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벼랑끝 세계 경제…그 끝은 스태그플레이션”
세계 최대 헤지펀드 매니저 레이 달리오 회장
< 중앙일보 2022.06.17, 강남규 기자 >
물가급등, 미·중 패권경쟁, 우크라이나 사태, 미 통화긴축, 성장둔화….. 경제뿐 아니라 사회·정치·군사 리스크가 한꺼번에 소용돌이친다. 증시와 원자재 시장에서 가격이 요동친다. 시장 참여자와 비즈니스 리더, 정책 담당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궁금증을 예견이라도 한듯이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릿지워터어소시에이츠 레이 달리오 회장이 『변화하는 세계질서』를 발표했다. 빠른 셈으로 고수익이나 좇는 헤지펀드 매니저가 재테크 책이 아닌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다룬 책을 썼다. 억만장자(약 21조원)의 지적 허영일까. 이런 경계심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줌(Zoom)으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지배적 세계 리더와 질서 부재로
갈등 수습 못하고 상황 위험해져
경제논리가 수익 결정 않는 대신
정치와 지정학적 변수 중요해져
레이 달리오 브릿지워터어소시에이츠 회장은 “경제논리보다 안보와 이념이 우선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말했다.
헤지펀드 운용과 국제정치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정치와 경제는 분리할 수 없다. 정치만큼 경제와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다. 특히 지금은 경제논리가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때가 아니다. 지금은 (대공황이 발생하고 2차대전이 발발한) 1930년대 이후 정치와 지정학적 요인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국제정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기에 책까지 썼는가.
“세계는 전쟁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절벽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져 있는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전쟁의 벼랑 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앞으로 더 강도 높은 경제제재가 이뤄질 것이고, 주요 나라가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벼랑 끝 시대엔) 다른 쪽에 상처를 입히도록 설계된 활동(경제제재)이 본격화한다. 역사를 보면 각종 경제제재는 전쟁 직전에 일어났다. 그런데 세계는 무기력하다.”
무기력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요즘 세계는 더 이상 하나의 힘에 의해 지배받지 않고 있다. 미·중뿐 아니라 러시아와 유럽도 서로 갈등하고 있다. 지배적인 세계 리더와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국제연합)은 상황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할지 투표만 하고 있다. 그 바람에 상황은 더 위험해지고 있다. 개인들이 (투자) 계획을 세우려면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화하는 세계질서』를 보면 달리오 회장이 말한 전쟁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국지전이 아니다. 주요 나라 또는 많은 나라가 얽히고설킨 전쟁이다. 때로는 “통치자가 누구인지, 누가 국가 시스템을 작동하도록 할지를 놓고 한 나라 내부에서 벌이는 내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앞서 정치와 지정학적인 요인이 경제에 우선한다고 말했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면 좋겠다.
“지금은 경제논리가 재화와 서비스 이동이나 수익을 결정하는 상황이 아니다. 이전(1980년 이후 30여년 동안)에는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곳으로 돈이 흘렀다.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덕분에 경쟁력이 높은 나라의 생활 수준이 높아졌다. 다시 말하지만 돈은 이익을 좇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러나 현재는 이념과 정치, 지정학인 요인이 자본 등 자원을 어디에 투자할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경제보다 이념과 정치, 지정학적인 요인이 우선한다는 얘기다. 그 바람에 글로벌 공급망 등이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투자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전쟁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했는데, 역사를 보면 전쟁은 패권의 변곡점일 때가 많았다. 지금이 그런 때인가.
“한 나라가 전쟁을 거치며 패권국가로 떠올라 번영한 뒤 쇠퇴한다. 지금은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압도적인 힘과 세계 금의 80%를 보유했다. 지금은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다.”
패권의 출현-번영-쇠퇴가 어떻게 이뤄지는가.
“한 나라의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면, 다른 나라들이 기축통화를 보유하는 방식으로 저축하려고 한다. 요즘 한국과 중국 등이 미 국채를 사는 방식으로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패권국에서 부채 증가를 의미한다. 빚이 늘어나는 현상은 쇠퇴기의 세 가지 증상 가운데 첫번째다. 둘째는 내부의 빈부격차가 벌어지며 나타나는 사회·정치적 갈등이다. (패권국 내부의)빈부격차, 갈등, 소통 부재는 항상 더 나쁜 일을 예고했다. 셋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라이벌의 등장이다.”
