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

 

오직 충실함만이 모든 장애물을 이긴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 pp.122-135> (문학사상 2014)

 

 

□ 나는 왜 시인이 되었나

 

왜 시인이 되었냐고 물으면 흔히 얘기하듯 운명인 거 같다. 시인을 꿈꾸기 전에 시를 좋아 했고, 힘들 때면 시를 읽으며 견뎠고, 시로 숨쉬며 산 청춘이었다. 시를 왜 좋아했나 생각해보니 풀과 같이 자연이란 깨달음, 더없이 낮아지고 선량해지는 고마움이 가슴에 물결처럼 퍼져가 나를 좀 사람스럽게 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나에게 시를 왜 쓰느냐 물으면 농 반, 진 반 착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말해왔다. 실제 인생에서 착하게 산다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내가 시를 쓸 때 나의 시 <애무 한 벌>과 같은 기쁨을 얻어서도 있지 않을까 한다.

 

더 가까이 가고픈 마음이 

빨간 석탄이면

우리의 담장이 무너져도 괜찮겠죠

뭘 해도 망가질 듯한 두려움 잊고

달고나같이 엉겨붙어 하나가 되어도 좋겠죠

 

바닷바람처럼 거친 숨결 사방에 메아리치니

숲과 집이 되살아나고 거대한 나팔꽃 해가 피어나고

샘솟는 빛이 보입니다

육신의 무명천을 천천히 찢어가는 쾌감 속에

바다와 흙을 반죽하여

새롭게 몸을 지어 삶을 바꿔주시는군요

 

당신 몸이 내 곁에 계시니 안정감을 줍니다

함께하는 한 잃어버릴 시간은 없습니다

살아 있는 기쁨, 처음의 깨우침,

당신이 주신 이 따뜻한

애무 한 벌*

 

 * <애무 한 벌>,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

 

한 벌의 시의 의복을 만들듯 나는 나의 시로써 영혼을 키워가고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것 같다. 그 사랑이 애정이든 우정이든 창작이든 늘 순정을 최고로 중요시한다. 누군가 시인과 사진가가 꿈이라면, 무조건 시가 좋아야 하고, 사진가는 멋진 사진 욕심보다 그저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는 그 열정과 순정이 먼저일 것이다. 그림과 글이 그리워하다, 란 뜻에서 나왔듯이 ......

 

가난도 외로움도 축복이 되려면 치열한 몰입이 있어야 가능하더라. 치열할 때만이 야들야들한 감성이 살아 있고, 참 다양한 삶의 순간에 섬세하고 번뜩이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그것들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하여 팬들이 내 시를 좋아한다며,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화가 지망생으로 조금이라도 미대를 다닌 경험, 숱한 실패를 통한 고뇌와 깨달음, 한 발이라도 담그고 살았던 신앙의 힘, 독서의 힘과 다양한 문화 체험, 그리고 늘 부족하지만 나만의 신앙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라도 문학, 예술, 인문학, 철학 등 모든 분야를 즐기다보면 좋아지고, 좋아하고, 깊이 탐구하다 보면 남다른 실력, 창의력 잇는 사람이 되어 자기만의 세계가 열린다고 본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 자기 하기 나름이니, 우리가 좀 더 세상과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지는 못해도 연민으로라도 바라본다면 생이 바뀌리니.

 

 

□  등단무렵 이야기


첫 시집 출간이 진짜 등단한 느낌이었다. 첫 시집《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가 여러 신문에서 호평을 받은 데 비해 문학잡지 두 군데서만 다뤄져 좌절스러워했던 것 같다. 그나마 이승훈 시인의 “황홀한 내면 풍경과 외로움의 미학과 특이한 매혹의 시”란 칭찬과 “거대한 내면을 지닌 이 불꽃 같은 시인에게 기대를 건다’는 서준섭 평론가의 평론과 장은수 평론가의 호평이, 출간 전의 정진규 선생님의 칭찬 등이 가슴에 작은 용기의 등불이 되었는데 그분들께 참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지금도 구름 속에서 소리치는 천둥처럼 가슴속에서 하나의 깨달음이 거칠게 요동친다.
“오직 충실함만이 모든 장애물을 이긴다.”
이 깨달음을 생각할 때마다 내 책상 위에는 햇빛이 일렁이고, 상큼한 바람이 불어온다.


