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쭝우의 후흑학 

 

  - 후흑한이란 말은 청나라 말, 중국의 사회개혁가 리쭝우(李宗吾) 1911년 쓰촨성 청두(成都)의 공론일보에 실은 글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발표된 직후 세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1917년에는 청두의 국민공보에서 후흑학(厚黑學, Thick Black Theory)이라는 책으로 발행되기에 이른다. 이내 조정의 사정에 의해 금서조치를 당하게 되나, 이후 마오쩌둥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 리쭝우가 1938년 2월에 쓴 책의 서문에서는 후흑학의 발전 양상을 서술하고 있는데, 1기는 상고시대로 후흑이 없이 공맹의 인의가 내세워지던 때, 2기는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후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때, 3기는 후흑이 널리 퍼지고 기술의 정교함과 발달이 극에 달한 때라고 하였다.


  - 이와 더불어 후흑에도 단계가 있다고 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 낯짝이 성벽과 같이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검다.
2단계. 낮짝이 두꺼우면서 단단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빛난다.
3단계. 낯짝이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색깔이 없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를 시장에 비유하면 처음 상인들이 아무리 진품을 팔더라도 갑자기 가짜를 파는 사람이 나타나 큰돈을 버는 것과 같다. 모든상인이 이를 다투어 따라하면 시장은 온통 가짜로 가득 찰 것이다. 이때 홀로 진품을 파는 사람이 나타나면 오히려 큰돈을 벌게 된다.

 

  - 리쭝우는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는 후흑을 갖춰야 한다면서 특히 공자, 맹자와 삼국지의 영웅들을 면후심흑(面厚心黑)의 대가라고 꼬집었다

 

2. 박백과 불후불혹

 

 (1) 후흑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대지약우의 경지

  - 논어 위정편, " 내가 안휘와 더불어 온종일 얘기했다. 그는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일견 어리석은 듯 했다.  그러나 ㄱ가 물러간 뒤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니 그 내막이 충분히 드러났다. 그는 결코 어리석지 않다."

 - 논어 공야장편, " 위나라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지혜롭게 처신했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마치 어리석은 듯이 처신했다. 그가 행한 지혜로운 처신은 가히 쫓아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어리석은 듯이 행한 것은 감히 쫓아서 행할 수 없다."

 

 (2) 후흑과 박백이 갈리는 지점

 - 《후흑학》에 대비되는 〈박백학〉 
"이종오가 후흑을 얘기하면서 욕설과 풍자에 망설이는 바가 없게 되자 전 사회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특히 삼강오륜으로 상징되는 성리학의 윤리도덕 수호를 자신들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고루한 자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당시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이 많은 한 벼슬아치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후흑학과 정반대되는 ‘박백학’이란 글을 써서 성도의 모 신문에 연속 기고했는데 말끝마다 도덕을 말하며 후흑학에 거친 공격을 마구 퍼부었다. 이종오는 그 글 을 읽고 나서도 전혀 괘념치 않고 그가 그냥 떠들도록 놓아두었다"


 - 이를 통해 후흑과 박백이 갈리는 지점은 바로 난세의 보신에 대한 평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주희를 종주로 삼은 성리학자들은 치세와 난세를 불문하고 불변의 철리와 명분을 극도로 중시했다. 이런 박백의 입장에 서게 되면 후흑은 있어서도 안 되고 구사해서도 안 된다. 치세에는 소인배가 아닌 대인의 도가 통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 일리가 있다.


 - 그러나 치세가 아닌 난세의 시기에는 어떻게 될까? 이는 패망의 길이다. 이종오는 바로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에서조차 정도와 의리, 명분 등을 내세우며 박백을 숭상하는 중국의 고식적인 식자층을 비판한 것이다. 이종오가 성리학을 질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백을 좇는 것은 마치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깃덩이를 던지는 것처럼 중국을서구 열강의 이익 대상으로 상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3) 난득호도(難得糊塗)

 

 - 이종오가 말하는 후흑은 공자가《논어에서 중원을 이적의 침입으로 막아낸 관중을 극구 칭송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난세의 시기에 군자가 취해야 할 명철보신의 행보가 바로 이것이다. 이종오가  동양 전래의 제자백가사상은 물론 외래 사상인 불교와 기독교,마르크시즘 등 동서고금의 모든 사상을 검토한 뒤 반식민지로 전락한 중국의 활로를 후흑에서 찾은 배경이 여기에 있다.


