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목숨 달렸다” 전국 어민들, 日오염수 과장한 서균렬 교수 고발

 

 

<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2023.06.04. >

 


 
전국의 어민들이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비판 의견을 지속해서 밝혀온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를 고발했다. 어민들은 “우리에겐 생업이 달린 일인데 서 교수가 제대로 된 근거 없이 계속 국민들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전국연안어업인연합회는 지난 2일 충남 태안경찰서에 서 교수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냈다. 전국연안어업인연합회는 2016년 10여 개로 나뉘어있던 연안어업인들의 조직을 통합해 만든 연합으로, 가장 많은 어민들이 가입된 단체다. 전국 9개 지부를 두고 있으며 어민들만 가입할 수 있다.

서 교수는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오염수가) 동해로 유입되는 데 5개월 걸린다” “방사성 물질은 무거워서 가라앉더라도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로 침투할 우려가 있다” “그렇게 안전하다면 도쿄 식수로 사용해라” 등의 발언을 해왔다.

연합회는 서 교수의 발언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고 했다. 김대성 연합회장은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예민한 시기에 검증되지 않은 발언을 하는 건 저희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라며 “국민들이 안 그래도 불안한데 생선을 먹겠나. 어민들의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1㎏에 1만5000원에 팔리던 생선 가격이 6000원대로 내려앉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국가가 인정한 기관에서 검사했는데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왔다든지, 최소한의 근거를 갖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느냐”며 “차후에라도 방송에서 이야기할 때는 검증된 자료를 토대로 이야기해 달라는 취지에서 고발했다”고 했다.

 


◇해수부, 서균렬 교수 주장 조목조목 반박

어민들은 왜 서 교수의 주장이 ‘근거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31일 서 교수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설명자료를 냈다.

서 교수는 “수심 200~500m 물은 중국 쪽으로 가며, 중국 남중국해 갔다가 대만해협을 통해 제주 근해로 가서 동해로 유입되는데 5~7개월 걸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2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발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방출된 오염수 중 삼중수소는 4~5년 후부터 국내 바다로 유입된다. 

이때 유입되는 삼중수소 농도는 국내 해역 평균보다 10만분의 1수준이라고 해수부는 설명했다. 

또한 “시뮬레이션은 수심 5000m 심해까지 계산한 결과이며 (서 교수가 말한) 200~500m의 중층수를 포함해 계산한 결과”라고 했다.


서 교수는 또 “물 몇 리터 떠서 한 검사가 동해를 대표하고, 남해를 대표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해수부는 “2023년 연안과 항만을 중심으로 총 52개 정점을 구성해 격월 또는 반기별로 해양방사능을 조사 중”이라고 반박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역시 40개 정점을 조사하고 있어 정부에서 정기적으로 모니터링 하는 곳은 총 92개라고 했다. 해수부는 “각 정점에서 해수 60리터씩을 채수해 방사성 핵종을 분석하고 있으므로 우리 해역의 배경농도를 확인하는 데는 문제없다”고 했다.

해수부는 이 같은 자료를 내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근거한 주장으로 어업인은 물론 수산업계의 피해가 우려되는 점을 고려해 일방적인 주장이 유포되지 않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 서균렬 교수조차도 “일본 오염수 방류, 비판하는 저만 학계 왕따”

앞서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서 교수의 발언을 대신 사과했었다. 주 교수는 2021년 4월 페이스북에 “은퇴한 선배 교수님을 대신해 제가 사과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원자핵공학과를 대표해서 사과드린다”고 했다.

서 교수는 “삼중수소가 무거워서 바다 밑으로 가고, 바다 밑에 사는 광어가 피폭을 받으니 광어회 좋아하는 국민의 피해가 더 우려된다. 제주부터 양양까지 오염수가 퍼져나간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었다. 

 

주 교수는 “이런 주장, 사실일 수 없다”며 “무거워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 후쿠시마 바다 밑에 있지 해류 타고 우리나라로 올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표층수에 있던 삼중수소가 해류를 타고 우리나라 근해로 올 수는 있지만 엄청나게 희석된다. 최소 1조분의 1로 희석된다”고 했다.

주 교수는 “서울대 교수가 방송에 나와서 얘기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믿게 된다”며 “그러나 지각과 분별력 있는 사람은 다를 것”이라고 했다.

서 교수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비판하는 자신이 ‘학계 왕따’라고 했다. 자신만 독특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그는 지난 3월 CBS라디오 ‘한판승부’에서 “원자력 학계에서 저는 사실 왕따가 돼 있다”며 “왜냐하면 거기서는 깨끗하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한일 협력 차원에서 일본에 탱크를 만들어주자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우리나라 일꾼 보내면 금방 한다. 몇천억 원은 들겠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오염수 방류를 위한 인공 호수를 하나 파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다.