세 가지 증상을 듣고 보니 지금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떠오른다.
“미국이 쇠퇴기에 들어섰지만, 아직 강하다. 신기술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고, 교육 수준도 최고다. 최고의 대학과 리서치 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여전히 달러는 기축 통화다. 반면 여러 분야에서 약해지고 있다. 국가 부채가 심각하다. 중국과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내부 갈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블룸버그 통신의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달리오 회장의 개인 재산은 161억 달러(약 21조원)에 이른다. 그가 세운 브릿지워터의 자산은 2355억 달러(올해 3월 말 현재)에 이른다. 그는 브릿지워터 회장이면서 최고자산운용책임자(CIO)도 공동으로 맡고 있다.
CIO라는 운용 총괄까지 맡고 있는데, 현재 인플레이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 상황이 80년대와 닮았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70년대와 비교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그때 주식과 채권 시장은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아주 형편없었다. 멕시코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 82년 8월 다우지수가 저점을 찍고 반등했다(그래프 참조). 그리고 80년대에 주식과 채권 시장은 호황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인플레이션 상황이 얼마나 이어질까.
“베트남 전쟁 등으로 70년대 물가가 크게 뛰었다. 이전에는 물가에 대한 걱정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렇게 바뀐 패러다임은 약 10년간 지속됐다. 그리고 80년대 초 미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긴축으로 물가가 잡혔다.”
기준금리를 크게 인상했으니 이제 물가가 잡히는 것인가.
“중앙은행은 낮은 물가와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지정학적 이유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더 심해지고 (투자의) 효율성은 떨어지면서 성장률은 낮아진다. 이런 요인이 작용해 결과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달리오 회장은 통화량 증가만으로 최근 물가 급등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변화하는 세계질서』 등에서 한 나라 내부의 사회·정치적 갈등과 지정학적인 요인 등이 물가를 더 오르게 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저성장-고물가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플레이션 시대엔 어떤 자산이 유효할까.
“(요즘 같은 시대에) 채권은 나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채권이란 자산은 가치가 떨어진다. 정부는 많은 돈을 찍어내 이자율보다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려는 경향이 있다(정부가 부담하는 실질금리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등이 고강도 긴축으로 돌아서고 있다.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통화를 긴축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준금리가 충분히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바람에 채권 보유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따른 손실을 보상받을 만큼 충분한 수익을 얻지 못할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투자할 나라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지금은 (고수익보다는) 안전한 투자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는 시기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있다. 국가별 차이도 아주 크다. 나는 세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어떤 국가에 투자할지를 결정한다. 첫째, 재정적으로 튼튼한 곳이다. 어느 나라가 수입이 지출보다 큰지, 대차대조표가 튼튼한지를 살펴본다. 둘째, 내부 갈등의 정도다. 내부 갈등이 심한 나라에 투자하면 부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해야 한다.”
셋째 기준은 무엇인가.
“전쟁의 위험에 처해있는지, 달리 말해 중립적인지 여부를 살펴본다. 요즘 같은 시대에 중립적인 나라가 괜찮다. 그리고 세 가지 기준 외에 경제의 자립 정도도 살펴본다. (중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자급자족하지 못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채권과 주식 가격이 요동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가 상승을 이끄는 요인(임금·원자재 가격 등)도 변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채권을 처분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주식) 가격에도 반영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다시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악순환).”
레이 달리오
1949년 미국 뉴욕 퀸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재즈 음악가였다. 달리오는 롱아일랜드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 MBA 코스를 마쳤다. 그가 주식에 손을 댄 시기는 12세 때였다. 골프장 캐디로 번 돈으로 주식을 사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고등학교 때 그의 포트폴리오 규모가 수천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장내 트레이더 등으로 일하다 75년 브릿지워터를 세웠다. 젊은 시절 그는 아주 공격적으로 베팅하다 파산하기도 했다. 그는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앞서 개인의 삶과 인생·투자철학을 담은 『원칙(PRINCIPLES)』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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