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로서 슬픔을 나누고 싶습니다

 

<  조선일보,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2022.11.01  >

 


환희와 축제의 공간이 아비규환의 지옥도(地獄圖)로 돌변할 것을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원인 규명이나 재발 방지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유족들에게 그러한 객관적인 말은 허무하다고밖에 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슬픔을 견딜 수 있을까요.

저도 말씀드리기 힘든 경험을 겪었습니다. 목숨과 바꾸더라도 지키고 싶었던 사랑하는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때 구약 성경의 ‘의인 욥’처럼 외쳤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내 어머니의) 태(胎)에서 나왔을 때 숨이 끊이지 않았는가.”(’욥기’ 제3장 11절)

아들은 우리 부부 삶의 버팀목이자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었습니다. 그 생명의 물이 갑자기 말라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명예와 부(富)를 갖췄더라도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부모만큼 슬프고 애절하며 비참한 존재는 없다고. 이태원 비극으로 속수무책인 부모님들의 통곡은 우리 부부와도 같을 겁니다. 지금은 오로지 참담해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눈물로 날이 저물고 슬픔에 넋을 잃습니다.

다만 우리의 경우, 아들은 메시지를 남겨주었습니다. 스스로를 이 지상으로부터 ‘퇴출’할 때 남긴 메시지, “(부모님은) 오래 오래 건강하게.” 이 말에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유일한 응답이라고 믿고 10 년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슬픔은 가시지 않고 오히려 먹먹하기만 합니다.

이태원 비극으로 목숨을 잃은 아들·딸들은 부모에게 메시지조차 남기지 않고, 홀연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겨진 부모의 상실감은 한없이 깊은 어둠 속에 빠진 것만 같을 겁니다. 이 비극에 대해 “왜, 누구 때문에?”라는 답을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어에는 부전감(不全感)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완전하지 않은 감각이라는 뜻이죠. 그것이 8 년 전 ‘세월호 침몰 사고’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참사의 원인이나 책임져야 할 대상이 명확하지 않고, 따라서 슬픔이 분노로 전환되고 때로는 증오로 변해가는 과정이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의 경우, 아이의 죽음은 부부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으며 저는 그 슬픔을 글로 쓰면서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태원 참사의 부모들은 어떨까요. 우리의 경우 아들의 죽음은 어디까지나 가족이라는 개인적 비극에 머물렀습니다. 반면 이태원 비극의 부모들은 엄청난 수의 희생자와 함께 슬픔을 나눌 겁니다. 비탄은 각자의 것이며 결코 똑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태원의 비극에선 비탄, 즉 슬픔을 나누는 연대감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지금 부모들은 각각의 슬픔 속으로 가라앉고 있지만, 슬픔을 서로 나누고 공유할 때, 비록 치유되지는 않더라도 위로하고 격려하고 복원해 나가는 힘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합니다.

생을 잃은 젊은이들은 인생의 사계절을 모르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불의의 죽음일지라도 그 짧은 인생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들은 서른이 되기 전에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들 나름의 삶의 사계절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저는 자식을 잃고 ‘죽은 자식의 나이를 아직도 세고 있는’ 부모의 후회에서 조금은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그저 뉘우치기만 하는 아비가 아닐 수 있었습니다.

지금 비탄에 잠긴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신(神)조차도 바꿀 수 없는 ‘과거’가 있고 과거만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가버린 아이들이 남겨준 ‘과거’는 남겨진 사람들 안에서 계속 살아갑니다. 그 살아있는 ‘과거’를 정중히 위로하고 슬픔의 유대를 통해 나눌 수 있다면 비극은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을 겁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에게 위로의 말은 공허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굳이 전하고 싶습니다, “부디 오래도록 살아주세요”라고. 여러분의 아이들이 부모님들에게 메시지를 남긴다면, 분명 그렇게 쓸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노후 탐구]

 


日 노후 전문가 오오에히데키씨 인터뷰


예비 은퇴자들이 알아두면 좋을 은퇴 상식


< 조선일보 이경은 기자, 2022.09.28 >

 

 

 

1.

 

“형무소에서 출소한 범죄자 같은 처지가 될까봐 두려워요. 구속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하는 건 몇개월이고, 결국 바깥 세상에는 소외된 채 살아가는 건 아닐까요.”(50대 직장인 이모씨)

길어진 수명, 높아진 물가, 야속한 연금... 온통 불안감을 자극하는 뉴스 뿐이다. 은퇴 예정자들은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이 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은퇴가 그렇게 공포스러운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은퇴 낙원’을 외치는 전문가도 있다.

올해 일흔살인 오오에히데키(大江英樹)씨는 ‘모르면 손해보는 연금의 진실’, ‘정년 전에 안 해도 되는 일 5가지’ 등 노후 관련 서적을 33권 펴낸 작가다. 한국에는 ‘투자의 속성, 당신이 투자로 돈을 못 버는 이유’란 책이 번역되어 올초 출판됐다.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25년 일한 증권맨으로, 개인 자산운용과 기업연금 자문역 등으로 일하다가 퇴직했다. 지난 2012년 직장인 대상 경제교육업체인 오피스·리베르타스를 설립했다.

조선일보 [행복한 노후 탐구]는 지난 20일 일본에 있는 오오에히데키 대표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오오에 대표는 “여러 은퇴 선배들을 만나 보니 모두 각자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은퇴하면 이걸 꼭 해야 한다, 하면 안된다 하는 건 없다, 은퇴하면 자기에게 맞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오오에 대표가 들려주는 ‘은퇴의 상식’을 3회로 나눠 소개한다.

