 않는 장사꾼도 마침내 부유해진다


富者(부자) : 부는
人之情性(인지정성) : 사람의 본성인지라
所不學而俱欲者也(소불학이구욕자야) :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故壯士在軍(고장사재군) : 그러므로 장사가 싸움에 임하여
攻城先登(공성선등) : 성을 공격해서 먼저 오르고
陷陣卻敵(함진각적) : 적진을 함락하고 적을 물리치며
斬將搴旗(참장건기) : 적장을 목베고 적의 깃발을 앗으며
前蒙矢石(전몽시석) : 자진해서 서식을 무릅쓰고
不避湯火之難者(불피탕화지난자) : 탕화의 어려움도 피하지 않는 것은
爲重賞使也(위중상사야) : 그 목적이 중한 상을 받는 데 있기 때문이다


其在閭巷少年(기재여항소년) : 또 마음의 젊은 사람들이
攻剽椎埋(공표추매) : 강도질을 임삼고 사람을 쳐죽인 다음 묻어버리고
劫人作姦(겁인작간) : 협박하며 간악한 짓을 되풀이하고
掘冢鑄幣(굴총주폐) : 무덤을 파헤쳐 물건을 훔치고
任俠幷兼(임협병겸) : 돈을 위조하고 임협인 체하면서 강탈을 하며
借交報仇(차교보구) : 같은 패들을 대신해서 목숨을 걸고 원수를 갚으며
簒逐幽隱(찬축유은) : 후미진 곳에서 물건을 빼앗고 사람을 내쫓는 등
不避法禁(불피법금) : 법과 금령을 피하지 않고
走死地如騖者(주사지여무자) : 달리는 말처럼 죽을 곳에 뛰어드는 것도
其實皆爲財用耳(기실개위재용이) : 실은 모두 재물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다


今夫趙女鄭姬(금부조여정희) : 또 저 조나라와 정나라의 미녀들이
設形容(설형용) : 얼굴을 아름답게 꾸미고
揳鳴琴(설명금) : 소리 고운 거문고를 켜고
揄長袂(유장몌) : 긴 소매를 나부끼며
躡利屣(섭리사) : 춤추는 신을 신고
目挑心招(목도심초) : 눈으로 이끌고 마음으로 불러서
出不遠千里(출불원천리) : 천 리를 멀다 않고
不擇老少者(불택노소자) : 나아가 손님의 나이을 가리지 않는 것은
奔富厚也(분부후야) : 부귀를 향해 치닫는 것이다


游閑公子(유한공자) : 유한 공자들이
飾冠劍(식관검) : 관과 칼을 꾸며 차고
連車騎(연차기) : 수행하는 거마를 따르게 하는 것도
亦爲富貴容也(역위부귀용야) : 부귀를 과시하기 위한 꾸밈이다
弋射漁獵(익사어렵) : 주살로 고기를 잡기 위해
犯晨夜(범신야) : 새벽 일찍 나가 밤 깊어 돌아오며
冒霜雪(모상설) : 서리도 눈도 아랑곳 않고
馳阬谷(치갱곡) : 깊은 골짜기를 뛰어 돌아다니며
不避猛獸之害(불피맹수지해) : 맹수의 위험도 피하지 않는 것은
爲得味也(위득미야) : 맛있는 것을 실컷 먹기 위해서다


博戲馳逐(박희치축) : 박희·경마·
鬪雞走狗(투계주구) : 투계·경견 등으로
作色相矜(작색상긍) : 얼굴 빛을 면하여 서로 자랑하고
必爭勝者(필쟁승자) : 꼭 싸워 이기려는 것은
重失負也(중실부야) : 힘써 건 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醫方諸食技術之人(의방제식기술지인) : 의술이나 그 밖의 모든 기술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
焦神極能(초신극능) : 노심초사하여 재주와 힘을 짜내는 것도
爲重糈也(위중서야) : 막대한 보수를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吏士舞文弄法(리사무문롱법) : 관리가 교묘한 농간을 부리며 법문을 비뚤어지게 해석하기도 하고
刻章僞書(각장위서) : 도장과 문서를 위조해
不避刀鋸之誅者(불피도거지주자) : 형벌을 받는 것마저 피하지 않는 것은
沒於賂遺也(몰어뢰유야) : 뇌물에 탐닉하기 때문이다
農工商賈畜長(농공상가축장) : 공·공·상들이 저축과 이식에 열을 내는 것도
固求富益貨也(고구부익화야) : 원래 부를 구하고 재산을 부리려 하기 때문이다