첫 시집은 네 곳의 출판사에서 러브콜이 있었다. 세계사의 러브콜에 응답했는데, 하루 뒤에 창작과비평사의 프러포즈를 받았다.  내 《지루한 세상에 불 타는 구두를 던져라》를 낸 시절을 생각하면 분명 책들도 각 시집의 운명도 분명히 있다.
나는 서른 초반에 미친 듯이 작업을 하여 시 매장량이 많았다. 그다음 해 처음의 러브콜에 용기를 갖고 《세기말 블루스》원고 투고 후 오랜 기다림 끝에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고, 나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다.
차갑던 방에 불을 땔 때처럼 내 인생에 따스한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촌 대학가의 큰 호응에 힘입어 그해 가을 많은 주간지와 열두 개의 여성잡지에서 내 기사가 크게 다뤄진 후 시집이 베스트셀러 1위까지 한 감격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를 구원해준《세기말 블루스》덕에, 먼지 속에 묻혀 있던 첫 시집《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를 꺼내 읽은 독자들은 이 시 집을 더 좋아하게 되었단 얘기도 듣는다.
그 당시 내 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주신 김사인, 고형렬 선배님께 늘 감사한다. 내게는 참으로 공평무사한 선배님들로 인간적인 신뢰감과 존 경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시영 시인과 창작과비평사에 은인과도 같은 고마움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창작자로서의 꾸준한 성장과, 노력하는 나보다 불면증을 이긴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파란만장한 인생의 고난보다 불면증이 정말 무서웠다. 늘 불면증으로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청춘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다시 잠이 쏟아진다. 뭉텅뭉텅 목화솜 같은 잠이 쏟아지는 축복 속에서 나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 매일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맛보고 일하고 싶다.

 


□  시인으로서 삶에 대한 생각


우리는 대체로 익명의 존재로 살다 간다. 그렇게 꽃이 피었다 지듯이 살다 사라지는 존재임을 자주 느끼면 죽음을 더 잘 준비하지 않을까. 죽음 준비는 참으로 잘 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가진 물건과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실천이며, 지금 이 순간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으리란 약속이다. 그 약속은 자주 어그러지기 쉽지만 말이다. 인생은 얼마나 자기를 잘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 쓰기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생의 철학에서 시작하리라 본다.


여러 번 냉담 끝에 되찾은 신앙심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내 삶과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침을 느낀다. 외롭고 고요한 시간에 영혼에 숨은 신성한 기운을 헤아려보려 애쓴다. 여리고 여린, 슬프고 헐벗고, 아픈 것들을 향해 기도할 수 있는 그 신성한 기운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창작 태도도 훨씬 내 마음에 들어졌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생의 지혜와 겸허함, 감사와 기쁨조차 끝없는 노력과 기도 속에서 얻어짐을 느낀다.

 

곧 잊을 수 없는 저녁이 올 거야
죄와 악이란 말을 잊었듯이 그 저녁도 잊을 거야
잊혀진 사람과 사라진 동물을 적어봐
별을 삼키고 속죄의 시를 적어봐
오늘은 컴퓨터 냄새가 싫으니까
손으로 쓴 편지로 나를 울게 해봐*

 

 * <세기말 블루스>부분, 《세기말 블루스》, 창비, 1996


내 시〈세기말 블루스〉에 썼듯이 뭐든 쉽게 잊히는 세상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시간을 쌓아가고 싶다. 일에서든 사생활에서든 그 아름다운 시간들을 통해 얻은 삶의 진실들로 내 생의 의복을 만들어가고 싶다. 

 

 

□ 나는 이렇게 작업한다

 

이에 대한 답으로 시인으로서 꿈꾸는 세상을 계간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 정형탁 편집장과의 인터뷰 중에서 일부 인용하겠다.


사진을 문학과 결부시카는 걸 굉장히 싫어하시네요?


제 시는 휴머니즘의 한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의도적으로 한 부분 일관되게 다뤄왔어요. 불평등한 가부장적인 흔적이나 남성성이 지닌 거칢과 폭력에 저만의 시로써 저항하며, 좀 더 사람다운 세계를 그려보려 했어요. 여성도 남성과 똑같다는 의미로서 욕망을 다루었죠. 그 무엇보다 인간 존재의 외롭고 쓸쓸한 내면을 노래했었죠. 파편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늘 역사나 시대의 문제도 깊이 인식하며 작업했어요.


저는 문학을 위해 사진을 찍지도 않고, 사진을 위해 문학을 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생존을 위해 그렇게 책을 만든 적은 있지만요. 진정 제 본격 시와 사진 작업에선 각자 고유의 양식에 투철해왔고, 두 양식을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을 했고, 이제 운명이 되었어요. 서로 주고받는 영향 속에 있긴 해요.


다음 5시집과 함께 준비하는 6시집에서는 다룰 내용이 제3전시〈사과밭사진관〉전을 준비할 때처럼 대지의 모성성, 그 소외와 의미,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 갈 곳이 땅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일깨우고 싶어요. 대를 이어가는 사람들. 더불어 희로애락을 겪으며 비로소 사랑과 정을 알고 혼을 얻어가는 게 사람임을 담으려 해요.