 


–은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막연히 불안하다.

“38년 동안 일했던 회사를 떠날 때, 내가 가장 실감했던 건 ‘돈 문제’가 아니라 ‘고독의 문제’였다.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년 시점에 예금액이 150만엔 정도였다. 하지만 공적 연금과 회사 연금(퇴직연금) 금액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고, 가계부를 착실하게 쓰면서 지출을 관리해 왔다. 돈 걱정은 별로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인간 관계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진짜 상처였다.”

 


–100세까지 살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돈 걱정을 안하나.

“노후자금 불안을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돈을 가시화(見える化)하는 것이다. 즉 은퇴 후에 나의 생애 수지(收支)가 어떻게 될 것인지 미리 정확하게 계산해 보는 것이다. 흑자면 안심하면 되고, 적자면 당장 대책을 세우고 준비하면 된다. 굉장히 간단한 건데, 해보지도 않고 불안해 하는 것이다.”

 


–돈을 가시화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샐러리맨이라면 퇴직금이나 국민연금, 개인연금 등으로 나중에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다(한국에선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서 바로 가능, 조선닷컴에선 여기를 클릭). 지출은 가계부를 써보면 스스로 감이 잡힌다. 100원 단위까지 자세히 쓸 필요는 없다. 대략 씀씀이를 알기 위해서이니, 스마트폰 가계부 어플을 활용하면 편리하다. 통상 노후 지출은 현역의 70% 정도다. 나도 퇴직 2년 전부터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는데, 직접 해보니 진짜로 현역 시절의 70%선에서 돈을 쓰고 있었다. 물론 ‘지출 70%’ 선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대출은 제로, 자녀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태여야 한다.”

 


–보험으로 노후에 대비하려는 사람이 많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달리 많은 국민들이 대부분 연금이나 공적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다. 민간 보험에 과하게 가입할 필요가 없다. 그럴 돈이 있으면, 저축하는 게 낫다. 보험의 본질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혹시 발생한다면 비용이 커서 본인 돈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에 대비하는 것’이다. 자동차 보험이나 화재 보험은 필요하지만, 생명보험이나 건강보험은 잘 생각해서 가입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노후에 필요한 건, 보험이 아니라 현금이다.”

 


–은퇴 앞두고 고물가, 주가 하락에 고민인 사람들도 많다.

“고물가나 주가 하락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누구도 뭐라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물가나 주가는 단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흐름에 너무 휘둘리지 않는 것이 좋다. 차라리 시장 환경이 나빠진 김에 은퇴 시점을 좀 더 뒤로 미루고 가급적 더 오래 일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스트레스가 많지 않은 일을 한다면 건강 유지에도 좋고, 일을 통해 사람들과의 연결 고리도 가질 수 있다.”

 


–나이 들어서도 일할 필요가 있는가.

“퇴직 후엔 더 이상 일하긴 싫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창업에 대한 두려움도 클 수 있다. 하지만 정년 퇴직한 후에 오히려 더 신이 나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베이커리 카페 개업을 꿈꾸면서 빵집에서 수습으로 일하는 제약회사 영업간부 출신 은퇴자도 있고, 은퇴를 앞둔 보험회사 직원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경제교육 업체를 세우는 사례도 봤다. 취미 혹은 현역 시절의 전문지식이나 기술, 경험을 살린다면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있다.”

 


–퇴직금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퇴직금은 가급적 깨지 말고 장래 의료비나 간병비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라. 노후에 대비해서 뭔가 준비하는 자세는 좋은 것이지만, 실제로 노후에 현금 흐름이 얼마나 될지 파악은 해 보셨나?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그저 불안감에 이상한 금융상품을 추천받아 가입한다면, 그게 더 리스크다.

 

 

 

2. 

 

“59세까지만 일하고 그 이후부터는 5도2촌(닷새 도시, 이틀 농촌)을 즐기려 합니다.” “30년 직장 생활을 정리하면 아내와 함께 취미도 즐기고 여행도 떠날 겁니다.”

은퇴는 직장의 울타리를 떠나 부부가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시기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남편과 아내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부부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자녀들은 다 떠나고, 부부끼리만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시집·장가 다 보내놓고 부부 둘이서만 30년 넘게 생활하는 경우도 우리 주변에 흔해지고 있다.

부부에게 은퇴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조선일보 [행복한 노후 탐구]가 지난 7월 SM C&C 설문조사 플랫폼인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해 성인 남녀 2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봤다. ‘정년퇴직 이후 부부 사이가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관심 없다’는 응답이 전체의 33%로 가장 많았고, ‘나빠졌다’는 응답은 30%로 뒤를 이었다.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8%에 그쳤다. 긴 인생에서 부부가 가장 잘 지내야 하는 시기는 노년기인데, 태풍처럼 몰아친 퇴직이 관계를 악화시킨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일본의 노후 전문가인 오오에히데키(大江英樹)씨는 지난 20일 조선일보 [행복한 노후 탐구]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미 오랜 산 부부니까, 은퇴해도 다 이해해 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곤란하다”며 “불필요한 감정 다툼을 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은퇴 부부의 공생(共生) 법칙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오에씨는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25년 일한 증권맨으로, 개인 자산운용과 기업연금 자문역 등으로 일하다가 퇴직했다. 지난 2012년 직장인 대상 경제교육업체인 오피스·리베르타스를 설립했다. 한국엔 출간되지 않았지만 ‘인생 100세 시대에 돈이 장수하는 비결’, ‘은퇴 후 50년의 스마트한 생활법’ 등 노후 관련 서적을 33권 펴냈다. 재테크 지침서 ‘투자의 속성, 당신이 투자로 돈을 못 버는 이유’(지상사)는 올해 초 번역, 출판됐다.