 - 그가 최고 단계의 후흑을 무형무색의 불후불흑에 비유하면서 유가의 중용과 불가의 보리무수를 같은 것으로 풀이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원래 보리무수는 중국 선종의 6조 선사로 알려진 혜능의 선시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중국 전래의 처세술인 대지약우 및 난득호도의 행보와 맥이 닿아 있다.

 

 - 21세기 현재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최상의 후흑은 소위 ‘난득호도’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총명해지는 것도 어렵지만 어리석은 체하는 건 더 어렵다는 뜻이다. 이 말은 원래 청대 건륭제 때 화가 겸 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정판교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건륭 19년(1754년) 가을 산동 범현에서 유현의 지현으로 있던 정판교는 어느 날 먼 친척 형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옥의 담장을 놓고 이웃과 송사가 벌어졌으니 지방관에게 잘 봐달라는 편지 한 통을 써달라는 청탁이 었다. 그는 편지를 다 읽은 뒤 시 한 수를 써서 보냈다. 
“천 리 먼 곳에 편지를 보낸 것이 담장 하나 때문인가? 그에게 몇 척을 양보하면 또 어떤가? 만리장성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어찌 진시황은 보이질 않는가?”

 

 - 원래 중국인은 한국인과 달리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저급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총명함을 가볍게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양이 덜 됐다고 보는 것이다. 난득호도의 ‘호도’는 말 그대로 깨진 도자기를 살짝 풀을 붙여 온전한 것처럼 만들어놓듯이 명확히 결말을 내지 않고 일시적으로 땜질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속담의 ‘눈 가리고 아웅’에 가깝다.

 

 - 그러나 중국어 ‘후투'는 같은 한자를 쓰는 우리말의 호도와 뉘앙스가 다르다. 머저리라는 뜻에 가깝다. 난득호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 문화를 언급하기가 어렵다. 모든 중국인들이 난득호도의 삶을 생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택동 시절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난득호도의 기본 정서와 동떨어져 있었다. 이를 다시 중국 전래의 난득호도 정서로 되돌려놓은사람이 바로 ‘흑묘백묘론'의 등소평이다.

 

 - 그러나 후진타오의 중국굴기나 시진핑의 중국몽을 보면 다시 후흑에서 박백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는 데, 과연 지금이 치세의 시기인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볼 수 밖에 없다.  중용의 세계란 이렇게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경지이다.

 

 (4) 후흑의 이용

 

  - '후흑'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면 욕된 이름을 얻게 될 뿐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쓰면 난세에 나라를 구할 수 있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고 감출 것을 감추며 냉정할 때에는 냉정하게 행동하는, 공공을 위한 '후흑'은 나라를 구하는
    난세의 통치학이 될 수도 있다.


  - 후흑을 이용해 사리를 도모할 경우 후흑을 사용하면 할수록 인격은 더욱 비루해진다. 후흑을 이용해 공리를 도모할
    경우 후흑을 사용하면 할수록 인격은 더욱 고매해진다 

 

 

 

3. 후흑의 현대적 개념 

 

 (1) 후(厚)

 

 - 개념 

    . 실패와 고난에 대하여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가라

    .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수하면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된다

 

 - 내용

 

   . 목적지향 :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기, 돌아가지 말고 fake하지 않기

 

   . 유연성 :  변화 대응, 군자불기(君子不器, 論語 爲政, ' 군자는 한가지 용도로 사용되는 그릇이 되지 말아야 한다')

 

   . 자기용납 : 실수할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기 수용성, 나를 아끼고 무겁게 여기는 '자중자애', 착한사람 컴플렉스 극복

 

   . 책임감 : 나를 믿고 따르는 조직원들에 대한 책임, 내가 맡은 과업을 끝내야 한다는 책임

 

   . 회복탄력성 : 두꺼운 것이 능사가 아니고 깨지지 않는 탄성이 있어야 함, 다음을 도모하는 마음자세,

                      일시의 장단을 다투지 말라 (장자)

 

 (2) 흑(黑)

 

 - 개념 : 속을 보이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면서 힘을 기른다

 

 - 내용

 

   . 비어 있다 (비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 노자와 한비자의 무위의 정치, 읽혀서는 않된다(두려움을 절대 드러내서 안됨,

                  무색무취하라(채근담), 주역 명이괘, 뒤동수 치는 음흉과는 다른 개념

 

   . 미래를 주도하여 면밀하게 준비한다 : 도광양회, 난득도호, 교토삼굴, 겸허하라, 조급해하지 말라,

                  채근담에서의 3분(양삼분, 감삼분, 귀삼분)

 

   . 단호함과 과단성 : 한비자가 말하는 '법', 악역을 두려워하지 않는 리더, 불비불명하다가 일시에 새롭게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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