히로시마와 후쿠시마, 일본이 짊어진 ‘양면의 유산’

 

 

< 중앙일보, 강혜란 국제부장, 2023.05.25  >

 



히바쿠샤(hibakusha·被爆者). 영어로도 일본어 발음 그대로 쓰는 이 단어는 원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 생존자들을 뜻했다. 더 이상 의미가 확장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1986년), 소련 핵잠수함 K-19 방사능 누출사고(1961년), 스리마일 원자력 발전소 사고(1979년), 그리고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2011년)까지 벌어지면서 피폭 피해자들을 일컫는 용어로 확장됐다. 이처럼 핵무기는 물론, 원전 관리 이상도 비극적 희생을 초래할 수 있다. 핵의 유익과 위험이란 양면성이다.

히로시마의 비극은 지난 19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막일에 G7 정상들이 이곳 평화기념공원 내 원폭자료관을 방문하면서 다시 환기됐다. 지금까지 약 7600만 명이 다녀갔다는 자료관에 G7 정상들이 방문한 건 처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정상으로는 두 번째 찾으면서 이번엔 85세의 원폭 피해 당사자도 만났다. 태평양전쟁을 끝낸 원폭 투하가 78년이 흘렀어도 정당성 논란이 되는 것과 별개로, 이들 생존자와 되살아난 도시 히로시마는 강인한 생명력과 평화의 울림을 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자신의 지역구인 히로시마에서 G7을 개최하고 ‘거듭 태어난 일본’을 세계에 강조한 배경일 게다.

히로시마가 과거사라면 후쿠시마는 현재진행형인 핵공포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누출된 방사능 오염수를 정제 처리해 태평양에 방류하는 문제를 놓고 일본 정부는 사력을 다해 국제사회를 설득해왔다. 한국 정부 시찰단이 어제까지 1박 2일간 원전 시설을 둘러본 데 이어 다음 달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 안전성 평가 보고서가 발표되면 국제사회의 최소한의 승인은 얻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주변국의 불안을 없애주진 못한다. 기시다 총리는 “안전성뿐 아니라 ‘안심’에 대해서도 한국분들의 이해를 심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낮은 자세로 계속 설득해 가야 한다.

다만 받아들이는 쪽 역시 핵공포를 과장해선 안 될 것이다. 오랜 세월 히바쿠샤들은 물리적 고통뿐 아니라 사회의 차별과 냉대에 눈물을 삼켰다. 결혼은 물론이고 취직을 시도할 때조차 “히로시마에서 온 사람은 거른다”는 풍조 속에 불이익을 당했다. 후쿠시마 산지에서 농사짓고 고기 잡는 이들도 일종의 히바쿠샤 신세가 됐다. 

 

과학적 검증은 빈틈없이 이뤄져야 하지만 괜한 괴담과 공포 조장은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증폭하게 된다. 히로시마에 이어 후쿠시마도 생명력과 희망의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일본이 짊어진 양면의 유산은 인류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2023 그린피스 보고서

 

그린피스 꿀벌 보고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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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집단폐사 막으려면 축구장 42만8500개 크기 꽃밭 필요”

 

< 매일경제,  조성신 기자,   2023-05-18  >

 


꿀벌 집단폐사를 막으려면 벌을 위한 꽃·나무밭을 축구장 42만8500여개와 맞먹는 30만ha(헥타르) 규모로 확보해야 한다는 환경단체와 대학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왕립지리학회가 선정한 ‘지구상 가장 중요한 생물 5종’에 뽑기도 한 꿀벌이 집단폐사하는 일이 세계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세계 벌의 날’을 이틀 앞둔 18일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학협력단은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 2000년대 중반 시작된 ‘꿀벌군집붕괴현상’(CCD)은 지금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양봉협회는 지난달 기준 협회 소속 농가 벌통 153만7000여개 가운데 61%인 94만4000여개에서 꿀벌이 폐사한 것으로 추산한다.

통상 벌통 1개에 꿀벌 1만5000~2만마리 사는 것을 고려하면 141억6000마리에서 188억8000마리가 죽은 것이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 작년 동기간 꿀벌 78억마리(39만여 봉군)가 월동 중 폐사했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꿀벌 집단폐사 규모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꿀벌 집단폐사 원인에 대해 그린피스와 안동대는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대표적으로 2018년 유럽 10개국에서 벌에 치명적인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사용을 금지한 이후에도 다른 요인들로 인해 집단폐사가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꿀벌의 생존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원인으로는 ‘기후변화’가 있다.

보고서는 “지구 온도가 200여년 만에 1.09도 오르면서 벌이 동면에서 깨기 전 꽃이 피었다가 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겨울철 온난화와 이상기상현상 증가는 월동기 꿀벌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재작년 10월과 12월 이상기온으로 꿀벌이 제대로 월동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국내에서는 꿀벌에게 꽃가루와 꿀 등의 먹이를 주는 ‘밀원’이 급격히 줄어든 것도 꿀벌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양봉산업법상 밀원식물은 매실나무와 동백나무 등 목본 25종과 유채와 해바라기 등 초본 15종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밀원은 2020년 기준 14만6000㏊로 1970~80년대 47만8000㏊보다 약 33만㏊ 감소했다. 제주도의 1.8배, 여의도의 1145배 면적의 밀원이 사라진 것이다.