此有知盡能索耳(차유지진능색이) :
부를 쌓은 일이라면 있는 지혜와 능력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상도인지라
終不餘力而讓財矣(종불여력이양재의) :
있는 힘을 다 짜내지 않으면 재물을 남에게 넘겨 주는 일을 부른다
諺曰百里不販樵(언왈백리불판초) : 속담에 이르기를 <백 리 먼 곳에 나가 땔나무를 팔지 말라
千里不販糴(천리불판적) : 천리 먼 곳에 나가 쌀을 팔지 말라
居之一歲(거지일세) : 1년 살려거든
種之以ꜘ(종지이곡) : 곡식을 심고
十歲(십세) : 10년 살려거든
樹之以木(수지이목) : 나무를 심고
百歲(백세) : 100년 살려거든
來之以德(래지이덕) : 덕을 베풀어라
德者(덕자) : 덕이란
人物之謂也(인물지위야) : 인물을 말함이라


今有無秩祿之奉(금유무질록지봉) : 그런데 여기 관으로부터의 봉록도 없고
爵邑之入(작읍지입) : 지위나 영지의 수입도 없지만
而樂與之比者(이락여지비자) : 이것들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낙을 가진 사람이 있다
命曰素封(명왈소봉) : 이것을 소봉이라고 부른다
封者食租稅(봉자식조세) : 봉이란 영지로부터의 조세를 거두는 것이다
歲率戶二百(세솔호이백) : 해마다 한 호에서 2백 전을 걷는다고 하면
千戶之君則二十萬(천호지군칙이십만) :
천 호의 영지를가진 임금은 연수입이 20만 전이나 되는지라
朝覲聘享出其中(조근빙향출기중) :
입조의 비용이며 제후들과의 교제비를 그 안에서 염출할 수 있다
庶民農工商賈(서민농공상가) : 서민인 농·공·생상의 경우
率亦歲萬息二千戶(솔역세만식이천호) : 원금 1만 전에 대한 한 해 이식은 2천 전이 되므로
百萬之家則二十萬(백만지가칙이십만) : 백만 전의 자산이 있는 집이라면 이식은 20만 전이 되어
而更傜租賦出其中(이갱요조부출기중) : 병역·요역의 대인료와 전조·인두세가 이 중에서 나온다
衣食之欲(의식지욕) : 입고 먹는 것도
恣所好美矣(자소호미의) : 욕구대로 할 수 있다
故曰陸地牧馬二百蹄(고왈륙지목마이백제) : 그러므로 <연간 말 200마리,
牛蹄角千(우제각천) : 또는 소 250마리 또는
千足羊(천족양) : 양 250마리를 키울 수 있는 목장,
澤中千足彘(택중천족체) : 연간 돼지 250마리를 키울 수 있는 습지대
水居千石魚陂(수거천석어피) : 1000 섬의 고기를 양식할 수 있는 못
山居千章之材(산거천장지재) : 연간 연간 1000 장을 벌채할 수 있는 산림
安邑千樹棗(안읍천수조) : 안읍의 1000 그루 대추나무
燕秦千樹栗(연진천수율) : 연·진의 1000 그루의 밤나무
蜀漢江陵千樹橘(촉한강릉천수귤) : 촉한·강릉의 1000 그루의 귤나무
淮北常山已南(회북상산이남) : 회북·상산 이남 및
河濟之閒千樹萩(하제지한천수추) : 하수·제수 사이의 천 그루의 가래나무
陳夏千畝漆(진하천무칠) : 진·하의 1000묘의 대나무숲
齊魯千畝桑麻(제노천무상마) : 제·노의 1000묘의 봉나무밭 또는 삼밭
渭川千畝竹(위천천무죽) : 위천 유역의 1000묘의 대나무숲
及名國萬家之城(급명국만가지성) : 거기에 각국 1만 호 이상 도시의 교외에서
帶郭千畝畝鍾之田(대곽천무무종지전) : 1묘에 1종의 수확이 있는 1000묘의 밭,
若千畝巵茜(약천무치천) : 혹은 천 묘의 연지·꼭두서니
千畦薑韭(천휴강구) : 1000 고랑의 생강·부추밭 이상의
此其人皆與千戶侯等(차기인개여천호후등) :
어느 것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수입이 1천 호의 영지를 가진 제후와 같다.>고 했다
然是富給之資也(연시부급지자야) : 그러나 이것들은 확실히 필요하고도 충분한 무의 자원인지라
不窺市井(불규시정) : 그것을 자진 사람들은 기웃거릴 필요도 없고
不行異邑(불행이읍) : 다른 마을로 나가지 않아도 되므로
坐而待收(좌이대수) : 가만히 앉아 수입만 기다리면 된다
身有處士之義而取給焉(신유처사지의이취급언) :
처사와 같은 편한 마음과 몸가짐으로 유유히 생활할 수 있다
若至家貧親老(약지가빈친노) : 만일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는 늙고
妻子軟弱(처자연약) : 처자는 어리고
歲時無以祭祀進醵(세시무이제사진갹) : 철 따라 조상의 제사도 지내지 못하며
飮食被服不足以自通(음식피복불족이자통) : 음식과 옷가지까지 자기로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어
如此不慙恥(여차불참치) : 이렇게 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은
則無所比矣(칙무소비의) : 갈 때까지 다 간 사람이다