–행복한 은퇴 부부로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회사에 매여서 생활했던 남편들은 은퇴하고 나면 그 동안 아내과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겠다고 벼른다. ‘퇴직하면 같이 장기 해외 여행을 떠나야지’ 이런 거다. 명백하게 그건 혼자 만의 착각이다. 아내는 다른 계획을 세워뒀을지도 모른다. 부모나 형제는 혈연 관계이면서 다른 인생을 살지만, 부부는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았는데 같은 인생을 걸어야 하는 존재다. 아내는 나와 다른 인격을 가진 인간이다.

 


–속 터놓는 대화 말고 또 뭘 하면 좋은가.

상대방의 세계를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배우자에게 맞출 필요는 없다. 각자가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회사를 그만뒀더니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퇴한 남편이 아내 옆에 붙어 있는 것이야말로 최악이다. 노후에 외출하지 않고 집에 오래 머물면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 서로가 어느 정도 거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평소엔 그냥 넘어갈 만한 사소한 습관들도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부부끼리 거리를 둬야 한다는 얘기인가.

회사형 남편들은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내의 생활 패턴을 알게 된다. 수십년 회사에 올인하고 가정은 소홀히 했으면서 은퇴했다고 갑자기 친한 척 해봤자 소용없다. 노후 행복을 위한 일종의 ‘부부 연금’이라고 생각하고 평소에 아내에게 애정을 갖고 대할 필요가 있다. 노년에는 부부 둘이서 지내는 시간이 늘기 때문에 상대방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다 눈에 들어온다. 젊을 땐 따로 지내다가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난 뒤에 같이 지내려면 적응하기 어렵다. 은퇴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二心異體)라는 생각을 갖고 아내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존중하자.

 


–금혼식(결혼 50주년) 올리려면 은퇴 고비를 잘 넘겨야겠다.

“정년 퇴직 후에는 월급이 끊겨 수입이 줄어들고 생활 리듬은 달라지고, 신체적인 노화 현상도 나타난다. 이런 극심한 변화의 시기에는 부부가 2인3각 경기를 하듯 서로 맞춰나가야 한다. 충분히 대화하고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감정 소통이 안 되어 서먹서먹해지거나 얼굴만 봐도 짜증나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부부가 공통 취미를 가지면 도움이 되나.

“취미는 굉장히 즐거운 것이다. 인생을 풍요롭게 보내려면 취미를 가지는 편이 확실히 도움된다. 하지만 하기 싫으면서 괜히 배우자에게 맞춰서 억지 취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취미를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년이 되어 급하게 뭔가 취미를 시작하기 보다는 가급적 50대부터 조금씩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를 찾는 것이 좋겠다.”

 


–지역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히 해야 하나.

“은퇴하면 사회 생활이 사라지게 되니, 적극적으로 지역 커뮤니티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하고 싶다면 해도 되지만. 다만 퇴직 전 회사에서 아무리 높은 직위에 있었다고 해도 지역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순간, 평범한 일반 사원으로 바뀐다. 아주 겸손하게 행동해야 한다. 뭔가 내가 아직도 상사인 것처럼 행동하면 거부감만 줄 뿐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봉사하겠다’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워킹맘의 지역 데뷔가 위험한 이유는?

“한국은 일본보다 일하는 여성들이 더 많다고 알고 있다. 일하는 여성의 사고 프로세스는 남성과 비슷하다. 남성 위주인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일하면, 아무래도 빨리 결론부터 내고 싶어하는 합리적 사고 방식이 되기 쉽다. 하지만 지역 사회의 여성 커뮤니티는 합리성보다는 ‘공감(共感)’과 ‘합의(合意)’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맹렬히 싸워왔던 용감한 여성 전사들이 은퇴 후에 그 ‘합리성’을 버리지 않고 지역 커뮤니티에 합류하면 트러블을 일으키기 쉽다.”


 

3.

 

 

–은퇴 후 자산 감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020년 미국에서 출간된 ‘다 쓰고 죽어라(Die with Zero, 빌 퍼킨스, 한국 미발간)’라는 책이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런 사람들이 많은데, 돈을 전혀 안 쓰고 계속 모으기만 해서, 결국 죽을 때 가장 돈을 많이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쌓기만 할 게 아니라 ‘체험’에 쓴다면, 눈을 감을 때 여러 추억들을 곱씹으면서 행복하게 인생을 마칠 수 있다. 여행을 가든, 자녀에게 증여하든, 기부를 하든, 어떤 방법도 좋다. 60대부터는 그때까지 모은 돈을 어떻게 잘 써서 인생을 충실하게 마무리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저축(貯蓄)보다는 감축(減縮), 자산을 줄이는 것이다.”

–이전 인터뷰에선 정년 남편의 할 일에 대해 주로 얘기했다. 아내는 어떤가.

