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보는 눈이 없어요. 좋은 사람을 어떻게 구별하죠?”
“저는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고민입니다. 특히 연애할 때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 법륜 스님 >>
“질문자가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자기에게 잘해주고 이득이 되는 사람을 말하겠죠. 경제적으로 이득이 됐으면 됐지 손해는 안 주고, 정신적으로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위로를 해주는 사람 말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자기에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사람을 원하면 사기꾼한테 당하기 쉽습니다. 오히려 나쁜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아져요. 왜 그럴까요?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상대가 말을 부드럽게 한다든지 경제적 이익을 조금 주면서 접근하면 질문자는 ‘아,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깜빡 속아 넘어갈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망을 하고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물고기를 낚을 때 물고기가 좋아하는 걸 미끼로 걸어요, 싫어하는 걸로 미끼를 걸어요?”
“좋아하는 거요.”
“그래요, 당연히 좋아하는 걸 미끼로 걸죠. 물고기는 ‘이게 웬 떡이냐’ 하고 탁 무는데 결국 낚시 바늘에 걸려서 죽는 거예요. 옛날에 산에서 짐승을 잡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예를 들어 토끼가 칡을 좋아한다고 하면 짐승을 잡는 덫에 칡을 놓아둡니다. 그걸 먹으려고 건드리면 덫이 넘어져서 죽게 되는 거예요. 덫을 놓는 위치도 토끼가 잘 다니는 길이겠지요.
그러니 질문자는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을 원한다’ 하는 기준에 너무 얽매이지 마세요. 그러면 질문자를 이용하려고 접근하는 사람도 딱 질문자가 좋아하는 미끼를 가지고 접근합니다. 이성을 좋아하면 미인계 또는 미남계를 쓰고, 재물을 좋아한다면 뇌물을 바치고, 명예를 좋아한다면 상대를 계속 칭찬해 주는 거예요. 성질이 급하면 욕을 하고요. 그러면 딱 걸려드니까요.
질문자가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을 좋아하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접근해도 질문자는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가 없어요. 이득이 되는 줄 알았더니 오히려 이용당하고 나서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구나’ 이렇게 자책하는 일이 생깁니다.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득 되는 사람을 찾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늘 배신을 당하는 거예요.
앞으로 사람을 만날 때는 덕을 보려고 하지 말고 내가 상대에게 덕이 되어 보세요. 내가 상대에게 이득을 보고 싶듯이 상대도 나에게 이득을 보고 싶은 거잖아요. 그러니 내가 그를 칭찬해 주고, 내가 그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고, 내가 그를 위로해 준다는 관점을 가지면 이 세상 누구를 만나도 됩니다. 좋은 사람을 따로 고를 필요가 없어요. 내가 도와주면 되니까 고를 필요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도와주는 대신 이자까지 얹어서 받겠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실수할 수 있겠죠.
주식을 사도 떨어질 때가 있잖아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상대에게서 아무런 이익을 볼 생각 없이 그냥 도와준다는 관점을 가지면 어떤 경우에도 실망할 일이 없죠. 그러니 사람을 고를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지금처럼 좋은 사람을 골라서 접근하지 말고 그냥 ‘사람이면 됐다’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이득을 보고 싶어 하니까 내가 상대에게 도움이 되면 상대는 당연히 좋아하겠죠. 그런데 본인은 상대에게 가서 살갑게 말을 걸지도 않고 상대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떡 버티고 앉아서 ‘나한테 와서 나 좋다고 막 달라붙어라’, ‘나한테 와서 경제적으로 이익을 줘라’ 이러면 안 돼요. 그러면 첫째, 외롭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그런데도 접근하는 사람은 거의 90퍼센트 사기꾼일 확률이 높습니다.
질문자가 말한 ‘사람을 보는 눈’이라는 걸 관상을 본다거나 뭘 본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에요. 질문자의 인생 가치관을 바꿔야 합니다. 사람을 볼 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너무 구분하지 마세요. 덕을 보려고 하니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지, 덕 보려는 생각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구분하겠어요? 내가 덕 보려는 생각이 없으면 누가 나한테 와서 잘해주고 뭘 주겠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사기꾼일 확률이 높거든요. 사기꾼이 접근한다 해도 내가 득 볼 생각이 없으면 그에게 속아 넘어갈 이유가 없어집니다.