是以無財作力(시이무재작력) : 그래서 한 푼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노동을 하고
少有鬪智(소유투지) : 약간의 재물이 있는 사람들은 지혜를 써서 더 부리려 하고
旣饒爭時(기요쟁시) : 이미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은 시기를 노린다
此其大經也(차기대경야) : 이것이 이식의 대강이다
今治生不待危身取給(금치생불대위신취급) :
그런 만큼 꾸려 나가는 데 위험에 몸을 던지지 않고 수입을 얻으려는 것은
則賢人勉焉(칙현인면언) : 현인이 한결같이 힘쓰는 바다


是故本富爲上(시고본부위상) : 그러므로 농업으로 부를 얻는 것이 최상책이고
末富次之(말부차지) : 상업으로써 하는 것이 그 다음이요
姦富最下(간부최하) : 간악한 수단으로 치부하려는 것이 최하책이다


無巖處奇士之行(무암처기사지행) :
또한 세상을 등지고 산야에 묻혀 사는 청빈한 선비나 기인들이 행동이
而長貧賤(이장빈천) : 오랫동안 가난하고 천하게 살면서
好語仁義(호어인의) : 말로만 인의를 운운함도
亦足羞也(역족수야) : 역시 부끄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凡編戶之民(범편호지민) : 대개 서민들은
富相什則卑下之(부상십칙비하지) : 상대방의 계산이 자기 것의 열 배가 되면 이를 헐뜯고
伯則畏憚之(백칙외탄지) : 백 배가 되면 이를 꺼려하고
千則役(천칙역) : 꺼리며 천 배가 되면 그의 심부름을 달게 하고
萬則僕(만칙복) : 만 배가 되면 그의 하인이 되는데
物之理也(물지리야) : 이것은 만물의 이치다


夫用貧求富(부용빈구부) : 대체로 가난을 벗어나 부자가 되는 길에는
農不如工(농불여공) : 농은 공에 미치지 못하고
工不如商(공불여상) : 공은 상에 미치지 못한다
刺繡文不如倚市門(자수문불여의시문) : 수를 놓기보다는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라고 하니
此言末業(차언말업) : 이 말은 상업이
貧者之資也(빈자지자야) :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부를 얻는 가까운 길임을 뜻한다