특히 천연 꿀 70%가 생산되는 아까시나무의 경우 1980년대까지 32만ha에 조림됐다가 현재는 3만6000ha 정도에만 남아있다.

한국의 벌꿀 사육밀도는 1㎢당 21.8봉군으로 미국의 80배에 달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원래도 치열하게 먹이경쟁을 벌여야 했던 한국 꿀벌들이 더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보고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밀원(蜜源)을 30만㏊는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원 확보를 위해서는 ▲국유림과 공유림의 적극적 활용 ▲‘밀원직불제’ 도입 검토 ▲국무총리 산하 ‘벌 살리기 위원회’ 설립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국내 밀원수림은 15만3381ha다. 산림청이 올해 계획한 밀원수림 조성 면적은 150ha로 이 속도로는 30만ha 밀원을 확보하는데 최소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진은 “국내 밀원수는 아까시나무에 집중돼있는데 혀가 짧은 재래꿀벌은 아까시나무에서 꿀을 채취하기 어렵다”라면서 “계절마다 다른 꽃이 연속해서 피도록 밀원을 다양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꿀벌 200억 마리 폐사 vs 순천만박람회 300만 성황

 

 

< 중앙일보, 최경호 광주총국장, 2023.05. >

 


“꿀벌 폐사에 ‘만만디(慢慢地·천천히)’인 정부 태도가 참말로 답답합니다.”

지난 15일 오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인구(60·전남 강진군)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씨는 “2년째 계속된 꿀벌 폐사로 양봉업계가 망하기 직전인데 정부는 보상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겨울까지 꿀벌이 가득했던 벌통 500개 중 440개가 2월 이후 텅 비었다”고 말했다. 벌통 1개당 1만5000~2만 마리가 사는 만큼 이씨 농장에서만 700만 마리가 증발했다. 그는 “꿀벌 폐사는 농촌 전체와 농업 기반의 6차산업에까지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벚꽃 등 봄꽃 개화시기에 맞춰 3주를 앞당긴 순천만정원박람회장. 지난 10일 관람객 3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꿀벌 실종사태로 농촌 지역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꿀벌 폐사의 여파가 양봉 농가에 이어 과수농가와 종묘업계까지 번지고 있다. 이미 경북 상주에선 4만여 참외 농가가 두 배 넘게 이상 값이 오른 벌통을 사느라 100억원가량을 썼다. 꿀벌은 농작물과 식물에 핀 꽃들을 날아다니며 수분(受粉)을 돕는 주된 곤충이다.

16일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올해 전국 농가 1만8826곳, 122만4000개 벌통에서 꿀벌이 없어졌다. 벌통당 1만7000마리씩만 잡아도 전국 꿀벌 중 56%(208억 마리)가 폐사했다. 39만517개 벌통에서 60억 마리가 없어진 지난해보다 3배 이상 피해가 커졌다.

꿀벌 폐사는 늘어났는데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온난화와 응애(진드기), 약제 오용 등이 맞물려 꿀벌이 죽은 것으로 본다. 이들은 또 “개화 시기가 각기 다른 밀원수(蜜源樹) 식재와 양봉산업의 고도화 만이 폐사를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꿀벌의 먹이인 산수유·개나리·진달래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개화하고 있어서다. 이에 농진청 등은 아카시(개화시기 5월)를 비롯해 회양목(3~5월), 헛개나무(6~7월), 쉬나무(7~8월) 등을 심을 것을 제안했다.

정부의 제안에도 양봉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밀원수는 최소 5~10년이 지나야 효과를 알 수 있다”는 반응이다. 양봉 농가 사이에선 순천만국제박람회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기후변화를 반영해 박람회 일정을 앞당긴 추진력을 양봉산업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순천만정원박람회는 당초 4월 22일이던 개막식을 3주가량 앞당겨 만개한 벚꽃을 배경으로 개막식을 치렀다. 조직위 측은 빨라진 봄꽃 개화 시기를 반영한 게 지난 10일 관람객 300만 명 조기 돌파에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정부는 지난 11일 ‘지속 가능한 양봉산업 협의체’를 꾸려 꿀벌 문제 해결에 나섰다. 농림부는 484억원을 들여 꿀벌 연구와 밀원수 식재에 착수한다. 고심 끝에 꺼내 든 정부의 카드가 온난화라는 위기에 몰린 꿀벌들을 살릴 만큼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몽블랑 ‘빙하’를 위한 오비추어리 (부고) 

 

 

 

