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눈
최인호 작사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감고 귀 기울이면
까마득히 먼데서 눈 맞는소리
흰벌판 언덕에 눈쌓이는 소리
당신은 못듣는가? 저 흐느낌 소릴
흰벌판 언덕에 내 우는 소릴
잠만들면 나는 거기엘 가네
눈송이 어지러운 거기엘 가네
눈발을 흩이고 옛얘길 꺼내
아직 얼지 않았거덩 들고 오리다
아니면 다시는 오지도 않지
한밤중에 눈이 나리네 소리도 없이
눈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한발짝 두발짝 멀리도 왔네
한발짝 두발짝 멀리도 왔네
1. 송창식 작곡 / 노래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경향신문 2022.01.10 >
[노래와 세상]송창식 밤눈
사륵사륵 눈이 쌓이는 겨울 저녁, 송창식의 노래는 최고의 배경음악이다. 비가 오고, 바람 불고, 꽃이 피고, 새가 울 때도 송창식은 유효하지만 ‘밤눈’의 매력을 뛰어넘지 못한다.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 감고 귀 기울이면/ 까마득히 먼 데서 눈 맞는 소리/ 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 당신은 못 듣는가. 저 흐느낌 소리/ 흰 벌판 언덕에 내 우는 소리.’
1974년 발표된 송창식의 3집 앨범 수록곡으로 소설가 최인호(앨범에는 동생 최영호로 표기)가 작사했다. 송창식은 6개월 보충역으로 군에 가기 직전에 이 노래를 만들었다. 입대를 앞두고 불투명한 청춘의 한가운데서 겪는 심란함을 통기타 선율에 담았다.
최인호는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이 노랫말을 고등학교 졸업식 전날 밤 썼다고 술회했다. 그는 어지럽게 내리는 눈발을 보면서 졸업을 앞둔 기쁨과 설렘보다는 세상에 나가는 두려움을 노랫말에 담았다고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송창식은 최인호 소설 원작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 OST로 ‘고래사냥’을 만드는 등 당시 청년문화를 주도하면서 최인호와 교유했다.
‘밤눈’을 둘러싼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평소 이 노래를 좋아했던 탤런트 강석우는 가곡으로 만들어서 발표하고 싶었다. 알고 보니 작사가가 영화 <겨울 나그네>로 인연을 맺은 최인호였다. 강석우는 최인호 소설 원작의 이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어렵게 유족에게 연락하여 허락을 얻어 만든 가곡 ‘밤눈’은 지난해 바리톤 이응광이 불러 발표됐다.
‘눈 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라는 노랫말은 눈 내리는 겨울밤이라면 늘 유효하다.
2. 강석우 작곡 / 바리톤 이응광
'밤눈'이라는 송창식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한동안 밤마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잠을 청하곤 했는데 어느 날 내가 진행하는 클래식 프로그램인 "cbs-FM의 강석우의 아름다운당신에게"에서 그 노래 얘길 하다가 가요인 '밤눈'을 방송하기에 이르렀다.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런 밤들이 이어지던중 가사에 빠져 '밤눈'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 문득, 가곡으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작곡을 시작했다.
최인호 형님의 글인걸 알게 되었고 허락을 받기위해 안성기형을 통해 아드님 도단씨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어머님께 여쭤보겠다는 답을 들었다 (야단났네.. 이미 거의 다 작곡을 마쳤는데...)
다음 날 아침 형수님께서 전화를 주셨고(가슴 떨리는 순간...) 나즈막한 목소리로 글 사용료는 안받을테니 곡을 잘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드리라는 허락의 말씀을 주셨다.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영화 '겨울나그네'의 대사나 상황도 그렇고 밤눈의 가사도 그렇고 최인호의 글에서는 슈베르트의 냄새가 난다.
또 한번의 경제성 없는(?) 바보같은 짓일지 모르지만 밤눈 가사에 곡을 붙였고, 녹음을 하고,영상을 만들고..이제 곡을 완성했다.
최인호라는 우리시대 최고 작가를 알고 있고 영화 '겨울나그네'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속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 있는 추억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 되기 바라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전대의 아름다운 우리의 정서를 전해주며 아울러 최인호라는 감성 넘치는 작가와 함께 했으므로 행복하였노라고 자랑하듯 얘기해 주고 싶다.
"야, 짜샤~!!" 하면서
"너에게는 '피리부는 소년'이라는 이름이 평생 따라 다닐거야"라고 예언처럼 말씀하시던
환한 미소띈 최인호 형님이 보고 싶다.
다섯번째 곡에 함께 해 준 바리톤 이응광,
편곡 이웅,기타연주 이미솔, 사진 김광수 정대영, 영상편집 최은광님께 감사드린다
2021. 4. 23 강석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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