通邑大都(통읍대도) : 교통이 편리한 대도시에서는
酤一歲千釀(고일세천양) : 천 독의 술,
醯醬千瓨(혜장천강) : 천 병의 식로며 간장,
漿千甔(장천담) : 천섬의 마실 것,
屠牛羊彘千皮(도우양체천피) : 천장의 소·양·돼지의 털가죽,
販ꜘ糶千鍾(판곡조천종) : 천 종의 쌀 천 수레
薪稿千車(신고천차) :
船長千丈(선장천장) : 또는 길이가 장장 천 장이 되는 배에 실은 땔감이나
木千章(목천장) : 짚 천 장의 목제
竹竿萬个(죽간만개) : 1만 그루의 대나무 간짓대
其軺車百乘(기초차백승) : 백 대의 소거
牛車千兩(우차천양) : 천 량의 우거
木器髹者千枚(목기휴자천매) : 천 개의 칠기
銅器千鈞(동기천균) : 천 균의 구리그릇
素木鐵器若巵茜千石(소목철기약치천천석) : 천 섬의 나무그릇·최그릇 또는 연지·꼭두서니
馬蹄躈千(마제교천) : 2백 마리의 말
牛千足(우천족) : 5백 마리의 소
羊彘千雙(양체천쌍) : 2천 마리의 양·돼지
僮手指千(동수지천) : 백 명의 노비
筋角丹沙千斤(근각단사천근) : 천근의 힘줄·뿔잔사 천 균의 비단·풀솜·세포
其帛絮細布千鈞(기백서세포천균) :
文采千匹(문채천필) : 천 필의 무늬 있는 비단
榻布皮革千石(탑포피혁천석) : 천 섬의 탑포·피혁,
漆千斗(칠천두) : 첨 말의 옻,
糱麴鹽豉千荅(얼국염시천답) : 천 합의 누록·메주,
鮐鮆千斤(태제천근) : 천근의 복어와 갈치,
鯫千石(추천석) : 천섬의 말린 생선,
鮑千鈞(포천균) : 천 균의 절인 생선,
棗栗千石者三之(조율천석자삼지) : 3천 섬의 대추·밤,
狐貂裘千皮(호초구천피) : 천 장의 여우·담비의 갖옷,
羔羊裘千石(고양구천석) : 천 섬의 염소·양의 갖옷,
旃席千具(전석천구) : 천 장의 털자리,
佗果菜千鍾(타과채천종) : 천 종의 과일·야채 등
子貸金錢千貫節駔會(자대금전천관절장회) : 현금 천관을 중개인에게 빌려 주고 이식을 받는다
貪賈三之(탐가삼지) : 이보다 이식을 높이면 회전이 늦어져 세 번에 걸쳐 회수된다
廉賈五之(렴가오지) : 이보다 낮으면 다섯 번에 걸쳐 회전된다
此亦比千乘之家(차역비천승지가) :
이들의 수입도 천 호의 영지를 가진 제후와 같은 수준에 이른다

其大率也(기대솔야) : 이상이 소봉의 대강이지만
佗雜業不中什二(타잡업불중십이) : 다른 잡일에 좋사하면서 2할의 이익을 올리지 못하는 사람은
則非吾財也(칙비오재야) : 재물을 활용한다고 말할 수 없다