< 한겨레, 황보연 기자,  2023-04-19  >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을 따라 길게 뻗은 몽블랑은 프랑스어로 ‘하얀(Blanc) 산(Mont)’이다. ‘유럽의 지붕’으로 불리는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해발 4808m)이자,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꼽힌다. 설산을 즐기기 위해 모여드는 스키어들과 아름답고 웅장한 협곡을 오르려는 등반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전 세계적 관광지다. 1924년 겨울올림픽이 처음 열린 곳도 몽블랑 기슭에 있는 소도시 샤모니다. 이름 그대로, 몽블랑의 상징은 눈(만년설·빙하)이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얼음층의 두께가 얇아지고 녹아내리는 속도도 빨라지면서, 몽블랑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


원래 몽블랑처럼 고도가 높은 산악지대는 눈이 잘 녹지 않는다. 1년 내내 녹지 않는 눈을 만년설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눈이 수백년 혹은 수천년 동안 쌓여 매우 단단한 얼음덩어리가 된 것이 빙하다. 몽블랑의 빙하 면적은 대략 축구장 1만4천개 크기인 100㎢나 된다. 하지만 지난겨울, 샤모니 마을에서는 상당수 스키장이 문을 열지 못했다. 이상고온 현상이 알프스 산맥을 덮친 탓이다. 알프스 북쪽 지역에선 사상 처음으로 20도를 웃도는 ‘겨울 더위’가 찾아왔다. 북서 아프리카의 따뜻한 기단이 유럽으로 강하게 유입되면서, 이례적인 고온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고위도와 저위도 간 온도차·기압차가 줄어들고 제트기류의 사행(구불구불한 공기의 흐름)이 심해지면, 지역에 따라 양극단의 날씨가 나타난다는 것이 기상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심지어 ‘스키의 종말’이 머지않았다는 관측도 나왔다. 샤모니 위쪽의 ‘알파인 빙하’는 20세기 동안 평균 두께가 50m 얇아졌다. 알프스 산맥의 평균 기온은 최근 10년간 0.3도 올랐는데, 이는 전세계 평균 기온 상승 속도의 두배다. 2100년이 되면 알프스 전체 빙하의 80~90%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와 있다. 알프스의 빙점고도는 지난해 7월에 5184m까지 올라, 2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온이 0도 이하로 얼음이 어는 지역이 그만큼 고지대로 올라가고 있다는 의미다.


몽블랑을 덮친 따뜻한 날씨는 등반객들의 안전도 위협한다. 지난 10일(현지시각) 프랑스 현지 언론들은 몽블랑 인근에서 눈사태로 6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현지 당국은 사고 전날 기온이 빠르게 오르면서 눈사태가 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지난여름, 샤모니의 산악 가이드들은 몽블랑 정상에 오르는 가장 대중적인 코스(구테 루트)에서도 등반객 안내를 꺼렸다. 빙하가 녹으면서 대량의 암석이 분리돼 낙석 사고 위험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물(담수) 부족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빙하는 서서히 움직이면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는데, 이 과정에서 물을 만들어 낸다. 단단하게 고정돼 있을 것 같지만 강처럼 흐른다는 얘기다. 그동안 알프스 지역 주민들은 빙하로부터 신선한 물을 공급받아왔지만, 앞으로 80년 뒤 후손들은 식수난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얼음의 면적이 줄어든다는 것은, 냉장고에 저장해둔 물이 부족해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빙하가 줄어들면, 국경 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알프스 산맥의 ‘테오둘 빙하’가 녹으면서 스위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그어져 있던 두 나라의 국경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빙하가 녹은 물이 산봉우리에서 두 갈래로 나뉘는 지점이 국경선이 된다. 그런데 물줄기가 100m정도 이동하면서, 원래 이탈리아 영토에 속해 있던 ‘체르비노 산장’이 스위스 쪽으로 바뀐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21년 양국은 합의안을 마련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또 다른 의미의 식목일
단언컨대, 숲의 미래와 나라 미래가 다르지 않다

 

< 조선일보,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2023.04.05. >



# 언젠가 인터뷰에서 “자식에게 남겨주고 싶은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주저 없이 치켜든 것이 <나무를 심은 사람>이었다. 장 지오노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아주 얇지만 더없이 풍성한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27년 전인 1996년이었다. 길지 않아 단숨에 읽어내려 갔던 책이었건만 그 여운은 길게 남아 30년 가까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이름의 양 치던 사람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삼사년 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 숨을 거둘 때까지 40년 가까이 프로방스의 황무지에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를 심은 이야기다. 1935년 어느 날 언론은 새로운 숲이 발견되었다고 호들갑을 떨고 정부시찰단 역시 감탄하며 ‘천연의 숲’을 둘러보았지만 정작 그것이 부피에라는 한 사람이 버려진 황무지에 도토리알 한 알 한 알을 정성들여 심고 가꾼 숲이었음을 알아채진 못했다. 부피에의 숲은 두 차례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오늘날 프로방스의 풍성한 숲을 이뤘다.

