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하는 장례식
< 문화일보 이미숙 논설위원, 2018.04.25 >
최근 일본에서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이별 파티가 명사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다. 전직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75)는 지난해 10월 료고쿠 경기장에서 이별 파티를 했다. 건설장비업체 고마쓰의 안자키 사토루(安崎曉·81) 전 사장은 지난해 10월 담낭암이 발견되자 “아직 건강할 때 삶에 힘이 되어준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며 신문 광고를 내고 생애 마지막 파티를 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생존해 있다. 일본에선 이처럼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작업을 ‘인생종결 활동(終活·슈카쓰)’,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갖는 마지막 파티를 ‘생전장(生前葬)’이라고 한다. 종활과 생전장은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만든 미 작가 겸 감독 노라 에프론(1941∼2012)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컴퓨터에 ‘퇴장(exit)’ 폴더를 만들어 꼼꼼히 죽음을 준비했다. 영화감독답게 추모 파티 플랜 및 800여 명에 달하는 초청자 명단까지 만들었다. 평생 친구였던 영화배우 메릴 스트리프 등 8명을 추모 연설자로 지정하면서도 “절대 눈물짓거나 엄숙한 얘기를 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지침까지 남겼다. 그녀의 별세 한 달 후 뉴욕에서 열린 추모식은 에프론 팬클럽 축제와 같았다. 그녀는 에세이집 ‘철 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에서 죽음을 앞두고 “좋은 시절이 단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판단이 들자, 나는 매일 아침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는데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자문했다”고 기록했다.
지난 16일 별세한 배우 최은희는 장례식장에 가수 김도향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틀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한국영화사를 빛낸 대스타인 그녀는 납북된 후 탈북, 미 당국의 보호 속에서 살기도 했다. 92년에 걸친 그녀의 인생은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그녀는 지난 2005년 신상옥 감독과 워싱턴을 방문,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소이부답(笑而不答)할 뿐이었다. 납북·탈북에 대한 얘기는 가슴에 묻고 가겠다는 의지인 듯했다. 그녀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열흘여 남겨두고 ‘난 참 바보처럼 살았다’는 이별 메시지만 남기고 떠났다니 애잔한 마음 지울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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