請略道當世千里之中(청략도당세천리지중) : 다음 거의 당세에 서울에서 천 리 이내에 살았던
賢人所以富者(현인소이부자) : 현인들이 부를 쌓은 방법인데
令後世得以觀擇焉(령후세득이관택언) : 후세 사람들의 참고로 삼을까 한다
蜀卓氏之先(촉탁씨지선) : 촉땅의 탁씨 조상은
趙人也(조인야) : 조나라 사람이다
用鐵冶富(용철야부) : 탁씨는 제철업을 경영하여 부호가 되었다
秦破趙(진파조) : 처음 진이 조를 깨뜨렸을 때
遷卓氏(천탁씨) : 탁씨에게 이주를 명령했다
卓氏見虜略(탁씨견로략) : 포로가 된 탁씨는 재물을 약탈당했으므로
獨夫妻推輦(독부처추련) : 부부가 홀로 손수레를 끌고
行詣遷處(행예천처) : 이주지로 떠나냐 했다
諸遷虜少有餘財(제천로소유여재) : 함께 옮겨간 포로들로서 다소 남은 돈이 있었던 사람들은
爭與吏(쟁여리) : 다투어 진나라 관리에게 뇌물을 바치고
求近處(구근처) : 가까운 곳을 요구해
處葭萌(처가맹) : 가맹에 자리를 잡았다
唯卓氏曰此地狹薄(유탁씨왈차지협박) : 그러나 탁씨만은 이르기를‘가맹은 땅이 좁고 천박하다
吾聞汶山之下(오문문산지하) : 내가 듣기에 문산 기슭에
沃野(옥야) : 기름진 들이 있어
下有蹲鴟(하유준치) : 그곳에는 큰 감자가 나기 때문에
至死不飢(지사불기) : 죽을 때까지 굶지 않는다
民工於市(민공어시) : 주민들은 장사에 능숙해서
易賈(역가) : 교역을 한다.’라고 하더라.’하고는
乃求遠遷(내구원천) : 멀리 옮겨 갈 것을 요구했다
致之臨邛(치지임공) : 그래서 임공가서는
大喜(대희) : 대단히 기뻐하며
卽鐵山鼓鑄(즉철산고주) : 철산으로 들어가 쇠를 녹여서 그릇을 만들었다
運籌策(운주책) : 그리고 여로 모로 꾀를 서서
傾滇蜀之民(경전촉지민) : 진·촉의 백성들을 압도했다
富至僮千人(부지동천인) : 그 결과 그의 부는 노비 천 명을 부리기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田池射獵之樂(전지사렵지락) : 사냥과 고기잡이하는 즐거움은
擬於人君(의어인군) : 임금의 것에 비교될 정도였다
程鄭(정정) : 정정은
山東遷虜也(산동천로야) : 산동에서 옮겨온 포로였다
亦冶鑄(역야주) : 그 또한 제철을 업으로하며

賈椎髻之民(가추계지민) : 머리를 방망이 모양으로 틀어올린 백성들과 교역했다
富埒卓氏(부랄탁씨) : 그 결과 탁씨처럼 부해져
俱居臨邛(구거임공) : 함께 임공에서 살았다
宛孔氏之先(완공씨지선) : 완의 공씨 조상은
梁人也(량인야) : 양나라 사람이었다
用鐵冶爲業(용철야위업) : 공씨는 제철을 업으로 했다
秦伐魏(진벌위) : 처음 진이 위를 쳤을 때
遷孔氏南陽(천공씨남양) : 공씨는 남양으로 이주되었다
大鼓鑄(대고주) : 쇠를 많이 녹여 그릇을 만들었고
規陂池(규피지) : 큰 못을 가졌었다
連車騎(연차기) : 거기를 거느리고
游諸侯(유제후) : 제후들을 방문하며
因通商賈之利(인통상가지리) : 그것을 기회로 장사 이익을 거두었다
有游閑公子之賜與名(유유한공자지사여명) : 공씨가 제후들에게 보내는 선물은 호사스러웠지만
然其贏得過當(연기영득과당) : 그러나 장사의 이득은 막대해서
愈於纖嗇(유어섬색) : 인색하고 좁스럽게 구는 장사치보다 훨씬 치부했다
家致富數千金(가치부수천금) : 그는 집에다 몇천 금의 부를 쌓았다
故南陽行賈盡法孔氏之雍容(고남양행가진법공씨지옹용) :
그래서 남양의 장사꾼들은 모두가 공씨의 배포 큰 마음을 본받았다
魯人俗儉嗇(노인속검색) : 노나라 사람들에게 검소하고 절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曹邴氏尤甚(이조병씨우심) : 조땅의 병씨는 그 중에서도 더욱 심했다
以鐵冶起(이철야기) : 대장장이로부터 입신하여
富至巨萬(부지거만) : 거만의 부를 쌓았는데
然家自父兄子孫約(연가자부형자손약) : 그런 뒤에도 그 집안의 부형과 자손들과 함게
俛有拾(면유십) : 엎드리면 물건을 줍고
仰有取(앙유취) : 우러러면 물건을 취하라고 했다
貰貸行賈徧郡國(세대행가편군국) : 행상을 하며 모든 군국에 걸쳐 금품을 꾸어 주었다