 


# 프랑스에 부피에가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임종국이 있었다. 자기 이름 그대로 ‘숲[林]의 씨[種]가 되어 나라[國]에 보국’한 한국인이다. 그는 한국전쟁 후 속살 드러낸 민둥산에서 조림은커녕 나무 뿌리까지 캐내던 배고프고 못살던 50년대 중반에 570여㏊의 광대한 산야에 걸쳐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 250여만 그루 나무를 심고 그것을 물지게를 져가며 키워낸 당대의 ‘미친’ 이단아였다. 그 미친 짓의 결과가 전남 장성군 서삼면 일대 축령산 기슭에 빼곡히 들어찬 편백나무와 삼나무의 울창한 숲이다. 이 숲은 지난 2000년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었고 현재도 세계산림조림사에 남을 명품 숲이 되었다.

 

# 엊그제 화마에 휩싸였던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할 만큼 우리는 본래 숲의 나라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선의 산야는 헐벗게 되었다. 러일전쟁 직후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 삼림을 벌목해 군사용으로 전용하고자 일제는 1905년 11월에 육군목재창(陸軍木材廠)을 만들고 이듬해 1906년 10월 쓰러져가던 대한제국정부를 강박해 ‘압록강 두만강 삼림경영협동약관’을 관철시킨다. 그리고 1907년 4월 1일 자로 통감부 영림창(統監府營林廠)을 세우고 사실상 육군목재창의 지휘관들이 통감부 영림창의 운영을 떠맡게 된다. 이들에 의해 도륙하다시피 벌채된 목재는 병영지 건축자재와 전신주의 자재로 쓰였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조선총독부 영림창으로 확장된 이후에 무분별한 벌채에 의한 삼림 파괴는 더욱 가중되어 압록강 두만강 유역만이 아니라 내륙의 오대산 등지에서도 광범위한 벌채가 감행됐다. 급기야 1916년 조선총독부 청사(구 중앙청) 건립 때 지반 강화를 위해 조선총독부 영림창에서 공급한 9400여 그루에 달하는 낙엽송이 땅속에 박혔다. 지난 1995년 개시된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와 그 후의 경복궁 복원공사는 이 중 상당수를 그대로 땅에 묻어 놓은 채 진행되었다.

 


#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그나마 우리 산야를 지키고 있던 소나무 역시 일제강점기에 남아나지 못했다. 일제 말에 기름 공급이 원활치 못해지자, 소나무 송진에서 송탄유를 추출해 이것을 항공유로 쓰겠다고 일제가 광분했기 때문이다. 애국가 2절에 묘사된 것처럼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칼로 난자해 벗겨내고 다시 상처를 내서 소나무의 진액인 송진을 채취한 것이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한반도 전역에서 1만여t의 송진을 수탈했다. 1943년 한 해 동안 채취한 송진의 양은 자그마치 4천여t에 달했는데 이는 50년생 소나무 90여만 그루에서 꼬박 일년을 채취해야 가능한 양이었다. 송진을 채취하고 난 소나무는 베어내기 일쑤였지만 지금도 전국의 산야에 송진 채취를 위해 흉물스럽게 껍질을 도륙당한 소나무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이 이 땅의 사람들이 겪은 일이었다면, 송진 채취는 이 땅의 나무들이 온 몸으로 겪은 일이었다.

 


#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식민지배와 분단 그리고 전쟁의 상흔으로 황폐되고 버려진 황무지에서 울창한 숲으로 탈바꿈한 세계 유일의 나라다. 한국전쟁 이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다시피 해 더 황폐해진 대한민국의 산야에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던 녹색 꿈을 심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숲의 토대를 만든 이는 다름아닌 박정희였다. 그가 1960~1970년대에 걸쳐 치산치수(治山治水)에 들인 공은 그의 모든 정치적 허물을 덮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가 일궈낸 대한민국이란 숲이 곳곳에서 타들어가고 있다. 건조한 봄철의 산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숲 도처에서 가치가 허물어지고 공든 탑이 무너지는 모습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위기 아닌 때가 없었다지만 작금의 위기는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막론하고 가히 총체적이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숲, 대체 어찌할 것인가!

 


# 숲은 나무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나무는 ‘나[余] 무[無]’ 곧 ‘나 없음’이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나 없음’의 나무같은 존재들이 고요하고 풍성한 숲을 이룬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공동체의 숲은 ‘나무(나 없음)’가 아니라 ‘나[余]유[有]’(나 있음)라는 이들이 나서 서로 목청을 돋우는 바람에 새도 깃들지 않는 버려진 숲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나무(나 없음)’가 아니라 ‘나유(나 있음)’만을 목청 돋우며 고집하는 한 우리 모두의 숲은 황폐화되고 만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온 국민은 너나없이 이 황폐화해가는 숲에 새 정신, 새 기풍이 깃들길 고대하고 있다. 그러려면 구부정하게 제멋대로 자라 지력만 갉아먹는 아까시나무 같은 것들은 속아내고 곧게 높이 자라 쓸모 있는 편백나무, 삼나무 같은 것들과 다양한 과실수 같은 존재들을 더 많이 심고 키워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바탕 위에서 하나 된 숲을 이뤄야 우리가 산다. 숲의 미래와 나라의 미래가 결코 다르지 않다.