“은퇴한 남편은 가사일에 협력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는 것이 중요하다. 남편이 청소나 세탁을 하는데, 아내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남편에게 불평하거나 잔소리하면 안 된다. 노력하는 남편을 칭찬해 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 ‘한평생 일했는데, 은퇴 후에 노고를 인정받으려는 것이 나쁜가’ 이런 댓글을 남성이 달았다.

“부부는 타인이지만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존재다. 남편 혼자 힘으로 사회생활을 해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전업주부 아내가 가사를 해결하고 자녀도 돌보면서 집안 대소사를 처리했기에 가능했다.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놀면서 밥만 축낸 것이 아니다.”

–퇴직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역 시절에 친구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두라. 친구들은 회사에서 찾지 말고, 회사 밖의 공간에서 사귀어놔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집안일은 보잘 것 없다고 무시하지 말고 사소한 것부터 찾아서 하라. 예를 들어 화장실 수납장에 여분 휴지가 없다면 채워 넣는다거나, 조미료통이 비어 있으면 보충하고 집안 쓰레기를 모아서 밖에 버리고 다 먹은 그릇은 설거지통에 넣어두는 것 등이다. 이렇게 사소한 집안일을 점점 쌓아가면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세입자처럼 서로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것이 노년 부부가 건강하게 롱런하는 비결이다.”

–노후 준비에 필요한 키워드가 있다면.

“나는 키워드로 ‘WPP’를 얘기하고 싶다. W는 오래 일하기(work longer)이고 첫 번째 P는 사적연금(Private Pension), 두 번째 P는 공적연금(Public Pension)이다. 개인적으론 오래 일하는 W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돈이 아니라, 노년기 건강을 유지하고 고독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재취업은 큰 도움이 된다. WPP를 야구에 빗대면, W는 선발투수, 첫 번째 P은 중간계투, 마지막 P는 마무리 투수다. 죽을 때까지 일해서 완투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선발투수가 흔들리면, 중간계투인 사적연금이 등판할 차례다. 마무리 투수는 죽을 때까지 연금을 지급하는 공적연금의 몫이다.”

 

 


–아내는 남편보다 평균수명이 길어서 10년은 혼자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여성도 일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현재의 수입도, 미래의 연금도 늘어나게 된다. 일본은 연금을 받는 시기를 늦출수록 연금액이 늘어난다. 한국에도 그런 제도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오래 일해서 연금을 받는 시기를 조금이라도 뒤로 늦추고 연금액을 길게 받는 것이 좋다. 젊을 때 조금씩 투자를 지속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은퇴 공식에 대해서도 알려달라.

“부부가 모두 완전히 은퇴하는 경우, 각자가 자신만의 취미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둘이 똑같은 취미를 갖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없다. 서로가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를 갖는 것이 최고다. 부부가 각자의 취미가 생긴다면, 서로 상의해서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보험은 꼭 필요한 상품으로 압축하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보험 가입 대원칙은 ①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②만약 발생하면 내 저축으로는 지불할 수 없고 ③그 일이 언제 생길 것인지 알지 못하는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가령 자동차를 타다가 사망 사고를 일으킨다면, 내 돈만 갖고선 보상해주기 힘들기 때문에 보험 가입이 필요하다. 화재보험(지진보험 포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했다면 종신보험은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 부모가 변을 당해도 자녀의 생활은 힘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선 고금리 채권이 은퇴자들 사이에서 인기다. 주의점은?

“미국을 비롯,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금리 상승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채권 가격 변동의 주요 요인은 금리다. 즉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금리와 채권값은 반대 관계). 더구나 주식은 어떤 하락장에서도 실적이 좋은 곳이라면 주가가 오르지만, 채권은 하락장에선 일제히 다 내려가니까 도망칠 방법이 없다. 때문에 금리 상승 우려가 높은 시기에는 채권 매수에 주의해야 한다.”

‘동물의 왕’ 사자보다 얼룩말이 오래 사는 이유

 

 

< 조선일보 2022.09.27,  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

 


이제 실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지만 ‘코로나 19′ 이후 지난 2년8개월은 새로운 유형의 ‘전쟁 같은 삶’이었다.

 


늘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대인접촉을 피하고 혼자 있는 것이 일상화되다보니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며, 회사에 출근해서도 동료들과 대화가 부담스러워지며, 퇴근 후 집에 와서도 피로와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출근하기 전부터 긴장성 두통이 일어난다거나, 시원한 날씨인데도 후줄근하게 땀이 난다거나 편안해야 할 주말에도 마음이 편치 못하고 잠도 잘 못자는 상황이 자주 있다면 당신은 심리적으로 ‘투쟁-도피’ 모드에 빠져있는 것일 수 있다.

TV 프로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아프리카 초원에서 한 무리의 얼룩말들이 사자에게 쫓기고 있다. 놀란 얼룩말들은 사자가 추격을 포기할 때까지 죽어라고 달린다. 그러나 일단 위험이 지나가면 헐떡거리던 숨을 고른 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이것이 바로 동물의 세계다.

사람을 포함해 동물은 낯선 적이 출현하거나 위협을 감지할 때 심리적·생리적으로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을 보인다. 맞서 싸우거나, 삼십육계 도망칠 준비를 하며 거기에 맞게 몸을 최적화시킨다. 자율신경계의 ‘가속기’ 역할을 하는 교감신경계가 주도권을 잡아 근육을 긴장시키고 필요한 에너지를 총동원한다. 이른바 ‘전투’ 상황 돌입이다.