鄒魯以其(추노이기) : 추·노에서는 그 때문에
故多去文學而趨利者(고다거문학이추리자) : 학문을 버리고 돈벌이에 좇아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以曹邴氏也(이조병씨야) : 이것은 오로지 조의 병시에게서 영향 때문이었다
齊俗賤奴虜(제속천노로) : 제나라 사람은 풍습상 노예를 천대했다
刀閒獨愛貴之(이도한독애귀지) : 그러나 도간만은 노예를 사랑해서 정중히 대했다
桀黠奴(걸힐노) : 교활한 노예는
人之所患也(인지소환야) : 사람들이 싫어하기 마련이었는데
唯刀閒收取(유도한수취) : 도간만은 이를 발탁하여
使之逐漁鹽商賈之利(사지축어염상가지리) :
그들을 생선과 소금 장사를 시켜 돈을 벌어들이게 하였다
或連車騎(혹연차기) : 때로는 그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交守相(교수상) : 고을 태수와 서로 교제한 일도 있는 신분이었지만
然愈益任之(연유익임지) : 더욱 노예들을 신임하여
終得其力(종득기력) : 드디어 그들의 협력으로
起富數千萬(기부수천만) : 몇천만 금의 부를 쌓았다
故曰寧爵毋刀(고왈녕작무도) : 그래서 이르기를 ‘차라리 벼슬하여 작록을 받지 말라.’는 것은
言其能使豪奴自饒(언기능사호노자요) :
이것은 도간이 뛰어난 종들을 잘 이끌어 부유하게 해 주고
而盡其力(이진기력) : 마음껏 그들의 힘을 주인을 위해 다 바치게 한 것을 칭찬한 것이리라
周人旣纖(주인기섬) : 주나라 사람은 검소하고 인색하지만
師史尤甚(이사사우심) : 그 중에서도 사사는 더욱 심했다
轉轂以百數(전곡이백수) : 수백 대의 수레를 이끌고
賈郡國(고군국) : 군국으로 나가 장사를 했는데
無所不至(무소불지) : 그는 안 간곳이 없었다
洛陽街居在齊秦楚趙之中(락양가거재제진초조지중) : 낙양 시가는 제·초·조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貧人學事富家(빈인학사부가) : 가난한 자도 장사 일을 부자들에게 배워
相矜以久賈(상긍이구가) : 오랜 세월동안 행상하고 산 것을 서로 자랑하며
數過邑不入門(수과읍불입문) : 가끔 고향 마을을 지나가도 자기 집네는 들르지 않았다
設任此等(설임차등) : 사사는 이런 한 패들에게 맡겨 장사를 시킨 결과
故師史能致七千萬(고사사능치칠천만) : 능히 7천만의 재산을 쌓았다
宣曲任氏之先(선곡임씨지선) : 선곡의 임씨 조상은
爲督道倉吏(위독도창리) : 독도의 창고지기였다
秦之敗也(진지패야) : 진이 패했을 때
豪傑皆爭取金玉(호걸개쟁취금옥) : 호걸들은 모두 앞을 다투어 금옥을 취했으나
而任氏獨窖倉粟(이임씨독교창속) : 임씨만은 창고의 곡식을 굴 속에 감추었다
楚漢相距滎陽也(초한상거형양야) : 그 뒤 초와 한이 형양에서 서로 버티는 동안
民不得耕種(민불득경종) :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자
米石至萬(미석지만) : 쌀은 한 섬에 1만 전까지 뛰어 올랐다
而豪傑金玉盡歸任氏(이호걸금옥진귀임씨) :
그로 인해 앞서 호걸들이 차지했던 금옥은 모두 임씨의 것이 되고
任氏以此起富(임씨이차기부) : 이리하여 임씨는 부유해졌다
富人爭奢侈(부인쟁사치) : 부유한 사람은 사치를 다투지만
而任氏折節爲儉(이임씨절절위검) : 임씨는 허세를 버리고 절약검소하며
力田畜(력전축) : 농사의 목축에 힘썼다
田畜人爭取賤賈(전축인쟁취천가) :
사람들은 농사와 목축에 필요한 물건을 살 때 싼 것을 택했지만
任氏獨取貴善(임씨독취귀선) : 임씨만은 값이 비싸도 좋은 것을 택했다
富者數世(부자수세) : 이리하여 임씨 집안은 부호로서 여러 대가 지났는데도