"이 속도면 2월 벚꽃축제"…꿀벌에게 악몽 덮쳤다

 

 

< 중앙일보, 천권필 / 정은혜 기자,  2023.03.28 >



벚꽃이 가득 핀 27일 오후 충남 공주시 계룡산은 예년과 약간 다른 풍경이었다. 군락지 입구는 사진을 찍는 상춘객과 차량으로 붐볐지만, 벚꽃 축제 현수막이나 행사 안내 요원이 없었다. 벚꽃이 공주시청의 예상보다 일찍 피어서 벌어진 일이다. 계룡산 인근 청주 관측지점의 벚꽃 만개일은 하루 전인 26일이었다. 기상청은 벚꽃이 80% 이상 피었을 때를 만개로 부르는데, 이번엔 평년보다 12일이나 빨랐다. 공주시가 계획한 벚꽃 축제 개막식은 4월 7일이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상춘객 김나영(29)씨는 “벚꽃이 빨리 질까봐 예정보다 일찍 꽃구경 왔다”고 말했다. 공주시는 급히 안내요원 등을 투입했고 28일 회의를 열고 ‘강제로’ 앞당겨진 축제의 대책을 논의한다.

 


4월에 피는 봄꽃도 보름 일찍 개화  


벚꽃뿐만 아니라 봄꽃들의 개화가 빨라지고 있다. 27일 기상청의 계절 관측에 따르면 올해 벚꽃은 지역에 따라 평년(1991~2020년 평균)보다 최대 16일 일찍 개화했다. 

 

서울은 관측이 시작된 1922년 이후 두 번째로 빠른 25일에 벚꽃이 폈다. 부산과 대구, 광주 등 남부 지방은 벚꽃이 평년보다 7~16일 빠른 추세로 이미 만발했다. 

 

4월에 피는 배꽃과 복숭아꽃도 각각 최대 16, 17일 일찍 개화했다. 기상 당국은 따뜻해진 겨울 등 기후 변화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 센터장은 “2019년 즈음부터 날씨의 변동폭이 예상치를 뛰어넘을 정도로 커졌다. 이번 3월의 고온 수준을 2월에 예측할 수 없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봄의 신호탄인 봄꽃 개화가 앞당겨지는 상황을 생태학자들은 크게 우려한다. 

 

봄꽃이 피면 곤충을 비롯한 생태계의 구성 요소들이 계절 활동을 시작하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식물과 곤충 등 종(種)간에 ‘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서로 연결된 종들이 기후변화에 다른 속도로 반응하면서 오랫동안 유지돼 온 생태학적 관계에 혼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종(種)간 탈동조화 가속화…범블비 멸종 위협  



일찍 핀 봄꽃은 꿀벌 등 벌의 생태계에 혼란을 일으킨다. 많은 야생벌들이 땅속에서 겨울을 나는데 땅속은 더 늦게 따뜻해진다. 올해처럼 겨울에 눈이 적게 내리거나 봄철이 건조하면 땅속과 대기의 온도 격차는 더 커진다. 한국양봉학회장인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범블비(bumble bee)로 알려진 뒤영벌이 시간적 불일치로 인해 멸종 위협을 겪고 있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일찍 개화한 꽃은 매개 수분을 해줄 벌이 없고, 뒤늦게 땅 밖에 나온 야생벌은 먹이(꽃)가 부족한 상황에 부닥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국내 야생벌들의 밀도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시간적 불일치(탈동조화)로 인해 다음 세대는 더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철새를 연구하는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제비는 보통 3월 말이 되면 제주나 남해안에 도달하는데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일찍 한반도에 도래했다가 한파를 만나 폐사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40마리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한꺼번에 얼어 죽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벚꽃 축제를 기대했던 상인들은 이른 개화가 야속하기만 하다. 계룡산 동학사 인근에서 30년째 점포를 운영한 이모(70)씨는“과거에는 벚꽃 철에 공주 시장도 오고 음식도 많이 나누는 큰 장이 섰다. 이제는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시에서도 벚꽃철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벚꽃 축제를 여는 지자체들은 비상 대응 체제를 꾸렸다. 벚꽃이 평년보다 14일 빨리 개화한 충북 청주시는 벚꽃 명소인 무심천변에 관광객이 몰리자 지난 25일부터 안전요원을 투입했다. 충청북도는 이달 31일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관광객이 몰리는 벚꽃 명소 5곳을 대상으로 안전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 영등포구는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에 오는 31일부터 주말까지 질서 유지를 위한 안전요원 341명을 투입하기로 했다. 윤중로 벚꽃 축제 기간 도로 통제는 4월 3~10일까지로 예정돼 있지만, 벚꽃이 지난 26일 공식 개화를 시작해 주말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통상 지자체의 축제 일정은 최소 한 달 전에 계획한다. 3월 초쯤 민간 기상정보업체의 봄꽃 개화 예측 시기를 토대로 한다. 벚꽃은 개화 후 일주일 뒤 절정을 이루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예상 개화일 2~5일 뒤를 축제 시작일로 잡는다. 민간 기상정보업체 케이웨더 측도 올해 벚꽃 개화 예상 시기를 평년보다 4~7일 빠를 것으로 예상하긴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이상 고온이 3월에 이어져 개화 시기가 더 앞당겨졌다.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미리 잡아 놓은 축제 일정을 날씨의 변화에 따라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다. 날씨 예측이 어려워질수록 앞으로 행사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한 셈”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민간 기상업체들이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동원해 해마다 벚꽃 개화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일본 기상청은 2007년에 개화일 예측이 크게 빗나가면서 공식 사과했고, 2010년부터는 벚꽃 개화 예상일 발표를 중단했다.