그러나 ‘상황’이 종료되면 교감신경계는 뒤로 물러나고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부교감신경계가 나서서 이완·평정·휴식을 제공해 몸을 정상 상태로 되돌린다.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신경생리학적으로 보면 이처럼 두 신경계가 마치 시소처럼 작용하며 신체 밸런스를 맞춘다.

바로 여기에서 초식동물들이 늘 맹수에 쫓기며 살면서도 천수(天壽)를 누리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사자나 표범 등 맹수에게 쫓겨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화로운 상태 속에서 나날을 보낸다.

심신은 이완돼 심장이나 내장기관, 근육이 필요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더구나 그들은 초식동물이라 먹이 구하는 데 어려울 것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맹수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 아프리카 맹수의 왕 사자의 평균 수명은 10~15년, 표범 20년, 호랑이(시베리아-인도산) 15년 정도인데 비해, 얼룩말 25~35년, 기린 26년으로 훨씬 오래 산다. 코끼리는 무려 50~70년 사는 장수동물이다.

동물학자들은 맹수들의 경우 늘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활동해야 하고 늙으면 먹이를 구하는 게 어려워 수명이 짧은 반면, 초식동물은 어느 때나 먹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장수의 큰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에 신경생리학적 측면을 더해보면 장수의 비결은 먹이와 함께, 얼마큼 평소 긴장을 덜하고 평정한 상태로 있느냐에 좌우된다. 적당한 긴장은 육체에 활력을 주지만 과도한 긴장은 육체에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늘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전투’ 모드로 사는 맹수들이 20년도 못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원시 시대 때 인간도 이런 ‘투쟁・도피 vs 이완 반응’에 충실했다. 낮에는 수렵-채취 등 고된 육체노동을 한 뒤 밤에는 저녁을 먹고 쓰러져 잤다.

그러나 문명화되고 머리를 많이 쓰는 지금 현대인들은 그렇지 않다. 늘 신경이 곤두선 채 긴장・불안해하며 살아간다. ‘동물의 세계’와 비교하자면 24시간 사자에게 쫓기는 얼룩말 신세다.

인간의 뇌는 사자나 호랑이 같은 외부의 큰 위협과, 불안・걱정・창피 등 내부의 작은 스트레스를 구별하지 못하고 똑같이 반응한다. 일상생활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 심지어 가족에게도 때로 긴장하거나 놀란다. 밤에 잠도 잘 못자며, 놀러가서도 다른 일을 걱정한다.

항상 스트레스 속에 살다보니 육체와 정신은 지치고, 생활의 흥미와 기쁨이 사라진다. 에너지는 한도 초과돼 번아웃(burnout・소진) 상태로 간다. 자율신경계 역시 평시와 전시를 구분 못하고 헷갈리는 반응을 하다가 결국 총체적 부실대응으로 이어져 면역계・신경계・혈액순환계 질병들을 불러들이게 된다.

바로 이같은 현대인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운동, 명상, 요가, 심리요법 등 다양한 심신치유법이 나왔다. 그중에 하나로 신경과학자들은 ‘미주신경(vagus nerve)의 활성화’를 권한다.

미주신경은 우리 뇌 깊숙한 곳에서 시작해 심장을 거쳐 창자에까지 들어가는 가장 긴 신경조직이다. 호흡, 소화, 심박수, 각종 감각, 운동신경 등을 관장하며, 투쟁-도피 반응에서 벗어나도록 브레이크 페달 역할도 한다.  


미주 신경의 신체영역./출처=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미주신경이 활성화될수록 ‘나는 곧 호랑이에게 잡아 먹힐거야’식의 기분에 빠져드는 대신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상황이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을 주시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수키 & 엘리자베스 노보그라츠가 지은 명상 가이드북 <Just Sit 일단 앉으면>에서는 미주신경을 자극하는 8가지 방법이 나와 있다.

■심호흡

■포옹

■노래 부르기

■콧노래 부르기

■차가운 물속에 얼굴 담그고 오래 버티기

■운동 (달리기, 수영, 줄넘기 등)

■춤추기

■친절 베풀기

미국 갤럽의 각국 사람들의 행복을 측정하는 질문들 

 

 



어제 하루, 당신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았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했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믿을 만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어제 하루,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까?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

 

 

<  중앙일보  2022.08.17 >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장마철도 지났는데, 손가락만 한 장대비가 우악스럽게 쏟아져 기왓장 두드리는 소리가 온천지에 가득하다. 기울어진 암자를 걱정할 일만 없었다면, 도시에서 듣는 한옥 지붕의 빗소리도 꽤나 낭만적이었을 텐데, 더위를 식히고 대지를 적셔 생명을 키우는 빗님이라며 편히 감상했을 텐데, 퍽 아쉽다.

 


연일 비에 불안한 밤을 보내고, 절이 위험하니 어디로 피해야 하지 않을까 구시렁댔다. 내 걱정소리에 도반스님은 그냥 인연 따라 죽으면 된다며 흔연히 넘겼다. 세상사 그리 아싸리 끝나면 고맙지만, 목숨이란 게 본디 덧없긴 해도 질기고 모진지라, 바라는 대로 쉬이 끝나지 않으니 문제다.