然任公家約(연임공가약) : 임씨 집안 사람들은 약속하기를
非田畜所出弗衣食(비전축소출불의식) :
‘내 집의 농사와 목축에서 얻은 것이 아니면 입고 먹는 데 쓰지 않고
公事不畢(공사불필) :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則身不得飮酒食肉(칙신불득음주식육) :
술과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는 가풍을 지킨다.‘고 하였다
以此爲閭里率(이차위여리솔) : 이런 까닭에 임씨는 향리의 모범으로 우러러 보이고
故富而主上重之(고부이주상중지) :
그래서 집안은 더욱 부유해져서 천자께서도 이들을 소중히 여겼다
塞之斥也(새지척야) : 한이 흉노를 쳐서 쫓고 변경의 땅을 안정시켰을 때
橋姚已致馬千匹(유교요이치마천필) : 교요라는 사람만이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말 천 마리
牛倍之(우배지) : 소 2천 마리
羊萬頭(양만두) : 양 1만 마리
粟以萬鍾計(속이만종계) : 곡식 수만 종의 재물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吳楚七國兵起時(오초칠국병기시) : 오·촉 칠국의 난이 일어났을 때
長安中列侯封君行從軍旅(장안중열후봉군행종군려) :
장안에 있는 대소 제후들의 토벌군에 가담하기 위해
齎貸子錢(재대자전) : 이잣돈을 얻으려 했다
子錢家以爲侯邑國在關東(자전가이위후읍국재관동) :
그런데 돈놀이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후들의 봉읍은 관동에 있다
關東成敗未決(관동성패미결) : 관동이 잘 다스려질지 어떨지는 아직 모른다.’고 생각하고
莫肯與(막긍여) : 아무도 빌려 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無鹽氏出捐千金貸(유무염씨출연천금대) : 다만 무염씨만은 천 금을 풀어
其息什之(기식십지) : 이자를 원금의 10배로 하여 빌려 주었다
三月(삼월) : 3월에
吳楚平(오초평) : 오·초칠국의 난이 평정되자
一歲之中(일세지중) : 그는 따라서 겨우 1년 동안에
則無鹽氏之息什倍(칙무염씨지식십배) : 빌린 돈의 10배를 일자로 받았고
用此富埒關中(용차부랄관중) : 이로 인하여 그의 재산은 관중 전체의 부와 맞먹었다
關中富商大賈(관중부상대고) : 관중의 상인과 대상은
大抵盡諸田(대저진제전) : 대체로 전씨 일족었는데
田嗇田蘭(전색전란) : 전장과 전란 등이 그들이다
韋家栗氏(위가율씨) : 그 밖에 위가와 률씨 및
安陵杜杜氏(안릉두두씨) : 안릉과 두의 두씨도
亦巨萬(역거만) : 또한 거만의 부를 지녔다
此其章章尤異者也(차기장장우이자야) : 이들은 부호 중에서도 두드러진 사람들로
皆非有爵邑奉祿弄法犯姦而富(개비유작읍봉록롱법범간이부) :
특히 뛰어난 존재다 그들은 모두 작읍이나 봉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교묘한 수단으로 법률을
타서 나쁜 짓을 행해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盡椎埋去就(진추매거취) : 모두 사물의 이치를 추측하여 행동함으로써
與時俯仰(여시부앙) : 시운에 순응하여 이익을 얻고
獲其贏利(획기영리) : 상업으로써 재물을 쌓고
以末致財(이말치재) : 부유한 몽이 되어서는
用本守之(용본수지) : 농삿일로 돌아가 부를 지켰다
以武一切(이무일절) : 즉 처음은 과단성을 가지고 일체를 맞서고
用文持之(용문지지) : 뒤에는 떳떳이 도리를 지켜 성과를 지켰다