21세기 후반 대구서 2월에 벚꽃 필 수도 

21세기 후반이 되면 벚꽃이 2월에 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상청이 우리나라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봄꽃 3종(개나리, 진달래, 벚꽃)의 개화일을 분석한 결과, 개화 시기의 변화 속도가 과거보다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60년 동안(1950~2010년대) 봄꽃 개화 시기는 3~9일 당겨졌지만, 지금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 등의 상황이 이어지면 21세기 후반 봄꽃 개화 시기는 23~27일 당겨질 것으로 예측됐다. 대구의 경우, 벚꽃이 2월 27일에 피는 등 3종 모두 2월 말에 개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개화가 빨라진다는 건 지구의 기능이 무너지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라며 “개화와 벌의 수분 매개, 농작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관점에서 보면 때 이른 개화는 생태계의 식량 서비스 저하, 나아가 인간의 식량 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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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봄꽃

 

 

 

< 경향신문,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2023.03.21 >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건 종다양성 위기를 뜻한다

봄꽃은 사람보다 멍청해 추운 겨울을 향해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현명하여서 목숨을 걸고 인간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지구의 종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할 결정적인 이유다

 


어느덧 추운 겨울은 가고 다시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잠잠해진 코로나19 덕에 3월의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몰려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봄꽃 아래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반가운 새 학기가 시작된 것이다. 봄꽃과 신입생은 이렇게 우리에게 봄을 일깨워주는 계절의 지시자로서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봄꽃이 피면 캠퍼스에 신입생이 오겠구나! 또는 신입생이 보이면 봄이 왔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 둘 관계의 시간적 동시성에 문제가 생겼다.


이제는 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봄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그런데 다른 계절의 지시자인 신입생에게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봄이 따뜻해진다고 신입생은 학교에 빨리 오지 않지만, 봄꽃은 추운 겨울을 향해 시간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생명을 앗아갈지 모를 봄추위와 찬 서리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꽃이 사람보다 멍청해서 그런 걸까? 과연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봄꽃은 우리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부터 그 답을 찾아보겠다.

육상생태계 내에서 식물의 개화는 식물의 생장과 진화를 넘어 생태계 내 다른 구성요소와의 교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봄이 되면 식물의 개화와 함께 많은 생태계 구성요소의 계절활동이 시작된다. 한 가지 대표적인 예가 곤충이다. 곤충은 영양 단계의 관점에서 생산자인 식물과 가장 먼저 교감을 하는 1차 소비자이다. 일반적으로 곤충의 봄은 오랜 시간 동안의 자연선택을 통해 식물의 봄과 자연스레 시공간적으로 동조화(synchrony)되어 있다. 여기서 동조화란 쉽게 말해 곤충의 변화가 식물의 변화에 또는 반대로 식물의 변화가 곤충의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곤충과 식물의 관계에 있어서 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곤충과 식물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문제의 중심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곤충과 식물의 봄이 탈동조화되는 것은 식물의 봄꽃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속도와 곤충의 봄이 빨라지는 속도가 달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곤충의 관점에서 보면 봄꽃과 같은 식물의 계절활동과의 관련성과 상관없이 외부의 온도, 강수, 일사량 같은 환경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아 계절활동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영국에서 봄철 나비의 첫 출현 시기가 지난 30년간 한 달 이상 빨라졌지만, 봄꽃의 개화시기는 한 달씩이나 빨라지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생태적 불일치(ecological mismatch)는 식물에서 동물로 이어지는 영양 단계에서 예기치 못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생산자와 1차 소비자로 이어지는 식물과 곤충의 다음 단계인 동물군 또는 분해자(미생물)의 생태에도 영향을 끼쳐 생태계 내 영향 흐름이나 군집 조성을 바꾸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변화에 따라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그 자체의 영향에 더하여 식물과 다른 생물 종과의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속도 간 차이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뒤영벌도 복수초도 위험하다