사람들은 으레 인물 잘난 사람, 옷 잘 입은 사람, 말 잘하는 사람, 부드러운 사람, 소위 서비스가 좋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호감이 가게 마련이에요. 사기꾼은 의도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물 못난 사기꾼 봤어요? 옷 잘 못 입는 사기꾼 봤어요? 말 못 하는 사기꾼 봤어요? 서비스 없는 사기꾼 봤어요? 커피나 식사는 얼마나 잘 사는지 모릅니다. 매달 작은 것을 대접해 줘서 ‘야, 좋은 사람이구나’ 할 때, ‘급한 일이 생겼는데 돈 좀 꿔다오’라고 합니다. 또 사기꾼은 차도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사무실도 비까번쩍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다 좋아하게 돼 있는 거예요. 그물을 쳐놓고 있으면 이 물고기가 안 들어오면 저 물고기가 들어와요. 그렇게 쳐놓고 기다리면 득을 보려는 사람이 그 미끼를 찾아서 그물 속으로 걸려 들어오는 거예요.
질문자는 그런 그물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그물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이익을 너무 따지지 마세요. 나한테 잘하느냐를 너무 따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질 급하고 욕을 잘하는 사람은 나의 감정을 상하게는 하지만 절대 나에게 손해는 안 끼칩니다. 그런 인간한테 내가 속을 이유가 없잖아요. 인간관계에서는 속는다고 할 것도 없지만, 굳이 속는다고 표현한다면 나한테 잘하는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 항상 속게 됩니다.
그러니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그냥 줘버리세요. 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면 ‘없다!’ 하고 욕을 얻어먹든지, 아니면 십만 원이든 백만 원을 팍 줘버리세요.
‘아이고, 형편이 어려운가 보구나. 친구지간에 무슨 돈을 빌리니? 나한테 백만 원밖에 없다. 그냥 써라!’
이렇게 탁 줘버려야 원수가 안 됩니다. 빌려주면 나중에 상대가 못 갚았을 때 원수가 돼요. 생각해 보세요. 궁하지 않으면 빌릴 일이 없고, 궁하더라도 땅이 있으면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잖아요. 친척이나 친구, 가족, 동기에게 연락할 때는 빌릴 데가 없는 급한 상황이라는 뜻이에요. 이때 빌려주면 못 받을 확률이 벌써 90퍼센트는 됩니다.
돈거래를 하지 말라, 즉 빌려주지 말라는 얘기예요. 돈을 주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줄 거면 그냥 주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욕심 때문에 고민하는 거예요. 안 주려니 욕 얻어먹을 것 같고, 주려니 돈을 못 받을 것 같으니까요. 돈이 중요하면 안 빌려주고 욕을 얻어먹어야 하고, 의리가 중요시하면 돈을 포기해야 합니다. 돈을 포기하자니 너무 아깝고, 그렇다고 의리를 포기하기도 어렵다면 적은 돈이라도 팍 줘버리세요. ‘아이고, 미안하다. 나는 요것밖에 없다’ 이러고 끝내야 해요. 그래야 원수가 안 됩니다.
질문자도 이런 욕심 때문에 고민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좋은 사람’을 찾기 때문에 늘 실망할 일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상대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에요. 세상에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좋은 사람’은 ‘나한테 잘하는 사람’이에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쁜 사람이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한반도 평화를 가져오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마무리를 못 해서 그렇죠. 이처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평가하는 건 모두 본인에게 잘하느냐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애하거나 결혼한 사람하고 원수가 되지, 길 가는 사람하고는 원수가 안 됩니다. 왜 내가 사랑해서 연애하거나 결혼한 사람과 원수가 될까요? 그만큼 내가 기대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너무 이해관계로 판단하지 말고 그냥 사람으로 보고 관계를 맺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오래 보면서 평가를 하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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