變化有槪(변화유개) : 그 변화에는 절도가 있고 순서가 있어
故足術也(고족술야) : 그래서 족히 꾀를 부린 것이다
若至力農畜(약지력농축) : 농사·목축·
工虞商賈(공우상가) : 공장·벌목·행상 ·상업에 종사하면서
爲權利以成富(위권리이성부) :
임기웅변으로 처세하여 이익을 올림으로써 부를 이룩한 사람들 가운데는
大者傾郡(대자경군) : 크게는 1군을 압도하는 사람이 있고
中者傾縣(중자경현) : 중간으로는 1현을 압도하는 사람이 있고
下者傾鄕里者(하자경향리자) : 하로는 향리를 압도하는 사람도 있으니
不可勝數(불가승수) : 일일이 다 들 수 없다
夫纖嗇筋力(부섬색근력) : 무릇 아껴 쓰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治生之正道也(치생지정도야) : 삶의 정도이다
而富者必用奇勝(이부자필용기승) : 그런데 부자는 반드시 독특한 방법으로 남을 이긴다
田農(전농) : 농사는
掘業(굴업) : 재물을 모으는 데에는 탐탁한 것이 못되지만
秦揚以蓋一州(이진양이개일주) : 봉양은 농사로서 주 전체에서 제일 가는 부호가 되었다
掘冢(굴총) : 무덤을 파서 재물을 훔치는 것은
姦事也(간사야) : 나쁜 일이지만
田叔以起(이전숙이기) : 전숙은 그것을 발판으로 몸을 일으켰다
博戲(박희) : 도박은
惡業也(악업야) : 나쁜 놀이지만
桓發用之富(이환발용지부) : 항발은 그것으로써 부자가 되었다
行賈(행고) : 행상은
丈夫賤行也(장부천행야) : 남자에게 천한 직업이지만
雍樂成以饒(이옹락성이요) : 옹락성은 그것으로써 부자가 되었다
販脂(판지) : 기름장수는
辱處也(욕처야) : 부끄러운 장사이다
雍伯千金(이옹백천금) : 그러나 옹백은 그것으로 천 금을 얻었다
賣漿(매장) : 술장수는
小業也(소업야) : 하찮은 장사이지만
張氏千萬(이장씨천만) : 장씨는 거것으로 천만장자가 되었다
洒削(쇄삭) : 칼을 가는 것은
薄技也(박기야) : 보잘것 없는 시술이지만
郅氏鼎食(이질씨정식) : 질씨는 그것으로써 호화로운 식자를 즐겼다
胃脯(위포) : 위포는
簡微耳(간미이) : 단순하고 하찮은 장사였지만
濁氏連騎(탁씨연기) : 탁씨는 그것으로 기마 수행원을 거느리고 다니는 신분이 되었다
馬醫(마의) : 마의는
淺方(천방) : 대단찮은 처방술이지만
張里擊鍾(장리격종) : 장리는 그것으로써 종을 쳐서 하인을 부를 정도의 큰 저택에 살았다


此皆誠壹之所致(차개성일지소치) :
이것은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돈벌이에 힘썼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由是觀之(유시관지) : 이로 미뤄 보면
富無經業(부무경업) : 치부하는 데는 일정한 직업이 없고
則貨無常主(칙화무상주) : 재물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다
能者輻湊(능자폭주) :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모이고
不肖者瓦解(불초자와해) : 못난 사람에게서는 홀연히 흩어지고 만다


千金之家比一都之君(천금지가비일도지군) : 천 금을 모은 집은 한 도시를 차지한 임금에 맞먹고
巨萬者乃與王者同樂(거만자내여왕자동락) : 거만의 부를 가진 사람은 왕자와 낙을 같이 한다
豈所謂素封者邪非也(개소위소봉자사비야) :
어찌 이른 바 소봉이라는 자가 사악하고 그릇되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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