요즘 자주 뉴스에 등장하는 벌과 관련한 문제도 개화시기 변화와 관련이 있다. 중위도 지역에서 눈이 녹는 시기가 빨라짐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번식하는 현화식물의 개화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벌의 생장주기는 빨라지는 개화시기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벌이 꿀의 질이 좋은 개화시기보다 더 늦게 채밀(꿀을 가져오는 행위)하게 되면 벌의 군집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수분매개 효율 저하로 식물의 생장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런 생장계절의 불일치는 특히 아직 기온이 낮은 시기에 일찍 개화하는 식물과 이를 수분매개하는 벌 간에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른 봄에 피는 복수초나 현호색 같은 꽃들에는 사실 꿀벌보다는 온도 내성이 강한 뒤영벌이 더 효율적인 수분매개자이다. 일반적으로 복수초처럼 이른 봄에 피는 꽃은 단명하기 때문에 빨리 수분매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온도에 대한 내성이 뛰어난 뒤영벌이라도 개화시기가 빨라지면 추운 날씨에 꽃을 찾으러 가기가 어렵다. 게다가 복수초와 같이 개화가 이른 꽃들은 대체로 수명이 짧아서 번식에 있어서 수분매개 효율 저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여기서 벌이 생소한 분들에게 잠깐 소개하자면 뒤영벌은 흔히 알려진 꿀벌보다는 조금 덩치가 크고 온몸에 털이 달린 털북숭이 벌이다. 일반적으로 꿀벌의 수분매개 능력보다 수십 배 강한 것으로 알려진 능력자이다. 사실 알고 보면 뒤영벌은 꽤 유명한 친구인데 영어 이름을 들으면 아마 눈치를 챌 것이다. 뒤영벌의 영어 이름은 바로 범블비(bumble bee).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노랗고 검은색을 가진 자동차 로봇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영화에서도 계속 위기에 처하더니, 지금 실제 세상에서도 기후변화로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 개화시기가 빨라져 뒤영벌이 수분매개를 못해 꽃이 위험해진다는 것은 결국 뒤영벌이 양질의 꿀을 채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벌의 처지에서 보면 식량부족으로 인해 군집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화시기를 포함한 각종 기후변화의 영향이 범블비를 위협하고 있다.

몇년 전 할리우드 영화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뒤영벌 사진을 올리고 “뒤영벌은 기후위기로 멸종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라는 글을 남겨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기후변화가 유발하는 개화시기의 변화가 곤충을 거쳐 다른 동물생태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유럽의 딱새류는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나고 다시 유럽으로 날아와 알을 낳는데 이것은 딱새류의 먹이인 나방 애벌레의 생장계절에 오랜 시간 적응한 결과이다. 딱새류가 봄철 단 몇 주간만 참나무류 잎을 갉아먹는 나방 애벌레의 생장계절에 맞추어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유럽 딱새류들이 이 짧은 몇 주의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참나무류의 개엽시기가 빨라지면서 나방 애벌레의 출현 시기 또한 빨라졌는데, 빨라진 나방 애벌레의 출현 시기를 딱새가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딱새류는 보통 낮의 길이 변화에 따라 월동지를 떠나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나방 애벌레의 생장시간과 생태적 불일치가 발생한 것이다. 먹이는 시간을 거슬러 도망가는데 알아채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물질순환 기능 저하 땐 지구도 없어

정리해보면 개화시기가 빨라진다는 것은 종다양성(biodiversity)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흔히 종다양성의 위협이라고 하는 것을 단순히 종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으로 간단히 해석하곤 한다. 물론 특정 동물, 식물군 종이 사라지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보다 더 심각한 종다양성의 문제는 생태계의 기능적 다양성이 저하되는 것이다. 개화-벌의 수분매개-인간의 식량(농작물)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먹이사슬의 관점에서 보면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것은 생태계의 식량 서비스 저하 그리고 나아가 인간의 식량위기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개화시기가 빨라지면서 나타나는 식물 군락의 변화는 기존의 지구 육상생태계가 가지고 있는 물, 에너지, 탄소순환이라는 지구시스템의 거대한 물질순환에 기능 변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순환은 지구라는 행성이 존재할 수 있는 근간이기 때문에 지구의 물질순환 기능이 저하된다면 우리의 행성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아직도 한겨울인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복수초의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이런 뉴스를 가끔 TV에서 봤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등산객이 SNS에 찍어 올리는 겨울 등산 사진을 보면 때 이른 개화의 사진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진들이 많다. 그런데 이제는 명심해야 한다. 그게 당신이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복수초의 마지막 사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결국 봄꽃은 사람보다 멍청해서 추운 겨울을 향해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현명하여서 목숨을 걸고 인간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지구의 종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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