 


81세에 출가한 협존자, 열반들어
의지대로 살아야 진정 자기 인생
모두가 선업으로 마무리하기를

 


절에 오시는 분 가운데 99세 되는 분이 계시다. 검버섯 하나 없는 맑은 얼굴로 나만 보면 “스님 나 언제 죽어요? 나 왜 안 죽어요?” 묻는 분. 목소리만 들으면 10년은 거뜬히 사실 것 같아 ‘100세 되시면 절에서 생신파티 해드릴 테니 건강하게 지내세요’ 했다. 98세 되던 작년까지는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오셨는데, 올해는 힘들어해서 오시면 꼭 손에 차비를 쥐어드렸다. 택시 타고 오시라고.

 


그러고 보니, 진시황은 13세에 왕위에 올라 그때부터 오래 살 마음에 산 자신의 능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에 비하면 보통 사람들은 살 때는 죽음을 피하거나 늦추려 해도, 정작 나이 먹고 힘들면 죽고 싶다고 말한다. 대체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셸리 케이건은 ‘우리는 기계와 다를 바 없다. 다만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기계다. 말하고, 소통하고, 생각하는 기능이 있는 매우 특별하고 놀라운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다… 우리의 육체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했다(『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는 몸이 갖는 고차원적 기능을 말하며, 그 기능이 멈춘 것을 죽음으로 설명한다. 무상함도 측은함도 없는 객관적 통찰인 셈이다.

 


불교는 죽음에 대해 인연이 다하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흩어지듯, 몸도 마음도 조건 따라 모였다 사라지는 ‘공(空)’의 논리로 설명한다. 그러니 생에 집착할 바도 두려워할 바도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 또한 쉬운 말로 자기 자신을 잘 챙기면서 인연 따라 지혜롭게 복 지으며 살다 가시면 된다고 말하곤 한다. 주어진 인연을 받아들이고 삶을 즐기라던 장자의 ‘수연낙명(隨緣樂命)’과도 살짝 궤를 같이한다 하겠다.

 


아무튼 기분 좋게 손 흔들며 산문 나서던 노보살님은 두어 달 전부터 몸이 안 좋다며 절에 오질 못했다. 코로나도 위험하니 오지 말고 집에 계시라고 했는데, 요 며칠은 거동까지 불편한 모양이다. 자식이 있어도 혼자 사는 게 속 편하다며 나와 계시니,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이 커 보인다.

 


알다시피 절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오신다. 어르신 모시고 가족이 함께 절에 오는 일은 드물다. 안타깝게도 49재나 되어야 겨우 모인다. 재를 지내는 나도 얼굴을 모르다가 그제야 비로소 평생 저 가족을 위해 노보살님이 그리 정성껏 기도하셨구나 싶다.

 


내가 청룡암에 온 지도 4년이 지났다. 그사이 어르신들의 노쇠함도 더 짙어졌다. 그래서 자주 보이던 얼굴이 안 보이면 덜컥 걱정이 된다. 며칠 전, 칠석에는 ‘수명장원(壽命長遠) 복혜구족(福慧具足)’을 붓으로 써서 나눠드렸다. 나의 글씨 따위가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효의 농도가 묽어지는 세상에서 복과 지혜로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시라고 드린 정성이다.

 


예로부터 인도인들은 인생을 4주기(Asrama)로 나누어 생각했다. 배움의 시기, 가정을 이루는 시기, 숲에 머무는 시기, 삶을 정리하는 시기. 그들은 오랜 세월, 인생의 마무리를 마음공부에 힘쓰다 갔다. 불교 10대 존자인 협존자의 경우에는 81세에 출가했다고 한다.

 


처음 출가했을 땐 다 늙어 출가하니, 주위에서 갈 곳이 없어 출가했다는 둥, 먹을 게 없어 출가했다는 둥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지친 몸으로 쉬지 않았다. 옆구리를 바닥에 대지 않았다고 협(脇)존자라 했을 정도다. 그를 높이 평가하는 건 그 나이에도 ‘스스로의 의지’로 출가하고, 수행하고, 열반에 들었기 때문이다. 젊든 늙든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어야 진정한 자기 인생이기에 그렇다.

 


특히나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마무리 지을 수만 있다면 가장 큰 복일 것이다. 협존자 같은 결단은 아니더라도, 호들갑스럽게 좋은 약과 보양음식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이해하고 미련도 원망도 남기지 말고, 모두가 선업(善業)으로 마무리하면 좋겠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인생사, 꿈속의 꿈이로다

 

 

< 중앙일보 2022.09.14 >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가을 하늘이 환하게 드러났다. 서울 하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랗고 맑은 공기다. 눈을 감고 어깨를 뒤로 젖혀 호흡을 깊게 해보았다. ‘맑은 공기라도 폐에 집어넣어 욕망에 물든 탁한 기운을 내보내야지.’ 아, 오늘 같은 날에는 바람처럼 건너가 어느 맑고 기품 있는 사람이라도 만나고 싶다.

명절을 어찌 보낸 것인지 몸이 찌뿌둥하다. 그래도 달 보며 고향 생각도 하고,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 모습도 그려보았다. 사실 출가자에게 명절은 있으나마나 할 정도로 시답잖다. 아니, 오히려 챙길 것이 많아 솔직히 귀찮다고 해야겠다. 그나마 낙이라면, 차 한 잔 앞에 두고 가득 찬 가을 달 감상하는 정도랄까. 어려서는 그리도 기다리던 명절이었는데 말이다.