외국에는 두 가지 이상의 창작을 겸하는 작가가 부지기수인데, 한국 풍토는 한 가지 넘는 전문 작업에 냉소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이것은 예술의 본질과 성과를 떠난 권력과 정치에 속하는 문제라고 봐요. 진정한 창작은 자기의 믿음으로 밀고 가며, 내일의 새로운 비전을 펼쳐 보이는 데 자기만의 재능과 열정을 바치는 일입니다. 세계화라는 이 혼란스럽고 스펙터클한 시대에 좀 더 치열한 창작의 햇불로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데 이것만 해야 된다는 법이 어디 있나요. 예술은 그 낡고 익숙한 법을 넘고 끝없이 바꾸고 변형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 누구든 타 장르와의 벽을 트고 나갈 자는 담대하게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한 시대의 삶을 치열하고 첨예하게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자기 영역 지키기만을 고집하는 분들은 보기에 좀 답답하지만 신경 쓸 건 없지요. 저마다 자기 몫을 하며 살다 가는 것이니까요.


세계화 시대 속에서 통섭이니 융합이니 그 흐름은 선진국일수록 거셉니다. 통섭이랄 수 있는 글과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들은 이미 있어왔어요. 저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지만, 미술대학을 한 학기 다닌 경험과 저만의 탐구, 여러 권의 사진 에세이,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등의 예술 에세이를 내기도 했어요. 먼저 제 작업을 위해 공부하려고 쓴 책이기도 하죠. 예술에 대한 저만의 사랑과 깊은 고뇌의 산물이거든요. 그것이 다 바탕이 되어 오늘의 전시가 있었고, 시 창작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저는 운명적으로 둘을 다 다루게 되어,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렇다면 시가 사진이나 그림과 어울라는 포토포엠이라는 형식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연히 내 육체와 정신에서 나온 작업이라도 사진과 시는 철저히 분리합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시는 시집 속에 들어간 것만 시입니다. 저만이 아닌 모든 시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미발표 상태로 하늘나라로 가지 않는 한. 제가 썼던 네 권의 시집과 준비하고 있는 5시집에 들어갈 것만 시예요. 결국 잘 정리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외의 글은 시적인 문체라도 산문이고, 독자들이 행갈이해서 올려놓았더라도 시가 아닌 산문일 뿐이에요.


예술은 엄격한 자기통제 안에서 작업됩니다. 예술은 사람의 정신을 움직이기에 감동이 우선이에요. 그 감동은 저절로 스며나오지만, 예술은 끝없는 자기 수련 끝에 완성되어져요. 초기 작업 시절에 중요하게 마음에 담아둔 게 있어요. 서양 쪽 어느 예술평론가가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설픈 예술은 관객의 감각을 타락시킨다"는 말. 다시 말해 어설픈 시도 독자의 감각을 타락시킨다는 말. 얼마나 무서운 진실인가요. 철저한 장인정신에서만 진정한 예술이 꽃피고 관객의 감각 성장에 도움을 줍니다.


어떤 예술이건 끝까지 예술로 살아남는 건 시적인 아름다움이 배어 있을 때 크다고 봐요. 
시적이라는 건 더욱 절제된 상태에서 나오는 무언의 아우라예요.


사진이든 시든 제 방식의 강렬함을 추구해요. 생명력 넘치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꿈꾸기 때문이에요.
잃어버린 자신과 인터넷과 매스미디어가 만든 가상세계에서 사는 듯이 보이는 우리 현대인들. 어딘가 공허한 생활.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늘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이정표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하여 인생의 무거움에서 가볍게 날아오르는 기쁨과 시공을 가르는 희열감까지도 맛보는 충만함 속에서의 강력한 존재감을 꿈꿉니다.


인간의 존재는 이 세계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부재감의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현실과 비현실이 기묘하게 뒤엉켜 미스터리한 빛을 내뿜지요. 그것이 강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 고뇌 또한 사진 이미지 만큼이나 시 속에서 다루고 싶어요. 이 모두는 제가 생을 바라보는 관점이겠죠. 4시집《침대를 타고 달렸어》의 시 한 편으로 마무리할게요. 사람은 함께 있을 때 자극받고 혼자 있을 때 성장합니다. 모두 자기 성장에 애쓰면서 그래도 늘 미소가 오가고, 서로가 마주 선 길 위에 따뜻한 인사가 꽃처럼 펄펄 내리기를 기원해봅니다.

 

침대를 타고 나는 달렸어 밤 도시를 돌고 돌았지

팽이가 돌듯 머리 돌 일로 꽉 찬

슬픈 인생을 돌았어

 

내가 태어나 사랑하고 죽어갈 이 침대

다 잃고 다 떠나도
단 하나 내 것처럼 남을 침대

결국 관짝이 될 침대
몸의 일부인 침대를 타고 달리면 

물고기와 흰나비 떼들이 날고 

슬픔까지 눈보라같이 날아


내일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고
세상끝까지 갈 힘을 얻지
몸은 꽃잎으로 가득한 유리 병같이 

투명하게 맑아져 다시 태어나는 나를 봐

 * <침대를 타면>,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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