 


무지개 같은 허상 좇는 게 인생
맑고 밝은 지혜의 빛은 어디에
내 안에 있는 감로수 찾아보자

 


생각해보니 어려선 학교만 갔다 오면 나가 놀았다. 허약해서 친구들 노는 걸 주로 구경했다. 그래도 설레며 좋아했던 게 있는데, 바로 무지개 떴을 때 친구들과 함께 무지개를 좇아 산 너머까지 달려가는 거였다. “무지개가 있는 저곳까지 가보고 싶어.” 친구와 함께 무지개가 사라질까 숨이 턱에 받치도록 뛰었다. 하염없이 달리는 사이 무지개가 사라지면, 터벅터벅 되돌아오며 미친 듯 뛰어간 것을 후회하곤 했다.

이처럼 나는 허망한 것을 좋아했다. 잡을 수 없는 무지개를 좇아 뛰었고, 서쪽 하늘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입을 닫았다.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 사라지는 거 구경하다 학교에 늦을 때도 있었고, 은빛 강물에 비친 달이 아름다워 친구와 함께 강둑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 부모님께 혼이 났다.

그래서인가. 커서는 또 다른 허무한 것들을 좇아 퍽 헤매었다. 머리만 깎으면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줄 알았지만 허사였다. 출가한 후에도 허상에 빠져 ‘중 벼슬 닭 벼슬만도 못하다’는데, 이름을 알리기 위해 애썼다.

 


세상에 허무하지 않은 게 어디 있을까만, 허망한 것들은 죄다 아름다워서 마음이 현혹되기 쉬웠고, 잡힐 듯 멀어지면 절망하다가도 다시금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일어나 설쳤다. 그러다 생각했다. ‘허상을 좇을 일이 아니라, 내 안의 감로수를 찾아야겠구나.’

 


최근에 TV에서 우연히 ‘환혼’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혼을 바꾼다는 설정 하에 전개되는 러브 스토리다. 그런데 궁금해졌다. 저 남주인공은 몸의 주인을 사랑하는 것일까, 새로 깃든 혼을 사랑하는 것일까. 마치 무문관 35칙 ‘천녀이혼(倩女離魂)’ 화두처럼, 병든 몸으로 누워있던 천녀가 진짜인지, 혼이 분리된 이후의 천녀가 진짜인지 묻는 것처럼 헷갈렸다.

 


『장자』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장주(莊周)가 어느 날, 나비가 되어 꽃 사이를 나는 꿈을 꾸었다. 잠을 깬 장주는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미 답을 제시했다. 절대경지에서 보면 꿈도 현실도 구분이 없다는 것을.

 


불교는 인생을 헛된 꿈에 비유한다. 사랑하는 이와 맺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몸부림치던 조신도 한생을 다 살았으나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 진짜 같던 꿈도 깨지 않았을 땐 괴로운 삶이었다. 꿈이 너무 생생하여 가위에 눌리기도, 울다 지쳐 깨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모든 것들은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으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또한 번개 같으니, 이와 같이 관하라(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고 가르친다.

 


한편 ‘큰 꿈을 과연 누가 먼저 깨울 것인가(大夢誰先覺)’라고 읊었던 『삼국지』의 제갈량은 ‘평생의 일을 내 스스로 알고 있다(平生我自知)’고 했다. 대몽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줄 이미 알았지만, 그럼에도 유비의 삼고초려에 뜻을 함께한 것이다. 마치 저 『금강경』의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는 구절처럼, 무상한 줄 알면서도 마음을 내어 살아냈다는 뜻 아니겠는가.

 


헛된 꿈을 좇아 달려가던 나도 이제는 인생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 잘 안다. 또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감히 예상이 된다. 

 

하지만 ‘비록 하늘과 땅은 오래되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낳고, 비록 해와 달은 오래되었지만 날마다 그 빛은 새롭다’던 연암의 말처럼, 헛된 꿈인 줄 알면서도 다시 마음을 내어 오늘을 살고자 한다. 

 

강렬한 이기적 욕구에 시달리면서도 생명의 향기 풍기며 맑고 밝은 지혜의 빛을 향해 한 걸음씩 걸음을 내디뎌 볼까 한다.

원영 스님·청룡암 주지


살아서 하는 장례식
  

< 문화일보 이미숙 논설위원, 2018.04.25  >



최근 일본에서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이별 파티가 명사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다. 전직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75)는 지난해 10월 료고쿠 경기장에서 이별 파티를 했다. 건설장비업체 고마쓰의 안자키 사토루(安崎曉·81) 전 사장은 지난해 10월 담낭암이 발견되자 “아직 건강할 때 삶에 힘이 되어준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며 신문 광고를 내고 생애 마지막 파티를 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생존해 있다. 일본에선 이처럼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작업을 ‘인생종결 활동(終活·슈카쓰)’,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갖는 마지막 파티를 ‘생전장(生前葬)’이라고 한다. 종활과 생전장은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만든 미 작가 겸 감독 노라 에프론(1941∼2012)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컴퓨터에 ‘퇴장(exit)’ 폴더를 만들어 꼼꼼히 죽음을 준비했다. 영화감독답게 추모 파티 플랜 및 800여 명에 달하는 초청자 명단까지 만들었다. 평생 친구였던 영화배우 메릴 스트리프 등 8명을 추모 연설자로 지정하면서도 “절대 눈물짓거나 엄숙한 얘기를 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지침까지 남겼다. 그녀의 별세 한 달 후 뉴욕에서 열린 추모식은 에프론 팬클럽 축제와 같았다. 그녀는 에세이집 ‘철 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에서 죽음을 앞두고 “좋은 시절이 단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판단이 들자, 나는 매일 아침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는데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자문했다”고 기록했다.

지난 16일 별세한 배우 최은희는 장례식장에 가수 김도향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틀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한국영화사를 빛낸 대스타인 그녀는 납북된 후 탈북, 미 당국의 보호 속에서 살기도 했다. 92년에 걸친 그녀의 인생은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그녀는 지난 2005년 신상옥 감독과 워싱턴을 방문,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소이부답(笑而不答)할 뿐이었다. 납북·탈북에 대한 얘기는 가슴에 묻고 가겠다는 의지인 듯했다. 그녀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열흘여 남겨두고 ‘난 참 바보처럼 살았다’는 이별 메시지만 남기고 떠났다니 애잔한 마음 지울 길 없다.

장례식, 꼭 죽어서 해야 하나요? 살아있을 때 하고 싶습니다.

 

< 비마이너 김혜미 기자, 2018.08.14 >
 

 
살아 있는 사람의 장례식이 열렸다.

노년유니온의 위원장을 맡은 김병국 씨의 장례식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 사람들을 초대해 장례식을 치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이 일이라면 죽음을 반드시 슬프게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삶에 초대됐던 사람들을 장례식에 초대해 이야기 나누며 웃고 싶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장례식 초대장에 이렇게 썼다.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인생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화해와 용서의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고인이 되어서 치르는 장례가 아닌 임종 전 가족, 지인과 함께 이별 인사를 나누는, 살아서 치루는 장례식을 하려고 합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 입고 오세요.”

그의 장례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이 14일 오후 4시에 서울시동부병원에 모였다. 그가 초대장에 쓴 것처럼 사람들은 검은 옷이 아닌 알록달록한 예쁜 옷을 입고 왔다.

김 위원장은 2012년에는 노년유니온에 가입했고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빈곤노인을 위한 기초연금 투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청와대 앞에서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생계급여에서 노인 기초연금을 삭감하지 말라’며 일명 '도끼상소'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한 노인 팟캐스트 ‘나는 꼰대다’에 출연하고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빈곤노인의 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암이 문제였다. 올해 노년유니온 위원장을 맡은 직후, 그의 몸에서 암이 발견됐다. 현재 암은 그의 몸에 퍼져있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 내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모든 표정을 얼굴에 한가득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소리내며 울지 않았고 그렇다고 크게 소리내며 웃지도 않았다. 몸이 아파서였는지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고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수줍어 했다. 사람들에게 활동에 관해 당부의 말을 전할 때는 누구보다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과 있었던 이야기를 할 때면 그 사람의 얼굴을 깊게 들여다 봤다.

김 위원장은 사람들에게 참석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죽음을 슬프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죽음을 즐겁게 이야기 하자. 사람은 어차피 모두 죽는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좀 일찍 죽느냐 늦게 죽느냐 뿐이다. 너무 울지들 말라”며 사람들을 되려 위로했다. 그러면서 같이 운동했던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의 의견에 동의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먼저 손을 내밀고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이야기 했다.
 
이어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김 위원장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풀어놨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그가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고 이야기 했다. 이정욱 국민연금 노조원은 마이크를 잡았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그는 빈곤노인의 현실을 알리고 바꾸는 데 김 위원장이 함께 있어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 노조원은 “기초연금이 도입되면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긴 사람들에게 기초연금을 적게 주거나, 빈곤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줬다가 뺏는 일 등이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이 때 선생님을 동지로 만났다. '도끼상소' 당시 국회의원에게 호통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인연을 추억하며 그가 갈구했던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의 말이 끝나고 김 위원장과 이 씨는 울며 포옹했다.

이명묵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대표는 “2014년 5월부터 기초연금 문제를 해결하려 길거리에서 어르신과 같이 활동했다. 그는 가장 연장자이면서도 가장 앞장서 노인인권과 복지의 현실을 토로했다. 늘상 배움을 주셨기에 마음속으로 감사했고 존경했다”고 말하며 그가 올 가을에 코스모스를 보며 하늘소풍을 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하는 장례식의 의미도 이야기 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낮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고 왔는데, 어떤 장례식이기에 낮에 가냐고 물어 설명을 했다. 이야기를 듣더니 다들 놀라워 했다. 친구들이 어르신의 장례식 이야기를 들으면서 뇌리에 스친 것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나이대는 죽음을 일상에서 생각하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숨을 쉴 때 인생에서 같이 했던 사람들과 내 죽음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장례식에 초대장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일했던 종로시니어클럽의 관장 전달석 신부는 그의 ‘살아있는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30여년 동안 성직자로 살면서 수많은 장례식에 참여했다. 그런데 가장 마음이 아픈 장례식은 이별준비를 하지 못한 채 고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을 볼 때였다. 오늘 이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죽기 전에 이별의 준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숭고하고 중요한 시간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하면서 "영혼을 가진 인간의 육신이 다하는 것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했다.

김병국 씨는 이 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좋아하는 노래도 불렀고 싸워서 멀어졌던 사람도 다시 만나 화해했다. 다만 그 장소가 자신의 장례식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손을 잡고 둥글게 모여 춤을 췄다. 그리고 그가 병실로 돌아갈 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모두가 이별을 준비한, ‘살아있는’ 사람의 장례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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